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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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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6일 05시 48분 등록
 

북리뷰 37-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20101206


1. 저자에 대하여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 1887-1948) 는 188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배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교사와 시인으로 활동하다 생화학자인 스탠리 베네딕트와 결혼했다. 1921년 34세의 나이에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하여 절대적인 스승 프란츠 보아스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인류학 연구에 빠져들었다. 아메리칸 인디언 종족들의 민화와 종교를 연구하여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저서로는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1934), <종족 Race:Science and Politics>(1940), 이 책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1946) 등이 있다.
만년의 명작인 < 국화와 칼>은 1944년 6월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인데, 저자 자신은 일본을 방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학문적 연구에서 그 대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쪽이 오히려 엄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 저서는 입증하고 있다.
베네딕트는 문화를 인성의 확대로 보았으며, ‘문화와 인성'이라는 미국 인류학의 가장 주도적인 한 영역을 개척한다. 후에 그녀는 미국인류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47년에는 컬럼비아대학에 현대문화연구소를 설치, 대규모 연구 과제를 추진하다 61세가 되는 이듬해 사망하였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서문

[P. 6]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루스 베네딕트가 말했듯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록 눈에 거슬리더라도 그 차이를 인정할 줄 아는 냉철한 인식이 요구된다.

[P. 6] 세계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통하는 감성적 형제애가 지배하는 곳이다. 세계 속 각 개인은 특정한 관심과 역사, 경험에 의해 형성된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각 개인에 대해 진실이라면 국가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베네딕트가 말한 이른바 ‘어느 정도의 관대함’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즉 다른 나라의 문화가 지닌 관점이 비록 자신의 견해와 충돌하더라도, 그것 나름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쉽게 흥분하는 열광자는 훌륭한 문화인류학자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P. 6-7] 특히 극심하게 충돌하는 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우 비상한 관대함이 요구된다. 이런 관대함이 더욱 필요한 이유는 적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만이 사용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P. 7] 루스 베네딕트가 194년 6월 미국 정부로부터 일본문화에 대한 분석을 의뢰받았을 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이라는 먼 나라 사람들에 대해 다른 미국인들처럼 편견을 고수했다면, 매우 수월한 작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랬다면 한편으로는 완전히 쓸모없는 작업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P. 8] 일본 전문가도 아니고 일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베네딕트는 오직 문서 자료(학술 서적과 영어로 번역된 일본 소성 등)와 영화, 일본계 미국인들과의 인터뷰에 의존했다.

[P. 8] 특정 민족에 고유한 ‘민족성’이 존재한다는 고전적 문화인류학의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다. 

[P. 8] 인종과 국가에 대한 준 과학적 이론들이 제시되면서 민족 집단의 고유한 특성을 추출해낼 수 있다는 주장은 상당 부분 설득력을 잃었다. 이제 이론가들은 한 국가의 단일문화적 정체성보다 문화가 갖는 다문화적 특성, 혹은 교접성(hybridity)을 더 강조하고 있다.

[P. 9] 만약 국가적 나르시시즘에 입각했다면 그녀의 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신 베네딕트는 진정으로 ‘타자’ 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녀에게는 그 타자의 윤곽과 특성이 의도했던 만큼 명확히 드러나는가가 중요한 문제였다.

[P. 9-10] 죄책감과 스치심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녀는 절대적인 기준을 정하지 않고 다만 특정 부분에 더 강조점을 둘 뿐이었다.     

[P. 10] 일본 사회는 서구 사회보다 절대적인 윤리 기준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좋은 행위에 대한 외부의 인정’에 더 의존한다. 일본인들은 타인의 의견에 매우 민감하다고 베네딕트는 말한다. 수치심이란 사회적인 의무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생긴다. ->개인의 무기력이 의무수행을 못하면 수치심이 생길 수 있다. 더 아래로 추락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주어진 의무는 수행해야 한다. 나는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를 경멸한다.

[P. 10] 죄책감은 발각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 느끼지만,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여 생긴다.

[P. 10-11] 연합군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일 중의 하나는, 죽음으로 싸울 것을 맹세했던 일본군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유순하고 우호적으로 변화한 사실이었다.

 베네딕트는 이 사실을 천황에 대한 일본인들의 깊은 의무감으로 설명한다.

[P. 11] 천황에 대한 충성은 일본인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이다. 일본인들은 천황을 위해서라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천황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참을 수 없는 것도 참으라’, 항복하라, 그리고 평화로운 신 (新) 일본을 건설하라고 했을때 일본인들은 즉시 그 말에 따랐다.

[P. 11-12]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에게는 삶을 바라보는 견해에 조건성(conditionality)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일신 종교가 제시하는 윤리적인 절대 기준이 없는 일본인들에게, 윤리나 삶의 목적 등 모든 것이 상황의존적일 뿐이다. 따라서 그렇게 호전적이던 민족이 쉽사리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P. 13] 이책이 곤전인 것은 저자의 지적인 명확함, 그리고 유려한 문체 때문이다. 베네딕트는 난해한 용어를 쓰지 않고 복잡한 사상을 쉽게 풀어내는 능력을 가진 작가였다. 문체는 그의 사람됨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베네딕트는 훌륭한 인간성과 영혼의 관대함을 지닌 작가였다.


역자 서문  


[P. 14] 이책은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의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Patterns of Japanese Culture(1946)를 번역한 것이다.

[P. 14]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문화의 특성을 ‘국화와 칼’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일본 문화의 틀을 탐구하고 있다.

[P. 14] 저자가 목적으로 삼은 것은 평균적 일본인(Average Japanes)의 행동과 사고의 틀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란마드로 하지恥(수치, 부끄러움)을 탐구하는 것이다. 원래 이런 문화인류학적 방법은 역사주의 방법과는 다르고, 따라서 흔히 우리가 입문적으로 어떤 나라의 문화나 산물을 이해하는 방법론과도 다르다.

[P. 15] 그런 역자주의 방법은 주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하면 이 책의 방법론은 그런 주관성을 극복했다는 의미에서 학문적 객관성을 얻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정수는 계층제도(hierarchy)의 분석에 있다. 그 계층제도가 근대사회로 넘어올 때 어떠한 질서와 충동을 일으키는가에 대한 고찰은 제3장 ‘메이지 유신’ 속에 선명히 드러나 있다.



제1장 연구 과제 - 일본

[P. 19] 일본인은 미국이 지금 까지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 가운데 가장 낯선 적이었다. 대국과의 전쟁에서 이처럼 현격히 이질적 행동과 사상적 특성을 고려해야 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P. 19] 일본인은 서양 여러 나라가 인간의 본성에 비춰 당연히 받아들인 전시관례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P. 20] 일본이 문호를 개방한 아래 75년간 일본인에 대해 쓴 저작에는, 일찍이 세계 어느 국민에게도 쓰인 적이 없는 ‘그러나 또한(but also)’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20]

[P. 20] 그들이 다른 사람의 평판에 신경을 쓰며 행동한다면, 그 말에 이어 그들은 참으로 흔들리지 않는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P. 20-21]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를 가꾸는 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국민에 관한 책을 쓸 경우, 동시에 이 국민이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린다는 사실을 기술한 또 다른 책이 그 국민의 성격을 보충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없다.

[P. 21] 그렇지만 이런 모든 모순이 일본에 관한 책에서는 날줄과 씨줄이 된다. 이런 모순은 모두가 진실이다. 칼도 국화와 함께 그림의 일부분을 구성한다. 일본인은 최고로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얌전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불순하면서도 예의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력이 있고, 유순하면서도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고,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고,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고,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놀랄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를 때는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 그들의 병사는 철저히 훈련을 받지만 또한 반항적이다.

[P. 23] 일본인의 사상이나 감정의 특성에 배어있는 분화의 틀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P. 24] 적이 어떤 방식으로 인생을 보는가를 적의 입장에서 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P. 24] 나는 전시에 일본인이 보여준 행동을, 부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긍정적인 요소로서 이용하도록 노력했다. 나는 그들의 전쟁 수행 방식을 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문제로 바라보았다.

[P. 26] 많은 동양인들과는 달리 일본인은 자기 자신을 기록하는 경향이 강했다. 일본인은 그들의 세계 확장 계획은 물론 일상의 사소한 일에 관해서도 기록했다. 일본인은 놀랄 만큼 솔직했다. 물론 일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전체 모습을 그대로 기록하지는 않는다. 어느 민족도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P. 27] 일본인은 우리가 볼때 용납할 수 있는 행위를 맹렬히 바난하면서도, 오히려 위법으로 보이는 행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용인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태도의 배후에는 무엇이 숨어있는가?

[P. 30] 인류학자는 경험상 아무리 기과한 행동이라도 결국은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P. 30] 인류학자가 연구하려는 부족의 생활양식 속에는 처음부터 당연한 것으로 예상한 것은 하나도 없어야 한다. 거기서 인류학자는 소수의 선택된 사실만이 아니라 일체의 모든 것을 관찰해야 한다.

[P. 30] 인류학자는 평범한 사실을 연구하는 특별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P. 31] 사회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하는 일정한 방식과 그런 상황을 평가하는 일정한 방식을 승인한다. 그 사회의 사람들은 이런 해결 방법을 전 세계의 본질로서 이해한다. 그들은 아무리 곤란하더라도 그것을 하나의 전체적인 체계로 묶는다.    

[P. 32-33] 종교적 교리와 경제적 관습과 정치는 결코 명료하게 격리된 작은 연못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넘어 흘러간다. 그래서 그 물은 서로 섞여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모르게 합쳐진다. 이 사실은 항상 진리이므로 연구자는 그 연구가 경제, 성생활, 종교 또는 어린아이 양육 등 여러 가지 사실 속에 분산된 것처럼 보일수록, 사회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을 더욱 잘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P. 34] 어떤 국민이 자기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렌즈는 다른 국민이 사용하는 렌즈와는 다르다. 우리는 안구를 의식하면서 사물을 보지 않는다.

[P. 34] 이 작업은 민족 간에는 차이가 있다는 강인한 신념과 그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성을 함께 필요로 한다.

[P. 35] 차이가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비로소 안심한다. 그들은 차이를 존중한다.

[P. 36] 국민적 차이의 체계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강인한 신념과 함께 어느 정도의 관용이 필요하다. 종교의 비교 연구는 사람들이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매우 관대했을 때에만 활기를 띠었다.

[P. 37] 이 책에 기술된 사항의 이상적인 전형은 이른바 서민이다. 서민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 각각 특수한 경우에 행한 일이 아니라, 누구나 그런 조건 아래서는 그런 행위를 한다고 인정할만한 사항을 기술했다. 이런 연구의 목표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상과 행동의 태도를 기술하는 데에 있다. -> 사람에 대한 비교도 이러해야 한다.

[P. 39] 여론 조사 결과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잇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를 이해하려 할 때는, 그 나라 사람의 습관이나 가정에 관한 질적 연구를 조직적으로 행한 뒤에야 비로소 여론조사를 유효하게 이용할 수 있다. 신중하게 표본을 만듦으로써 여론 조사는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를 발견할 수가 있다.

[P. 40]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이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가이다.

[P. 40-41] 그 체계는 매우 독특했다. 그것은 불교적인 것도 유교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일본적인 것이었다. 일본의 정점도 단점도 모두 포함한 것이었다.

  

제2장 전쟁 중의 일본인

[P. 43] 서양 여러 나라는 전쟁을 포함한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P. 43-44] 이 연구의 목적은 일본인의 문화와 행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데 있다.

[P. 44]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자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P. 45] 이런 태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계층제도에 대한 신앙과도 같은 신뢰. 그것은 평등을 사랑하는 미국인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층제도가 일본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그 제도에 어떠한 장점이 있다고 여기고 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본은 승리의 가능성을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바탕 위에 놓고 있었다. 정신력이 반드시 물질력을 이긴다고 부르짖었다.

[P. 46] "만일 우리가 숫자를 두려워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적의 풍부한 자원은 이번 전쟁으로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일본이 이기고 있을 때에도 일본의 정치가, 대본영 군인들은 이 전쟁은 군비의 싸움이 아니라 미국인의 물질 신앙과 일본인의 정신 신앙의 싸움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또한 미국이 이기고 있을때에도 그들은 이런 전쟁에서는 반드시 물질력이 지게 마련이라고 거듭강조했다.

[P. 47] 힘의 부족은 우리가 개의할 바가 아니다.

[P. 48] 그들의 군대용 교과서 첫머리에는 큰 활자로 ‘필독필승’이라는 문구가 씌어 있다. 소형 비행기로 미군의 군함에 뛰어들어 자폭하는 조종사들은 물질에 대한 정신적 승리의 교훈이 되었다. 이 조종사들을 가미카제 특공대라 한다. 가미카제는 13세기에 칭기즈 칸이 일본을 침략했을 때, 그 수송선을 전복시켜 일본을 구한 성스러운 바람을 가리킨다.

[P. 51] 계층제도나 정신력의 우월뿐 아니라, 일본인이 전쟁 중에 언급한 모든 종류의 말은 비교문화 연구자에게 일본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되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안심이나 사기란 마음속의 각오의 문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P. 52-53] 기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연히 부딪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시기가 찾아오면 반드시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내야 한다.   

[P. 53-54] 미국인은 생활 양식을 끊임없이 도전해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하고,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은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양식에서만 안심을 얻을 수 있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P. 54] 일본인이 전쟁 중 끊임없이 되풀이한 또 하나의 주제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매우 잘 나타내준다. 그들은 계속 “세계의 눈이 우리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 있다.”는 문구를 입에 올렸다. 따라서 일본인은 일본 정신을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

[P. 54] 일본인의 태도에 관한 문제중 가장 유명한 것은 천황에 대한 태도이다. 천황은 신하에게 대체 어느 정도의 지배력을 가질까?

[P. 56] 일본의 포로들은, 잡혔을 때 무엇을 말하고 무엇은 침묵하라고 교육을 받지 않았다. .......이와 같이 포로가 되었을 때를 대비한 훈련을 받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의 무항복주의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P. 58] 독일군 포로들은 휘하의 장군이나 최고 사령부가 히틀러를 배신한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전쟁 준비의 책임은 최고 선동자인 히틀러가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본군 포로들은 황실 숭배는 군국주의 침략 전쟁 정책과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들에게 천황은 일본과 분리시킬 수 없는 존재이다. “천황이 없는 일본이란 진정한 일본이 아니다.” “천황이 없는 일본이란 생각할 수 없다.” “일본 천황은 일본 국민의 상징이며, 국민의 종교 생활의 중심이다. 천황은 초 종교적 대상이다.” 설령 일본이 전쟁에 패하였다 하더라도 패전의 책임은 천황에게 없다. “국민은 천황이 전쟁 책임을 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일 패전이 되더라도 책임은 내각과 군 지휘관이 져야 하며, 천황에게는 책임이 없다.”“설령 일본이 지더라도 일본인은 열 명이면 열 명 다 천황을 계속 숭배할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천황을 비판을 초월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회의적인 조사와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인식하는 미국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패전에 이르러 천황을 비판에서 배제한 것이 일본의 목소리였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P. 63] 미국인은 궁지에 몰린 사람들을 구조하는 모든 활동에 감동한다. 만일 ‘부상당한’사람을 구한다면 더욱 용감하고 영웅적인 행위가 된다. 일본인은 그런 구조 활동을 배척한다.  

[P. 65] 일본인의 병력 소모 이론을 극단적인 수준까지 이르게 한 것은 무항복주의였다. 서양의 군인들은 최선을 다해 싸운 후에 도저히 대적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항복. 그들은 항복한 뒤에도 여전히 명예로운 군인이라 생각하며, 그들이 살아 있음을 가족에게 알리기 위해 명단을 본국으로 통보해주기를 원한다. 그들은 군인으로서도 국민으로서도 또 자신의 가정에서도 모욕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본은 이런 상황을 전혀 다른 식으로 규정한다. 일본인에게 명예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다.

[P. 66] 일본인에게 포로가 된 미군은 단지 항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체면을 떨어뜨린 자가된다.

[P. 66] 많은 미국인이 포로수용소에서 웃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며, 또 그 웃음이 교도관을 얼마나 자극하는지를 진술하고 있다. 일본인의 관점에서 보면 포로란 치욕을 입은 자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P. 68] 서양 병사와 일본 병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일본 병사들이 포로로서 연합군에게 협력한 점이었다, 그들은 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규칙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명예를 잃었으며 일본인으로서는 생명이 끝났다.  



제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P. 71]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take one's proper station)"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아야 한다. 질서와 계층제도를 신뢰하는 일본인과, 자유와 평등을 신뢰하는 미국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계층제도를 하나의 가능한 사회기구로서 바르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계층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는 인간 상호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국가의 관계에서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의 기초가 된다. 우리는 가족, 국가, 종교, 경제생활 등 국민적 제도를 살펴봄으로써, 비로소 그들의 인생관을 이해할 수가 있다.

[P. 76]  우리는 (미국) 가족에게는 형식적 예의를 벗어 버린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예의범절을 배우고 세심하게 이행하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P. 78] 그것은 머리를 수그리는 사람이 사실은 자기 뜻대로 처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에서 상대방이 자기 뜻대로 행동할 권리를 승인하는 것이며, 절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 지위에 당연히 돌아가는 어떤 책임을 승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는 성별과 세대의 구별과 장자 상속권에게 입각한 계층 제도가 가정생활의 근간이다.

[P. 78] 그러나 효도의 성격은 중국과는 다른 일본의 가족 구조에 적합하도록 개조되었다. [P. 81] “부모에게 의견을 말하려는 자식은 머리를 기르려는 승려와 같다 그이유는?” 이에 대한 답은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P. 81-82] 알맞은 위치라는 것은 단지 세대 차이만이 아니라 연령의 차이에도 적용되다. 일본인은 극단적인 무질서 혼란 상태를 표현할 때,“난형난제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말은 우리의 “고기도 아니고 새도 아니다(Neither fish nor fowl)”라는 표현과 비슷하다. 실제 일본인의 사고로는 물고기는 물속에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남은 맏형으로서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P. 84] 일본에는 세대와 성별과 연령에서 오는 특권이 이처럼 크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멋대로 하는 독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대한 책무를 위탁 받은 인간으로서 행동한다.

[P. 85] 일본인은 가정생활에서 전제적인 권력을 존중하도록 배우지 않는다. 또한 쉽사리 권위에 굴복하는 습성을 기르지도 않는다. 가족의 의사에 복종하는 것은, 그 요구가 부당하더라도 가족 전체에 관계되는 문제라는 명분으로 요구한다. 즉, 공동체에 대한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요구한다.

[P. 85] 일본인은 누구나 우선 가정 내부에서 계층 제도의 습관을 배우고 그것을 경제활동이나 정치 생활 등 넓은 영역에 적용한다. 그가 실제로 집단 속에서 지배력을 가진 인물이든 아니든, 자기보다 위의 ‘분수에 맞는 위치’를 갖는 자에 대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경의를 표하도록 배운다.

[P. 87] 세계사에서 어떤 주권국가도 일본만큼 계획적으로 문명을 훌륭하게 수입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P. 88] 일본은 또 중국의 세속적 황제 사상을 채용하지 않았다. 황실을 의미하는 일본어 명칭은 ‘구름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며 일족만이 황제에 오를 수 있었다.   

[P. 91] 일본의 봉건사회는 복잡한 계층으로 나눠지고, 개개인의 신분은 세습적으로 정해졌다. 도쿠가와는 이 제도를 고정시켜 각 카스트별로 일상 행동을 세밀히 규정하였다.

[P. 91] 일본에는 황실과 궁정 귀족 밑에 신분 순으로 무사(사무라이), 농민, 공인, 상인의 네 가지 카스트가 있었다. ]

[P. 92] 상인계급은 천민계급의 바로 위에 놓였다. 미국인은 이런 사실이 의외라고 느끼겠지만 봉건사회의 실정에는 매우 적합한 일이었다. 상인계급은 늘 봉건제도의 파괴자였다. 실업자가 존경 받고 번영하면 봉건제도는 쇠퇴한다.

[P. 94] 사무라이와 다른 세 계급, 즉 농, 공, 상인과의 사이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이 세 계급은 ‘서민’이었지만, 사무라이는 그렇지 않았다. 사무라이가 그들의 특권으로서, 또 그 카스트의 표시로서 허리에 찬 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사무라이는 도쿠가와 시대 이전부터 전통적으로 서민에 대해 칼을 사용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P. 95] 도쿠가와 시대의 사무라이는 단순히 칼을 휘두르는 무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점차로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 고전극이나 다도 같은 평화로운 예능의 전문가가 되어갔다. [P. 99 ]쇼군이 계층제도의 최고 정점은 아니었다. 그는 천황으로부터 임명된 자로서 지배권을 장악했다.    

[P. 99] 일본에서 이중통치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12세기 이래 대원수(쇼군)가 실권을 박탈당한 천황의 이름을 가지고 이 나라를 통치했던 것이다.

[P. 102] 일본인은 다른 어떤 주권국보다도 그 행동이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지도처럼 정밀하게 규정되어 있다. 개인은 각각 정해진 사회적 지위 속에서 생활하도록 제약 되었다.

[P. 102-103] 일본에는 만일 현행의 행동 지도에서 허락받지 못한 일탈 행위는 반드시 교정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펴져 있다. 사람들은 이 지도를 신뢰했다. 그리고 그 지도에 표시된 길을 따를 때에만 안전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바꾸든가 저항하는 대신, 그것을 지키는 데서 자신의 용기와 고결함을 드러냈다. 여기에 명기된 범위는 이미 아는 세계이며, 따라서 일본인의 눈으로 본다면 신뢰할 수 있는 세계였다.

[P. 107] 일본은 자신의 고유한 장점을 이용하여 - 그것은 서양의 장점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 높은 지위에 있는 일군의 유력인사도 일반민중의 이론도 결코 요구하지 않는 목표를 이루어냈다.



제4장 메이지 유신

[P. 109] 일본 근대화 초기의 구호는 손노조이, 즉 ‘왕정을 복고하고 오랑캐를 추방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본을 외세에 짓밟히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천황과 쇼군의 ‘이중통치’속에 있었던 10세기의 황금시대로 복귀하려는 슬로건이었다.

[P. 111]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가장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1871년에서 1873년에 걸친 조선침략론이었다.

[P. 113] 19세기 전반에 겨우 중세에서 벗어난 일본은, 오늘날로 따지면 태국 정도의 약소국이었다. 그런 일본이 어느 나라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비범한 정치적 수완을 필요로 하는, 더군다나 놀라운 성공을 거둔 메이지 유신이라는 대사업을 계획하고 수행할 능력을 가진 많은 지도자를 배출했다. 그 지도자들의 장점은 물론 단점까지도 전통적 일본인의 성격에 깊이 뿌리 박힌 것이었다. 그 성격이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다.

[P. 113] 메이지 유신의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결코 이데올로기적인 혁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의 사업으로 취급했다.  그들이 머리 속에 그리고 있던 목표는 일본을 세계열강의 대열에 서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상파괴자가 아니었다.

[P. 121] 일본의 정치 형태와 이와 유사한 서양의 사례의 차이는, 형식에 있지 않고 기능적인 점에 있다. 일본인은 과거의 체험을 통해서 만들어냈고, 그들의 윤리체계와 예절 속에 격식화되어 있는 낡은 복종의 관습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는 ‘각하’들이 ‘알맞은 위치’에 있어 직분을 다하며 반드시 그의 특권이 존중해준다. 그것은 해당 정책이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는 특권의 경계선을 넘는 것 자체가 괘씸한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국정의 최상층에서는 ‘국민의 여론’은 고려하지 않는다. 정부는 단지 ‘국민의 지지’만을 요구할 따름이다.

[P. 122] ‘모든 것을 알맞은 장소에 둔다.’  이것이 일본의 좌우명이다.

[P. 122] 메이지의 정치가들은 종교분야에서 장치에 비해 훨씬 기묘한 형식적 제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의 좌우명을 실천했을 뿐이다.

[P. 126]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교회에서도 약간의 맥주가 나오고

우리의 영혼을 데워줄 즐거운 불이라도 있다면,

우린 온종일 찬송가를 부르기로 하고, 기도드리기도 하면서 

교회를 빠져나와 방황하려는 생각은 갖지 않을텐데.

[P. 127] 전문적으로 종교적 고행에 몸을 바친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본에서 종교란 결코 위화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은 즐겨 먼 곳의 신사나 절에 참배하러 가지만, 이것 역시 휴일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P. 133] 일본에서 나리킨이란 일본의 장기놀이에서 온 말로, 여왕으로 승격된 졸을 의미한다. 나리킨은 아무런 계층적 권리도 없으면서, 거물처럼 장기판 위를 사납게 날뛰는 졸이다. 일본인은 사람을 속이고 이기적으로 이용하여 돈을 모은 사람이 나리킨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이 나리킨을 향한 일본인의 비난은 미국인이 ‘성공한 하인’을 대하는 태도와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P. 133] 이와 같이 일본인은 끊임없이 계층제도를 고려하면서 사회의 질서를 다듬어나갔다. 가정이나 개인 간의 관계에서는 연령, 세대, 성별, 계급 등이 알맞은 행동을 지정한다. 정치, 종교, 군대, 산업에서는 각각의 영역이 신중하게 계층으로 나뉘어 있어,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자신들의 특권의 범위를 넘어서면 반드시 처벌 받는다. ‘알맞은 위치’가 보장되어 있는 동안 일본인은 불만 없이 살아간다. 그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최대의 행복이 보호되는가 하는 의미에서는 ‘안전’하지 않은 경구가 종종 있지만, 그럼에도 계층제도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이유에서 안전하다.

[P. 134-135] 일본인은 스스로에게 요구한 일을 다른 나라에도 요구할 수는 없었다.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그들은 ‘각자 알맞은 지위를 받아들이는’ 일본의 도덕체계가, 다른 곳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른 국가에는 그런 도덕률이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일본만의 산물이었다. 일본의 저술가들은 이 윤리체계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그것에 대해 기술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도덕체계를 이해해야 한다.



제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P. 137] 영어에서는 곧잘 ‘과거를 물려받은 자(heirs of the ages)’란 표현을 사용해왔다.  

[P. 137-138] 그러나 동양 여러 국민은 완전히 반대이다. 그들은 과거에 빚을 진 사람들이다. 서양인이 조상숭배라고 부르는 것은 대부분 동양인에게는 숭배가 아니다. 또한 조상숭배라 하더라도 전적으로 조상에게만  향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일체의 과거에 지고 있는 큰 채무를 인정하는 하나의 의식이다.

[P. 138] 일본에서 의義란 조상과 동시대인을 포함하는 거대한 채무의 망상 조직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는 것이다.

[P. 138] 남에게 빚이 있는 사람은 매우 화를 잘내는 법인데, 일본인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또한 이런 채무가 일본인에게 갖가지 큰 책임을 지게 한다.

[P. 139] 온의 여러 용법을 모두 관통하는 의미는, 사람이 짊어질 수 있는 부담, 채무, 무거운 짐이다. 사람은 윗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다. 윗사람이 아니거나, 적어도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 행위는 불쾌한 열등감을 준다. 일본인이 “나는 누구에게서 온을 입었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누구에게 의무의 부담을 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들은 채권자나 은혜를 베푼 사람을 온진이라고 부른다.

[P. 141] 일본인은 이 땅에서 태어나 안락한 생활을 누리며 자기 신변의 크고 작은 일이 잘 되어간다고 느낄 때, 언제나 그것을 한 사람이 내려준 은혜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모든 역사 시대에 일본인이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그들이 소속하는 세계의 최고 윗사람이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방 영주, 봉건 영주, 쇼군 등으로 변했다. 오늘날엔 그것이 천황이다. 그러나 윗사람이 누구인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몇세기에 걸쳐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인의 습성 속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P. 142] 일본인은 조상숭배의 대상을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최근의 조상만으로 한정한다. 이런 사실은 일본인에게, 자신이 유년시절 조상에게 현실적인 신세를 졌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P. 143] 일본인은 또한 교사와 주인에 대해서도 특수한 온을 느낀다.  

[P. 143] 채무의 윤리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채무자가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는데 큰 불쾌감을 느끼지 않아야 하고, 또 자신이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P. 145] 비교적 인연이 먼 사람에게 뜻밖의 은혜를 입는 것을 일본인은 가장 불쾌하게 생각한다.

[P. 145-146] “얼마나 좋지 않은 느낌인가를 확실히 말하는 편이 오히려 낫습니다. d대까지 그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온을 입었다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P. 146] 아리가토는 “이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Oh this is difficult things)를 의미한다. 일본인은 보통이 ‘쉽지 않은 일’이, 손님이 물건을 삼으로써 그 상점에 주는 크고도 대단한 은혜라고 설명한다.

[P. 146] 상점 주인은 대체로 ‘스미마센’이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이것은 끝나지 않았습니다”라는 뜻이 된다. 

[P. 147] 당신은 예의 바르게 그것을 받으면서 느끼는 마음속의 괴로움을 고백해야 한다. “이 사람은 지금 나에게 온을 베풀었지만,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이 사람을 만난 일이 없다. 나는 이 사람에게 이쪽에서도 온을 제공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런 은혜를 받아서 꺼림칙하지만 사죄하면 약간은 마음이 편해진다. 감사를 나타내는 말 중 스미마센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리라. 내가 이 사람에게서 온을 입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은 모자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자. 그 이상은 나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니까.”

[P. 147]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입었을때, 일본인이 감사의 뜨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는 말은 ‘가타지케나이’다. 이말은 ‘모욕’, ‘면목없음’을 의미하며 한자로는 ?으로 표현한다.

[P. 148] 사람은 끊임없이 상반된 감정을 품으면서 온을 입는다. 일반적으로 인정된 관계구조에서, 온이 내포하는 커다란 채무는 때로는 사람들을 자극시켜 전력을 다해 은혜를 갚게 만든다.

[P. 150] 이처럼 사소한 일에 관한 신경과민이나 쉽게 상처 받는 현상은, 미국에서는 젊은 폭력배들의 기록이나 신경쇠약증 환자의 병력기록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것은 미덕이다.

[P. 155] 설령 그것이 자녀일지라도 일단 누구에게 과도하게 무거운 온을 입히는 길을 택했다면, 상당한 장애에 부딪힐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방침을 변경할 수 없다.

[P. 155] 자식에게 온을 베풀기 위해 아무리 큰 희생을 치렀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용해서 후일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온을 현재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P. 156-157] 사랑, 친절, 너그러운 마음 등은 미국에서는 부수적인 대가가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존중받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런 행위를 받은 사람은 채무자가 된다. 일본인이 잘 쓰는 속담이 있다. “온을 받은 데에는 더없이 타고난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다.”



제6장 만분의 일의 은혜 갚음

[P. 159] 일본에서는 보은을 온과 아주 별개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P. 159] 일본인에게 온은 중요하고도 결코 소멸할 수 없는 채무다.

[P. 159] 사람의 체무(온)는 덕행이 아니다. 변제가 덕행이다. 덕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보은에 몸을 바칠 때 시작된다.

[P. 161] 채무에 대한 한없는 변제는 기무라고 불린다. 이에 관해 일본인은, “받은 온의 만분의 일도 결코 갚을 수 없다”고 말한다. 기무는 부모에 대한 보은인 고考와 천황에 대한 보은인 주忠라는, 두 종류의 의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 두게의 기부는 모두 강제성이 있어 어느 누구도 면할 수 없다. 일본의 초등 교육을 기무교육이라고 부르는 것은 참으로 적절한 명칭이다.

[P. 161] 모든 기무는 자동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가중되며, 또 일체의 우발적 사정을 초월한다. 이 두 종류의 기무는 모두 무조건적이다.

[P. 165] ‘진기를 행한다’는 말은 또한 ‘법의 범위 밖’이라는 의미, 즉 무법자 사이의 덕을 말할 때 쓴다.    

[P. 169] 일본인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인식이 앞서기 때문에 이것을 ‘외부’의 간섭으로 보지 않는다.

[P. 178-179] 미국에서는 자신의 일은 자신이 처리한다는 태도에 의존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자신이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 이 두가지 태도는 모두 난점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난점은 법규가 국가 전체에 이익이 되는 경우에도 국민의 승인을 얻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일본의 난점은 무엇보다 어떤 사람의 온 생애를 뒤덮을 만한 큰 부채를 지우기는 어렵다는 점에 있다.



제7장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P. 183] 일본인이 잘 쓰는 말에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기무를 갚아야 하는 것처럼 기리도 갚아야 한다. 그러나 기리는 기무와는 종류가 다른 일련의 의무이다. 기리는 인류학자가 세계 문화 속에서 찾아낸 여러 가지 별난 도덕적 의무의 범주에서도 가장 드문 것에 속한다. 그것은 특히 일본적인 것이다. 주忠와 고考는 일본이 중국과 공유하고 있는 덕목이다.

[P. 183-184] 기리는 일본이 죽국의 유교에서 받아들인 것도 아니고 동양의 불교에서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일본 특유의 범주다. 기리를 고려하지 않으면 일본인의 행동방침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인은 누구나 행위의 동기나 명성, 혹은 본국에서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딜레마에 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기리를 입에 담는다.

[P. 184] 서양인의 이장에서 보면, 기리에는 옛날에 받았던 친절에 대한 답례에서부터 복수의 의무에 이르기까지 서로 이질적인 여러 잡다한 의무가 복잡하게 포함되어 있다.

[P. 184-185] ‘기리’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세상에 대한 기리’-글자 그대로는 ‘기리를 갚는 것’-는 동년배에게 온을 갚는 의무이다. 또 ‘이름에 대한 기리’는 대체로 독일인의 ‘명예(die Ehre)’같은 것으로, 자신의 이름과 명성이 비난으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는 의무다. 기무가 태어나자마자 생기는 친밀한 의무의 수행이라면, 세상에 대한 기리는 계약 관계의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기리는 법률상의 가족에 대한 일체의 의무를 포함하고 기무는 직계 가족에 대한 일체의 의무를 포함한다.

[P. 186] 어떠한 경우에도 데릴사위의 기리는 특히 무겁다.

[P. 187] 어쨋던 기리는 아주 괴로운 일이자 ‘본의 아닌 일’이다. 따라서 ‘기리 때문’이라는 표현은 일본인에게는 번거로운 관계를 나타내는 데 적합한 말이다.

기리는 오직 법률상의 가족에 대한 의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숙부와 숙모, 조카들에 대한 위무까지도 같은 범주에 든다. 일본에서는 이와 같이 비교적 가까운 친척에 대한 의무를 고와 같은 계열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본과 중국의 가족관계의 큰 차이점 중 하나이다,

 [P. 190] ‘기리를 안다’는 것은 목숨을 바쳐 주군에게 충절을 다한다는 것이다. 주군은 그 대신 가신을 보살핀다. ‘기리를 갚는다’는 것은 자기가 일체의 신세를 지고 있는 주군에게 목숨까지도 바친다는 것이다.

[P. 191] 일본인은 복수의 주제를, 죽음을 건 충절과 마찬가지로 흔쾌히 찬양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모두 기리였다. 충절은 주군에 대한 기리였고, 모욕에 대한 복수는 자신의 명예에 대한 기리였다. 일본에서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다.

[P. 191] 현대에 들어 ‘기리를 갚는다’는 것은 자신의 주군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사람에게 온갖 종류의 의무를 이행하는 일이다.

[P. 192] 기리의 규칙은 엄밀히 말해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하는 갚음의 규칙이다.

[P. 193] 기리의 세계를 부채를 상환하는 미국인의 생각과 비교해보면, 일본인의 태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P. 193] 더구나 인생의 모든 접촉은 반드시 이런저런 기리를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미국인의 입장에서 기리를 초래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가벼운 기분으로 하는 사소한 말이나 행동까지 하나하나 장부에 기록해두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복잡한 세상에서 끊임없이 방심하지 말고 걸어 다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P. 193-194] 기리는 정확히 같은 양으로 갚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기리는 기무와 구별된다. 기무는 아무리 애써도 도저히 완전하게는, 아니 완전에 가까운 정도까지도 갚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리는 무한정한 것이 아니다.

[P. 195] 일본인은 기리에 관해 서양의 채무 변제 관례와 비슷한 또 한가지 관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갚는 기한이 늦어질수록 마치 이자가 느는 것처럼 커진다는 것이다.

[P. 196] 기리에 몰린 인간은 때때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커진 부채의 변제를 강요당한다.



제8장 오명을 씻는다

[P. 199] 이름에 대한 기리義理는 자신의 명성에 오점이 없도록 하는 의무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덕으로 이루어진다. 그 덕 가운데 어떤 것은 서양인에게는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P. 200] 또한 이름에 대한 기리는 비방이나 모욕을 제거하는 행위를 요구한다. 비방은 자신의 명예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벗어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예를 훼손시킨 자에게 복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자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이 양국단의 중간에는 여러 가지 가능한 행동 방침이 있다. 그러나 일본인은 자신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일을 그저 가볍게 얼굴을 찡그리는 정도로 끝내지는 않는다. 

[P. 200] 훌륭한 사람은 모욕도 그가 받은 은혜만큼이나 강하게 느낀다. 어느 쪽도 그것에 보답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훌륭한 행위다.

[P. 200-201] 사람이 기리를 지키고 오명을 씻는 한, 결코 침해의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다. 단지 빚을 갚아 셈을 치르는 것일 뿐이다. 일본인은 모욕이나 비방이나 패배가 보복되거나 제거되지 않는 한, “세상이 뒤집어졌다”고 말한다. 훌륭한 사람은 세상을 다시 균형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보복은 인간의 덕행이지, 인간의 본질적인 약점에 기초한 피할 수 없는 악덕이 아니다.

[P. 203] 복수는 이름에 대한 기라가 때때로 요구하는 하나의 덕에 불과하다. 이름에 대한 기리는 복수이외에 조용하고 감추어진 많은 행동을 포함한다.  체면을 소중히 여기는 일본인에게 요구되는 스토이시즘(stoicism), 즉 자제는 이름에 대한 기리의 일부분이다. 여자는 분만할 때 큰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되고, 남자는 고통이나 위험에 직면하여 초연해야 한다. 홍수가 마을을 덮을 때에도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은 최소한의 필수품만 챙겨서 높은 지대로 피난간다. 그들은 피난을 가면서도 아비규환이나 우왕좌왕 낭패를 당한 기색이 없다. 추분 무렵 폭풍우가 엄습해 올때에도 이와 가은 자제가 요구된다.

[P. 204] 사무라이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고통스런 표정을 보여서는 안 되며,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P. 205-206] 미국은 여러 가지 훌륭한 미덕을 지니고 있지만 진전한 존엄성이 결여되어 있다. “진정한 존엄성이란 항상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자기에게 알맞은 지위를 차지하는 일이다. 따라서 이것은 왕이나 백성이나 어떤 사람에게도 가능한 일이다.” 토크빌이라면 계급 차별은 그 자체로는 결코 굴욕적이지 않다는 일본인의 태도를 이해하였을 것이다.

[P. 208] 전문가로서의 이름에 대한 기리는 일본에서 대단히 업격하다. .... 교사는 “나는 교사로서 이름에 대한 기리 때문에 그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P. 208]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나쁜 말을 들으면 미친듯이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인은 일본인처럼 자기 방어에 급급하지는 않다.

[P. 209] 우리는 경쟁을 ‘바람직한 일’로 생각하고 크게 의지한다. 심리 테스트는 경쟁이 우리를 자극시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만든다는 것을 증명한다. 자극은 작업 능력을 향상시킨다. 우리는 혼자서 일할 때 경쟁자가 있는 경우만큼 성적을 올릴 수가 없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테스트 결과는 그 반대의 사실을 보여준다.

[P. 213] 일본에서는 어떠한 계획이건 성공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예절이다.

[P. 223]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상처 받기 쉽다. 따라서 타인을 괴롭히기보다는 너무도 쉽게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최근 수십 년간 일본소설에는 교양 있는 일본인이 빈번히 자아를 잃고 분노를 폭발 시키거나, 반대로 극단적인 우울에 빠져드는 모습이 거듭 묘사되고 있다. 이런 소설의 주요 인물은 권태를 느낀다. 매일의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도시에 싫증을 느끼고 시골에 싫증을 느낀다.

[P. 223] 이런 일본인 특유의 권태는 과도하게 상처 받기 쉬운 국민 공통의 병이다. 그들은 배척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내부로 돌려 스스로를 괴롭힌다. 일본 소설에 묘사된 권태는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의 괴리가 주인공이 경험하는 여러 권태의 기초가 되는 러시아 소설의 권태와는 전혀 다른 심적 상태이다.

[P. 225] 현대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적절한 방법으로 행한다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판을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는 자살을 죄악시 하여 절망에의 자포자기적인 굴복으로 치부하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해지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

[P. 226] 일본인은 미국인이 범죄사건을 크게 더들어대는 것처럼 자살 사건을 크게 떠들어대고, 미국인이 범죄에서 느끼는 대리 경험의 즐거움을 자살에서 느낀다. 일본인은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보다 자신을 죽이는 사건을 화제에 올리기를 좋아한다. 베이컨의 말을 빌리면, 일본인은 자살을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flagrant case(중대한 사건)’로 친다. 그것은 다른 행위를 논해서는 충족되지 않는 어떤 요구를 충족시킨다.

[P. 228] 많은 지식인이 열렬한 헌신에서 극단적 권태로 심리적 난파 상태를 경험한 것은 일본의 전통적 방식에 따른 것이었다. 1930년대 중반, 그들의 대다수가 그런 상태에서 벗어난 방법 또한 전통적이었다. 그들은 국가주의적 목표를 세우고 공격의 방향을 내면에서 다시 밖으로 돌렸다. 다른 나라를 전체주의적으로 침략함으로써 그들은 다시금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P. 231] 일본인의 영원불변의 목표는 명예이다. 타인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이 목적을 위해 쓰이는 수단은 그때 그대의 사정에 따라 취해지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하는 도구일 뿐이다.

[P. 233] 일본인은 침략의 근거를 다른 데서 구한다. 그들은 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를 원한다. 그들은 강대국이 존경을 받는 것은 무력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강대국에 필적하는 나라가 되기 위한 방침을 취했다. 일본은 자원이 부족하고 기술도 낙후되었기 때문에 서양 여러 나라 이상의 악랄한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비상한 노력을 경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그것은 일본인에게는 결국 침략은 명예를 위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P. 237] 일본인은 자신이 속해있는 세계에서 존경을 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보답이 된다. 그래서 ‘기리를 모르는 인간’은 아직도 ‘비열한 놈’이 된다. 그는 친구들에게 경멸을 받고 추방된다.



제9장 인정의 세계

[P. 239] 극단적인 의무와 변제와 철저한 자기 포기를 요구하는 일본의 도덕률은 당연히 개인적 욕망은 인간의 가슴속에서 제거해야 할 죄악이라고 낙인 찍을 것처럼 생각된다.  

[P. 239] 일본인은 자기 욕망의 충족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청교도적이지 않다. 일본인은 육체적 쾌락을 좋은 것,  함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쾌락은 추구되고 존경받는다. 그렇지만 쾌락은 일정한 한계내에 머물러야 한다.

[P. 240] 일본인은 육체적 쾌락을 일부러 함양한 후에, 엄숙한 생활양식에서는 쾌락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도덕률을 제정해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다. 그들은 육체적 쾌락을 마치 예술처럼 연마하고, 쾌락을 충분히 맛보았을 때 의무를 위해 그것을 희생한다.

[P. 243] 일본인에 대해 잘알고 있는 어느 서양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일본에 가면, 오늘밤의 잠과 휴식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의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잠은 피로호;복이나 휴식 보양 ed의 문제와는 떼어 놓고 생각해야 한다”

[P. 245] 일본인의 생각에 따르면,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단식하는 것은 얼마나 ‘단련’이 잘 되어 있는 가를 알 수 있는 뛰어난 감별법이다. 따뜻함을 멀리하고 수면을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식 또는 고난을 참고, 사무라이와 마찬가지로 ‘(먹지 않았으면서도) 이쑤시개를 입에 물 수 있다’ 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이다.

[P. 255] 일본인은 항상 덕은 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제10장 덕의 딜레마

[P. 261] 일본인의 인생관은 주忠, 고考, 기리義理, 진仁 인정人情 등의 표현에 나타난 그대로이다. 일본인은 ‘인간의 의무’가 마치 지도 위의 여러 지역처럼 몇 개의 부분으로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인생이 주의 세계, 고의 세계, 기리의 세계 진의 세계, 인정의 세계 그 밖의 많은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표현한다.  

[P. 264] 서양인은 일본인이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지 않고도 하나의 행동에서 다른 행동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P. 277] 일본인이 자신의 생활이나 자기가 알고 잇는 사람의 생활에 대해 판단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의무의 법도를 저버리고 개인적 욕망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을 약자로 판단한다.

[P. 289] 일본인이 ‘성실’이라는 말을 쓸 때의 근본적인 의미는 일본의 도덕률이나 ‘일본정신’에 의해 지도상에 그려진 ‘길 road’을 따르는 열정을 말한다. 

[P. 289] ‘성실’이 미국인이 생각하는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이것이 모든 일본어 문헌에서 주의해야 할 극히 유용한 말임을 알 수 있다.

[P. 300-301] 짧은 기간이라도 미국에 거주한 적이 있어 딱딱하지 않고 번잡스럽지 않은 미국의 행동 규칙을 받아들인 일본인에게는 , 전에 그들이 일본에서 보낸 답답한 생활을 되풀이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제11장 자기 수양

[P. 303-304] 미국은 자기 훈련을 위한 특별한 방법이 비교적 발달되지 않았다. 미국인이 자기 생애에서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운 사람은 만일 그럴 필요가 있다면 혼자서 나름대로 자기가 선택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훈련을 한다. 가지 훈련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그사람의 소망, 양심, 혹은 베블렌의 이른바 ‘기술적 본능(an instinct of workmanship)'에 따라서 달라진다. 

[P. 304] 그런데 일본인은 중학교 시험을 치르는 소년도 검도 시합에 출전한ㄴ 사람도 혹은 단순히 귀족 생활을 즐기는 사람도 시험을 치를 때 필요한 특정한 학과 공부뿐 아니라 별개의 자기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P. 309] 따라서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자기 수양의 습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인의 ‘자기훈련(self-discipline) ’ 개념에 일종의 외과적 수술을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문화에서 이 관념의 주위에 달라붙어 있는 ‘자기희생(self-sacrifice)’과 ‘억압(frustration)’이라는 부산물을 잘라내야만 한다. 일본에서는 훌륭한 경기자가 되기 위해 자기 훈련을 한다.

[P. 309-310] 갓 태어난 어린아이는 행복하지만 ‘인생을 맛보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정신적 훈련(혹은 자기 훈련, 즉 슈요修養)을 쌓아야 비로소 사람은 충실한 생활을 하고 인생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이 표현은 통상 “이리하여 비로소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번역된다. 자기훈련은 “배(자제력이 깃드는 곳) - 배짱 - 를 만든다. 그것은 인생을 확대한다.

[P. 310]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빌리면, 수양은 ‘자기 몸에서 나온 녹’을 갈아 떨어내는 것이다. 수양은 사람을 잘 갈아 예리한 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가 바라던 일이다.

[P. 312] 숙달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 사람은, 의지와 행동 사이에 일종의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일본인은 이 장벽을 ‘보는 나(observing self)’, ‘방해하는 나(interfering self)’라고 부른다. 그리고 특별한 훈련으로 이 장벽을 제거하면, 달인은 “지금 내가 하고 있다”는 의식을 전혀 갖지 않게 된다. 회로는 열려 있고 전류는 자유로이 흐른다. 행위는 노력 없이 행해진다. 그것은 일점적(one pointed)으로 변한다. 행위는 행위자가 마음속에 그린 형태와 한치도 다르지 않게 실현된다. 

[P. 321]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은 부처의 가르침이든, 경전이든, 신학이든 일체의 간접적인 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P. 322] 선의 스승들의 전통적 훈련은, 제자에게 ‘깨닫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훈련은 육체적인 경우도 있고, 정신적인 경우도 있으나 어느 경우든 마지막은 학습자의 내면적 의식에서 그 효력이 확인되어야 한다.

[P. 323] 스승을 모시는 일은 있어도, 스승이 서양적인 의미로 ‘가르치는’일은 없다. 왜냐하면 제가가 자기 이외의 원천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P. 331] 무가의 밑바탕에 있는 철학이 ‘죽은 셈치고 산다’는 태도의 밑바탕에도 숨어 있다. 이 상태에 있을 때 사람은 일체의 자기 감시, 일체의 공포심과 경계심을 버린다. 그는 죽은 자, 즉 이미 올바른 행동방침에 대해 걱정할 필요를 초월한 사람이 된다.

[P. 331] “나의 활동력과 주의력은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고, 목적의 실현을 향해 똑바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여러 가지 불안의 무거운 짐을 가진 ‘보는 나’는 나와 내 목표 사이에 가로막고 서 있지 않다. ‘보는 나’와 더불어 지금까지 내 노력에 방해가 되어왔던 긴장과 노력의 의식 및 의기소침에 빠지는 경향 역시 없어졌다. 이제 앞으로 나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

[P. 332] 그래서 그는 ‘숙달’의 수행을 쌓아 하지의 자기 감시를 배제하려 한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그의 ‘육관’은 장애가 제거된다. 그것은 자의식과 모순으로부터의 궁극적 해방이다.



제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

[P. 335] 일본의 갓난아이는 서양인이 상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방법으로 양육되고 있다.

[P. 336] 일본의 생활 곡선은 미국의 생활 곡선과 정반대이다. 그것은 큰 U자형 곡선으로, 갓난아이와 노인에게 최대의 자유가 허락된다. 유아기를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구속이 커지고, 결혼 전후의 시기에 이르면 자신의 의지대로 할 자유는 최저에 달한다.

[P. 342] 일본의 갓난아이는 보통 걷기보다는 말을 먼저 한다. 기어 다니는 것은 보통 좋지 않다고 여겨진다. 갓난아이는 만 한 살이 될 때까지는 서거나 걷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전통적으로 있어서, 어머니는 그 이전에 갓난아이가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을 일체 금지했다.

[P. 351] 훈계와 놀림 외에 아이의 훈육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수단은 아이의 마음을 달래 주의를 목적물에서 다른데로 옮기는 방법이다. 일본인은 때를 가리지 않고 아이에게 과자를 주는데 그것도 일반적으로 관심을 돌리는 수단의 일부가 된다.

[P. 357] 아이는 가정에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태도를 배운다. 신관이나 스님은 아이를 ‘가르치는’일은 하지 않는다.

[P. 367] 여자아이는 갖가지 구속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 의무를 이행하는 책임은 바로 여자아이 자신에게 있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부모의 손에 잇는 것은 아니다.

[P. 377] 일본인이 사용하는 두세 개의 상징적 물건은 자녀 훈육의 불연속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그들의 양면적 성격을 분명히 하는데 도움을 준다. 가장 빠른 시기에 형성된 ‘부끄러움 없는 자아’이다. 그들은 그 ‘부끄러움 없는 자아’를 어느 정도 보존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하여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본다.

[P. 378] 사람들은 거울 속에서 영혼의 문인 자신의 눈을 본다. 그리고 이것이 ‘부끄러움 없는 자아’로서 살아가는데 도움을 준다.

[P. 384] 그들이 그렇게 공격적 행동을 취하는 경우는 미국인처럼 자신의 주의주장이나 자유가 도전을 받았을 때가 아니라, 모욕당했거나 비방 당했다고 느꼈을 때이다. 그때 그들의 위험한 자아는 만일 가능하다면 그 비방자에게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게 폭발한다.

[P. 387-388] 이제 일본인은 정신적 자유를 증대할 수 있는 과도기에 서 있다. 그들은 두세가지의 오랜 전통적 덕에 의지하여 평형을 잃지 않고 무사히 거센 파도를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그들이 ‘몸에서 나온 녹’은 그들 자신이 처리한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자기책임의 태도이다. 이 비유는 신체와 칼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칼을 찬 사람에게 칼이 녹슬지 않고 번쩍이게 할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각자 자기 행동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약점, 지속성의 결여, 실패 등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를 승인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일본에서 자기 책임은 자유로운 미국에서보다도 훨씬 철저하게 해석된다. 이런 일본적인 의미에서 칼이란 공격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적이고도 훌륭하게 자기 행동을 책임지는 사람의 비유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시대에서 이 덕은 가장 평형의 역할을 한다.

[P. 388] 오늘날 일본은 서양적 의미에서 ‘칼을 버리고 항복할’ 것을 제의했다. 그런데 일본적 의미에서 일본인은 여전히 자칫하면 녹이 슬기 쉬운 마음속의 칼을 녹슬지 않게 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있다. 그들의 도덕적인 어법에 의하면, 칼은 더욱 자유롭고 더욱 평화로운 세계에서도 그들이 보존할 수 있는 상징이다.


 

제13장 패전 후의 일본인

[P. 396-397] 일본인은 그들의 세계를 이런 식으로 보기 때문에 사리나 부정에 대해 반항하는 일은 있지만 결코 혁명가는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세계의 조직을 파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찍이 메이지 시대에 행한 것처럼 제도 그 자체에는 조금도 비난을 퍼붓지 않고도 가장 철저한 변혁을 실현할 수거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복고 즉 과거로 ‘복귀하기’라고 이름 붙였다.

[P. 399] 일본이 평화 국가로 재출발하는데 이용할 수 있는 참된 장점은 어떤 행동 방침이 ‘실패로 끝났다’고 인정한 뒤로부터는 다른 방량으로 노력한다는 점에 있다.  

[P. 400-401] 일본인은 일정한 행동방침을 취하고 그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지면 ‘잘못’을 범했다고 판단한다. 그는 어떤 행동이 실패로 끝나면 실패한 주장을 버린다. 실패로 끝난 주장을 집요하게 계속 고수하지는 않는다. 일본인은 “배꼽을 깨물어도 아무 소용없다”고 말한다.

[P. 413] 일본인은 침략 전쟁을 하나의 오류나 실패한 주장으로 간주함으로써 사회적 변혁을 향한 최초의 큰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평화로운 나라 사이에서 존경 받는 지위를 회복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평화가 실현되어야 한다.

[P. 413-414] 현재 일본인은 군국주의를 실패로 끝난 한 줄기의 광명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군국주의가 과연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도 실패한 것인가를 알기 위해 다른 나라의 동정을 주시할 것이다. 만일, 실패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일본은 스스로 호전적 정열을 다시 불태워 일본이 얼마나 전쟁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는가를 보일 것이다. 만일 다른 나라에서도 군국주의가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일본은 제국주의적 침략 기도는 결코 명예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교훈을 얼마나 뼈저리게 체득하였는가를 증명할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의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Patterns of Japanese Culture(1946)를 번역한 것이다.


1946년,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미국무부의 의뢰를 받아 2년간의 연구결과로 일본 문화 연구서인 보고서를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은 적국을 알려고 했고 OSS가 히틀러를 분석연구시켰듯이 일본이 종전 이후 어떻게 행위할지에 대한 예측을 하기위한 결과를 울기 위해 루스베네딕트에게 일본을 연구하게 했고 그녀는 그 작업을 너무도 잘 수행하였다.

전쟁 중이라 적국을 현지 답사할 수 없었기에 일본에 관한 기존 연구서, 2차 문헌, 일본소설등과 같은 자료속에서 일본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인류학적 요소를 추출해내어 객관적인 분석으로 예리한 통찰이 담긴 보고서를 완성했다.


<국화와 칼> 제목이 암시하듯 일본 국민은 이중적이고 모순적이다. 극도로 섬세한 감각과 칼의 냉혹함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 베네딕트가 본 일본이었다.
“그러한 이중성과 모순은 모두가 진실이다. 일본인은 최고도로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얌전하며, 군국주의적이 며 탐미적이며, 불손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성이 풍부하며,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며,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며,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이 책의 특징에 대해 역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역사주의 방법은 주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하면 이 책의 방법론은 그런 주관성을 극복했다는 의미에서 학문적 객관성을 얻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정수는 계층제도(hierarchy)의 분석에 있다. 그 계층제도가 근대사회로 넘어올 때 어떠한 질서와 충동을 일으키는가에 대한 고찰은 제3장 ‘메이지 유신’ 속에 선명히 드러나 있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저자는 일본인의 국민성이 형성된 과정과 배경을 밝혀내기 위해 총체적인 문화 분석을 먼저 시도한다. 봉건사회의 위계체계와 메이지 유신의 과정, 가족제도와 조상숭배, 육아방식 및 사회화 과정, 불교와 신도라는 종교에서 일본 문화 형성의 실마리를 찾는다. 비교 문화적인 분석을 통해 충과 효, 혈연과 지연에 있어서 중국과 다른 점을 대비시켜가면서 본국 미국과의 상이한 문화적 특성도 설명한다. 

전쟁 중의 일본, 각자에게 알맞은 위치찾지, 메이지 유신, 과거와 세사에 빚을 진 사람, 만분의 일의 은혜 갚음,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오명을 씻는다., 인정의 세계, 덕의 딜레마, 자기수양, 어린 아이는 배운다. 패전후의 일본인 이라는 구성으로 편성되어 있다.


저자가 일본 분석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었고 약간의 오류가 있음에도 현재까지 가장 일본을 잘 설명한 책으로 대표되는 것에는 루스베네딕트가 취한 연구방법의 객관성과 냉정함에 그 기초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개인의 차이와 자신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 베네딕트의 방법들을 차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즉 인간에 대한 분석에도 베네딕트의 자세가 필요하다.


다음은 베네딕트 방법의 우수성이고 우리가 배워야 할 점들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루스 베네딕트가 말했듯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록 눈에 거슬리더라도 그 차이를 인정할 줄 아는 냉철한 인식이 요구된다.”

-> 차이를 인정할 수 있는 포용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 세계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통하는 감성적 형제애가 지배하는 곳이다. 세계 속 각 개인은 특정한 관심과 역사, 경험에 의해 형성된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각 개인에 대해 진실이라면 국가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베네딕트가 말한 이른바 ‘어느 정도의 관대함’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즉 다른 나라의 문화가 지닌 관점이 비록 자신의 견해와 충돌하더라도, 그것 나름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쉽게 흥분하는 열광자는 훌륭한 문화인류학자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

특히 극심하게 충돌하는 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우 비상한 관대함이 요구된다. 이런 관대함이 더욱 필요한 이유는 적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만이 사용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 다른 문화나 다른 사람에 대한 관대함 없이 제대로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또한 타인에 대한 비평을 할 때도 차이를 인정할 줄 아는 인식이 먼저 요구된다. 보는 사람 편하자고 유사성을 요구하는 것은 하향평준화를 요구하는 어리석음일 것이다. 


“ 루스 베네딕트가 194년 6월 미국 정부로부터 일본문화에 대한 분석을 의뢰받았을 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이라는 먼나라 사람들에 대해 다른 미국인들처럼 편견을 고수했다면, 매우 수월한 작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랬다면 한편으로는 완전히 쓸모없는 작업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

 -> 커멘트나 충고가 쓸모있으려면 자신의 편견이나 감정에 좌우되는 말로 해서는 안된다.


“ 만약 국가적 나르시시즘에 입각했다면 그녀의 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신 베네딕트는 진정으로 ‘타자’ 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녀에게는 그 타자의 윤곽과 특성이 의도했던 만큼 명확히 드러나는가가 중요한 문제였다. ”

->국가적 나르시시즘뿐만 아니라 개인의 나르시시즘을 만족시켜주는 이론이나 시류에 숟갈을 올리거나, 대국에 기대는 사대주의를 우리는 지금도 곳곳에서 보고있다. 자신의 말로는 단 한마디도 못하면서 권위자의 기침에 좋아라하는 팔색조는 되지 않아야 제대로 설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이든..


“ 국민적 차이의 체계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강인한 신념과 함께 어느 정도의 관용이 필요하다. 종교의 비교 연구는 사람들이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매우 관대했을 때에만 활기를 띠었다. ”

 -> 인간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객관적 문제에 접근하는 관용이 필요하다.


“ 이 책에 기술된 사항의 이상적인 전형은 이른바 서민이다. 서민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 각각 특수한 경우에 행한 일이 아니라, 누구나 그런 조건 아래서는 그런 행위를 한다고 인정할만한 사항을 기술했다. 이런 연구의 목표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상과 행동의 태도를 기술하는 데에 있다.”

-> 사람에 대한 비교도 이러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이 평화시에 행하는 행위를 비교하거나, 전시에 취하는 태도들을 따로 비교해야 한다. 일본민족이 전시에 취하는 행동과 중국인의 명절날 놀이 광경을 비교하는 어리석음이 횡행함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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