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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7일 02시 39분 등록
칼리는  해보지도 않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경멸한다. 과거 고정주영 회장이 게으른 사람을 경멸하던 태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사람에게 '해봤어'라고 말한 이야기와 상통한다. 남다른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일단 해본다'는 것을 그녀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같은 성격은 7학년때 고전을 배우고 희랍어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읽기로 결정할때부터 생겼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어쨌든 해냈다는 것이다. 

1980년 25세 나이로 AT&T 네트워크 시스템 영업직에 입사. '놀랍도록 재기 발랄한 두뇌'라는 평가와 함께 비즈니스 역량을 인정받는다. 한국, 대만, 일본에서 합작사업을 훌륭히 성사시켰다. 

이후 35세에 AT&T네트워크 부문 최초의 여성임원에 오르고 40세인 북미 영업담당 이사로 승진하는 기록을 세웠다. 96년, AT&T는 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통신장비 부문을 분할시키기로 했으며 피오리나를 새 회사 창립준비팀에 발탁한다. 이때 피오리나는 기업분사를 성공적으로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96년 4월 루슨트테크놀로지를 AT&T로부터 분사시키면서 30억 달러의 기록적인 수입을 거둔다. 

이후 루슨트 테크놀로지에서 2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대표를 맡고, 경영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녀의 경영 이후, 주가가 12배로 오른다.

'빠른 것은 항상 늦은 것보다 좋고 즉시는 항상 나중보다 좋다'는 그녀는 속도를 중시한다. 때문인지 개혁은 지나치다고 여겨질 정도로 과감하다. 

1999년 휴렛패커드의 최고경영자로 영입되었으며, 2001년 컴팩을 인수합병하고, CEO가 된다. HP의 60여년사는 물론이고 다우지수 편입 30개 대기업에서도 처음으로 나온 여성 CEO였다. 1억달러에 육박하는 총급여를 제시받고 잘 나가던 루슨트 테크놀로지의 간판스타 자리를 버리고 갔다. 나이에 비해 다양한 경험과 엄청난 추진력 판단력을 갖춰 이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게 당시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평가였다. 남편 프랭크 피오리나는 아내가 HP의 CEO가 되자 유능한 아내를 돕기 위해 회사를 사직하고 집안 일을 맡아서 화제가 되었다. 

피오리나는 1998년부터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이 매년 발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 50인'중 1위에 뽑혔다. 휴렛패커드 최초의 외부 출신 회장, 대형 컴퓨터 업계 최초의 여성 회장, 세계 상위 20대 기업 최초의 여성 회장등 여러 기록을 세우며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005년 2월 회장 겸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사입했다. 피오리나는 2002년에 주주와 중역들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강행한 컴팩 인수와 이후 주가 하락, 미래 전략을 둘러싼 이사회와의 이견 때문에 축출되었다. 피오리나 퇴임 소식이 알려지자 HP주가는 10% 급등했다. 

피오리나는 사임 성명에서 '나는 HP의 전략 실행 방법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있지만, HP의 결정은 존중한다'며 사임의사를 밝혔다. HP는 퇴직위로금으로 2100만달러(약 216억원)를 지급할 예정이다. HP 이사회는 CEO가 비자발적으로 임기내에 사직할 경우 연봉의 2.5배를 퇴직위로금으로 지급한다. 

피오리나가 중도하차한 이유는 '주가 견인 실패, HP조직문화 적응 실패, 컴팩과 합병 실패'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녀는 재임 기간 동안 '종합 백화점'식으로 운영되던 HP의 83개 사업부를 '프로트 엔드(front end), 백엔드(back end)그룹으로 통합했다. 총 83개에 이르던 HP의 사업부문을 몇 개로 줄이는 대대적인 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 회사를 중앙화시키는 등의 공을 세웠다. 그녀는 또 HP를 IBM처럼 컴퓨터 주변기기, 서비스의 통합체로 만드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피오리나가 HP의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점도 실패의 원인이다. 관료주의를 혐오했던 창업자 윌리엄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는 1930년대 패커드 집 차고에서 HP를 창업한 이후 독특한 'HP방식'을 추구해왓다. 하지만 민주적 경영, 근로자에 대한 배려 등이 골자인 HP방식은 기업성장의 장애물로 인색됐고, 이 사회도 그 점을 우려해 외부인사인 피오리나 영입으로 구조조정을 꾀했다. 그러나 그녀의 독단적인 운영방식이 오히려 이사회의 반감을 사서 결국 낙마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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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영혼은 나의 것이다'라는 말 한마디. 그녀가 이야기하기 때문에 가슴을 울린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녀의 자서전은 나오기 전에, 화제가 되었다. 과연 HP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엇때문에 승승장구했던 여걸이 한순간에 몰락한 것일까? 누구나 궁금해할만 하다. 칼리 피오리나는 책의 구성도 사업하는 것처럼 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한다. 가장 독자가 알고 싶어하고, 흥미있어할 부분을 프롤로그로 했다. 

총 30장이다. 1장에서는 근본이 되는 가정을 이야기한다. 대기업에서는 CEO를 영입할 때, 정신과 의사까지 동원하는가 보다. 올바른 가치관과 균형있는 시각은 중요하고, 가정교육에서 비롯된다. 그녀의 책임감과 추진력의 기원은 가정이라고 말한다. 

2장은 대학 이야기다. 어떤 지식과 철학을 형성했는가를 알 수 있다. 보통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점수에 맞쳐서, 학과와 학교를 선택한다. 칼리 피오리나는 주체적으로 자기 공부를 선택했다. 역사 철학은 한국에서는 인기없는 학과다. 세계적인 기업의 CEO가 역사 철학을 공부한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결국 HP를 나온 것은, 컴팩을 무리하게 인수했기 때문이다. 짤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했던 그 용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아마도, 역사 지식과 철학에서 일것이다. 

철학을 원전으로 공부하기 위해서, 여러 언어를 배운 장면이 나온다. 라틴어, 프랑스어, 독어, 고대 그리스어까지 공부한다. 한국 학생은 대학 들어가면 술먹고 노느라 바쁘다. 때문에, 사회에 나와서는 인문학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철학과 교양이 없으니, 자기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녀는 원없이 공부했다. 사회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기본의 기본을 대학시절 득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에 진학했다가, 자퇴한다. 이때부터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갖는다. 이른 나이에 성공한 걸 보면, 역시 이른 나이에 철이 들었다. 

3장은, 이 책에 제일 먼저 읽고 싶은 부분이다. 제목이 땡긴다. '다음 직장을 생각지 말라' 요즘 같이 파랑새족들이 많은 시대에, 선견자의 일침과 같은 말이다. 어떻게 취업을 하고, 첫직장에서 기회를 만들어나갔는지 이야기한다. 첫직장은 그녀의 전체 경력을 놓고 보았을 때, 마중물에 해당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녀도 작은 일에서 성공해서, 결국 더 큰 기회를 잡았다. 

정말이지, 그녀처럼 세계적인 CEO가 신문의 구인란을 보고, 생계비를 벌기 위해서 동네 미용실에서 일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그녀의 시작은 보잘것 없었다. 누구나 자포자기하고, 희망을 찾지 못하는 곳에서, 그녀만은 남다른 성취를 얻었다. 올바른 가정교육과 남다른 지식이 빛을 발한 것일까? 책의 전면부에는 그녀의 얼굴이,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와있다. 사진만 봐도, 독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강인함은 도덕성과 지식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4장에서는 전남편 토드와의 결혼 이야기. 경영 대학원에서 만난 교수를 회상한다. 놀라운 것은 몇십년이 지났건만 당시의 상황과 교수의 이름, 그들에게서 배웠던 점들을 기억해낸다는 것이다. 이런 것만 보아도, 그녀는 머리가 좋다. 기억력이 머리가 좋다, 나쁘다의 잣대가 될 수 없지만, 그래도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기억력도 좋다. 잘, 그리고 정확하게 기억한다. 

AT&T에 입사해서, 어리버리하게 연수를 받던 이야기를 한다. 

5장은 AT&T에서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 이야기다. 압권은 스트립클럽에서 거래처와 비즈니스를 하는 장면이다. 영화나 소설이라면, 식상하지만, 그녀가 경험한 실제 이야기이기에 흥미롭다. 그것도 몇시간 동안이나 비즈니스를 했다. 그녀가 쉽게 굴했다면, 사람들은 그녀를 그렇고 그런 신입사원으로 알았을 것이다. 스트립 클럽의 경험은 다른 비즈니스에서도 도움이 된다. 여기까지 읽으면, 각 장의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 그녀는 어느 상황에서나 '배운다'는 점이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모든 상황을 자신을 위한 자양분으로 흡수한다. 

6장은 첫남편 토드와 헤어지고, 프랭크와 결혼한 내용이 나온다. 보통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인데, 가감없이 이야기해나간다. 토즈와 헤어진 이유가 흥미로운데, 거짓말하고 능력 없는 남자라 헤어진 것이다. 한국의 경우라면 어떠할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지 않는가? 이봉원과 박미선 처럼 말이다. 박미선은 이혼하고 싶은 생각이 몇번이고 들었지만, 이혼하는 절차도 모르겠고 귀찮을 것 같아서, 그냥 눌러산다는 개그우먼 같은 말을 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게이츠는 천재적인 개발자인 동시에, 탁월한 비즈니스맨이었다. 그는 윈도우를 조금이라도 해害하려는 세력이 있으면, 그때 그때 싹을 잘라내고, 바로 대응을 했다. 자신을 보호했기 때문에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는데 소극적이다. 상대가 쑤셔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 버린다. 싸움하고, 하나 하나 따지는 행위를 몰지각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피곤한 사람이라고 낙인 찍히고, 왕따가 되어버린다. 

만일, 칼리가 박미선처럼 토드와 눌러 살았더라면 어떠했을까? 이건 참 중요한 문제다. 결혼은, 일생을 좌우하는 생활인데, 그 중요성은 간과하고 일상성과 항상성이라는 타성에 젖어 생각없이 보내기 때문이다. 크게 일가를 이룬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보면 한치도 허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안도타다오는 어중간하고 모호한 것이 있으면 참지를 못한다. 그의 건축물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연과 잘 조화한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고 그것도 아니면 과감히 제거해 버리는  모습 또한 냉정한 경영자의 모습이다. 경영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데, 경영의 기본은 선택과 집중이다. 버리고, 하나만 취할려면 냉정해야 하고, 미련을 두어서는 안된다. 

7장에서는 처음으로 관리자가 된 내용이다. 다시 한번 감탄하는 것은 20여년전의 일인데, 어쩜 이렇게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당시 사람들의 이름과 상황 , 콘디션을 불러내는 그녀의 능력은 참 놀랍다. 이것은 생각없이 읽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기 쉽다. 보통 능력이 아닌 것이다. 그녀의 에너지는 기본적으로 외향적이다. 자기 내부에 침잠하기 보다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서 주변을 탐색하는 야수같다. 

뒤에도 이야기하지만, 그녀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좌절을 겪는다. 그녀가 만일 외향적이지 않았더라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일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외부에서 받은 상처를, 역시 외부에 관심을 둠으로써 치유해나갔다. 모진 고난에도 불구하고, 더 강해지고 더 풍부한 감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렵고 문제에 부딪힐때마다 쭈뼛거리지 않고, 대차게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런 기질이 없다고 하더라도, 키울 필요는 있다. 아니 생명에 관련된 것이기에 키워야 한다. 내향적인 사람은 내향성의 병에 걸린다. 외부의 문제는 외부에서 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해결점 보다 자신이 받은 상처에 골몰한다. 상처는 집중하면 할수록 커진다. 

조직 내의 인사 평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상사가 그의 험담을 한 것을 알고, 바로 맞받아치는데 이런 기질은 그녀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약한 기질의 사람은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함부로 대들지 못한다. 강한 기질, 도덕적 원칙, 확고한 철학이 그녀를 승리로 이끄는 중이다. 

세일즈에서 엔지니어링 파트로 자리를 옮기는 내용이 8장에 나온다. 새로운 일을 하게 될때는, 그녀만의 노하우가 있다. 관련 서류를 읽고, 사람들에게 질문을 퍼붓는다. 초반에 대대적인 학습으로 분위기를 파악한다. 어느 정도 감이 오면, 자신의 포지션을 정한다. 엔지니어링 파트에서 그녀가 스스로 정한 업무는, 엔지니어들을 격려해서 최고의 성과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타고난 추진력으로 변화를 이끈다. 그녀는 현대 고 정주영회장 처럼 일하고 싶고, 도전하고 싶어서 잠도 못자는 사람 같다. 

아무도 시키지 않는 일을 스스로 해낸다. 오류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검토를 하자 생각대로 오류가 나왔다. 직감과 분석의 능력이다. 또 말버릇이 고약한 사람에게 협박하는 내용이 나온다. '정말로 중요한 일은 협박이라도 해서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현실과 경험에 의해서 나온 것이기에 설득력이 있다. 설득력이란 논리가 아니라, 경험의 소산이다. 

9장에서는 더 높은 자리로 옮겨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한 사람을 정리한다. '나가달라'는 말은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나 고역이다. 어려운 이야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회사의 목표는 개인의 야심이나 '인정받고 싶은' 욕망보다 중요하다. 101. 나를 버리고, 더 큰 목적에 기여할 때 나 또한 성장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또, 마이크 부사장에게 지원을 요청할 때도, 에둘러 이야기하지 않고 직접 설득을 해서 성공한다. 

에단이 그녀의 이야기를 받아들여서 자리에서 내려온 것, 마이크가 지원을 얻기 위해 본사로 들어간 것은 그녀가 설득한 결과다. 그녀의 무엇이 설득한 것일까? 일에 대한 집중, 에너지, 진정성,그리고 논리가 아닐까?

보잉사 임원들 앞에서 성적인 굴욕을 당한다. 그녀는 외부의 충격이 들어오면, 더 단단하게 다져지는 특성이 있다.  

10장에서는 소송을 하고 법정에 사는 내용이다. 이때부터 그녀는 미디어에 나오기 시작한다. 기자들 앞에서 두려웠던 이야기, 법정에서 사람들이 빤히 거짓말하는 모습을 그대로 본다. 그녀는 이 경험을 통해서도 배운다. 사람들이 거짓말할 때, 어떤 제스추어를 하는지까지 배움으로 받아들인다. 어떤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그 상황을 통해서 배운다는 의미다. 

대표가 국회의원에게 이야기할 메모를 10분간 작성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정신 집중을 다해, 그 메모를 작성한다. 경영이란, 선택과 집중의 문제다. 그녀에게는 어디서 집중하고,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 

MIT 경영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내용이 11장에 나온다. MIT 천재들과 노벨상 수상자를 보면서, 지적 자극을 얻는다. 강의를 들으며, 경영자로서의 기술을 더 다진다. 예를 들면, 전체를 아울러서 결론을 내리는 의사결정, 서로가 윈윈이 되는 협상 방법등이다. 이런 수업은 기술적으로도 난이도가 높지만, 압박감을 견디어내야 한다는 특성이 있다. 

1년간 공부하면서 여러 CEO를 만난다. 그들도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그녀는 자신도 CEO의 꿈을 키웠을 지 모른다. 함께 공부한 학생들이 공격적인 A형 사실에 놀란다.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공격적이어야 하는가 보다. 

12장은  복직을 하고, 새 환경에 적응하는 내용이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네트워크 시스템스를 선택한다. 역시 도와주는 사람 없어서, 회의 시간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관련 서류를 밤 늦게까지 검토한다. 새로운 환경에 그녀만의 적응 노하우다. 여기서 또 한가지 눈여겨 볼 것은, 그녀는 부서를 많이 옮기는 편인데, 가는 곳마다 텃새가 있다는 점이다. 호락호락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라면 어떠했을까? 목표지향적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목표지향이란, 내가 받는 상처나 감정을 중시하는 태도가 아니다. 생각한 것이 눈 앞에 펼쳐질때까지 상처를 받건, 부상을 당하건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다. 전장에서 군인이 이기는 것 보다, 자신의 부상에 신경 쓴다면 그는 적에게 죽을 것이다. 

이런 텃새는 6개월간 지속되고, 그녀는 악을 쓰며 버텨낸다. 여기서 경영의 또 한가지 면을 본다. 맷집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든 버텨내야한다. 잭 핵과 맞짱 뜨는 장면에서, 로마에 가거든 로마법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어떻게든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고자 애쓴다. 

여기까지 오니까, 책의 구성이 들어온다. 책의 내용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그녀의 경험이다. 이런 경험이 없다면, 책을 쓸 수 없는 것도 당연한다. 자신이 해낸 일들, 사람들과의 관계가 파라만장하게 책을 수놓는다. 그 사이 사이 칼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식이다. 무언가 시도하고 성취하지 않은 사람은 이런 내용을 쓰지 못할 것이다. 경험이 흥미로운 것은, 그 경험이 커다란 영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큰 회사에서 높은 압력을 견디며, 큰 일을 해낸 경험들이다. 

조직에서 일하는 것과 자영업자로서 혼자 일하는 것은 다르다. 조직은 동료와 상사가 감시와 애정의 눈이 되어준다. 나를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다. 내 맘대로 할 수 없지만, 잘해내면 격려해준다. 직접적으로 칭찬해주지 않더라도, 긍정적인 느낌이 있다. 어려워도 그런 느낌과 시선을 상상하면, 끝까지 일을 해낼 수 있다. 자영업자는 내 맘대로 할 수 있지만, 오직 결과로만 만족할 뿐이다. 그래서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 

한국LG와 비즈니스 하는 장면에서는 그녀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13장은 멋진 이야기로 시작한다. '인간에게는 동기 부여를 해줄 목표와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 두 가지는 자존감을 얻고 타인에게 존중받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다.' 리더는 타고 나는 것일까? 그녀는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한다. 무언가를 추진할려고 하는데, 밑의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절망한다. 이런 생각을 한다. '나를 우습게 보는군' . 그렇게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왜냐면, 처음 보아도 리더십의 포스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압도적인 포스는 타고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적어도 나에게 리더의 기질이 없다고 금방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녀는 더 큰 변화를 위해 네트워크 시스템스의 전략과 목표에 손을 댄다. 칼리는 강하기도 하지만, 누구도 시키지 않는 일을 알아서 해나간다는 점이다. 한번 더 정리하자. 그녀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한다. 도망가기 보다는 버티거나 정면돌파한다. 무엇보다, 진면목은 외부의 비아냥과 상처를 튕겨낸다는 점이다. 찌그러지지만, 다시 일어나고 만다. 그 경험을 소중한 배움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14장에서 칼리는 사장단이 된다. 높은 직위에서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리더로서의 처신과 할 일을 말하고 있다. 문제점이 있으면 솔선수범해서 도와주는 것이 리더이다.

북아메리카 부사장들을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 이제 모두들 여러분을 징징대는 애들로 여깁니다.'라고 임원들에게 쏘아붙인다. 물론 상처 받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상대의 자존감을 건드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다. 후에 어떤 부작용이 새길지 모르나, 어쨌든 당장은 효과가 있었다. 

칼리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에게는 참 모자른 부분이 있다. 직원들의 노고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칭찬과 애정이 필요한데, 나의 경우에는 거의 없다. 나뿐만 아니라 한국 남자들이 대부분 무뚝뚝하다. 직원들과 밀착해서 경영하는 것은, 여성만이 갖는 강점이기도 하다. 

뉴코의 분사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그녀의 경력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다. 그녀는 배우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다. 도전은 곧 배움이다. 각 장의 끝 절에서 '무엇을 배웠는 지'를 꼭 집고 넘어간다. 미친듯이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그녀의 성공 핵심요소였다. 이 책을 보라, 다소 볼륨감이 있는 두께지만, 책 자체가 열정으로 밀도있게 뭉쳐있다. 15장으로 넘어가며, 루슨트 테크놀러지를 설립한다. 

새 회사를 만들어가면서, 얼마나 기대감이 차있는 지 알 수 있다. 그녀는 사업가 체질이다. 보통 창업한 사람은 그 막막함에 한숨 부터 나오는데, 그녀는 소풍 전날의 어린 아이처럼 들떠있다. 그녀는 들뜬 이유는 무엇일까? 부자가 자신의 일궈놓은 자산을 보고, 흐뭇해하듯이 그녀는 자신이 2년간 배운 지식에 흐뭇해한다. 월스트리트의 속성과 리더십과 전략등이 그것이다. 그녀가 미친듯이 일하는 것은 더 뛰어나기 위해서다. 더 잘해내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하고, 일을 완벽하게 해나가는 과정이 그녀에게는 공부다. 

배우는 태도는 바람직하다. 날카로운 칼을 칼집에 넣고 다는 모습에 비유할 수 있다. 겸손을 유지하며, 뛰어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16장에서는 그녀를 움직이는 동기가 무엇인지 밝힌다. '돈은 좋지만, 돈으로 마음을 살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녀의 보석은, 어디에서 비롯된지 모르는 열정이다. 그 열정이 그녀를 쉬지않고 움직이게 해준다. 흥미로운 점은 회사를 옮기기로 결심하면서, '2년간 몰입하겠다'고 다짐하는 부분이다. 왜 2년일까? 2년이면, 보통 시스템을 파악하고 성장하는 시간인 듯하다. 짧고 굵게 화력을 집중한다. 그녀가 승승장구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온 힘을 다해 집중하는 데 있다. 

나는 과연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시간을 성과를 직접적으로 올리는 곳에 투자하고 있는가? 성과라는 것이 애매하다. 개인에 따라서 성과의 의미는 다를 것이다. 성과를 올리는 방법도 다르다. 어떤이는 자주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어떤이는 깊고 크게 한번에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의미와 방법은 여러가지 이겠지만, 분명해야 한다는 것은 똑같다. 자신의 성과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방황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성과는 무엇일까? 물론 변화다.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다. 책을 읽어나가면 그녀가 일하는 방식이 조금씩 드러난다. 

17장에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더불어 그녀는 비약적인 유명인사가 된다. 

18장에서 역사적인 휴렛패커드 CEO 자리를 제안 받는다. 그녀는 가슴이 뛴다. 엄청난 보수를 받을 것이다. 그 보수 때문이 아니라, 얻게 될 경험때문이다. 면접을 받으며 부지런히  관련 자료를 찾는다. 특히, 데이브 팩커드의 'HP방식'을 네 번 읽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많이 알되, 그녀의 학습 방법은 '확실하게 알기'다. 어설픈 지식은 성과를 올릴 수 없다. 책을 읽어갈수록, 그녀의 성취와 노력, 목표가 손에 잡힐듯이 분명하다는 것을 느낀다. 분명하게 알아야 확실하게 움직일 수 있다.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18장은 HP CEO의 채용에 관한 내용들이다. 그녀도 면접 받지만, 그녀 역시 회사를 면접한다. 

루슨트를 사임하고, HP 전용기로 캘리포니아에 오는 내용이 19장에 나온다. 호텔에 도착해서, 루슨트 테크놀러지 직원들에게 편지를 쓴다. 잠에서 깼을 때는 휴렛패커드에 성심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한국 여인의 절개와 같은 느낌을 준다. 한 여자가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겠다는 의지와 같다. 그녀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집중력 덕분이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며, 오로지 현재와 미래의 변화만을 바라보며 무서운 기세로 나아간다. 

'HP에는 새로운 정신 상태가 필요했다' 새로운 정신 상태란, 컴퓨터로 치자면 새롭게 OS를 설치하는 작업과 같다. HP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사회는 그녀에게 냉소적이고, 언론은 갖은 루머를 만든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약점을 끊임없이 캤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모두 도망갔을 것이다. 주목할 점은, 그녀는 이런 냉대와 비난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구체적인 실무 이야기는 20장으로 이어진다. '천 개의 부족들'이란, 각각의 사업이 따로 따로 노는 HP의 모습을 이야기한 것이다. HP의 경영은 느슨했고, 직원들은 별다른 목적의식 없이 회사생활을 했다. 실리콘은 밤잠을 설쳐가며, 혁신을 해가는 중인데, 정작 실리콘밸리를 만든 HP는 늘어질대로 늘어진 상태였다. 직원들은 4시와 5시면 대부분 퇴근을 했다. 

다행인 것은, 그 중에서도 변화와 혁신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칼리는 변화를 결심하는데, 그녀의 행동은 누군가에게는 구원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이단이 될 것이다. 

21장은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개선하는 내용이다. 예를 들면 87개의 부문들은 각각의 브랜드와 유통 채널, 인사, IT시스템, 재무팀을 거느렸으나,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기술적인 혁신 또한 경쟁사에 비해 뒤쳐졌다. 그녀는 재정에 대해서 경영진에게 질문했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전체 직원의 수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에 오래 다녔다고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가 될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배우려 하지 않으면 아무리 오래 있어도, 모른다. 

사장단들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칼리의 진면목이 한번 더 나온다. '솔직함'이 그것이다. 보통 '소극적 공격성'을 띄는 것은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왜 사람들은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할까? 두려움 때문일것이다.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솔직한 것은 위험하다. 위험이 느껴지면 사람들은 익명 뒤로 숨어버린다. 순간을 모면할 수는 있어도, 발전은 없다. '솔직하지 못하면 성과도 없다'

87개의 사업을 17개로 통합하기로 한다. 책을 읽으며, 그녀의 강점을 계속 발견중이다. 첫번째는 열정이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 더 잘해볼려고 하는 열정이 있다. 두 번째는 복잡한 현상 속에서 핵심을 찾아내는 것이다. 혹은 복잡한 사항을 단순하게 정리한다. 무엇이 성과로 직결되는 지 알고 있다. 카테고리를 잘 나누고,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하는 지 안다. 

이렇게 해서 얻은 결론으로 사람들을 설득한다. 강제가 아닌 설득의 방법으로 변화를 도모한다. 설득력과 강인함, 정말이지 CEO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도전해 보고 싶다. 이 책만큼 경영인으로 좋은 매뉴얼이 없다. 거대한 일은 개인에서 시작한다. 개인의 열정. 

리더의 능력은 24장에서 이야기한다. 깊고 좁은 경험이 관리자의 역량이기도 하지만, 부하 직원들도 할 수 있는 일에 시간을 쏟는 것을 지적한다. 리더는 일거리를 만드는 사람이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 시간을 써서는 안된다. 엔지니어의 한계인 것 같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하지만, 다른 일이나 사업,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다. 

비디오 만들기, 노래 부르기같은 행사는 무뚝뚝한 남자 리더라면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칼리 피오리나도 똑똑하지만, 그녀를 과감하게 선택한 HP 역시 뛰어나다. 그녀는 참많은 생각을 한다. 보통 사람이 복잡하고, 머리가 폭발할 것 같은 고민을 머리속으로 해가며, 냉정을 잃지 않는다. 그 고민의 내용이 책에 빡빡하게 나와있다. 

아쉬운 점은, 일거수 일투족 있었던 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좋은데, 부당함에 대해 여고생이 고자질하는 것 같은 문투를 느꼈다. 조금 정도를 덜하거나, 내용을 더러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여백이 없는 것이 단점이다. 앞서 말했지만, 이 책은 어떤 경영서보다도 훌륭한 경영책이다. 그녀가 HP방식을 네번 읽은 것 처럼, 나또한 이 책을 몇번이고 읽어서 숙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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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9일, 공식 발표를 할 준비를 하느라 마음을 다지면서,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안 좋은 얘기들이 불거져 나왔다. 나도 마음에 상처를 받았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더 가슴 아파했다. 외로웠지만, 지난 6년간보다는 덜 쓸쓸했다. 그동안 알고 신뢰했던 동료 이사들이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진실을 말해 주는 정도의 존중심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몹시 서글펐다. 이사회실 밖에서 발언을 한 이사들이 그들 서로의, 그리고 나의 신뢰를 깨뜨렸다고 생각하자 배신감이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을 느꼈지만, 두려움에 젖어 평생을 살아온 터라 두렵지 않았다. 난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했다. 내가 믿는 것에 모든 것을 바쳤다. 실수도 있었지만, 변화를 이루어냈다. 내가 한 선택과 그 결과를 평온하게 받아들였다. 내 영혼은 여전히 내 것이다. 15


하지만 아버지는 머리를 쓰는 일에 장래가 걸려 있으며, 캘버트를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해서 로스쿨에 등록했지만, 2차 대전 중에 공군에 입대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신체적 결함 때문에 전투에 참가할 수가 없었고, 결국 셰퍼드 필드로 가게 되었다.


부모님은 모두 증명할 것과 피해야 될 것이 있다고 느끼면서 성장했다. 그들은 강하고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몹시 불안정했다. 그들은 자신과 자식을 위해 더 나은 삶을 꾸리겠다고 결심했다. 두 분 다 교육과 노력으로 더 나은 삶을 모색해야 했다. 그들은 근면과 극기과 의지를 가치 있는 삶과 훌륭한 인품의 기본 요소로 여겼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고전적인 방식으로 역사, 문학, 라틴어를 교육받기를 원했다. 그는 학자(법학교수)였고 자녀도 그러기를 바랐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자녀에게 해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나는 네 살에 프랑스어 교습을 받았고 일곱 살에 오페라를 보러 갔으며 박물관에 가고 피아노 교습을 받았다. 어머니는 아들딸이 똑같이 문화적이고 세련되며 성공하기를 바랐다. 아버지가 본인의 커리어로 자신의 성공을 판단한반면, 어머니는 자녀들로 자신의 성공을 판가름했다.


부모님은 엄격하고 자제심이 강하며, 요구가 많고 도덕적으로 판단했다. 두 분은 늘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내가 딸이라는 사실은 기대수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당시엔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지만, 나중에서야 드문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특히 그러했다. 23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늘 우수한 성적을 얻었다.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고 집안의 외교관이 되었다. 모든 가족의 다툼에 개입해서, 모든 사람의 입장을 듣고 모두와 공감하고 간격을 메울 방법을 궁리했던 것이다.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순종적이고 근면하며 활달하고 믿음직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그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느끼는 때가 많았다. 형제자매에게 나는 늘 밉살스런 '천사표 내숭'이었다.


부모님 모두 매사에 탁월함을 추구했다. 아버지는 타고난 선생이자 진정한 지식인이었다. 공부는 단순히 생활 수단만은 아니었다. 공부는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어머니는 개성적이고 재능 있는 화가였지만, 자녀 양육을 위해 그림을 접고 자식들에게 온 힘을 쏟아 부었다. 부모님의 기대치는 높았고, 때로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들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하고, 그들을 실망시킬까 봐 겁내며 자랐다.


부모님은 공포나 불안정성, 자기 회의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스스로 그런 면을 많이 가졌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금욕적이었고 나에게도 그러기를 기대했다. 나는 두 분이 좋아할 만한 것만 이야기했다. 고교 졸업반 때 진학했던 일이 기억난다. 고교 입학 후 다섯 번째 전학이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친구들이 그리웠고, 노스캐롤라이나는 딴 세상 같았다. 더래메 있는 찰스 E. 조던 고굥의 졸업반은 결속력이 강하고 끼리끼리 어울렸다. 어느 학교나 졸업반은 다 그렇듯이 말이다. 뚫고 들어가기가 힘들어서 많이 울었다. 부모님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모르는 눈치엿고,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분명했다. 피아노 공부도, 성적도 유지가 되어야 했다. 한 과목  B에 일곱 과목 A인 첫번째 성적표를 들고 집에 오자, 부모님은 내가 전 과목에서 A를 받을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다음 학기에는 전부 A를 받았다. 25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쓰며넛 이 말은 할 수 있다. 나는 높은 기대치의 힘을 경험했다. 나에 대한 기대가 적었다면 많이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부모니메게는 두려움과 결핍감이 있었기에 스스로를 채찍질했다는 사실을 알앗다. 살면서 마주치는 두려움과 불확실성 때문에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을 부모님이 본보기가 되어 가르쳐주엇다. 그리고 변화가 어렵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번 이탈이나 상실과 함께 큰 모험이 찾아왔다.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효과를 깨달았다.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가르쳐 줄 것이 있으며 나눠주고 싶어하니까. 그러므로 나는 대단한 행운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8


나는 최대한 여러 철학 과목을 수강하기로 작정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에 이르는 철학자들을 공부하고 싶었다. 세계를 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사상의 힘, 한 세기의 사상이 수세기 후의 사람들과 사상에 미치는 영향 , 개인이 아닌 인류가 배울 수 있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이 짜릿했다.


헤겔은 카뮈만큼이나 내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반합의 철학, 즉 맞선 것처럼 보이는 사상끼리 화해할 가능성은 탁월하면서도 현실적인 것으로 보였다. 나중에 비즈니스에서 이것을 정신적 모델로 사용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기자에게 가장 좋아하는 경영서의 저자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헤겔이요. '정반합' 이론 말이에요. '루슨트Lucent'에서 우리는 백 년이나 된 회사를 신생 회사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했지요. HP 에서는 우리의 역사를 기념하면서 미래를 창출하려고 노력 중이고요.


가장 귀중한 수강 과목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중세 철학'이라는 대학원 세미나였다. 매주 우리는 아퀴나스, 베이컨, 아벨라르 같은 중세 철학자들의 걸작을 한 편씩 읽어야 했다. 책의 분량은 방대했다. 어떤 때는 일주일에 1천 족을 읽었다. 주말에는 그 철학의 담론을 2쪽으로 요약했다.


나는 우선 20쪽 분량의 글을 쓰는 데서 시작했다. 그런 다음 10쪽으로, 그 다음에는 5쪽으로 줄이고, 맨 마지막으로 2쪽으로 요약햇다. 2쪽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하면서도, 단순하게 요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의 실체에서 중요한 사안을 빼내 그 의미의 진수를 걸러내야 했다. 2쪽짜리 보고서 작성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박 겉 핥기 식의 과제물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걸작의 세부 내용의 핵심만 뽑아낸 내용이었다. 철학과 사상이 내게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 배운 것은, 열심히 핵심을 추출하는 과정과 머릿속에서 정제하는 훈련, 20쪽짜리 내용을 2쪽 분량으로 확실하게 말하는 능력이었다. 이 과정을 마무리할 때는 시작할 대보다 그 내용에 대해 훨씬 많이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는 중요한 경영 기법을 개발하고 있었다. 엄청나 보이는 분량의 정보에서 핵심을 이해하고 추려내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또 리더십 교육도 받은  셈이었다. 사물의 핵심을 이해하고 의사소통하는 것은 어렵고, 많은 생각을 쏟아야 하며, 큰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배웠다. 33


'행복해지려거든 다른 사람들을 너무 신경 쓰면 안 된다'라고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내게 중대한 결정을 내릴 시점에 도달하니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두려웠지만 행복했다. 그날 나는 어른이 되었다. 스스로 정말 어려운 결정을 내렸으니까. 그 선택을 하면서 외로웠고 결과가 두려웠지만, 잘한 선택인 것만은 분명했다. 36


아무 계획도 없고 돈도 없이 로스쿨을 자퇴한 후, 처음 시작한 일은 구인 광고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비서와 안내직을 찾았다. 면접 요청에는 모두 응했고, 처음 제의받은 직장에 취직했다. 처음 살게 된 아파트는 지하실이었지만, 내 형편으로는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근심이 많은 동네였고, 난 차를 살 형편이 아니어서 매일 걸어서 출퇴근했다. 옆집에 사는 사람들은 지긋지긋하게 싸웠고, 벽은 종잇장처럼 얇았다. 아무리 봐도 독립생활을 멋지게 시작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모든 과정이 승리처럼 느껴졌다. 부모님과 대화할 대마다 그분들의 염려와 실망이 마음에 걸리고 두려웠지만, 들뜬 기분이었다. 내가 해내고 있었으니까! 멋진 미지의 세계로 한발씩 내딛고 있었으니까. 난 어른이 되었다.


마커스&밀리챕(Marcus & Millichap)은 상업용 부지 중개업소였다. 그대난 지금이나,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의 휴렛패커드 본사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당시 다른 여직원 둘이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날 고용했다. 한 사람은 마커스와 밀리챕 씨의 비서였다. 내가 보기에는 그녀가 대장이었고 그녀의 부하 직원이 내 직속상관이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사무실 앞에 앉아서 손님들을 접대하고, 전화를 받아 연결해 주고, 문건이 넘어오면 타자를 치는 일이었다. 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업무에 능숙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찮은 업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직장이 있는 게 고마웠고, 내게는 새로은 세상을 배우는 게 흥미로웠다. 또 상사에게 제대로 뽑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40


마커스&밀리챕에성의 안내원 생활은 그 후 커리어에 관련된 조언을 하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 다음 업무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 지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몰두하라. 모든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라. 각 업무의 한계가 아닌 가능성에 집중하라. 내게 기회를 줄 사람들을 찾으라.


그들이 내 능력을 믿어주어 용기를 얻었고, 결국 MBA 과정을 밟게 되었다. 또 그들은 내게 귀중한 경영 교훈을 가르쳐 주었다. 상사의 신뢰는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내게서 잠재력을 보았기에, 나도 내 안에서 잠재력을 찾기 시작했다. 41


가끔 비즈니스맨 교습생들에게 '미국 비즈니스를 설명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물론 아는 바는 없었지만 대답을 해보기로 작정하고, 구할 수 있는 모든 미국 비즈니스 저널과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기사를 영어 수업에 이용하면서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 자료로 활용했다. 돈도 벌고 학생을 만족시키고 싶어서 교습을 했지만, 내게도 큰 경험이 되었다. 이탈리어를 완벽하게 배우면서 비즈니스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넓혔다. 그래서 오랜 생각한 후에 MBA를 따기로 결심했다. 1978년에 이탈리아에서 대학원 입학 신청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경영대학원 입학시험인 GMAT를 치르기 위해 미군 기지가지 가야 했다. 첫 시험은 이탈리아 우체국 때문에 난감해졌다. 시험지 우편물을 분실했기 때문읻. 미군 기지에 도착하니, 집으로 돌아가 넉 달 후에 있을 다음 시험에 응시하라지 뭔가 43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일에도 같은 유형을 보게 되었다. 두려워하는 이는 나 혼자가 아니었다. 역할 놀이에서의 나처럼, 새롭고 낯선 일에 당면하면(상당히 간단하고 무의미한 일인데도)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기 일쑤이다. 회의실에서 긴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두려움을 극복할 때마다 더 강해진다는 것을 배웠다. 어떤 사람들은 관리자가 할 일은 두려움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리더가 할 일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믿는다. 48


늘 새로운 환경에 맞닥뜨리면 하던 대로 했다. 많이 묻고, 대답을 평가할 수 있도록 자료를 충분히 읽었다. 고객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얻으려고 노력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또 팀원 각자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됐는지, 이 부서의 어떤 점이 좋은지, 어떤 점이 좋지 않은지 물었다. 50


몇 시간 동안 내 견해를 피력한 후, 나는 일행을 남겨두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분명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다음 날 사무실에서는 힘의 균형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내가 뭇워하기는 해도 누구에게 겁먹는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데이비드와 스티브에게 똑똑히 보여준 셈이었다. 내가 다른 엠디퍼들과는 다르다는 것도 증명해 보였다. 힘든 상황에 맞닥뜨린다 해도 내가 맡은 일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 데이비드는 내 입지를 좁히려다가 오히려 자신의 입지가 좁아졌다. 그는 무안해했다. 그리고 빌은 나를 자기 밑에 두고 성공하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작정했다. 반드시 넘어야 되는 장애를 항상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장애를 어떻게 넘을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54


고객과 술집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데이비드가 술을 좋아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고객 중에는 느긋한 분위기에서 서로 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거래의 내용뿐 아니라, 거래를 하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신뢰야말로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요소였으니까. 세월이 흐르면서 , 비즈니스에서 술자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문화권이 많다는 것을 배웠다. 특히 아시아가 그렇다. 나는 술을 잘 마시는 축이 아니었지만, 마셔야 되는 자리에서는 데이비드처럼 진토닉을 마셨다. 밤이 깊어지고 동석자들과 편안한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나는 슬그머니 바로 가서 바텐더에게 이렇게 부탁하곤 했다. '지금부터는 내가 진토닉을 주문하면, 그냥 토닉만 따라주세요.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에요. '아무도 내가 토닉만 마셨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분위기에서 비즈니스를 할지 고객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은 내가 그들을 존중한다는 마음의 표시였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55


그 무렵 다른 부서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이즈음 나는 고객들에게 전념하게 되었다. 마무리짓지 않은 일이 많으니, 그 위치에서 그대로 일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엠디퍼였기 때문에 다른 부서로 이동해야 햇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사 사람들은 내게 실수하는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신경 쓰는 동료들은, 다른 자리로 옮기는 것보다는 맡은 업무를 마무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56


다음 날 마운틴 벨 지사 사무실에 갔다가, 사라들이 나를 지나치게 빤히 쳐다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전날 밤 내게 퇴짜를 맞은 남자가 아침에 출근해서 나랑 멋진 잠자리를 했다고 떠벌렸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경악했고, 창피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의아했다. 그 사무실 직원 모두가 뒤에서 날 비웃는 것만 같았다. 그 일로 인해, 마인스 지국에 영업하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증명하고 반드시 계약을 성사시키고 말겠다고 결심햇다. 57


그 1년 반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틀렸다고 하더라도, 내가 아는 것을 믿어야 될 때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추진하는 업무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능력을 총동원한다면, 기회는 저절로 찾아온다는 것도 배웠다. 기회만 쫓으면 초라해지기만 한다는 것도 배웠다. 더 힘겨운 도전이 추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 종류의 도전에는 팀 전체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배웠다. 그리고 프랭크를 만났다. 58


신이 한쪽 문을 닫을 때는 다른 문을 열어주기 마련이다. 결혼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괴로워하던 그 시기에, 나는 평생의 친구이자 역할 모델이 된 사람을 만났다. 어느 날 출근길에 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기에는 늘 그랬지만, 버스를 기다리면서 울고 있었다. 갑자기 차 한대가 차선 네 개를 가로지르더니 내 앞에서 멈추었다. 차 문이 열리고, 안에 탄 여자 분이 말했다. '어서 타요. 친구가 필요한 것 같은 모습이네요' 나는 그 차에 탔고, 이후 케럴 스퍼리어carole squrrier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우연히도 캐럴은 AT&T 워싱턴 사모소의 최고위직 여성이었고, 내게는 길잡이와 동기 부여의 원천이 되어주었다. 그 후 몇달간 캐럴, 그녀와 카풀로 통근하며 친구 주디 허드슨과 함께 출근하면서 결혼에 대해 의논했다. 우리 셋은 함께 울고 웃었고, 친구들은 나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견뎠을지 모르겠다. 나는 토드와 결별했고, 다시는 그를 신뢰했던 방식으로 사람을 믿지 않겠노라 맹세했다. 61


어떤 직위에 앉아 있든, 사람은 사람이기 마련이다. 그런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한편으로는 이 사실을 깨닫고 상당히 놀랐다. 상사가 언제나 가장 잘 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사실로 인해 권한이 생기는 것같기도 했다. 내가 자라면서 배운 것, 즉 '사람의 가치는 직위나 직책이 아니라 됨됨이와 본인이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또, 관리자들은 대하기 편한 부하 직원들을 챙기는 데 더 열심인 듯했다. 현실적으로 볼 때, 그런 부하 직원들은 관리자와 오래 아는 사이이거나, 관리자가 아는 사람과 오래 아는 사이였다. 혹은 상관과 비슷한 습관과 관심사를 지닌 부하 직원들도 이에 해당했다. 상사가 갖고 있는 성공의 이미지에 들어맞는 부하 직원들도 그러했다. 이들은 상사와 다르거나 도전적이거나 상사와 친하지 않은 직원들보다 평점과 순위 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상사가 부하 직원을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 그에 대해 말할 때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70


내 상관의 말은 흠잡을 데 없이 옳았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엔지니어링 부문으로 이동하고 싶었다. 신생 회사여서 모두들 회사를 제대로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는 아수라장이었고 그래서 흥분될 것 같았다. 어려운 업무였다.나는 도전 대상이 필요했다. 이번 인사이동이 회사 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내 손으로 진짜 변화를 일구어낼 수 있는 흥미로운 업무, 그게 내가 추구하는 일이었다.


상사는 이것을 위험부담이 큰 이동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실패할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제법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왔다. 상사는 자기가 심사숙고한 몇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고, 이전에 했던 업무를 기반으로 좋은 기회를 쌓아갈 만한 자리들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위험부담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었고, 진짜 문제점들을 해결하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내 상사는 ACMC 부문 관리자인 보브칸Bob Cann과 아는 사이여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브는 내가 가고 싶어한다는 말을 듣고 반가워했다. 어려운 일거리가 쌓여 있던 터라, 돕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환영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부 통신 부문을 떠나 버지니아 주의 오크톤으로 갔다. 거기에 AT&T 동부 지역 본부가 있었다. 77


엔지니어들은 다정하고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었다. 프로였고, 자기들이 하는 일과 그 일을 어떻게 해내고 있는지 끈기 있게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그들의 상사라기 보다 그들이 나의 코치인 것 같았다. 그중 한 사람인 짐 프시오다는 50대 중반으로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그는 자신이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느꼈지만, 달리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다. 첫 면담에서 나는 짐에 대해 많은 걸 알아내지 못했다. 캐럴 스완은 드물게도 여성 엔지니어였다. 그녀는 불행하고 긴장한 것 같았다. 첫 면담에서 오래전에 승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캐럴은 내가 그녀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생각했다. 양심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지만, 자기에게만 몰두하느라 다른 팀원들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78


곧 사람들이 내게 시비를 걸었다. 그들은 논쟁을 하며 말을 끊었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는 깊은 의심이 깔려 있었지만, 한편 다른 면도 있었다. 그들이 모르는 것을 내가 찾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 나는 척척 대답햇다. 나는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공격하게는 게 아니었다. 다만 누구도 손대지 않은 부분을 모색하는 중이었다. 회의가 계속되면서, 이 주제에 대해서는 그곳에 있는 누구보다도 내가 많이 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에게는 힘과 권한이 있었지만, 나는 사실들을 손에 쥐고 있었다. 또 내게는 보브 칸이 있었다. 그는 평판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그가 회의를 소집하고 나를 그 자리에 데려간 것은, 나 때문에 그 평판이일부라도 훼손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도 보브가 그렇게 해준 일은 두고두고 못 잊을 것이다. 관대한 처사였고, 그로 인해 그 방에서 큰 변화가 생겼다. 또 내 커리어에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일처리 방식을 거부하는 것을 지켜보면 흥미롭다. 그것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 혹은 권력이나 영향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 반응이 때로는 사실과 이성을 이기기도 한다. 그 회의가 그런 경우였다. 보브와 나는 실망하고 의기소침해져서 뉴저지를 떠났다. 82


내가 운 것은 짐과 캐럴과 보브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매일 아침 그들을 만나는 게 좋았다. 우리가 작은 승리를 거두었을 대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대단히 어려운 일을 함께 열심히 하는 데서 오는 유별난 동지애가 좋았다. 내가 울음을 터뜨린 것은 엔지니어링 부문을 떠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는 그곳이 편안했다. 엔지니어들도 나를 좋아했고, 나도 그들이 좋았다. 그런데 완전히 새로 시작해야 할 상황이었다. 내가 운 것은 두려워서였다. 중급 관리자 업무와 상급 관리자 업무는 천양지차였다. 내가 정말 그 자리를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내가 말했다. '캐럴, 영혼을 팔 수는 없어요. 압박감 때문에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지 말아요. 당신이 행복하고 자랑스러워질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요. 당신이 영혼을 팔면 누구도 보답해 줄 수가 없어요.' 우리는 따듯한 포옹을 오래도록 나누었다. 89


나는 에단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을지 많이 궁리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만나는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언제 이야기를 해야하나? 사람들에게 제 방식으로, 나름의 시간을 갖고 옳은 결정을 내리게 해주는 게 중요한 때가 있다. 그래야 사람들은 결정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밀고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접근 방식에는 시간이 필요했고, 나는 가능한 한 충분한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다. 에단은 일을 망치고 있고,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했다. 그러니 에단이 동의하든 안 하든, 당장 서로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97


'에단 GSA팀에서는 모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쿼터백은 한 사람이에요. 그 쿼터백은 당신이 아니라 바로 나죠. 당신은 그 반대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그렇지 않아요. 내가 쿼터백이에요. 그러니 경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팀에서 물러나야 겠지요'


정면 돌파는 쉽지 않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마음을 다져야 하고, 매번 고민에 빠진다. 팀이 어려움을 겪을 때는 한 팀이라는 동지애를 발휘하는 편이 낫다. 정면 돌파가 필요할 때는, 정직하고 투명하며 존중받게 대처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그 자리를 떠나라고 요구할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통고를 받는 사람도 그랬겠지만, 통고하는 나도 아팠다. 또 매번 그 일을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잘한 일이라고 두둔해주엇다. 그들이 용기가 없거나 솔직하지 못해서 미리 말 못하긴 했지만. 98


내가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자신감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현실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한 법이다. 현실 감각이 없으면 자신감은 자기 과신이 되고 만다. 현실적으로 볼 때, 나는 GSA 수주건을 얻는 경쟁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정도로 많이 알지 못했다. 게다가 AT&T 내부에서 충분한 자원을 이끌어낼 수가 없었다. 영향력이나 인간관계나 경험이 부족했다. 99


비지니스는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회사의 목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게 옳다. 회사의 목표는 개인의 야심이나 '인정받고 싶은' 욕망보다 중요하다. 그 당시 나는 그렇게 믿었다. 마이크에게 책임질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오늘날도 그렇게 믿는다. 101


나는 보인 사 임원의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내 말을 막았다. '칼리, 우리에겐 전략을 세울 시간 여유가 충분히 있소.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거요. 아마도 당신은 프리젠테이션에 나서면 안 될 거요. 당신네 여자드른 그런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거든. 그 자리에서 여자들이 냉정을 잃으면 곤란하지. 그런데 당신은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요? 남편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면서 자녀를 갖고 싶지 않소?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내 얼굴이 새빨개지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다 웃었다. 나는 우물우물 대꾸했다. '걱정 마시죠. 냉정을 잃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날 밤 오랫동안 울고 나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다시는 다른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울지 않겠노라고, 물론 남이 나에 대해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에 상처를 입을 것이다. 사람들이 나한테 하는 짓에도 마음을 다치겠지만, 그들의 좁은 마음이나 편견을 내 짐으로 떠안지 않으리라. 인생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남성보다는 여성들에게 특히 그렇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것 때문에 위축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취하리라.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만한 이유가 있는 옳은 일에 매진하리라. 내가 선택한 일을 할 수 없다고, 혹은 하면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겠지. 아니, 많을거야. 그건 그들의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야. 그런 사람들이 다시는 내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하리라.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내 마음 역시 내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106


스탠리와 그의 변호인단은 내가 소송 준비에 온전히 참여하기를 바랐고, GSA 공무원드이 증언을 할 때 그 자리에 있어달라고 부탁햇다. 같이 일했고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이들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서, 그중 몇 명이 사건과 자신과 나에 대해 거짓말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가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스탠리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이 거짓 증언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게는 흥미로웠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것과 사실을 말하는 것을 보니,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고개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눈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는지, 목소리의 톤과 고저로 판단할 수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으려니 화가 나면서 동시에 슬펐다. 이 경험을 하면서 사람들을 찬찬히 지켜봐야 한다는 것을 되새겼다. 사람들의 말이 정말로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의도하는 바가 아닌 경우도 있으니까. 어떤 직업이든 상대의 말이 그가 진정으로 의도하는 바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때가 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이것을 놓쳤을 때 그 결과는 언제나 참혹했다. 109


나도 모르는 사람에게 말할 때의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오직 한 사람만, 그리고 그에게 말하고 싶은 내용만 생각해야 된다는 것을 이미 터득했다. 또 때로는 한 번에 한발자국만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승리한 것은, 마지막 목표를 늘 마음에 품었고(FTS2000의 계약을 최대한으로 따내는 일)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전략과 전술을 기꺼이 수정한 덕분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힘들다고 해서 목표를 바꾸거나 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떻게 질까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우리는 승리를 선택했기에 승리했다.


모든 승리는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다. 적당한 후원, 적합한 팀,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는 결단력, 열심히 쏟은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승리는 기회 보다는 선택과 관련된 것이다. 119


MIT에는 수재들이 넘쳐난다. 어디를 가나 천재들과 마주친다. 노벨상 수상자들, 앞으로 노벨상을 받을 인물들, 믿을 수 없을 만큼 머리가 좋은 학생들과 교수들 등. 하지만 그곳의 분위기가 독특한 것은 다들 머리가 좋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곳은 규율과 혹독한 연구가 의무인 학교이기도 하다. 스탠퍼드 대학에도 똑똑한 사람이 많지만, 내가 거기서 공부할 때는 꽤 느긋한 분위기였다. 나를 비롯해 여럿이 열심히 공부에 매달렸지만, 꼭 그래야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MIT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공부햇고 또 그래야만 했다. 슬론 경영대학원을 비롯해 각 과마다 커리큘럼이 혹독하고 방대하다. 이렇게 압박감이 넘치는 분위기에서 모두 뛰어난 학업 성과를 얻으려 매진해야 한다. 학교 분위기는 겁났고, 10년 넘게 학교를 떠나 있던 사람으로서는 특히 두려웠다. 122


그 자리에 부임하고 첫 달은 신입 사원과 거의 비슷한 느낌이었다. 회사의 정황을 파악하려고 했으나 도와주려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회의 때마다 열심히 듣고 많이 물어야 했다. 또 매일 밤 10시, 11시까지 입수한 서류는 모두 읽으며서, 조직에서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조직도만으로는 영향력 있거나 특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망록을 읽다 보면, 어떤 사람드른 배포 목록(메세지 통신 처리 환경HME 구성 요소로, 집단 내의 사용자들을 식별하는 발신자/수신자 이름등이 포함된다.- 옮긴이) 에 포함되고 어떤 이들은 제외되는데, 그 이유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누가 어떤 회의에 참석할지, 누가 참석하지 않을지 정확히 예상할 수도 없었다. 조직은 언제나 서류에 계획된 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현실을 피부로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이론적으로는 정규 조직이 의사 결정 주체지만, 실제로는 조직 외부의 개인들이 결정을 내리거나 강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런 개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고 관계를 맺어 그들로부터 권력을 끌어낸다. 어떤 때는 정식으로 내린 결정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그대로 파묻혀버릴 수도 있다. 131


'잭, 난 바보가 아니에요. 악마도 아니고요. 매일 아침 빌어먹을 당신의 일을 절단 내려고 일어나는 것도 아니에요. 난 내 일을 하려고 애쓰고 있는 거라고요. 그런데 지겹네요. 당신이 망할 놈의 고함을 치는 것도 신물 나고, 당신 부하 직원들이 샤방거리는 꼴도 오장이 뒤집어져요'


그런 식으로 욕설을 퍼붓기는 처음이었다. 일을 하면서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나는 잭에게 그가 알아듣는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거친 공장에서 오가는 언어였다. 나는 그에게 덤비고 있었다. 그는 파워 게임을 하는 사람이니 그것도 이해했다.


'샤방이 대체 뭐요?' 그가 물었다. 그는 호기심이 생기는지 한발 물러났다. 그가 못 들어본 말이었다. 하긴 다른 데서는 하지 않는 말이기도 했다. 롱 라인스에서 쓰는 욕설이었다. 거기야 마음이 없는 말을 하는 정도가 가히 예술적인 곳이었다. 잭은 마침내 그와 이야기해 볼 기회를 준 셈이었다. 136


그날 잭과 나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그는 내 말을 들었고 나는 그를 존중했다.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 도착하자, 나는 상사에게 전화해서 잭이 빌 막스에게 나를 해고시키라고 전화할 거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게 믿었지만, 내가 할 바를 다해서 만족스러웠다. 내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날 존중하지 않는다. 또 자존감은 내게 어떤 경우라도 부적절한 언어폭력은 참지 말라고 요구했다.


해고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잭과 한판 붙은 덕분에 명성을 얻은 것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빌 로르바크가 NSI직원 전부에게 그 일을 말했다. 그들은 잭에게 덤빈 적이 없었다. 그들 역시 잭을 두려워했으니까, 내가 그럴 수 있었다는 사실은 뭔가를 의미했다. 학교에서 노는 애들이랑 맞붙어서 살아남는 것과 비슷했다. 내가 거칠고 끈질기다는 새로운 명성은 조직의 부하 직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당당하게 일하기 시작했고, 정면충돌하는 경우에는 더 꿋꿋이 버텼다. 이제 비난을 받아도 기죽지 않을 상사가 생겼다는 것을 다들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와 우리 팀은 매일의 업무와 네트워크 시스템스의 전략 선택 모두를 중요시하기 시작했다. 137


기업은 크고 추상적인 실체이다. 사람들은 기업과 중요한 비즈니스를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기업을 대표하고 자원을 투입해서 지워할 수 있는 사람들과 비즈니스를 한다. 그리고 전세계의 사람들은 신뢰하고 존경하는 이들과 비즈니스를 한다. 이탈리아인의 반응에 대해 속이 좁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는 신뢰와 존경이 다른 의미를 지닌다. 미국에서는 시노리가 세세한 법적 계약을 통해서 쌓일 것이다. 존경은 힘들고 오래 끄는 협상들을 통해서 생기며, 양측은 그 협상을 통해 상대가 자기 입장을 얼마나 강력하게 방어하는지 배운다. 이탈리아에서는 인생에서 좋은 일들을 함께 즐기면서 체면을 적절히 지키는 시간을 통해서 신뢰와 존경이 쌓인다. 141


이것은 간단한 말이었고, 간단한 그림이었고, 간단한 개념이었다. 그것은 막다른 길을 빠져나오는 방법이었다. 사람들이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시키는 방법을 나타냈다. 때로는 간단한 개념이 속임숙 같은 경우가 있다. 간단한 개념이 복잡한 세부사항을 감추어서 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간단함은 '조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간단한 개념이 필수적이기도 하다. 현실을 확대하고, 중요성이 덜한 세부사항을 빼서 사람들이 정말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노력하고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핵심 사항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143


나는 ISBD 부분의 중역이었지만, 실제로 역할 수행을 담당할 수 있는 팀을 꾸리는 것이 주업무였다. 처음 부임하여 살펴보니, 조직 내부에는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 많았지만 합의된 목적이나 자존감이 없었다. 그들은 요구받은 일은 뭐든 기꺼이 하면서 기여할 기회를 얻는 데 감사했다. 그들은 조력자 역할을 했다. 다른 그룹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었지만, 그 외에 그들이 할 가치가 있거나 더 중요한 일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조직의 또래 집단이나 진짜 '선수'들에게 존중받지 못했고, 공짜로 동원 가능한 인력 정도로 취급되었다.


인간에게는 동기 부여를 해줄 목표와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 두 가지는 자존감을 얻고 타인에게 존중받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조직은 인간들로 이루어지므로, 조직에도 그런 요소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리더의 임무는 조직의 기술과 능력을 키워서 큰 성과를 이루어낼 역량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한편 가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수행할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도 리더의 임무이다. 148


낙담하거나 미워하지 않으면서 뭔가 포기할 마음을 먹으려면, 뭔가 얻는 게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날씬한 몸매를 얻을 수 있다면 초콜릿을 포기할 마음을 먹는다.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늘 해온 일(그것은 자유와 가능성을 의미했다.)을 포기할 마음을 갖게 하려면, 보다을 해줘야 했다. 그 '뭔가'는 더 흥분되는 미래와 그것을 성취하겠다는 자신감이었다. 흥분과 자신감은 감정적인 상태이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보충 설명을 해도, 그것들을 머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더 큰 네트워스 시스템스 조직의 전략과 목표에 손을 대게 되었다. 150


사람들은 타인의 힘과 성공을 높이 평가하거나 분개한다. 성공한 강한 사람들은 존경받고 동시에 공격당한다. 타인의 성공에서 고무되는 사람들도 있다. 목적을 혼자서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목적과 세부 지침이 마련되면 강한 사람들에게 달라붙는다. 똑같이 강하고 성공적인 사람드른 상대방과 의견이 다를 경우 공개적으로 정면충돌하지만,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상대의 성공이 본인의 부족함을 강조하기 때문에 미워한다. 자기보다 더 성공한 사람들을 질투하기도 한다. 질투와 미움은 열등감이나 부족함의 감정이고, 그런 감정들은 반항심과 불공정한 싸움을 벌이고 싶은 본능을 일으킨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서 보면, 학교에서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에게 지기 싫어하고 여자애들은 남자애의 관심을 빼앗아가는 다른 여자애와 경쟁한다. 154


사람들은 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치부하기 때문에 개선하려는 노력을 중지해버린다. 열망의 부족은 과신에서 나온다. 어떤 경우에는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속단하고 노력을 멈춘다. 이런 열망의 부족은 패배주의에서 비롯된다. 개선하려는 노력을 중단할 때마다 적당히 얼버무리는 상황이 되고 실정은 하향 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164


냉소적인 사람은 이런 단순한  짓으로 뭘 할 수 있겠냐고 비웃기도 했다. 하지만 팀을 이끌어본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목표에 못 미치거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끈기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너무 일찍 포기할 수 없어서 밀고 나가기도 한다. 재미난 일이 곁들어지고 누군가 신경을 쓴다는 것을 알 경우, 꾸준히 밀고 나가기가 한결 수월하다. 167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과 비슷하다. 새로운 운동 습관, 새로운 식이요법, 새로운 골프 스윙, 새로운 일, 처음에는 무척 어렵다. 부자연스럽고 노력이 많이 요구된다. 때로는 포기하고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꾸준히 해나가면, 시간이 흐르면서 새 습관이 점점 수월해지다가 결국 몸에 배게 된다. 나는 변화에 익숙했다. 변화를 겪을 때마다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음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변화에 당면하면 기회와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내 동료들은 변화에 익숙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도 어려워 보였기 때문에, 익숙한 방식을 견지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변화가 불러올 상황이 두려웠다. 또 우리가 원한다 한들 예전의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었다. 일단 분할이 공표되면 돌아갈 길이 없었다. 172


그날 나는 대단히 중요한 것을 배웠다. 미지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잘 아는 불만스러움을 선호하느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두려우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변하며, 그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중요한 사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할 수 없이 독특했던 그날 저녁을 떠올리니, 늘 새 도시와 새학교로 옮길 때마다 향수병을 앓았던 기억이 났다. 방금 떠나온 곳이 훨씬 좋게 느껴졌다. 네트워크 시스템스의 사람들도 향수병을 앓게 될 것이었다. 늘 해오던 방식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었다. 그들의 에너지를 우리가 가야 할 곳에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과 대화 속에서 그들은 떠나온 곳으로 계속 돌아가곤 할 테니까. 그리고 나는 경험을 통해서도 알고 있었다. 다시 '집'에 돌아갈 길이 없다는 점을 깨달으면, 미래와 대면하기가 수월하리라는 것을.  173


1997년 11월, 나는 2년간 거기 몰입해 보기로 결정했다. 루슨트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곳을 정말로 사랑했다. 함께 일해 온 이들을 떠날 수가 없었고, 100년 역사의 새 회사라는 아이디어를 두고 갈 수가 없었다. 리치는 내가 그에게 설득당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때문에 남은 게 아니라 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은 것이었다. 이제는 여섯 부문의 조직을 아울러 더 높은 수준의 성과를 이끌어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정렬해서 협동해야만 성공할 수 있었다.


정렬과 협동에는 '그냥 잘 지내봅시다'라는 모호한 개념 따위는 필요없다. 효과적인 팀워크는 점잖은 예절과 선의 이상의 것이다. 물론 예절과 선의는 조직이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정렬은 공동 목표에서 나온다. 협동은 성공에 대한 공동의 기준에서 나온다. 공동의 목적과 공동의 기준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확실히 동의해야 한다. 사람들은 왜 협동하고 있는지, 언제 성공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 모두 같은 일에 전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방시으로는 결과를 낼 수 없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루슨트의 설립취지서를 작성할 때 도입한 '페이지 넘기기' 과정은 정렬과 협동의 좋은 예였다.


조직들 사이의 경계를 뛰어넘어 협동 작업을 할 경우, 조직 내에서의 명령, 통제식 의시가 결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협동에는 또래들 간의 더 많은 의논과 동의가 요구된다. 자원을 공유하면서도 책임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이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다른 사람들도 내가 똑같이 하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는 듯이기도 하다. 명령 - 통제식 의사 결정은 명령과 의사를 하부로 내려 보내는 수직적인 정보 이동의 방식이다. 협동하는 의사 결정은, 정보와 결정을 여러 명령의 사슬을 넘나들며 전달하는 수평적 방식이다. 명령 - 통제식 의사 결정은 조직 계보도에서 박스와 선분으로 나타낸다. 수평적 협동 방식의 경우는 한 그룹이나 개인에서 다음 그룹이나 개인에게 넘겨주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여기서는 누가 누구와 의사소통하느냐(회의에서, 이메일에서, 전화통화에서)가 가장 잘 드러날 것이다. 195


나는 '고칠 수 없으면 만들어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번 경우 우리에게는 이름이 필요했다. 우리는 BUFKANS(Business Units Formerly Known as Network System, 과거에 네트워크 시스템스로 알려졌던 사업단 - 옮긴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과거에 프린스로 알려졌던 아티스트'처럼 우리의 색깔은 보라색으로 정햇다. 도 그해가 용띠 해였으므로, 마스코트 용으로 정했다. 우리는 회의에서 이런 사실을 발표하면서 , 앞에 용 그림이 있고 등에는 BUFKANS라고 적힌 보라색 티셔츠를 나눠주었다.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워서 좋아했다. 하나로 모여들 주제가 생겼고, 진지한 핵심을 진지하지 않은 방식으로 지적했기에 좋아했다. 멋진 팀 이름은 없었어도, 우린 멋진 팀이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일에 착수했다. 목표 설정과 평가 방식에 합의를 이루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신중을 기했다. 공동의 역할과 개인의 역할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엄청나게 힘든 토의 과정을 견뎌야 했다. 이 노력은 보람이 있었다. 신중한 기획과 규율, 진정한 것을 향한 추진은 항상 보람이 있지만, 거기에는 시간과 인내심이 요구된다. 197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나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베이징에서 열린 회의에서 요직에 잇는 중국 장관은 내게 미국 여성 중 가장 부자냐고 물었다. 전에 알던 사람들은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나를 보았다. 그들은 새로 명성을 얻어서 내가 변했는지를 가늠하려고 더 몰두해서 지켜보았다. 어떤 사람은 내가 명사이니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과 분리되어 있다고 말이다. 이제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드른 그저 '칼리 피오리나, 비즈니스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만 볼 수 있을 따름이었다.


사진이 혼을 훔쳐간다고 믿는 인디어 부족들이 있다. 그럴듯한 유추이다. 사진을 많이 찍으면 찍을수록 점점 진면목이 보이지 않게 되는걸 보면 말이다. 명성이 나와 내가 소속된 회사에 문을 열어주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열린 문은 새로운 기회를 의미하며, 이 점에 대해서는 감사한다. 하지만 유명해지는 것은 괴로운 곳에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205


병원으로 전화를 한 지 거의 24ㅎ시간 만에 샌프란시스코에 착륙할 때까지 나는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내렸을 때, 커다란 보름달이 수평선 위에 걸려 있었다. 그 순간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지금도 보름달만 보면 눈물이 난다. 집에 도착해 보니, 어머니는 정신이 또렷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밤 침대 곁을 지켰고, 2월2일 새벽 5시에 어머니는 눈을 감으셨다. 내가 곁에 있다는 것을 어머니가 알았다면 좋겠다.


어머니가 마지막 숨을 쉴 때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가끔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면 어머니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라 숨을 쉴 수가 없다. 가끔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면 어머니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라 숨을 쉴 수가 없다. 가끔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면 어머니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라 숨을 쉴 수가 없다. 매일매일 어머니가 그립다. 어머니가 자랑스러워 하시도록 매일 노력한다. 어머니는 너무 이른 나이에 급작스럽게 돌아가셨지만, 평생의 삶은 축복이었다. 나는 생의 마지막에 어머니가 용기를 내는 것을 목격함으로써, 나 자신을 찾았다. 어머니가 무엇을 선택하고 감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이후로 내가 겁내던 것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다른 두려움들은 모두 하찮아 보엿다. 209


제프는 몇 가지 답안을 제시했다. 이사회는 진정한 변화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과거를 확실히 털어내려고 모색 중이었다. 업계는 빠른 속도로 움지깅고 있고, HP가 인터넷 시대에서 버티고 경쟁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방식으로 변화해야 햇다. HP 이사회는 이제 막 발표하고 실행해야 되는 복잡한 기업 분할에 있어, 루슨트가 AT&T에서 독립한 것이 유용한 경험이라고 보았다. 동시에 그들은 HP 방식을 존중할 사람을 원했다. 문화를 변화시키되 망가트리지 않을 적임자를 찾고 있었다. 이사회는 회사에 전략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식했고, 전략을 세우고 그것을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했다. 결국 벤치마킹을 위한 출장과 합작 시도를 위해 만났던 HP 사람들 중 일부가 나를 이사회에 추천했다. 212


내가 극도로 분산회 형태라고 본 것에 대해 샘에게 물어보았다. 따로 움직이는 독립적인 사업단이 아주 많았다. 나는 그에게 HP의 거래처와 미래의 파트너로 경험한 결과를 말했다. 그는 내가 관찰한 내용에 진심으로 공감을 표하면서 , 그것이 역사의 결과이자 전략과 리더십 부재의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HP가 어떤 면에서 선 마이크로시스템스나 IBM 같은 '선수'가 아닌 것을 이사회가 신경 쓰느냐고 물어봤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CEO인 스콧 맥닐리는 HP에 대해 유명한 말을 했다. 그는 HP를 '근사한 프린터 회사'라고 평했다. 스콧은 신랄한 말투로 유명하긴 하지만, HP에 대해서는 정곡을 찌른 셈이었다. 알고 보니 샘과 스콧은 골프 친구였다. 샘은 스콧을 매우 존경했고, 그가 HP를 제대로 봤다고 생각했다. 샘은 HP가 스시를 '찬죽은 생선'으로 시장에 팔 수 있는 유일한 회사라는 말도 있다고 농담햇다. 그는 '우린 마켓팅을 더 잘해야 된다고요!'라고 말했다. 217


나중에 내가 배우게 될 첫번째 경험은 일반적인 처신이었다. 휴렛팩커드에서는 사람들이 중요한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딕은 조직 개편이 틀린 조치였다는 데 나와 견해를 같이 했지만, 개편을 막기 위해 루와 정면충돌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입사는 더욱 어려워졌다. 회사를 떠날 CEO가 내가 취할 조치와 정확히 반대되는 조치를 취하도록 암묵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직원들에게도 곤란한 일이었다. 그들은 루의 조직 개편안과 내 개편안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많은 힘을 소비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 경영팀의 신뢰는 손상을 입었다. 그들은 조직 개편을 통해 새로 차지한 CEIO 직위에 대해 신념을 갖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제 왜 CEO 직위에 앉아 있지 못하는지 설명해야만 했다.


몇달 간 HP에서 일하면서, 나는 'HP방식'의 가치들은 몇 가지 중요한 면에서 부패했음을 깨달았다. '개인에 대한 존중'은, 비지느스에서 진지하게 이견을 제시하고 논쟁이 필요할 때조차 예의 바르고 비전투적으로 대한다는 의미가 되어버렸다. '고결함의 기준'은 죄를 범하는 것에 적용되어, 거짓말하지 않는 것 정도를 의미했다. 그것이 태만이라는 죄에까지 적용되지는 않아서, 목청을 높여야 될 때 입 다물고 있을 수 있었다. 또 정말 생각하는 바를 말할 필요도 없었다. 딕이 점심시간 대 그랬듯이 등 뒤에서는 말이 많으면서도 정작 얼굴을 맞대고 말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이 방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밖에 나가서는 딴 얘기를 했다. 223


리더는 팀에게 어떤 이유로든 '못 하겠다'란 말을 들을 때마다,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또 그런 대호를 통해서 팀을 키워야 한다.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하려고 함께 노력할 때, 팀은 성장한다. 팀은 효과적인 협동을 통해 크는 것이다.


이틀간의 연수회가 끝날 때까지 진정한 대화는 없었고, 우리는 협동하고 있지 않았다. 하나같이 익숙한 패턴의 연속이었다. 동료들은 낙담했다. 여러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마음속에 특별히 각인된 대화가 있다. 당시 옵티컬 네트워킹 그룹을 이끌던 게리 버터스는 나를 한쪽으로 불러내더니 말했다. '칼리, 이건 리치의 회사가 아니에요. 단신의 회사라고요. 당신은 우리의 진정한 리더에요. 우리를 이끌어줘요' 233


나는 20년간 여러 대기업에서 일해 왔다. 조직이 나를 무시할 수도, 내 지시에 태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회사 내의 인맥이나 중요한 내력을 몰랐다. 비공식적인 실세들이 누구인지도 파악이 안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모든 대답을 아는 게 아니었다. 나는 60년간 번성한 회사에 들어와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처한 신참 CEO였다. 이 사람들은 HP가 직면한 문제들을 나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휴렛팩커드가 변하려면, 회사는 신임 CEO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HP에는 새로운 정신 상태가 필요했다. 특성, 업계 속도, 고객들의 요구 사항, 경쟁사들의 맹렬함과 기술을 총 망라해서 새로운 정신 상태가 필요했다. 236


나는 일하는 내내 성과와 성취로 평가받으려고 분추했고, 결국 최고위직에 올랐다. 그런데도 내 성별과 외모, 인격에 대한 평가가 다른 것들보다 훨씬 중요하게 취급받고 했다. 그런 점이 몹시 실망스럽다. 난 언제나 말보다는 행동이 더 크게 소리난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항상 '켜진ON' 상태이고, 늘 정보와 연결되어 사실과 허구와 의견이 같은 무게를 가지는 새 시대에, '말보다 행동'이란 신념은 틀린 것 같다. 나에 대해 말과 글로 표현된 것들이 내 인생과 일을 말할 수 없이 힘들게 몰아가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나의 행동보다는 나를 규정하는 남들의 말이 사람들이 마음에 더 또렷이 각인되는 듯 싶다. 내가 이 책을 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241


CEO 업무에ㄷ호 새로운 일이 주어질 때마다 쓰는 접근 방식을 그대로 적용햇다. 많은 사람과 만나서 최대한 많은 질문을 던지는 방법이다. 회사의 매출액과 기획안들을 세세한 부분까지 챙겨서 공부햇다. 먼 곳까지 출장을 다니면서 고객들, 제휴 파트나들, 직원들과 만났다. 243


닷컴 열풍이 대단했다. 회사마다 뒤처질까 봐 두려워하면서 기술에 돈을 쏟아 부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해서 관연 Y2K가 세계의 컴퓨터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염려했다. 나는 우리가 너무 늦게 쫓아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HP에 들어왔다. 선발 과정 내내, 이사회 멤버들은 우리에게 불리한 시기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다급했다. 우리 고객들과 경쟁사들 모두 우리보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잇었다. 그런데 출장을 다니고 HP직원들과 대화하면서 내가 파악한 현실은 느리고 오만했다. 나머지 실리콘배리 전체가 연거푸  커피를 마셔대펴 잠을 아끼는 마당에, HP 직원들은 긴장을 푸고 찬분해 보였다. 회사 주차장은 매일 오후 4시 반에서 5시면 텅텅 비었다. 처음 몇 달간 직원들에게 가장 자주 받은 질문은 '일상생홀으 균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루는 이것이 회사의 우선 관심사라고 말했다. 250


창업자 빌과 데이브는 현역 시절에는 HP 직원들에게 전설적인 리더였고, 세월이 흐르고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역사가 되었으며, 역사는 신화가 되었다. HP는 빌과 데이브의 비즈니스였고, 빌과 데이브는 휴렛팩커드를 위해서 결정을 내렸다. 오랫동안 이사회의 멤버이며 데이브와 절친한 친구였던 제이 키워스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빌과 데이브가 HP를 경영한 방식은 민주적인 데가 전혀 없었소. 인자한 독재와 아주 비슷했지' 직원들이 신제품의 출시에 확신이 없는 경우에는 빌과 데이브가 결정을 내렸다. 새 CEO를 임명할 시기와 그 CEO가 어떤 인물이어야 하는지도 항상 빌과 데이브가 결정햇다. 기업분할이 발표되자, 빌의 아들과 데이브의 딸은 연설해 다랄는 요청을 받았다. 직원들에게 그들의 부친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햇을지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미적지근한 지지는 그나마 데이브의 장남이 반대의 표시로 이사회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더 희석되었다. 251


필요한게 뭔지 머리로 파악하는 것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지원을 받거나 앞으로 나가는 것보다 후퇴하는 편이 훨씬 나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또 계속 끌고 나간다는 불굴의 정신이 필요핟. 변화를 이끌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한다. 변화는 자연스럽게 생기는 게 아니다. 여러 계층에서 많은 이들의 리더십이필요하다. 많은 변화의 전사들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리더가 눈을 깜빡하면 안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은 컴퓨터 시스템과 아주 비슷하다. 둘 다 목적이나 임무를 갖고 있으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보유한다. 기업의 하드웨어는 기업 구조, 과정 , 계획, 평가 기준, 실적이다. 하드웨어를 보여주는 것은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이고, 조직도와 업무 설명서이다. 또 업무 지침서와 목표들, 성과 관리표와 보고서이다. 기업의 소프트웨어는 가치 있는 문화, 습관, 정신, 태도이다. 이런 것들은 '별 것 아니며', 관리자가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없는 짓거리라고 매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직원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이익을 산출한다는 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라믈이다.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기능하지 않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컴퓨터처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기업은 더 좋은실적을 거둘 수가 없다. HP의 소프트웨어는 업그레이드되어야 했다. 자신과 변화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했다. 일을 결정하고 같이 작업하는 새로운 습관을 익혀야 했다. 원래 HP 가치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를 복구해야 했다. 274


전략과 실행이 동전이 양면이듯, 변화는 큰 아이디어와 소소한 세부사항을 통해서 일어난다. 나는 수퍼돔의 런칭에 관련된 모든 조직에서 직원들을 모아 팀을 꾸렸다. 연구 개발부터 세일즈, 시장 조사부터 기술 지원과 설치에 이르는 전 부문을 아울러싸. 상사들이 부하 직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새 기법을 익혀야 했다. 따라서 전 직급의 관리자들을 모았다. 또 몇달간 만나서, 소프트웨어 출시와 설치 기술과 관련된 세부 사항에 합의했다. 불만 접수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누가 우리의 첫 고객이 될 것인지도 의논했다. 298


내 경험으로 볼 때 리더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리더십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 배우고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HP의 재도약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관리자들을 리더로 키우는 것이었다. 그랫 여러 해가 지나면서 관리자 연수 프로그램을 다시 기획했다. 여러 기업들의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했고, 독특한 리더십 개발 코스와 경허을 만들었다. 이것은 '승리하는 결단 리더십'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재능은 한 부서의 자산이 아닌 회사의 자산이라고 결정했다. 그래서 고위급 관리자들에게 다른 비즈니스들과 부서들을 순환 근무하게 했다. 관리자의 경험과 시야를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1년 단위로 고위급 관리자들의 리더십 잠재성을 이사회와 점검했다. 최고집행회의는 정기적인 재능 검토의 장을 열어서, 가장 유망한 관리자들을 리더로 발전시킬 방법을 논의하곤 했다. 302


HP의 멋진 신화 중 하나는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은 빌과 데이브도 그럴 필요가 잇다고 생각할 때면 직원들을 해고했다. 신화보다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데이브가 '일을 해내지 못하면 그 일을 해낼 사람을 찾아보겟다'라는 말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필요하면 공장은 문을 닫고 장소를 옮겼다. 여러 해 동안 시행된 직원 평가제도는 실적을 '최우수, 우수, 만족, 개선 요망, 불만족'의 5단계로 나누는 방식이었다. 이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근로자의 일정 비율은 항상 하위 두 단계의 고과를 받게 되리라고 예상했다. 314


나는 고통을 미루는 것이 조직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믿지 않는다. 직원들을 해고해야 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알려줘야한다. 공연히 소문만 무성해서 사람들이 해고 대상자일지 아닐지 걱정하고 고민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나 역시 사람들에게 굴욕을 주는 게 싫다. 직원들에게 해고 통지서를 들려서 사무실 밖으로 내보낼 필요는 없다. 누구나 위엄을 누릴 자격이 있고, 모두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회사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라도 저마다 회사에 기여했다. 그 기여가 더 이상 필요치 않거나 기대 수준에 못 미쳤긴 하지만. 320


한 번은 중국에 출장 갔을 때, 칭화대에서 강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칭화대는 베이징에 있는 대학으로 정부 관료 대부분이 이곳 출신이다. 첫 질문자로 나선 여학생은 내게 일과 가정의 균형을 어떻게 잡는지 물었다. 두 번째 학생은 개인사업을 시작할 생각은 해본 적이 있는지, 그렇다면 개인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어덯게 생각해야 할지 물었다. 남학생은 자신의 전공이 마음에 안 든다면서, 내가 로스쿨을 중퇴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부모는 전공 분야를 바꾸는 것을 못마땅해하지만, 전과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지 내게 물었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칼리 피오리나가 '전과해도 괜찮다고 하던데요'라고 말하고 싶나 봐요?'라고 말했다. .남학생이 웃었고, 다른 학생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 미국 대학에 가도 받게 되는 질문이었다. 칭화대 학생들은 모두 완벽한 영어로 질문했다. 나는 집에 돌아온 후, 메이 홍밍, 샤오 첸시, 트레이시 고로부터 감동적인 감사 편지를 받았다.


21세기에 테크놀러지는 우리 생활의 모든 면을 바꾸고 있다. 지난 10년간 사진 촬영에서 일어난 변화를 생각해 보자. 사진 촬영은 물리적, 화학적, 아날로그적인 과정이었다. 우리가 사진을 찍으면, 카메라에 물리적인 일이 벌어진다. 필름을 빼서 사진관에 가져다주면, 다시 한번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과정을 거쳐 필름에 박힌 이미지가 인화지에 박힌 이미지로 변했다. 우리는 사진을 찾아와서 분류하고, 시간이 있으면 사진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내거나 앨범을 정리했다. 오늘날에는 디지털 카메라나 카메라 폰이 디지털 콘테츠를 만들어낸다. 그 콘텐츠는 네트워크화해서 세계 어디든 무선으로 전송할 수 있다. 또 편집하고 보관하고 공유할 수도 있다. 가상 경험이 만들어지고, 다른 사람들이 100만 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같은 시간에 같은 이미지들을 즐길 수 있다. 또 이것은 개인적이기도 하다. 개인들이 원할 경우, 전문적인 사진을 만들어 틀에 끼워 집에 걸어놓는 전체의 과정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363


'수익 신장' 프로그램은 총수익을 개선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직접 유통하는 방안, 소프트웨어 사업 부분을 더 빠르게 키우는 방안, 통합된 솔루션을 판매하고 이윤에 기초한 영업 보상으로의 전환이 그 방안의 예였다. '표준 비용 구조 달성'은 개선되 효율성과 더 낮은 비용 기반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면, 직원을 몇 명이나 보유했는지, 그들을 어디에 배치했는지, 보증과 수리 같은 노동 집약적인 과저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하는 것 외에도 부수적인 노동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적 개선'은 지속적이고 믿음직한 실행을 끌어내기 위해 프로그램 관리 과정을 이용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마지막으로, '가속화된 장보기 효과'는 영업력에 기초한 프로그램이었다. 판매 인력은 테크놀러지 솔루션을 팔 자격이 있어야 했다. 우리는 고도의 교육을 받은 세일즈맨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했다. 함께 일하는 협력업체들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제품을 파는 회사에서 시스템과 통합된 솔루션을 파는 기술의 발전소로 완전히 전환하려면, 판매 능력 또한 변해야 했다. 367


지난 5년 반 동안 얼마나 끈질긴 일을 해냈는지 충분히 조사하기란 어렵다. 나는 평생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다. 어떤 성공도 쉽게 얻지 못했지만, HP는 전혀 다른 수준의 헌신과 극기를 요구했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2004년 말 무렵에는 지속 가능하고 성공적인 비즈니스 변혁이 달성되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훌륭했다.


그런 성취를 이루려면 팀워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긴 하지만, 팀워크 이상의 뭔가가 있어야 한다. 비즈니스의 변혁에는 활동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노력할 사항들을 정리하는 큰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우리는 '리더십 틀'이라는 큰 아이디어에서 출발해서, 막 위축되기 시작하던 회사의 모든 면을 바꾸었다. 합병은 급속히 변화하는 업계에서 선두를 차지하는 방법에 대한 큰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대부분 비즈니스의 변혁은 세부사항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 제품 기획안이 경쟁력이 있는가? 우리가 나쁜 사업 부분에서 빠져나오고 있는가? 우리는 승리하고 싶은 비즈니스에 충분히 에너지를 쏟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경영 관심을 캐시 플로에 효과적으로 집중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제품의 수익성을 증진시킬 수 있을까? 서비스의 구성안은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가? 왜 단골 고객이 상당히 성장하고 있는가? 연구 개발비를 적재적소에 투자하고 있는가? 충분한 액수를 투자하고 있는가? 고객 만족도는 충분한 속도로 개선되고 있는가? 적절한 인원을 적절한 업무에 배치하고 있는가? 예산 집행 계획안은 빠듯하면서도 현실적인가? 우리의 목표는 직원들이 실행할 준비가 된 세세한 작업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고 있는가? 직원들이 정말로 걱정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고객들이 정말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밤낮 없이 챙겨야 되는 운영상의 질문은 끝이 없다. 371


비즈니스의 변혁은 제품 하나, 결정 하나, 1달러, 한 사람, 하루씩 일어난다. 또 HP는 그렇게 내 삶이 되었다. 나는 회사와 회사의 요구 사항에 열중했다. 하루 12 ~ 14시간씩 일하면서, 잠도 줄이고 항상 HP에 대해 생각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2004년이 끝날 무렵, 내가 우리의 성과에 얼마나 깊이 마족했는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팀원들이 자신을 믿었던 것보다도 내가 팀을 신뢰해서, 그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자긍심과 새로운 자신감을 얻는 것을 보면서 보상받는 특별한 기쁨을 또 한 번 만끽했다. 모든 난관과 외부의 비평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의 15만 직원은 하나가 되어 뛰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알았고, 어떻게 거기 도착하는지도 알았다. 우리는 공통어로 말했고 공통의 비전을 나누었다. 물론 아직도 해야 될 일이 있었다. 할 일은 언제나 입는 법이고, 2005년 계획안들을 보면 모든 면에서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했다. 우리는 아직 하나의 회사로서 최대한의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세부적인 예산 집행안과 작업 계획안드를 마련했다. 372


5년 반 동안 나는 회사를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쏟았고, 우리가 합의한 목표들을 추구했다. 최소한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공개적인 대화와 정직한 이사회의 정황을 알 자격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딕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톰이 안건을 제안한 것이 분명했다. 제이는 감정적이고 다혈질이었다. 루시는 불안정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릴수 있는 사람이었다. 패티는 반장 같은 역할을 하게 되어 대단히 흐뭇한 눈치였다. 보브 라이언은 새로 들어온 인물이었다. 나는 그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 역시 동료 이사들을 잘 몰랐다.


그래서 일요일에 나는 긴장했고 비관적이었다. 왜 내가 나서서 이사회 멤버 전원에게 전화해서 입장을 변명하거나 설명을 요구하거나 상황을 바꾸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열흘간 CEO가 해야 할 모든 일처리와 결정과 조치를 하느라, 아침부터 밤까지 정신이 없었다. 그 외에, 이사들과 이야기해서 어떤 조치를 내리게 하거나 만류하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사들에게 CEO직에 임명해 달라고 청탁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정말 나를 해고할 궁리를 하고 있다면, 그들에게 해고하지 말라고 말할 마음 따윈 없었다. 나의 행동과 결정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었다. 이사회는 그들의 행동과 결정에 책임을 져야 했다. 395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사 둘을 제외한 전원이 떠난 상태였다. 나는 해고당했음을 직감했다. 보브 놀링이 '이사회는 변화를 주기로 결정했어요. 정말 유감입니다. 칼리'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가 내 축출에 반대했다는 것을 알았다. 신임 이사회 의장이 된 패티 던이 당장 발표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다른 CEO들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리란 걸 직감했다. 3분도 안 되어 회의는 끝났다. 나는 몇 시간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말하고, 회의실에서 나왔다.


객실에서 나간 지 10분도 안 지나서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충격으로 손이 덜덜 떨렸다. 프랭크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남편은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405


나는 완전히 망연자실했지만, 다음 날도 여전히 해는 떠오르고 일상은 계속되었다. 그날과 이후 며칠간, 화가 나기보다는 마음이 아팠다. 이상하게도 슬픔과 안도가 뒤섞인 느낌이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굉장히 열심히 일했다. 줄곧 회사 생각만 햇다. 그렇게 살다가 갑자기 그 생활이 끝나버렸다. 경영진을 생각하니, 다시 모여서 그들에게 감사하고 안녕을 빌어줄 기회를 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내가 사랑하게 된 회사의 직원들을 생각하니,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함께 걸어온 길을 추억할 기회가 아쉬웠다. 내게 그런 기회는 없었다.


HP는 나를 소진시켰다. 내 삶 전체가 HP를 둘러싸고 펼쳐졌다. 달력의 매 순간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 그게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내게 HP는, 직원들에게도 말했다시피 '직장 이상, 사랑의 노동'이었으니까. 하지만 자유와 자연스러움은 희생되었다. 항상 걱정거리가 있었다. 기쁨의 순간이란 영혼이 무게 없이 둥둥 떠다니는 순간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캐럴에게 대답햇다. '그냥 행복해지고 싶어요'412


-->현재 규모가 큰 사업을 진행중이다. 업무를 하며, 그녀의 말이 종종 생각날때가 많다. 두번째 읽으며, 앞으로 경영 방침을 나름 정해본다. 
  1. 일이란 보이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다. 결과물이 없거나, 보이지 않다면, 일한 것이 아니다. 일의 결과는 구체적이며, 눈으로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다. 
  2. 속도가 중요하다. 최대한 빠르게 행동할 것
  3. 생각보다, 혁신을 하는 사람이 없다.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참신할 것이다.
  4.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것을 택할 것.
  5. 스트레스와 피곤을 당연히 여길 것.
  6. 깨어있을 것 = 매순간 긴장할 것
  7. 몰입하고, 집중할 것. 
  8. 직원들에게 열정과 탁월을 보여줄 것.

IP *.111.2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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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1.02.11 08:57:27 *.30.254.21
건이의 리뷰를 보면
가끔씩, 일상의 졸음이 확 깨어나는 느낌을 갖게 돼
단검의 특징.
너의 큰 강점이 아닐까 싶다.

단검이 길어지면, 장검이 되겠지.
너의 화려한 초식을 기대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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