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이선형
  • 조회 수 2803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10년 6월 18일 22시 02분 등록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The Diary of Vaslav Nijinsky)]

 (바슬라프 니진스키 Vaslav Nijinsky / 이덕희 옮김)


* 저자에 대하여

  러시아의 전설적인 발레 무용가요, 안무가였던 바슬라프 니진스키(Vaslav Nijinsky)는 1889년 3월, 우크라이나의 키에프에서 폴란드 출신의 발레 댄서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삼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언제 춤을 배우기 시작했는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어릴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고 5세 때 정식으로 데뷔, 큰 갈채를 받았다. 그 후 10세 때 황실 발레학교에 입학하고 2년 후 기숙학생으로 선정되어 작은 배역으로 출연하기 시작하였으며 황실학교 졸업과 동시에 황실 발레단에 입단한다.

  그러나 이렇게 발레에 대한 재능을 일찍부터 인정받은데 반해 니진스키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부재와 가난, 그리고 형의 정신질환 등 어둠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니진스키의 아버지는 니진스키가 여덟 살 무렵부터 다른 여자에게 빠져 가정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고 결국 가정을 버리게 된다. 발레를 가르쳐 주었던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배신’과 부재는 평생 니진스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쳤고 니진스키는 결국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가난은 그의 가족, 특히 어머니를 힘들게 했고 니진스키는 성인이 되어서도 어머니에 대한 부채의식에 시달리게 되며, 경제적 불안정과 위기의식은 니진스키가 디아길레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학창시절에는 그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만큼 주변의 시기와 질투를 받았고 사회성이 부족한 니진스키는 공기총 사건과 추락 사고 등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며 점차 폐쇄적이 되어갔다. 천재적 예술성에 대한 갈채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는 고립되어 갔으며, 나중에는 누이 브로니슬라바만이 그를 이해하는 동료이자, 친구가 되었다.

  니진스키는 성인이 되어갈 무렵,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두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류보프 공은 니진스키의 소위 ‘후원자’로서 그를 사랑하는 만큼 니진스키의 성공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류보프 공의 후원을 받는 일 년 남짓의 기간 동안 니진스키는 아버지의 부재를 메우며 성인으로 성장해 갔다.

  그러나 니진스키 발레의 완성을 위해 압도적 영향력을 차지했던 디아길레프와의 만남은 니진스키에게 발레 뤼스의 스타의 길을 열어주었고 디아길레프와 동거하는 5년 정도의 기간 동안 니진스키는 ‘무용의 신’으로 칭송되지만 한편 니진스키의 발레 외적 발달과 정신적 성숙에는 그다지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디아길레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니진스키는, 전격적으로 언어도 통하지 않았던 외국의 숙녀와 결혼을 하지만 그 결혼을 통해서 진정한 안식과 휴식을 얻거나 인간적 성숙을 얻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니진스키의 ‘배신’을 용납할 수 없었던 디아길레프와의 갈등은 오랫동안 니진스키를 괴롭혔고, 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그의 인생을 지배했던 무대와 춤에서 니진스키를 떼어놓게 된다. 

  학창 시절 사고의 영향으로 추정되는 육체적인 문제와 더불어 여러 상황 속에서 니진스키는 발병하게 되고 28살, 대중 앞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오지 못했으나, 1960년 61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무대와 춤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했다. 

  만약 그가 전쟁으로 인해 그의 생명과도 같았던 무대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다면 그의 치명적 질병은 평생 그의 속에서 잠자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이야기이자, 인간의 운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평생 노력한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엄청난 역사의 흐름 속에 떠 흐르는 존재일 뿐이기도 하다. 또한 주변인으로 인한 ‘쇼크’가 증세를 급성으로 진행시켰다는 진단을 읽으며,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가 싶었다.  


  로몰라와 니진스키의 결혼은 어땠을까? 로몰라는 니진스키의 춤을 처음 본 순간, 그에게 빠지고 그와 결혼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 후 18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니진스키의 주변을 맴돌고 결국 니진스키는 그녀를 의식하고 청혼을 한다. 약혼을 할 당시 서로 말도 통하지 않았던 그들은 어떻게 서로를 확신할 수 있었을까?

  로몰라는 보통 이상의 애착을 가졌던 아버지의 권총자살로 인해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착에 심각한 상처가 있었다고 역자는 이야기 한다. 유럽의 명문가의 공주처럼 자랐던 그녀가 니진스키를 선택하고 결혼하고 니진스키가 61세로 요양원에서 사망할 때까지 평생을 가난과 싸우며 그의 곁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녀는 니진스키의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와 관계를 맺기도 했으나 니진스키와 헤어지는 것을 거절했고 결국 그 의사는 자살을 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들로 보아 니진스키의 긴 투병생활 동안 있었던 그녀의 몇몇 방황은 돌아올 것이 정해진 잠깐의 방황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강했던 로몰라의 사랑과 집착이 니진스키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일기>를 읽어보면 니진스키도 로몰라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끔 그녀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불평하지만 그래도 니진스키는 자신의 사랑과 그녀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두 사람의 사랑이 서로의 삶과 인생을 온전하게 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니진스키를 처음 진료했던 의사는 가정의 의무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니진스키에게 더 좋을 것이라고 충고하고 로몰라에게 이혼을 권유한다. 아버지의 자살로 인한 상처를 받았던 로몰라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그리고 그를 대신한 역할을 했던 디아길레프에게 상처를 받았던 니진스키는 서로를 위해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짝은 아니었을까?

  또 결혼 사흘인가 닷새 후 니진스키는 로몰라에게 춤을 가르치려다 실망하고 슬퍼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니진스키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었지만 로몰라는 스스로 춤을 출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았던 것일까? 아님 니진스키의 교수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아무튼 니진스키는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의 손에 자신을 맡긴 것’이라고 울며 슬퍼하고 있다. 그리고 ‘아내는 어느 누구보다 나를 사랑했지만, 나를 느끼지는 못한다’고 적고 있다. 니진스키는 아내를 사랑했지만 결국 행복하진 못했던 것이다.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세계적 천재의 사랑이야기를 읽으며,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을 통해 더 성숙해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되었다.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역자서문

사실 우리의 일생은 대상과의 끊임없는 만남의 연속이라 할 수 있지만, 진실로 자신의 삶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거나 삶의 행로를 바꾸게 할 정도로 중요한 만남이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만남의 대상은 살아 있는 인간일 수도 있고, 하나의 관념이나 사상 또는 역사 속의 인물일 수도 있다. 관념을 위해 우리는 삶을 희생할 수도 있고 이상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또한 역사 속의 인물이 시공을 뛰어넘어, 살아 있는 어떤 인간보다도 더 생생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그와의 정신적 교감 속에서 더없는 희열을 맛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었건 우리의 삶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거나 우리의 내면에 일대 지진을 일으켜놓는다면 그것은 운명적인 만남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5-6]


*역자해설

바슬라프 니진스키는 전설적인 명성의 절정에서 홀연 암묵의 신비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의 <일기>는 이 양 극단의 가파로운 경계선에서 필사적으로 기록한 그의 ‘영혼의 자서전’이다. 그것은 세계와 인간으로부터 단절되어 내면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한 천재 예술가의 내면의 여로를 나침반도 없이 한없이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이상하게도 특이한 기록이다. 마치 천 길 벼랑에서 무시무시한 암흑의 심연 속으로 추락하기 직전의 불안과 공포를 감지케 하는 소리없는 영혼의 절규와도 같은 것이다.

흔히 천재와 광기는 자주 사이좋은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특히나 과도한 상상력과 극단적인 감각 과민이 특징인 예술적 천재들은 광증의 희생자가 된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다. [13]


니진스키는 브로니슬라바와 더불어 디아길레프를 만나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예술적 목표와 방향을 모색해왔다는 것, 또한 예술성과 창조성은 테크닉에 희생당하면 안 된다는 니진스키의 미학적 신조가 일찍부터 형성됐다는 브로니슬라바의 신념은 <회고록>의 ‘라이프 모티프’라 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관점에서 조명된 니진스키의 초상은 확실히 여태까지 알려져 온 것과는 다른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21]


“의사들은 내 병을 모른다. 내 정신은 건강한데 내 영혼이 앓고 있다. 내 병은 너무나 위중해서 곧 치유될 수는 없다.” [22]


내 어린 딸은 노래하고 있다. “아, 아, 아, 아.”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도 그러나 그 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느낀다. 그 애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모든 것은 -아! 아!- 공포가 아니고 기쁨이라는 것을. [22]


“그가 솟구쳐올랐을 때 그는 자신이 공중에 떠다니고 있다고 믿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같은 믿음 자체가 관객에게 전달됐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집단 최면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27]


이와 같이 유별난 혈통에 의한 선천적 자질과 러시아 황실 발레의 전통이라는 위대한 유산, 그리고 레가트 형제들을 포함한 빼어난 교사들에 의한 엄격한 교육에다 니진스키 자신의 끊임없는 수련(그는 언제 어디서든, 심지어 항해 중의 선상에서까지 매일 여러 시간씩 반드시 연습을 했다)이 겹쳐 역사상 가장 특이하고 불가사의한 한 사람의 천재가 형성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하게 된다.

어떤 위대한 천재도 과거와 동떨어져 고립된 존재로 출현할 수는 없다. 어떤 독창적인 창조자도 그가 종사하는 영역에 누적돼온 유산의 영향에서 완전히 면제될 수는 없는 법이다. [32]


더욱이나 그가 완벽하지 못한 육체적 수단을 가지고 완벽의 극치에 도달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그의 허벅지와 다리의 근육은 비상하게 발달했지만 162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키와 짧고 굵은 다리는 이상적인 고전 발레리노의 조건으로선 핸디캡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일단 니진스키가 무대에 등장해서 춤추기 시작하면 설사 그의 이 같은 신체적 불리함을 들추어내고 싶어 혈안이 돼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당장에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이었다. [33-34]


니진스키의 또 하나의 걸작 <제전>은 전전기의 발레 뤼스를 극점에 이르게 했던 발레이다. 사실 이 작품은 발레단 자체도 겨우 지탱할 수 있었던 대담한 혁신이었다. 쉴새없이 변하는 박자와 불협화음으로 된 스트라빈스키의 폴리리듬적 음악은 지극히 까다로운 데다 니진스키가 창안한 원시적 스텝은 댄서들 속에 거센 반항을 불러일으켰다. 자신들의 취향과 훈련에 극도의 자부심을 가진 데다 젊은 니진스키의 안무가로서의 재능을 믿지 않는, 유능하고 자기만족적인 공연자들은 결코 투쟁 없이 저들의 테크닉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니진스키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들과 싸워야만 했다. [45]


“어쨌든 우린 정신이상이 되지는 않아요. 우린 그걸 타고나는 것이지. 내가 의미하는 것은 그럴 소인이 선천적이라는 거야. 천재와 정신이상은 서로 근친이지. 정상과 비정상은 두 국가 사이에서처럼 국경이란 게 없어요. [52]


블로일러는 니진스키가 병원에 입원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니진스키가 혼란돼 있고 부적절하게 흥분되어 있으며 가족들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데다 ‘음란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를 가두어 그보다 더 혼란된 사람들과 함께 있도록 하는 것은 다른 더 지독한 습관에 젖게 하는 길이 될지도 몰랐다. 블로일러는 이 댄서가 강한 배우적 본능과 공격적인 성깔의 발작 및 굉장한 육체적 힘을 지녔다는 걸 알아봤다. 이와 같은 사람을 병원에서 관할하려고 한다면 틀림없이 분란을 초래할 것이었다. 그는 아내와 딸에 대한 공감이 부족했고 그들을 학대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것이다.

“그냥 그를 가게 내버려둬요.” 라고 블로일러는 로몰라에게 충고했다. 그녀는 그와 이혼을 해야 한다고. 가정의 의무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니진스키를 위해 훨씬 더 좋을 것이라고. 니진스키로 하여금 그가 원하는 방법으로 이력을 계속하도록 하는 것이 - 적어도 그 자신과 또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 한- 한층 더 나을 것이라는 점을 그는 강조했던 것이다.

블로일러의 충고에 로몰라는 망연자실했다. 그야말로 그것은 청천벽력이었다. 7년 전 니진스키의 춤을 처음 목격했던 순간 그녀에게는 바로 운명이 되었던 이 남자-7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해온, 자신에겐 신과도 같았던 그와 헤어지라고? 그녀는 블로일러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은 채 그의 방을 뛰쳐나왔다. [53-54]


이렇게 해서 니진스키와 더불어 하는 로몰라의 30년에 걸친 제 2의 인생 역전이 시작되었으니, 참으로 그것은 희망과 절망, 투쟁과 궁핍으로 점철된 영웅적인 도정이라 할 만했다. [55]


“나는 어린아이였을 때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울고 있었다.”라고 일기에서 고백하고 있듯이, 일찍부터 본능적으로 인생의 비참과 불행을 이해하고 있던 그의 영혼은 한평생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56]


천성적으로 비사교적인 데다 철두철미 묵고적인 기질이었던 그는 처음에 자신이 교사들과 급우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을 땐 누구에게나 미소하기를 좋아했다. “내가 그들 모두에게서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모든 사람을 다 사랑했다.” [61]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 이해받지 못한 채 슬픔에 잠겨 정신의 파국을 향해 서서히 침몰해간 니진스키의 비극은 이때 이미 그 뿌리를 내리지 않았나 싶다. [61]


그의 <일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사상적 맥락에서 볼 때 그가 말하고 있는 ‘감정’은 본능, 다시 말해 무의식의 심적 충동을 의미한다. ‘생각’에 대응하는 ‘느낌’, ‘논리’에 대응하는 ‘직관’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생각이나 논리를 거부하고, 사람들이 느낌과 직관에 충실할 것을 강조한다. “아내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 그녀가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준다면 좋으련만.” 혹은 “사람은 누구나 감정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이 감정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쓰려고 한다.” 등등. 그의 <일기>를 통독하고 나면 누구나 그가 무섭도록 강한 본능 - 직관의 소유자라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일기>는 그의 본능-무의식의 거대한 강의 격류라는 것을.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탄호이져>사건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나 니진스키는 단순히 과묵할 뿐 아니라 항상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64]


사실 류보프와의 관계는 니진스키에겐 최상류층 사회에 진입해서 자신의 가족과는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이를 통해 그가 남자로서 성숙해질 수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훨씬 덜 수줍음을 탔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며 외양도 놀랄 만큼 세련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변화된 태도에 모두들 놀랐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는 그의 춤에서도 뚜렷이 나타났는데, 다시 말해 그는 자신에게 할당된 배역을 단순히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코스튬이나 움직임 등에서 오리지널과는 다르게 자기식으로 변화를 가했던 것이다.

청춘에서 성인으로 성숙되는 결정적 시기 동안 니진스키의 아버지를 대신했고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이 젊은이의 성적 억제를 완화시켜 준 둘의 관계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지만, 여러 모로 이것은 니진스키에게 유익했다. [71-72]


디아길레프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으며 여성과의 성적 관계에 대해선 혐오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젊은 시절의 어떤 경험 때문이었다. 그 결과 그는 일생을 통해 자신의 참된  항구적 반려를 동성 속에서 찾게 되었으니, 그것은 그의 삶의 비극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이끌린 대상은 거의 언제나 동성애 성향이 아닌 정상적인 남자였기 때문이다. 성숙 단계에 있는 가장 남성적인 젊은이였던 이들은 남성으로서 충분히 성숙되자마자 맨 처음 매혹당한 여성을 위해 디아길레프를 떠났던 것이다. 그는 유혹자나 엽색가가 아니었다. 버리는 쪽은 항상 그가 아니고 상대방이었다. 따라서 그의 사랑은 끊임없는 행복과 실망의 연속이었으며, 슬픔과 놀람과 배신감을 보상처럼 남겨주었던 것이다. [74]


아무리 완벽한 육체를 지녔다 해도 그가 평범한 보통의 남자라면 결코 디아길레프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 사실 그의 사랑을 받았던 대상들은 거의가 위대한 예술가의 혼을 지닌 창조적 천재라 할만했다. 아직 완전히 성숙되지 않은, 그래서 그 자신의 이념에 따라 형성하고 지도해줄 수 있는 그러한 마음에 이끌렸던 것이며, 아직 꽃봉오리인 이들 미성숙의 인격체를 화려하게 만개시키는 데서 그의 사랑은 절정에 달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니진스키와의 만남에서 그는 자신의 이상을 최고의 형태로 실현시킬 수 있는 최상의 재료를 발견했다고 느꼈을 것이고 사실이 그러했다. [75-76]


그러나 어떤 관계에서도 그렇듯이 변화는 불가피했다. [76]


두 사람은 5년 동안 함께 살았다. 애초부터 디아길레프에 대한 니진스키의 감정에는 이율배반적인 데가 있었다. 다만 부정적인 측면이 처음엔 무의식의 밑바닥에 잠재돼 있었으므로 본인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인간과 예술가로서 성숙해감에 따라 애초의 기대와 찬탄은 불신과 환멸로 바뀌어갔을 것이다. 선도자인 디아길레프는 마치 형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밀가루 반죽처럼 유연한 재료인 니진스키를 자신의 이상에 맞게 교육하고 그에게 삶의 지평선을 넓혀주었으며, 세계의 각광을 받으면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도록 그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이 제자가 인간적으로 성숙해서 스스로 독자적인 예술가의 길을 가려고 했을 때 그는 그걸 용납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 니진스키는 그의 의도대로 형성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디아길레프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두 사람의 불화는 바로 여기서 싹텄다. 다시 말해 니진스키의 독립과 자기 주장은 바로 디아길레프와의 파국이 시작되는 신호였던 것이다. [76-77]


천성적으로 종교적 성향이 강했던 그는 호자가 되자 디아길레프와의 사랑이 전적으로 그릇된 것이라 성찰하게 되고,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베리아로 가 수도승이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지만, 춤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에겐 사는 것을 그만둔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 같은 진퇴유곡 속에서 아마도 그는 ‘결혼’이라는 제 3의 선택을 하지 않았나 싶다. [79]


“현재 니진스키가 서 있는 자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낮은 위치로 밑바닥까지 그를 떨어뜨릴 테다!” 이 같은 그의 예언대로 니진스키는 결과적으로 삶의 맨 밑바닥까지 떨어진 셈이 되었으니, 이야말로 운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실 니진스키를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도록 전심전력한 사람은 바로 디아길레프 자신이었던 것이다. 훗날 니진스키가 정신의 붕괴를 겪은 후 디아길레프는 다시 한 번 니진스키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되지만 둘의 우정은 다시는 회복되지 못했다. [79-80]


로몰라는 아버지인 카롤리 드 풀츠키 백작의 독립 정신과 이상주의 및 예술에의 숭배열을 고대로 물려받았으며, 아버지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했다. 백작에 의해 로몰라는 르네상스 시대의 공주처럼 양육되었으며, 아주 어릴 때부터 부친의 초연함과 일체감을 나타내는 경향을 보였다. 부친은 어린 딸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신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화가들 얘기를 해주었고 로몰라는 자기 시대의 바사리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자라났다....

그러나 이 부녀의 유례없이 깊은 애정과 상호 밀착된 관계는 1899년 백작이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오히려 로몰라의 인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때의 사건으로 인해 로몰라의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착의 능력은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되었으며, 이때의 충격으로 입은 마음의 상처는 그녀의 정서 속에 영원히 고착돼버린 것처럼 보인다. [81-82]


<사육제>의 아를르캥으로 출연한 니진스키의 춤을 본 순간 그녀에겐 모든 것이 변했다. 흡사 마법에라도 걸린 듯 그녀는 자신에겐 전혀 새로운 어떤 목적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부름을 강하게 느꼈으며, 이것은 거의 종교적인 경향과도 같았다. 그녀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동행한 여자친구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저 남자는 내 남편이 될 거야.” [82]


그 순간부터 로몰라의 전 삶은 발레 예술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녀의 관심의 중심은 니진스키였다.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인격과 그의 천재였던 것이다. 그녀의 광적인 집착은 만약에 니진스키의 천재가 영속돼야 한다면 자신이 그의 불멸을 전달하는 매개가 되기를, 즉 그의 아이를 갖게 되기를 바라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85]

  

“내게는 바슬라프가 진정한 반려요 벗이며, 오빠이고 남편이며 연인이었다. 그는 나의 모든 기분과 온갖 사념, 온갖 욕망을 깡그리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내가 관심을 갖는 일체의 것에 관심을 보여주었다. 의식 밑바닥에서 나는 항상 자신이 비범한 천재와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을 벗어날 수 없었는데, 이젠 그가 니진스키란 사실을 잊을 수 있었다. 예술에서뿐 아니라 사랑에서도 의심 없이 그는 거장이었다.” [87]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전쟁을 춤추겠습니다. 전쟁의 고통과 파괴를, 그로 인한 죽음을. 여러분이 저지하지 않았던 전쟁,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역시 책임이 있는 전쟁을.”

그의 춤은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우리가 시체들 위를 떠다니는 그를 거의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우리의 넋을 빼놓았다. 관객들은 공포에 질려 숨을 죽인 채 앉아 있었다. 그렇게도 이상하게 매혹된 상태로. 그들은 화석이 된 것 같았다. ... 그는 춤추고 또 추고 계속 추었다. 그의 움직임은 하나하나가 다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 그것은 죽음에 대항하는 삶의 춤이었다.”  [90]


이것은 니진스키가 세상에 보여준 마지막 춤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날 (1919년 1월 19일) 그는 “오늘이 나와 신과의 결혼날”이라고 로몰랑게 선언했다. 그가 문제의 ‘노트’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날이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다.

1912년 어느 땐가 파리의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니진스키는 언제부터 춤을 시작했느냐는 물음에 “나의 양친은 걸음마와 말하는 걸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춤추는 걸 가르치는 걸 당연한 걸로 여기셨다.”고 대답했다. “제 어머니조차 내 첫 이빨이 난 때를 기억하시지만, 내가 정확히 언제부터 춤 수업을 시작했는지는 말해줄 수 없었지요.”

니진스키에게 춤을 추는 것이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었다. 또한 숨을 쉬기 위해 공기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극장은 그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극장과 춤은 태어날 때부터 그를 위한 자연스런 삶의 방식이었다. 마치 극장에선 그의 타고난 본성으로 있는 것과 같았고 거기선 모든 것이 그의 영혼에 화답하는 것처럼 느꼈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극장과 단절되어 춤을 출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았던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는 아슬아슬하게나마 정신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오랫동안 니진스키가 완전히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던 그의 누이 브로니슬라바는 오빠와의 대화 도중 화제가 ‘춤’에 이를때면 언제나 그에게서 돌연한 의식의 불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예술’의 비전 속에 살고 있는 의식의 일부는 보존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바슬라프가 이 영역에선 완전히 제정신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니진스키에게 ‘무용’은 신앙이요 생명이요 영혼이었다. 그러나 극장이 없었으므로, 니진스키는 자기 속에 깊이 물러가 자신의 고유한 ‘무용’의 내면세계에서 살기 위해 삶의 현실로부터 문을 닫아버렸던 것이다.’ [92-93]


*영역자 서문

그것은 이 저명한 무용가가 삶과 신 그리고 인간에 대한 고찰을 자극할 수 있는 날카롭고 독창적인 사상가였음을 보여주었는데, 그를 알았던 사람들에게 이건 전혀 뜻밖이었던 것이다. [95]


니진스키의 어휘가 때때로 불완전하다면, 더욱 자주 그것은 단순히 특이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가 ‘감정(feeling)'이란 낱말에 붙이는 의미가 좋은 예가 되겠는데, 이것은 일기의 중심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 ‘감정’은 직관적 통찰력, 즉 어떤 대상-인간과 상황-을 정서적으로 흡수함으로써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 같은 이해는 그의 마음속에선 영적인 체험과 동종일 수 있는 것으로, 신중한 사색에 의해 달성되는 일은 드물며, 그가 ‘생각’ 또는 ‘지성’이라 부르는 수단에 의해선 결코 달성되지 않는다. 니진스키는 생각이라는 걸 다소의 경멸감을 가지고 감정의 정반대로 간주하고 있다. 즉 순순하게 지적이고 거의 인공적인 행위로서 결코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생각만 하는 사람들은 진실을 알 수도 없고 친밀한 관계를 이끌어갈 수도 없다. 하지만 ‘생각’과 ‘지성’을 ‘이성’과 호동하면 안 된다. 니진스키는 이성을 논리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고 신에게서 발산되는 능력이라 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니진스키적인 개념은 ‘메마름(dryness)'에 대한 것이다. 그는 메마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가는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느끼는’ 능력을 박탈당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게다가 또 다른 별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습관’이란 낱말을 사용한 그의 의도이다. 습관을 가진다는 것은 인공적으로 획득한 (그리고 반드시 나쁜) 행동 양식의 노예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 습관이 없는 것은 온갖 편견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97-98]


그는 어찌나 집필에만 전적으로 매달렸던지 작가들을 ‘순교자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와 닮은’ 자라 부를 수 있으리라고까지 느낀다. 그리스도와의 자기 동일시 및 신과의 자기 동일시는 결코 그의 생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어떻든 그것은 일기의 일관된 주제인 것이다. [99]


제 1부 삶

내 시중을 드는 하녀는 메마른 인간이다. 그녀는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너무 많이 생각한다. 그녀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다른 직업으로 인해 그녀의 마음이 고갈돼버렸기 때문이다. [103]


사람들은 애들을 연약한 존재라 생각해서 그들을 침대에 눕혀 준다. 아이들은 강하고, 도움이 필요없다. [105]


나는 내가 느끼니까 춤추고 싶은 것이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춤추고 싶진 않다. [105]


나는 저녁 내내 신을 느꼈다. 그는 나를 사랑했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우리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차 속에서 나는 아내에게 오늘이 나의 신과의 결혼날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차 속에선 이걸 느꼈지만, 저녁 동안 이 느낌을 상실했다. [110]


나는 사람들이 나를 느끼지 않고 이해하기 때문에 그들이 두렵다. 나는 사람들이 내게 그들과 같은 종류의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들이 두렵다. 그들은 내가 즐겁고 흥겨운 춤을 추기를 바란다. 나는 흥청거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112]


그녀는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죽지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114]


나는 모든 사람이 내가 쓰는 것 모두가 조작된 것이라고 생각하리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쓰는 것은 무엇이나 다 절대적 진실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 모든 걸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다 나는 체험했다. [123]


다윈의 자연은 인공적이다. 그는 자연을 느끼지 않았다. 자연은 생명이고 생명은 자연이다. 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나는 자연이 어떤 것인가를 안다. 나는 자연을 느끼기 때문에 자연을 이해한다. 자연은 나를 느낀다. 자연은 신이다. 나는 자연이다. 나는 인공적인 자연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자연은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자연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자연은 숭고한 것이다. 나의 자연을 숭고하다. 나 역시 자연을 공부했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임을 안다. 하지만 나는 감정에 일치하는 자연을 공부했다. 나의 느낌들을 광범위에 걸쳐 있다. 따라서 나는 자연을 공부하지 않고도 그것이 어떤 것인가를 안다. 자연은 삶이다. [128]


나는 하루에 여러 명의 매춘부들과 사랑을 했다. 나의 행동이 끔찍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내가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나의 버릇은 강박관념이 되었고 날마다 나는 매춘부들을 찾아다녔다. [131]


나는 행복하다. 내가 사랑이므로. 나는 신의 사랑이고 그래서 나 자신에게 미소한다. 사람들은 내가 미쳐갈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제 정신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니체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제정신을 잃었다. 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제정신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139]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키라 역시 사랑한다. 그래서 선물 따위의 이 모든 바보 같은 것들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이란 선물로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선물은 사랑이 아니라고 믿는다. 선물은 하나의 습관이다. 선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야지 풍족히 가진 사람들에게 주면 안 된다. 키라는 충분히 가졌다. 그러므로 그 애는 선물이 필요없다. 나는 춤으로 돈을 벌었기 때문에 키라에게 충분히 주었다. ... 나는 차라리 그녀가 이 선물들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주었으면 한다. .. 많은 것을 주는 것으로 충분치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항상 도와줘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야지 사회 기관들에 돈을 주면 안 된다. [149]


부자들은 그들을 돕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에 내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내 돈을 몽땅 어떤 단체에다 기증한다면 나는 그들을 돕고 있는 것이 아니다. 빈자를 위한 단체들은 부자가 되고 일을 도모할 수는 없다. 빈자를 위한 단체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을 무서워하도록 하기 위해 유니폼을 착용한다. 가난한 사람은 이들 단체들을 찾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를 나쁘게 생각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비공식적인 선물을 좋아한다. 나는 어떤 법석도 떨지 않고 그냥 허물없이 선물을 준다. 선물을 줄 때 나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간난한 사람들이 내게 감사하고 싶어할 때면 나는 그들에게서 도망친다. 나는 감사 따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감사를 받기 위해 베푸는 게 아니다. 나는 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베푸는 것이다. 나는 선물이다. 나는 선물 속의 신이다. [150]


돈은 구제가 아니다. 도움의 한 수단일 뿐이다. [150]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진 않겠다. 그들에게 삶을 주겠다. 삶은 빈곤이 아니다. 빈곤은 삶이 아니고. 나는 삶을 원한다. 나는 사랑을 원한다. [153]


나는 결혼한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 그들은 인생을 알기 때문이다. 기호자들은 과오를 범하지만, 그들은 생활을 가지고 있다. [175]


나는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 철학자이다. 나는 감정을 지닌 철학자이다. 나는 인공적인 일들을 쓰고 싶지는 않다. 나는 세익스피어를 극장에 바친 그의 사랑 때문에 좋아한다. 세익스피어는 극장을 하나의 발명으로 이해했다. 나는 삶 속에서 극장을 이해한다. 나는 발명품이 아니다. 나는 삶이다. 극장은 삶이다. 나는 극장이다. 나는 극장의 습관들을 안다. 극장은 하나의 습관이고 삶은 비습관이다. 내게는 습관이 없다. [185-186]


아내는 올바른 삶이 좋은 것이라는 걸 알지만 무엇이 올바른 삶인가를 알지 못한다. 올바른 삶이란 신에게 손종하는 삶을 의미한다. 인간은 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신에게 복종해야 되는가를 자문하는 것이다. 나는 신이 누구인지를 알며, 그래서 그의 소원을 아는 것이다. [189]


나는 온갖 형태의 온갖 종류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예술가이다. 아름다움이란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신이다. 신은 감정을 지닌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은 감정 속에 있다. 나는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내가 그걸 느끼고, 그래서 그걸 이해하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대해 허튼소리를 쓴다. 아름다움은 토론될 수 없다. 아름다움은 비판될 수 없다. 아름다움은 비평이 아니다. [200]


나는 삶을 파괴하는 불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온기를 주는 불꽃을 좋아합니다. 불꽃이 없이는 온기를 창출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압니다. [215]


그런 까닭에 나는 내 어린 딸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자기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일고 있기 때문이다. 프렝켈 박사는 키라에게 어떤 나쁜 일도 하면 안 된다고 내게 말했다. 아이는 아버지나 혹은 어머니가 하는 일들을 결단코 잊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어느 땐가 자신에게 대단히 화를 냈는데, 이날까지도 그는 그때의 그 노여움을 잊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프렝켈 박사는 얼굴을 일그러뜨렸고 나는 그의 부친의 잘못된 행동을 느꼈다. 나는 거의 눈물을 쏟을 뻔했다. 나는 그를 가엾게 여겼다. 아들과 아버지 둘 중 어느 쪽을 더 가엾게 여겨야 될지 모르겠다. 둘다 비참했다는 건 알겠다. 나는 이들 둘을 다 사랑한다. 아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잃었고 아버지는 신의 사랑을 잃었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나는 프렝켈 박사에게 그를 이해한다고, 그리고 더 이상 짐승처럼 행동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61-262]


나는 잉크 공장들의 속임수를 알고 있다. 나는 흥행사들의 속임수를 안다. 디아길레프 역시 흥행사이다. 공연단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디아길레프는 다른 흥행사들로부터 사기 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자신이 흥행사로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흥행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라는걸 그는 잘 안다. 흥행사들은 모두 도둑놈으로 간주된다. 디아길레프는 도둑이 되고 싶지 않으므로 흥행사로 불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디아길레프는 마에케나스로 불리고 싶어한다. 디아길레프는 역사의 일부가 되고 싶어한다. 디아길레프는 사람들을 속이낟. 아무도 그가 노리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287-288]


나는 나의 키라를 다른 사람들 손으로 양육하지 못하게 했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가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스스로 양육하기를, 낯선 이들에게 애들을 맡기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낯선 사람들은 애들에게 싫증을 내게 되기 때문이다. [294]


그는 자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자기 아내에게 보여주기를 두려워하는 거요. 아무것도. 왜냐하면 그가 배움에 의해 터득한 모든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오. 나는 모든 공부를 포기하고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만인에게 보여주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소. [319]


나는 만약에 서로 생각이 다르다면 결혼은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부엌 식탁 위에다 내 결혼반지를 내던졌다. 나중에 나는 그걸 집어 다시 끼었다. 내가 반지를 던졌기 때문에 아내는 신경과민이 되었다. 나는 그녀가 고기를 갈망한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반지를 다시 던졌다. 나는 동물들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고기를 먹는 것이 언짢았다. 내가 고기를 먹는다면 다른 동물이 도살될 것임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조금밖에 먹지 않았다. 나는 오직 먹고 싶을 때만 먹는다. 아내는 많이 먹는다. [326]


의사와 교수들은 많이 먹는 걸 좋아한다. 그들은 음식이 육체적 힘을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육체적 힘이란 음식으로부터가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마음이 당신을 먹여살리지는 않을 거라고 말할 테지. 마음은 당신을 먹여살릴 수 있다고 나는 말하리라. 왜냐하면 마음은 음식을 분해해주니까 말이다. 나는 마음이 내게 먹으라고 하는 만큼만 먹는다. [330]


그녀는 공동묘지를 가리키며 석 달 전에 아이를 잃었으며 공동묘지에 그 애를 묻었다고 독일어로 말했다. 나는 그녀의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에게 신이 그 아이를 데려가고 싶어했기 때문에 슬퍼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침묵했고 진실을 느꼈다. 나는 신이 자기가 주는 것을 가져가는 것이니 그녀는 슬퍼하면 안 된다는 말도 했다. 그녀는 진정되었고 웃기 시작했다.  [336]


사람들은 말과 마부들을 몰아대어 마침내 그들이 정지해서 돌무더기처럼 쓰러지게 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말과 나는 결심했다. 그들이 원하는 만큼 우리를 채찍질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그래도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왜냐하면 우리는 살고 싶기 때문에. 말은 걸었고 나도 걸었다. [339]


내가 처음으로 슬픔을 느꼈던 때는 결혼 후 사흘인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그녀에게 나는 춤을 배우기를 청했는데 그건 내게는 춤이 이 세상에서 그녀 다음으로 최고로 소중한 것이었던 까닭이다. 나는 그녀를 가르치고 싶었다. 나는 나 자신이 걱정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좋은 춤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그녀는 겁을 먹게 되었고 더 이상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나는 비통하게 울고 또 울었다. 나는 애달프게 흐느껴 울었다. 이미 나는 죽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과오를 저질렀지만 이 잘못은 고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의 손에 자신을 맡긴 것이었다. 나는 나의 실수를 절감했다. 그때 아내는 어느 누구보다 나를 사랑했지만, 나를 느끼지는 못했던 것이다. 나는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건 불성실한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녀 곁에 머물렀다. 그녀는 나를 그리 많이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돈과 성공을 느꼈다. 그녀는 나의 성공과 내 몸의 아름다움 때문에 나를 사랑했다. 그녀는 약삭빨랐고 나를 돈에 예민하도록 만들었다. [343-344]

   

나는 과로로 쓰러졌고 열에 떠 있었다. 나는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아내는 슬피 울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다. 그녀는 내가 과도하게 일하는 걸 보고 괴로워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다 돈을 위한 것이라고 이해했다. 나는 돈을 원치 않았다. 나는 단순한 삶을 원했다. 나는 극장을 사랑했고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호되게 일했다. 그러나 후에 나는 내가 호감을 사지 못한다는 걸 알았으므로 열의를 잃고 말았다. 나는 나 자신 속으로 은퇴했다. 나는 너무나 깊이 자신 속으로 은퇴했기 때문에 더 이상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344]


제 2부 죽음

나는 죽음에 관해 쓰고 싶다. 나는 첫 번째 책을 ‘삶’이라 하고 이 책은 ‘죽음’이라 부르겠다. 나는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관념을 심어주겠다. 뜻대로 됐으면 좋으련만. 만약 이 책들이 출판된다면 누구나 나를 서투른 작가라고 말할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졸작 작가가 아니고 사상가이다. 나는 쇼펜하우어가 아니다. 나는 니진스키이다. [355]


비평가들은 항상 자기들이 예술가들보다 영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주 저들의 지위를 남용하며 예술가의 공연에 대해 질책하곤 한다. 예술가들은 가난하다. 그래서 비평가들과 직면했을 때 떠는 것이다. 그들은 상처를 입고 기분이 상한다. 그들의 영혼은 흐느껴 운다. 나는 편견을 지닌 비평가인 한 화가를 알고 있는데, 그는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예술가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369]


사람들은 아이들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보다 많은 병사들을 얻기 위해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죽이고 지구를 재로 덮는다. 재는 지구에 해롭다. 지구가 재로 뒤덮일 때 지구는 질식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지구는 생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나는 러시아인이기에 대지가 무엇인지를 안다. 나는 밭을 일굴 줄은 모르지만 대지가 따뜻하게 타오르고 있다는 건 안다. 대지의 온기가 없다면 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왜냐하면 땅은 온기에 의해 비옥해지는 것이지 재로 인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우리가 많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음식이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이란 천성적으로 강하다는 걸 알고 있다. 사람들이 생명을 조심하지 않기 때문에 약해진 것이다. [390]


나는 절약하고 싶었으므로 전기를 꺼버렸다. 나는 절약의 의미를 이해한다. 나는 돈을 쓰는 건 괘념치 않지만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마음이 쓰인다. 에너지가 없다면 삶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나는 깨달았다. 나는 지구의 의미를 이해했다. 지구는 소멸돼가고 있으며 따라서 나는 사람들에게 석탄 없이 전기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한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 ... [391]


인생은 짧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 나는 오락을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이해하도록 하고 싶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죽음이란 신이 그걸 바라는 곳에선 좋은 것이라는 걸 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선 죽음이란 나쁜 것이라는 것도. [392]


나는 석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석탄의 의미를 이해한다. 석탄은 연료의 근원이다. 연료는 삶의 근원이다. 연료가 없다면 우린 얼어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한다. 연료는 필요한 것임을 나는 이해한다. 연료는 보존될 수 있다는 것도. 목재는 필요한 것이고 보호돼야만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또한 나무들은 줄곧 잘라내면 안 된다는 것도. 사람들은 연료를 낭비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한다고, 왜냐하면 더욱 많이 가질수록 한층 더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적게 소유할수록 근심할 일이 한층 적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392-293]

  

나는 이기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조금밖에 먹고 싶지 않다. 위가 가득 차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단순하게 살고 싶다. 나는 사랑하고 싶다. 모든 사람을 위한 행복을 바라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서로 가진 것을 공유한다는 걸 알 때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연기를 하고 춤을 출 수 있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리라. 그리하여 이후론 돈이나 어떤 다른 종류의 보상도 없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원한다. [393]         


나는 사람들이 성상을 바라보고 비둘기를 쳐다볼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안다. 사람들은 교회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신이 두려워서 습관적으로 교회에 가는 것이다. 신은 성상 속에 있지 않다. 신은 인간의 영혼 속에 있다. [411]


야심은 좋은 것이라고들 말할 테지. 야심은 그걸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알아야만 좋은 것이라고 나는 말하겠다. 로이드 조지는 야심을 부자 계급을 위해 사용한다. 나는 모든 계급을 위해 야심을 사용한다. [418-419]


나는 사람들이 어째서 피곤한가를 이해한다. 그들은 많이 먹는다. 그리고 음식물은 사람이 생각을 할 때면 머리로 피를 몰리게 하는 것이다. [434]


나는 결혼했을 때까진 국내 정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결혼했을 땐 삶이 두려웠고 살아야만 했기 때문에 그걸 이해하게 되었다. [442]


비평가들은 돈을 원하기 때문에 글을 쓴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특성상 돈이 필수적이라는 건 알고 있다. 비평가들은 비평의 글을 쓰면서 호되게 일한다고 사람들은 말할 테지. 나는 비평가들이 조금밖에 일하지 않는다고 말하겠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술을 창작하는 게 아니라 예술에 대해 쓰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예술을 위해 그의 전 삶을 희생한다. 비평가는 예술가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매도한다. 비평가는 편견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겠지. 비평가는 이기적이라고 나는 말하겠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자신의 의견에 대해 쓰기 때문이고 대중의 의견에 대해 쓰지 않으니까 말이다. 갈채는 평가가 아니다. 갈채는 예술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다. 나는 갈채를 좋아한다. 나는 갈채의 가치를 안다. 갈채에 대해선 나중에 말하겠다. 비평가는 갈채를 느끼지 않는다. 비평가는 갈채를 배가하기를 좋아한다. 그는 자신이 훨씬 더 잘 이해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442-443]


나는 옛것을 어떤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겠다. 오래된 것들은 죽음의 냄새를 풍기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내가 옛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영혼이 없는 인간이라고 말할 테지. 나는 옛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정신이 낡은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노라고 대답하리라. 나는 정신이 젊은 사람이다. 톨스토이는 정신이 젊은 사람이었다. 바그너와 베토벤, 기타 등등의 사람들도 정신의 젊은이였다. [457-458]


모든 사람들은 만약에 내가 그들에게 말한 것을 행한다면 누구나 신이 될 것이다. 나는 결함을 지닌 인간이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이 저들의 결점을 고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결함이 있으면서도 고치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개선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468]


나는 이성이지 지성이 아니다. 나는 이성이기 때문에 신이다. 톨스토이는 이성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 쇼펜하우어 역시 이성에 대해 썼다. 나도 역시 이성에 대해 쓴다. 나는 이성의 철학이다. 나는 창안된 것이 아닌 진짜 철학이다. 니체는 생애의 끝에 가서 자신이 쓴 모든 것이 난센스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미쳤다. 그는 사람들을 무서워하게 되었고 그래서 미쳤던 것이다. [478]


편지

저는 인민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그들을 사랑하니까요. 저 자신 한 사람의 인간이며 바로 그 때문에 인민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입니다. [489]


저는 디아길레프가 아닙니다. 저는 마음을 지닌 인간입니다. 저는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그리고 저의 정신을 매우 심원하게 발달시킬 것이라는 희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발레 뤼스의 니진스키가 아닙니다. 저는 신의 니진스키입니다.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신은 저를 사랑합니다. [494-495]


볼셰비키들은 그들이 원하는만큼 나를 죽일 수 있어.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네. 죽음은 필요한 것이란ㄴ 걸 알고 있어. 누구나 죽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는 항상 죽음에 대비하고 있다네. 자는 자네를 사랑하고 자네가 죽기를 바라지 않네. [499]


나는 사람들이 신이라는 걸 안다네. 자네가 신이라는 걸 알고 있네. 자넨 신을 이해하지 못해. 따라서 자네가 신이라는 걸 모르는 거지.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네. 수개월 동안 나는 내 방을 떠나지 않았네. 혼자 있는 게 좋았거든. 나는 신을 이해하게 되었네. [499]

 

조만간 답장을 받지 못한다면 나는 자네가 죽은 걸로 생각할 걸세. 육신을 죽지만 정신은 죽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네. 정신은 신이지. 육신이 산다면 신은 사는 걸세. 나는 신이야. 나는 육신 안에 깃들인 정신이네. [500]


어머니 안에는 신이 계시다는 걸 저는 압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제 딸애의 마음속에 ‘그분’을 살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제 딸은 놀라운 아이랍니다. [504]


나는 당신을 무척 사랑합니다. 그래서 나의 사상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나는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영혼을 지닌 인간입니다. 내가 영혼을 갖고 있다는 걸 당신에게 증명하고 싶습니다. 나는 신입니다. 나는 ‘춤’입니다. 나는 사랑입니다. 나는 신입니다. 당신이 나를 광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입증하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신과 더불어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미친 사람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실수를 좋아합니다. 만약 내가 아무런 실수 없이 쓴다면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광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신이니까요. 나는 신을 사랑하게 때문에 신인 것입니다. 나는 악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쓸 수 있습니다. 나는 사랑을 사랑합니다. 나는 잘 쓸 수가 없습니다. 리듬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뜻을 지닌 리듬입니다. 나는 사랑을 지닌 리듬입니다. 나는 뜻을 지닌 사랑을 사랑합니다. 나는 신과 더불어 있는 사랑을 사랑합니다. 그는 베풀기 때문입니다. 나는 신을 사랑합니다. 그는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삶입니다. 나는 신입니다. 나는 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삶이 없다면 신도 없습니다. 나는 아내가 삶을 주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합니다. 내 아이는 삶입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삶을 줍니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그분’이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사랑을 위한 신입니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나를 사랑합니다. 나는 신을 위한 인간입니다. 나는 ‘그분’을 위한 인간입니다. 나는 ‘그분’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나는 인간입니다. 나는 인간입니다.  [507-508]


나는 당신에게 많은 것을 쓰고 싶지만, 당신과 함께 일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목표는 다른 것이니까요. 나는 당신이 어떻게 가장하는가를 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가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복리를 원할 때의 가장은 좋아합니다. 당신은 악의적인 사람입니다. 당신은 제왕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왕입니다. 당신이 나의 왕이 아니라 내가 당신의 왕입니다. 당신은 내게 위해를 바라고,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악의에 찬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는 자장가를 불러주는 사람입니다. ...

사람이 사람에게 [513-514]


* 내가 저자라면


** 전체적인 뼈대 & 보완점


  니진스키의 <일기>는 1919년 1월 19일부터 3월 4일에 걸쳐 6주 반 동안 그가 사로잡혔던 ‘내면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영역자의 표현대로 니진스키에겐 그의 서술이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념의 연상에 의해 지배되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었고, <일기>는 매일의 사건의 서술이 아니라 그의 의식과 때로는 무의식의 서술이 되었다. 그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주변의 상황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때로는 놀랄 만큼 날카로운 시각으로 사람들을 꿰뚫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선물에 대한 니진스키의 생각, 육식과 소식에 대한 생각, 전쟁에 대한 일관된 반대와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평가들을 읽다보면, 물론 그 표현의 거침은 논외로 하고, 과연 그가 미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관된 것을 엿볼 수 있다. 


  니진스키의 <일기>는 날짜의 구분은커녕, 단락의 구별도 없고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글이 니진스키가 무의식의 골짜기에 빠지기 직전 적어 내려간 ‘절규’라는 점을 이해할 때, 글의 구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오히려 우리는 광기의 늪에 빠진 수많은 천재들 중 거의 유일하게 이런 귀중한 텍스트를 남겨준 그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원작의 이런 난해한 구성과 텍스트를 보다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보여준 역자의 노력은 매우 탁월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만 역자는 18권의 책을 참고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역자의 노력과 더불어 두 권의 발레 입문서와 수많은 예술가들의 평전을 썼던 저자의 약력이 합해져 ‘니진스키’가 그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온전히 다가올 수 있었다고 느껴진다. 90페이지에 이르는 역자해설은 이 자체로서 ‘니진스키 평전’이며, 그의 일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훌륭한 역자해설과 더불어, 영역자 서문과 니진스키의 편지, 영역 편집자의 말, 니진스키의 둘째 딸인 타마라 니진스키의 인터뷰, 끝으로 니진스키 연보까지 다양한 자료를 통해 니진스키의 일생과 생각을 엿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좋은 편집이었다고 생각한다.


  ***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절

사실 우리의 일생은 대상과의 끊임없는 만남의 연속이라 할 수 있지만, 진실로 자신의 삶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거나 삶의 행로를 바꾸게 할 정도로 중요한 만남이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만남의 대상은 살아 있는 인간일 수도 있고, 하나의 관념이나 사상 또는 역사 속의 인물일 수도 있다. 관념을 위해 우리는 삶을 희생할 수도 있고 이상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또한 역사 속의 인물이 시공을 뛰어넘어, 살아 있는 어떤 인간보다도 더 생생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그와의 정신적 교감 속에서 더없는 희열을 맛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었건 우리의 삶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거나 우리의 내면에 일대 지진을 일으켜놓는다면 그것은 운명적인 만남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5-6]


이와 같이 유별난 혈통에 의한 선천적 자질과 러시아 황실 발레의 전통이라는 위대한 유산, 그리고 레가트 형제들을 포함한 빼어난 교사들에 의한 엄격한 교육에다 니진스키 자신의 끊임없는 수련(그는 언제 어디서든, 심지어 항해 중의 선상에서까지 매일 여러 시간씩 반드시 연습을 했다)이 겹쳐 역사상 가장 특이하고 불가사의한 한 사람의 천재가 형성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하게 된다. [32]


선도자인 디아길레프는 마치 형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밀가루 반죽처럼 유연한 재료인 니진스키를 자신의 이상에 맞게 교육하고 그에게 삶의 지평선을 넓혀주었으며, 세계의 각광을 받으면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도록 그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이 제자가 인간적으로 성숙해서 스스로 독자적인 예술가의 길을 가려고 했을 때 그는 그걸 용납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 니진스키는 그의 의도대로 형성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디아길레프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두 사람의 불화는 바로 여기서 싹텄다. 다시 말해 니진스키의 독립과 자기주장은 바로 디아길레프와의 파국이 시작되는 신호였던 것이다. [76-77]

아이가 자기주장을 점차 강하게 해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적절한 시기에 독립성을 길러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성적으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자녀를 내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재료’로 생각하는 부모들은 얼마나 많은가. 아이를 위해 헌신한다는 명목 하에 스스로 독자적인 자아를 갖추고 성장하는 것을 방해한 적은 없는가. 나는 또한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명목 하에 아이의 자아를 지나치게 통제하는 것은 아닌가.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그에게 ‘감정’은 직관적 통찰력, 즉 어떤 대상-인간과 상황-을 정서적으로 흡수함으로써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 같은 이해는 그의 마음속에선 영적인 체험과 동종일 수 있는 것으로, 신중한 사색에 의해 달성되는 일은 드물며, 그가 ‘생각’ 또는 ‘지성’이라 부르는 수단에 의해선 결코 달성되지 않는다. 니진스키는 생각이라는 걸 다소의 경멸감을 가지고 감정의 정반대로 간주하고 있다. 즉 순순하게 지적이고 거의 인공적인 행위로서 결코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생각만 하는 사람들은 진실을 알 수도 없고 친밀한 관계를 이끌어갈 수도 없다. [97]

생각과 감정의 조화, 특히 감정을 느끼고 정서적으로 흡수하는 것은 분명히 많은 부분 선천적이며, 또한 어린 시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감정, 직관적 통찰력과 지적인 인식이 조화되어야만 사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점차 느끼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한다고, 왜냐하면 더욱 많이 가질수록 한층 더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적게 소유할수록 근심할 일이 한층 적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293]


나는 단순하게 살고 싶다. 나는 사랑하고 싶다. 모든 사람을 위한 행복을 바라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서로 가진 것을 공유한다는 걸 알 때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연기를 하고 춤을 출 수 있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리라. 그리하여 이후론 돈이나 어떤 다른 종류의 보상도 없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원한다. [393]         


*** 습관에 관한 장절

습관을 가진다는 것은 인공적으로 획득한 (그리고 반드시 나쁜) 행동 양식의 노예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 습관이 없는 것은 온갖 편견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98]

그러나 우리가 진정 아무 습관이 없이 살 수 있는가?

습관이란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매카니즘이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이런 매카니즘이 우리 행동의 8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20%의 상황을 의식적으로 적절히 판단하고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어떤 이름을 붙이든 우리는 무의식적인 매카니즘의 지배를 받으며 이것이 바로 습관이다. 우리가 자신의 매카니즘을 이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없이는 우리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런 부분들은 판단 없이 편하고 쉬운 방향으로 고정되어 버린다. 따라서 아무 습관이 없다는 것은, 노력해서 가지게 된 좋은 습관이 없다는 것이며, 이것은 스스로를 황무지에 방치하는 것과 같다.

IP *.106.7.10

프로필 이미지
우성
2010.06.18 22:13:46 *.34.224.87
퇴O 라 하기엔 너무나 모범적인 선!
난 이제야 오프수업 역사컬럼의 동기댓글에 댓글을 달고 있는데,
벌써 리뷰를 올리다니...
공부 잘 했을 상현이와 같은 반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선형이랑도 같은 반 아니어서 다행이다..음하하하..

이제 300페이지 읽고 있어서 그런가?
전체적인 뼈대의 주장에 끄덕 끄덕...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네..
프로필 이미지
2010.06.21 15:17:02 *.145.204.123
역시 여기서도......
선형은 '사랑과 가족'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여지는군
또한 습관 관련 장절을 모으는 습관은 참  좋은것 같아 
프로필 이미지
2010.06.22 09:43:39 *.106.7.10
역시 그런가요? emoticon
어떤 인물을 읽더라도 주변 사람들, 주로 가족,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궁금해요,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마구 궁금해지죠 ^^
작년부터 습관에 관해서 관심이 많아졌어요.
인간의 행동, 결국 삶 전체를 지배하는것은 결국 무의식에 기반한 습관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사소한 행동의 습관부터 마음의 습관까지 다양하게 관심이 가구요,
특히 꿈을 실천하는 힘으로써 '습관'이 제 중심 탐구과제랍니다. 
프로필 이미지
박상현
2010.06.21 23:21:57 *.212.98.176
춤이 인생 최고의 낙인 사람의 가족들이 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한 집에 사는 것 처럼 얼마나 고달픈
일이었을까

디아길레프는 니진스키에게 환멸을,
가족은 니진스키에게 고독을 안겨준 셈인가 ㅎㅎ
프로필 이미지
2010.06.22 09:45:23 *.106.7.10
인간은 고독한 존재라고 흔히들 말하지요.
그러나 또한 인간은 소통과 이해에 목말라하는 존재인건 확실하지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은 그래서 자연스러울 뿐아니라.
어찌 보면 행복의 필수 조건인듯 해요.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32 [12]한국사 신론(이기백) [6] 써니 2007.06.04 2785
1931 난중일기; 이순신 [5] 백산 2009.06.01 2786
1930 내 인생의 첫 책쓰기 - 오병곤, 홍승완 루미 2012.01.08 2786
1929 4-3. 신화와 인생 [1] 콩두 2015.06.26 2786
1928 젊음의 탄생 이희수 2008.08.29 2787
1927 오쇼 라즈니쉬 자서전 [1] 희산 2009.06.22 2787
1926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 장파(張法) 素賢소현 2007.12.03 2788
1925 [22]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현웅 2008.09.23 2788
1924 34. 경영의 미래_게리 해멀 file [1] 한젤리타 2012.12.23 2788
1923 Review 변신이야기 [7] 된다 우성 2010.04.13 2789
1922 #9 북리뷰 - 사기열전(상) (민음사,사마천) 땟쑤나무 2013.07.01 2789
1921 #16 문명이야기 르네상스 5-2 윌 듀란트 file [6] 샐리올리브 2012.07.23 2790
1920 [35] 페이스 팝콘 / 클릭 미래속으로 2009.01.06 2792
1919 [39]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저자 & 내가 저자라면 [2] 수희향 2010.01.18 2792
1918 불량하게 나이드는 법 - 세키 간테이 루미 2012.03.19 2792
1917 그리스 비극 북리뷰 진성희 file [1] 샐리올리브 2012.05.07 2792
1916 미즈코공양과 회사공양탑.. 김미영 2005.08.16 2793
1915 개인 브랜드 성공전략-신병철,살림- 오성공 2005.09.12 2793
1914 [20] 위대한 승리 - 잭웰치 [1] 촌년지혜 2008.09.08 2795
1913 45.<사람에게서 구하라> 구본형 박미옥 2011.01.31 27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