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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8일 07시 46분 등록
1469년 피렌체 중류층에서 태어났다. 1495년 피렌체 공화국 공무원이 된다. 그는 대학을 다니지 못했지만, 능력을 인정받았다. 1498년부터 피렌체의 제2서기관장직으로 내정과 군사를 담당하였으며, 대사로도 활약했다. 

당시 피렌체 공화국은 메디치가의 몰락으로 집권한 사보나롤라의 실정으로 궁지에 몰렸다. 프랑스왕국에 치우친 외교로 나폴리왕국과 베네치아공화국, 로마교황청과 갈등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서기관이자 공화국 최고의결기구인 10인위원회 비서였던 마키아벨리는 이들 주변국과 교섭을 수행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피렌체 공화국의 부흥을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무능한 정부 때문에 궁지에 몰리기만 했다. 피사를 획득하기 위한 전쟁에서 실패하였고, 로마냐공국의 체사레 보르자를 만나 피렌체 공화국과 우호관계를 맺었다.

피렌체 공화국의 군사력은 모두 용병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자국을 보호할 힘이 없었다. 마키아벨리는 공화국 자위력 확보를 위한 징병정책을 추진하였다. 피렌체 공화국의 도시민과 농민을 전시때 병사로 모병하는 제도였다. 1509년 이탈리아에 남아있던 에스파냐 패잔병을 앞세운 메디치가가 프라토를 공격해오자 마키아벨리의 국민군은 패배하고 만다. 그해 8월 피렌체로 공격해오자 피렌체 공화국의 대통령은 달아나고 국민군은 싸움한번 하지 않고 항복하고 말았다. 피렌체로 복귀한 메디치가는 공화제를 유지하였지만 실질적인 지배를 하는 참주제를 시행하였다. 11월 마키아벨리는 체포된 후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1년간 피렌체시에서 추방되었다. 1513년 반메디치 음모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지하감방에 감금되었으며 그해 3월 조반니 데 메디치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자 사면되어 석방되었다. 이후 마키아 벨리는 반메디치 세력으로 분류되어 메디치가의 의심을 계속 받았으며 피렌체를 떠나 교외의 머물며 빈곤과 실의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1513년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완성하여 교황 레오 10세의 조카인 메디치 가의 젊은 로렌초에게 헌사와 함께 바쳤다. 그러나 다시 정치에 참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 그의 노력은 또 다시 좌절되었고, '군주론'은 필사본 형태로 주변의 지식인들에게 읽혀졌다. 

1527년 로마의 약탈'이라는 사건으로 로마가 함락된다. 피렌체 공화국은 메디치 가를 추방해버리고 공화정 체제를 부활시켰다. 피렌체에 자유가 찾아왔다고 생각한 마키아벨리는 조국에서 다시 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피렌체 공화국의 서기관직에 선출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메디치 가를 위해 일했다는 이유로 거부되었으며, 그로부터 한 달이 안 되어 병으로 쓰러졌고 일어나지 못했다. 1527년, 58세의 나이다. 

저서로는 '로마사론' '전술론', '만드라골라' '카스루치오 카스트라카의 생애', '피렌체사' , '로마사 논고' , 군주론'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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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가 국가를 통치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권력에 대한 의지, 야심 용기가 있어야 하며, 필요하면 불성실, 몰인정, 잔인해도 무방하고, 종교까지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 '마키아벨리즘'이라 불리게 된 권모술수주의를 주장하였다.하여 위험한 서적으로 취급되었다. 

1513년경부터 '군주론'을 구상하기 시작한 마키아벨리는 처음에는 메디치가의 줄리아노에게 헌사와 함께 이 책을 바치려고 했다. 그러나 쥴리아노가 병으로 일찍 죽게 되자, 메디치 가의 젊은 군주 로렌초에게 바쳤다. 당시 피렌체는 1494년 추방되었던 메디치가문이 교황 율리우스 2세의 후원으로 다시 복귀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공화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메디치가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즉 메디치가 및 피렌체의 황금시대를 만들어 '로렌초 일 마그니피코(위대한 로렌초)의 시대'라 불리던 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상태였지만, 메디치 가의 추기경 조반니가 교황 레오 10세로 추대되면서 메디치 전성시대를 맞고 있었다. 

20여년 간 피렌체 공화국을 위해 봉사했지만 반메디치 인물로 찍힌 마키아벨리는 공직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정치에 참여하고 싶어했으며 그러한 기대로 자신의 연구논문을 메디치 가의 군주에게 바치게 된 것이다. 

'군주론'은 필사본 형태로 주변 사람들에게만 읽혀지다가 책으로 출간된 것은 마키아벨리가 죽은 지 5년 후인 1532년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고전이 되었다. 의외로 단숨에 읽어낼 수있는 아주 짧은 분량이다. 주제를 이끌어가는 명쾌한 문체와 생기 넘치는 수사법에 대한 문학적인 평가는 이견이 없다. 

이 책을 쓸 당시, 마키아벨리의 심정은 '다급함'이었을 것이다. 이 책이 메디치가에 받아들여져야 자신이 복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책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야 한다. 서두에서 말한대로, 어떤 수사적 기교도 없이 절실한 내용만을 담고 있다. 책의 분량이 많지 않는 것은, 자신의 현학을 드러내기 보다, 독자인 로렌초에게 조금이라도 강렬하게 읽혀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군주론'은 '하면 좋은' 집필이 아니라, 마키아벨리의 '밥줄'이 걸린 일이었다. 절실하며, 진실되다. 여느 문체와 다른 이유다. 

'군주는 어떻게 하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가 이 책의 주제다. 그 방법으로서 서술하는 내용은, 점잖지 않고 평화롭지 못하다. 허점을 보여서는 안되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든다.라고 요약된다. 동양의 '손자병법'과 상통한다. 전쟁은 그만큼 이기기 어려우며, 승리를 하더라도 유지하기도 어렵다. 이 책의 백미는, 인간의 본성을 꿰뜷는 서술에 있다. 이 책은 정치서라기 보다, 심리학서에 가깝다. 

아쉬운 것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서술이 본인 마키아벨리 개인적인 경험에만 근거한다는 것이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많은 자료를 취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심리학이나, 정신분석같은 학문도 없었다. 군주론을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쓴다면 보다 완성도가 높아지리라 생각한다. 

IP *.123.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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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11.08 09:12:57 *.30.254.21
다급함..
현학을 드러내기 보다 절실하기에..
강렬하게 읽혀지는 이유는 절실하고 진실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서에 가깝다..

가끔씩 보여주는 너의 통찰에도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너가 쓸 책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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