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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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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일 22시 04분 등록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북 리뷰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역/ 한문화 출판사

 

저자에 대하여

 

나탈리 골드버그(Natalie Goldberg, 1948 )는 미국의 시인이자 작가로서 1948년 폴란드계의 유태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에 대한 언급은 찾아 볼 수 없었지만 그녀가 탈고를 하고

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뛰어내리러 가요,” 이 한마디에 아버지는 뛰어내리는 건 상관 않겠다면 꼭 그렇게 높은 건물을 골라야 하는 이유가 있나?” 라고 말한 아버지의 유머감각과 자식을 신뢰와 믿음으로 키워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대학에 들어 간 후, 문학이란 것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제라드 만레이의 시를 타자기로 옮겨 쓰고 또 옮겨 써서 나중에 그 시를 깡끄리 외울 정도의 열정으로 가득 찬 그녀였다 대학 시절을 커서도 친구들과 식당을 운영하는 평범한 삶을 살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11 동안 뉴멕시코 대학, 라마 재단 그리고 타오스에서 히피들을 위한 작문교실을 열어 수업을 하기도 했다. 히피 체험, 미네소타와 뉴욕에서의 생활, 교사 직, 영적 훈련 등 모든 일을 다 해보고 나서 자신에게 예정 되어진 운명이 글쓰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고 그녀는 글쓰기에 매진을 했다. 결혼과 별거를 거쳐 이혼을 겪으면서 그녀는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겪게 되지만 이를 잘 이겨내고 선 수행과 글쓰기 체험을 잘 접목하여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Writing down the bones>를 출간하였다. 1년 반의 시간에 걸쳐 쓰여진 이 책은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게 되는데, 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14개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는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녀는 저술과 함께 화가로서 작품 활동도 진행해 왔다. 그림 역시 창작이나 추상적인 것 보다는 그녀의 글 쓰기에 적용 되고 있는 내 주변에 있는 사물을 원색으로 그려냈다. 편안한 의자, 커피 컵, 그리고 눈에 보이는 야자수가 그녀의 그림 대상이 되었다. 모든 것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소제를 이야기와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녀는 글쓰기와 함께 그림 그리기, 그리고 선 명상을 병행하는 종합적인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녀의 삶의 방식은 ‘선 수행’을 통해 얻은 인생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이를 다양한 관심 분야(글 쓰기, 그림 그리기, 강의)에 적용하면서 ‘자신의 삶을 사는 것으로 보여진다. 생활이 힘들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자신의 꿈을 찾아 이를 실현하면서 삶을 살고 있다는 측면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나의 모델로 마음에 자리 잡았다..

 

나는 그녀가 살고 있는 뉴 멕시코 북부 산타페에 그녀가 지도하고 있는 명상 워크숍에 당장 달려 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와 번뇌하고 힘들어하는 부분이 많은 점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겉 모습은 달라도 가지고 있는 내면 세계가 색깔이 비슷한 사람은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다. 그것은 직감이었다. 아마도 그러기에 그녀는 지금 요가와 명상으로 노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홈 페이지에 웃고 있는 대문 사진에는 외로움이 묻어났다. 그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다. 그녀가 출판 해 놓은 다른 책 들의 제목을 찾아 보았다.

<The Great Failure>

< Old Friend from Far Away>

<The Essential Writer’s Note Book>

<Top of MY Lungs>

<Thunder and Lighting>

<Wild Mind>

<Long Quiet Highway>

<Banana Rose>

<Living Co;or>

2010 11 15일에 글 쓰며 사는 삶이란 책이 최근에 출간되어 있었다. 시간이 주어지는 대로 그녀를 새로운 책을 통해 다시 그녀를 만나봐야 할 것만 같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추천의 말

 

나는 장편을 쓰고 있다는 것을 핑계로 삼아 일 년 넘게 집안 대소사에 무심하게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작품에 진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에 대한 자신감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4]

 

누가 이걸 알아 줄까? 아무도 알아 주지 못하리라는 불안과 가족이라는 소재를 다루기에는 턱없이 함량미달이라는 반복적인 자기 비하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이 지루하고 부담스러운 일들에 완전히 지쳐있었다. 이것이 이 원고를 일기 바로 직전까지 내 마음 상태였다.[4-5]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을 나누어 주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보다는 작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수용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5]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현재 내가 처한 문제점들을 풀어 낼 열쇠를 발견하기도 했다. 나탈리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라라는 장에서 우리의 삶을 이루는 실체들에 대해 경건하게라고 긍정하라고 말한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나는 내 문제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내가 처음 계획했던 대로 술술 풀려나가지 않았다. 나는 고착되어 버린 것이다.[6]

 

이 책을 늘 책상 가까이 두는 것만으로도 많은 슬픔과 후회를 덜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책은 여러분의 인생까지 구원해 줄지 모른다.[7]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뭣하러 굳이 명상 모임에 찾아오는 겁니까? 당신은 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단련하지 않죠? 만약 당신이 글쓰기 안으로 깊이 몰입할 수 있다면, 글쓰기가 당신을 필요한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 카타기리 선사[12]

 

언젠가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네가 사랑을 믿을 때만이, 사랑이 네가 가야할 길을 이끌어 주는 법이지.” 나는 여기에 조금 덧붙이고 싶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믿음을 갖고 계속해서 밀고 나갈 때만이, 그 일이 자신이 가야 할 길로 이끌어 주는 법이지.” 그리고 여러분에게 안정된 삶의 방식을 가지려고 너무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당부하고 싶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시작할 때 이미 당신은 끝까지 그 일을 따라갈 깊은 안정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액수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평생 안정될 거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잇단 말인가?[16]

 

어디서 누구를 가르치든 나는 항상 똑같은 방법론을 주장한다. 바로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이 경험한 인생에 대한 확신을 키워나가야 한다’ 는 말이다. 이 말은 아무리 반복해도 싫증이 나지 앓을뿐더러 나 자신을 더욱 높은 이해의 경지로 끌어올린다.[16,17]

 

글쓰기를 배우는 길에는 많은 진리가 담겨 있다. 실천적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충실하게 살겠다는 뜻이다. 글쓰기 공부는 일차원적인 과정이 아니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A에서 B를 거쳐 그 다음은 C로 가야 한다는 식의 노리는 없다. 이것이 내가 글쓰기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진실이다. 충치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발목 골절을 당한 사람과 똑 같은 처방전을 내릴 수 없듯이 이 책은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한다.[17]

 

진실을 글로 나타내려면 쓰는 이가 자신의 내면 아주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만 한다는 내용이다. 또 다른 장에는 글을 쓰려면 은밀한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하니 작업실을 정하는 내용이 엿 보인다.”짐에서 나가라. 설거지에서 벗어나라. 글을 쓸 수 잇는 카페로 달려가라…….”[17]

 

수업을 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 고 요구한다. 자기 마음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으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여러분, 분명하고 아주 솔직하게 써야 해요” 라는 말만 던져 버린다면 그것은 선생이 아니다.[18]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은 긴장을 풀고, 몸과 마음 전체로 이 책을 흡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읽는 데서 끝내지 말라. 부디 써라.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요구가 무엇인지 배우라.[18]

 

본문

 

첫 마음, 종이와 연필

 

두 달 전에 꽤 괜찮은 글을 썼다고 해서 앞으로도 좋은 글을 쓴다는 보장은 없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새롭게 글을 써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다.[19]

 

글쓰기를 위한 연장을 신중하게 선택하라.[23]

내면 세계가 외부 세계를 창조한다는 말은 참말이다. 하지만 외부 세계와 우리가 쓰고 있는 연장 또한 우리의 사유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하늘에 대고 글쓰기를 하지 못할 것도 없다.[23]

 

첫 생각을 놓치지 말라

 

감정과 사유에 대한 집착을 흘려 보내는 것, 끝까지 계속 앉아 있는 것, 이것이 좌선의 규칙이다. 글쓰기도 이와 똑같다. 첫 생각과 만나서 거기서부터 글을 퍼낼 때 당신은 싸움에 나선 전사가 되어야 한다.[24]

 

치열한 글쓰기에 있어 가장 기본은 제한된 시간 동안 글을 써보는 것이다.[25]

 

자신의 감정을 넘어서야만 저 반대편 심장부에 이를 수 있기 대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눈물을 넘어 진실을 파고들라. 이것이 원칙이다.[25]

 

중요한 것은 글쓰기에 할애한 시간이 얼마이든 간에 그 시간 동안만큼은 글쓰기로만 완전하게 채우도록 집중하는 일이다.[25]

 

우리의 목표는 첫 생각에 불을 활활 붙여 주는 것, 사회적 체면 또는 내면의 검열관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에너지 심장부에 도달하는 것, 피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진짜 마음이 보고 느끼는 것을 T는 것이다. 이 규칙을 지키다 보면 괴팍하기 그지없는 우리 마음의 정체를 들여다 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닳아빠진 사고의 끄트머리를 계속 탐색해야 한다. 첫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마음에서 제일 먼저번쩍하고 빛을 낸 불씨다. 이 불씨의 뿌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잠재력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 불씨는 대개 우리 내부의 검열관에 의해 진화되어 버린다. 두 번, 세 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우리의 의식은 일상의 관념 세계로 다시 돌아와 맨 처음 피어난 신선한 불꽃과 교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27]

 

첫 생각은 에고 또는, 우리를 통제하려고 드는 논리적인 메커니즘(세상은 영구불변하며, 견고하고, 지속적이며,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에 얽매이지 않은 생각이다. 세계는 불변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자신의 의식 차원을 넘어선 글을 쓸 때, 그것은 있는 그대로 사물의 진실을 나타낸 것이 된다. 그래서 이런 글은 에너지가 넘칠 수밖에 없다. 글쓰기를 가로막던 ‘에고’ 라는 짐을 벗어 던지는 순간 당신은 더 큰 조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27]

 

첫 생각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당신이 그동안 겪어온 감정과 사건과 정보가 밑바탕이 되어 발산되는 것이기에 엄청난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이것이 바로 첫 생강이 가진 에너지이다.[28]

 

“당신이 바로 지금, 현재에 존재할 때, 세상은 진정으로 살아 움직이게 된다.[28]

 

멈추지 말고 써라

 

글쓰기 훈련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몸과 육체를 맏는 법, 다시 말해 인내심과 공격하지 않는 마음을 키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29]

 

훈련은 공연에 앞서 무용수가 몸을 풀고, 시합 전 육상 선수가 스트레칭을 하는 것과 똑같다. 육상 선수라면 “난 어제 뛰었어. 그러니 오늘은 워밍업을 할 필요가 없어” 라고 말하지 않는 법이다. 그들은 달리기를 위해 매일같이 몸을 풀고 스트레칭을 한다.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글도 많이 쓰면 쓸수록 실력이 향상된다. , 육상 선수들은 달리기가 힘들고 지겨워져도 달리는 행위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연습을 쉬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서 계속 달리고 싶게 만드는 뜨거운 열망이 찾아올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더구나 열망은 절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거나 회피하는 사람에게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31]

 

글쓰기도 훈련을 통해서만 실력을 쌓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깊은 자아를 믿게 되면, 이제 그곳에는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설 자리가 없어진다.[31]

 

나는 한 달에 노트 하나를 채우는 것으로 내 임무를 다 한다. 그저 이 노트를 채우면 그만이다.  그것이 내가 정한 나의 글쓰기 훈련법이다.[32]

 

달리는 사람과 자신은 분리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의 모든 것이 진정 글쓰기에 실려 있다면, 거기에는 글을 쓰는 사람도 없고, 종이도 없고, 펜도 없고, 생각도 없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직 글쓰는 행위만이 글을 쓰고 있게 된다.[33]

 

글쓰기 훈련은 당신의 인생 전체를 끌어안을 것이다. 이런 글쓰기 훈련은 어떤 식의 논리적 형태도 요구하지 않는다.[33]

 

지금 당장 자리에 앉으라.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달려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적어 내려가라. 제발 어떤 기준에 의해 글을 조절하지는 마라. 무엇이 다가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것을 잡아라. 손을 멈추지 말고 계속 쓰기만 하라.[34]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아니다

 

우리가 경험한 일이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잡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어, 한창 사라에 빠져 있는 사람이 사랑에 빠진 상태를 글로 적절히 표현해 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오직난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 있어라는 소리만 되풀이하게 될지도 모른다.[35]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비료를 마련해 놓은 다음, 갑자기 당신은 한 순간 별과, 또는 당신 머리 위에 걸려있는 거실 샹들리에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런 연대가 이루어지면 당신의 몸이 열리게 되고, 이제는 그 몸이 말을 하게 된다.[38]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것은 그저 사람마다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세에서 그 때를 만날 수도 잇고, 죽은 후에야 찾아올 수도 있다. 빠르고 늦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계속 써라.[39]

 

예술적 안정성을 얻는 과정

 

아무리 둘러보아도 산밖에 보이지 않는 마을이었다. 날씨는 항상 건조했으며 생활은 지루하기 자기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내 인생의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나를 지탱하고 키워주고 있다는 믿음만은 늘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야 할 나만의 길이 하나 있을 거라는 신념은 놓치지 않았다. 비록 마음은 아무런 감흥없이 무감각하게 가라앉아 잇거나 잡념들로 산만하게 채워져 있곤 했자만, 그 시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그런 산만한 마음과 그 동안 살았던 인생이 전부였다. 나는 거기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디.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는 이 노트를 통해 내가 진보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안다. 이 노트는 한 인간의 존재 중명이다.” 이처럼 당신이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들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앞으로5년 동안 쓰레기 같은 글만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 들려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세월 동안 글쓰기를 멀리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게으르며 불안정하고 자기혐오나 두려움에 쌓인 존재, 정말 말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때 당신은 더 이상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이제 당신은 별 수 없이 자신의 마음을 종이 위에 풀어 놓아야 하며, 그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주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43]

 

습작을 위한 글감 노트 만들기

 

어떤 것이든 모두 글의 재료가 된다. 글을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오르면 언제라도 노트에 적어 두라. 이처럼 목록을 만들어 보는 일은 글쓰기 훈련에 있어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46]

 

당신이 그 장소를 사랑한다면 직접적인 표현 때문이 아니라, 글에 나타난 세부 묘사를 통해 당신이 그 장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해 주어야 한다.[49]

 

동물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어떤 동물인가? 줄무늬 다람쥐인가, 여우인가, 혹은 땅 밑에 사는 두더쥐인가?[50]

 

글이 안 써질 때도 글을 쓰는 법

 

훈련이란 언제나 잔인한 단어다. 나는 이 단어를 가지고 나의 게으름을 토벌하려 했지만, 소원대로 효과를 거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폭군과 저항군 사이의 싸움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난 글을 쓰고 싶지 않아.”

너는 글을 써야 해.”

나중에 쓰겠어. 지금은 피곤해.”

지금 당장 써야 해.”

그 동안 내 노트는 텅 비어 있다. 이 텅 빈 노트는 에고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음을 보여 주는 또 다른 모습이다.[51]

 

나는 한 달에 노트 한 권 정도는 채우려고 애를 쓴다. 글의 질은 따지지 않고 순전히 양만으로 내 직무를 판단한다.[54]

 

우리는 글이 안 써질 때도 무조건 계속해서 글을 써야만 한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죄의식과 두려움, 무력감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만 있다면, 어떤 글이든지 쓰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55]

 

편집자의 목소리를 무시하라

 

편집자를 정확히 알면 알수록 편집자를 무시해 버리기 한결 수월해진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편집자가 하는 말은 늙은 술주정뱅이가 뒤에서 종알거리는 그렇고 그런 허튼 소리임을 알게 된다. 그러니 별 의미도 없는 말에 귀를 기울여 쓸데 없이 그의 힘을 키워 주는 바보짓은 하지 말라. 만약 당신이진부해!”하고 말하는 편집자의 소리를 들어 주고 거기에 낙담해서 글쓰기를 중단한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편집자가 옳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당신은 진부해!”라는 말을, 멀리서 바람에 날리는 흰 빨래 정도로 여기라. 결국 그 빨래는 마를 거시이고, 아주 멀리 있는 누군가가 그것을 개서 집으로 가져갈 것이다. 그 동안 당신은 글을 쓰면 그만이다.[57]

 

눈 앞에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직접 경험한 것만이 체험의 전부는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누군가가 써놓은 글을 읽으면서도 체험할 수 있어요. 뉴욕에서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뉴욕의 모든 도로 이름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여러분 속에는 다른 이들의 삶도 들어가 있습니다.[59]

 

작가는 작품을 쓸 때 모든 것을 항상 처음 대하는 기분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61]

 

당신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라. 그런 다음 그 속으로 파고 들어라. 당신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라.[62]

 

당신의 글쓰기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면 그 무엇이든지, 그것이 가는 대로 풀어 놓아라.[62]

 

글쓰기는 글쓰기를 토해서만 배울 수 있다

 

글을 쓰는 데 자신의 재능이나 잠재력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재능과 실력은 훈련을 거쳐가면서 커지는 법이다. 카타기리 선사가 말했다.

우리의 잠재력은 지구 표면 밑에 있는, 보이지 않는 지하수면과 같습니다.”

누구라도 이 지하수면에 가 닿을 수 잇다. 그것은 당신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잇다. 그러므로 글쓰기 훈련을 계속하라. 그런 다음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목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곧장 나가라.[63]

 

바람직하지 않은 정신 자세로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글쓰기를 배운답시고 쓸데없이 대가들과 문학 강의를 좇아 철새처럼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진실은 아주 간단하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당신이 훌륭한 대가를 열 사람이나 만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글쓰기를 배우지 못한다.[64]

 

작가와 작품은 별개다

 

우리가 실존하고 있다는 생각,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는 우리가 쓰는 글이 견고하며 영구불변한 구조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순간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66]

 

내가 만들어낸 시는 그 시를 쓰고 있을 때의 내 생각, 내 손, 나를 둘러싼 공간과 내가 느낀 감정들일 뿐이다. 스스로 속지 않도록 경계하라. 시시각각 우리는 변한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변한다는 사실, 이것처럼 좋은 기회도 없다. 우리는 한 순간에 얼어붙어 있던 자신과 자신의 이상으로부터 빠져 나와 신선하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우리를 동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66, 67]

 

나와 내가 쓴 작품은 별개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 우리가 힘을 얻는 곳은 언제나 글 쓰는 행위 자체에 있다.[68]

 

진짜 인생은 글쓰는 행위에 있는 것이지 같은 작품을 몇 년 동안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는 것에 있지 않다.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꿈을 꾸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된다.[68]

 

당신은 또 다른 흐름에 몸을 맡기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에 들어가 있는 단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 몸을 빌어 밖으로 표출되었던 ‘위대한 순간’이다. 그 순간을 잡아내 글로 옮길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다.[69]

 

사고의 경계를 모두 허물어뜨려라

 

우리는 바로 이런 태도로 글쓰기에 임해야 한다.“왜?”라고 끊임없이 묻거나 옷을 고를 때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신 우리 마음은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정도로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엄청난 에너지를 종이 위에 쏟아 붓도록 해야 한다.‘이건 글을 쓰기에 좋고, 저것은 이야깃거리가 못 된다.’ 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작가는 두려움 없이 무조건 적으로 모든 것을 써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글쓰기와 인생 그리고 정신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경계가 없다.[71]

 

은유란 논리나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그와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부터 비롯된다. 은유를 위해서는 사물을 바라보던 익숙한 시각에서 기꺼이 벗어나야 한다. 개미 한 마리와 코끼리 한 마리 안에서 공통된 무언가를 볼 수 있는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하며 그것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71, 72]

 

은유를 위한 은유를 하지 말라. 무언가를 은유하기 위해 당신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평소의 사고 방식에서 한발 물러서서 머릿속을 지나가는 생각들을 계속 기록해 보라. 이런 연습은 사고를 부드럽게 해 줄 뿐 아니라 창조력을 키워 준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생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엄청난 도약을 하게 된다. 마음이란 순식간에 위대한 도약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72]

 

아주 오랫동안 한 가지 생각에 머물러 본적이 있는가? 바로 그런 상태가 지속되다가 어느 한 순간 생각이 비약적으로 튀어오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섬광 같은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영감의 근원은 만물의 근원과 맞닿아 있기에 자연히 그것들의 공통적인 법칙과 본질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72]

 

글쓰기는 맥도널드 햄저버가 아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글을 조절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그때그때 솟아 나오는 감정들을 글로 서 내려가라.[75]

 

바로 이것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경험과 추억, 감정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을 오븐에서 막 꺼낸 피자처럼 종이 위에 옮겨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모든 것을 풀어주라. 아주 쉬운 말로 단순하게 시작하고, 당신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도록 애써라.[75]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절대 자신의 에고를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대로 연출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그저 하나의 인간 존재임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나는 글쓰기가 종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당신이 쓰고 있는 딱딱한 껍질을 벗기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다가가도록 한다.[75, 76]

 

글을 쓰는 데는 당신의 온몸, 즉 심장과 내장과 두 팔 모두가 동원되어야 한다. 바보가 되어 시작하라.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시작하라.[76]

 

글쓰기는 맥도널드 햄버거가 아니다. 패스트푸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슬로 푸드다. 요리는 천천히 익어가고 있으며, 시작단계에 있는 당신은 그 음식이 구이가 될지, 바비큐가 될지, 국이 될지 아직 모른 것이다.[77]

 

강박관념을 탐구하라

 

작가란 결국 자신의 강박 관념에 대해 쓰게 되어 있다.[78]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강박 충동의 조정을 받는다. 강박증은 엄청난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 힘을 거부하지 말고 이용하라. 글쟁이 친구들 대부분이 글을 쓰는 일에 대해 강박증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그에 대한 강박증도 초콜릿에 대한 내 강박증과 똑같이 작용한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떠나보낼 수 없는 사람들이다.[80]

 

예술가로 살기란 절대 쉽지 않다. 예술가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조차도 절대 그 일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존재들이다.하지만 나는 그래도 예술 작업에 얽매이고 창작에 대한 강박증에 빠지는 것이 술을 마시거나 초코릿으로 배를 채우는 일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에 대한 강박증은 무언가 가치 있는 길을 찾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잇다.[81]

 

글쓰기에 대한 강박증은 직접 글을 써서 풀어내야 한다.[81]

 

세부 묘사는 글쓰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이 장은 짧지만 매우 중요하다. 세부 묘사를 글쓰기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너무도 다양해서 만약 당신이 사물의 과거와 현재의 진정한 모습을 세세하게 써 내려갈 수만 있다면 당신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 당신이 설령 전혀 다른 시간대와 공간에 살고 있어도, 10년 전 혹은 20년 전 뉴욕의 한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잇는 모습을 얼마든지 묘사할 수 있다.[82]

 

당신이 주변 상황에 자연스럽게 몰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당신이 글을 쓸 때 정말 살아 숨쉬는 듯한 생생한 기억들을 불러낼 수 있다. 웃을 때마다 빨간 립스틱이 묻은 앞니가 보이는 신부 어머니의 모습과 신부의 드레스 자락에서 폴폴 풍기던 향수 냄새까지 전부 당신의 글 속으로 불러 낼 수 있다.[83]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라

 

글쓰기에서 우리가 살았던 장소와 그 공간을 채우던 사물들의 이름을 불러 주고 그것을 우리 삶의 세부사항으로서 써 내려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84]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세부 그림은 기록으로 남아야 할 가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작가들이 알고 있어야 할 진실이며 우리가 펜을 쥐고 자리에 앉는 이유다. 우리가 삶의 세부사항을 묘사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지나치게 빠른 속도와 효율성만을 주장하는 문명의 이기, 우리를 대량학살하려는 원자폭탄 같은 무자비한 폭력에 항거하기 위함이다.[85]

 

세부 묘사는 우리가 만나는 세상 모든 것들과 모든 순간들에 이름을 붙여 주고, 그 이름을 불러 주고, 기억하는 일이다.[86]

 

작가의 임무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이루는 실체들에 대해 경건하게 “네!” 라고 긍정하는 것이다.[86]

 

케이크를 구우려면

 

단지 재료를 섞기만 한 반죽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다. 사랑과 증오라는 감정의 에너지를 가해 세부를 채워 나가야 한다. 하나의 숨 쉬는 생명체로 창조해야 한다.[88]

 

삶의 모든 세부 사항들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다정하게 접촉하라. 당신을 둘러싼 것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라. 강에 대해 쓰고 있다면 그 강에 온몸을 적시라. 그 강이 탁한 황토 빛으로 둔하게 흐른다고 적는다면 당신의 몸이 그 탁한 느낌을 그대로 느껴야 한다. 글쓰기에 깊이 빠져들면 쓰는 사람과 글은 분리되지 않는다. 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좌선을 할 때 당신은 사라져야 한다. 좌선이 좌선을 하도록 만들어라.” 이것이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당신은 사라진다. 당신은 그저 당신 속에서 흐르고 있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 내고 있을 뿐이다.[88]

 

세부 묘사를 사용하면 당신이 느끼는 환희나 슬픔을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전달하려는 감정이 어떤 맛인지 정확하게 표현해 준다면, 그것을 맛보고 싶어 하는 미식가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89]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

 

“아주 맛있어요, 일품이야!” 라는 말에는 에너지가 없다. 어떻게 대단한 것인가? 독자에게 그 대단함의 냄새를 맡게 하라. 바꿔 말해서 세부 묘사를 이용하라. 세부 묘사야말로 글쓰기의 기본 요소이자 단위다.[90]

 

작가는 인생을 두 배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먼저 첫 번째 인생이 있다. 길에서 만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건널목을 건너고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넥타이를 매는 그런 일상생활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생활의 또 다른 부분이 있다. 모든 것을 다시 곱씹는 두 번째 인생이다. 이들은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마다 자신의 인생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모습을 면밀하게 음미한다. 삶을 이루고 있는 재질과 세부 사항을 들여다본다. [91]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조금 어수룩한 바보가 되어도 괜찮다. 당신 속에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느림보가 들어 있다. 그 느림보가 당신이 모든 것을 팔아버리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당신에게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모자도 쓰지 않은 채 이마에 주룩주룩 떨어지는 빗방울을 느끼며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응시하게 만든다.[92, 93]

 

글쓰기는 육체적 노동이다

 

글쓰기 훈련은 하나의 글을 완성할 때까지 중간에 포기하거나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써내려가는 것. 끊임없이 글쓰기를 방해하는 생각들을 육체적으로 물리쳐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94]

 

진짜 글쓰기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은 더 이상 껌을 씹지 않는다. 대신에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린다. 그리고 호흡이 아주 깊어진다. 글을 쓰는 손은 느슨해지고, 그들의 몸은 몇 킬로미터를 내처 달려도 좋을 만큼 잘 이완되어 있다.[95]

 

잘 쓰고 싶다면 잘 들어라

 

글쓰기 역시 90퍼센트는 듣기에 달려 있다. 열심히 들으면 당신을 채우고 있는 내면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자연히 나중에 글을 쓸 때, 당신의 그 내면의 소리를 저절로 분출시킬 수 있게 된다. 내면의 진실한 소리를 듣게 된다면, 글쓰기에는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 없다. 당신은 그저 식탁 건너 편에서 당신에게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곳의 분위기가 내는 소리와 의자와 문이 말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문 너머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까지도. 계절이 만들어 내는 음향과 바람에 실려오고 잇는 온갖 색상의 음향을 받아들여라. 과거와 미래와 현재 당신이 있는 것에 귀를 열어 두어라. 귀로만 듣지 말고 온몸으로, 당신의 위장과 심장과 피부와 머리카락으로 들어라.[99]

 

듣는 것은 곧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이 더 깊이 들으려 하면 할수록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아무런 편견 없이 사물이 가는 길을 받아들일 때 그 사물에 대한 진실한 글이 태어난다. 만약 당신이 사물의 이치를 잡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글을 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은 셈이다.[99]

 

좋은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 주고, 많이 써 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냥 단어와 음향과 색깔을 통해 감각의 열기 속으로 뛰어들어가라. 그리고 그 살아 있는 느낌이 종이 위에 생생히 옮겨지도록 계속 손을 움직이라.[100]

 

위대한 선승 도겐은 “안개 속을 걷는 사람은 안개에 젖는다” 고 했다. 그러니 그저 듣고, 읽고, 쓰라. 당신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조금씩 당신만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너무 조바심을 내지 말고 그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라. 그냥 흐르는 대로 운율에 맞춰 노래하고 쓰라.[101]

 

파리와 결혼하지 말라

 

문학의 책임은 사람들을 깨어 있게 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살아 숨 쉬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방황한다면, 독자 역시 방황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목표가 무언인지 알고 그 목표에 집중해 매달려야 한다.[103]

 

자신의 목표가 무엇이지 알고 그 목표에 집중해 매달려야 한다. 만약 당신의 마음과 글이 목표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있다면, 원래 돌아가야 할 자리로 부드럽게 잡아당겨야 한다.[103]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나는 돌봐 줄 누군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 즈음 모임에 나갈 때마다 나는 데이트 상대와 동행했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을 읽어 주기가 무섭게 그에게 이렇게 말했디.”가까이 와서 날 좀 아아 줘요.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재능 있는 여자인지 말해 줘요. 내가 멋지다고만 말해 줘요.”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나는 내가 한 짓이 무엇이었는지 똑바로 몰 수 있었다. 내가 멋지다고 말해 줘요.”라고 했던 말 뒤에 있는 추한 내 모습을 본 것이다.

작가인 우리는 늘 의지할 것을 찾아다닌다. 동료들로부터, 비평가로부터 인정받아야만 안심하려 든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이나 작품에 대해 보내는 타인의 칭찬에 기대어 살아가는 한, 그 작가는 다른 이들의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보다는 우리의 근원적인 원조자에 대해 아는 편이 작품성을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이미 매 순간 무엇엔가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106,107]

 

우리가 서 있는 대지, 폐를 채우고 비우는 공기....., 이 모두가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질 때 그 대상을 멀리서 찾지 말라. 바로 지금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 아침의 침묵, 이런 것들로부터 시작하라. 그런 다음 마주 보고 있는 친구가 “난 네 작품이 너무 사랑스러워” 하고 말하면 그 좋은 기분을 그저 간직하면 된다. 대지와 의자가 당신 몸을 쓰러지지 않게 받쳐 준다는 사실을 믿는 것처럼 그 친구의 말을 그대로 믿어라.[107]

 

우리는 정직한 지원과 격려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누군가 칭찬을 해 주면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반대로 비평하는 소리를 들으면,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고 결국 자신은 별볼일 없고 진짜 작가도 못 된다는 쓸데없는 믿음만 키워가려 한다.[108]

 

누군가 당신을 칭찬해 준다면, 정말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그런 일이 익숙하지 않고 계면쩍더라도. 계속 숨을 들이마시고 귀를 기울이고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칭찬을 받는 것이 이렇게도 좋다는 것을 반드시 느껴 보아야 한다. 작가가 되려면, 자신을 향한 긍정적이고 솔직한 격려를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여유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하니까.[109]

 

꿈에 대해 써라

 

꿈은 우리가 삶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게 틀린 말이라면 우리는 꿈과 함께 영원히 상상 속을 표류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112]

 

문장 구조에서 벗어나 사유하라

 

우리의 사고 방식은 문장 구조에 맞추어져 있고 사물을 보는 관점도 그 안에서 제한된다.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식이 ‘주어-동사-목적어’의 틀에 짜맞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런 문장론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고, 신선한 세상과 만날 수 있으며, 글쓰기에 색다른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다.[114]

 

카타기리 선사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친절하게 배려해 주십시오.” 그는 의자, 공기, 종이 그리고 심지어 거리에 대해서조차 마음을 가진 존재로서 다정하게 대해야 한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것이 이 세상 속에서 우리 마음이 이루어 내야만 하는 제일 큰 일이라고 했다.[115]

 

‘나는 엉겅퀴 하나를 먹었다’ 라는 문장을 썼다고 치자. 이 문장 때문에 당신은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일상적인 문장 구조를 넘어서서 엉겅퀴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엉겅퀴가 당신을 영원히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116]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소통하는 법을 많이 알게 될 수록, 당신은 글을 쓸 때 상황에 따라서는 구문론이라는 틀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때로는 이처럼 문장구조를 깨고 글을 씀으로써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116]

 

말하지 말고 보여 주라

 

글쓰기에 관련된 오래된 속담이 하나 있다. ‘말하지 말고 보여 주라’ 는 말이다. 무슨 뜻인가? 이것은 이를테면 분노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 무엇이 당신을 분노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라는 뜻이다. 당신 글을 읽은 사람이 분노를 느끼게 하는 글을 쓰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독자들에게 당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말고,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정의 모습을 그냥 보여 주라는 말이다.[117]

 

작가는 슬픔과 기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독자의 마음을 슬픔과 기쁨의 골짜기로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117]

 

그렇다. 나는 이야기 바깥에 있었고, 그래서 어느 누구도 이야기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없었다. 이 말은 실제로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은 절대 쓸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그 이야기에 당신만의 숨결을 불어넣었는지 확인하라는 뜻이다. 당신이 숨결을 느낄 수 없는 글은 당신이 그 글 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119]

그냥 이라고 말하지 마라

 

고유성을 허락하라. 그냥 ‘과일’이라고 말하지 말라. ‘이것은 석류 열매다’ 처럼 어떤 종류의 과일인지 분명히 밝혀 주라. 사물의 이름을 불러 주어 그 사물의 고유성을 만들어 주라.[120]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우리 마음속 흐릿한 부분이 선명해지면서 이 지상의 삶에 더 튼튼한 줄을 이어 주기 때문이다.[121]

 

바로 코 앞에 있는 것을 쓰라고 말했다.[121]

 

사물들 속으로 파고들라. 새 꽃, 치즈, 트랙터, 자동차, 비행기..... 이 모든 것의 이름을 배우라. 작가는 건축가이자 프랑스 요리사이며, 농부여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작가는 이런 것 중 어느 것도 아니어야 한다.[123]

 

몰입하기

 

좋다. 무언가 특별한 것에 대해 써 보자. 가령 서양 삼나무를 가지고 숟가락을 조각한다고 해 보자. 여기에 필요한 세부 과정들을 모두 묘사해 보라. 당신이 직접 조각을 하는 기분으로 글 속에 뛰어들어야 한다.[124]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관통하고 있다…글쓰기 속에 몰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차단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세상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몰입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균형을 잡는 데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125]

 

평범과 비범은 공존한다

 

우리는 모든 것이 이미 평범함과 비범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열릴 때도 있고 닫힐 때도 있는 것이 우리 마음이다. 세부 묘사는 무엇이 좋고 무엇은 나쁘다라는 식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것이 세부 묘사의 본질이다.[128]

 

모든 사물을 올바로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주 깊이 들어가야만 한다. 그 다음에는 세부 묘사가 독자의 눈 앞에 그러한 현실을 창조할 것이다.[128]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 지구를 위해, 텍사스를 위해, 지난 밤 우리의 끼니를 위해 생명을 바친 병아리를 위해, 각자의 어머니를 위해, 고속도로와 나무들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을 친절하게 대할 책임이 있다. 먼저 자신에게 친절할 때에만 세상을 친절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글쓰기를 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를 대하는 올바른 눈이 떠질 때 우리는 세부 묘사를 개인적이고 물질적인 대상이 아니라 모든 진실을 반영시키는 것으로 다루게 된다. 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찻잔 하나에도 아주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이 찻잔 또는 바위 언덕, 하늘이나 개미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을 때 그 대상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 대상들에게 선의의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되고, 글쓰기를 통해 초월적인 세계로 도약할 수 있게 된다.[129,130]

 

이야기 친구를 만들라

 

작가는 모든 소문과 지나가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책임이 있다. 이야기꾼은 이런 방식으로 인생을 배워 나간다.[132]

 

우리가 글쓰는 방법을 배우는 이유는 누군가를 심판하거나 탐욕과 질투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경탄하고 애착을 가지기 위해서다.[132]

 

말하기는 혼자서 펜과 종이만을 상대로 보내야 하는 길고 긴 창작의 시간에 앞서 하는 준비운동이다. 당신이 수없이 누군가에게 말했던 이야기들을 목록으로 만들어보라. 그것으로 글쓰기의 많은 부분은 이미 이루어졌다.[134]

 

작가는 위대한 애인이다

 

글쓰기는 공동체의 산물이다. 일반인들의 믿음과는 정반대로 작가는 절대 불을 지키기 위해 홀로 싸우고 있는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은 완전히 혼자만의 고유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면, 나는 솔직히 아주 화가 난다.[135]

 

우리는 앞서 있었던 모든 작가들의 짐을 나르고 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역사, 이념 그리고 대중문화 모두를 끌어안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글쓰기 안에 용해되어 나타나는 것이다.[136]

 

다른 작가들을 나와 ‘분리된’ 존재로 여기지 말라. “그들은 훌륭한데, 나는 형편없어” 식의 이분법적인 생각도 하지 말라.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의 작품은 좋아지기 힘들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나만 훌륭하고 나머지는 모두 형편없는 글쟁이들이야.” 이런 지나친 자만심으로는 절대 훌륭한 작가가 될 수도 없을뿐더러 당신 작품에 대한 비평에도 귀를 막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들도 훌륭하고 나도 훌륭하다” 라고 말하자. 이 말은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 준다.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 그러니까 나는 잠시 그들의 경로를 따라 가면서 배우면 돼.” 얼마나 솔직하고 마음 편한 고백인가.[137]

 

우리는 더 큰 사람이 되어 두 팔로 세계 전체를 담는 글을 써야 한다. 거친 황야에서 홀로 떨어져 글을 쓸 때에도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 같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인간만이 이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생각은 자기 본위에서 나온 우월감일 뿐이다.[137, 138]

 

작품을 자신만의 습작 노트에 사장시키지 말라. 바깥으로 꺼내 놓아라. 예술가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존재라는 생각 같은 것은 떨쳐 버려라.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고통스럽다. 자신만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해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이유는 없다.[138]

 

현상을 넘어 사물 속으로 파고들라

 

당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려라. 당신이 쳐다보고 있는 모든 사물들 안으로, 거리 속으로, 물 잔에 담긴 물 속으로, 옥수수밭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사라져 버려라. 당신이 느끼는 바로 그것이 되어 그 감정을 태워버려라. 걱정하지 말라. 당신은 어떤 감정을 잡았다거나, 그 감정과 완전히 하나가 된 바로 그 순간을 냄새 맡거나 보게 되면, 당신은 이미 위대한 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140]

 

먹잇감을 응시하는 고양이처럼

 

어떤 글을 쓰겠다고 계획했을 때, 동물처럼 행동해보자. 동물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동물처럼 당신이 쓰려는 이야기의 먹잇감들을 하나씩 비축해 두자. 어떤 방법이든지 상관없다. 일상의 찌꺼기에서 발굴해내든지, 도서관을 찾아가든지, 정신의 정원으로 나가든지 마음대로 하라.[142,143]

 

무엇이 되었든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라. 논리적인 마음은 꺼버려라. 마음을 비워 놓고 생각이 들어가지 않게 하라.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껴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고 소화시키라. 당신 육체가 양분을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라. 인내심을 가지고 한결같은 균형을 유지하라. 생각의 지층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당신의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삼투시키라.[143]

 

그런 다음 드디어 당신이 튀어나올 때, 가령 아침 10시에 글을 쓰겠다고 작정했다면 그 주어진 시간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 1시간이건 20분이건, 시간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손을 멈추지 말고 모든 것을, 정맥에서부터 곧장 펜을 통해 종이 위에 토해 놓게 만들라. 멈추지 말라. 망설이지 말라. 백일몽을 꾸지 말라. 제한된 시간이 끝날 때까지 쓰라.[143]

 

제일 좋은 글은 당신의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실린 글이다.[144]

 

자신을 믿어라

 

“글세, 웃기는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마 그것이 푸른 말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이런 글은 곤란하다. “이것은 푸른 말이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하라.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사고 속에 똑바로 서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146]

 

비록 우리 인생이 언제나 선명한 것은 아닐지라도, 명확하게 인생을 표현해 보는 것이 좋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이 순간의 나다.” 이렇게 쓸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지만, 당신은 훗날 그만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146]

 

또 하나, 스스로 경계할 부분은 바로 질문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질문에는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질문 하나를 만들 수 있다면 아주 잘 된 일이다. 하지만 즉시 더 깊은 단계로 내려가 바로 그 다음 줄에서 그 질문에 답을 해 주어야 한다.[147]

 

‘혹시 내가 만든 질문에 답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떨쳐버려라. 글쓰기는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에 불을 지피는 행위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설사 확실하지 않을 때라도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라. 이런 훈련은, 문장을 훨씬 힘차고 생동감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147]

 

마음은 항상 일과 집중력에 대해 저항하려 든다.[150]

 

“오. 그건 그냥 게으름일 뿐입니다. 어서 가서 일하세요.[151]

 

작업실에 대하여

 

글을 쓸 공간을 구할 생각이라면, 그야말로 방 하나만 구하도록 하라.[154]

 

그녀에게 모든 장소가 글을 쓰는 작업실인 셈이다.[156]

 

, 그 거창한 주제에 대하여

 

글쓰기는 발견의 기록이다. 당신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기를 원한다.[158]

 

자신이 사는 마을을 순례하라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작가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을 살아있게 만들고,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어떤 한 장소에 오래 살게 되면 그 장소에 대한 감각이 점점 둔해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거꾸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항상 흥미롭다. 새로운 장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신선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해 준다.[161]

 

평범한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배우라. 오래된 커피 잔, 참새, 도시버스, 얇은 햄 샌드위치에 존경을 표해보라. 당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계속 그 목록을 늘려가라.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글의 형태와 장르에 관계없이 이 목록에 들어 있는 것들을 단 한번이라도 언급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라.[162]

 

결국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진정 글을 쓰고 싶다면 모든 것을 잘라내고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쓰기 좋은 완벽한 환경도, 습작 노트도, 펜도, 책상도 없다면, 자신을 유연하게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낯선 환경 속에서도,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도, 글쓰기 훈련은 계속 되어야 한다. 기차 안에서, 버스 안에서, 허름한 부엌 식탁에서, 기댈 것이라고는 나무 둥지만 있는 숲속에서, 혼자 흐르는 개울물에 발을 담근 채, 사막의 바위 위에 앉아서, 당신 집 앞 모퉁이에 서서, 현관에서, 자동차 뒷좌석에서, 서재에서, 점심 먹는 계산대에서, 복도에서, 실업자 고용사무실에서, 치과 대기실에서, 공항에서, 텍사스에서, 캔사스에서, 과테말라에서, 콜라를 홀짝이는 동안에도,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도, 베이컨과 양상추와 토마토가 들어 있는 샌드위치를 먹는 중간중간에도 당신은 글을 써야 한다.[164]

 

우리가 글쓰기에 열중해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글쓰기에 빠져 있는 것 자체로 충분히 완벽한 것이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위대한 자율성과 안전성이 있다. 진정 글을 쓰고자 갈망한다면, 결국 당신은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는 길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165]

 

충분하다고 느낄 때 한 번 더

 

글쓰기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될 때, 조금만 더 자신을 밀고 나가보라. 당신이 종점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실은 초입에 들어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끝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갔을 때, 당신은 제어할 수 없는 아주 강한 감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166]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멀리,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167]

 

글쓰기는 자유를 향해 헤엄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167]

 

삶을 사랑하라

 

나는 외로움이라는 들판 속을 헤매며 그것을 즐기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외로움이 나를 물어뜯려고 덤빈다 해도, 두려움에 갇혀 버리거나 존재론적 무의미로 회피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왜 나는 작가가 되어야만 하는가?” 모든 것을 향해 이 질문을 던지며, 나는 나 자신을 심연 속으로 밀어 넣는다.[171]

 

‘인간은 고통을 안고 산다’라는 사실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라.[172]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갉아먹히지 말라

 

“그건 잘못된 태도입니다. 만약 그곳 사람들이 당신을 쓰러뜨린다면 당신은 일어나야 합니다. 그들이 또 다시 당신을 쓰러뜨린다해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쓰러지든 당신은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만이 당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173,174]

 

글쓰기에서도 같은 진실이 통한다. 지금 세상에 나온 책들 가운데 출판조차 못했을 뻔한 책이 아마 수천 권도 넘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저 계속 가야만 한다는 진실이 있을 뿐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쓰라! 설령 그 글이 출판되지 않더라도 또 다른 글을 계속해서 쓰라. 훈련은 당신의 글을 점점 더 훌륭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두 달에 한 번씩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부딪힌다.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늘 똑같다. “어리석은 짓이야. 돈 한푼도 벌지 못하면서 그럴싸한 경력도 쌓지 못하고 있잖아. 이제는 내 걱정을 해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어. 너무 외로워. 이런 게 싫어! 바보 같은 짓이야. 나도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어.” 이런 생각은 그 자체로 고문이다.[174]

 

비평가가 지껄이는 말에는 신경 쓸 것 없다. 거기에는 당신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게 하나도 없다. 대신 자신의 글쓰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여라.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인내심과 유머 감각을 키우라.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갉아먹히지 말라.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잃지 말고 저 너머에 있는 광활한 인생을 바라보라.[175]

 

만물은 아무런 이유 없이 생겨나고 또 사라져간다. 당신은 언제라도 다시 새롭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179]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다

 

글쓰기를 적이 아니라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176]

 

고어 비달은 아주 멋진 말을 남겼다.”모든 작가와 독자들은 글을 잘 쓰는 것이 그들 모두에게 최고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말라. 그냥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니까.[177]

 

장대 위에서 발을 떼라

 

만물은 아무런 이유 없이 생겨나고 또 사라진다. 이거야 말로 더 바랄 것이 없는 기가 막힌 기회다. 당신은 언제라도 다시 새롭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 이전의 실패는 모두 놓아 버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무언가 위대한 글을 쓰라. 아니면 실패한 후에 느끼는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에 대해서라도 써라.[179]

 

무언가 대단한 것을 쓰고 싶다면, 당신은 자신을 누르고 있는 것에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순간이니까.[180]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또는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가?” 라고 묻되, 깊이 생각하지는 말라. 그 대답은 펜을 잡고, 종이 위에 분명하게, 단정적인 진술로 하라.[183]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유가 가능하다. 당신은 문체를 향상시키기 위해, 당신은 얼간이이기 때문에, 당신은 종이 냄새에 미쳤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186]

 

관통하는 글쓰기

 

명심해야 할 것이 또 있다. 당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그 일을 하고 있는가, 어떤 방법으로 그 일에 접근해 나가는가 그리고 그 일에서 어떤 가치를 얻는가 하는 점이다.[188,189]

 

우리는 모두 전체의 한 부분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리를 통해서 글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189]

 

작가로 살아남기

 

우리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서, 그리고 작가로서는 강하고 용감하지만 한 인간으로 돌아오면 한없이 무기력하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사실이 우리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생활인으로서 등에 달라 붙은 불명예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헤밍웨이를 생각하면 감탄스럽기 짝이 없다. 그는 아내와 실랑이 끝에 술이 떡이 되도록 만취했으면서도 자신의 주인공인 산티에고 노인이 초인간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항해를 계속하도록 했다.[192]

 

“우리의 목표는 매순간 모든 존재에 대해서 상식적으로 대하고 친절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 말은 종이에는 멋진 시를 적으면서 자기의 삶에는 침을 뱉지 말라는 뜻이다. 책상에서 시를 치우고 부엌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작가로서 살아남는 방법이다.[192]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또는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두 가지 모두 근사한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가장 깊은 비밀이다.[193]

 

문학의 형식, 삶의 형식

 

어떤 정해진 형식에 맞는 글을 쓰고 싶다면 그 형식으로 적은 글을 많이 읽는 게 최고다. 그 형식만이 가지고 있는 호흡을 눈여겨 보라. 맨 첫 문장이 무엇이었나? 어떻게 끝을 맺었는가? 같은 형식의 글을 많이 읽으면 그 형식이 당신의 의식에 저절로 각인이 된다. 그래서 직접 글을 쓰려고 할 때 그 구조에 맞는 글을 쓰게 된다.[199]

 

익숙한 초원을 떠나라

 

이것은 좋은 작가가 되려면 LSD나 향정신성 의약품을 꼭 경험해봐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 말은, 우리 삶에는 반드시 미쳐 버려야 할 시기, 사물을 바라보는 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견고하지도 않고, 구조적으로 완벽하지도 않으며, 영원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배워야 할 때가 있다는 뜻이다.[206, 207]

 

우리는 스스로 영원불멸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며, 이런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그 시간조차 알지 못한다. 오래 살다가 편안하게 자연사하기를 바라지만 당장 몇 분 후에 죽을 수도 있다.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우리의 숙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숙명에 대한 깊은 고찰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더욱 생동하게 만들고, 현실에 충실하게 만들며,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만들어 준다.[207]

 

“대중을 통제 조정하는 최상의 길은 그들에게 해로운 일을 하도록 조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중은 스스로 통제력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소와 양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와 양을 탁 트인 황야에 풀어 놓는 것이다.” 글쓰기에서도 커다란 들판이 필요하다.[208]

 

규칙적인 연습은 창조력을 마비시킨다

 

이렇게 그냥 시간만 채우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시간 속에 엄청난 압력을 가해야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는 목숨 전체를 기꺼이 그 글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기계적으로 펜을 끄적거리면서 언제 시간이 끝날까 자꾸 시계만 쳐다보게 될 것이다.[209]

 

글쓰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에게는 진실을 말할 신성한 의무가 있으며, 그 임무는 종이에서부터 걸어 나와 우리의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지 못하다면 작가로서의 우리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우리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도 넓어진다. 이런 연유로 인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글을 쓰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도전이다. 그 도전을 받아들이라.[215]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13세기의 선승인 도겐은 이렇게 말했다.”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다.” 이것이야말로 부침이 심한 인생에서 우리가 글쓰기를 향해 가져야 할 궁극적인 태도와 신념이다.[217]

 

이렇듯 작가가 되려면 아주 깊은 믿음이 따라야 한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깊은 진실이다. 그리고 만약 작가가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작가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나머지 인생동안 가야할 길이다. 나는 이 사실을 다시 또 기억할 것이다.[219]

외로움을 이용하라

 

“당신은 혼자 살아가야 합니다.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해요. 그것이 당신의 궁극적인 주소지이니까요.[223]

 

예술은 의사소통이다. 고독의 씁쓸한 맛을 본 사람은, 거기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지애와 연민을 배우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에게 당신의 인생을 알려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끌고 나가게 된다. 당신의 글이 또 다른 외로운 영혼에게 닿을 수 있도록 손을 뻗으라.[224, 225]

 

고독을 이용하라. 고독의 아픔은 당신에게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만들어 줄 것이다. 고독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그 고독을, 당신의 더 깊은 곳을 탐사하는 내시경으로 이용하라.[225]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라

 

“당연합니다. 당신이 내면 깊숙이 들어갈수록 당신은 점점 더 당신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229]

 

누구에게나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누구에게나 정직한 고결함과 세심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표현해 내는,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능력과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고, 그 때문에 자신의 글이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245]

 

“작품도 형편없고, 나도 형편없다.”라거나 “작품은 좋은데 나는 나쁘다.” 또는 “작품은 나쁘지만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하지 말라. “나는 좋은 사람이다. 그렇게 때문에 나에게는 좋은 글을 막는 벽을 뚫고 나가 그 글이 바로 나 자신임을 주장할 능력이 있다.”라고 말하여라. 이것이 우리가 채워나가야 할 내용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고 더불어 우리의 작품도 훌륭할 때, 그것이 좋은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그것이 함께 서 있어야 한다.[248]

 

작품을 평가하는 스스로의 잣대를 가져라

 

언젠가는 무언가 좋은 것이 되어 밖으로 나올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라.[251]

 

사무라이가 되어 써라

 

“잠깐만요, 사무라이가 뭐죠?”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라는 뜻입니다.[253]

 

완전히 태워버린 것, 첫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것만이 모든 사람을 깨우고 모든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다. 누군가 정말 뜨거운 작품을 읽을 때, 그것이 듣는 모든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수업을 하면서 많이 보아왔다. 자신의 작품을 솔직하게 쳐다보라. 무언가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된 것이다. 만약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죽은 발에 채찍질하는 짓은 멈추라. 다른 글을 쓰라. 무언가가 나타날 것이다. 나쁜 글은 세상에 이미 너무 많다. 그래서 좋은 글을 단 한 줄만 써도 당신은 유명해질 것이다. 미적지근한 글은 사람을 잠들게 만든다.[255]

 

고쳐 쓰기

 

그날 나는 작업실에서 도저히 좋은 글을 슬 수 없을 거라는 절망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앵앵거리는 모기떼 같은 이런 자기 비판적인 생각 아래서도, 내 손은 첫 생각을 기록하고, 그 순간을 옮겨 놓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지치지 않고 지껄여대는 내면의 비평가를 무시하고 계속 종이 위에 손을 움직이게 할 능력이 있다.[258]

 

산만한 정신을 뚫고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훈련이다. 한 달 후 당신은 그 시절 당신이 썼던 노트를 읽으며 그 글의 훌륭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의 무의식과 의식이 만나 서로를 깨닫고 하나가 되는 시점이다. 이것이 작품이다.[259]

 

그 대신 작품을 다시 돌아볼 때는 지금 이 순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라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전사, 즉 사무라이가 되어야 한다. 미련 없이 적을 잘라내는 사무라이처럼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을 때는 기꺼이 감상을 버려야 한다. 깨끗하게 본질을 꿰뚫는 마음으로 자신의 글을 쳐다보라. 하지만 글에 간섭하고 싶고 좀더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다.[260]

 

에필로그

 

“이 책을 완성하는 데 1 6개월이 걸렸어요. 적어도 절반은 처음 썼을 때 나온 것들이죠. 가장 힘든 싸움은 글 쓰는 행위가 아니었어요. 내가 과연 괜찮은 것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싸우는 게 제일 힘들었죠.” 마지막 한 달 반 동안 나는 주말도 휴일도 없이 글을 쓰는 데 매진했다. 나는 한 장씩 완성시킨 다음,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내 속에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먹어라, 친구를 만나라, 낮잠을 자라고 아우성 쳐댔지만, 나는 그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267]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성공이 행복하다라는 등식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성공을 해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공은 또 다른 고립감과 실망을 가져온다. 모든 성공이 다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받아 들이는 여유를 가져라 이렇게 큰 감정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제한시키지 말라.[267]

 

“만약 그쪽에서 다신 책을 출판하겠다고 하면 아주 잘된 일이지만, 그것에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당신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일입니다. 계속해서 글을 쓰는 데만 정진하십시오.[268]

 

옮기고 나서

 

저자는 자유롭게 글을 쓰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글쓰기라! 이런 말을 누가 못하겠는가? 하지만 다음에는 이 자유로운 글쓰기란 자신만의 솔직한 목소리를 찾아내는 길이며, 궁극적으로 인생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270]

 

글쓰기를 통해 세상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글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를 돌이켜보며 인생을 완성시켜 나가려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세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진짜 보물들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270]

 

이 책은 글 쓰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존경심을 더욱 높여 주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자유와 진실을 추구하고 세상과 자신에 대한 진정한 연민을 키워가는 끊임없는 훈련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아니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점 또한 좋았다.[270]

 

내가 저자라면

 

그녀가 나에게 준 메시지

 

수 없이 많은 저자들의 이름을 마음에 담아 두려 노력하지만, 여러 사람의 이름이 섞여 입에 맴돌다 써 먹어야 할 자리에서 입을 다물고 속을 태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적어도 이 책 저자의 이름을 잊는 다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글은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나탈리 골드버그연상 기억법을 적용했다. 나탈리 금색 벌레…. 그래 그랬다. 그녀는 나의 마음에 금빛 벌레로 들어왔다. 흙을 뒤엎는 벌레처럼 나의 마음을 갈아 엎었다. 끼니를 넘기는 것도 모르고 몰입했다. 그녀의 책 속에 빠져 든 것이다. 내가 저자라면 그녀와 같이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핵심 있는 말로 전달하고 싶은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뼈대 있는 핵심과 아픈 곳을 위로 받을 수 있는 책이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었다.

 

얼마 전 나비효과란 실험에 대한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즉 나비가 고치에 있을 때 인위적으로 가위로 고치 끝을 잘라주면서 나비가 일찍 나오기를 유도했다. 예상대로 나비는 세상에 일찍 나왔다. 하지만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자리에 앉아 다시는 날지 못했다는 실험 결과를 보았다. 즉 나비는 고치 속에서 나오려고 몸짓을 하는 과정에서 날개에 힘이 길러지고 날기 위한 훈련이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글쓰기 훈련을 통해 글을 쓰기 위한 힘을 기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것이 수 없이 강조한 여러 가지 기술 중에 나에게는 제일 중요한 핵심 메시지로 다가왔다. 힘을 기르지 않는다면 단 한 권의 책이 이 세상에 나왔다 하더라도 더 이상의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날지 못 하는 나비처럼 말이다.

 

그녀는 많은 경험으로 책을 엮었다.

 

내가 고민하는 것들을 적은 일기장을 가지고 가서 거기에 대한 답변을 써 내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본인이 경험하지 않은 글을 그저 활자에 불과하다. 그녀는 이 책의 세부목차의 소제목처럼 고민하고 실패를 거듭하며 정리된 글이라는 것이 피부로 와 닿았다. 그녀는 그 갈등을 글로 남겨 두었던 것이 지금 내 모습과 다른 점이었다. 아마도 이 부분이 내가 그녀에게 배워야 할 가장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에 대한 나의 수 없는 착오들, 남의 시선 그리고 내가 쓴 글을 몇 번이나 도마 위에 올리고 썰고 다지고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이 곤죽이 되어 버린 글들을 쓰레기 취급을 하며 지워 버렸던가! 편집자는 내 안에 있었다. 스스로 자책하고 힘들어 하고 잘 가는 길인지 묻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친절히 답을 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위안이 되었다. 또한 인생의 이야기도 그녀의 스승의 가르침도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당신의 글쓰기에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면 그 무엇이든지 그것이 가는 대로 풀어 놓아라”[62]

나는 글 쓰는 손에 에너지가 실렸다 그녀가 나에게 준 용기였다.

나는 개를 본다라는 문장이 있다. 여기서는 우주의 중심이다. 이러한 문장 구조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내가 개를 보고 있는 동안 개도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 버린다.”[114]

그랬다. 개도 늘 나를 보고 있다. 그것을 나는 표현 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틀에 갇힌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 보고 문장 구조 속에 갇히지 말라는 이야기로 들려왔다. 콩깍지 속에 들은 콩은 반드시 비틀어야 속에서 콩이 튀어 나온다. 세상을 한 번만 비틀어 바라보면 새로운 시각 속에서 새로운 글이 튀어나올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나서

 

2010 1229일 오전 11 9

 

이 책을 단 하루 만에 읽고 책장을 덮은 시간이었다. 며칠 내내 눈이 와서 온통 사방이 하얗다. 책을 막 끝내고 나니 창문으로 들어 오는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사방이 다 환해 보인다. 이 책을 읽고 난 기분과 날씨가 딱 맞아 떨어졌다. 아주 상쾌하고 명료했다. 얼마 전 밤에 안개 낀 도로를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한 치 앞은커녕 아무것도 안 보였다. 나는 그 때 안개 낀 길을 운전하는 것이 두려웠다. 앞으로 가지도 돌아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안개는 끼여있다고 생각했는데, 마구 움직였다. 나에게 마구 덤벼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글을 쓰는 내 마음 같았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나에게 마구 달려 드는데 나는 길이 안 보여 갈 수 없는 그 마음이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마치 옆에서 이야기를 해 주는 것처럼 나를 위로해주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저자와 대화를 하는 듯이 책을 읽은 경험은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만나 친구랑 헤어지기 싫은 기분으로 책을 잠시라도 놓을 수가 없었다. 배가 고파도 참으며 그녀와의 진지한 만남은 계속 되었다. 나는 작년 가을 그녀의 책을 알게 되었을 때 구입을 해서 읽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작년에 읽었다면 나는 올 한해 글쓰기에 대한 훈련도 더 많이 되어있을 것이고 글도 좀 성장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내 이 생각은 접어 버렸다. 모든 것은 때가 되어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내가 일년을 안개 속에서 헤매보았기 때문에 그녀의 말이 가슴 와 닿은 것이다. 작년에 읽었다면 난 아마 오늘의 이 느낌으로 책을 읽지 않고 책장에 쉬고 있는 책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지금이 분명히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책 쓰기 이야기 이외에 인생 이야기도 공감했다. 가슴이 아팠다. 그녀와 나는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것을 잘 이겨내기 위해 같은 길을 가고 있었다. 그녀는 멕시코 북부 산타페에서 요가 명상 센터를 하고 있었다. 같은 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녀가 그렇게 편하고 가깝게 느껴졌나 보다.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모든 조건이 딱 맞아 떨어지는 날 나는 가방을 쌀 것이다. 그녀의 센터의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리조나주 세도나에 있는 세계적인 명상센터힐링 센터를 가는 것을 꿈 꾸었는데 제 작년 크리스마스를 나는 그 곳에서 맞았다. 그녀의 센터와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의 만남을 그리며 말이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내가 할 일들을 적어 보았다. 세밀한 정밀묘사를 주위에서 놓치지 않고 또 그것을 적어 두는 습관을 기를 것이다. 또한 쓰고 싶은 시간에 형식 없이 자유롭게 많은 글을 쓸 것이다. 습작 노트를 채워 갈 것이다. 번쩍 떠오르는 글귀들을 바로 적을 것이다. (늘 글 강박증에 시달려 나는 자다가 눈이 떠졌을 때 첫 문장이나 컬럼 쓸 내용들이 번쩍 떠오른다. 그런데 일어나기 싫어 잘 기억해두어야지 하고 다음 날 절대 기억이 안나 안타까운 적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그리고 글로 남겨 둘 것이다. 경험을 많이 쌓아 놓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경험이라도 상관이 없다. 이런 세세한 글을 남기다 보니 한 해가 가는 마지막 날에 새해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거듭 날 것이다라고 끄적이던 학창시절이 떠 올랐다. 이 책은 나를 가르친 교과서와 같다 아니면 나를 새롭게 거듭나게 한 성경과도 같았다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이 책은 보았는데 또 보고 싶은 나의 가슴을 뛰게 하고 흥분시킨애인과 같은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오래 옆에 두고 많이 행복해 할 것이다.

나는 책을 덮으며 책 맨 앞쪽에 있는 연두색 컬러 종이에다 열심히 적은 글을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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