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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8일 11시 23분 등록
1. '나는 이 돌에 앉아 있다. 나는 위에 있고 돌은 밑에 있다.' 그런데 돌도 '나'라고 말하며 '내가 여기 이 비탈에 누워 있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의문이 일어났다.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돌이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단 말인가?'46
 
-->칼융은 어쩜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했을까?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금새 떨쳐버릴 관념들이다. 아인슈타인은 성장해서도, 유아기 시절의 공상이나 상상을 했다. 그가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 공상을 끝까지 붙들고 있어서다. 융은 말년에 어린시절을 회고하며, 위와같은 생각을 했다고 기술한다. 아인슈타인과 융의 업적은 당연하다. '그들은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오래했다.'
 
2.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 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그것은 결코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비밀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자신감이 그 비밀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49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정원을 갖는다. 관리를 하지 않으면, 정원은 잡초로 금새 무성해진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 곳에서 자신의 하느님과 만난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정원을 가꾸는 행위다. 융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에 반감은 가졌지만, 그 영향은 받았으리라.  아마도, 융은 어린 시절에 이미 '마음의 정원'을 인식했다. 나의 마음의 정원은 어떠한가 생각해본다. 벌초 안하지 꽤 지났다. 마음의 정원을 돌 볼 새가 없다. 내 마음은 외부의 광속 스피드를 따라가기 벅차다.
 
3.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52
 
--> 좋은 회사를 퇴사할 때 그랬다. 그날 아침 아무런 생각없이 팀장에게 '퇴사'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보름후에 실제로 회사를 나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일생을 좌우할 수 있는 경력을 손바닥 뒤집듯이 결정해 버렸다. 5년이 지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순식간에 일어났지만, 오랫동안 퇴사를 염두하고 있었다. 회사와 조직에 대한 불안감, 조직에 곱게 길들여진다는 생각이 재직중에 많았다. '내가 너무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살면 삶에 대한 저항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꾸준히 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과 책들만 본다. 나의 생각을 더 확고히 다지기 위해서다. 그날 내 행동은, 이러한 생각들이 여물었고, 행동을 앞세우는 내 기질때문에 질렀다.
 
4. 그때 나는 처음으로 우리가 가난하다는 사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목사요 나는 그보다 더 가난한 목사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구두 바닥은 구멍이 뚫려, 젖은 양말을 신은 채 여섯 시간이나 수업을 받으며 앉아 있어야 했다. 56
 
-->슬픈 내용이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서, 아이가 제대로 못먹고, 못 챙겨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 그런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부모님은 장사로 바쁘셔서, 따듯한 보살핌을 주지 못했다. 아이를 보면, 선생님은 그 부모를 볼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아마도 나의 몰골을 보고, 선생님은 내 부모의 상태가 어떠한지 짐작했으리라. 이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나에게는 때때로 연민이 된다. 융은 나보다 더 심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조절해서, 좋지 않은 기억이 자기를 지배하지 않도록 했다. 
 
5. 초대 받은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평일에 일요일 정장을 입었을 때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나 자신이 기품있고 가치있는 존재로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방문하려는 집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그런 생각은 현저히 바뀌었다. 그 집 사람들의 위세와 힘이 주는 인상으로 내 마음은 어두워지고 말았다. 58
 
-->옷의 종류에 따라서 사람의 태도도 바뀐다고 한다. 유치원 개구쟁이에게 정장을 입혔더니, 의젓해지는 실험도 본 적이 있다. 자기 딴에는 '이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의 권위와 재력에 상대적으로 비참해진다. 비교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원래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덜 충격받는데, 자기가 생각하는 최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충격 받고 의기소침해진다. 
 
내가 아는 목사님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자기는 똥차를 타고 다니는데, 동료 목사가 고급 세단 차를 몰고 다니면 위축된다는 것이다. 극복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주위할 점이 있다. 분명히 대단한데, 그것을 모르는 척하는 태도다. 자신 보다 풍요로운 생활에 주눅들지 않고자 모르는 척 하기다. 의기소침해지는 것 만큼이나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6. 선생은 이해할 수 있는 수량을 소리로 바꾸는 이 기묘한 조작의 목적에 대해 나에게 설명해주려고 무진 애를 썼고 나는 그 수고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조작의 목적이 일종이 단축체계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다수의 수량이 간단한 공식 속에 정리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다. 61
 
-->사회생활 처음 시작할 때, 여권 업무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업무는 아니었다. 여권 서류를 작성해서, 선배 사원에게 체크를 받고 접수한다. 그 선배는 자신의 업무가 대단한 것인냥, 까다롭게 굴었다. 틀린 부분이 있으면 빠구 당한다. 틀린 부분을 지적해주며, 그는 '뭔 말인지 알지?'라는 말을 어미 마다 붙였다. 내가 알아들은 말은 '뭔 말인지 알지?'라는 말 뿐이었다. 그의 설명은 도통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해마저 강요하는 것은 폭행에 가깝다. 
 
이런 분위기가 많다. 특히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도, 주변이 틀렸다고 하면 자신의 뜻을 쉽게 굽힌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상대가 못알아듣는다고,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상처 받을 것이다. 융도 그러한 상황이었다. 문맥으로 보았을 때, 융은 단지 수학이 고역이었을 뿐이지, 수학 선생이나 수학 때문에 상처 받은 것 같지는 않다.
 
7. 어느 의사든 내가 간질병에 걸렸다고 추측했다. 그무렵 나는 간질병 발작이 언떤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그런 허튼소리를 비웃었다. 하지만 부모는 그 반대로 이전보다 더욱 걱정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친구 한 사람이 우리집을 방문했다. 두 사람은 정원에 앉아 있었고, 나는 누를 수 없는 호기심에 사로잡혀 그들 뒤에 있는 빽빽한 숲 속에 숨어 있었다. 손님이 아버지에게 '그런데 아들은 좀 어떤가?'하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아,그건 슬픈 일이네, 의사들도 이제는 그 아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고 있네. 그들은 혹시 간질병이 아닌가 생각하네. 그 아이가 만일 불치의 병에 걸렸다면 끔찍한 일일세. 나는 얼마 안 된는 재산을 다 써버렸어. 만일 그 아이가 자립해서 살아갈 수 없다면 그 아이는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65.

 

-->융의 정신적 토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융의 부모는 융에게 강한 자존감을 주지 못했다. 위의 대화는 아버지 된 자가 할 소리가 아니다. 자식이 병이 있다고 하면, 같이 아파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닌가? 융의 아버지는 자신의 불만과 욕구를 융에게 뒤집고 씌우고 있다. 그를 걱정해 주는 척 하면서, 그를 사실 불구로 만들고 있다. 융은 부모에게서 자존감을 받지 못했다. 그가 정신의학에서 우뚝 선 것은 결핍에 대한 욕망때문이었을 것이다. '남들에게 당연히 있는 것이, 왜 나에게는 없을까?'라는 질문이 그의 긴 치유의 시작이다.   

 

8. 그 친구는 이를테면 그 사건에 '끼워진'것에 불과하며 내편에서 그 사건을 간교하게 조정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이런 일이 두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분노햇고 동시에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다. 왜냐하면 내가 나 자신에게 옳지 않은 일을 했으며 나 자신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구 탓도 아니다. 나 자신이 가증스러운 탈영병이었다!' 그후로 부모님이 나를 염려한다거나 동정하는 어조로 나에게 말하는 것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67

 

-->친구는 그 사건에 '끼워진'것이라고 표현했다. 융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긴 이유는, 그가 악惡을 행했기 때문이다. 악은 타인의 약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에고, 이기심을 채운다. 이를 테면, 알코올중독자는 부인의 약점을 찾아서 자신의 음주를 합리화한다. 깊은 내면 성찰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악을 행했는지 알 수가 없다. 융이 어느 정도 내적 성장을 했는 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악은 은총과 마찬가지로 스쳐지나간다. 잡아내지 않으면, 인식할 수 없다. 악에 대한 이론을 대중화 시킨 사람은, 스캇펙이다. 그의 책, '거짓의 사람들'을 참조.  

 

9. 신경증은 나의 또 다른 비밀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부끄러운 비밀, 일종의 패배였다. 그럼에도 신경증은 나를 결국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했다. 그럴무렵 나는 성실해지기 시작햇다. 그것은 내가 무언가 덕을 보려고 하는 외관상의 성실성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성실성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아침 5시에 일어났다. 때로는 학교에 가기 전에 새벽 3시부터 아침 7시까지 공부한 적도 있었다. 67


-->성공한 사람들은, 경조증이 있다고 한다. 경조증이란, 문제 삼지 않을 정도의 조증이다. 끊임없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실행에 즉시 옮기는 사람들이 있다. 겉에서 보아도, 약간 들뜨고 흥분된 인상을 준다. 요즘처럼 빠른 실행이 필요한 시대에는 약간의 병적인 태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약간이 카페인 같은 역할을 한다. 융에게 신경증은 그에게 플러스가 되었다. 신경증을 앓는 사람은, 완벽하고 누군가에게 비난 받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이 자신을 성실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10. 그때 몹시 난처하게도 나 자신이 실제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수학도 잘 모르고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었으나, 다른 하나는 위대한 권위를 지닌 중요한 인물로 경시해서는 안 될 사람이며 그 공장주 보다 더 막강하고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70
 
-->사람이 좌절하는 것은 이 두 시선의 간극에 있다. 쉬운 예로 취업을 들 수 있다. 나는 나의 포부와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면접관은 나의 미래가 아니라, 내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본다.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이 통하지 않으면, 채용될 수 없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중요하지만,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난 외국어 고등학교를 나왔다. 친구들은 수재급 인재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 '잘난맛'에 살았다. 20년이 지난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 잘 되었다. 검사나 판사가 되었고, 대학교수가 되었다. 나의 능력과 미래를 견지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하지만, 타인은 나를 그렇게 친절하게 봐주지 않는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당연하다고 인식할 때,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버트런트 러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재능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고 있다고 하자.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이라고 지나치게 확신하지 마라. 만약 당신이 그런 확신을 방치하게 되면, 당신의 재능이 인정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음모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런 믿음은 당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 틀림없다. 당신 자신의 재능이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_행복의 정복 

11.내 아버지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나는 체험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의지로, 아버지는 아주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깊은 신앙심을 내세워 그 의지에 대항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치유하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의 기적을 아버지는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성서의 계명을 자신의 규범으로 삼았다. 아버지는 성서에 씌어 있고 조상들이 가르치는 대로 하느님을 믿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살아서 직접 임하시는 하느님, 성서와 교회를 넘어서 전능하고 자유로운 하느님, 당신의 자유를 인간이 누리도록 촉구하고, 당신의 요청을 무조건 실현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견해와 신념들을 버리도록 강요할 수도 있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81
 
-->융의 아버지는 욕구불만을 가졌고, 그것을 융이나 가까운 가족들에게 전가했을 것이다. 융의 어머니도 그렇게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왜 융의 아버지는 욕구불만에 쌓였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하느님과 제일 가까운 위치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다. 정작 그는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융이 자랐는지 용하다. 융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은 아직도 많다. 실체를 체험하지 못하고, 실체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가깝게는 실제로 일하지 않고, 혹은 공부하지 않고, 방법론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실행과 체험, 경험이 없으면 지속적인 만족은 없다. 융은 체험을 강조했다.
 
12. 그 체험 이후 나는 하느님이 은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하느님에게 맡겨졌다는 것과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한다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무의미한 일에 나 자신을 넘겨주는 셈이 된다. 82
 
-->이 글에 관련, 다음과 같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은총'이라고 하면, 특정 종교에 대한 느낌이 들어서 거부감이 생긴다. 스캇펙이 말하는 '은총'은 종교와는 관계가 없다.  아마도, 번역하는 사람이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은총이라는 단어를 쓴 것 같다. 이 개념을 알면 삶을 살아가는데 오만하지 않고, 의사결정을 좀 더 잘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진작가는 사진의 주체가 되는 '대상'보다, 대상을 둘러싼 '배경'에 신경쓴다. 배경은 대상이 더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진에선 '더하기 보다, 빼기를 잘해야한다'는 말은 이런 의미다. 

내가 스스로 이해한 '은총'은 바로 이 배경이다. 2차원에서는 배경이지만, 실물이 움직이는 3차원에선 배경을 허공이라 말할 수 있겠다. 대상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다. 때문에 사람은 대상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그 대상을 존재하게 만드는 것은 '허공'이다. 대상은 없을 수도 있지만, 허공은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허공이야말로 절대적인 존재다. 대상은 허공이 있어야 하지만, 허공은 허공 스스로 존재한다.  나를 둘러싼 이 허공이 나에게는 '은총'이다. 

쉽게 말하면, 세상사는 사람의 힘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겸손한 면도 있지만, 한결같이 '자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일을 이루는 것은, 사람의 힘과 함께 알수없는 또 다른 힘이다. 이 힘은 끊임없이 메세지를 주며 나를 가이드 해준다. 물론 직접 이야기하는 경우는 없다. 이를테면, 여행을 갈려고 하는데 마침 여행사에 다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든지(그것도 몇년만에) 서점에 갔는데, 몇달간 안고 있던 문제의 해결을 제시하는 책제목을 우연히 본다든지.

절박할 때, 이런 은총은 빛을 발한다. 무라카미하루키는 째즈바를 운영할 때, 3만엔이 모자라서 가게세를 못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공원을 거닐며 고민하는데, 어디선가 3만엔이 바람에 실려 날라왔다고 한다.  누구나 크고, 작게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연금술사_코넬료

화려한 이미지에 익숙한 요즘에는 사람들은 기적과 은총을 대단한 이벤트로 상상한다. 은총은 사람처럼 과시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의식하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지나간 일을 떠올리며 생각해보자. '그 일이 과연 운이 좋아서였을까?' '지금 내 모습이 오히려 최선이 아닐까?' '당연한 존재는 당연한 존재인가?' '지금 현 상태를 기적으로 보아도 이상할 것이 없지않은가?' '기적을 기적으로 보지 못한 나의 무감각에 새삼 놀라지 않는가?'

은총은 내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알수 없는 힘이다. 나의 모습을 항상 모니터링하면서, 적절한 때와 장소에 적절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거나, 적절한 일을 준다. 고생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꼭 나쁜 것만이 아닌 이유는 이 때문이다. 빅터프랭클은 수용소 생활을 3년 했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얻을 수 있었을까?반대로, 힘들고 짜증나고 무료할 때, 그만두어 버린다고 해서, 그 선택이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후회한다. '조금만 더 버틸걸'  힘들어서 빠져 나오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나와서는 갈 곳이 없다. 힘들지 않으면, 능력도 얻을 수 없다. 은총은 언제 나에게 속삭이는가? _칼럼,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中
 
융은 신의 계시를 따를 때, 은총이 자신의 길을 터줄 것이라 생각한다. 신의 계시는 어디에서 얻는가? 신은 무의식이며, 신의 계시란, 마음의 소리다. 후에도 기술하지만, 그는 교수직을 버리고 자신의 소명을 따른다. 
 
13.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84
 
-->용기를 가지고 내면의 소리를 따르면, 은총을 얻는다. 융에게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가 느끼는 외로움을 그도 예상했을 것이다. 외로움은 큰 업적에 대한 대가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무언가를 통제하고 관리하면 오히려 꼬인다. 현세의 것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볼려고 할 때 병든다. 
 
14. 나는 아버지가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한다면 모든 것은 최상으로 바뀔 것이라고 확신했다. 
 
-->융의 아버지는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그렇다면, 왜 그는 목회자가 되었을까? 밀림의 원주민들은 이유없이 행하는 의식들이 있다. 이를테면, 여성의 성기를 꼬매거나, 입술에 널판지를 삽입하는 행위다. 그들은 왜 자신이 그런 고통스러운 의식을 해야하는 지 알지 못한다. 단지 이유가 있다면, '그들의 조상도 똑같이 했기 때문이다' 융이 아버지가 목회자가 된 것은, 그의 의사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의 형제들도 그렇다. 융은 이러한 관성에 제동을 걸었다. 
 
나도 장사하는 집안이기 때문에, 장사를 시작했다. 물론, 장사家의 집안에는 노하우가 있다. 나에게는 상식이지만, 이곳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은 돈주고 배운다. 그런 노하우를 계승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요는, 계승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까지 하고 확장해야 하는 책임이 나에게 있다. 
 
15. '아, 이런! 너는 항상 생각하려고만 하는구나. 사람은 생각해서는 안 되고 믿어야 해' 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알아야 한다.' 
 
-->그가 위대한 업적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는 실행했다. 체험하고, 경험함으로써 배운다. 머리로 아는 지식이 과연, 우리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알아서 손해 볼 것은 없을까? 오히려, 알아서 몸을 필요 이상 사리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은 몸으로 얻은 지식이다. 외국어는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배운다. 반복과 훈련으로, 입과 귀에 달고 살아야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다. 융은 자신이 아는 바를, 실험하고 현실에서 확인했다. 
 
정보화 시대이지만, 체험을 통한 학습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정보는 도움이 되는 매체가 아니라, 오히려 연막을 피우는 안개같다. 의사결정을 할 때, 많은 정보가 방해가 된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실행은 줄어들거나 느려지는 경향이 있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어서, 결국 아무것도 택하지 못한 경우가 있지 않은가? 하나 하나, 살펴보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느 스님은 이런 말을 했다. '적게 생각하고, 많이 행하라' 융은 많이 생각하고, 많이 알았지만, 또한 많이 행했다.
 
16. 왜냐하면 나는 체험을 통해, 은총은 오직 하느님의 의지를 철저히 실현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92.
 
-->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알 수가 없다. 보고, 느꼈기 때문에 융은 외로운 길을 버틸 수 있었다. 결과가 무엇인지 알고, 확신했기에 오래도록 혼자서 갈 수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느님의 의지'와 '은총'이다. 하느님의 의지란 무의식의 지향점이다. 그 지향점에는 개인의 달란트와 강점이 묻혀있다. 서태지는 겉으로 보아도, 약해보인다. 한대 때리면, 울어버릴 것 같은 인상이다. 10여년전 서태지 평론을 쓴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서태지의 관상을 이야기했는데, 눈썹에 주목했다. 곱상한 이미지와는 달리, 그의 눈썹은 독수리 발톱처럼 날카롭다. 나름 고집이 있는 상이라고 말했다. 서태지는 알려진대로, 고교를 자퇴했다. 어느 부모가 음악을 위해, 자퇴하겠다는 자식을 가만히 두겠는가? 부모의 허락을 넘어서, 고교 자퇴는 그에게도 큰 모험이었을 것이다. 용기를 내서, 발을 내딛고 고집스럽게 버텼다. 그래서 오늘날 서태지가 되었다. 그는 약해보이지만,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다.
 
융도, 대학교수직을 버린다. 조셉 캠벨도 불황의 시대에 겁도 없이, 책만 읽는다. 군계일학에서 학이 된 인물들은 모두, 크게 떠났다.  은총이란, 그 지향점을 향해 갈때, 예기치 못한 성공이나 행운이다. 다시 서태지로 돌아와서, 그는 본래 시나위에서 메탈을 했었다. 그가 솔로로 들고나온 음반은 랩을 접목한 댄스음악이었다. 이것이 시대의 조류와 일치했다. 크게 떠나면, 당장은 시련을 경험하지만, 조력자가 생긴다. 삶은 내가 계획하는 것 보다, 내 소명을 알고 나아갈 때 더 풍성한 기회를 준다.
 
17. 종교란 '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11
 
-->나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 내 인생이란, 그 시선에 대한 액션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직장생활에서는 평판이 얼마나 중요한가? 헌데, 나는 나를 어떻게 보는 지를 전자 만큼 생각한 적은 없다. 그것을 하나의 채널이라고 한다면, 주파수가 매우 약하다. 의사결정을 할 때도, 내가 원하는 것 보다는 남이 원하리라 예상하는 것을 택한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훌륭한 풍경화가 있다고 하자. 아름다운 호수와 웅대한 산맥이 있고, 작은 오두막집이 있다. 그 집 앞에 사람이 있는데 그것이 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세를 풍경화로 생각할 수 있다. 하느님은 그림 밖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강하게 의식할수록, 타인과 상대적인 조건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18. 나는 악마에 관해 읽어보아야만 했다. 악마는 아주 중요한 존재로 여겨졌다. 나는 다시 교리책을 열어 고통과 불완전함과 악의 근거에 대한 화급한 물음의 답을 찾았으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116
 
-->현 시대의 악마를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악은 도처에 있다. 당연히 내 안에도 악은 존재한다. 하느님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성장'이라면, 악은 이 성장을 방해한다. 그것이 악의 목적이며, 존재이유다. 악에 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1)
에반게리온은 경제적인 만화다. 구성이 잘 짜여졌다. 마징가Z나 메칸더 V는 선과 악이 분명하다. 마징가Z는 선이고, 악당은 악이다. 선과 악이 충돌하다가 결국 선이 이긴다는 내용이다. 악은 그냥 나쁜놈들이다. 못생겼다. 그들도 대사가 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어린이의 마음을 분노하게 만든다. 선이 초반에 당하다가, 불굴의 의지로 멋지게 어퍼컷을 날린다.악이 능지처참당하며 폭발할때, 어린이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에반게리온은 선과악의 대결구도 보다는, 선善끼리의 갈등에 초점을 둔다. 싸우긴 싸워야겠는데, '왜'싸워야 하는지, 갈등한다. 악이 등장하면, '출동'이라는 구호와 함께 시원 시원, 싸우는 것이 아니다. '하필 내가 왜?'라는 의문을 품으며, 등 떠밀려 전장에 나간다.이런 장면은 뜻밖이다. '철아 출동해라'라는 박사님의 명령에, '네?' 혹은 '제가요?'라고 토를 다는 마징가Z 조종사 철이는 상상할 수가 없다. 아침에 회사 가기 싫어 죽겠는데, 에바의 주인공이 똑같은 심정으로 조종석에 앉기 싫어하는 모습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젊은 남자들이 에바에 열광하는 이유다. 선이 분열되어, 악이 꽃핀다. 30분이라는 러닝 타임에, 복잡한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악당은 단순한 캐릭터가 되었다.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악惡은 사도다. 왜 수시로 와서 파괴하고 괴롭히는지 알 수가 없다. 말도 통하지 않고, 협상의 여지도 없다. 순수한 악은, 남을 괴롭히고, 방해하는 것이 존재이유다. 악은 인격이 없다. 공교롭게도 에바의 사도는 인간 세계의 악과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인간세계의 악은 보다 세련되고 교묘하다. 몇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분절되는 시간과 비대해진 자아',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과 과거의 기억'이다. 이 안에 악惡이 숨어있다.  
 
(2)
전문가란 특정 기술이 있는 사람이기 보다는, 시간을 절약해 주는 사람이다. 만일 내가 인테리어를 스스로 한다고 하면, 비용은 둘째치고 시간이 한 없이 늘어진다. 나에게는 인력풀도 없고, 재료에 대한 지식도 없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지 감을 잡지 못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경험하겠지만, 시간을 질질 끌면, 결국 그 일은 해내기가 어렵다. 악은 사랑과 대립하는 개념이다. 사랑의 목적이 정신의 확장과 성장이라면, 악은 인간 성장을 방해한다. 결심만 하고, 해내지 못하면, 자신에 대한 자신감만 떨어진다. 일을 뭉겐다면, 그 속에 악惡이 있다.  
 
글을 써서 책을 낸다는 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박남준 시인의 산장일기나, 법정스님의 수필집을 보라. 그들의 소재는 소소한 일상이다. 나무며, 풀이며, 바람등이 이야기 거리다. 소재는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시각디자인을 할때도, 디자이너는 아이디어를 일상에서 찾고, 발전시킨다. 그들이라고, 고전이나 교양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료조사는 나중에 하면된다. 시간을 들여서, 염念을 집중하면 결정체가 생기고, 그것을 다시 몽글몽글 매만지면 콘텐츠가 된다. 잘 팔리고 안팔리고는 별개지만, 한 점占에 시간을 집중하면 상품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아주 작은 캔번스에 몇시간이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이야기가 나온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의 기본은, 하나의 점에 시간을 집중해서 상품으로 만들기다.
 
피터드러커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시간을 통합하라고 이야기한다. 내 경험상, 시간에도 복리효과가 있는 듯하다. 같은 2시간이라고 해도, 40분씩 3번 쪼개서 2시간과 논스톱 2시간은 틀리다. 그림 그릴때는 3시간 30분씩 수업이었다. 3시간 30분은 매우 긴 시간이다. 직장인이라면, 좀처럼 만져보지 못하는 시간이다. 형태를 잡고, 상승무드를 타면 어느새 주변학생들이 갈 준비한다. 작품의 결과도 좋다. 몰입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일에서나 가능하다.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직장생활이 따분하다면, 우선 구체적인 과업이 없기 때문이고, 과업이 있어도 자신의 개성이 묻어날만큼 시간을 투자하지 못한다. 하나의 점을 극까지 치밀어 들어갈 시간이 부족하다. 왜냐면 세상은 나를 가만두지 않기 때문이다. 빼빼로 뿌러뜨려 먹듯이, 현대의 시간은 자잘하게 분절되고 있는 중이다. 탁구에서 공 주고 받듯이, 반사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시간관리는 복합적인 문제다. 비단 물리적인 시간의 양만이 문제가 아니다. 체력도 있어야 하고, 부탁에 거절할 수 있는 영적인 힘도 필요하다.

사람은 하나에 집중할 때, 성장한다. 악은 통합된 시간을 방해한다. 악은 인간내면에도 있고, 외부에도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속성이 집중 보다는, 분산할려는 성향이 강하고, 기업은 그 속성을 이용한다.
 
어느 여행사 카피처럼, 사정이 어떻든간에, 적어도 '1년에 한번은 나가주어야' 한다. 지불을 더 편리하고, 간편하게 하는 방법은 발전하는 반면, 현재 내 잔고와 능력을 알려주는 정보는 없다. 신용카드 사용자 대부분이 자신이 얼마나 긁었는지 알지 못한다. 한달에 얼마를 긁었는지 문자로 알려주는 것은 단순하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기술이다. 소비를 부추기는 과정에서 개인의 에고는 기형적으로 커진다. 소위 헛바람이 분다. 연예인과 상품을 연계하는 것은, 광고쟁이들이 흔히 쓰는 설득의 법칙이다. 상품을 구입만하면, 장동건도 되고 꿀벅지도 된다. 소비와 함께 상품에 묻어있던 이미지를 나에게 투사한다. 아이폰을 사서, 스티븐잡스가 되고, 소주를 마시며 효리를 그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사에 쉽게 삐진다. 에너지는 없고, 열량만 있기에 뚝심이 없다. 나는 이런 곳에서 일하거나, 이런 대접 받을 사람이 아닌 것이다. 삐지고 화나서, 직장 그만두는 것은 일도 아니다.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있었다.
 
'할머니, 어머니, 동생 5명 제삿날이 같은 기구한 우리집'
 
6.25때  지주地主라는 이유만으로 가족이 인민군에게 죽임을 당한다. 김차순 할머니는 60년 만에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인민군이 죽창을 건네주며, 네 어미를 죽여라'고 했다.  못하겠다고 하자, '네 사촌오빠를 죽여라'라고 협박한다. 사이코패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실제로 60년전에 있었다. 안보불감증에 걸린 요즘, 그녀는 아직도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아직도 뒤를 쫓아오는 것 같다고 말한다. 죽음의 공포가 불행마저도 압도한다. 가슴 아퍼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그녀는 아직도 두려워한다.  

부모가 보는 앞에서 아이들을 죽창으로 찌르고 구덩이에 던진다. 이런 일이 내가 사는 세상에 있었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다. 도대체 내가 상처라고 생각하는 상처는 과연 상처일까?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자꾸 켕기게 만드는 악의 수작이다. 이런 관념이 새어들어올 때를 관찰해보면, 틀림없이 피곤하거나 배고프거나 외롭거나 스트레스 받을 때이다. 상태가 안좋을 때가, 약할 때이며 악이 스며들어오는 시간이다.
 
직장생활에서도 이런 일은 빈번히 일어난다. 상대의 말투와 눈빛에 아니꼬워하며, 자신을 방어하고, 교묘하게 다시 상처준다. 상처를 곱씹으면 씹을수록 병든다. 장사는 말할 것도 없다. 손님들이 끊임없이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악의 지상목표는, 만화에서나 현세에서나 같다. 인간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다. 상처에 골몰해서, 가던 길을 멈춘다면, 악의 승리다. 일상에서 받는 상처는 그 상처에 집중하지 않는 이상, 오히려 이롭다. 쉼없이 커지는 에고ego를 푹푹 구멍내서, 바람을 빼준다. 상처준 사람을 원망하지만 않는다면, 제 분수를 아는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

(3)
악에 눈을 뜬 것은, 스카펙의 '거짓의 사람들'을 읽고서다.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못하고, 악을 구분하는 눈이 없다면, 악에 휘둘린다.
 
경영 전략가들은, 목표를 정밀하게 설정해서 전력투구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곧잘한다. 혹은, 일단 뛰면서 목표를 정하라는 말도한다. 현대의 목표는 가변적이고, 빠르게 이동한다. 쫓아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클릭 한번으로 대서양을 건너는 자본을 따라 잡을 수있을까? 미래를 계획한다는 것은 이제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비전없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비전은 현장에 있다. 현장에 천착하면, 정원에 꽃이 자라듯 비전이 보인다. 현장에 기반하지 않은 계획은 시간낭비며, 직무유기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살 부딪혀가며 일하는 것보다, 책상에서 미래를 공상하는 것이 더 편하다. 명목도 좋다. '비전을 세우고, 미래를 계획하기.'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처럼, 요즘 60대는 혈기왕성하다. 체력도 있고, 지혜와 경험을 두루두루 겸비했다. 그런데, 일자리가 없다. 60세가 되기전에 정년을 맞는다. 백종원 대표는 '새마을 식당' '해물떡찜' 의 브랜드를 런칭해서 성공했다. 그도 말하듯이, 음식장사는 돈받고 음식 내주는 일이 아니다. 자존심을 파는 일이다. 자식뻘 보다 훨씬 어린 사람의 부림을 받을 수 있는가? 술주정을 받아줄 수 있는가? 큰 조직을 나와서, 개인이 되면 할 수있는 일이 많지 않다. 자영업자의 일이란, 그리 전문적이지도 않고 대접 받지도 못한다. 과거에 미련이 많다면, 장사를 해서는 안된다. 또 결심한다고 될 문제도 아니다. 장사를 해나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헛바람을 빼나가야 한다. 물론 즐겁지 않다. 
 
인생의 패배자가 유별난가? 악에 빠져서 정체되거나 퇴보하는 경험이 축적된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된다. 오늘 내 컨디션은 어떤가? 나를 둘러싼 상황은 어떤가? 그에 상관없이 오늘 나는 성장해야 한다. 상처와 분노, 불합리에 매달릴 시간이 없다. _악의 좌표 전문
 
19. 악의 기원은 '설명되지도 않고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그 말은 그도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악의 기원에 대해서는 숙고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악의 기원에 관한 항목은 둘 다 시원하게 밝혀주는 것이 없었다. 122
 
-->악의 속성이 그러하다. 악은 짱박히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도 나는 악을 발견했다. 내가 가게 앞에서 찌라시를 돌리고 있을 때였다. 요즘 차는 너무나 조용해서, 차가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뒤를 돌았는데, 차가 내 무릎을 밀고 들어왔다. 뒤로 물러나면서 옆으로 빠졌다. 헌데 운전자는 그냥 은근슬쩍 갈려고 하는 것이다. 차를 세웠다. '아저씨 지금 사람 치신거에요'라고 했다. 그는 '왜 길에서 알짱거리느냐'고 했다.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크락션을 울리며 될 것아니냐고 했다. 그는 말문이 막혔는데, 아마도 찌라시를 돌리는 내가 한참 어린줄 알았나 보다. 약간 쎄게 나오자 그는 자기 의도와 틀어져서, 공황상태에 있는 듯했다. '적어도 다친데 없냐'라고 나와서 물어봐주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하자, 그는 더 말문이 막혀 보였다. 더 몰아붙이고 싶었는데, 뒤에 그 운전자의 어머니 되는 사람인지,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게 나의 한계이기도 하다. 상대를 극까지 몰고가지 못한다. '좋은 사람 만난줄 알라'고 하고 보내주었다.
 
그 운전자는 사람 쳐놓고, 그냥 갈려고 했다. 그것이 악이다. 악은 은연히, 은근슬쩍, 사라진다. 때문에 젓가락으로 찝듯이 잡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상대의  악에 대해서 말할려고 하면, 참 어렵다. 특히 내가 도덕적으로 결점이 있거나, 영적 성장이 덜 되어있다면 악은 구분하기 조차 불가능하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는 없다.
 
 20. 나는 생각했다. 이들은 모두 자기들이 받아들이지도 않고 진정으로 알고 있지도 않은 것을 논리의 곡예로써 억지로 꾸미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사실은 체험이 문제인 것이다!' 나에게는 그들이 코끼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소문으로 알고는 있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제 그들은 논리적인 근거에서 그와 같은 동물이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고 그 모양대로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논증으로써 증명하려고 애를 썼다. 133
 
--> 실행을 방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똑똑하게 말하기다. '생각의 속도로 실행하라'라는 책에는 이런 예가 자주 나온다. 현장을 가기 보다, 화려한 차트와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과시한다. 
 
21. 이러한 철학적 발전은 열일곱 살부터 의학공부를 하던 시절까지 이어졌다. 이것은 세계와 인생에 대한 나의 태도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에는 내가 수줍고 소심하고 의심 많고 창백하고 마르고 병약한 모습이었으나, 이제는 모든 방면에서 왕성한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바라는 바를 알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했다. 136
 
-->철학적인 발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내면의 정리가 외부활동에 영향을 준다. 상처 받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비판 받는 것을 두려워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살아가면서 피할 수가 없다. 과연, 나는 어떻게 평가 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보다. 나는 내가 만든, 혹은 내가 행한 행동과 결과물로 평가 받는다. 비난과 상처에 이리저리 시간을 낭비한다면, 인생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나를 물리적으로 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정신적으로 상처받고 영향 받는다면, 그것은 내가 약하다는 반증이다. 신경쓰지 않으면 그만인 일이다. 다음과 같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대했다'가 아니라, '나는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로.
 
22. 나는 나 자신이 특이하다고 여겨졌다. 왜 나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확실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165
 
-->융이 진로 결정을 앞두고 고민한 내용이다. 융 스스로는 특이하다고 생각하지만, 보통 다른 사람도 확실한 마음으로, 진로를 결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신입사원 대다수가 입사 1년을 못채우고 그만둔다. 특별한 동기도 없이 입사해서, 실무에서 느끼는 환멸을 견디기 어려워서 일것이다. 1년은 참 긴데,  2년차, 3년차는 순식간이다. 진로 결정이란, 확고한 마음 상태가 아니다. 가고 싶은 길을 가도, 회의가 생긴다. 오래 한 곳에 있으면, 마음이 그곳에 뿌리를 내린다. 융의 상태는 그가 커뮤니케이션이 안되서 느끼는 고립감이지, 특수한 경우는 아니다.
 
23. 내가 제2의 인격을 뒤에 남겨두고 떠나야만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경우라도 내 앞에서 제2의 인격을 부정한다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스스로를 불구로 만드는 것이며, 더 나아가 꿈의 출처를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이상 없게 되는 것이었다. 제2의 인격이 꿈의 생성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제2의 인격으로서는 그 필수적인 보다 높은 지능을 신뢰하는 일이 쉬울 것이었다. 172
 
-->융의 아버지는 융에게 반면교사였다. 융의 아버지는 무의식의 소리에 귀기울이기 보다, 의례 해야만 하는 의무에만 골몰했다. 그 괴리가 욕구불만을 만들었고, 가족들에게 교묘하게 상처를 주었다. 융은 아버지와 반대로, 무의식의 소리를 신의 계시로 믿고 그 길로 나아갔다.  
 
 24. 어미니의 제 2의 인격은, 내 무의식이 자극을 받아 만들어내고 있던 기이한 보상적 산물들과 아버지의 전통 사이에서 시작한 나에게 가장 강력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175.
 
--> 언젠가 내가 방황하고 있을 때, 어느 분이 '당신 부모님의 힘이 당신에게도 있어요'라고 말해주셨다. 우리 부모님은 강하신 분들이다. 맨주먹으로 사업을 제법 크게 일구셨다. 물론, 엄청나게는 아니지만, 지금의 결과가 그 분들의 능력 이상의 결과라는 것은 분명하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쏟아부어야 이런 결과를 얻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애기가 생겼다. 순식간에 바꼈다. 의기소침하고, 무엇을 해야할 지 방황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에 매일 나가고, 남들 보다 더 많이 팔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님의 긍정적인 모습이 나에게도 있는 것 같다. 비록 지금의 내 모습이 부모님이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장사하지 말라고, 공부시켰는데, 자식도 장사꾼이 되었다. 나도 의도한 바는 아니다. 나는 부모님이 말하거나, 원했던 대로가 아닌, 그들이 행동하는 대로 자란 것 같다. 
 
융의 어머니의 제 2인격은 그녀가 남편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생겼으리라 예상한다. 그것이 융에게도 투사되었다. 
 
25. 돌이켜보면 내 이린시절의 발달이 미래의 사건들을 얼마나 미리 잘 말해주고 있으며, 아버지의 종교적 좌절과 오늘날 세계상의 충격적인 계시에 대한 적응법을 얼마나 잘 준비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그러한 계시는 어제 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미 그 그림자를 던져온 것이었다. 175
 
--> '북경에서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뉴욕에 태풍이 온다' 카오스 이론이다. 어린 시절의 행동은 미약하다. 무엇을 해도, 영향력이 적다. 그것이 시간이라는 밥을 먹으면, 엄청난 결과가 된다. 사형선고를 받은, 김길태를 보자. 우리는 한눈에 그가 유복한 어린시절을 지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분노가 튀어나와서 끔찍한 범죄인이 되었다.
 
나에게도 이런 예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은 좌절이 많았다. 친구들은 공부를 모두 잘했고, 나는 발버둥쳐도 그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래도, 남은 것이 하나 있다. '공부하는 습관'이다. 이것이 씨앗이 되어서 지금도, 책 보고 공부하는 것을 좋다. 융은 시시콜콜하다할 정도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기술한다. 그 미약한 행동과 관념이 지금의 자기를 만들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부터 잘했던 것인가? 최근 떠오르는 나의 강점은 '행동력'이다. 나는 남들보다 빠르게 행동하는 것을 잘한다.고 나 스스로 생각한다. 호흡이 짧은 것이 단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게에서 서빙을 보았다. 가게일이란 행동이다. 그것도 빠르게 행동을 해야한다. 이것이 지금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강점이고, 앞으로 크게 발전했으면 한다. 
 
26. 하느님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에게조차 그런 꿈을 보여주었으며 나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 이유는 모르지만 그 일을 그렇게 일어났다. 그렇다. 하느님은 나에게 자기 자신의 존재를 잠깐 볼 수 있도록 허락하기까지 했다.179
 
--> 관념으로 가득찬 융의 아버지의 신앙을 비판한다. 융에게 하느님은 완연한 인격체로서 그의 일상을 일일이 참견했던 것 같다. 어떻게 아버지는 체험하지 못한 것을 아들이 할 수 있었을까? 은총이다.
 
27. 세계는 나에게 그러하듯 아버지에게 아버지에게도 활짝 열려 있었다. 무한한 지식의 보물이 내 앞에처럼 아버지 앞에도 놓여 있었다. 그러한 아버지를 온통 기죽게 하고 우둔하게 만들고 쓰라리게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여름 저녁, 아버지가 포도주를 마시는 술자리에서 한 연설은 그가 존재했었고 무언가 되어야 했던 시절에 대한 마지막 생생한 추억을 되살린 것이었다. 184
 
--> 슬픈 이야기다. 박주영이 자책골을 넣었다. 월드컵에서 자책골은 선수에게 트라우마가 된다고 한다. 다음 경기에서, 박주영에게 골 넣을 기회를 많이 주었다. 실제로 골을 넣어서, 자책골을 만회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의 한계를 알 수 없다. 나에게는 스위치 켜듯이 쉬운 행동이, 상대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울 수가 있다.
 
나의 아버지는 장애자다. 사고로 오른팔을 잃었다. 젊은날 아버지는 한쪽 팔을 잃었다는 사실에 크게 낙심하셨고, 술 많이 드셨다.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에게 '다시 시작하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참 뭘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다. 팔이 하나 없다는 것은 남에게 커다란 약점을 드러내놓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융은 아버지를 답답해했지만, 왜 그는 아버지의 상처를 보다듬기 보다, 개조할려고 했을까? 나도 융이 답답하다.
 
28. 나는 수중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이전보다 더 경험주의로 치우치게 되었다. 나는 철학자들을 좋지 않게 여겼다. 철학자들은 온통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만 말을 늘어놓고, 정작 사실들을 가지고 답변해야 할 때는 침묵해버리기 일쑤였다. 나는 언제 어디선가 다이아몬드 계곡을 지나온 것도 같은데, 내가 가지고 온 광석 표본이 자갈돌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나 자신까지도 확신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 칼융은 경험과 실행으로, 세계를 알고자 했다. 자신이 본 황홀경이,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는지 의심한다. 지금까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이기 때문이다.
 
29. 정신의학에서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흐름이 합류하여 그 합해진 물의 힘으로 스스로 물길을 내어 흘러갈 수 있을 것이었다. 여기에 내가 사방으로 찾아헤매었으나 발견하지 못했던, 생물학적 사실과 정신적 사실에 관한 공동경험의 장이 있었다. 정신의학은 자연과 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인 셈이었다.
 
-->융은, 이 사실에 흥분한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길을 택하는 계기가 된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행동이 되어서 표현된다. 철학자들처럼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일이 나에게 융과 같은 흥분을 주었던 적이 있었는가? 융이 흥분한 이유는, 정신의학에서 비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비전은 이런 것이다. 비전은 흥분을 시키는 힘이 있다. 자기 길을 가는 사람는 걸으면서, 춤을 춘다고 니체는 이야기했다. 그 모습을 위의 융의 모습에 본다. 나는 외식업이 하드웨어적으로는 레드오션이지만, 소프트웨어적으로는 블루오션이라는 사실에 약간 흥분했다. 문 열어놓고, 손님 기다릴뿐, 아무도 구체적으로 연구하지 않는다. 약간 흥분했다면, 대단한 비전은 아닌가 보다. 외식업이 먹는 장사가 아니라, 방송국이나 출판사 처럼 매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또 흥분했었다. 손님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마음이나 머리가 고파서 식당에 온다. 사장은 그 매체의 핵이어야 한다. 손님은 사장의 모습을 보고, 영향을 받는다. 손님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사장을 먹는 셈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내가 있는 분야에서 힘이 난다.
 
또 장사는 행동이 전부다. 이곳에서 나는 닭뼈다귀를 치우고, 음식을 나른다. 이런 행동은 하잘 것 없다고 볼 수있다. 하지만, 이 행동을 실천력을 강화하는 훈련으로 본다면 또 한번 흥분한다. 나의 실천력은 매일 매일 성장할 것이다. 장사를 열심히 하면, 글도 더 잘 쓸 수 있다는 믿음도 있다. 이런 생각 하면, 신이 난다. 
 
30. 그는 사실 어머니에게 예속되어 있는 억압상태에서 이미 오래전에 벗어났어야 했지만,  그 화려한 자리를 희생할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자리를 주선해준 어머니에게 붙들려 있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라든지 어머니가 간섭하는 대로 따라야만 할 때마다 자신의 기분을 마비시키거나 날려버리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따뜻한 보금자리를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본능에 반하여 부유와 안락에 자신을 내맡겼다. 232
 
-->어쩜 이처럼 나와 비슷한 상황일까?라는 생각을 하다. 부모님 밑에 있으면, 안락하다. 아무도, 나를 터치하지 않는다. 나를 참견하는 사람도 없고, 못살게 구는 사람도 없다. 가끔 눈에 가시 같은 직원이 들어오기도 한다. 정 못견디면 짤라 버리면 그만이다. 내가 짤리지는 않는다. 손님이 무섭기는 하지만, 손님을 컨트롤할 수없는 것도 아니다. 아니다 싶으면, 쫓아낼 수도 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 매너리즘에 빠진다. 법정스님은 혼자서 지내셨지만, 자기 관리에 철저하셨다. 새벽 예불을 지켰고, 한낮에 낮잠을 즐기지 않았다. 이런 자기관리 능력이 나에게는 아직 없다.
 
나를 좀더 가다듬기 위해서, 파트타임이라도 취업을 다시 해볼까라는 생각을 한다. 부모님의 사업은 가업으로서, 내가 확장시켜야한다는 책임이 있다.
 
31. 겉으로 보게 되면 정신병 환자에게서는 비극적인 붕괴만이 보인다. 하지만 감추어져 있는 환자 영혼의 다른 측면의 삶을 보는 일은 드물다. 우리는 자주 환자의 외관에 속는다. 나는 이런 경우를 젊은 긴장병 여환자의 사례에서 겪고는 놀란 적이 있다. 245
 
-->한국은 유난히, 약점을 보완하는 문화다. 밥상머리 교육은 대부분이 아이의 강점 보다는, 약점을 지적하며 잔소리한다. 밥상머리 교육은 하나도 효과가 없다. 왜 약점을 고칠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이 직접적이고, 빠르기 때문인가? 사람의 인생은 그의 결과물에 따라 결정된다. 피카소는 그림을 만들었고, 베토벤은 음악을 만들었다. 그들의 결과물을 그들에게서 빼면, 희대의 천재에 대해서 할 말이 없다. 결과물은 강점으로 만든다. 강점은 찾을 필요가 없다.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융의 아버지와 융과의 관계에서, 왜 우리가 약점을 보완하려는 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잔소리하는 사람의 컴플렉스가 문제다. 자기 스스로에게 느끼는 불만이 타인에게 화살이 된다. 내가 나를 만족하지 못하면, 나의 잔소리는 더 많아질 것이다. 러셀은 인간의 자존감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의 성과라고 했다. 더 큰 결과물을 만든다. 그러면, 만족이 생길 것이다. 내 마음이 평온하면, 타인도 사랑스러워 보일 것이다.
 
32.  교황 자신도 고해신부를 두고 있다. 나는 분석가들에게 늘 이렇게 충고한다. '고해신부 역할을 해줄 아버지 같은 사람이나 어머니 같은 사람을 가지도록 하시오!' 여성들은 그런 일에 대단한 재능이 있다. 여성들은 대개 뛰어난 직관과 정확한 비판력을 지니고 있으며, 남자의 비밀스러운 의향을 간파할 줄 알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자의 아니마anima가 꾸미는 음모까지 꿰뚫어볼 줄도 안다. 여자들은 남자가 보지 못하는 측면을 본다. 그렇게 때문에 자기 남편이 초인이라고 확신하는 부인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254
 
-->정신과 의사도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 정신 없는 환자들을 대하면, 자칫 자신도 기준점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준점과 균형은 여성들의 몫이다. 나는 여성이 무서울 때가 있다. 그들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퇴사하고, 전 직장 동료를 만났다. 재직 시절, 그녀는 나를 능력있다고 칭찬해주었다. 퇴사하고, 백수로 있었는데, 나의 심적 상태는 그리 밝지 못했다. 그녀는 한눈에 그런 나의 모습을 간파했다. 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이런 두려움 때문인지, 특히나 여성들 앞에서는 조심스럽다. 나의 의도가 그녀들에게 발각될까 두렵기도 하다. 이런 나의 태도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고, 넓은 아량으로 받아주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이지 여자는 남자보다 한 수 위다.
 
33. 이러한 경험에서 중요한 점은 원형적인 상황(이 사례에서는 죽음이라는 상황이지만)과 관련하여 종종 관찰되는 전형적인 동시성 현상이다. 무의식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대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다. 이 사례에서는 나의 무의식이 내 환자의 상태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이미 그날 저녁 내내 보통때의 기분하고는 유난히 달리, 이상하게도 마음이 어수선하고 신경이 예민했던 것이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라는 소설이 있다. 웬지 장사가 잘 되는 상황에, 주인공은 기쁨과 동시에 불안을 느낀다. 그 불안은 아내의 죽음으로 확인된다. 현진건은 융의 집단 무의식을 알았을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혼란스러울때는, 제 6의 감각에 의존한다. 말과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일상에서는 곧잘 일어난다. 예를 들어, 직장내에서 상사가 어떤 지시를 내렸다고 하자. 육감이 발달한 사람은 그 일과 관련된 일 모두를 한다. 그것이 상사가 원하는 바임을 알거나, 느끼기 때문이다. 반대로 육감이 발달하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능청 떠는 사람은 상사가 시킨 일만 한다. 이런 육감이 확장된 형태가, 융이 말하는 집단 무의식이다. 
 
34. 나는 사람들이 인생 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사람들은 지위, 결혼, 명성, 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드른 대개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그런 이유로 인격발달이라는 관념이 나에게는 처음부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264
 
-->알코올중독, 신경증, 강박증, 모든 병은 마땅히 치루어야 할 고통을 겪지 않은데서 생긴다. 어려운 이야기를 할때가 있다. 내용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지라도, 혹은 나의 신상에 마이너스가 될지라도, 진실을 말해야할 때가 있다. 그것은 어렵고, 고통 스러운 일이다. 천안함이 침몰했을 때, 군당국은 생존시간이라는 개념을 유가족에게 제시했다. 이렇게 이야기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비겁한 행동이었다. 게다가 그 시간조차, 그들은 지켜내지 못했다. 거짓말을 할수록, 영혼은 나약해지고 삶은 내부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럽다. 혼란스럽기에 의심이 생기고, 작은 일에 크게 호들갑 떤다. 공격과 사고를 미리 예측하고, 방어하기 급급한 삶에 행복이란 없다. 신경증을 고치기 위해서는 사실을 직면해야 한다. 고통스럽다. 고통스럽지 않으면, 사실이 아니다. 삶은 단순해지고, 혼란은 없어지고, 직관은 발달한다.
 
35. '좋습니다. 당신은 귀부인입니다. 당신이 먼저 때리십시오. 레이디 퍼스트 아닙니까! 하지만 그 다음에는 내가 당신을 때릴 겁니다' 나는 정말 그대로 할 참이었다. 그녀는 도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가 탄식하듯 말햇다. '여태껏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하지만 그 순간부터 치료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268
 
-->가게 앞에서 멱살을 잡힌 적이 있다. 똘마니에게 기습당했다. 폭력에 익숙하지 않는 나는, 무서웠다. 아마도, 주인의 처형을 기다리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강아지 같은 행세였다. 상황이 종료되고, 경찰이 왔다. 사건 처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1년 전의 일인데도, 아직도 분하다. 왜 죽자 살자, 대들지 못했을까?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그들 똘마니는 우리 가게 가까운 곳에서 장사한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들을 피한다. 물론 그 이후로, 그들도 내 앞에 얼씬하지 않는다. 술 먹고, 자기가 한 행동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기 때문이다. 융도 폭력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유없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섰다. 소문을 듣고, 나름대로 각오를 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난 각오가 없었다. 지금은 각오한다. 나를 건들면, 나도 죽자 살자 달려드리라. 공격이 방어다. 그런 상황이 오면 그렇게 하자는 이야기다. 평상시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36. 의사가 일생 동안 진료활동을 하는 중에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이링다. 행운이든 불행이든 세상의 관심을 끌어본 적이 전혀 없는 사람들, 그럼에도 부룩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상한 측면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혹은 전례가 없는 발전과 재앙을 두루 겪은 사람들을 의사는 만나게 된다. 그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이 모든 삶을 바치기 까지 끝없이 열광할 만한 비상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능이 기묘하고도 꺼림칙한 정신적인 기질 속에 뿌리박고 있어, 우리는 그것이 천재성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단편적인 발달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269
 
--> 알 수가 없다면, 천재로 대우하고 보는 편이 득이다. 사실 융도 천재다. 천재인 동시에, 유별났다. 그의 성장 과정은 정상적이지 못하다. 그가 우울의 미로를 빠져나와서, 천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의문이다. 그것은 운이었을까? 만약 운이 따르지 못했다면, 혹은 조금이라도 핀트가 어긋났다면 오늘날의 융은 없었을 것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사람들은 자신 보다 재능이 있는 사람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감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천재라도 약점이 있다면, 약점에 집중한다. 천재 당사자에게도 슬픈일이고, 인류에는 큰 손실이다. 천재성은 혼자서는 키워나가기 어렵다. 천재에게는 재능과 동시에 운도 필요하다. 알에서 깨어난 거북이가 바다에 도달해서, 생존하는 확률과 같을 것이다. 
 
37. 그 세계는 삶의 진실을 소위 명료한 개념들로 은폐하려고 한다. 개념적인 것으로 옮기는 것은 체험으로부터 실체를 빼앗고 그 대신 단지 이름들만 붙이는 셈이다. 이제는 진실의 자리에 이름들만 들어서게 된다. 개념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바라는 안락함이다. 체험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보호해주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영혼은 개념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사실들 가운데 깃들어 있다. 말만 그럴듯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과정이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271
 
--> 체험을 중시하는 융의 견해가 한번 더 나왔다. 융은 말 많은 호사가를 싫어하는 듯하다. 그 역시 말보다, 행동으로 증명하는 스타일이다. 정보가 범람하다보니 융이 우려할만한 일이 퍼지고 있다. 좀 더 정보를 축약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개념화하고 명료하게 다듬어야 한다. 문제는 정보를 분석하고, 조직화하고, 개념을 추출하는 과정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런 개념화 작업이 행동을 대치할 때, 사실과 행위는 없다. 공허한 텍스트만 하나 더 늘어났을 뿐이다. 
 
38. 식물이 가능한 한 자라나려 하고 동물이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꿈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생명의 형태들은 우리의 눈을 속이려고 하지 않으나, 우리 자신이 근시안이어서 스스로를 속일지도 모른다. 300
 
--> 융은 어린시절 시시콜콜한 기억까지 기술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 버리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들의 중요성에 대해서 역설한다. 꿈과 무의식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알고, 풍요로운 삶을 살 것이다. 박지성이 수학 때문에 머리를 쥐고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축구를 했기에 박지성이 되었다. 구글은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들은 사용자의 검색 패턴을 분석하고 연구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빠르게 실행에 옮겼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알았고, 그것을 만들 줄도 알았다. 나는 어떻게 나의 길을 찾아가야 할까? 알아도 어떻게 행동에 옮겨야 할까? 생각없이 달려들면, 나에게도 은총이 있을까?
 
39. 내 마음속 목소리의 주인공이던 그 여자환자는 현실에서는 남자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녀는 내 동료 중 한 사람에게 그가 오해받는 예술가라고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그 말을 믿고 좌절했다. 그가 좌절한 원인은? 그는 자신의 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의 평가에 의해 살았다. 이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로 인하여 그는 확신이 흔들렸고 아니마의 속삭임에 마음을 열어놓고 말았다. 아니마의 말은 대개 유혹하는 힘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교활함을 지니고 있다. 342
 
--> 나는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갈피를 잡기 어렵다.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분명하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발달하지 못했다. 스스로를 평가하는 눈이 없다면, 타인의 시선에 우왕좌왕 될 것이다.
 
40. 나는 심사숙고한 끝에 학문적 출세의 길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무의식과의 실험이 끝나기까지는 내가 공중 앞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었다. 뭔가 엄청난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충만히 채울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나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이 책에서 백미의 문장이다.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기는 장면이다. 예전 여행사 사장님이 생각난다. 그는 90년대 초반, 여행업에서 억대 연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사업을 하고자 포기하고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비전대로 한국 제일의 여행사를 만들었다. 코스닥에도 여행사 최초로 상장시켰다. 융과 여행사 사장님의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이미 자신의 자리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정상을 올라가야, 어디로 가야할 지 보인다. 그것은 신나는 일일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말했다. 올라가면, 골라 내려올 수 있다. 나는 지금 이 자리, 외식업에서 최고가 되자.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내려오자.
 
41. 내가 대학교수가 되든 안 되든 그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교수직을 버린다는 것은 물론 괴로운 일이었다. 숙명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까지 있었다.나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들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점을 여러 면에서 후회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감정은 지나가는 것이었고, 실은 하찮은 것이었다. 이에 반해 다른 것이 중요한 법이다.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이런 일은 내가 학문적 출세를 포기했을 때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늘 겪어왔다.
 
-->포기하는 용기는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에는 역시 상실감이 따른다. 융은 그 감정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42. 결국 나는 그 문헌을 철저하게 공부해보기로 결심했다. 이듬해 겨울에 그 작업을 시작했는데, 나는 그 문헌들을 읽는 일에 곧 흥미를 붙였고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물론 그 문헌의 내용은 여전히 명백한 헛소리로 여겨졌으나, 여기저기에 의미있는 듯이 보이는 것들이 있었고 때로는 내가 이해할 수 있다고 느끼는 문장도 몇 군데 발견되었다. 371
 
--> 연금술에서 자신의 연구와 상통하는 부분을 발견하는 대목이다. 홀로 외딴섬에서 연구해왔는데, 연금술을 발견해서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의 연구가 든든한 토대를 가지게 된다.
 
43. 나의 생애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397
 
--> 융의 업적은 차치하고, 난 이 부분이 마음에 닿는다. 아니, 내 인생의 모토로 삼고 싶다. 행동과 행위, 결과물, 성과 만이 그 사람의 존재를 만든다는 것.
 
44. 나는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특히 연구 초기에는 완전히 외톨이가 된 느낌을 자주 받았다.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의식세계에 대한 보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397
 
-->융은 또한 건강하고, 진실되기 위한 용기가 있었다. 그는 마음이 따르는 대로 움직였지만, 생각해서 결론이 나면 이성적으로 행동했다.
 
45. 나의 딸은 그 시체가 거기 있다는 것을 감지했던 것이다. 그녀의 감지능력은 내 외가쪽 할머니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다.414
 
--> 외식업에 종사하는 나도, 비슷한 감지능력이 있다. 손님을 알아보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은 사람을 많이 접할수록 더 다듬어진다. 양아치 같은 사람, 똘아이 같은 사람, 얌전한 사람, 태클을 걸 것 같은 사람의 구분이 점점 명확해진다. 나의 이런 인식이 넓어짐에 따라서, 나에게도 어떤 아우라가 생기는 것 같다. 장사 초기 보다, 트집 잡는 손님이 현저히 줄었다. 이상한 것은, 내가 가게를 비우면 사고가 터지는 것이다. 돈을 안내고 도망 가거나, 미성년자가 몰래 술을 가지고 오는 일도 있다.
 
46. 나는 부모나 조부모, 그리고 더 먼 조상들이 완성하지 못하거나 해결하지 못한 채 남겨놓은 일들과 문제들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아주 강하게 느낀다. 417
 
--> 결혼을 하기 전에는 아버지와 나의 공통점을 알지 못햇다. 아버지는 나를 비교하는 개념이 없었다.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자, 아버지와 나를 잇는 직선의 연장성이 생긴 것이다. 자연스럽게 가문의 비밀이 드러났다.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는 놀랍게도 우리 가족, 삼촌과 삼촌의 자식들도 공유하고 있었다.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 다윈 방식대로 생각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우리 가족은 퇴화할 것이다.
 
47. '모든 성급함은 마귀에서 나온다'
 
--> 뜨끔하다. 난 속도에 집착한다. 줄곧 서비스업에 종사한 이유도 있다. 손님은 한결같이 '지금 여기'를 원한다. 문제는 그런 속도를 제어하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때문에 다쳤는가? 
 
48. 내가 이 일화를 언급하는 것은 얼마나 미묘한 방식으로 원형이 우리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우리 세명의 남자가 그렇게 모인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 우리 가게 종업원도 나를 포함 4명이다. 난 이 사실이 자랑스럽다. 처음에는 8명 정도였던 것 같다. 인원수가 왔다갔다 하면서, 자연스럽게 4명이 되었다. 우선, 규모 대비 인건비가 적게 들어서 경영을 잘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음식점은 딱 4명이 좋은 것 같다. 패가 갈리지도 않고, 서로 움직이기에 부대끼지도 않는다.
 
49. 그들의 지혜는 그들에게 속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만이 나에게 속할 뿐이다. 더군다나 유럽에서 나는 동양으로부터 아무것도 차용할 수가 없다. 오직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하고, 나의 내면이 말하는 것이거나 본성이 내게 가져다주는 것으로 살아야 한다.
 
--> 자신의 강점을 살겠다는 의지다. 배워서 습득한 것이 아니라, 원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말로 이야기하면, '전용성 소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정리하고,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따로 훈련할 필요가 없다.
 
50. '나'는 나의 역사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참으로 나라는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성취된 것과 지금까지 있었던 것의 그와 같은 묶음이다' 이런 체험은 나에게 극도의 결핍감을 안겨주면서도 동시에 커다란 만족을 주었다. 내가 요구하거나 원하는 것은 더이상 없었다. 516
 
--> 불가에서는, 내가 생각하고, 행하고, 먹는 것이 곧 '나'라고 했다. 더도 덜도 아닌, 딱 내가 행한만큼만 내것이다. 사회생활에서는 사기를 당할 수도 있지만, 좀더 먼 시야로 본다면 내가 행한 몫은 반드시 나에게 온다. 융은, 더도 덜도 아니고, 정확히 내가 행한 만큼만 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결핍과 만족을 동시에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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