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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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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3일 20시 24분 등록

1. '칼 구스타프 융'에 대하여

Carl_Jung_(1912).jpg

[1] 칼 구스타프 융의 생애

취리히를 무대로 활동했던 분석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1875~1961) S. 프로이드(1856~1939), A. 애들러(1870~1937) 등과 같은 시대에 살았지만 이들보다는 종교적인 문제에 더욱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다.

 

그가 종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보통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과 같은 특정한 종파를 의미하거나 그 교단이 믿고 있는 믿음, 신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신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어떤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를 체험하고, 그 결과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된 상태, 또는 변화된 의식에서 나오는 어떤 특별한 정신적인 태도를 의미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현대의 종교는 현대인들의 삶에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의 영혼에 깊숙이 스며들지도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종교의 체험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종교를 정신 치료적인 가치 또한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종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독교가 아닌 인간의 근원적인 심층에 있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유년시절(1875~1886)

칼 구스타프 융은 스위스 콘스탄스 호숫가의 작음 마을 케스빌에서 쯔빙글리파에 속하는 개신교 목사 요한 폴 아킬레스 융과 그의 아내 에밀리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그리 밝지 못했다. 왜냐하면 부모의 갈등 속에서 자라났기 대문이다. 특히 그의 어머니가 3살 때 병원에 장기간 입원을 하면서 그는 더욱 큰 심리적 불안을 얻게 되었다.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세 가지 이유는 다름과 같다.

 

첫 번째는 그의 부모의 불화가 원인이다. 특히 프로이드가 말한 오이디푸스라고 불리는 시기에 그는 부모를 모방의 대상이 아닌 그들의 심판자와 같은 입장에서 그의 부모를 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나에게 일종의 자아 팽창을 가져왔으며, 삶에 대한 내 신뢰감을 근본에서부터 허물게 만들었다." 라고 당시의 상황을 고백하고 잇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과도 떨어져 자기 내면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자기애적인 내향성를 가지게 되었다.

 

두 번째는 그의 어머니가 장기간의 입원으로 인해서 발생된 삶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의 부족이다. 이것은 삶과 여성적인 것과 따뜻한 것에 대해서 상실을 말하고 이 상실은 그에게 존재 심층은 연약하며 믿지 못할 것임을 일깨워 주었고, 삶의 근본적인 불신을 심어주었다.

 

세 번째로 그의 연상적 상징이다. 그것은 그의 어린 시절 중에서 특히 밤을 무서워했다. 그것은 자신의 외로움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은 흔히 듣는 지하세계의 귀신들이 나오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밤이 무서웠으며 검정색과 일치되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목사로서 교회에서 집례를 할 때 항상 입는 가운의 색이 검정색이었다. 이것은 그의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화 항상 유약한 아버지의 이미지와 일치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 역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연상적 상징은 밤-검은색-아버지-기독교이다.

 

이 무렵, 그는 또 하나의 경험을 하는데 죽음에 대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이다. 장례식 때 이루어지는 의식들 속에서 그는 죽음을 보았고 예수는 죽음을 가져오는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 당시 제수이트(Jesuite)파의 사제를 산길에서 만나면서 그는 죽음을 경험했다. 제수이트파 사제들의 검은 망토와 검은 모자가 그에게는 죽음의 사자로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유년시절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한 것은 거대한 남근에 관한 꿈을 꾼 일이다. 이때 그가 꾼 꿈속에서 보았던 남근은 보통의 남근이 아닌 제의적인 남근으로서 지하세계의 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꿈에 의하면 그는 이 무렵에 예수 그리스도를 지하 세계의 신과 동일시하고 있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긍정적인 존재나 사랑할 만한 존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산 사람의 신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신이었다.

 

열 살 되던 무렵 그는 자신의 내면에 또 하나의 사람이 있지 않은가 하는 내면적 분열을 심각하게 겪는 경험을 했다.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혼돈이 생겼던 것이다. 이때부터 융은 자기 내면에서 또 다른 인격인 무의식을 발견하고 그의 진정한 모습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탐구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적 분열을 감당할 수 없는 나이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만의 비밀스런 제의적 행태 속에 빠져 들었다. 이것은 대단히 개인적인 것이고, 신비적이며, 자기애적인 제의였다.

 

청소년기와 청년기(1887~1900)

융이 청소년기에 접어드는 열두 살 때는 가히 운명적인 해라고 해도 좋다. 왜냐하면 그가 학교에서 집에 오던 길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치게 되었다. 그때 그의 아버지가 하신 '융이 건강하지 못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야' 라는 말에 충격을 받고 그 충격으로 인해 그는 삶의 과제와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더불어 비슷한 무렵 그의 신비적 누미노제 체험이다. 그는 아름다운 성당에 똥이 떨어져 성당이 무너지는 내면적 정신 에너지를 경험했다. 그것을 자신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종교의식에 대한 기대감이 상실되면서 가지게 된 사건이 있었다. 위의 경험이 있던 무렵에 견진례를 기대하면서 가졌던 어떤 종교적 현상이 일어나지 않음으로 인해 생긴 상실감이 그를 기독교에 대한 더욱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했다. 바로 이때 융은 기독교를 떠났다.

 

중학교 시절 그는 그의 내면에 그의 일상적인 인격과는 또 다른 또 하나의 인격이 들어있음을 분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 인격들에게 이름을 붙였는데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인격을 제 1인격, 실제의 모습을 제 2인격이라고 불렀다. 이때 그는 쇼펜하우어와 칸트를 읽었으며 많은 종교서적도 읽었다. 그러면서 그의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애를 썼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에는 자연과학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또한 종교 현상에 대한 관심 또한 많았다. 그래서 그는 정신과를 전공하여 정신과 의사로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정신과 의사로의 활동과 실존적인 위기(1900~1919)

이 시기는 융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그 이유는 그의 심리학 사상이 이때 결정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때 그는 그의 심리학 사상에서 가장 결정적인 개념이 되는 개성화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이 시기는 역시 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1900~1913년의 정신과 의사로서 첫발을 내딛는 시기이고 1913~1919년은 프로이드와 헤어진 다음 그의 삶에 실존적인 위기를 겪게 되는 시기이다.

 

첫 번째 시기는 당시 정신의학은 정신과 환자들의 내면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융은 정신과 환자들의 증상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탐색하면서 치료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1903년부터 사람들의 연상 속에는 커다란 의미가 담겨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융은 프로이드와 만나게 되었고 그의 심리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융은 프로이드의 성에 대한 이론에서 성이 일종의 누미노제적인 실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나중에 둘이 갈라서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융은 도대체 프로이드가 성적인 외상이 모든 억압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수긍할 수 없었다. 프로이드 역시 융의 이런 주장을 맏아들이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융과 프로이드의 결별은 융이 1912 <리비도의 변형과 상징>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이다. 그의 이 논문 속에서 융은 그 나름대로의 근친상간에 대한 사상과 리비도의 변형에 관해서 역설했다. 왜냐하면 프로이드는 성적인 것들을 상징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만 파악했다고 비판한다. 이것이 결별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프로이드와의 결별 이후 융은 내면의 불확실성 속에 사로 잡혀 지내게 되었다. 이제는 스스로 모든 것을 이룩해 내야만 했던 것이다. 그때 융은 많은 꿈들과 비전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스스로 해석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어린시절 돌멩이로 집 짓기 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 속에서 그는 인간 정신의 비밀을 알게 해주고, 무의식이 가진 치유의 힘을 체험하게 되었다. 더욱 더 이 놀이는 사람들의 감정 뒤에 숨은 이미지의 의미를 깨달을 대 치유의 힘은 더욱더 활발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꿈속에서 만나는 많은 인물들의 이미지들이 나타날 때마다 그는 그 이미지들의 의미를 해독하려 애썼다. 그러다 그 이미지들이 다른 이미지들과 더불어 각각 그림자, 아니마, 자기의 원형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이미지들이 그저 꿈을 꾼다고 해서 언제나 나타나는, 그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는 이미지가 아닌 스스로 계시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융은 조금씩 인간 정신의 객관성의 영역, 영혼의 실제에 관해서 알게 되었다.

 

1916년 어느 날, 그는 그의 내적인 체험을 창조적으로 형상화시켜야 하겠다고 강력한 내면이 요청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는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개의 설교"를 썼으며 만달라를 최초로 그리게 되었다. 융은 만달라를 그려가면서 그의 인격의 전체성이 점차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만달라는 인격의 전체성을 나타내는 자기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융은 처음에 무의식이 그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에 내던져졌다. 그러나 그는 무의식을 신뢰하고 있었다. 1918~1919년 사이에 그는 어둠에서 빠져 나오게 되었다. 그것은 아니마가 가진 파괴적인 힘을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이런 그의 무의식을 실현하게 되었다. 즉 개성화된 것이다.

 

대가로서의 삶 (1919~1961)

융은 무의식의 요소들에 관해서 연구하면서 무의식에는 사람들의 정신 속에 있는 서로 대치적인 힘들을 통합시키려고 하는 조정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싶은 인상을 받았다. 그 결과 인간 정신에는 본래 전체성에 이르고자 하는 성향이 있으며, 이 성향은 인간 정신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통합시키는 요체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과정에 융은 인간 정신의 중심에 있는 이 이미지가 만달라 상 속에 표현되어 잇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싶은 연구를 하게 되었다. 도한 중국학자 리처드 빌헬름(R. Wihelm)으로부터 <황금 꽃의 비밀>이라는 중국 도교의 연금술서에 관한 원고를 읽고 연금술에도 깊은 관심과 연구를 하게 되었다. 만달라가 인간 정신의 중심을 찾으려는 노력이라면 연금술은 이 과정을 계통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연금술을 연구하면서 프로이드와 결별한 후 실존적인 위기 상태에서 내면적으로 겪었던 체험들이 객관적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인간 정신의 실체성과 역동성, 그리고 영원한 신비를 뚜렷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1913~1914년 사이 자신의 개인적인 꿈과 환상을 통해서 얻은 체험 속에서 그는 개인들의 꿈과 환상들이 집단적으로 격어야 하는 체험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융에게 모든 사람들의 삶이란 그 사람의 삶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 정신이 가진 구조의 보편적인 토대를 탐구하기 위해 원시 부족들을 찾아 다녔다. 그 속에서 그는 원시적이 상태의 사람이나 현대인이나 정신 구조는 똑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 집단적 무의식은 사람들에게 있는 고태적인 잔존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2] 융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

 

융의 부모

앞에서 그의 부모에 대해서는 조금 다루었다. 앞에서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융은 아버지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지 못했다. 때문에 아버지로 대표되는 기독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로부터는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 모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융이 나중에 신화나 종교사, 신비 현상에 관해서 커다란 흥미를 느끼게 된 것도 그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교육의 영향에 있다.

 

프로이드와 다른 사람들

융의 삶에서 부모 이외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사람은 프로이드이다. 왜냐하면 프로이드에게서 융은 아버지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그와 동일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는 오이디푸스적인 갈등이 생겨나 결별한다. 융은 연약한 아버지의 이미지 속에서 아버지를 능가하고자 하는 잠재의식이 프로이드 역시 능가해야 할 대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융과 프로이드는 서로 다른 정신적 유형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성황과 취향이 너무 달랐다는 사실이다. 또한 학문적 성향 역시 달랐다. 융은 인간의 정신적인 전체성을 찾아내기 위해서 신화나 설화 및 연금술 속에 나타난 인간의 집단적인 정신적 흐름을 파헤치려고 노력한 반면 프로이드는 그렇지 않았다. 세 번째 문화적인 차이점도 볼 수 있다. 프로이드는 힘을 잃고 사그러져 가는 기독교에서 허위구조를 밝혀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융은 종교의 상징에 담겨 있는 누미노제적인 힘을 없애버릴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생각에서 융은 종교와 현대성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하였다.

 

프로이드 이외의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앙리 베르그송, 삐에르 쟈네, 윌리엄 제임스, 떼오도르 플루누아, 오이겐 브로일러, 프리드리히 니체 등이 있다.

 

그의 아내 엠마 융과 토니 울프

융이 무의식과 아니마의 부정적인 힘의 극복에 관해서 강조 했는데 이 힘들을 극복하는데는 그의 아내와 토니 울프와의 서신 왕래 속에서 큰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여성들은 천부적으로 이것들을 극복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남성들이 자신의 개성화 작업을 위해서는 여성의 도움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참고문헌]

1. 네이버 백과사전 / 위키 백과사전의 '칼 구스타프 융'

2. 융의 생애와 사상적 특성 : 네이버 블로그

   http://cafe.naver.com/tantricze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5236

3. 도서 <융의 심리학과 종교_김성민>

 

 

2. '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옮긴이 서문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중수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8)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실현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수, 원형 등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는 ‘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의 상징 등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9)

상징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러하구나.

 

그는 신을 가리켜 ‘위대한 위험’이라고 규정했다. 섣불리 신에게 접근했다가는 어떤 위험스런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법이다. 그렇게 위험스럽긴 하지만 신은 탐구해볼 가치가 있는 ‘위대한 위험’인 것이다 (10)

신에 대한 탐구가 김용규님의 ''을 읽을 때 느낀 것이지만 결국은 우리 존재를 알기 위한 종국에 이르는 지점인 것이다.

 

나는 신을 압니다. (10)

 

프롤로그_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Selbst : 인격의 가장 깊은 구심점) 실현의 역사다. (11)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신화는 훨씬 개인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확하게 삶을 말해준다. (11)

 

나는 내가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12)

평생을 자기실현의 화두를 안고 산 대학자조차도 자신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영원한 숙제인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제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배하는 일종의 심적 과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기 생애에 대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12)

 

인생은 허무하기 짝이 없고 너무나 불충분하여,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 그 자체라 할 만하다. 내가 젊은 의대생이었을 때 이러한 사실을 이미 깊이 느꼈는데, 내가 그 시기 이전에 파멸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여겨졌다. (13)

 

언제나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럼 생각되었다.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13)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서 존속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13)

 

다른 실체와의 만남, 즉 무의식과의 충돌은 나의 기억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거기는 항상 충만하고 풍성하여 다른 모든 것은 그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14)

 

사람들 역시 그 이름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내 운명의 두루마리에 기입되어 있는 경우에만 나의 기억에 지워지지 않도록 깊이 새겨지게 되었다. 그러한 사람들과 아는 사이가 된다는 것은 동시에 일종의 기억 상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14)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15)

 

일생을 사로잡은 꿈. 유년시절

이러한 것들은 모호한 바다에 따 다니는 기억의 섬들일 뿐이다. 그것들은 서로 이어져 있지 않은 듯이 보인다. (23)

 

그후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26)

 

이런 소녀의 유형이 내 아니마의 한 측면이 되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생소한 느낌과, 그런데도 그녀를 처음부터 알아온 것 같은 감정은 나에게 훗날 여성적인 것의 본질을 나타내는 여성상의 특징이 되었다. (27)

 

내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주어진 무시무시한 계시였다. (35)

 

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긍정적인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나의 은밀한 불신을 좀체 극복할 수 없을 듯 싶었다. (35)

 

누가 나의 내부에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누구의 정신이 이런 체험을 고안해냈을까? 얼마나 빼어난 통찰이 여기에 작용한 것일까? (37)

 

어린아이에게 익숙한 천진성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모든 멍텅구리는 뭔가 아주 거북스러운 것을 빨리 없애버리려 한다. (37)

 

그 올챙이들은 아주 얕은 빗물웅덩이에 가득 모여들어 햇볕을 받으며 즐겁게 꼬리치고 있으나 바로 다음날에 웅덩이가 말라버릴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37)

 

하늘과 땅 양쪽에서 온 그 낯선 손님 이외에 그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37)

 

땅에 묻히는 매장식이 거행된 것이었다. 내가 다시 땅에서 나오기까지는 여러 해가 지나갔다. 지금 나는 그 일이 가능한 많은 빛을 어둠 속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어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나의 정신적 삶이 무의식적인 출발은 한 것이었다 (37)

 

어머니가 나의 계시를 듣는다면 깜짝 놀라며 거부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상처를 자초하고 싶지는 않았다. (42)

 

그들은 내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는 다르게 되도록, 어찌해서든지 나를 유혹하거나 강요했다. (45)

 

'나는 이 돌에 앉아 있다. 나는 위에 있고 돌은 밑에 있다.’ 그런데 돌도 ‘나’라고 말하며 ‘내가 여기 이 비탈에 누워있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의문이 일어났다.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돌이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단 말인가?(46)

 

내가 심취했던 유년시절의 세계는 영원한 것이었으며, 나는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계속 굴러가며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만 것이었다. 나는 나의 미래를 잃지 않기 위해 그 장소에서 억지로 몸을 돌려야만 했다. (47)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 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그것은 결코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비밀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자신감이 그 비밀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49)

 

아스클레피오스(의술의 신, 그의 의술로 모든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될까 두려워 제우스가 그를 벼락으로 죽여버림) 옆에서 그에게 두루마리 하나를 읽어주고 있는 텔레스포로스였다. (51)

 

전통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영혼의 고태적 구성요소가 있다 (51)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52)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학창시절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53)

 

이러한 갈등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나는 좋든 싫든 부모님을 판정해야 하는 상위의 중재재판관 역할을 했다. 그것이 나에게 일종의 자만심을 야기했다. 그 자만심은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는 자존심을 부추기기도 하고 동시에 약화시키기도 했다. (56)

 

자애심과 허영심에서 될 수 있는 한 흠잡을 데 없이 보이기 위해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나의 자만심을 뒤이은 열등감이 세상사람들 앞에서 드러난다는 것은 나로서는 정말 부당한 일로 여겨졌다. (58)

 

내가 쓸쓸할 때도 나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비밀, 즉 프록코트에 높은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 인형과 돌을 간직하고 있는 ‘다른 인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59)

 

여든세 살의 나이에 지난날의 기억들을 적어나가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 기억들은 지하에서 서로 얽혀 있는 하나의 뿌리에서 각각 뻗어나간 작은 가지들과 같으며, 무의식의 발달과정에 있는 정류장들과 같다. (59)

 

무엇보다 나는 신비로운 세계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 세계에는 나무들, , , , 짐승들, 그리고 아버지의 서재 등이 속해 있었다. (64)

 

나는 방랑, 독서, 수집, 놀이 등으로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다. (65)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현실과의 충돌이었다. ‘아, 그래. 그렇다면 나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쳤다. (66)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66)

 

그 수치스러운 사건 전체를 조정해온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66)

 

내가 무언가 덕을 보려고 하는 외관상의 성실성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성실성이었다. (67)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67)

 

지금은 ‘내’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내’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68)

 

그때 몹시 난처하게도 나 자신이 실제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수학도 잘 모르고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었으나, 다른 하나는 위대한 권위를 지닌 중요한 인물로 경시해서는 안 될 사람이며 그 공장주보다 더 막강하고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70)

 

이 세상은 나에게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이긴 했으나 막연한 위험과 무의미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73)

 

아담과 이브를 말로 꾀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이 그들보다 먼저 뱀을 창조했다. (77)

 

나는 하느님이 의도한 대로, 스스로 혼자서 출구를 찾아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78)

 

하느님의 의지란 무엇이며 하느님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전에는 복종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하느님이야말로 이런 절망적인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79)

 

나를 결정적으로 시험 삼아 써보려고 하는 존재가 하느님이며, 모든 것이 하느님을 바르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결국 굴복을 강요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문제는 내 영혼의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이다. (79)

 

분명히 하느님도 내가 용기를 내기를 바라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내가 그것을 실행한다면, 하느님은 나에게 은총과 계시를 내려주실 것이다. 나는 지옥의 불길 속으로 즉시 뛰어들려고 하는 것처럼 용기를 끌어 모아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80)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엄청난 안도감과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저주를 예상했는데 그 대신 은총이 나에게 임하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이 임했다. (80)

 

내가 하느님의 가차없는 준엄함에 쓰러져 복종하자 하느님의 지혜와 선이 나에게 드러났다. (80)

 

하느님의 의지로, 아버지는 아주 그럴 듯한 이유를 대며 깊은 신앙심을 내세워 그 의지에 대항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치유하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의 기적을 아버지는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다. (81)

 

살아서 직접 임하시는 하느님, 성서와 교회를 넘어서 전능하고 자유로운 하느님, 당신의 자유를 인간이 누리도록 촉구하고, 당신의 요청을 무조건 실현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견해와 신념들을 버리도록 강요할 수도 있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81)

 

인간의 용기를 시험할 때 하느님은 비록 아무리 신성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전통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을 거부한다. (81)

 

하느님은 종교적 전통으로는 내가 거부하고 싶은 것도 나에게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 은총을 가져다 준 것은 복종이었다. 그 체험 이후 나는 하느님의 은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하느님에게 맡겨졌다는 것과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무의미한 일에 나 자신을 넘겨주는 셈이 된다. (81)

 

비밀로 인하여 나는 거의 참을 수 없는 고독에 빠졌다. 누군가에게 그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낸 것이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여겨진다. (84)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84)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85)

 

내 아래에서 나를 시샘하면서 따라잡으려고 기회를 노리는 학우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나는 모든 경쟁을 싫어했다. 누가 놀이까지도 경쟁적으로 하게 되면 나는 그 놀이를 그만두었다. 그 후 나는 학급에서 2등에 머물렀는데 그것이 훨씬 마음을 편하게 했다. (87)

 

적들이 생기고 사람들이 나를 부당하게 의심하는 것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나, 어쨌든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내가 비난을 받는 모든 것은 나를 화나게 했으나, 나 자신을 돌아볼 때 그 비난들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아주 조금 알고 있었고, 그 조금 알고 있는 것마저 모순되었기 때문에 선한 양심을 가지고는 어떤 비난도 거부할 수 없었다. 사실상 나는 언제나 양심의 가책을 지니고 있었고, 실제적인 잘못과 잠재적인 잘못 그 둘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비난들에 대해 특별히 예민했다. 그 비난들이 모두 어느 정도는 급소를 찔렀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그 일을 실제로는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쩌면 나는 그렇게 했을 수도 있었다. 내가 실제로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대는 오히려 마음이 참 편했다. 그때는 적어도 무슨 이유로 양심의 가책을 받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89)

 

인간들은 우스꽝스러운 의상을 걸치고 비열함과 어리석음, 허영심, 위선과 혐오스러운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90)

 

그러한 세계 옆에는 또 다른 영역이 있었다. 그 영역은 사원과 같아서 그 속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나 변화되었다. 그는 우주 전체의 광경에 압도되어 자기 자신을 잊을 정도로 다만 놀라고 경탄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여기에 그 ‘다른 인물’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하느님을 숨어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초개인적인 비밀로 알고 있었다. 여기서 인간을 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이지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 하느님과 함께 똑같이 창조의 과정을 바라보는 것과도 같았다. (90)

 

내가 혼자 있는 순간이면 곧바로 이러한 상태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서 나는 나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이며 참다운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하여 나는 도 다른 존재, 즉 제2의 인격의 방해 받지 않는 평온과 고독을 추구했다. (90)

 

종교는 오래 전부터 인간의 제2의 인격, 즉 ‘내적 인격’에 대해 말해왔다. 2의 인격은 내 생애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내부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길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91)

 

하느님은 인간들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그렇게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지 말도록 금하고, 심지어 지옥불길의 영원한 저주로 벌을 주기까지 한다. (92)

 

하느님은 자신의 압도적이고 충격적인 의지를 무력한 인간들에게서 철저히 실현되도록 할 수 있는 존재다. (93)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가 나에게 제기되었다. 그런데 누가 문제를 제기했는가?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 나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그 해답을 나 자신의 고유한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하느님 앞에서 나는 단독자이며 하느님만이 이와 같은 무서운 일을 나에게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96)

 

o 나는 수백년의 세월 속에 있었으며, 그 때 답을 준 자는 이미 항상 있었고 지금도 항상 있는 존재였다. ‘다른 인물’과의 대화는 나의 가장 심오한 체험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피 흘리는 전투면서 또 한편으로는 극도의 황홀경이었다. (96)

 

나는 혼자서 나 자신의 생각들에 빠졌다. 그러는 것이 나는 가장 좋았다. 나는 혼자서 놀았고 혼자 돌아 다니며 공상하면서 나 자신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품고 있었다. (97)

 

내 안에서 이런 고태적인 성질의 어떤 요소를 인식한다. 그것은 사람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항상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닌 재능을 부여한다. (101)

 

하느님은 어떤 종류의 성격 내지는 인격을 소유하고 있는 것일까. (112)

 

하느님은 자신이 해로운 독사, 즉 악마를 들여다 놓음으로써 낙원의 영광이 너무 오래 지속되지 않도록 스스로 대비하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도 하느님이 만족을 느꼈을까? (115)

 

하느님이 지선이라면 그가 창조한 세계와 피조물이 왜 이토록 불완전하고 부패하고 비참하단 말인가? (116)

 

어딘가에서, 어떤 시간에, 나처럼 진리를 탐구하는 자들이 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자신과 남들을 속이려 하지 않으며,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의 현실을 부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일 것이었다. (116)

 

악과 그 세계장악력을 알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을 어둠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는 데 악이 맡은 신비로운 역할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여태껏 있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118)

 

숲 속을 벌거벗고 방랑하던 원시인들까지도 그런 신의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신이라는 관념을 만들어내기 위해’ 틀어박혀 앉아 있는 ‘철학자들’이 아니었다. (120)

 

어떻게 하느님이 나에게는 자명한 것이 되었을까? 하느님의 존재는 머리 위에 떨어지는 벽돌과도 같이 너무나 분명한데도, 이 철학자들은 어찌하여 하느님은 일종의 관념이며 자기들이 만들어낼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임의적인 가설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하느님은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경험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121)

 

딴 사람들은 정말 모두 다른 곳에 있는 듯했다. 나는 완전히 혼자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 문제에 관해 나는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어디서도 대화의 접촉점을 찾을 수 없었고, 그 반대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소외감과 불신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124)

 

‘그럼, 여기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너는 흥분하고 있구나. 물론 그 선생은 너의 천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다. 다시 말해 너와 똑같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생도 너와 마찬가지로 의심 많은 사람인 것이다. 너는 너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믿지 않게 때문에, 단순하며 소박하고 한눈에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아이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128)

 

그들은 자신들이 질서 있는 우주 속에, 신의 세계 안에, 온갖 것이 태어나고 온갖 것이 이미 죽어 있는 영원 속에 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130)

 

언어, 예리한 의식, 과학 들을 제외한 존재의 온갖 본질적인 요소들을 공유하는 셈이었다. 나는 그 제외된 요소들을 인습대로 경탄해 마지않았지만, 인간들을 신의 세계로부터 멀어지고 벗어나게 하여 동물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타락으로 이끌 가능성이 그 요소들에 있음을 발견했다. 동물들은 사랑스럽고 충직하며 변덕스럽지 않고 믿을 만하였으나, 인간들은 나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130)

 

식물들은 무엇을 의도하는 일도 없고 이탈하지도 않으면서 신의 세계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표현했다. 나무들은 특히 신비로웠으며 나에게는 생명의 불가해한 의미를 직접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131)

 

나는 철학사에 관한 작은 입문서를 읽었고, 그로 인해 이미 사색되었던 모든 사상에 대한 일종의 개관을 얻게 되었다. 만족스럽게도 나는 나의 많은 영감이 그 사상들과 역사적인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132)

 

나는 쇼펭하우어의 음울한 세계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했으나 그의 문제해결 방법까지는 찬성하지 않았다. (134)

 

신은 어떤 신성모독에 의해서도 기분이 상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인간이 밝고 긍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어둠과 불경스러움도 갖도록 신성모독을 요구하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134)

 

나는 확실히 붙임성 있고 속이 트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가난이라는 것이 불리한 점도 아니며 고통의 주된 원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은 더 좋은 친구를 얻었다. 내 발을 받쳐주는 훨씬 든든한 기반을 느끼며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까지 갖게 되었다. (136)

 

나는 학우들과 있을 때는 이런 ‘비밀스러운 사안’들을 언급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어른들 중에서는 나를 허풍쟁이나 사기꾼으로 보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내 안에서 두 세계로 나누어진 분리를 지양하려는 나의 노력이 저지되고 마비되었다는 것이었다. (138)

 

자연과학에서는 의미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고, 종교학에서는 경험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140)

 

나 자신은 천 개의 눈을 가진 우주에서 하나의 눈으로 여겨졌으나 지상에서는 조약돌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144)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성자인 남편과 아버지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 나에게 특히 사랑스럽게 여겨진 것은 바로 그 결점과 부족함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 어떻게 사람이 성자와 함께 살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에 성자는 은둔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은둔처는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생각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여겼다. 즉 가족들은 한 집에 살고 나는 다른 곳, 집에서 약간 떨어진 막사에 사는 것 말이다. 나는 그 오두막에 수많은 책과 책상을 갖다 놓고, 불을 피워 밤을 굽기도 하고 불위의 삼각받침에 스프 통을 걸어 놓을 것이다. (152)

 

1의 인격이 제2의 인격이 주는 부담과 우울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침울해하고 있는 쪽은 제2의 인격이 아니라 제2의 인격을 상기할 때의 제1의 인격이었다. (154)

 

아름다운 시간들. 대학시절

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나 자신이 무엇을 할지는 모르고 있어. (164)

 

나는 학우들이나 교사와 같은 유력한 윗사람들이 대부분 싫어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그들이 나에 대해 의심과 비난에 찬 의견을 내 놓을 것이기 때문에, 나의 꿈을 지원해줄 후원자를 찾을 가망도 없을 것이었다. (166)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1의 인격의 눈으로 바라본 나라는 인간은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보통 수준의 재능을 갖춘 청년으로, 허황된 야심과 세련되지 못한 기질, 모호한 태도들을 지니고 있었다. 즉시 천진난만할 정도로 흥분하는가 하면, 또 금방 변덕스럽게 유치한 실망에 빠지기도 했다..2의 인격은 제1의 인격을 까다롭고 배은망덕한 도덕적 과제, 종결되어야 할 일종의 숙제로 여겼다. 이런 과제는 일련의 결점으로 인하여 부담이 가중되었다. 그 결점이란 때때로 부리는 게으름, 의기소침, 침울, 아무도 가치를 두지 않는 이념이나 사물들에 대한 어리석은 열광, 혼자 착각하는 우정, 좁은 마음, 편견, 우둔함(수학!), 타인에 대한 이해부족, 세계관에 대한 모호성과 혼란 등 이었다. (167)

 

2의 인격은 자기 자신으로서는 냉혹할 정도로 분명했으나 무능하고 의욕이 별로 없었다. 1의 인격의 두텁고 어두운 매개물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기를 간절히 바라기는 했지만 말이다. (168)

 

나 자신의 인식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보물이었다. 그것은 어둠의 힘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약했으나 그래도 하나의 빛이었고 나의 유일한 빛이었다. 나는 제1의 인격이 빛을 운반하는 자이며 제2의 인격은 그림자처럼 제1의 인격을 따라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과제는 그 빛을 지키고 그 ‘투철한 생명력’을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었다. (170)

 

내가 내적 영역을 상기시키는 어떤 것을 넌지시 암시할 적마다 사람들 위에 드리워지던 그 의아함과 서먹함의 차가운 그림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제2의 인격을 뒤에 남겨두고 떠나야만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경우라도 내 앞에서 제2의 인격을 부정한다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스스로를 불구로 만드는 것이며, 더 나아가 꿈의 출처를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이상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172)

 

나는 나 자신이 점점 더 제1의 인격과 동일화되는 것을 느꼈으며, 이러한 상황은 훨씬 더 포괄적인 제2의 인격의 단순한 일부임이 판명되었다. (172)

 

그는 자신의 개성 때문에 부모의 정신세계와는 제약된 범위 안에서만 일치할 뿐이다. 시대정신 그 자체는 대개 무의식적이다. 이 가족정신이 전반적으로 동의를 표시할 경우 그것은 일종의 세계 확실성을 의미하게 된다. 하지만 그 정신이 많은 것과 대립하여 스스로 어긋나버리면 세계 불확실감이 생겨난다. (174)

 

내 어린 시절의 발달이 미래의 사건들을 얼마나 미리 잘 말해주고 있는지 알게 된다. 그러한 계시는 어제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이미 그 그림자를 던져온 것이었다. (175)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을 세계라고 하는 극장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이와 같이, 적어도 우리 존재의 일부는 수세기에 걸쳐서 살아온 것이다. (175)

 

서양종교는 분명히 말해 내적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2천 년 전부터 내적 인간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려 그 인격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왔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176)

 

하느님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에게조차 그런 꿈을 보여주었으며 나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179)

 

내가 보기에 신앙의 가장 큰 죄는 경험을 앞지르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182)

 

왜 유령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그들의 불안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나에게는 그러한 가능성이 아주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나의 삶을 몇 배나 더욱 아름답게 해주었다. (194)

 

어머니의 제2의 인격은 이러한 나의 열의에 전적으로 동조했으나, 그 외 주변사람들은 나를 낙심하게 했다. 그때까지는 내가 전통적 견해의 바위에 부딪혔다면, 이제는 비인습적인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철저한 무능과 선입견이라고 하는 강철 벽에 부딪힌 셈이었다. (195)

 

나는 세계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느낌이었다. 나에게 불같이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질없는 것이며, 심지어는 불안을 자아내는 원인이 되기까지 했다. (195)

 

이러한 통찰은 나에게 위험스러운 것이 되었다. 우월감을 잔뜩 부추기고 근거 없는 비판, 공격적인 성향으로 유도하여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그 옛날의 의혹과 열등감, 침울, 다시 말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끊어버리려고 결심했던 악순환이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세상 바깥에 서 있고 싶지 않았고, 괴상한 아이라는 미심쩍은 평판도 듣고 싶지 않았다. (196)

 

동물들에 대한 나의 연민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불교적인 몸짓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원초적인 정신적 태도의 바탕, 즉 동물과의 무의식적인 동일시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197)

 

니체가 내적인 체험과 통찰을 가지고 불행하게도 그것들에 관해 발하고자 했으나 아무에게도 이해 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198)

 

2의 인격은 나를 잠시도 가만두지 않고 좋지 않은 때에 반복해서 나타나 나 자신을 돌이켜보도록 밀어붙였다. (199)

우리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점에서 순진한 사람은 동료들에게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하면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모욕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작가, 신문기자, 또는 시인들에게만 그와 같은 무례한 행동을 허용할 뿐이다. 나는 새로운 관념이나 단지 특이한 측면까지도 오직 사실로써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201)

 

나는 어디선가 다이아몬드계곡을 지나온 것도 같은데, 내가 가지고 온 광석표본이 자갈 돌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확신시킬 수가 없었다. 그것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나 자신까지도 확신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202)

 

정신병을 ‘인격의 병’이라 일컫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나에게 정신의학 외에는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격적으로 계시처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의학에서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흐름이 합류하여 그 합해진 물의 힘으로 스스로 물길을 내어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여기에 내가 사방으로 찾아 헤매었으나 발견하지 못했던, 생물학적 사실과 정신적 사실에 관한 공동경험의 장이 있었다. 정신의학은 자연과 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인 셈이었다. (210)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나의 확신을 흩뜨려놓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여 세차게 흘러가면서 먼 목적지로 나를 가차없이 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통합된 이중성‘이라는 고양된 감정에 힘입어 나는 마법의 파도를 탄 것처럼 시험을 치러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211)

 

부르크휠츨리에서 일을 함으로써 오직 의향, 의식성, 의무와 책임으로 이루어진 분리되지 않은 현실 속에서 나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세속의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보편적이고 평균적이며 진부하고 의미가 결여된 것들만을 믿겠다는 맹세를 따르는 것과도 같았다. 또한 생소하고 의미 있는 것들은 모두 거부하고 비범한 것들을 모두 평범한 것으로 축소하겠다는 맹세를 지키는 것과도 같았다. (216)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 (217)

 

 

상처 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내가 그녀에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해주어야만 하는가, 아니면 말하지 않아야 하는가? 내가 큰 수술을 감행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나에게 중대한 양심의 문제였고 동시에 의무의 갈등을 의미했다.  (224)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 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성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환자의 비밀이며 바로 거기서 좌절하고 만 것이다. (226)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226)

 

인간적인 배경과 인간적인 고통을 드러내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의 치료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236)

 

정신의학의 주요과제는 병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식하는 것. (237)

 

이제까지 정신병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사실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정신이 돈’ 것들만은 결코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그런 환자들에게도 그 배후에는 정상이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간주될 만한 ‘인격’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따금 이런 인격 역시 주로 목소리나 꿈을 통해 아주 이치에 맞는 발언과 항변을 할 수도 있었다. (239)

 

나는 피해망상과 환각이 일종의 의미의 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희망과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단지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정신병에 보편적인 인격심리학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과, 여기서도 오랜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241)

 

이 세상은 아름답지 않으나 달은 아름답고 그곳의 삶은 의미가 깊다. (245)

 

소녀시절에 당했던 근친상간으로 인해 그녀는, 세상의 관점에서는 굴욕을 느꼈지만 환상의 세계에서는 고양된 기분이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소위 신화의 영역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근친상간은 전통적으로 왕과 신들의 특권이기 때문이었다. (246)

 

잠재적 정신병의 상징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신화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249)

 

환자를 실제로 충동질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필요한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론의 증명이 아니라, 환자가 자기 자신을 한 개인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250)

 

정신 치료자는 단지 환자만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의사 자신이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수련의 필수조건은 교육분석, 즉 자기분석이다. 환자의 치료는 말하자면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의사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250)

 

본래의 분석에서는 환자와 의사 모두 그 전인격이 대상이 된다. 의사가 자기 자신을 바치지 않고 치료할 수 없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치료에서 중요한 고비를 맞았을 때, 결정적인 것은 의사가 자기 자신을 드라마의 한 부분으로 보느냐 아니면 스스로를 자기 권위로 씌워버리느냐 하는 것이다. 인생의 심각한 위기에서는, 다시 말해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인 순간에는, 암시의 잔꾀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때 의사는 그 전존재가 도전을 받게 된다. (251)

 

원형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종종 관찰되는 전형적인 동시성 현상이다. 무의식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대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 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 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다. (261)

 

나는 사람들이 인생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사람들은 지위, 결혼, 명성, 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 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그런 이유로 인격의 발달이라는 관념이 나에게는 처음부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264)

 

내적 체험의 모험, 즉 영적인 모험은 많은 사람에게는 친숙하지 않다. 정신적인 실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파문에 해당한다. (267)

 

우리 시대에 이와 같은 마음의 분열로 희생된 자들은 단지 ‘스스로 택한 신경증 환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표면적인 증상은 자아와 무의식 사이에 벌어져 있는 틈이 메워지는 순간 사라진다. 이러한 분열을 자신에게서 깊이 느끼고 있는 의사는 무의식의 심적 과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심리학자가 빠지기 쉬운 자아팽창의 전형적인 위급상황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270)

 

원형의 신성한 힘의 작용을 자신의 체험으로 인식하지 못한 의사는 치료과정에서 그것과 마주치게 되었을 때 원형의 부정적인 영향을 거의 피해가기 힘들 것이다. 그는 원형을 과대평가하기도 하고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지적인 개념만을 가지고 있을 뿐 경험적인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271)

 

프로이트와의 만남

프로이트가 제시한 꿈의 분석과 해석 방법에 관한 단초는 정신분열증의 표현형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276)

 

연상장애는 자극어가 정신적 상처나 갈등을 건드릴 적마다 일어났다. 하지만 환자들은 대부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장애의 원인에 대해 물으면 환자는 흔히 기묘하게 꾸며낸 답변을 하곤 했다. 276

 

사람은 인생을 거짓 위에 세울 수 없다. (278)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그와 함께 할 것입니다. 연구를 제한하고 진리를 숨기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나는 경력 따위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278)

 

프로이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의 태도에는 진부함이 전혀 없었다. (279)

 

프로이트는 왜 자신이 성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야만하는지, 왜 그러한 생각이 자신을 그토록 사로잡고 있는지 한 번도 자문해보지 않았다. ‘해석의 단조로움’이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 혹은 아마도 ‘신비주의적’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자신의 또 다른 면으로부터의 도피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가 그러한 측면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는 결코 자신과의 일치에 이를 수 없었다. (285)

 

에로스와 권력충동은, 하나의 동인에서 비롯된 정신적인 힘으로, 음전기와 양전기처럼 경험적으로는 대극의 형태로 나타난다. (286)

 

사람들은 대부분 신성한 힘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데, 그러는 게 정상인 것이다. 왜냐하면 신성한 힘이란 어떤 면에서는 진실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성한 힘의 체험은 사람을 고양시키기도 하고 동시에 추락시키기도 한다. 프로이트가 성욕이 신성한 힘이며 그것은 일종의 신이면서 악마라는 심리학적인 진리를 좀 더 고려했다면, 생물학 개념의 한계에 갇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니체도 인간존재의 바탕을 좀 더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면, 감정의 과잉으로 세계의 가장자리 밖으로 나가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287)

 

마음의 진동 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287)

 

나는 진리탐구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개인적인 명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294)

 

전시에는 전시답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298)

 

인간의 원시적인 마음은 동물의 혼의 활동과 가까이 접하고 있다. (299)

 

나에게 꿈이란 자연의 일부로서 속이려는 의도를 품고 있지 않았다. 식물이 가능한 자라나려 하고 동물이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꿈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우리 자신이 근시안이어서 스스로를 속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귀가 먹었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이지 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은 아니다. (300)

 

나는 여전히 프로이트를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그에게 비판적이었다. 이런 분열된 태도는 내가 아직도 그 사태를 의식하지 못하고 어떤 성찰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모든 투사의 특징이다. (303)

 

마음을 탐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정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 외에 다른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307)

 

분석이 그들에게 뭔가 보다 나은 다른 것을 깨우쳐주지 못한다면, 그리고 이론 그 자체로 그들을 묶어놓고 단지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결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며 유치한 것들을 버리라고 한다면, 어떻게 그들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정말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의지하여 설 수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어떤 삶의 방식도 그것이 다른 것으로 교환되지 않는 한 버릴 수 없다. (308)

 

완전히 이성적인 삶의 영위란 경험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대개는 불가능하다. (308)

 

프로이트가 이론과 방법을 동일시하고 그것들을 교리화하려는 의도를 밝혔을 때 나는 더 이상 그와 협력할 수 없었다. (309)

 

나는 여기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것과 나의 확신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희생’장이 나 자신의 희생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통찰로 나는 다시 집필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나의 견해를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상했지만 말이다. (310)

 

프로이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아마도 신경증 환자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들의 독특한 개인적인 심리를 파고들어간 데 있을 것이다. 그는 환자의 사례가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개별적인 환자의 심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말하자면 환자의 눈으로 관찰했으며, 그 결과 병에 대하여 그때까지 가능했던 것보다 한층 더 깊은 이해에 도달했다. (311)

 

그가 우리 문화에 준 충격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꿈을 무의식과정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잃어버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 가치를 과거와 망각으로부터 되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무의식적 정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311)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는 불확실한 길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위험한 실험이나 수상한 모험으로까지 여겨진다. 외람되게도 저 문을 열어 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 문을. (312)

 

내 안의 여인 아니마

나는 단지 질문만을 던졌다. “그것과 관련하여 당신에게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당신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여깁니까?”“그것은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의 질문이었다. (315)

 

‘너는 이제 신화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졌다. 그리고 무의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 내 안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있었다. “무엇 때문에 모든 문을 열려고 하는가?” 그러자 갑자기 내가 무엇을 이뤄왔는지 의문이 생겼다. (316)

 

그러면 무엇이 너의 신화인가? 너는 어떤 신화속에 살고 있는가? (317)

 

뭔가 죽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아직도 살아 있다고 느껴지는 그런 환상이었다. (318)

 

“이토록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둬보자.” 그리하여 나 자신을 의식적으로 무의식의 충동에 맡겨버렸다. (320)

 

“아하! 여기에 삶이 있구나! 그 작은 아이는 여전히 여기에 있고, 내게 결여되어 있는 창조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성인이 된 남자와 열한 살 소년을 서로 이어준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그 시절과 다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돌아가 아이의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삶을 한번 더 살아보는 수 밖에 없었다. 이 순간이 내 운명의 전환점이었다. (321)

 

내 후반기 인생에서 장애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언제나 그림을 그리거나 돌을 다루었다. 그런 일은 늘 그 다음에 이어지는 생각과 일을 위한 통과의례였다. (322)

 

내 안에 마력 같은 힘이 있어, 내가 환상에서 겪은 것의 의미를 찾지 않으면 안 되도록 처음부터 나를 붙들어주었다. 내가 노도와 같은 무의식의 엄습을 견뎌냈을 때, 보다 높은 의지에 순종하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고, 그러한 느낌은 나의 과제를 수행하는 데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325)

 

나는 자주 흥분되어 내 감정을 요가로 제어해야만 했다. 요가는 내가 안정되어 무의식과 더불어 다시 작업을 시도할 수 있을 때까지만 했다. 나 자신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을 갖자마자 나는 감정제어를 풀고 환상의 이미지와 내부의 소리가 새롭게 말하도록 했다. (325)

 

감정을 이미지로 바꾸는 그 만큼, 다시 말해 감정 속에 숨어 있는 이미지들을 발견하는 그만큼 내적인 안정이 생겼다. 만일 내가 감정에 나 자신을 내맡겼더라면 무의식의 내용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326)

 

나의 실험을 통해 나는 감정 배후에 숨은 이미지를 의식화시키는 것이 치료의 관점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았다. (326)

 

처음에 나는 환상을 내가 지각한 대로 ‘장중한 언어’로 꾸미기 일쑤였다. 그것이 원형의 양식에 어울리기 때문이었다. 원형은 열정적으로 말하고 심지어 과장하기까지 한다. 그런 언어양식은 나를 당황하게 하고 기분을 언짢게 했다. 마치 누가 못을 석고벽을 긁어대고 칼로 접시를 긁는 것처럼 말이다. (326)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환상을 붙잡기 위해서는, 이를테면 나 자신을 그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해야만 했다. 거기에 대해 나는 저항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무척 불안하기도 했다. 자기 제어력을 잃어버리고 무의식의 제물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나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신과의사로서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미지들을 내 것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감행해야만 했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 이미지들이 나를 자기들 것으로 삼았을 위험성이 있었다. 내가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한 가지 중요한 동기는 내가 감히 스스로 행할 수 없는 것을 나의 환자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는 확신이었다. (328)

 

이 비가 범행의 흔적을 지워줄 것을 알고 있었다. 들킬 위험은 없어졌고 삶은 다시 계속될 수 있었지만, 참기 힘든 가책이 마음에 남았다. (331)

 

살로메는 하나의 아니마 형상이다. 그녀는 사물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님이다. 엘리야는 지혜로운 노인 예언자의 모습으로 인식의 요소를 나타내지만, 살로메는 애욕의 요소를 나타내고 있다. 두 형상은 로고스와 에로스의 화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너무 지적이다. 그 형상은 원래 나에게 보인 그대로, 다시 말해 무의식의 배후에서 전개된 과정으로 놔두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이다. (334)

 

필레몬과 또 다른 환상의 형상들을 통해 나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지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지닌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필레몬은 내가 아닌 다른 힘을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환상 속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었고, 그는 내가 의식에서 생각하지 않은 것들을 말했다.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그라는 것을 정확히 지각했다. (336)

 

나와 내 사고 객체 사이에 있는 차이가 분명해졌다. 그는 이를테면 객관적인 태도로 나를 대했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고 내 생각이 아닌 것들을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내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것은 심지어 나에게 적대적일 수 있는 것들까지도 말할 수 있었다. (336)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구루로 삼지만, 늘 영혼을 구루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는 나를 위로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통찰을 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결코 인간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가 아니었다. (338)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다르게 맺으려고 시도하여 내 환상의 기록을 그녀를 향한 나의 편지라고 간주했다. (340)

 

우리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고 마음만 먹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적어놓은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341)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라. 그러면 받으리라. (341)

 

나는 차츰 내 생각과 그 소리의 내용을 구별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예를 들어, 그녀가 내가 쓰는 글에 진부한 내용을 삽입하려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맞아요.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느꼈소. 그러나 나는 죽을 때까지 거기에 매여 있을 의무는 없어요. 무엇 때문에 그 따위 굴욕을 당한단 말이오? (341)

 

아니마의 말은 대개 유혹하는 힘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교활함을 지니고 있다. (342)

 

무의식의 대변자인 아니마는 그 변덕스러운 이중성으로 한 남자를 형편없이 파멸시킬 수도 있다. 결정적인 것은 결국 언제나 의식이다. 의식이 무의식의 표현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자기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342)

 

10년 동안 나는 기분이 언짢고 안정을 잃었다고 느끼면 늘 아니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면 무의식에 무언가 배열이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아니마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또 무엇을 하려는 거요?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소? 나는 그것을 알았으면 하오!” 조금 저항을 하고 나서 그녀는 자신이 본 이미지를 항상 도출해냈다. 그 이미지가 나타나면 불안이나 우울은 사라졌다. 내 감정의 에너지 전체는 그 이미지 내용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면 나는 그 이미지들에 관해 아니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꿈을 이해하듯 그 이미지를 가능한 한 잘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343)

 

나는 그 이미지들의 의미를 나의 꿈을 통해 직접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중개자가 필요하지 않다. (343)

 

많은 환상이 든든한 토대를 필요로 한다는 것과 내가 우선 인간적인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현실이란 과학적인 이해를 의미했다. 무의식이 내게 가져다 준 통찰을 통해 나는 구체적인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인생과제의 요점이 되었다. (344)

 

삶을 대체할 만한 완전한 언어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언어가 삶을 대체하려고 시도한다면 언어뿐 아니라 삶도 망가지고 말 것이다. (345)

 

무의식의 전제의 횡포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적인 작업을 완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윤리적 의무를 갖는 것이다. (345)

 

정신병 환자를 치명적인 혼란에 빠뜨리는 무의식 이미지의 세계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합리적인 우리시대에 사라져버린 신화를 형성하는 환상의 모태이기도 하다. 신화적 환상은 도처에 존재하지만 그것은 금지되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345)

 

환상에 관한 작업을 하던 바로 그 무렵, 나는 ‘이승’에 발판이 필요했다. 그것은 가족이며 직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낯선 내면세계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대극,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었다. 가족과 직업은 내가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기반으로 남아 있었고, 그것은 내가 실제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임을 증명했다. (346)

 

내가 체험한 모든 것은 나의 실제적인 삶과 연결됨을 나는 알고 있었고 삶의 의미를 폭넓게 채우고자 노력했다. 나의 좌우명은 ‘도전에 맞서 싸워라!’였다. (347)

 

나의 가족과 직업은 다행스럽게도 늘 현실감을 잃지 않게 했으며, 내가 정상인으로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증해 주었다. (347)

 

“적합하면 그것은 나타난다!” 지적인 측면에서는 물론 거기에 대해 자연과학적 인식을 장황하게 떠벌릴 것이고, 심지어 그 모든 체험을 변칙적인 것이라 하여 지워버릴 것이다. 변칙이 없는 세계는 얼마나 암울한 것인가! (349)

 

 이로써 내가 나 자신에게만 속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내 인생은 보편성에 속하게 되었다. 나는 원초적인 체험을 스스로 겪어야 했고, 더 나아가 내가 체험한 것을 현실의 토대 위에 세우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350)

 

나는 영혼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기로 했다. 나는 그것을 사랑하면서 미워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아주 귀중한 보배였다. 내가 그 영혼의 말을 받아 쓴 것은 내 존재가 비교적 전체성을 지니고 살아가면서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351)

 

인생 후반기에 내가 이루어 놓은 것도 모두 초기의 체험 속에 이미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감정이나 이미지의 형태로 있었지만 말이다. (351)

 

나의 학문은 나를 혼돈상태에서 건져낼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며 수단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환상의 자료가 가시덩굴이나 쇠사슬처럼 나를 얽어 매었을 것이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이미지와 그 내용을 일일이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정리하고, 무엇보다 삶 속에서 그것을 인식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351)

 

이미지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지식으로 이미지를 멈추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위험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자신의 인식을 윤리적 의미로 바라보지 않는 자는 권력원리에 빠지게 된다. 이로써 파괴적인 작용이 일어나 다른 사람뿐 아니라 이미지를 알고 있는 그 사람 자신도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무의식의 이미지는 인간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안겨준다. 그것에 대한 몰이해와 윤리적 의무의 결핍으로 많은 개인이 전체성을 상실하고 분열적 성질로 변해 고통을 당하게 된다. (352)

 

뭔가 엄청난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충만이 채울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 나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353)

 

내가 대학교수가 되든 안 되든 그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교수직을 버린다는 것은 물론 괴로운 일이었다. 숙명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까지 있었다. 나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점을 여러 면에서 후회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감정은 지나가는 것이었고, 실은 하찮은 것이었다. 이에 반해 다른 것이 중요한 법이다.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이런 일은 내가 학문적 출세를 포기했을 때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늘 겪어왔다. (353)

 

내가 심적 체험의 내용이 ‘진실’이며 그것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집단적 체험으로서도 진실이라는 사실을 남에게 제시해줄 수만 있다면, 바깥세계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처음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일이야말로 가장 철저한 노력을 요할 것이었다. (354)

 

그 모든 것, 내가 걸어온 모든 길, 나의 모든 발걸음이 하나의 점, 즉 중심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다라가 중심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것은 모든 길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중심을 향한 길, 즉 개성화의 길이다. (357)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 ‘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직선적 발달은 없고 다만 자기를 중심으로 한 순환이 있을 뿐이었다..자기의 표현인 만다라로 인하여 나로서는 궁극적인 것에 이르렀음을 알았다. (357)

 

내 동반자들은 지독한 날씨를 탓하기만 했지 그 나무는 아마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나는 꽃이 핀 나무와 햇빛에 빛나는 섬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는 그가 왜 여기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알겠다.’ 그러고는 잠에서 깨어났다 (359)

 

나는 그 꿈속에 삶의 목표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중앙이 그 목표다. 누구도 중앙을 넘어서 갈 수 없다. 그 꿈에서 나는 ‘자기’가 방향성과 의미의 원리이며 그것들의 원형임을 이해했다. 그 안에 치유의 기능이 들어있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나는 내 신화에 대한 예감을 처음으로 가졌다. (360)

 

내가 그 무렵 체험하여 기록한 것을 과학적 작업의 그릇 속에서 추출해내기까지 따지고 보면 45년이나 걸렸다. 젊은이로서 나의 목표는 학문에서 뭔가를 성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그 용암의 흐름을 만났고, 그 불길의 열정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361)

 

나의 작업은 그 뜨거운 물질을 우리 시대의 세계관에 접목시키는 일이었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성공한 시도였다. 그 최초의 환상과 꿈은 불에 녹아 흐르는 현무암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단단해져 돌이 되었고, 나는 그 돌을 다듬을 수 있었다. (361)

 

 

연금술을 발견하다.

나는 내적 체험에 관해 역사에서 예시의 증거를 찾아야만 했다. 다시 말해 나는 “나의 가설이 역사 속에서 어디에 나타나는가?”하는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365)

 

연금술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상징의 하나는 물질의 변환이 완성되는 그릇이었다. 나의 심리학적 발견의 핵심도 이와 같은 내면의 변환과정, 즉 개성화였다. (367)

 

나의 생애는 하나의 과제, 하나의 목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것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 인격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과제요 목표였다. (374)

 

나는 그 모든 경험을 객관적으로 보고 거기에 관해 사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 나 자신에게 던진 첫 질문은 ‘무의식과 더불어 무엇을 하는가’였다. 거기에 대한 회답으로 저술된 것이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였다. (374)

 

심리학도 일차적으로 에너지를 취급한다. 말하자면 강도의 측정, 양의 많고 적음을 다룬다. (376)

 

나는 무의식이 변환하기도 하고 변환을 야기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금술을 배워서 알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무의식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무의식 내용에 대한 자아의 관계에 의해 정신의 변환과 발달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77)

 

목수의 아들 ‘예수’가 복음을 전파하고 세상의 구주가 된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는 것은 심각한 오해일 것이다. 그는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그 시대의 기대를 그토록 완벽하게 표현하고 기술할 수 있을 만큼 비범한 재능을 지닌 인격의 소유자였음에 틀림없다. 인간 예수 이외의 그 누구도 그와 같은 메시지의 소유자가 될 수 없었다. (382)

 

그리스도에 의해 제시되고 예고된 고통을 죽을 때까지 문자 그대로 체험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결과라고는 뚜렷하게 의식하지 못했다. (387)

 

맹목적인 수용은 결코 해답을 주지 못한다. 기껏해야 답보상태로 있게 할 뿐이며, 그로 인해 다음 세대가 심각한 부담을 안게 된다. (388)

 

나의 저술들은 내 생애의 정류장들이라 여겨질 만하다. 그것들은 나의 내적 발달의 표현이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애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397)

 

나의 모든 저술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로 이루어졌다. 내가 쓴 것은 내부로부터 나에게 엄습해온 것들이다. 나는 나를 충동질하는 영혼으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허용했다. (397)

 

,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사색하고 환상에 몰두하는 은신처였는데, 대개 환상은 매우 불쾌한 것들이었고 사색은 고통스러웠다. 그곳은 영적 집중의 장소였다. (403)

 

아내가 죽은 후에 나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내적 의무를 느꼈다. (403)

 

탑은 나에게 성숙의 장소였다. , 그 안에서 내가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로 다시 존재할 수 있는 자궁, 모성적 이미지의 장소였다. (404)

 

바보들로부터 무시당할수록 현자들로부터는 더욱 사랑을 받는다네. (406)

 

우리가 내적 감각으로 지각하거나 예감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외부의 현실과 자주 상응하게 되는 것을 동시성현상이라고 한다. (413)

 

나는 미래가 장기적 전망으로 미리 무의식적으로 준비되며, 그리하여 투시력을 가진 사람은 훨씬 이전부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아맞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419)

 

둘로 나뉘어 있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텔레스가 합해져 나 자신 속으로 들어와 하나의 사람이 되었고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420)

 

사람들은 모든 좋은 것이 나쁜 것들의 대가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421)

 

여행

다른 종족이 살고 다른 역사적 전통과 세계관이 군중의 얼굴에 각인되어 있는 곳 말이다. 나는 유럽인들을 한번 외부에서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어느 모로 보나 생소한 환경속에서 유럽을 보고 싶었다. (427)

 

나는 늘 동시에 두 개의 영역에서 사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하나는 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싶으나 할 수 없었고, 또 하나는 무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꿈의 형태 이외로는 더 잘 표현할 길이 없었다. (434)

 

사실은 천사가 내 속에 살고 있었다. 천사는 오직 ‘천사의’ 진실만을 이해할 뿐 인간의 진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천사가 나의 적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결국 내가 그를 주관하게 된다. 꿈의 두 번째 부분에서 나는 성채의 주인이 되고 천사는 내 발 밑에 앉아 나의 생각을 배워 알아야만 하고 그것을 통해 인간을 이해해야만 한다. (436)

 

그 역사적 층은 우리가 이제 겨우 극복했거나 최소한 극복했다고 믿고 있는 그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빠져 나왔다고 착각하는 어린 시절의 낙원과 같아서 아주 작은 자극으로도 또다시 무너져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발전에 대한 맹신은 그것이 우리의 의식을 과거로부터 멀리 떼어놓을수록 더욱더 유치한 미래의 꿈에 매달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436)

 

우리는 그것을 의식 속에 붙잡고,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 것인가, 잊혀진 것을 회복할 것인가, 두 가지 가능성을 두고 따져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잊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그것이 충분한 이유 없이 다시 그러한 발언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439)

 

살아있는 정신구조에서는 단순히 기계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관리되며 전체와의 관계성 속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특정한 목적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의식은 전체에 대한 조망이 없으므로 대개 이러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사실확인으로 그쳐야 하며, ‘자기의 그림자’와의 충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회답은 앞으로 진전되는 미래의 연구에 맡겨두어야 할 것이다. (440)

 

밖에서 본다는 것은 다른 국가의 관점에서 본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집단정신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습득 해야 하는데, 이러한 동화과정에서 국가적 편견과 고유한 특성들로부터 연유한 온갖 부담되는 것들과 마주치게 된다. (441)

 

우리가 이것을 우리 자신의 삶의 근거, 즉 우리의 이성이 짜내는 인생의 의미와 비교한다면, 우리의 것이 얼마나 빈약한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51)

 

지식은 우리를 성숙하게 해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이전에 살던 신화적인 세계에서 더욱 멀리 떨어지게 한다. (451)

 

비록 무의식적인 암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과 우리’라는 이러한 동등한 관계가 인디언들의 저 부러워할 만한 의젓함의 근거가 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한 인간은 문자 그대로, 참으로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이다. (452)

 

의식의 우주적 의미가 더한층 분명해졌다. 연금술에서는 “자연이 불완전하게 둔 것을 예술이 완전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인간인 내가 보이지 않게 창조행위를 하고 있는 그 세계를 비로소 객관적 실재로 완성되도록 해주었다. (457)

 

나는 그녀의 행동거지에서 우러나는 확신과 자부심이 거의 대부분 그녀의 분명한 전체성과의 동일시에 근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전체성은 아이, , 작은 가축, 삼바,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나머지 요소인 그녀의 매력적인 몸매로 이루어져 있었다. (469)

 

나와 나의 여행 동반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깊은 고통을 동시에 지닌 아프리카 원시세계를 문이 닫히기 전에 체험하는 행운을 누렸다. 우리의 야영지 생활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중 하나였다. (470)

 

내가 성자들로부터 배우고 그들의 진리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나에게 도둑질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들의 지혜는 그들에 속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만이 나에게 속할 뿐이다. (489)

 

그들에게 선과 악은 의미상으로 본성에 포함되어 있어서 사실은 유사한 것으로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490)

인도인의 목적은 도덕적 완전성이 아니라 니르드반드바 상태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연으로 해방시키고자 했다. (490)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대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내가 참여하지 않고 물러서면 거기에 해당하는 영혼의 부분을 그만큼 절단하는 셈이 된다. (491)

 

자신의 열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면 열정은 집 가까이 있게 되고 그가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불길을 일으켜 바로 그의 집을 덮칠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포기하고 내버려두고 겉으로 잊어버린 체하고 있을 경우, 그 포기한 것과 내버려둔 것이 두 배의 힘으로 되돌아올 가능성과 위험이 상존한다. (491)

 

그리스도 역시 부처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구현자다. 둘 다 세상을 극복한 자들이다. 부처는 이성적 통찰로써, 그리스도는 숙명적인 희생으로써 그 일을 이루었다. (496)

 

그리스도는 모든 기독교인 안에 완전한 인격체로 살아 있는 모범상이다. 그러나 역사적 발전은 ‘그리스도 모방’으로 이어져, 개인이 전체성에 이르기 위해 자기 고유의 숙명적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간 길을 본받아 따라가려고 한다. (496)

 

낮이 잊어버린 신화를 밤이 계속 이야기하고, 의식이 평범하게 만들어버리고 우스꽝스럽고 하찮은 것으로 축소시켜버린 그 거대한 모습들을 시인이 다시금 일깨우고 선견지명으로 살려낸다. (500)

 

남자의 아니마는 현저히 역사적인 성격을 띤다. 아니마는 무의식의 인격화로 역사와 선사에 깊이 물들어 있다. 아니마는 과거의 것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성이 그의 선사에 관해 알아야 할 것들을 남성 속에서 대신 보충해주고 있다. (507)

 

사람들이 이미 있던 무의식 내용을 의식에 통합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아마도 말로 표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단지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논의할 필요가 없는 주관적인 사건이다. 나는 나 자신을 어떤 일정한 양식과 방식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하나의 사실이며, 그 사실을 의심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합당하지도 않다. (508)

 

통합으로써 변화가 일어났는지, 어떤 종류의 변화인지는 주관적 확신에 속하는 문제다. 이런 것들은 학문적으로는 인정될 만한 사실을 기술하지 않고, 그럼으로써 영락없이 ‘공인된 세계상’에서 탈락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중요하고 성과가 큰 사실들인 것이다. (508)

 

우리가 무의식에 대한 이론을 확립하기 전에 무의식과 관련하여 더 많은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509)

 

가는 데마다 그곳을 지배했던 정신에 마음 깊은 곳에서 충격을 받을 때, 그리고 거기 있는 성벽 잔해와 둥근 기둥 하나가 내 눈에 이제 막 새롭게 인식 될 때 문제는 달라지는 법이다. 이미 폼페이에서 예기치 못한 사물들이 인식되었고 내 능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물음이 제기되었다. (510)

 

 

환상들

나는 말하자면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 나는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었다. 처음에는 말살되고 빼앗기거나 약탈당했다는 느낌이 지배적이기도 했으나, 한 순간 그런 느낌도 스러지고 말았다. 모든 것이 지나간 듯이 여겨졌다. 하나의 기정사실만 남았다. 이전의 일들과 다시 어떤 연관도 맺지 않고 말이다. 어떤 것이 떨어져나갔다거나 빼앗겼다는 아쉬움은 이제 없었다. 그와 반대로 나는 나라고 하는 모든 것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오직 그것만을 가지고 있었다. (516)

 

나 자신 또는 나의 인생이 어떤 것과 역사적으로 관련되어 있는가를 이해하게 되리라 또한 확신했다. 나는 무엇이 내 이전에 있었고 왜 내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내 인생이 어디로 계속 흘러갈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517)

 

나는 우주공간을 떠다니며 우주의 성 안에서 보호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대한 허공이지만 가능한 모든 행복감으로 충만했다. 그것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원한 지복이었다 . (521)

 

환상을 보는 동안 느끼게 되는 아름다움과 감동의 강도는 사람들이 결코 표현해낼 수 없을 것이다.  (523)

 

'인생‘이란 그것을 위해 이미 마련된 삼차원의 세계체제 안에서 전개되는 존재의 한 단면일 뿐. (524)

 

내가 그 꿈과 환상에서 체험한 객관성은 완성된 개성화에 속한다. 그것은 가치평가라든가 우리가 감정적인 유대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감정적인 유대는 대체로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도 투사를 포함하고 있는데, 자기 자신에 되고 객관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 투사를 회수할 필요가 있다. 감정적인 관계는 강요와 예속으로 부담을 주는 열망의 관계다. (526)

 

나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려고 애쓰지 않고 생각의 흐름에 나를 맡겼다. 그리하여 문제들이 하나하나 차례로 나에게 다가와 무르익으면서 형상화되었다. (527)

 

사람이 개성화의 길을 가는 중에, 즉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과오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원만해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과오나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사람들은 아마도 안전한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죽은 자의 길일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어떻든 그건 바른 길이 아니다. 안전한 길을 가는 자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 (527)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자아는 굴복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참아내며 진리를 견디며 세계와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패배에서도 승리를 체험하게 된다. 밖에서든 안에서든 아무것에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 자신의 고유한 연속성이 인생과 시간의 흐름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숙명의 의도를 주제넘게 간섭하지 않을 경우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법이다. (528)

 

사후의 삶에 관하여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치가 있고 치유를 가져오는 법이다. (533)

 

우리는 타고난 구조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고, 그리하여 우리의 존재와 사고로써 이 세계와 관련을 맺는다. 신화적인 인간은 ‘그 너머로 나가기’를 갈망하지만 학문적인 책임을 고려하는 인간은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이성의 차원에서는 ‘신화화’야 말로 쓸모 없는 사변일 뿐이다. 하지만 감정의 차원에서는 치유를 가져오는 활동력이며 인간존재에 광채를 부여한다. 그 광채를 사람들은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533)

 

우리는 대부분 무의식의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문제에 관한 해답은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535)

 

인간은 사후의 생에 관해 견해를 짜내거나 묘사하는 데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일은 자신의 무능함을 시인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뭔가를 잃어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그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은 태고로부터 내려오는 인류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원형으로서 우리 인생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덧붙여야 마땅한 신비로 가득한 삶이다. (536)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과대평가된 이성은, 그것이 지배하면 개인이 궁핍해진다는 면에서 독재국가와 공통점을 지나고 있다.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줄 수 있다. 동시성 현상과 예언적인 꿈, 예감 들을 생각해보라! (536)

 

신화는 과학의 맨 처음 형태다. (539)

 

완전한 세계상은 이를테면 다른 차원으로 확대되어야 할지 모른다. 그래야 비로소 현상의 전체성이 일관성 있게 설명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합리주의자들은 심령심리학적인 경험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세계관이 유지되느냐 무너지느냐가 여기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540)

 

죽은 자들은 모두 죽음 직후에 그들 인생의 종합적인 경험을 보고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541)

 

무의식의 형상들도 ‘정보를 잘 받지 못한다’. 그래서 ‘앎’에 이르기 위해서는 의식과의 접촉이나 인간을 필요로 한다. (543)

 

그 질문은 말하자면 나의 정신적인 선조로부터 나에게 제시된 셈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시대에 경험할 수 없었던 것들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다. (545)

 

인간 본성에 제한 없는 지식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적절한 시간의 상황에서만 의식에 의해 파악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짐작된다. 그는 아마 여러 해 동안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을 품고 지내다가 나중 어떤 순간에 그것이 참으로 깨달아 질 것이다. (545)

 

많은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 자기 자신의 가능성에 미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생존 시에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생전에 습득하지 못한 의식적 부분을 죽음에서 얻으려고 요구하게 된다 (547)

 

수학이 경험을 뛰어넘어 관계에 관한 표현을 만들어내는 것을 꺼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 표상들을 논리적인 원리에 따라 경험적인 자료들, 예컨대 꿈의 진술을 근거로 그려내는 일은 훈련된 상상의 본질에 속한다. (549)

 

신화는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는, 의식적 인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간단계다. 무의식이 의식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그것은 특별한 종류의 앎으로 영원 속의 앎, 대개 ‘지금 여기’와 관계가 없고 우리의 지적인 언어도 고려하지 않는 앎이다. 오직 우리가 무의식으로 하여금 스스로 확충하여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때에만, 앞에서 수를 예로 들어 제시했듯이 그것이 우리 이해의 범위 안에 들어오게 되고 새로운 측면이 우리에게 지각된다. 이러한 과정은 성공적인 꿈 분석이 이루어질 적마다 확실한 방법으로 항상 반복된다. 그러므로 꿈의 진술과 관련하여 교조적인 선입견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해석의 획일화’가 눈에 띄는 즉시 우리는 그 해석이 교조적이며 따라서 비생산적임을 알게 된다. (552)

 

신화적 상상에서 중간세계가 없다면 정신은 교조주의에 갇혀 경직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반대로 신화적인 내용을 고려하는 것이 피 암시적인 약한 마음의 소유자들에게는 예감을 인식으로 여기고 환상을 실체화할 위험이 있다. (558)

 

부처는 제자들이 니다나(인연)사슬을 명상하는 것, 다시 말해 출생, , 늙음과 죽음, 고통스러운 사건들의 원인과 작용에 대해 명상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욱 유익하리라고 여겼다. (561)

 

나의 존재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562)

 

노년에 인간은 그의 내면의 눈으로 추억들을 펼쳐보며 과거의 내적․외적 이미지들 속에서 자신을 생각하면서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마치 저승 전 단계거나 거기서 존재하기 위한 준비와도 같으며, 플라톤의 견해에 따르면 철학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과도 같다. (565)

 

카르마가 남아 있어 마무리를 해야 한다면 혼령은 다시 돌아오고 싶은 욕구에 따지고 도로 삶을 취하게 된다. 심지어 무엇인가 더 완성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567)

 

무엇보다도 어떤 원인으로 내가 태어나게 되었는지 이해하려는 격렬한 충동이 있었을 것이다. 이 충동은 내 본질의 무척 확고한 요소다. 이와 같이 이해에 굶주린 본능은 무엇이 일어났으며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식하기 위해, 또한 그것을 넘어서 인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적은 암시에서 신화적 표상을 찾아내기 위해, 이를테면 의식을 만든 것이다. (567)

 

‘아, 그렇구나. 그 사람이 나를 명상하고 있었구나.’ 그가 하나의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나다. (570)

 

‘다른 쪽’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의 무의식적 존재가 참다운 것이며 우리의 의식세계는 일종의 환각이거나 일정한 목적을 위해 세워진 하나의 가상적 현실임을 가리키고 있다. (571)

 

인간의 과제는 이를테면 그것과는 정반대로, 무의식에서 밀려오는 것에 관해서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거나 동일시하지 않고 그것을 의식화하는 것이다..인간실존의 유일한 의미는 존재 그 자체의 어둠 속에 빛을 밝히는 것이다. (574)

 

만년의 사상

본능이 우리를 긴급히 도와주고 신이 신에 맞서 우리를 지지해주리라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575)

 

어둠에서 해방된 자의 눈으로 볼 때, 창조주는 그의 어두운 특성을 벗어버리고 최고의 선이 되었다. (578)

 

우리는 하나의 방향설정, 즉 일종의 메타노이아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악과 접하게 되면 거기에 빠져들 긴박한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악에 더 이상 ‘빠져들어서는’ 안 되며 선에도 빠져서는 안 된다. 이른바 사람들이 빠져버리면 . 선은 도덕적인 성질을 잃게 된다. 그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에 빠져버렸으므로 그것이 나쁜 결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중독 대상이 알코올이든 아편이든 또는 이상주의든 그 어떤 형태의 중독이든 똑같이 악에서 나온다. 우리는 선악의 대극에 더 이상 이끌려서는 안 된다. (580)

 

오늘날 제기된 악의 문제에 대해 해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철저한 자기인식, 즉 자신의 전체성에 대한 최선의 인식을 필요로 한다. 그는 자신이 얼마만큼 선을 행할 수 있으며 어떤 파렴치한 행위를 할 수 있는지 냉철하게 알고 있어야 하며, 전자를 사실로 여기거나 후자를 착각으로 여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두 가지 다 가능성으로서는 진실이다. 사람이 원래 그래야 하듯이, 자기기만과 자기착각에 빠지지 않고 살고자 한다면 전자나 후자를 완전히 모면할 수는 없다. (582)

 

정말 참다운 진실은 우리가 악의 상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악의 상상이 우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583)

 

대극이 ‘그 본성상’ 상징을 통하여 더 이상 각기 분리되어 다른 방향으로 나가거나 다투지 않고 서로 보완하여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한 자에게는 자연 및 창조신의 표상에 내포되어 있는 양가성이 아무런 어려움도 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594)

 

마음의 통합성, 즉 의식과 무의식의 협력이 이루어지게 하는 근원인 그러한 관념을 가진다면 신화적 진술에 대한 욕구는 충족되는 셈이다 . 무의미는 생의 충만을 방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질병을 뜻한다. 의미는 많은 것을, 거의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도록 해 준다. (597)

 

처음에는 모든 것이 그에게로 밀려들고 그에게 일어나며 그를 덮친다. 그러다가 힘들게 노력한 끝에 간신히 그는 자신을 위하여 비교적 자유로운 영역을 획득하고 이를 지켜나가는 데 성공한다 . (599)

 

공동의 비밀은 결속을 위한 시멘트 역할을 해준다. (600)

 

비밀결사는 개성화에 이르는 중간단계다. 사람들은 자신을 분화시키는 일을 아직은 집단적인 조직에 맡기고 있다.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어 자기 자신의 발로 서는 것이 개인의 고유한 과제임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601)

 

개인 역시 외로운 오솔길에서 어떤 이유로도 누설해서는 안 되고 누설할 수도 없는 비밀을 필요로 한다. 이런 종류의 비밀은 그로 하여금 개인적인 계획 속에 고립되기를 강요한다. 참으로 많은 개인이 이러한 고립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들은 보통 개인적인 목표를 집단적 동화의 필요성 때문에 희생시키며, 그러기 위해 주변의 온갖 견해와 확신, 이상들을 부추긴다. (603)

 

동시에 두 가지 다하려는 사람, 즉 개인적인 목표를 따르면서도 집단성에 보조를 맞추려는 자는 누구나 신경증적인 사람이 된다. (604)

 

사람들이 이러한 에너지를 탈환하거나 소유하고자 시도하며 심지어 그것을 차지했다고 착각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그 에너지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 역행적 투사로써 자아팽창이 초래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무의식적 정신의 존재를 인정하면, 투사 내용들은 의식에 선행하는 타고난 본능적 형태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럼으로써 그것들의 객관성과 자율성이 유지되고 자아팽창을 피할 수 있다. (608)

 

어떤 의식적인 의지도 생의 충동을 오랫동안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충동은 내부로부터 일종의 당위나 의지 또는 명령으로 다가온다. (610)

 

에로스의 영역에서는 합리적인 이해와 표현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618

 

사랑은 그의 빛이며 그의 어둠이며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다. 그가 “천사의 혀로 말할지라도” 또는 과학적인 정밀성으로 세포의 생명을 가장 깊은 바탕까지 주의 깊게 관찰한다고 하더라도 “사랑은 결코 그치지 않는다”. 그는 사랑에다 온갖 이름을 마음대로 갖다 붙일 수 있겠지만 그는 단지 끝없는 자기기만에 빠질 뿐이다. 그가 한줌의 지혜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며 未知를 미지라고, 즉 신의 이름으로 명명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열등함, 불완전성, 그리고 의존성을 시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진실과 오류 사이에서 선택의 자유를 증언하는 것이다. (620)

 

회고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나의 차이점은, ‘칸막이벽’들이 투명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고유한 특성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벽들이 너무 두꺼워서 그 뒤를 보지 못하므로 거기에는 전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 정도 그 배후의 과정을 인지하는 편이어서 내적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624)

 

나로 하여금 삶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아마도 무의식 그 자체일 것이다. (624)

 

소년이었을 때 나는 외로움을 느꼈는데 지금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대부분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624)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거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624)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되면 그는 고독해진다. 하지만 고독은 반드시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개성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지 않는 곳에서만 만개하게 된다. (625)

 

나는 많은 사람에 대해 강렬한 관심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들을 간파하고 나서는 즉시 마력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많은 적을 만들었다. (626)

 

나는 사람들을 다른 사람보다도 더 많이 필요로 하고 동시에 훨씬 덜 필요로 한다고 말이다. (627)

 

내가 그런 어리석음을 갖지 않았더라면 나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629)

 

인생은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630)

내가 나 자신에 관해 불확실해질수록 온갖 사물과의 친화성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그렇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놓았던 저 생소함이 나의 내면세계로 옮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낯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630)

 

편집자의 말

내 생애의 가치가 어떤가 스스로 질문해 본다면, 몇 세기의 사상을 놓고 나 자신을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사고방식으로 평가한다면 내 생애는 아무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643)

 

 

3. 내가 저자라면

깊은 웅덩이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빠져 나온 느낌이다. 웅덩이 속의 담긴 것들이 나의 온몸을 적시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융의 사상과 생애의 정수가 담긴 자서전인 <기억, 꿈 사상>은 이 분야에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전문적인 용어, 개념, 철학 사이를 온전히 헤쳐나가는 것이 대단히 버거웠음을 고백하고 싶다.

 

융은 이 책 전편에 걸쳐 자신과 다른 많은 이들의 꿈과 환상을 분석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가 자아에게 보내는 신호들을 포착하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놀라울 따름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생각이라는 세계 속에서 살게 되면 '창조하는 생각'으로서의 이런 신기원을 보여 줄 수 있는가 경이로울 따름이다. 과거의 생각, 과거의 지식으로부터 자기의 것이라 불릴 수 있는 사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이토록 긴 세월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 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조급과 성급함을 드러내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는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나마 알고 있는 것 조차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물음표를 붙인다. 내가 나의 자서전을 쓰려면 나에 대한 생각과 느낌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이제서야 이르지 않은 나이에 나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자기 삶의 연구자  / 박노해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네

 

내가 나 자신을 연구하지 않으면

다른 자들이 나를 연구한다네

시장의 전문가와 지식장사꾼들이

나를 소비자로 시청자로 유권자로

내 꿈과 심리까지 연구해 써먹는다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네 

 

내 모든 행위가 CCTV에 찍히고

전자결제와 통신기록으로 체크되듯

내 가슴과 뇌에는 나를 연구하는

저들의 첨단 생체인식 센서가 박혀있어

내가 삶에서 한눈팔고 따라가는 순간

삶은 창백하게 빠져나가고 만다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최고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네 

 

최고의 삶의 기술은 언제나 

쁜 것에서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

복잡한 일을 단순하게 만들어내는 것 

 

삶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니라네

삶의 목적은 오직 삶 그 자체라네

지금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가 이토록 고통 받을 이유가 없다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최고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네

 

 

 

 

 

 

 

IP *.219.8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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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6.13 20:32:54 *.219.84.74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의 끝에 드는 생각들을 정리해서 달지 못했습니다.  
두번째 읽기에서 충실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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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6.14 16:59:43 *.219.84.74
고맙다. 경인
근육이 뭉쳐서 팔다리 움직이는 것이 수월하지 않은 것 처럼.
생각이 뻐근하다.

너도 마찬가지 였을텐데, 훌륭히 해냈더구나. 
지극히 너를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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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4 08:46:07 *.124.233.1
고생하셨어요 형!
저도 이번 리뷰에서 필사와 나의 생각을 많이 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2번 읽기에서 저도 충실히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려운 여건에서 고군분투 하시는 울 형님! 화이팅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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