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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일 10시 19분 등록

서양철학사 [11-1 심층 Review]  

1) 버트런드 아서 윌리엄 러셀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 1872.5.18~1970.2.2) 

"처음에는 작고 좁은 둑 사이를 흘러가고, 세차게 바위에 부딪쳐,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그 사이에 차차 강폭은 넓어지고, 마침내 바다로 흘러들어감으로써 아무 고통도 없이 개인적 존재를 소멸시키게 된다. 노인이 되어 인생을 이렇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죽음의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 서양의 지혜 /철학이란 무엇인가 - 

영국의 논리학자, 철학자, 수학자, 사회사상가로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사람으로로 철학, 수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할 정도로 왕성한 지식욕을 가진 인물이었다.  

철학자로서의 그의 업적은 특히 이론철학에서 두드러지고 있다.그는 무어, 비트겐슈타인 등과 더불어 케임브리지 학파의 일원으로 19세기 말부터 영국에서 유력한 학설이었던 관념론에 대한 실재론을 주장했었다. 하지만 그는 곧 헤겔학파, A.마이농 등 당대의 철학 흐름 변화를 따라 자신의 사상을 조금씩 발전시켰으며 신실재론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는 인식론과 존재론을 사상의 소재로 활용했으며 영국 고유의 경험론을 그 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의 사상은 빈학파나 논리적 실증주의를 중시하는 철학자 및 논리학자에게 자극을 주게 된다. 논리학자로서의 러셀은 프레게의 업적을 계승했으며, 페아노와 쿠츨러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며 데데킨트와 칸토어 등의 현대수학의 성과를 근거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을 집대성했다. 

현실 사회에 대한 진솔한 관심과 스스로가 자유로운 무정부주의, 좌파, 회의적 무신론적 기질이라고 불렀던 그의 성향은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평화주의자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핵 무장 반대자로서 사회변혁운동에서 일관성 있게 표현되었으며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1979년 웨일즈에서 사망할 때까지 문필가, 철학자, 무정부주의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같은 수(數)의 절대성을 찾았던 러셀. 그는 11세 때 이미 종교에 대해 회의했다. 수학의 확실성을 접하고 기뻐했으나 기하학의 공리(公理)가 증명할 수는 없고 다만 믿어야만 한다는 데 좌절했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확실성이나 불확실성을 가지고서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러셀은 다방면에 업적을 남겼다. 그는 스승인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원리’를 썼고 제자인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집필을 이끌었다. 대중적인 에세이스트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나는 머리가 가장 잘 움직일 때 수학을 했고, 조금 나빠지면서 철학을, 그리고 더 나빠져서는 역사와 사회분야에 손을 댔다. 그리고 아주 나빠지기 전에 교육문제에도 눈을 돌렸다.”  

러셀은 무정부주의자였다. 불가지론자였다. 회의론적 무신론자였다. 좌파였으나 소비에트 체제를 혐오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 공산주의 등 세계의 모든 ‘종교’는 진실이 아닐뿐더러 인류에 해로운 것들이다.” 그리고 그는 성(性) 개방론자였다. ‘가장 음탕한 사회에서 금욕주의가 싹튼다.’   

서구의 현대사에서 그는 진정한 개인(個人)이었다. “우리들은 각자의 내면에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예술가를 한 명씩 가두어 놓고 있다. 부디 그 예술가가 환희와 행복의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그를 기꺼이 석방하기를!”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를 이렇게 회고한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외계의 지식』,『철학이란 무엇인가』,『서양 철학사』,『사회개조의 제원리』, 『심리분석』, 『서양철학사』, 『물질의 분석』, 『의미와 진실의 탐구』, 『수리철학 서설』 등이 있으며, 특히 1950년에는 『철학에 있어서의 과학적 방법』, 『자유와 조직』, 『권위와 개인』 등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2. 내 마음에 들어오는 글 

옮긴이 서문
(p6) 그에게 철학이란 진리추구의 열정을 품고 기존의 모든 지식을 비판하는 활동이었으며 분석적 방법을 통해 명료하고 확실한 지식을 얻고자 노력하는 여정이었다.   

(p7) 근대 철학은 종교의 권위를 거부하고 과학의 권위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교회의 권위에서 해방되면서 개인주의가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무정부주의까지 출현했다.  

(p8) 철학하는 사람은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갑자기 깨닫는 순간에 지적 희열을 느낀다. 철학의 독창성은 기존의 사고방식과 다른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사물을 통찰하는 데서 나온다.  

지은이 서문
(p10) 철학은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으며, 나는 바로 이 부분을 고찰하려 애썼다. 이러한 관점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서론

(p17)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전통을 따르든 계시를 따르든 권위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자리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 무인지대가 바로 철학의 세계이다.

⇒ 철학은 진리 그 자체를 사랑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것,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뜻한다고 많은 철학서들은 얘기한다. 그러나 러셀은 좀 더 분명한 개념을 주장한다. 신학과 과학의 무인지대...좋은 표현이다.  
 

(p18) 인간이란 천문학자의 눈에 보이듯이 작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행성 위로 무력하게 기어 다니는 불순물이 섞인 탄소와 물로 구성된 조그마한 덩어리에 불과한가? 그렇지 않으면 [햄릿]에 등장하는 고뇌에 찬 존재인가? / 신학 분야에서는 이 모든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주겠다고 공언했으나, 바로 이 명확성이야말로 근대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이 의혹을 품게 된 원인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서, 인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논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노릇이다.‘나는 누구인가?’라는 마음속 의문을 지우지 못하며 광화문을 지나가는데, 교보문고 빌딩에 걸린 글귀를 읽는 순간, 어찌나 반가운지.... ‘네 곁에 있는 사람들,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고 있는 책들이 너를 말해준다.’   

(p18) 한 시대와 한 민족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각각에 속한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철학을 거의 결정하며, 거꾸로 사람들이 형성한 철학이 환경을 거의 결정한다.  

(p19) 생생한 희망과 두려움 속에서 불확실한 문제에 직면할 때는 누구나 고통을 느끼지만, 만약 마음이 편해지도록 위로나 주는 동화에 의지해 살고 싶지 않다면 그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철학이 제기하는 질문을 망각해서도 안 되고, 철학적 질문에 대해 의심할 수 없는 답변을 찾았다고 자신을 설득해서도 안 된다. 확실한 진리는 없다고 주저하며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지 않고 의연히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 철학 연구자를 위해 철학이 지금도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p22) 모든 군대가 왕들 편에 섰는데도 교회는 마침내 승리했다. 교회가 승리한 이유는, 일부 교회 성직자들이 교육을 거의 독점했기 때문이고, 일부는 왕들이 끊임없이 서로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된 이유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지배자와 민중이 다 같이 교회가 바로 천국의 문을 여는 힘을 가졌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왕이 영원한 시간을 천국에서 보내야 할지, 지옥에서 보내야 할지를 결정하기도 했다. 교회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속에서 질서를 상징하는 대표 조직이었으므로, 떠오르는 신흥 상인 계급의 지지를 얻어 승리를 거두었다. 중세의 공인된 철학은 시대를 비추는 정확한 거울이 아니라, 한쪽의 생각만 비추었을 뿐이다.  

(p24) 사람을 지도할 원칙이 없어지면 정치는 적나라한 권력 투쟁으로 변모한다.  

(p25) 가톨릭 교회는 세 가지 근원에서 유래한다. 성스러운 역사는 유대교에서, 신학은 그리스 사상에서, 지배 방식과 교회법은 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로마 법제에서 유래한다..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신의 계시는 성서에서 끝나지 않고 교회를 매개로 대대손손 이어지며, 교회의 가르침에 복종할 의무를 개인에게 부여했다. 이와 반대로 개신교도는 교회가 계시의 매개자라는 설을 거부했다. 진리는 오로지 성서 속에서 찾아야 하며, 저마다 단독으로 성서를 해석해도 되었다.   

(p27) 어떤 종류이든 격렬한 정열이라면 예찬하고 숭배하는 바이런의 경향이 발전했다.   

제 1권 고대철학  

제 1부 소크라테스 이전  

(p35) 철학은 탈레스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철학과 과학은 원래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기원전 6세기 초에 동시에 탄생했다.
⇒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며, 모든 사물은 물에서 생겨 다시 물로 돌아간다고 했다. 물은 생명체에게 필수적인 요소이고, 인간의 몸 또한 70 %를 물이 차지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참으로 재미없게 철학을 가르쳤던 선생님이 생각난다. 철학을 좀 더 재미있게 알려 주셨더라면, 지금 내 삶의 궤적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싶다. 배움의 즐거움이라는 것...  

(p36) 땅은 여성이고 태양은 남성이다. 황소는 흔히 남성 생식력의 화신으로서, 황소신은 흔히 서민들이 숭배하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p37) 신이나 여신은 국가와 결합하면서 풍자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를 보장해 주는 존재가 되었다.   

(p43) 원시종교는 어느 곳에서나 개인보다 종족이나 부족을 위해 생겨났다. 일정한 종교의식은 공감에 의한 마술적 힘을 불러 일으켜 부족의 이익을 증진하려는 의도로 거행되었다.종교의식은 엄청난 집단적 흥분상태를 흔히 불러왔는데, 그 안에서 개인은 분리된 개체 의식을 상실하고 스스로 전체 부족과 하나라는 일체감을 느꼈다. 전 세계 어느 종교이든 특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면 동물이나 인간을 희생 제물로 바쳤으며, 종교 의식의 전례에 따라 죽이고 제물로 바친 고기를 먹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종교는 발생한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p48) 디오니소스 숭배가 그리스에서 성행한 현상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명히 급속히 발전한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인들, 적어도 특정 부류 그리스인은 원시성을 갈망하고, 당대의 도덕이 허용하는 수준 이상으로 본능에 충실한 더욱 정열적인 삶의 방식을 동경했다.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주로 사려 predence, 좀 더 의미가 넓은 용어를 쓰자면 예상 forethought 이다. 문명인은 장래의 쾌락을 위해, 설령 장래의 쾌락이 꽤 먼 미래에 주어질지라도 현재의 고통을 기꺼이 참아낸다.   

(p49) 진정한 의미의 예상은, 충동과 아무 상관 없이 이성이 장래의 어느 날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경우에만 일어난다. 사냥은 현재의 쾌락을 즐기려는 것이므로 예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경작은 노동인데, 자연적 충동에 따라서는 경작을 할 수가 없다.   

(p50) 사상의 영역에서 문명이란 대체로 과학과 동의어이다. 그러나 순수 과학만으로 문명을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는데, 인간에게는 열정을 비롯해 예술과 종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p53) 죽은 자의 영혼이 마시면 안 되는 샘물은 망각을 일으키는 레테 Lethe 의 강물이다. 다른 샘물은 므네모시네 Mnemosyne 즉 기억의 강물이다.  
⇒ 기억의 강물...난 이런 단어를 만나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인간의 수많은 뇌회로와 회로마다 켜켜히 쌓인 기억들,,그 기억들이 노래처럼 흘러가는 느낌..강물...이런 단어와 장면이 떠오르면 노래로 만들고 싶어진다. 

 (p54)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은 감탄할 정도로 침착성과 마음의 평정을 보여주며, 침착성을 유지한 채 격정을 바깥에서 관조할 수 있기에 격정이 드러낸 아름다움을 알아채면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여 올림포스의 신과 같은 지위에 이르기도 했다.  

(p55) 바쿠스 무녀들이 추는 춤은 격렬한 감정을 발산하기 위한 몸짓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문명생활의 부담과 보호에서 벗어나 인간 이외의 아름다운 것들이 넘실대는 세계로, 바람과 별의 자유로움 속으로 탈출하려는 춤이었다.  

(p57) 그리스인들은 전부는 아니었지만 대부분 정열적이고 불행했으며, 지성이 인도한 길과 열정이 인도한 길에 내몰려 자신과 싸우고, 천국을 생각하는 상상력과 지옥을 만들어내는 고집 센 자기주장으로 갈등과 분열을 겪었다. 그들에게는 “어떤 일도 너무 지나치지 않게 하라”는 격언이 있었다. 사실 그리스 문화를 지배한 두 가지 경향이 있었다. 하나는 열정을 중시하고 종교에 몰입하며 신비를 표방하고 내세를 믿는 경향이다. 다른 하나는 명랑하고 경험을 중시하며 합리주의를 내세우는 다양한 사실에 대해 지식을 획득하려는 경향이다.  

(p61) 철학은 만물이 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 탈레스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언급한다. 

(p63)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탈레스는 물이 근본 물질이며 물에서 만물이 형성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땅이 물 위에 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탈레스는 자석이 철을 움직이기 때문에 자석 안에 영혼이 있으며, 만물에 신들이 깃들여 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 탈레스의 과학과 철학은 모두 투박하고 불완전하지만, 그 자체로 사상의 형성과 관찰을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

⇒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지만, 과연 그 당시에 저 정도의 관찰과 논리적인 합리성의 확보가 가능했을까?   

(p66) 그는 제일 실체가 공기라고 했다. 영혼은 공기이며, 불은 희박해진 공기이다. 그는 지구가 둥근 탁자 모양이고, 공기가 만물을 에워싼다고 생각했다. “공기로 이루어진 우리의 영혼이 우리를 결합시키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숨과 공기가 전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  

(p72) 경험만을 믿는 철학자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에 매달리는 노예로 전락하기도 하지만, 순수한 수학자는 음악가처럼 질서정연한 미의 세계를 창조하는 자유로운 존재에 가깝다.

⇒ 아...러셀...멋진 표현이다.  

(p73) 우리는 이 세상에 다니러 온 손님이고 육체는 영혼의 무덤이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 인간이 있는데, 바로 올림픽 경기에 모인 세 종류의 사람들이다. 가장 낮은 계급은 물건을 사고팔기 이해 모인 사람들이며, 그 위의 계급은 경기 참가자들이다. 가장 높은 계급은 단지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다.   

(p75) 피타고라스는 “만물은 수이다”라고 말했다. 이 진술은 현대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논리적으로 무의미하지만, 그가 말한 바를 정확히 알아보면 무의미하지 않다. 그는 음악에서 수가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발견했으며, 음악과 수학 사이에 확립된 관계는 수학의 전문 용어인 ‘조화평균 harmonic mean' 이나 ’조화수열 harmonic progression' 로 살아남아 사용된다.   

(p77) 나는 수학이 초감각적인 지성계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영원하고 정확한 진리에 대한 믿음을 발생시킨 주요 원천이라 생각한다.  

(p83) 인류를 경멸한 헤라클레이토스는 오로지 강제력을 동원해야만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을 위해 행동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전쟁을 좋게 여기며 이렇게 말한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요 만물의 제왕으로, 어떤 존재는 신이 되게 하고 어떤 존재는 인간이 되게 하며, 어떤 자는 노예가 되게 하고 어떤 자는 자유민이 되게 한다.”  

(p84) 헤라클로이토스의 윤리는 일종의 거만한 금욕주의로서 니체의 윤리와 매우 흡사하다. 그는 영혼이란 불과 물이 혼합된 존재이며, 불은 고귀하고 물은 비천하다고 생각한다. “마르고 밝은 영혼은 가장 지혜롭고 가장 선한 영혼이다.” ‘영혼이 젖으면 쾌락을 느낀다.“  

(p87)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똑같은 길이다.” “신은 낮이자 밤이며, 겨울이자 여름이며, 전쟁이자 평화이며, 배부름이자 굶주림이다. 그런데 신은, 불이 향료와 섞일 때 제각기 내는 향료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듯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p88) 당신이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까닭은 늘 새로운 강물이 당신에게 흘러들기 때문이다. 태양은 날마다 새로워진다. 인간을 철학으로 이끄는 깊은 본능 가운데 하나가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은 당연히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나 위험을 피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는 불운이 겹치는 격변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 더욱 열정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p89) 시인들은 사랑하는 것들을 모조리 휩쓸어가는 시간의 힘을 한탄했다.   

(p93)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의 가르침을 두 부문으로 나누어,‘진리를 따르는 길’과 ‘의견을 따르는 길’이라 한다.  

(p100) 엠페도클레스는 공기가 분리된 실체 substance 임을 발견함으로써 과학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양동이나 비슷한 그릇을 물속에 엎어서 집어넣으면 그릇 안에 물이 꽉 들어차지 않는다는 사실을 관찰했고, 이를 바탕으로 공기가 분리된 실체임을 증명했다.

⇒ 철학자들의 관찰의 힘은 놀랍다. 결과는 맞을 수도 있고, 틀리 수도 있지만, 그들은 생각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삼라만상에 대한 호기심은 현대인은 결코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  

(p101) 흙,공기,불,물을 4원소로 확립한 사람이 바로 엠페도클레스이다.  

(p108) 아테네는 단지 위대한 두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이름을 남김으로써 철학에 이바지했다.  

(p111) 아난사고라스는 선대 철학자들과 달리 정신nous 이 생물의 일부로 들어가 죽은 물질과 구별시켜주는 실체라 생각했다. 그는 모든 것에는 정신을 제외한 모든 원소의 일부가 들어 있으며 어떤 것에는 정신도 들어 있다고 했다.  

(p116) 데모크리토스는 무한한 공간에는 위도 아래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영혼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운동을 바람이 없을 때 햇빛 속에 떠다니는 티끌의 운동에 비유했다.  

(p124) 데모크리토스는 철저한 유물론자였다. 그는 유쾌함을 인생의 목표로 생각하여, 온화한 마음가짐과 지적 활동을 목표에 이르는 최선의 수단으로 여겼다. 그는 폭력과 정념이 관련되면 전부 혐오했다.  

(p125) 그들은 상상력이 넘치고 원기왕성했으며 지적 모험에서 얻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그들은 일식과 월식, 물고기, 회오리바람, 종교, 도덕 등 모든 것에 흥미를 느꼈으며, 날카로운 지성과 아울러 아이들 같은 호기심도 지녔다.

⇒ 공부하는 것이, 아주‘호화스러운 사치’에 해당된다는 어떤 책 구절이 생각난다.

(p128) 아테네가 미국 사회보다 덜 편협해 보이는 한 가지 점은, 불경하다거나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기소된 자에게도 자신을 변호하고 항변할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p131) 프로타고라스는 성년기 삶을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를 두루 돌며 일종의 정신 강의 여행을 하며 보냈는데,“실제 생활에 필요한 능력을 기르고 수준 높은 정신훈련을 받고 싶어하는 자라면 누구든” 수업료를 받고 가르쳤다. / 그들은 논쟁술이나 논쟁술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가르쳤다. 대체로 말하면, 그들은 오늘날의 변호사들처럼 어떤 의견에 대해서든 찬성하거나 반대하며 논증하는 방법을 보여 줄 채비는 갖추었으나, 자신들이 이끌어 내 결론을 실제로 지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철학을 삶의 방식으로서 종교와 밀접하게 연관시킨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충격을 안겨주었을 터였다. 그들에게 소피스트들은 경박하고 부도덕한 자들로 보였다.   

제 2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p139) 나는 철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보다는 차라리 철학자들 가운데 나를 가장 호되게 비판하는 철학자가 내 사상을 전달해주기를 바란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구두를 수선하고 싶다면 누구를 고용해야 하는가?” 라는 식으로 질문한다. 마지막으로 “국가라는 배는 누가 고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p141) 소크라테스는 “사악한 자이며 땅 아래에 있는 것과 하늘 위에 있는 것을 탐구하는 괴상한 사람이고, 나쁜 명분을 좋은 명분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에 능한 데다 그런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까지 한다” 는 고소장에 따라 기소되었다.

⇒ 괴상한 사람...모든 것을 탐구하는 사람을 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재미있다.   

(p143) “그때 나는 시인들이 지혜가 아니라 비범한 재능과 영감으로 시를 쓴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p145) 나를 죽이게 되면 나를 해치는 것보다 여러분 자신을 더 많이 해치게 된다는 점을 아셨으면 합니다.  

(p146) 만약 여러분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으로 어떤 이가 여러분의 악한 생활을 꾸짖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지요. 그건 악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적절한 방법도 아니고 명예로운 방법도 아닙니다. 가장 쉬우면서 가장 고결한 방법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빼앗고 해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p147) 그는 자기확신에 찬 고매한 품성을 갖추었고, 세속적인 성공에는 무관심하며, 신의 음성에 인도받는다고 믿고, 명료한 사고야말로 올바른 삶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설득하는 사람이다. 

(p149) 그는 영혼의 힘으로 신체를 완벽하게 제어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 죽음에 무관심하고 냉정한 태도를 보이며, 영혼의 제어능력을 최후로 입증한 사람이다.  

(p154) 스파르타의 시민은 오로지 전쟁과 관련된 일을 할 뿐이며, 태어나면서부터 훈련을 받아야 했다.훈련의 목적은 강인하고 고통에 무심하며 훈육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문화교육이나 과학교육을 가치 없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교육의 목표는 국가에 완벽하게 헌신하는 훌륭한 군인을 배출하는 일이었을 따름이다.  

(p163) “다른 남자의 아내를 사랑하는 정직한 남자가 남편에게 그 여자와 동침하고 싶다고 간청하는 것도, 그가 비옥한 땅을 갈아 잘생긴 자식의 씨를 집 밖으로 퍼뜨리는 일도 법률에 저촉되지 않았다.”

⇒ 러셀은 이것이 농부들이 가축들에 적용하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자식이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공복리를 위해 공동의 소유가 되는 쪽을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건강하면 양육을 시키고, 건강하지 않으면 깊은 물 구덩이에 던져버렸다는 것...생명존중을 실천하는 가톨릭정신으로 볼 때,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이것이 철학의 차이인가?   

(p166) 플라톤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는 다섯 가지이다. 첫째는 이상향 Utopia 으로서, 기나긴 역사 속에 등장한 최초의 형태에 속한다. 둘째는 이상 이론 theory of ideas 으로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보편자 문제를 다룬 선구적 시돌 평가된다. 셋째는 영혼 불멸을 지지하는 논증이고, 넷째는 우주론이며, 다섯째는 지각이 아닌 상기로 간주되는 지식 개념이다.   

(p168) 플라톤의 원리에 따라 유능한 통치자를 기르기 위해서는 교육을 많이 해야 한다. 대부분의 그리스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지혜를 얻으려면 여유가 필수 요소라는 견해를 지지했다.  

(p173) 신체 훈련은 매우 엄격하게 실시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생선과 육류를 구운 요리가 아니라면 먹지 말아야 하고, 양념이나 사탕 과자류도 먹어서는 안 된다. 플라톤은 자신이 제안한 섭생법을 지키며 성장한 이상 국가 주민들에게 의사는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p174) 부와 가난은 둘 다 해롭기 때문에 플라톤의 이상 국가에는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p175) 공산주의가 추구하는 이점은 사적인 소유 감정이 아주 약해지게 함으로써, 사유 재산제 폐지의 묵인이나 공공 정신에 따른 지배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한다는 데 있다. 성직자 계급을 독신 생활로 이끈 동기도 대체로 이와 유사했다.

⇒ 가톨릭 교회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 중 하나는 ‘제도’다. 사제가 독신생활을 하게 하고, 몇 년에 한번씩 성당을 옮겨다니도록 제도화하는 것 등은 가톨릭이 성장하게 한 큰 장점이었다. 개인적인 부패의 고리를 방지하는 역할일 것이다.   

(p176) 플라톤은 두 세대가 지나면 신화에 대한 신앙이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에서 옳았다.   

(p180) “정의란 강자의 이익 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선언한다.  

(p185) 철학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그런데 철학자는 탐구심이 강한 사람이 지식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다. 통속적인 호기심 만으로 철학자가 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철학자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고친다. 철학자는 ‘진리를 통찰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p188) 플라톤에게 철학은 일종의 통찰, 곧‘진리통찰’이다. 철학은 순수 지성의 활동만이 아니다. 철학은 지혜일 뿐만 아니라 지혜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며, 이러한 사유와 감정의 친밀한 합일은 스피노자가 말한 ‘신에 대한 지적 사랑’과 거의 같다. 어떤 종류이든 창작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정도가 크든 작은 오래 애쓴 끝에 진리나 아름다운 형체가 한순간 눈부시게 훤히 나타나거나 나타나는 듯이 보이는 체험을 한다. 그저 사소한 일에서 시작해 체험하는 수도 있고, 우주를 바라보며 체험하기도 한다.   

(p189) 어떤 종류이든 창작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정도가 크든 작든 오래 애쓴 끝에 진리나 아름다운 형체가 한순간 눈부시게 훤히 나타나거나 나타나는 듯이 보이는 체험을 한다. 그저 사소한 일에서 시작해 체험하는 수도 있고, 우주를 바라보며 체험하기도 한다. 순간의 체험은 너무 확실해서 나중에 의혹이 생기더라도 그 순간의 확실한 느낌은 그대로 남는다.   

나로서는 어떤 주제로 책을 쓰고 싶으면 우선 주제와 관련된 다른 내용들 하나하나에 친숙해질 때까지 세부 사항을 차근차근 알아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운이 좋은 각각 다른 내용이 서로 알맞게 연결되면서 전체 윤곽을 파악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파악한 내용을 적어 내려갈 따름이다. 꼭 닮은 비유를 들자면, 우선 안개 속에서 산책로와 산등성이와 산골짜기에 따로따로 익숙해질 때까지 구석구석 산을 돌아다녀보고 나서, 멀리서 밝은 햇빛에 드러난 산 전체를 보는 체험과 같다.

⇒ 러셀의 표현력이 절묘하다. 특히 창작의 순간에 대한 체험묘사나 산 전체를 바라보는 체험에 대한 비유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라 그럴까!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다.   

(p191) 철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앞만 보도록 사슬에 묶인 채, 뒤쪽에서 모닥불이 비쳐 앞에 가로놓인 벽에 그림자가 생기는 동굴 속에 갇힌 죄수들에 비유된다.   

(p202) “인간이란 문을 열고 도망칠 권리조차 없는 죄수라는 설이 은밀하게 퍼져 있지.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무척이나 신비스런 교의라네.”소크테스가 죽음을 앞두고도 비탄에 빠지지 않는 까닭은 다음과 같이 확신하기 때문이다.“우선 나는, 지혜롭고 선한 다른 신들에게로 간다고 확신합니다. 둘째, 내가 죽은 뒤에 남은 사람들보다 더 선한,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로 간다고 확신합니다. 나는 죽은 자들을 위한 무엇, 악한 자들보다는 선한 자들을 위해 훨씬 더 나은 것이 존재하리라는 선한 희망을 품고 있지요.”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 그의 확신은 절대적이다. 확실히 그는 영혼의 힘으로 육체를 제어한 사람이라고 말할 만하다. 선한 희망, 희망에도 급이 있는 것일까?   

(p203) 그는 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술 마시며 얻는 쾌락을 비난했다. 철학자는 사랑의 쾌락이나 값비싼 의복이나 신발, 사람을 치장하는 장신구에 대해 걱정해서도 안 된다. 철학자는 육체에 관심을 갖지 말고 한결같이 영혼만을 돌보아야 한다. “철학자는 가능한 한 육체에서 멀어지고 영혼으로 돌아가고 싶어할 것이 다.” 

(p206) 플라톤에게 이중으로 악한, 망원경을 통하듯 희미하게 보이도록 사물을 왜곡하는 매체인 동시에 지식 추구와 진리 통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욕의 근원이다.

육체는 우리를 사랑, 정욕, 공포, 온갖 공상으로 가득 채우고 어리석은 짓을 끝없이 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아예 빼앗아버리기도 한다네. 전쟁,투쟁,당쟁은 왜 일어나는가? 육체나 육체의 정욕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생기겠는가? 돈은 육체를 위해, 육체를 돌보기 위해 필요하지.  

(p210) 진정한 철학자의 영혼은 사는 동안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맛보고, 죽은 다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떠나 신들과 더불어 천국의 기쁨을 누리려 할 것이다.  

(p212) 그를 보면 점잔빼고 겉으로만 감동을 주는 나쁜 성직자의 전형이 떠오르기도 한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앞두고 보여준 용기는 신들의 회합에 합류하여 영원한 천국의 기쁨을 누리리라고 믿지 않았더라면 더욱 비범해 보였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전의 몇몇 철학자들과 달리 사고가 과학적이지 않고 우주가 자신의 윤리적 기준과 일치한다고 증명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이것은 진리를 배반하는 태도이며, 철학자가 저지르는 가장 큰 죄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한 인간으로서 성인들의 성찬에 참석하도록 허락받았다고 믿을 수도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로서 학자들이 가는 연옥에 오래 머물러야 마땅하다.

⇒ 러셀의 단호한 성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진리를 배반하는 철학자의 가장 큰 죄를 지적하면서도, 학자들이 가는 연옥에 오래 머물러야 마땅하다는 유머스러운 표현까지, 참 매력적인 인물이다.  

(p216) 티마이오스의 말에 따르면, 조물주는 별마다 영혼을 하나씩 만드어주었다. 영혼들은 감각하고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분노할 줄 안다. 조물주는 어떤 영혼들은 지구에 이르게 하고,어떤 영혼들은 달에 이르게 하고, 어떤 영혼들은 다른 행성이나 별들에 이르게 하고 나서, 영혼들에게 제각기 맞는 육체를 빚으라고 신들에게 명했다.  

(p223) 그는 예컨대 의사가 내 병의 경과를 예견할 때,그는 현실적으로 내 미래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안다고 역설한다.   

(p236)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상식으로 희석된 플라톤 사상이라고 묘사해도 괜찮다.  

(p244) 아리스토렐레스에 따르면 원인에는 네 종류가 있는데, 각각 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이라 불렀다. 조각상을 조각하는 사람의 예를 들어보자. 조각상의 질료인은 대리석이고, 형상인은 제작될 조각상의 본질이며, 작용인은 대리석을 끌로 쪼는 행동이고, 목적인은 조각가가 마음에 떠올린 목적이다.  

(p247) 관조란 충분히 도달하기는 힘들지만 인간이 완전히 행복한 상태이다. “이렇게 관조하는 삶은 인간이 도달하기에는 너무 높은 수준이리라. 왜냐하면 관조하는 삶은 그렇게 살려는 자가 인간인 한에서가 아니라 인간 속에 신성한 면이 있는 한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p251) 좋은 결혼 관계에서 “남자는 그의 가치에 따라 남자가 해야 하는 일들을 지배해야 하지만, 여자에게 어울리는 일들은 아내에게 맡겨야 한다”남편은 아내의 영역까지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된다.   

(p254) 위대한 시인이나 위대한 작곡가나 위대한 화가가 된 사람에게 어떤 장점이 있겠지만, 그것은 도덕적 장점이 아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이러한 소질을 지녔다는 이유로 더욱 후덕하다거나 천국에 갈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덕적 장점은 오로지 의지 활동, 말하자면 가능한 행동방향 가운데서 올바르게 선택하는 활동과 관련될 따름이다.   

(p256) 우리는 이런저런 쾌락이 어떤 사람 전체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좋은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코 하나만 가지고 그 냄새를 즐길 수가 없다는 사실도 잘 안다.  

(p257)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쾌락이란 말은 행복과 구별되지만,쾌락이 없다면 행복도 없다. 그는 쾌락을 바라보는 세가지 관점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쾌락이 결코 선하지 않다는 관점이고, 둘째는 몇몇 쾌락은 선하지만 대부분의 쾌락은 악하다는 관점이며,셋째는 쾌락이 선하지만 최선은 아니라는 관점이다. 사람이 고문을 당하면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더없이 정당하다.  

(p258) 행복은 유덕한 행동에 달려 있고, 완벽한 행동은 최선의 활동인 관조에 달려 있다. 관조가 전쟁이나 정치나 다른 어떤 실천 경력보다 더 나은 까닭은 삶에 여유를 주기 때문이며, 여유는 행복의 본질적 요소이다. 실천적인 덕은 이차적인 행복을 제공할 뿐이다. 이성을 발휘해야 최고 행복에 이르게 되는 까닭은 이성이 다른 무엇보다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기 때문이다. “은총 속에서 다른 모든 것들을 능가하는 신의 활동은 관조일 수밖에 없다.”모든 인간 존재 가운데 철학자의 활동은 신과 가장 흡사하므로 최고 행복이며 최선의 활동이다.   

(p265) 길들인 동물들은 인간의 지배를 받을 때 훨씬 행복하며, 자연적으로 열등한 사람은 우월한 사람의 지배를 받을 때 훨씬 행복하다.  

(p268) 가장 큰 죄악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에서 비롯된다. 

(p269) 아리스토 텔레스는 과두정치와 민주정치의 차이가 집권당의 경제적 지위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부유층이 빈곤층을 고려하지 않고 통치하면 과두정치가 되고, 권력이 궁핍한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서 부유층의 이익을 무시하면 민주정치가 된다.  

(p274) 국가의 목적은 교양을 갖춘 신사, 말하자면 귀족다운 심성과 아울러 지식과 예술에 대한 사랑도 지닌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다.  

(p289) 그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데, 시간이란 과거와 미래로 이루어지며 과거는 더는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p290) 지구는 구형이며 우주의 중심이다. 달 아래쪽에서 만물은 4원소, 말하자면 흙, 물, 공기, 불로 구성된다. 그러나 제 5원소가 존재하며, 이것이 천체들을 구성한다. 

(p296) 한 제자가 증명과정을 다 들은 다음 기하학을 배워서 무엇을 얻게 되느냐고 묻자, 에우클레이데스는 노예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젋은이는 배움에서 이익을 얻어야 할 테니 3펜스를 주어라.” 실천에 대한 이런 경멸적 태도는 실용성의 측면에서도 정당한 것이었다.

⇒ 실용성을 경멸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문득, 철학은‘고급놀이’로 끝날 수 있는 학문이 될수도 있겠다 싶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그런 실용성의 부재가, 철학이 대중화하지 못했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날 다시 철학이나 인문학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은 어쨌든 좋은일이다.   

(p301) 고대 천문학자들은 지구,달, 태양의 크기와 달과 태양까지 이르는 거리를 잴 때 이론상 적법한 방법을 사용했지만, 정확한 측정에 필요한 도구가 없었기 때문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밀한 도구가 없었던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그들이 측정한 결과 가운데 놀라우리만큼 근접한 것들이 많다.  

제 3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 철학 

(p312) 마음이 머물 곳은 마음뿐, 마음먹기에 따라 지옥이 천국이 되기도 하고, 천국이 지옥이 되기도 하는 법이지.  

(p315) 총체적 혼란은 지성의 쇠약보다 더욱 심각한 도덕적 부패를 초래하기 마련이었다. 길게 이어진 불확실성의 시대는 뛰어난 덕을 겸비하여 성인의 경지에 이른 극소수 사람들의 삶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겠지만, 평범한 일상의 덕을 갖춘 훌륭한 시민들에게는 해롭게 작용했다. 당신이 저축해 둔 돈이 내일 전부 없어질지도 모른다면 검약이란 소용이 없어진다. 당신이 정직하게 대한 사람이 당신을 속인 게 확실하다면 정직이란 어떤 이득도 주지 않는다. 대의가 전혀 중요하지 않거나 안정된 상황에서 승리할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단호하게 대의를 고집하는 일도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다. 비위나 맞추는 변절만이 생존과 행운을 가능하게 만든다면 진실을 놓고 벌이는 논증이란 헛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순수하게 세속적인 사려를 제외한 어떤 것도 덕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용기가 있다면 불확실한 세상에서 모험가가 될 테고, 용기가 없다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미천하고 비겁한 사람이 될 것이다.  

(p316) 인생의 목적은 적극적인 선의 성취가 아니라 오히려 불행의 회피였다."철학은 이제 용맹한 소수의 진리 탐구자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불기둥이 아니었다. 오히려 철학은 생존투쟁의 흔적을 뒤따르며 병약자와 부상자를 치료하는 야전병원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p318) 5세기부터 15세기에 이르는 교권 통치 시대에, 이론상 믿는 세상과 실제로 사는 세상 사이에 갈등이 존재했다. 이론상 믿는 세상은 눈물의 골짜기이며 시련 가운데서 내세를 준비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실제 삶 속의 작가들은 거의 대부분 성직자들이었기 때문에 교회 권력을 누리면서 유쾌한 기분을 느꼈다. 그들은 유용하다고 믿었던 분야에서 얼마든지 활동할 기회를 보장받았기 때문에 낯선 세상으로 추방당했다고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지배 계급의 심성을 갖게 되었다. 

(p320) 디오게네스는 개처럼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개’를 의미하는 ‘견유’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종교든, 에절이든, 옷차림이든, 집이든, 음식이든, 체면이든 인습이라면 전부 거부했다. 그는 인도의 고행자처럼 구걸하며 살았지만, 전 인류뿐만 아니라 동물도 형제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도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알렉산드로스가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자, "햇빛만 가리지 말아주시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p321) 그는 욕망에서 해방됨으로써 덕과 도덕적 자유를 얻으려 했다. 행운이 따라야 얻게 되는 좋은 것들에 냉담해져라. 그러면 두려움을 떨치고 해방되리라.  

키니코스 학파는 작은 훈계 책자를 발간하여, 물질을 소유하지 않고 살아가면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간소한 음식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값비싼 옷을 걸치지 않아도 겨울에 얼마나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지, 본국에 애착을 느끼거나 누구의 아이나 친구가 죽었다고 해서 애도하는 일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가르쳤다.   

(p323) 회의주의가 게으른 사람에게 위안을 준 까닭은, 무지한 사람도 평판이 좋은 지식인 못지 않게 현명하다는 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은 회의주의에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회의주의는 헬레니즘 시대에 출현한 여느 학설과 마찬가지로 근심을 떨쳐버리게 하는 해독제로서 권장되었다. 앞날에 일어날 일을 왜 걱정하겠는가? 미래는 불확실할 따름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불확실하니”, 차라리 현재를 즐기는 편이 낫다. 이 때문에 회의주의는 적지 않은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회의주의는 철학으로서 단지 의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의심을 한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과학자는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확실치 않다”고 말한다. 지적인 호기심이 강한 사람은 “나는 어찌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아내고 싶다”고 말한다. 철학적 회의주의자는 “아무도 모르며, 오느 누구도 알 수 없으리라”고 말한다.  

(p327) 카토는 권력을 잡게 되자 사치와 축제를 억제했다. 그는 같은 젖을 먹고 자라면 노예의 아이들이 자기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리라 기대하여, 친자식들뿐만 아니라 노예의 아이들에게도 아내의 젖을 먹였다.  

(p334) 인간이 크나 큰 고통 속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주장을 최초로 한 사람은 스토아 학파가 아니라 바로 에피쿠로스였다.  

(p335)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일부 회의주의 철학을 예외로 두면 당시에 유행한 모든 철학과 마찬가지로, 일차적으로 마음의 평정을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그는 쾌락을 선이라 생각하고, 이 견해에서 나올 만한 모든 결론을 놀라우리만치 일관성 있게 고수했다. 그는 “쾌락은 축복받은 삶의 시초이자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p336) 정신의 쾌락은 육체의 쾌락을 관조하는 활동이라고 한다. 예컨대 ‘정의’란 다른 사람들의 원한을 살까 두려워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행동할 때 존재한다는 주장은 사회 기원설을 주도한 견해로서 사회 계약론과 흡사하다.

에피쿠로스는 능동적인 쾌락과 수동적인 쾌락, 동적인 쾌락과 정적인 쾌락을 구분하는 점에서 이전의 몇몇 쾌락주의자들과 의견이 다르다. 동적인 쾌락은 바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고통이 동반되던 이전의 욕망을 충족할 때 존재한다. 정적인 쾌락은 만약 없으면 바라는 사태가 되기 때문에 생기는 평형 상태에 존재한다. 배고픔의 충족이 진행 중이라면 동적인 쾌락이지만, 배고픔이 완전히 충족되어 도달한 활동 없는 상태는 정적인 쾌락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p337) 에피쿠로스의 의견에 따르면 사회생활을 통해 얻는 쾌락 가운데 제일 안전한 것은 우정이다. 에피쿠로스는 벤담처럼 인간은 모두 언제나 때로는 현명하게 때로는 현명치 않게 오로지 자기 자신의 쾌락을 추구할 따름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p338) 에피쿠로스는 고통을 당하는 인류에게 연민을 강하게 느끼고, 사람들이 자신의 철학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들의 고통이 많이 줄어들 거라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사상은 모험 가득한 행복을 좀처럼 얻을 수 없는 세계에나 어울릴 법한 병약자의 철학이었다. 소화불량에 걸리고 싶지 않다면 적게 먹으라. 다음 날 아침이 걱정된다면 과음하지 말라. 정치와 사랑과 격렬한 열정을 동반하는 모든 활동을 삼가라.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운명의 인질이 되지 말라.당신의 정신생활 속에서 스스로 고통보다 쾌락을 관조하는 법을 배우라. 육체의 고통은 확실히 크나 큰 악이지만, 격심한 고통이라면 짧은 법이고, 길고 긴 고통이라면 정신훈련을 하거나 고통 속에서도 행복한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을 들임으로써 참아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두려움을 피할 수 있도록 살라.

⇒ 에피쿠로스 학파는 매력적이다. 그는 ‘빵과 물만 있다면 신도 부럽지 않다’고 했다. 에피쿠로스는 ‘모든 사람에 대한 인간애’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무엇을 얻기 위해 친해지려는 인간관계는 항상 피곤한 법이다. 그는 욕망을 부풀려서 더 큰 즐거움을 얻으려기 보다는 거꾸로 욕구를 줄여서 만족을 얻으려고 했다. 헛된 욕망에 흔들리지 말 것, 그리고 삶을 건전하게 살찌울 비전과 포부를 가질 것. 그것이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이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근원 두 가지는 종교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 주장했는데, 두 가지 근원은 종교가 죽음은 불행이라는 견해를 장려하기 때문에 서로 연관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p339) 에피쿠로스는 유물론자였으나 결정론자는 아니었다.  

(p349) 개인의 삶 속에서 유일한 선은 덕이다. 건강,행복,재산 같은 것들은 결코 선하지 않다. 덕은 의지 속에 존재하므로, 어떤 사람의 삶 속에서 실제로 선하거나 악한 일은 무엇이든 그 사람 자신에게 달려 있을 따름이다.   

(p351) 에피쿠로스가 높이 평가한 우정은 다 좋지만, 당신 친구의 불행이 당신의 거룩한 마음의 평정을 깨는 데까지 이르게 해서는 안 된다.   

(p356) 세네카의 최후는 교훈이 되고도 남았다. 유언장을 작성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을 듣자, 그는 슬퍼하는 가족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걱정하지 마라. 지상의 부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 덕이 높은 삶의 본보기를 남긴다.” 

(p359)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지상의 죄수들이며 지상의 육체 속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따르면, 에픽테토스는 “너희는 송장을 메고 다니는 작은 영혼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p360) 나를 사슬로 묶는다고? 내 다리는 자네가 사슬로 묶을 것이네. 맞네. 그러나 나의 의지를 묶지는 못할 것이네. 제우스조차도 그렇게 하지 못할 테지.“나는 당신을 감옥에 가둘 것이오.”내 작은 몸을 감옥에 가둔다는 뜻이군.“나는 당신을 참수형에 처할 것이오.”‘글쎄, 언젠가 자네에게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서 목을 베어 죽일 수 없는 유일한 인간이란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p361) 인간은 저마다 연극 속의 배우이고, 신이 배역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배역이 무엇이든 우리의 배역을 훌륭하게 연기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 에픽테토스, 절름발이 노예출신의 철학자! 황제 철학자인 아우렐리우스도 그의 글에서 가르침을 구하곤 했다. 에픽테토스는 그냥 주어진 인생에 순종하라는 철학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라고 충고한다.  “내가 가진 것, 나의 육체, 평판, 지위는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믿음과 욕망, 혐오감 등은 내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진다. ..만일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에만 주목한다면, 내키지 않는 강요에 부딪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개척하는 삶! 집착하지도 않고, 자부심으로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삶!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에픽테토스의 장점이다.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철학자다.  

(p372) 로마 세계는 행복했지만 모험보다 안전을 선호했기 때문에 삶의 맛이나 재미는 사라졌다.  

(p373) 로마인들의 분위기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연애의 모험을 즐긴 다음 이성에 따라야 하는 결혼생활에 정착한 듬직한 청년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p383) 그리스도교도에게 내세란 사후에 즐겁게 지내게 될 천국이었다. 플라톤 학파에게 내세란 영원한 이상 세계, 곧 착각을 일으키는 현상계와 대립하는 실재계였다.  

(p387) 복잡하게 얽히지 않은 기쁨과 슬픔은 철학의 주제가 아니라 훨씬 단순한 영역인 시와 음악의 주제이다. 우주에 관한 사색을 동반하는 기쁨과 슬픔만이 형이상학 이론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명랑한 염세주의자가 되기도 하고 우울한 낙천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p397) 창조하려는 영혼의 욕망은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 영혼이 순수한 본질의 세계에 사는 한, 영혼은 같은 세계에 사는 다른 영혼들과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영혼이 육체와 결합하자마자 영혼은 자신보다 낮은 육체를 다스려야 하는 과업을 떠안게 되었고, 이 과업 때문에 영혼은 다른 육체들과 결합한 다른 영혼들과도 분리되고 말았다. 극소수 사람들에게 아주 극히 드문 순간을 제외하면, 영혼은 육체의 사슬에 묶인 삶을 살았다.  

(p400) 성자란 마법사의 능력을 없앤 자. 플라티노스의 철학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외면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조장하는 결함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안을 들여다볼때 신성한 정신을 보게 되고, 자신의 바깥을 바라볼 때 감각계의 불완전한 면을 보게 된다.  

제 2권 가톨릭철학  

(p405) 극소수의 예외는 있겠지만 당시 지성계에 공헌한 사람들은 모두 성직자들이었다. 성직자들은 14세기까지 사실상 철학을 독점하게 되면서 교회의 관점에서 서술했다. 이 때문에 중세사상은 교회제도, 특히 교황 체제의 성장에 관한 광범위하면서도 적절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p406) 성직자 계급은 그리스도교의 겸손을 설교만 할 뿐, 실천은 하층 계급의 몫이었다.  

(p409) 비참한 상황이 사회 전반에 퍼져나감에 따라 종교감정은 더욱 강렬해졌다. 지상에서 선을 추구하는 삶은 하늘나라에 이르는 순례로 여길 뿐이었다. 달 아래 지상에서는 마지막 순간에 영원한 축복으로 이끌, 확고부동한 덕을 제외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 가톨릭 철학은 본질상 특정한 제도, 말하자면 가톨릭 교회의 철학이다.   

제 1부 교부철학  

(p412) 그리스도교 안에서 가장 중요한 유대교적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창조와 더불어 시작되고 장차 완성의 극치에 이르러, 신이 인간에게 행한 일들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성스러운 역사. 2.신이 특별히 사랑하는 소규모 인간 집단의 존재. 이 집단이 유대인들에게는 신이 선택한 민족이고, 그리스도교도에게는 신의 선민이었다. 3.의로움이란 새로운 개념 / 4.율법. / 5.구세주 / 6.천국  

(p417) 유대민족과 고대민족을 구별하는 특징은 유대인들이 보여 준 불굴의 민족적 긍지였다.다른 민족들은 모두 정복을 당하면 외면뿐만 내면으로도 복종하곤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유독 민족적 탁월성을 계속 믿으며, 자신들이 겪는 불행이 신앙과 종교의식의 순수성을 잃은 탓에 신의 노여움을 샀다고 확신했다.  

(p421) 이 시기에 유대인들 사이에서 영혼 불멸을 믿는 경향이 널리 퍼졌다. 원래 덕은 여기 지상의 삶 속에서 보답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덕망 있고 고결한 자들이 박해를 당하자, 이런 생각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그러므로 신이 의로우심을 보증하려면, 보상과 처벌이 내세에 이루어진다고 믿을 수 밖에 없었다.  

(p426) “분노는 눈을 멀게 하여 어느 누구의 얼굴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미움은 악이다. 미움은 늘 거짓말과 짝을 이루는 까닭이다.”  

(p430) 그리스도교는 처음에는 유대교의 개혁을 목표로 유대인이 유대인에게 설교한 가르침이었다. 성 바울로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바라는 대로 되었을지도 모른다. 성 바울로는 이방인들을 포용하기 위해 할례나 모세 율법의 준수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성 바울로 덕분에 이방인들이 동화되기 너무 힘든 특징을 과감히 버리면서도 유대교 교리의 매력적인 요소를 보유하게 되었다.  

(p434) 정신이 타락하면 영혼이 되고, 영혼이 덕을 갖추면 정신이 된다. 궁극적으로 모든 영혼은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복종하게 되면 육체가 없는 존재가 된다. 최후에는 악마조차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p437) 기번Gibbon 은 그리스도교 성장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1. 사실 유대교에서 비롯되었으나, 이방인을 초대하기는커녕 모세의 율법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막던 편협하고 비사회적인 정신을 씻어낸 그리스도교의 불굴의 정신과, 이런 표현을 사용해도 좋다면 이단을 관용하지 않는 종교적 열의
2. 강화하고 유효하게 만들 여건이 조성될 때마다 개선한 내세 교리
3. 초기 교회의 특징인 기적의 영향력
4. 그리스도교의 순수하고 엄격한 도덕
5. 로마 제국의 심장부에서 시작하여 점차 강한 독립국가로 형성되어 나간 그리스도교 사회의 통합과 규율  

(p439) 기적이 그리스도교를 선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기적은 고대 후기의 온갖 종교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어느 한 종교에만 주어진 특전이 아니었다. 여러 종교가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서도 유독 그리스도교의 기적을 다른 종파의 기적보다 더욱 널리 믿게 된 이유를 알아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 조금 전에 일요일 저녁 미사에 다녀왔다. 종교는 질문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로지 믿음만이 종교를 받아들이는 선행조건이었다. 그러나 연구원 과정을 통해, 믿음의 체계와 역사를 이해하면서, 종교는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p440) 오늘날 우리는 정치 조직에 익숙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정치가라면 누구나 가톨릭교도들의 표를 고려해야 하지만, 조직을 이룬 다른 정치 집단들의 표와 비교하여 균형을 맞출 수 밖에 없다.  

(p444) 국가는 약하고 무능하며 방종한 이기주의자들이 지배하여 미봉책 이상의 정책은 결코 내놓지 못한 반면, 교회는 강하고 유능하며 교회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이끌어 멀리 내다보는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에 뒤이은 수천 년 동안 승리는 교회에 돌아갔다.  

(p448) 암보르시우가 보여준 힘의 근원은 민중의 지지였다. 그는 민중을 선동한다는 비난을 듣자 이렇게 응수했다.“민중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은 내 권한에 속하지만, 민중을 조용하게 만드는 것은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다.”  

(p450) 암브로시우스는 학자로서는 히에로니무스보다 못하며, 철학자로서는 아우구스티누스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능숙하고 용감하게 교회 권력을 굳건히 세운 일급 정치가였다.   

(p453) 기도를 드리느냐? 너는 신랑께 말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느냐? 신랑께서 네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p456) 청년기 아우구스티누스는 덕의 귀감과는 동떨어지 정열이 넘치는 남자였으나 진리와 의로움을 추구하려는 내적 충동도 간직한 인물이었다.  

(p458) 그리스도교 신학은 두 분야로 나뉘는데, 하나는 교회와 관련되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영혼과 관련된다. 후대에 이르러 가톨릭교는 교회를 강조하고 개신교는 개인의 영혼을 강조했으나, 성 아우구스티누스 사상 속에서는 두 분야가 동등하게 조화롭게 공존한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신이 미리 구원하기로 정해둔 자들이다. 이로써 영혼은 신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세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의 일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로써 교회는 영혼과 신을 중개하는 매개자가 된다.  

(p459) 사춘기로 접어든 아우구스티누스는 육체의 욕망에 압도되었다. “주위는 온통 가마솥 속에 있는 듯 무법천지의 사랑으로 들끓었습니다. 사랑을 모르나 사랑을 갈망하던 나는, 뿌리 깊은 욕망으로 인한 사랑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혐오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애정어린 사랑으로 사모할 대상을 찾으며, 안전한 길에는 반감을 품었습니다....그때 사랑하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내게는 달콤했지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즐겼을 때는 더더욱 달콤했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우정의 샘을 불결한 욕정으로 더럽히고, 우정의 빛을 탐욕이란 지옥의 그림자로 가렸습니다.  

(p464)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 학파에 속한 철학자의 책 속에서 형이상학적인 로고스 학설을 찾아냈으나 육화 교리와 그것에 당연히 뒤따르는 인간구원 교리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p467)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러면 시간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아무도 물어보지 않으면 알지만, 묻는 사람에게 설명하려면 모르게 되고 만다.”‘과거’는 기억과 동일시하고,‘미래’는 기대와 동일시할 수밖에 없으며, 기억과 기대는 둘 다 틀림없이 현재에 속한 사실들이다. 그는 세 가지 시간, 곧 ‘과거에 일어난 일들의 현재,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일들의 현재’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과거에 일어난 현재는 기억이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현재는 눈앞에 펼쳐지는 일이며, 미래에 일어날 일들의 현재는 기대이다.  

(p469) [신국]은 다른 몇몇 위대한 책처럼 책을 읽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처음 읽었을 때보다 다시 읽을 경우 더욱 좋은 인상이 남도록 구성되어 있다.  

(p470) “쳇,다른 사람의 육욕이 당신을 더럽힐 수 있단 말인가.”정결은 마음의 덕이므로능욕을 당해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비록 실행에 옮기지 않았더라도 죄를 지으려는 의도가 있으면 잃게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희생자들이 자신들의 금욕을 지나치게 자랑스러워해서 신이 능욕을 당하도록 허용했다는 암시를 준다. 고결한 여인이 능욕을 당한 경우 죄를 면해주는 데는 한 가지 단서가 붙는다. 그 여인은 능욕당하는 일을 즐겨서는 안된다. 만약 즐긴다면 죄를 짓는 것이다.

⇒ 즐긴다는 표현은, 현대에 와서 유행처럼 쓰고 있는 말이지만, 그 시대에도 그런 표현을 한다는 것이 재미있다.  

(p473) 축복받은 만물은 영원하지만, 영원한 모든 존재가 축복받은 것은 아니다.예컨대 지옥과 사탄은 축복을 받지 못한다.  

(p474) 악한 의지는 결과를 낳은 원인이 아니라 결핍을 일으키는 원인일 뿐이다. 다시 말해 악한 의지는 결과를 산출하는 힘이 아니라 결핍에 지나지 않는다.  

(p479) 유대 민족의 과거와 미래 역사는 어느 시대에나 억압받고 불행한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모형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유대 민족의 역사모형을 그리스도교에 맞게 변형했고,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에 맞게 변경했다. 마르크스의 심리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용어사전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야 훼 : 변증법적 유물론     //   구세주 : 마르크스

선 민 : 프롤레타리아        //   교회 : 공산당

그리스의 재림 : 혁명        //   지옥 : 자본가의 처벌

천년왕국 : 공산사회  

(p481) 천벌은 신의 정의를 보여주며, 구원은 신의 자비를 보여준다. 천벌과 구원은 둘다 똑같이 신의 선하심을 드러낸다. 

(p488) 축복과 동일한 행복은 쾌락이 아니라 선이다. 우정은‘가장 성스러운 사랑’이다.

(p495) 수도원 운동은 4세기 초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동시에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두가지 형태로 나타났는데, 고독한 은수자 생활과 수도원 생활이다. 

(p496) 수도원 생활은 처음에는 교회 조직과 거의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운동이었다. 성직자들과 수도원 생활을 연결해 융화를 꾀한 인물은 성 아타나시우였다. 

(p498) 조직이란 창시자의 의도와 독립해 자체 생명을 지니게 마련이다. 이 사실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가톨릭 교회이며, 예수뿐만 아니라 바울로조차 놀랄 만하다.베네딕투스 수도회는 작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수도자들은 청빈,순명,정결의 서원을 한다.이에 대해 기번은 이렇게 논평한다.“나는 어디에선가 한 베네딕투스 수도회 대수도원장의 솔직한 고백을 들었거나 읽었다. 나는 청빈을 서원함으로써 매년 10만 크라운을 받았으며, 순명을 서원함으로써 군주의 반열에 올랐다.  

(p500) 사악한 신부는 베네딕투스의 육체를 죽이지 못하게 되자 그의 영혼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벌거벗은 젊은 여자 일곱 명을 수도원으로 보냈다. 베네딕투스 성인은 젊은 수도자들의 마음이 흔들려 죄를 짓지 않을까 염려하여, 사악한 신부가 더는 못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수도원을 스스로 떠났다.

⇒ 육체를 죽이지 못하므로, 수도자들의 영혼을 죽이겠다는 발상, 진실로 사악한 이의 발상이 아닌가! 

제 2부 스콜라철학 

(p522) “왕과 사제가 협력하고 황제와 교황이 협력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그리스도교는 두 기능을 분리했으니, 그리스도교도 황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교황이 필요하지만 교황은 세속의 일을 처리할 경우를 제외하면 황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p533) 죄의 근원은 자유에 있다. 죄란 인간이 신에게 향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기 때문에 발생했다.  

(p538) 모든 개혁 성직자들이 온 힘을 다해 반대했던 최고의 악습은 성직매매와 축첩 두가지 였다.  

(p540) 성 바울로는 “만약 성직자들이 욕망을 억누르기 힘들면 결혼하게 두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신성한 사람은 마땅히 욕망을 ‘억누를’수 있어야 한다. 성직자의 독신생활은 교회의 도덕적 권위를 유지하는 데 불가결한 핵심 요소였다.  

(p545) 그레고리우스 7세는 성직자의 독신생활을 어떤 전임 교황보다도 더욱 강화했다. 그는 평신도들에게 독신생활에 반항하는 고집 센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하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그는 결혼한 성직자의 성사는 무효이며, 결혼한 성직자는 교회에 발을 들여놓아서도 안 된다고 포고했다.  

(p552) 예언자 무하마드가 세운 종교는 정교한 삼위일체설이나 육화 신학으로 뒤얽히지 않은 단순한 일신교였다. 예언자 무하마드는 자신을 신이라 주장하지도 않았고, 그를 따르던 신도들이 자기를 신이라 주장하지도 못하게 했다.  

(p553) 페르시아인은 아주 일찍부터 종교심이 깊고 사색의 수준이 높았다. 페르시아인은 개종한 다음 이슬람교로부터 예언자 무하마드와 그의 동족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더욱 종교적이고 더욱 철학적인 종교를 만들어냈다.   

(p569) 교황이 십자군 창설에 선두에 섰던 까닭은 그 목적이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종교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선동의 또 다른 효과는 수많은 유대인의 학살이었다. 십자군 운동 이전 유대인들은 유럽 전역에서 동방 물품의 무역을 거의 독점했다. 십자군 운동 이후 유대인 박해의 결과로 동방 물품의 무역은 대부분 그리스도교가 장악했다.  

(p587)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역사에 알려진 매력적이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p588) 성인다움에 관해서는 프란체스코와 필적하는 성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성인들 가운데 그가 유일무이한 존재인 독특한 점은 내면에서 우러나는 행복, 보편적 사랑, 시인으로서 타고난 재능이다. 그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교나 자비로운 인간으로서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시인으로서 사랑했다. 

(p589) 사탄이 존재한다면, 성 프란체스코가 세운 수도회의 미래를 보고 더할나위 없는 최고의 희열을 느꼈으리라. 성 프란체스코의 삶이 초래한 최종 결과는 부유하고 부패한 수도회를 하나 더 설립하여 성직자 계급제도를 강화하고 도덕적 정직함이나 사상의 자유에서 뛰어난 모든 사람에 대한 박해를 용이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프란체스코 자신의 목표와 인격에 비추어볼 때, 더할 수 없이 참혹하고 역설적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p596) 신은 선할 뿐만 아니라 선 자체이다. 신은 모든 선한 것의 근원이 되는 선 자체이다. 신은 지적이며, 더욱이 신의 지성 활동은 신의 본질이다. 신은 자신의 본질로써 이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p598) 신에게는 의지도 있다. 신의 의지는 곧 자신의 본질이므로, 신의 의지가 향하는 중요한 대상은 신의 본질이다. 신은 자신이기를 원할 때 다른 사물도 원하게 되는데, 신이 만물의 목적인 까닭이다.  

(p602) 신을 아는 세 가지 길이 있는데, 이성으로 통하는 길과 계시로 통하는 길, 그리고 오직 계시로 미리 알려진 중요한 것을 직관함으로써 통하는 길이다.   

(p604) 아퀴나스의 철학 체계 안에 진정한 철학 정신을 드러내는 부분은 거의 없다. 그는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는 탐구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그는 철학을 시작하기 전에 벌써 진리를 알고 있다. 진리는 가톨릭 신앙 안에서 선언된다. 결론이 미리 주어진 논증의 발견은 철학이 아니라 특별한 변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아퀴나스가 그리스와 근대 양 시대의 최고 철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p606) 로저 베이컨은 백과사전식 지식의 소유자였으나 체계성은 없었다. 그는 무지의 원인이 네 가지 있다고 말한다. 첫째, 부정하고 부적합한 권위의 사례이다. 둘째, 관습의 영향이다. 셋째, 무식한 군중의 의견이다. 넷째, 외견상의 지혜를 과시하며 무지를 은폐하는 짓이다. 네가지 역병 가운데 넷째 병이 가장 치명적이고,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악의 근원이다.  

(p615) 오컴의 격률에 따르면, “존재들은 필요 없이 늘어나서는 안 된다.”오컴은 이 격률을 말하지 않았지만 똑같은 효과를 내는 말을 했다. ‘더 작은 수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큰수로 하는 짓은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p622) 그리스도교는 여러 종교에서 힘의 원천이 되는 요소들을 찾아 결합했다.그리스도교는 유대인들에게서 성서와 한 종교 이외에 모든 종교는 거짓이며 악하다는 교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극단적인 배타성과 모세 율법의 불편은 피했다. 후기 유대교는 이미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을 배웠는데, 그리스도교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 그리고 천국에 이르고 지옥을 피하는 길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내렸다. 부활절은 유대교의 유월절과 이교도 신의 부활축전을 결합한 결과물이었다.  

(p624) 1300년을 희년으로 제정하고, 그 해 로마를 방문하여 머물면서 일정한 종교 의식에 참석한 모든 가톨릭교도는 완전한 대사를 받는다고 선포했다. 덕분에 교황청의 금고에 엄청난 돈이 쌓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 시민들의 호주머니도 두둑해졌다. 100년마다 희년이 돌아오게 되어 있었으나, 50년으로 기간을 단축하고 나서 이익이 커지자 다음에는 25년으로 단축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p633) 이렇게 달 아래 세계는 더는 눈물의 골짜기나 내세로 떠나는 고통스러운 순례의 장소가 아니라 이교도의 기쁨을 위해, 명성과 아름다움과 모험을 향해 떠날 기회를 제공하는 장소로 나타났다. 금욕주의가 지배한 기나긴 세월은 다채로운 예술과 시, 쾌락을 추구하는 분방한 활동 속에서 잊혔다.  

제 3권 근현대 철학  

제 1부 르네상스에서 흄까지  

(p638) 근대 문화는 성직자보다 속인의 삶과 관계가 더 깊다. 국가의 힘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문화를 조정하는 정부 권력 기구가 교회를 대체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p639) 근대 철학자들이 대부분 인정한 과학의 권위는 교회의 권위와 전혀 다른 지적인 권위이며 정치적 권위가 아니었다. 과학의 권위는 가톨릭 교리 체계와 달리 인간의 도덕과 희망을 비롯해 우주 역사의 과거와 미래를 포괄하는 완결된 체계를 제안하지 않는다.  

(p650) 르네상스 확자들이 교회에 취한 태도의 특징을 간단하게 묘사하기는 어렵다. 몇 몇 학자는 스스로 인정한 공공연한 자유사상가였는데, 이들조차 임종이 다가온다고 느끼는 순간 으레 교회와 화해하려 병자성사를 받곤 했다. 대부분의 르네상스 학자가 당대 교황의 사악한 행동에 나쁜 인상을 받았으면서도 교황들이 제공한 일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p653) 도덕의 영역 바깥에서 보면 르네상스 운동은 여러 면에서 탁월한 장점이 있다. 건축, 회화, 시 분야에서 르네상스 운동은 명성을 유지했는데,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같은 위대한 인물을 배출했다. / 천재들은 제각기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 이후 맛보기 어려웠던 자유를 누리면서 재능을 꽃피웠다.   

(p654) 마키아벨리, 그의 정치철학은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학설로 사태를 직시하며 스스로 경험한 것에서 나온 결과물인데, 목적의 선악 여부와 상관없이 정해진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 마키아벨리란 이름에 늘 따라다니는 비방이나 악평은, 대체로 악행을 솔직하게 인정한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긴 위선자들의 분개에서 비롯된다.  

(p653) 그는 다른 직업이 필요했기 때문에 저술가의 일을 선택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술인 [군주론]은 1513년에 집필하여 로렌초 2세에게 바쳤는데, 메디치 가문의 호의를 얻으려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p657)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가 국가 안에서 두드러진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까닭은 종교가 곧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 결속과 유대감 형성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 그는 메디치 가문의 호의를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저술가로 살 수밖에 없었다. 비방이나 악평이 많지만, 번뜩이는 통찰은 분명히 존재한다. [군주론]을 읽어봐야겠다.  

(p659) [군주론]은 통치자의 행동과 관련된 기존의 도덕을 명백히 거부한다. 통치자가 늘 선하게 행동한다면 비명횡사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군주는 여우처럼 교활하고 사자처럼 맹위를 떨쳐야 한다.군주는 자기에게 이득이 되면 신앙을 지키고 그렇지 않으면 신앙을 지켜서는 안 된다. 때때로 군주는 신앙을 버리기까지 해야 한다.  

(p661) 그렇지만 정치학에서는 수단도 중요한 문제이다. 실패할 것이 뻔한 방법으로 정치적 목적을 추구해봐야 헛된 일이다. 만약 목적이 선하다면 마땅히 목적 달성에 적합한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수단의 선택 문제는 목적이 선한지 악한지와 무관하게 순전히 과학적인 방식으로 다루어도 된다.‘성공’은 목적이 무엇이든 목적을 달성했다는 뜻이다. 만약 성공에 대해 다루는 과학이 존재한다면, 성공의 과학은 선한 자의 성공과 마찬가지로 악한 자의 성공에 대해서도 연구할 것이다. 사실 그렇게 연구하는 편이 더 나은데, 성공한 죄인의 사례가 성공한 성자의 사례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 과거 같았으면,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을 내용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생각이 든다. 다만,그 방식이 나에게 맞기 않기 때문일 뿐,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p662) 결국 핵심은 바로 권력이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떤 종류든 권력이 필요하다. 이런 평범하고 분명한 사실은 “정의가 이긴다”, 다시 말하면 “악은 승리해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표어에 묻혀버린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이 이긴다 해도, 그것은 그쪽의 힘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흔히 여론에 좌우되고, 여론은 선전선동에 좌우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혼란한 시대에는 냉소주의가 급속히 번지게 마련인데, 냉소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익을 준다면 무엇이든 용서하고 용납하게 한다. 마키아벨리가 스스로 말하듯이 혼란한 시기일수록 무지한 대중 앞에서 탁월한 기량과 덕을 갖춘 외양을 보여주는 태도가 더욱 바람직하다.  

(p667) 바보 여신은 지혜의 해독제로 아내를 얻으라고 충고한다.“아내라는 피조물은 무해하고 바보 같지만, 인간의 딱딱함과 침울한 성미를 완화하여 유연하게 할 때 유용하고 편리한 존재이다.”누가 아첨이나 자기애없이 행복하겠는가? 그런 행복은 어리석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야수에 가장 가까운, 이성을 벗어던진 사람이다.  

(p673) 플라톤의 국가처럼,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한다. 사유재산을 인정하면 공공의 선을 증진하기 어려우며 공산제 없이는 평등도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개인 주택은 꼭 닮은 모양인데, 문에는 자물쇠를 설치하지 않으며, 누구든 아무 집에나 들어가도 된다. 지붕은 평평하다. 사람들은 10년마다 집을 바꾸는데, 소유권에 대한 의식을 아예 없애려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은 하루에 여섯시간, 점심시간 전후에 세 시간씩 일한다. 저녁 식사 후 한 시간은 놀이를 즐긴다. 유토피아에서는 여자,성직자,부유한 사람, 하인,거지 등은 대개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한다.  

(p676) 모어의 [유토피아]는 여러 면에서 놀라우리만치 자유주의적인 특징을 나타낸다.하지만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사는 삶이 대부분의 다른 유토피아에서 사는 것 못지않게 지루해서 견디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성과 변화는 행복한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데, 유토피아에서는 다양성과 변화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점은 바로 계획에 의해 조직된 모든 사회가 지닌 결점인데, 상상 속에서든 현실 속에서든 마찬가지이다.

⇒ 다양성과 변화가 행복한 삶의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그것이 없어야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우린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그렇게 노력하면서도, 행복을 위해 다양성과 변화를 꾀하는 것 아닌가! 러셀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p677) 종교개혁과 반 종교개혁은 둘 다 문명의 발전이 더딘 나라들이 지적인 문명의 발전이 앞선 이탈리아의 지배에 맞서 일으킨 반란이었다.  

(p678) 종교개혁과 반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세 위인이 바로 루터,칼뱅,로욜라이다. 루터와 칼뱅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으로 되돌아갔는데, 그의 가르침 중에서 영혼과 신의 관계를 다룬 부분만 존속시키고 교회에 관한 부분은 배제한다. 그들의 신학은 교회 권력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들은 미사를 올리면 죽은 자의 영혼이 연옥에서 구원받는다는 교의를 철폐했다. 또 그들은 대사교리도 거부했는데, 대사가 남발되면서 거두어들인 금품이 교황청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운명 예정설로 인해 사후 영혼의 운명은 사제의 대사 행위와 아무 관계도 없어진다.  

(p679) 신학상의 문제와 결부되지 않을 때면 언제나, 그들은 최고 수준의 교육을 제공했다. 다른 곳에서는 배우지 못할 수준 높은 수학을 데카르트에게 가르친 자들도 바로 예수회 수사들이었다. 정치적으로 그들은 일사분란한 고행 단체의 일원으로서 어떠한 위험이나 역경에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p680) 신학상의 싸움을 혐오하게 되면서, 유능한 사람들은 세속 학문, 특히 수학과 과학에 점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6세기는 루터의 등장 이후, 철학적인 면에서는 불모의 시대였으나, 17세기에는 위대한 인물들이 나타났으며 그리스 시대 이후 가장 괄목할만한 진보를 이루었다.  

(p682) 그는 태양이 지구의 중심이며 지구는 두 가지 운동, 즉 하루 한 번의 자전 운동과 1년 주기의 태양 주위 공전 운동을 한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의 견해가 유포되어도 구태여 막지는 않았으나, 교회의 검열을 두려워한 나머지 출판하는 일만은 뒤로 미루었다.   

(p684) 과학자를 과학자답게 구분해주는 특징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그리고 왜 그것을 믿느냐에 달려있다. 과학자들의 신념이 잠정적인 믿음으로서 독단적인 믿음이 아닌 까닭은 증거에 근거할 뿐 권위나 직관에 기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이론을 가설이라고 말할 권리가 있고, 그에게 반대한 자들은 새로운 가설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치부해버렸기 때문에 오류에 빠졌던 셈이다. 근대 과학의 토대를 마련한 과학자들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두 가지 장점을 다 지닌다. 하나는 한없는 인내를 요구하는 관찰이고, 다른 하나는 대담하게 가설을 세우는 능력이다.   

(p685) 새로운 천문학이 지닌 뛰어난 장점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고대 시대 이후의 믿음들이 거짓일지도 모른다고 인정했으며, 둘째로 인내심을 가지고 사실들을 수집하고, 사실들을 함께 묶는 법칙들을 대담하게 추측함으로써 과학의 진리를 시험한 것이다.  

칼뱅도 “세상을 흔들리지 않게 반석 이에 세우셨다(시편 93장 1절)”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코페르니쿠스의 견해를 타파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외쳤다. “누가 감히 코페르니쿠스에게 성령의 권위보다 더한 권위를 주겠는가?”  

(p688) 갈릴레오 (1564~1642), 그는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난 날에 출생하여 뉴턴이 태어나던 해에 죽음을 맞았다. 그는 천문학자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지만, 역학의 창시자로서 더 중요한 인물이다.  

(p694) 1687년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출판된 후, 뉴턴과 핼 리가 몇몇 혜성의 궤도를 계산해냄으로써 혜성도 행성과 마찬가지로 중력 법칙의 시대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중력 법칙이 군림하는 시대가 오면서 중력 법칙은 많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어 마법과 요술이 더는 신뢰받지 않았다. 1600년에 극소수를 제외한 사람들은 대부분 여전히 중세적 사고방식에 따라 살았지만, 1700년에 교양인들의 정신적 전망은 완벽한 의미에서 근대적인 특성을 나타냈다.  

(p695)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다른 결과는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일이다. 중세의 세계관에 따르면 지구는 하늘의 중심이며, 만물은 인간과 관련된 특정한 목적을 가졌다. 뉴턴의 세계관에서 지구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행성에 불과하며, 천문학적 거리는 너무나 광대해서 지구는 상대적으로 핀 끝만큼 작아 보였다. 거대한 우주 체계가 전부 핀 끝 위의 작은 인간을 위해 계획되었다는 생각은 그럴듯해 보이지 않았다. /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인간의 자존심에 상체를 입혔는데도 사실상 정반대 결과를 낳은 까닭은 과학의 승리가 오히려 인간의 자존심과 긍지를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p696) 핼리는 혜성출현의 신비를 풀어 시시한 현상으로 만들었으며, 지진이 여전히 가공할만한 현상이기는 해도 과학자들은 지진을 두려워하고 한탄만 하지 않고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받아들였다.  

(p700)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은 베이컨이 처음 한 말이라고들 하는데, 이전 세대에 살았던 사람이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철학 전체를 꿰뚫는 기본 정신은 실제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수단으로 인류에게 자연을 지배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p702) 우상은 사람들이 오류에 빠지도록 만드는 원인인 정신의 나쁜 습관을 의미한다.그는 네가지 우상을 제시한다. ‘종족의 우상’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며, 특히 자연현상 가운데 실제로 발견되는 질서 이상을 기대하는 습관을 지적한다.‘동굴의 우상’은 개별 탐구자의 특징인 개인적 편견이다. ‘시장의 우상’은 말의 횡포와 관련된다.‘극장의 우상’은 수용되는 사유 체계와 관련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스콜라 철학이 언급할 만한 가장 좋은 사례였다.  

(p703) 가설을 세우는 일은 과학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대단한 능력을 요구하는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p705) 홉스, 그는 난해하거나 미묘한 문제를 다루게 되면 참을성이 부족해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는 방식으로 과격하게 해결하는 성향이 짙었다. 문제 해결 방식은 논리적이었지만, 다루기 곤란한 사실을 여럿 생략해서 불완전했다. 그는 원기 왕성하지만 세련된 기교가 부족한 학자로서, 예리한 쌍날칼이 아니라 무딘 전투용 도끼를 휘두른다.  

(p709) 홉스는 플라톤의 철학에 반대하여, 이성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며 근면과 경험에 의해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노력’은 작은 운동의 시작으로, 만약 어떤 대상에 다가가면 욕구이고 어떤 대상에서 멀어지면 혐오이다. 사랑은 욕구와 같고 미움은 혐오와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권능에 대한 두려움이 공개적으로 허용되면 종교이고, 그렇지 않으면 미신이다.  

(p710) 홉스는 왜 인간은 개미나 벌처럼 서로 협동해서 살지 못하는가 라는 문제도 고찰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같은 벌집에 사는 벌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즉 벌들은 명예를 추구하지 않고 이성을 사용해 정부를 비판하지도 않는다. 벌들의 합의는 자연에 따르지만, 인간의 합의는 계약으로 성립된 인위적인 산물일 따름이다. 계약은 한 사람이나 한 단체에 권력을 부여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계약의 효력이 강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p711) 이렇게 통합된 군중이 국가이며, ‘리바이어던’은 인간적인 신이다. 군주는 전제적인 군주가 되기도 하지만, 심지어 가장 나쁜 전제정치도 무정부 상태보다는 낫다고 홉스는 주장한다.

⇒ 유능한 의사는 과장된 희망을 품지 않는다. 환자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최선책을 찾는다. 홉스는 인간이란 자신밖에 모르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떤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최악인 인간의 모습속에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질서 지킴이 ‘리바이어던’을 만들었다. 리바이어던은 안전을 지키는 도구요, 질서를 지키는 장치를 되는 것이다. 합리적이면서 냉철한 현실주의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p719) 데카르트는 교사가 아니라 찾아낸 진리를 전달하려는 열망을 품은 발견자이자 지적인 탐험가로서 저술에 임했다. 그의 문체는 쉬우면서 현학적인 티가 나지 않아서, 학생보다 오히려 세계의 지성인에게 말을 건다. 더구나 문체가 유별나게 탁월하다. 근대 철학의 선구자가 격찬을 받아 마땅한 문학적 감각을 소유했으니 대단한 행운이다.  

(p725) 데카르트적 회의라 불린 의심의 방법을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그는 철학의 확고한 기초한 세우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의심할 수 있는 대상은 전부 의심하기로 결심한다. 의심 과정에 다소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고 예견했기 때문에, 의심을 감행하는 동안에 자신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용한 규칙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p727)‘나는 생각한다.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주장은 물질보다 정신을, 타인의 정신보다 나의 정신을(나에 대해) 더 확실한 존재로 만들었다.  

(p728) 데카르트는‘생각’을 아주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생각하는 활동은, 의심하고 이해하고 개념을 사용해 생각하며 긍정하거나 부정하고 의지하고 상상하고 느끼는 정신활동을 가리킨다. 사유는 정신의 본질이므로, 정신은 언제나 생각하며 깊은 잠을 잘 때도 생각한다.  

(p729) 관념은 세 종류로 나뉘는데 (1) 정신능력이 본래 가진 관념, (2)외부 자극에서 생긴 외래 관념 (3) 내가 꾸며서 만들어 낸 관념이다.  

(p733) 스피노자는 위대한 철학자들 가운데서 고결한 품성을 갖춘 매력 넘치는 인물이다. 지적인 면에서 그를 능가한 철학자가 몇 사람 있지만, 윤리적인 면에서는 아무도 따르지 못할 최고 수준에 이른 철학자이다.

⇒ 그는 오직 철학을 연구하기 위해 연구에 방해받을 것을 우려하여 대학교수의 제안을 뿌리치고,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안경렌즈 닦는 일을 계속한다. 좋아 보인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좋은 책을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p737) 스피노자가 제안한 감정이론은 정신의 본성과 기원을 다룬 형이상학적 논의 뒤에 이어지는데, 점차‘인간의 정신은 신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에 적합한 지식을 가진다“는 놀라운 명제에 이른다.  

(p739) 스피노자의 철학적 견해는 공포의 전횡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자유로운 인간은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죽음이 아닐 삶에 대한 명상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스피노자는 이런 지침을 삶 속에서 그대로 실천했다. 그는 임종하는 날에도 끝까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 채 흥분하지 않았으며, 여는 날처럼 흥미로운 문제에 골몰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한다.  

(p744) 그리스도교의 원리는 마음의 평정을 주입하지 않으며, 가장 흉악한 인간에게도 뜨거운 사랑을 베풀라고 가르친다. 우리들 대부분이 진심으로 실천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한계를 제외하면 그리스도교 원리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p746) 당신의 운명이 인류의 범상한 운명보다 더 비참한 역경을 참고 견디어낼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우주 전체를 생각하거나 아니면 당신의 슬픔보다 더 큰 문제를 생각하라는 스피노자의 원리는 유익한 교훈이다. 온갖 악과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을 우주적 차원의 생명에 속한 극히 작은 일부로 생각하면,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사색은 하나의 종교를 구성하기에는 불충분할지 몰라도, 고달픈 세상에서 제 정신 차리고 사는 데 힘을 보태며, 아득한 절망의 늪에 빠져 무기력해진 경우에는 무력감을 치유할 해독제가 되기도 한다.  

(p757) 라이프니츠 철학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러 가능세계가 존재한다는 학설이다. 무더운 날 당신이 너무 목이 말라서 들이켠 물 한 모금은, 목마른 상태가 고통스럽기는 해도 견딜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당신에게 큰 쾌락을 주기도 한다. 그 까닭은 목마름의 고통이 없었다면 물을 마신 다음에 누리게 될 기쁨이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p781) 정신을 아무 특성도 관념도 없는 하얀 종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하얀 종이 위에 어떻게 글씨가 쓰이는가? 인간의 분주하고 복잡한,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상상력으로 거의 끝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 넣은 방대한 기억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디에서 이성과 지식의 재료를 얻는가? 이 질문에 나는 경험에서 온다고 한마디로 답변한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경험에 기초하며 궁극적으로 경험에서 모든 지식이 도출되기 마련이다. 로크는 지각이란 ‘지식에 이르는 첫 단계이자 지식을 얻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재료가 모이는 입구’라고 말한다.  

(p784) 로크는 벤담처럼 인정 많고 상냥한 정서로 충만한 사람이었는데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포함하여) 자신의 행복이나 쾌락만을 위한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사물은 쾌락이나 고통과 관련될 경우에만 선하거나 악하다.’선한‘사물은 우리 안에 쾌락을 야기하고 증가시키거나 고통을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무엇이 욕망을 좌우하는가? 나는 행복이라고, 행복뿐이라고 대답한다. 최고에 이른 행복은 우리에게 가능한 최대의 쾌락이다.“ 우리는 미래에 얻을 쾌락보다 현재의 쾌락에, 먼 미래의 쾌락보다 가까운 미래의 쾌락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p786) 로크에 따르면 자기 이익과 전체 이익은 긴 안목으로 보아야 일치되므로, 가능한 한 장기적인 이익을 고려하며 행동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익과 공익이 조화를 이룬다는 신념은 자유주의의 특징으로, 로크의 철학에 내재해 있던 신학적 기초가 무너진 후에도 오래 살아남았다. 로크는 이렇게 말한다. 자유는 참된 행복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필연성과 정념 통제에 좌우된다. 그는 이러한 견해를, 사익과 공익이 단기적으로 보면 반드시 일치하진 않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일치한다는 자신의 학설에서 도출한다.   

지금까지는 고결했던 사람이 유혹에 넘어가 노상강도가 될 위기에 처한다면 그는 이렇게 혼잣말을 할 법하다. ‘내가 인간 판사의 눈을 피할지 몰라도 하느님의 심판으로 받게 될 벌을 피하지는 못할 테지‘ 따라서 그는 흉악한 계획을 버리고 마치 경찰에 붙잡혔다는 듯이 그만큼 고결하게 살아가리라.   

(p805) “아메리카의 깊은 숲 속에서 살던 오만방자하고 해로운 행동을 일삼던 자가 왕좌에 올랐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지는 않으리라. 그는 아무 국민들에게 행할 모든 일을 정당화하려 지식이나 종교를 동원하고, 이윽고 검을 써서 이의를 제기한 모든 국민의 입을 다물게 할 것이다.“ 

(p820)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만약 당신이 형제를 좋아하기 때문에 친절하게 대한다면 도덕적으로 아무 가치도 없다.어떤 행동은 도덕법칙의 명령에 따라 행한 경우에만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그래서 칸트는 주장한다.쾌락이 곧 선은 아니지만 유덕하고 고결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면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이 세상에서 유덕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이들이 죽고 난 후에 덕에 상응한 보상을 받는 다른 세계가 존재해야 한다. 또한 내세의 삶에서 정의로운 심판을 보증해 줄 신도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p831) 단맛은 쾌락을 일으키고 쓴맛은 고통을 일으킨다.그러므로 둘 다 정신에 속한다. 또 내가 건강할때는 단맛을 내는 것이, 병에 걸렸을 때는 쓴맛을 낼 수도 있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p839) 흄은 직접 쓴 사망기사, 장례식사에서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나는 온순한 사람으로, 기분을 조절할 줄 알 뿐만 아니라 솔직하고 사교적이며 쾌할한 유머도 구사하고 누구나 친근감을 느낄 만큼 정감이 풍부하다. 다만 적대감을 견디기 힘들어하기는 하나, 모든 정념을 기막히게 조절할 줄 아는 온건한 성품을 갖추었다. 심지어 나를 지배하던 정념인 문학적인 명성을 향한 갈망조차, 실망하는 일이 잦았는데도 온화한 기질을 까다로운 성격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p852) 원인과 결과에 관한 추리는 모두 습관에서 유래할 따름이며, 믿음은 우리 본성의 인지적인 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정확히 말하면 감각적인 부분의 활동이다. 

제 2부 루소에서 현대까지 

(p859)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은 빈곤 상태로 버려진 농부 가족을 보고 눈물을 쏟지만, 농민 계급 전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심사숙고한 끝에 마련한 계획에 대해선 냉담하기 일쑤일 것이다. 가난한 자가 부자보다 더 많은 덕을 소유할 것이며, 현자란 궁중의 온갖 부정부패를 등지고 물러나 아무 야심 없이 전원생활의 기쁨을 평화로이 즐기는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p861) 낭만주의자들은 평화와 고요가 아닌 활기차고 정열적인 개인적 삶을 간절히 원했다.그들이 산업주의에 결코 공감을 표현할 수 없었던 까닭은, 산업주의가 추악한 면모를 드러냈으며, 돈벌이는 영생할 영혼에게 아무 가치도 없는 행동으로 여겨졌고, 근대 경제 조직체의 성장은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저해했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운동 전체의 특징은 한마디로 공리적 기준을 미적 기준으로 대체한 것이다. 지렁이는 유용하지만 아름답지 않고, 호랑이는 아름답지만 유용하지 않다. 다윈(낭만적이지 않았던)은 지렁이를 보며 감탄했으나, 블레이크는 호랑이를 찬미했다.

⇒ 나에게도 낭만주의자의 기질이 드러날 때가 있다. 평화와 고요함을 원할 때도 있지만, 그만큼 활기차고 정열적인 삶을 원한다. 굳이 정의한다면,‘아름다움을 탐하는 낭만주의자’정도 될까?  

(p862) 평범한 주제들은 낭만주의자들에겐 너무 단조로웠다. 그들은 오직 장엄한 것, 멀고 먼 것, 공포를 자아내는 것에서만 감동을 느끼고 거기서 영감을 얻었다.어느 정도 의심의 눈총을 받던 과학도 깜짝 놀랄 만한 소재를 이끌어 낸다면 멋진 것이 될 수 있었다.  

(p863) 낭만주의의 바탕인 개인주의는 개신교도의 뿌리깊은 특징이었다.  

(p868) 낭만주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선언했으나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을 대변한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에 반대한 입장과는 매우 달랐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대는 경제적 선점과 열중에 대한 혐오에 근거하며, 자본가의 세계를 유대인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암시로 인해 더욱 격화되었기 때문이다.  

(p869) 부드러운 애정에 대한 좌절된 욕망은 증오와 폭력으로 변해버렸다.  

(p873) 루소는 과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은 도덕의 가장 큰 적이며 탐욕을 조장하는 노예근성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학과 덕은 양립할 수 없으며, 모든 과학은 천한 기원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천문학은 점성술이란 미신에서, 기하학은 탐욕에서, 웅변술은 정치적 야심에서, 물리학은 헛된 호기심에서 나왔다. 심지어 윤리학의 기원도 인간의 자만심이다.교육과 인쇄술의 개발은 개탄할 만한 일이고, 문명인과 교육받지 못한 야만인을 구별하는 모든 차별은 악이다.  

(p874) 그는“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며, 제도로 인해 악해질 뿐이다”라고 주장했다.원죄설과 교회를 통한 구원설과는 정반대 주장이다.  

(p883)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도처에 그를 구속하는 사슬이 놓여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주인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들보다 더 자유롭지 못한 노예일 뿐이다. 자유는 루소 사상의 명목상의 목표였고, 사실 그가 진심으로 높이 평가하며 자유를 희생시켜서라도 지키려 한 가치는 평등이다. 루소의 사회계약이란 개념은 홉스의 사회계약과 더 흡사하다. 문제는 전체 공동의 힘으로 각 구성원의 인격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하며, 각 개인이 스스로 전체의 일원이 되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의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이전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 형태를 찾는 것이다.  

(p888) 그는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를 선거 귀족정치라 부른다.그의 말에 따르면 이 제도는 모든 정부형태 가운데 최선의 형태이지만 모든 나라에 적합하지는 않다.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혁명을 이끈 대부분의 지도자들의 성경이 되었으나, 성경의 운명이 그렇듯이 이 책 역시 주의 깊게 읽는 독자는 드물었으며 더욱이 제자들 가운데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자들도 많았다.   

(p889) 루소의 철학이 실제 정치 현장에서 거둔 첫 결실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였다. 러시아와 독일의 독재 정치는 부분적으로 루소의 가르침의 성과로 볼 수 있다. 나는 루소의 망령이 미래에 또 다른 어떤 사건을 초래할지 예측하는 위험까지 감수할 의도는 없다.  

(p894) 칸트는 적어도 자신의 말에 따르면, 흄의 인과성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독단의 선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선잠에서 깨어난 것도 잠시일 뿐 그는 곧 자신을 다시 잠에 빠뜨릴 최면제를 발명했다. 칸트에게 흄은 논백해야 할 적이었던 반면, 루소의 영향은 더욱 깊고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칸트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했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가 산책하면서 문 앞을 지나갈 때 시간을 맞출 정도였다. 그런데 언젠가 그가 시간표를 지키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에밀]을 읽고 있던 때였다.  

(p897) 만약 당신이 언제나 파란색 안경을 끼고 있다면, 당신은 모든 것이 파랗게 보인다고 확신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마음속에 늘 공간적인 안경을 쓰고 있다면 당신은 항상 모든 대상을 공간속에 있는 현상으로 보게 된다.  

(p908) 당신이 어떤 남자가 하는 말을 듣고 나서 그에게 대답을 하면, 그는 당신의 말을 듣는다. 그가 말하는 일과 당신의 대답을 그가 듣는 일은 둘 다 당신 쪽에서는 지각되지 않는 세계에 존재한다.  

(p913) 마음이 백지 상태라는 로크의 학설을 추종한 엘베시우스는 개인들 간의 차이는 전적으로 교육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개개인의 재능과 덕은 바로 교육의 결과이다.  

(p916) 낭만주의적 반항은 바이런에서 비철학적인 옷을 차려입고 등장했으나, 쇼펜하우어와 니체에서는 철학의 언어를 몸에 익혔다. 낭만주의적 반항은 지성을 희생한 대가로 의지를 강조하고 추론의 연쇄를 참지 못하며 어떤 종류의 폭력을 찬미하는 경향이 있었다.

(p917) 다윈 이론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한 부분은 진화론으로서,여러 형태의 생물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점진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다윈 이론의 둘째 부분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었다. 모든 동물과 식물은 자연이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보다 더 빨리 번식한다.   

(p918)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태어나며 성인들 사이의 차이는 전적으로 교육에서 비롯된다는 자유주의적 학설은 같은 종에 속한 개체들 사이의 선천적인 차이를 강조하는 다윈의 입장과 양립할 수 없다.  

(p927) 헤겔에 따르면 과정은 결과를 이해하는 데 본질적인 요소이다. 변증법에서 이후 각 단계는 녹아들 듯이 이전의 모든 단계를 포함한다. 이전 단계들은 어느 하나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필요하며, 전체 과정 속의 한 계기로서 고유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변증법의 모든 단계를 밟아나가는 길을 제외하면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다.  

(p936) 헤겔의 말은 한 국가가 어떤 상황에서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 이상을 의미한다. 전쟁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중재하게 될 세계정부 같은 제도설립에 반대하는 까닭은 때때로 전쟁이 일어나야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전쟁은 일시적인 선과 현세에 속한 모든 사물이 덧없고 공허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조건이다.  

(p939) 눈은 신체에서 분리되면 고유한 가치를 상실하고 만다. 신체 기관들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모아놓는다 해도, 한 때 분리되기 전의 속했던 가치를 그대로 보존하지는 못한다. 헤겔은 시민과 국가의 윤리적 관계를 눈과 신체의 관계에 비유해서 이해한다. 시민의 위치는 더 가치있는 전체의 일부이지만, 분리되면 떼어낸 눈만큼이나 쓸모없어진다.   

(p948) 슬픔은 지식에서 비롯되지. 가장 많이 아는 자 치명적인 진리를 넘어 가장 깊은 슬픔으로 비통해하네. 지식의 나무는 생명의 나무가 아니라네 -바이런-  

(p951) 정열위로 황홀함의 옷을 걸친 자, 비통함 속에서 대중을 압도하는 웅변을 토해내는 자. 그런데도 그는 알았네, 광기를 미화할 방법을, 부정한 행동과 부정한 생각 위에 천국의 색상을 입히는 방법을..  

(p956) 고통은 의지가 강렬하고 격렬한 탓에 생긴다. 그러니까 의지를 덜 발휘할수록 우리는 고통을 덜 받게 된다는 말이다. -쇼펜하우어-  

(p965) 그는 열정적인 개인주의자요, 영웅 신봉자이다. 그는 민족 전체가 겪는 고난이 위대한 개인의 고통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작은 민족들 전체가 당하는 불행을 다 합쳐도 의지가 강한 자들 mighty men 이 느끼는 불행의 총량에 미치지 못한다.  

(p966) “우리는 혹시라도 예쁘장하고 가냘프고 묘한 매력을 풍기는 여자를 보면 좋아한다. 춤을 추며 의미 없는 말을 재잘거리고 화려한 옷만 생각하는 여자들을 만나면 얼마나 즐거운가! 여자들은 언제나 남자의 깊은 영혼의 긴장을 풀어 줄겁게 한다.”   

(p967) 그리스도교는 이제까지 존재한 가장 치명적이고 유혹적인 거짓말이다. 그리스도교는 자긍심, 차이를 향한 열정, 위대한 책임, 열의에 찬 정신, 당당한 야수성, 전쟁과 정복본능, 열정 숭상, 복수심,분노,관능, 모험,지식을 부정하기 때문에 비난받아 마땅하다.  

(p968)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마음을 길들이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잘못이다. 야수는 야생에서는 광채를 내지만, 길들면 빛을 잃는다.  

(p969) 니체가 그리스도교의 사랑을 비난한 까닭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웃이 내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워서 이웃에게 사랑한다는 확신을 준다는 말이다. 만약 내가 강하고 용감하다면, 나는 내가 당연히 느낀 경멸감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야 한다.

⇒ 니체는 매우 강한 끌림을 주는 철학자다. 그는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만이 자유를 누린다’고 했다. 그리고 ‘웃으라’말했다. 사자의 삶도 얘기했다. ‘역경 앞에서, 내 가슴은 뛴다’라는 멋진 말도 그의 것이라 한다. 한번 깊이 파고들어야 할 철학자다.  

(p970) 이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을 지배할 필요를 상상하지도 않는다.  

(p976) 내가 니체를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그가 고통에 대해 숙고하기를 좋아하고, 기만을 의무로 세우며, 그가 찬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복자로 평범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영리함을 명예로 삼기 때문이다. 니체는 보편적 사랑을 경멸하지만, 나는 보편적 사랑이야말로 세계에 대해 바라는 모든 일을 추진하는힘이라고 생각한다.   

(p981) 제임스 밀은 벤담처럼 쾌락이 유일한 선이고 고통은 유일한 악이라 보았다. 그러나 그는 에피쿠로스처럼 온건한 쾌락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며, 지적인 즐거움이 최선의 덕이고 절제는 주된 덕이라고 생각했다.  

(p984) 윤리학은 인간의 다양한 욕구가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갈등의 첫째 원인은 인간의 이기적 성향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의 복지보다 자기 자신의 복지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진다는 말이다. 윤리학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는 데, 첫째는 선한 욕구와 악한 욕구를 구분하는 규준을 찾는 일이고,둘째는 칭찬과 비난을 통해 선한 욕구를 증진하고 악한 욕구를 단념하도록 이끄는 일이다.  

(p989) 철학자들은 단지 여러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과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다.  

(p996) 그의 기대는 그리스도의 재림처럼 머나 먼 이상이다.  

(p1000) 최고상태에 이른 본능을 직관이라 부른다. “직관은 사심없이 자기를 의식하고 대상을 반성하면서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본능을 의미한다”  

(p1017) 그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만약 신에 대한 믿음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면 신을 믿게 놓아둔다. 여기까지는 자비심의 표현이지 철학은 아니다. 신에 대한 믿음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면, 그 믿음은 ‘참’이라고 말하는 경우네는 철학이 된다.  

(p1023) 듀이는 탐구를 진리나 지식이 아니라 논리의 핵심으로 삼는다. 그는 탐구를 이렇게 정의한다.“탐구는 미정의 상황을 원래 상황의 구성 요소들이 통일된 전체가 되도록 특징과 관계가 결정된 상황으로 변형시키는 통제된 과정이다.”  

(p1038) 객관적인 철학 방법을 실천에 옮기면서 획득한, 주의깊게 진실을 말하는 습관은 인간 활동의 전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으며, 객관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어느 곳에서나 광신 행위는 감소하고 공감 능력과 서로 이해하는 능력은 증가하게 될 것이다. 철학이 독단적인 일부 주장을 포기한다고 해서,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 삶에 영감을 불어넣는 일까지 멈추지는 않는다.    

3. 내가 저자라면  

철학자들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았을까? 과연 자신의 철학대로 살았을까?

철학을 연구하는데 방해받기 싫어 안정된 교수직 제안을 거부한 스피노자. 그는 생계수단으로 안경렌즈를 닦으며 생활했다. [에밀]을 통해 자연중심의 교육이념을 제시한 루소는 자신의 자식들을 고아원에 보냈다. 자식들이 너무 소란스럽고 양육비가 꽤 든다는 이유였다니, 의아스럽긴 하다.   

두 번째 서양철학사를 읽으면서 제대로 한번 철학을 읽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일찌감치, 내년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어쩌겠는가? 다만 “최선을 이룰 수 없다면, 최악을 피하라”는 홉스의 말처럼, 그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마음으로 두꺼운 책장을 넘겼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면서 문득,‘내가 왜 이러고 사는 것이지?’하는 의문이 들 때, 삶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철학이 아닐까? 철학사를 전공하는 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실용적인 접근을 해보자 싶었다. 다행히 맘에 들어오는 철학자가 몇 명 있었다.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노예출신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  

‘죽음이 우리에게 미소 짓고 다가오면, 미소로 답하라’ 말하는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노예를 ‘살아있는 도구’로 간주하던 고대세계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평생 노예 출신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를 스승으로 흠모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에픽테토스는 1차 레이스 때,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철학자였다. 니체에 관한 책은 몇 권 사두었지만, 아직은 손을 대지 못했다. 자신의 운명관을 ‘아모르 파티’로 나타낸 니체 또한 올라가 보고 싶은 산이다.  

내용이 쉽지 않아서 그렇지, 책의 목차와 구성은 매우 심플하다. 솔직히 책 자체가 욕심이 났다. 2월에 샀을 때는 ‘도대체 이 두꺼운 책을 누가 읽나?’ 했는데, 지적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의학, 놀라운 치유의 역사’ 라는 책을 샀는데, 나도 그런 무지막지한 책을 한번 써보고 싶다는 난데없는 욕심이 생겼다. 두고 두고 평생 천천히 읽을 요량이다.   

러셀의 해박한 지식에 기죽고, 재치있는 표현에 웃다가, 그렇게 이번주도 시간이 흘러갔다. 연구원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책을 쓴 저자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진 것이다. 러셀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대단한 책을 읽다보면, 저자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그의 관한 일화 중에서는 아래의 내용이 마음에 들어온다. 그의 사랑 애기다..

러셀은 여든 살이 되었을 무렵, 무려 마흔 살이나 차이가 나는 네 번째 부인 에디트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녀를 만나게 되면서 “드디어 나의 긴 생애 동안 갈망하던 사랑을 찾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내가 사랑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은 첫째, 사랑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사랑은 때때로 나의 전 생애까지 포기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 둘째, 사랑은 고독으로부터 나를 건져내 준다. 사무치게 외로운 의식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벽의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경악스러운 고독에서 구해 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신비스러운 하늘의 조짐을 눈치 챌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랑을 얻으려고 그토록 고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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