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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1일 23시 51분 등록

1. ‘저자에 관하여’

러셀.jpg
                    핵무기 반대 시위에 나선 89세의 러셀(왼쪽)과 그의 아내.
                    러셀은 사회운동가의 모습으로 폭력과 분쟁 해결에 앞장섰고, 인간의 자유와 주체성 회복을 호소했다.

 지식을 향한 그의 열정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지식 탐구 뿐 아니라 사회주의자, 반전주의자라고 불릴 정도로 현실사회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1차세계대전 당시 평화주의자로 활동했고, 제2차세계대전 후에는 ‘러셀-아인슈타인 성명’을 내며 핵무기 반대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저서인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는 러셀이 98세를 일기로 작고하기 몇 주 전까지 검토했던 원고다. 마지막 순간까지 대중과의 소통을 고민했던 거장의 지적 정열과 인류를 항한 애정을 담았다. 러셀은 수학과 철학뿐 아니라 과학, 역사, 교육, 정치학 등의 분야에서 70권이상의 책을 출간하여 20세기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스스로를 무정부주의자, 회의적 무신론자로 자처하면서 학문에 집중되어있는 에너지를 정치적인 활동과 대중 계몽, 교육에 힘을 쏟으며 산업사회에서 인간의 노동에 대한 강한 비판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주체성 확립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소통할 공간을 폐쇄된 학문 공동체로 국한하지 않고, 자신의 중요한 업적을 포함하여 그가 지닌 확고한 신념과 세계관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고 글로 담아내어 관심을 지닌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에게서 천재의 오만함이나 귀족의 도도함은 결코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그의 삶이나 글이 경박하거나 얄팍한 것 역시 아니었다. 바로 그러한 점이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러셀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지성 중 한 사람으로 평가하게 해주는 것이며, 오늘날의 지식인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면모라고 하겠다. 진정한 학자가 지녀야 할 덕목인 학문적 진지함이 반드시 엄숙함일 필요는 없다. 러셀은 이미 100년 전에 자신의 학문적 신념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학자로서의 엄숙함이라는 옷을 벗어버렸다. 논리학과 수학기초론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저술이자 러셀의 주저 중 하나로 평가되는 <수학의 원리>의 방대한 원고를 집필하는 시기에도 그는 사회적 문제를 멀리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1928년에나 주어지는 여성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그는 1996년 여성참정권협회에 가입하여 이듬해 하원의원직에 첫 도전을 했다. 또한 논리적 방법론을 철학에 적용하여 인식론과 존재론 분야의 저작을 왕성하게 집필하던 1910년대 중반 전쟁이 터지자 그는 징집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5개월의 징역형을 살기도 했다.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 드러나는 “거짓과 더불어 제 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겠다.”는 러셀의 말에서 그가 진정으로 자신의 진실을 시대의 진실과 융합시키고자 책을 쓰고 몸소 행동하는 인간이 되기를 원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단호하게 여성의 참정권을 반대할 때, 왕실에서 하사 받은 대저택에서 살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고 탄압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강력하게 여성해방 운동의 선두에 나서서 진실과 더불어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각자의 내면의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예술가를 한명씩 가두어 놓고 있다. 부디 그 예술가가 환희와 행복의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그를 기꺼이 석방하기를!”

 그는 이미 자신의 예술가의 날개를 맘껏 펼친 상태의 환희를 몸소 체험 했기에 후세대에게 그 기쁨을 전해주고자 두려움이 없는 관찰력과 자유로운 지혜를 구하기 위해 애쓰고 이미 죽은 과거만큼을 돌아보지 않는 희망이 필요하다고 다양한 에세이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며 그 안에서 고독을 경험하였고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자 했던 러셀은 고독을 즐기기 시작했던 어린 시절의 그 순간이 후에 학술적 성과를 이루기 위해 의식적으로 자신을 훈련시키는 시작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서 대부분 손에 넣었고, 본질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단념했기 때문에 자신은 매우 행복한 삶을 즐긴다고 스스로 얘기하는 러셀은 그가 실로 삶을 즐기며 살았기에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다양한 분야의 저술활동을 죽는 순간까지 하며 지성인으로서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는데 늘 적극적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참고]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버트런드 러셀 지음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210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69

2.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옮긴이 서문

일정한 시기에 사회 통합에 기여한 철학도 사회·정치 환경이 바뀌면 영향력이 약해져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다른 철학이 형성되면서 기존 철학을 대체한다. 이러한 대체 과정은 반복된다. 어느 시대이든 사회를 통합하는 요소와 해체하는 요소를 둘 다 내포하고 있다. [7]

근대 철학은 종교의 권위를 거부하고 과학의 권위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교회의 권위에서 해방되면서 개인주의가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무정부주의까지 출현했다. [7]

철학하는 사람은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갑자기 깨닫는 순간에 지적 희열을 느낀다. 철학의 독창성은 기존의 사고방식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통할하는 데서 나온다. 러셀은 철학사 전체를 꿰뚫으면서 각 철학적 주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비판함으로써 독창적인 철학의 전형을 보여준다. [8]

지은이 서문

철학자들은 어떤 일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그들은 각자 처한 사회 상황과 각 시대의 정치와 제도의 결과물이자, 후대 정치와 제도의 근간이 되는 신념 체계의 형성에 기여하는 원인 제공자이다.(...)나는 철학자를 자신이 몸담았던 사회, 문화적 환경의 산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공유되지만 모호하거나 산만하게 흩어진 사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애쓰며 집중하는 한 인간으로 조명했다. [10]

철학은 애초부터 학파들, 곧 소수 지식인들 사이에 일어난 논쟁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철학은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으며, 나는 바로 이 부분을 고찰하려 애썼다. [10]

서론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자리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 무인지대 No Man's Land가 바로 철학의 세계이다. [17]

과학은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말해주지만, 우리는 아주 조금만 알 따름이다. 또 만약 우리가 얼마나 많이 모르는지 망각한다면, 엄청나게 중요한 많은 일에 무감각해지고 만다. [19]

생생한 희망과 두려움 속에서 불확실한 문제에 직면할 때는 누구나 고통을 느끼지만, 만약 마음이 편해지도록 위로나 주는 동화에 의지해 살고 싶지 않다면 그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철학이 제기하는 질문을 망각해서도 안 되고, 철학적 질문에 대해 의심할 수 없는 답변을 찾았다고 자신을 설득해서도 안 된다. 확실한 진리는 없다고 주저하며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지 않고 의연히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 철학 연구자를 위해 철학이 지금도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19]
➜ 고통을 감수하며 끊임없이 삶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자체가 바로 철학일지도... 하지만 몸이 편해질수록 사고는 더 뒤처지는 것 같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의 사고는 단순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종교개혁은 로마적인 요소를 거부하고 그리스적 요소를 완화했으며 유대교적 요소를 강화했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처음에는 로마 제국이, 그 다음에는 로마 교회가 만들어낸 사회 결속을 원상태로 돌려버린 민족국가 세력과 협력했다. [25]

제1권 고대철학

제1부 소크라테스 이전

제1장 그리스 문명의 발흥

종교 의식은 엄청난 집단적 흥분상태를 흔히 불러왔는데, 그 안에서 개인은 분리된 개체 의식을 상실하고 스스로 전체 부족과 하나라는 일체감을 느꼈다. [43]

사회의 공동 목적이 개인에게 강요되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인생을 전체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습관을 몸에 익힌 개인이 점점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기 현재를 희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49]

사상의 영역에서 문명이란 대체로 과학과 동의어다. 그러나 순수 과학만으로 문명을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는데, 인간에게는 열정을 비롯해 예술과 종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지식에 한계를 그을 수는 있지만, 상상력에 한계를 그어서는 안 된다. [50]

제2장 밀레토스 학파

제3장 피타고라스

증명하는 연역 논증이란 뜻의 수학은 피타고라스와 더불어 시작되면, 색다른 형태의 신비주의 사상 역시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68]

경험만을 믿는 철학자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에 매달리는 노예로 전락하기도 하지만, 순수한 수학자는 음악가처럼 질서정연한 미의 세계를 창조하는 자유로운 존재에 가깝다. [73]

우리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려 컴퍼스로 원을 그린다고 해도, 빗나가거나 고르지 못한 데가 조금이라도 생기게 마련이다. 이것은 정확한 추리란 오로지 감각 가능한 대상들과 대비되는 이상적 대상들에 적용될 뿐이라는 견해를 암시한다. [77]

제4장 헤라클레이토스

가설들 가운데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해도, 각 가설에 모순이 없게 만들고, 가설을 알려진 사실들과 일치하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지식을 얻을지도 모른다. [80]

어떤 철학자를 연구할 때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는 그를 숭상하지도 경멸하지도 말고 이론 가운데서 믿을 만한 점을 알아낼 때까지 우선 일종의 가설로서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판적 태도를 회복할 수 있는데, 이러한 태도는 가능한 한 이제까지 주장하던 의견을 포기할 수도 있는 정신 상태를 닮아야 한다. 경멸은 가설로서 공감을 표현하는 데 방해가 되며, 숭상은 비판적 태도의 회복에 방해가 된다. [80]

어떤 지성인이 분명히 불합리한 견해를 표현할 때, 우리는 그의 의견이 어떤 식으로 참인지 입증하려 해서는 안 되고, 어떻게 참인 것처럼 보이게 되었는지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역사적 상상력과 심리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활동은 동시에 우리의 사고 폭을 넓혀주며, 우리의 마음속에 도사린 여러 편견이 다른 정신적 기질의 지배를 받는 시대에는 얼마나 어리석어 보일지 깨닫게 한다. [81]
➜ 각각의 시대에 추앙 받았던 철학가들도 시간이 흘러서 보면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왜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는지 찾아가는 것만큼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했기에 러셀도 이렇게 방대한 철학사를 집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인간을 철학으로 이끄는 깊은 본능 가운데 하나가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은 당연히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나 위험을 피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는 불운이 겹치는 격변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 더욱 열정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88]

제5장 파르메니데스

사전이나 백과사전에 어떤 말에 대해 공식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승인된 의미가 실려 있기는 해도, 같은 말을 쓰는 두 사람이 마음속에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지는 않다. [95]

제6장 엠페도클레스

자연의 변화 과정은 목적이 아니라 우연과 필연의 지배를 받는다. [105]

제7장 아테네 문화

제8장 아낙사고라스

제9장 원자론자들

“이 사건은 어떤 목적에 이바지했는가?”를 뜻하거나 “이전에 주어진 어떤 조건이 이 사건을 야기했는가?”를 뜻한다.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은 목적론적 설명, 혹은 목적인에 의한 설명이고, 뒤의 질문에 대한 답은 기계론적 설명이다.

기계론적 설명이 과학적 지식의 진보를 주도한 반면에 목적론적 설명은 그렇지 못했다. 원자론자들은 기계론적 질문을 했고 또 기계론적 설명을 시도했다. [118]

제10장 프로타고라스

황달에 걸린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노랗게 보이지만, 사물이 실제로 노랗지 않으며 사물의 실제 색깔은 건강한 사람이 보는 색이라고 말해보아야 소용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건강이 질병보다 더 낫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의 의견이 황달에 걸린 사람의 의견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다. [130]
➜ 지금 세상은 황달이 걸린 사람이 더 많은 세상처럼 보인다. 건강한 눈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웃음 거리가 되는...

객관적 진리를 불신하게 되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는 다수가 결정하게 된다. [130]
➜ 다수결이 반드시 옳은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자주 놓치면서 사는 것 같다. 머리수로, 힘으로 밀어 붙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되어버린 세상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2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제11장 소크라테스

총명한 사람의 말을 우둔한 사람이 전하게 되면 도무지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는 까닭은, 우둔한 사람은 자신이 들은 내용을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이해할 수 있게 바꾸어 말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보다는 차라리 철학자들 가운데 나를 가장 호되게 비판하는 철학자가 내 사상을 전달해주기를 바란다. [139]

“오로지 신만이 지혜롭지요. 신은 신탁을 통해 인간의 지혜란 가치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 합니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이름을 사례로 써서 이렇게 말하려 했던 것뿐입니다. 오, 인간들이여,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지혜가 사실은 가치 없다는 것을 아는 자가 바로 가장 현명한 자라고 말이지요.” [143]

소크라테스는 부유층 젊은이들이,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과오를 드러내 보이는 자신의 논쟁을 즐겨 경청하고, 그들도 본받아 비슷하게 행동하다 보니 적들의 수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 지식의 가식적인 면이 간파되어도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144]

만약 여러분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으로 어떤 이가 여러분의 악학 생활을 꾸짖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지요. 그건 악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적절한 방법도 아니고 명예로운 방법도 아닙니다. 가장 쉬우면서 가장 고결한 방법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빼앗고 해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147]

제12장 스파르타의 영향

스파르타의 신화는 플라톤의 정치 이론과 후대에 등장한 수많은 저술가의 이론에 영향을 미쳤다.(...) 스파르타의 신화가 추구한 이상은 후대에 루소나 니체의 학설을 비롯해 국가사회주의의 형성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153]

오늘날 우리에게 스파르타 국가는 나치가 승리했더라면 이룩했을 법한 국가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157]

평범한 시민들은 엄격한 통제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지자 비밀스럽고 불법적인 관능적 쾌락에 탐닉했다.(...)법률을 너무 가혹하게 적용한 결과가 빚어낸 현대의 모든 경험과도 일치한다.(...) 이상주의와 권력애가 통합된 결과로 인간은 몇 번이고 길을 잃었으며, 오늘날도 여전히 헤매고 있다. [160]

제13장 플라톤 사상의 근원

‘현명한’사람들의 무리를 찾아 통치를 맡기는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한 과제이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궁극적 이유이다. [169]

제14장 플라톤의 이상향

이상 국가의 목적은 전체 국가의 선이지 한 계급의 행복이 아니다. [174]

제15장 이상이론

아름다운 사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이 새로 연출된 비극과 새로 전시된 미술품을 꼭 관람하고 새로 나온 음악을 꼭 감상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이런 사람은 아름다운 사물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철학자가 아닌데, 철학자는 사실 아름다움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저 아름다운 사물만 사랑하는 사람은 꿈에 빠져 있는 데 반하여 절대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사람은 완전히 깨어있다. 앞 사람은 의견opinion을 지닐 뿐이지만 뒷사람은 지식knowledge을 얻는다. [185]

감각에 나타난 세계에 대해서는 의견을 갖게 될 뿐이지만, 초감각적인 영원한 세계에 대해서는 지식을 얻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의견은 아름다운 개별 사물과 관계하지만, 지식은 아름다움 자체에 관계한다. [186]

바보들만 현자에게 지혜가 없다고 생각한다. [188]

내 생각에 이런 체험이 탁월한 창작물을 내는 데 필요한 조건이지만, 체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 체험에서 비롯한 주관적 확신은 치명적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189]

순간적인 통찰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착오일 수도 있기 때문에, 신성한 도취 상태가 지나간 다음에는 반드시 맑은 정신으로 검토해야 한다. [189]

불합리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가설이라도 사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할 능력을 발견자에게 부여한다면 과학에서 사용해도 좋다. 그러나 운이 좋아 가설이 이러한 목적에 기여하는 경우에도 그 이상의 진보에는 오히려 장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천문학이 발전해나가는 특정 단계에서는 선 자체를 믿는 태도가 세계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열쇠로서 유용했지만, 이후에는 매 단계에서 해로운 영향을 주었을 따름이다. 윤리와 심미적인 측면에서 플라톤이 드러낸 편견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편견은 더욱더 그리스 과학의 기세를 꺾는 데 큰 몫을 했다. [199]

제16장 플라톤의 영혼 불멸설

철학자들은 도덕적 노력을 기울여 탐닉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제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는 말이다. [203]

유명한 여러 성직자는 감각에 속한 쾌락은 포기하지만 다른 쾌락을 경계하지 않아서 권력욕에 사로잡혔고, 결국 종교를 위한다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끔찍하고 잔혹한 행위와 종교 박해를 저질렀다. 오늘날에는 히틀러가 바로 그러한 유형에 속하는 인물인데, 누구 말을 들어봐도 그는 감각에 속한 쾌락을 아주 하찮게 여겼다. 육체의 폭정에서 해방되면 위대한 무엇을 성취하는 데 기여하게 되지만, 덕이 커지는 바로 그만큼 죄가 커지기도 한다. [204]

만물을 다 바꿀 수 있는 화폐는 바로 지혜라네. [206]
➜ 그 지혜를 화폐와 바꾸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 화폐를 얻기 위해 지혜를 구하려는 시도는 아예 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닌지.

제17장 플라톤의 우주론

제18장 플라톤의 지식과 지각

어떤 판단이 다른 판단보다 더 참될 리는 없지만 더 나은 결과를 낸다는 의미에서 더 나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점이 바로 실용주의를 암시한다. [223]

제19장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가 범한 오류는 습관이 형성한 편견에서 자유로울 리 없는 시대적 한계에서 비롯된 오류이다. 그는 상세한 서술이나 비판의 측면에서는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기초의 명확성이나 티탄의 광휘가 부족하기 때문에 거대한 체계를 구축하는데 실패했다. [236]

영혼과 모양 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무엇인가? 내 생각에 공통점은 양이 일정한 질료에 통일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조각상이 될 대리석 덩어리의 일부는 아직까지 대리석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대리석 덩어리의 일부는 아직 사물이 아니라서 통일성을 갖지 못한다. 조각가가 조각상을 만든 다음 통일성이 나타나며 이러한 통일성은 조각상의 모양에서 비롯된다. 이제 영혼의 본질적 특징은 육체의 ‘형상’이 됨으로써, 육체를 단일체로서 목적을 가지는 유기적 통일체로 만든다. 유기체를 구성하는 기관 하나하나의 목적은 그 기관 밖에 놓여 있다. 그러니까 유기체에서 분리된 눈은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동물 하나, 식물 하나는 통일체로서 실체라고 말해도 되지만, 그것이 어느 한 부분에 대해서는 실체라고 말할 수 없다. [246]

제20장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지적인 덕은 가르쳐서 얻고, 도덕적인 덕은 습관을 키워서 얻는다.(...) 강제로라도 좋은 습관을 들이면 때에 맞추어 좋은 행동을 할 경우 기쁨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249]

지위가 높은 사람 앞에서 당당해지기는 어렵기 때문에 고상한 일이고, 지위가 낮은 사람 앞에서 당당해지기는 쉽기 때문에 지위가 높은 사람을 대하는 당당한 태도가 버릇없이 자란 사람의 특징은 아니지만, 비천한 사람들 사이에서 당당한 태도는 약자 앞에서 강한 태도만큼이나 비속하다. [252]

제21장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가장 큰 죄악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268]

제22장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사물의 ‘본질’은 ‘그 사물의 속성들 가운데 동일성을 잃지 않고서도 바뀔 수 없는 속성’을 의미했던 듯하다. 소크라테스는 때로는 행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슬프기도 하며, 때로는 건강하고 때로는 병에 걸리기도 한다. 이런 속성들은 소크라테스가 아니게 되지 않고서는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본질을 이루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윤회를 믿는 피타고라스 학파는 인정하려 들지 않을 테지만, 인간의 속성은 소크라테스의 본질에 속한다고 생각되었다. 사실 ‘본질’의 문제는 낱말의 사용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는 같은 이름을 온갖 경우에 단 한 ‘사물’이나 단 한 ‘사람’이 나타나는 조금씩 다른 사건들에 적용한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언어상의 편의일 따름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본질’은, 없어지게 되면 소크라테스란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속성들로 이루어진다. 그 문제가 순수하게 언어와 관련된 까닭은 낱말은 본질을 지니기도 하지만 사물은 본질을 지닐 수 없는 탓이다. [283]

사실 근대 전반에 걸쳐 과학, 논리학, 철학 분야는 모두 아리스토텔레스 제자들의 반대에 맞서는 과정을 거쳐서 진보했다. [285]

제23장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제24장 초기 그리스 수학과 천문학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행성 가운데 하나이며, 영원히 고정된 천체가 아니라 우주 공간을 떠도는 천체라는 생각은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해방된 색다른 경우를 보여준다. 이렇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우주관이 한 번 충격을 받자, 과학적 논증들을 더 정밀한 이론으로 다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298]

제3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 철학

제25장 헬레니즘 세계

길게 이어진 불확실성의 시대는 뛰어난 덕을 겸비하여 성인의 경지에 이른 극소수 사람들의 삶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겠지만, 평범한 일상의 덕을 갖춘 훌륭한 시민들에게는 해롭게 작용했다 당신이 저축해둔 돈이 내일 전부 없어질지도 모른다면 검약이란 소용이 없어진다. 당신이 정직하게 대한 사람이 당신을 속인 게 확실하다면 정직이란 어떤 이득도 주지 않는다. 대의가 전혀 중요하지 않거나 안정된 상황에서 승리할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단호하게 대의를 전혀 중요하지 않거나 안정된 상황에서 승리할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단호하게 대의를 고집하는 일도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다. 비위나 맞추는 변절만이 생존과 행운을 가능하게 만든다면 진실을 놓고 벌이는 논증이란 헛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순수하게 세속적인 사려를 제외한 어떤 것도 덕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용기가 있다면 불확실한 세상에서 모험가가 될 테고, 용기가 없다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미천하고 비겁한 사람이 될 것이다. [315]

제26장 키니코스 학파와 회의주의 학파

뛰어난 지성인과 사회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아주 다른 양상을 나타냈다. 행운이 따르는 시대의 뛰어난 지성인들은 대체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개혁안을 제안하면서 자신들의 제안이 환영 받으리라 확신할 뿐만 아니라 설령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세상을 혐오하지 않았다. 그러나 행운이 따르지 않은 시대의 뛰어난 지성인들은 혁명적인 성향을 나타내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일부는 자신들이 지지한 결과로 가까운 장래에 변화가 일어나리라 기대했다. 이도 저도 아닌 시대의 뛰어난 지성인들은 세상에 절망한 나머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만 변화가 일어날 가망은 없다고 체념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쉽게 절망감을 느끼고 현세의 삶이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생각이 빠져듦으로써, 오로지 내세나 신비스러운 변용에서 선을 구하고 희망을 찾게 된다. [317]

디오네게스는 오늘날 말하는 냉소주의를 결코 가르치지 않았으며, 정반대 학설을 설파했다. 그는 ‘덕’을 성취하려는 열정으로 불탔으며, 덕에 비하면 현세의 좋다는 것들은 가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욕망에서 해방됨으로써 덕과 도덕적 자유를 얻으려 했다. 행운이 따라야 얻게 되는 좋은 것들에 냉담해져라, 그러면 두려움을 떨치고 해방되리라. [321]

텔레스는 어떤 부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후하게 베풀고 나는 서슴없이 받지만, 비굴하게 아첨하지 않고 품위를 잃어 천해지지도 않고 불평불만을 떠벌리지도 않지요.” 편리하기 그지없는 학설이다. 통속적인 키니코스 학파의 사상은 현세의 좋은 것들을 피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그저 냉담하라고 가르쳤을 뿐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채권자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는 채무자의 의무감을 약화시킬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견유cynic'란 말이 일상생활에서 어떤 뜻으로 사용되는지 알게 된다. [322]

회의주의는 철학으로서 단지 의심하는데 그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의심을 한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과학자는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확실치 않고”고 말한다. 지적인 호기심이 강한 사람은 “나는 어찌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아내고 싶다”고 말한다. 철학적 회의주의자는 “아무도 모르며,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으리라”고 말한다. 회의주의 체계는 이러한 독단론적 요소 때문에 취약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323]

제27장 에피쿠로스 학파

현자의 목표는 쾌락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없애는 일 [336]

정신의 쾌락은 육체의 쾌락을 관조하는 활동 [336]

제28장 스토아 철학

개인의 삶 속에서 유일한 선은 덕이다. 건강, 행복, 재산 같은 것들은 결코 선하지 않다. 덕은 의지 속에 존재하므로, 어떤 사람의 삶 속에서 실제로 선하거나 악한 일은 무엇이든 그 사람 자신에게 달려 있을 따름이다. 그는 가난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가난해지더라도 덕이 높은 사람일 수가 있다. 폭군이 감옥에 가둔다 할지라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 사형선고를 받는다 할지라도 소크라테스처럼 고귀하게 죽을 수 있다. 남들은 외부 사정만을 마음대로 할 뿐이다. 참으로 선할 뿐인 덕은 완전히 개인에게 달려 있다. [349]

철학자들은 보통 사생활 속에서 빚어지는 우연한 사건들을 대체로 도외시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철학자들조차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문제가 되는 훨씬 큰 선이나 훨씬 큰 악에 무심할 수 없는 법이다. 철학자들은 난세에는 위안을 찾고, 태평 시대에는 훨씬 순수하고 지적인 연구에 관심을 쏟는다. [358]

나를 사슬로 묶는다고? 내 다리는 자세가 사슬로 묶을 것이네. 맞네. 그러나 나의 의지를 묶지는 못할 것이네. 제우스조차도 그렇게 못할 테지. [360]

제29장 로마 제국의 문화

로마는 대부분 제국의 그리스어권 지역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사상과 예술은 똑같이 쇠퇴했다. [377]

제30장 플로티노스

플로티노스의 철학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외면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조장하는 결함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안을 들여다볼 때 신성한 정신을 보게 되고, 자신의 바깥을 바라볼 때 감각계의 불완전한 면을 보게 된다. [400]

제2권 가톨릭 철학

서론

철학의 관심사는 신앙을 옹호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리스도교에서 인정하는 계시의 정당성을 수용하지 않는 이슬람교도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맞서 논쟁하기 위해 이성을 불러냈다. 이렇게 이성을 발휘함으로써 가톨릭 철학자들은 단순한 신학자가 아니라, 어떤 신경에 대해서든 사람들의 호감을 얻으려 계획적으로 체계를 고안해내는 사람으로서 비판에 대적했다. [407]

비참한 상황이 사회 전반에 퍼져나감에 따라 종교 감정은 더욱 강렬해졌다. [409]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나날 속에서 일상 세계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409]

제1부 교부철학

제1장 유대교의 발전

원래 덕은 여기 지상의 삶 속에서 보답을 받는 것이라 생각했다. 덕망 있고 고결한 자들이 박해를 당하자, 이런 생각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그러므로 신이 의로우심을 보증하려면, 보상과 처벌이 내세에 이루어진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421]

유대인들은 교유한 종교 의식을 통해 한 민족으로 단결했으나, 율법을 강조함으로써 점차 독창성을 잃고 지나치게 보수적인 관습에 함몰되었다. [423]

제2장 초기 그리스도교

유대교의 신학은 언제나 단순했다. 야훼는 부족 신에서 하늘과 땅을 창조한 전능한 유일신으로 발전했다. 하느님의 정의는 지상에서 덕을 갖춘 사람들에게 번영을 보장해주지 못하자 천국으로 양도되었고, 이것은 영혼 불멸 신앙을 수반했다. [433]

제3장 교회의 세 박사

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활약한 당대 지성인들이 세속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로마 제국의 파멸은 조금도 놀랍지 않다. 한편 로마 제국의 파멸은 불가피했지만, 그리스도교의 사고방식은 사람들에게 불굴의 용기를 심어주고, 지상의 삶이 헛된 것처럼 보일 때 종교적 소망을 간직하도록 이끄는 데 적합해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455]
➜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처럼 아무리 뛰어난 지성인들이라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자신의 발전을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궁극적인 영향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제4장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과 신학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이 주관적인 것이라는 골자로 해결책을 암시한다. 시간은 기대하고 고려하고 기억하는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창조된 존재가 없다면 시간도 존재할 리 없으며, 창조가 일어나기 전의 시간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468]

“악한 자들은 죄를 지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유혹을 당하고, 유혹을 당하기에 죄를 짓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받은 유혹은 하느님의 비밀스런 심판에 따라 일어나는데, 비밀은 의롭고 의로움은 비밀스럽다. 심지어 하느님은 세계를 창조한 이래 끊임없이 심판해오셨다.” [478]

악한 자들이 사악하기 때문에 신의 버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신의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악해진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듯하다. [478]

제5장 5세기와 6세기

제6장 성 베네딕투스와 그레고리우스 대교황

수도원 생활은 처음에는 교회조직과 거의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운동이었다. [496]

조직이란 창시자의 의도와 독립해 자체 생명을 지니게 마련이다. 이 사실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두드러진 사례가 가톨릭 교회이며, 예수뿐만 아니라 바울로조차 놀랄 만하다. [498]

제2부 스콜라 철학

제7장 암흑기의 교황 체제

애초부터 교황과 황제 사이에 이상한 상호 의존관계가 형성되었다. 어느 누구라도 로마 교황의 대관식을 거치지 않고서는 황제가 될 수 없었다. 다른 한편 수세기 동안 강력한 황제는 저마다 교황을 임명하고 폐할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합법적 권력을 다룬 중세의 이론은 황제와 교황 둘 다에 의존했다. 그들은 상호 의존관계로 인해 양측 모두 괴로워하면서도 수세기 동안 괴로운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517]

성 바울로 이후 그리스도교도는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었으나, 그러면서도 하루하루 멈추지 않고 맡은 일을 하며 살았다. [524]

‘암흑기’라는 말로 600년부터 1000년에 이른 시기를 가리키는 관행은 서유럽에 집중하는 부당한 처사에서 비롯된다. 중국의 경우 이 시기는 당 왕조 시대로, 중국 시문학이 꽃을 피운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여려 방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시기이다. 인도에서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이슬람교 문명이 번성했다. [525]

우리는 서유럽 문명이 곧 문명이라 생각하지만, 이것은 협소한 견해이다. 우리 문명의 문화에 속하는 내용은 대부분 동부 지중해 연안, 그리스인과 유대인에게서 유래한다. 권력의 측면에서도 서유럽은 포에니 전쟁부터 로마의 몰락까지, 대략 기원전 200년부터 서기 400년까지 6세기 동안 우위를 차지했을 따름이다. 이후 서유럽의 어떤 나라도 권력으로는 중국, 일본, 이슬람교 국가를 따라잡지 못했다. [525]

제8장 요한네스 스코투스의 사상

죄의 근원은 자유에 있다. 죄란 인간이 신에게 향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기 때문에 발생했다. 악의 근거가 신 안에 있지 않은 까닭은 신 안에 악의 이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은 비존재이고 근거가 없는데, 그 까닭은 만약 악에 근거가 있다면 악도 필연적인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악은 선의 결핍일 뿐이다. [533]

제9장 11세기 교회 개혁

11세기에 이룩한 개선과 진보는 오래 지속되었으며 다채로웠다. 이러한 진보는 수도원 개혁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그 다음 교황체계와 교회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11세기가 막을 내릴 무렵 최초의 스콜라 철학자들이 배출되었다. [536]

교회의 규율체계와 통일된 성직자 조직체계는 성직자 계급의 권력을 형성하는 데 필수 요소였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11세기에 성직자 계급에서 일어난 도덕적인 개혁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538]

성직자 계급 전체의 권력 형성은 성직자 개개인의 적지 않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했다. 모든 개혁 성직자들이 온 힘을 다해 반대했던 최고의 악습은 성직매매와 축첩 두 가지였다. [538]

성직자의 독신생활은 교회의 도덕적 권위를 유지하는 데 불가결한 핵심 요소였다. [540]

제10장 이슬람교 문화와 철학

예언자 무하마드가 세운 종교는 정교한 삼위일체설이나 육화 신학으로 뒤얽히지 않은, 단순한 일신교였다. 예언자 무하마드는 자신을 신이라 주장하지도 않았고, 그를 따르던 신도들이 자기를 신이라 주장하지도 못하게 했다. 그는 조각한 우상의 숭배를 금지하는 유대인의 풍습을 부활시켰으며 포도주 사용도 금지했다. 신자들의 의무는 이슬람교 확장을 위해 가능한 한 세계의 더 많은 지역을 정복하라는 명령을 이행하는 일이었으나, 그리스도교도을 비롯하여 유대교도나 조로아스토교도, 즉 쿠란에서 경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라 부른 ‘성서의 백성’을 박해하지 않았다. [552]
➜ 이렇게 포용적이던 종교가 지금은 왜 그렇게 변했을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종교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될 수도 있는지 이슬람교만큼 보여주고 있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주민들의 태반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 그리스도교를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553]

아랍인은 새로운 종교의 이름으로 세계의 대부분 지역을 정복했지만 종교심이 깊은 종족이 아니었다. 아랍인이 정복을 시작한 동기는 종교가 아니라 약탈과 재물이었다. 소수 이슬람교 전사가 큰 어려움 없이 고도의 문명과 낯선 종교를 겸비한 다수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도 광신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553]

제11장 12세기

특히 우리의 흥미를 끄는 12세기의 네 가지 양식은 다음과 같다.

1. 황제권과 교황 체제의 계속되는 갈등

2. 롬바르디아 도시들의 발흥

3. 십자군

4. 스콜라 철학의 성장

지금까지 교황과 황제 사이에 벌어진 투쟁의 최종 결과는 하인리히 3세에게 굴복했던 교황이 황제와 필적하는 권력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교황은 교회 내에서 완전히 주권자가 되어, 교황 특사들을 파견해 지배력을 과시했다. 이와 같이 교황 권력이 증대함에 따라 주교들의 지위는 점점 낮아졌다. 교황 선출은 이제 세속 군주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졌고, 성직자들은 대체로 교회 개혁 이전보다 도덕성을 갖추게 되었다. [565]

자유도시들의 발흥은 교황과 황제 사이에 벌어진 기자긴 투쟁에서 비롯된 최후의 가장 중요한 결과였다. 황제의 권력은 쇠퇴해 가는 봉건 체제와 맞물려 있었다. 교황의 권력은 여전히 성장해가는 중이었으나 대체로 중세 세계에 황제의 맞수로서 교황이 필요했다는 사실에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황제의 위협이 사라지자 교황의 권력도 쇠퇴했다. 그러나 도시들이 모여 새로운 권력을 형성했는데, 도시 권력은 경제적 진보의 결과이자 새로운 정치 형태의 근원이 되었다. 이런 형상은 12세기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오래지 않아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는 세속 문화를 발전시켜 문학, 예술, 과학에서 최고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이러한 발전은 모두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프리드리히 1세에게 저항하여 승리를 거두었기에 가능했다. [568]

교황이 당연히 십자군 창설의 선두에 섰던 까닭은 그 목적이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종교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십자군 전쟁의 선동으로 자극받아 종교적 열의가 커짐에 따라 교황들의 권력은 증대되었다. [569]

최초로 그리스도교 황제가 통치한 요크는 유대인들에 대한 가장 끔찍한 대규모 잔혹 행위가 벌어진 무대였다. 십자군 운동 이전 유대인들은 유럽 전역에서 동방 물품의 무역을 거의 독점했다. 십자군 운동 이후 유대인 박해의 결과로 동방 물품의 무역은 대부분 그리스도교가 장악했다. [569]

제12장 13세기

이단 사상이 널리 확산된 것은 십자군 원정의 실패에 따른 실망감 탓도 있었지만, 주로 성직자 계급의 재산 축척과 사악함에 대한 도덕적 환멸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교회는 부유했기 때문에 대체로 세속적 성향을 나타냈다. 그래서 대다수 사제들은 전반적으로 부도덕할 수밖에 없었다. [584]

성 프란체스코의 삶이 초래한 최종 결과는 부유하고 부패한 수도회 하나 더 설립하여 성직자 계급제도를 강화하고 도덕적 정직함이나 사상의 자유에서 뛰어난 모든 사람에 대한 박해를 용이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프란체스코 자신의 목표와 인격에 비추어볼 때, 더할 수 없이 참혹하고 역설적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589]

제13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신은 선할 뿐만 아니라 선 자체이다. 신은 모든 선한 것의 근원이 되는 선 자체이다. 신은 지적이며, 더욱이 신의 지성 활동은 신의 본질이다. 신은 자신의 본질로써 이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596]

신에게는 의지도 있다. 신의 의지는 곧 자신의 본질이므로, 신의 의지가 향하는 중요한 대상은 신의 본질이다. 신은 자신이기를 원할 때 다른 사물도 원하게 되는데, 신이 만물의 목적인 까닭이다. [598]

우리는 현세에서 신을 본질 그대로 보지 못해 궁극의 행복에 이를 수 없지만, 내세에서 신과 대면하게 되리라. (신은 얼굴이 없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대면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의를 준다.) [599]

결론이 미리 주어진 논증의 발견은 철학이 아니라 특별한 변론에 지나지 않는다. [604]

제14장 프란체스코 소도회의 스콜라 철하자들

그는(로저 베이컨) 무지의 원인이 네 가지에 있다고 말한다. 첫째, 부정하고 부적합한 권위의 사례이다. 둘째, 관습의 영향이다. 셋째, 무식한 군중의 의견이다. 넷째, 외견상의 지혜를 과시하며 무지를 은폐하는 짓이다. 네 가지 역병 가운데 넷째 병이 가장 치명적이고,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악의 근원이다. [606]

이 시기에 교황 반대 운동의 특징도 변하기 시작했다. 교황 반대 운동은 단지 황제를 지지하는 단계에서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는데, 특히 교회 정치의 문제에서 민주주의적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특징은 교황 반대 운동에 새로운 힘을 실어주어, 결국 종교개혁에 이르게 되었다. [612]

오컴. 격률에 따르면, “존재들은 필요 없이 늘어나서는 안 된다.” 오컴은 이 격률을 말하지 않았지만 똑같은 효과를 내는 말을 했다. “더 작은 수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큰 수로 하는 짓은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만약 어떤 과학 안에 포함된 무엇이든 가설로 도입한 이런 존재나 저런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도 해석할 수 있다면, 그것을 가정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오컴의 격률이 논리적 분석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원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616]

제15장 교황 체제의 쇠락

13세기로 접어들면서 철학, 신학, 정치, 사회 모든 측면을 아우른 위대한 종합에 이르렀는데, 여러 요소들이 결합하는 과정을 거쳐 천천히 이루어졌다. 첫째 요소는 순수한 그리스 철학, 특히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사상들이었다. 다음 요소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결과로 대량 유입된 동양의 종교들이었다. 오르페우스교와 신비 종교의 장점을 받아들인 이러한 동양의 종교들은 그리스어 문화권 세계의 사고방식을 변모시켰으며, 결국 라틴어 문화권 세계의 사고방식도 바꾸었다. 죽었으나 부활한 신, 그 신의 육체를 먹는 성찬 의식, 세례식과 유사한 어떤 의식을 통해 새 생명으로 거듭 태어나는 제2의 탄생은 이교 로마 세계의 대대수 종파들에게 신학의 일부로 수용되었다. [620]

15세기에 여러 다른 원인이 교황 체제의 쇠퇴에 작요하면서 정치와 문화 두 측면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화약은 봉건 귀족을 희생시키고 중앙 정부의 권력을 강화시켰다. [632]

대체로 과거 공포의 대상들이 더는 공포를 불러일으키지 못했으며, 정신은 새로 맛본 자유에 도취되었다. [633]

제3권 근현대 철학

제1부 르네상스에서 흄까지

제1장 일반적 특징

교회의 권위에서 해방되면서 개인주의가 출현하고, 심지어 무정부까지 생겨났다. 규율은 지적이든 도덕적이든 정치적이든 르네상스 인간의 정신 속에서 스콜라 철학과 교회 정부와 결부되었다. [640]

제2장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

마수치오는 수사와 수녀, 탁발 수도자의 사악한 행동을 묘사한 후에 이렇게 말한다. “그들에게 적당한 최고의 형벌은 연옥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더는 헌금을 받지 못할 테고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원래 직분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루터가 그랬듯이 마수치오는 연옥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가톨릭 신앙의 대부분을 마음 깊이 간직했다.[651]

사람들은 교회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지자,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는커녕 고대에 속한 온갖 종류의 무의미한 미신을 받아들이려 마음을 활짝 열었다. [652]

도덕적인 면에서도 교회에서 해방됨으로써 나타난 최초의 결과는 똑같이 참담한 모습이었다. 과거의 도덕 규칙이 더는 존중되지 않고, 각국의 통치자는 대부분 배반과 모략으로 지도자의 지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자리를 지키기 위해 냉혹하고 잔인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주교들이 교황의 즉위식 정찬에 초대 받았을 때는 독살의 공포 때문에 각자 자신의 잔과 술을 따르는 시종을 대동해야 했다. [652]

르네상스기의 정세는 개인의 발전을 지지했으나 불안정한 상태였다. 불안정한 정세와 개인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경우처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안정된 사회 체계는 필요하지만, 여태까지 고안된 모든 안정된 체계는 비범한 예술가와 지성인의 장점을 살리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곤 했다. 르네상스가 이룩한 업적에 필적하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은 살인과 무정부 상태를 감장해야 할까? 과거에는 필요 이상으로 감당해야 했다. 우리 시대에는 덜 감당해도 되리라.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사회 조직의 증가는 계속해서 그 문제를 더욱 중요하게 부각시킨다. [653]

제3장 마키아벨리

그의 정치철학은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학설로 사태를 직시하며 스스로 경험한 것에서 나온 결과물인데, 목적의 선악 여부와 상관없이 정해진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 [654]

마키아벨리는 대중의 인기를 얻는 정부를 선호하는데, 이는 ‘권리’의 개념에서 비롯되지 않고 대중의 인기를 얻은 정부가 전제 정부보다 잔인성, 비도덕성, 변덕의 정도가 덜하다는 현실적인 관찰에서 나온 결론이다. [661]

제4장 에라스무스와 토마스 모어

다양성과 변화는 행복한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데, 유토피아에서는 다양성과 변화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점은 바로 계획에 의해 조직된 모든 사회가 지닌 결점인데, 상상 속에서든 현실 속에서든 마찬가지이다. [676]

제5장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종교간의 반목에 지치고 염증을 느끼게 되자 점차 종교적 관용을 믿는 세력이 성장했는데, 종교적 관용은 18, 19세기에 자유주의로 발전하는 운동의 한 근원이다. [679]

제6장 과학의 발흥

과학자들을 과학자답게 구분해주는 특징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왜 그것을 믿느냐에 달려있다. 과학자들의 신념이 잠정적인 믿음으로서 독단적인 믿음이 아닌 까닭은 증거에 근거할 뿐 권위나 직관에 기대지 않기 때문이다. [684]

갈릴레오는 근대 과학을 정초한 과학자들 가운데 뉴턴을 제외하고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난 날에 출생하여 뉴턴이 태어나던 해에 죽음을 맞았다. 나는 이런 흥미로운 사실을 아직도 윤회사상을 믿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말해주고 싶다. 그는 천문하자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지만, 역학의 창시자로서 더 중요한 인물이다. [688]

뉴턴에 따르면 행성들은 애초에는 신의 손에서 던져졌지만, 신이 중력 법칙에 따르도록 명한 다음에 각 행성은 더는 신이 간섭하지 않아도 자연 법칙에 따라 스스로 운동한다.[695]

제7장 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우상의 목록표인데, 우상은 사람들이 오류에 빠지도록 만드는 원인인 정신의 나쁜 습관을 의미한다. 그는 네 가지 우상을 제시한다. ‘종족의 우상’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며, 특히 자연 현상 가운데 실제로 발견되는 질서 이상을 기대하는 습관을 지적한다. ‘동굴의 우상’은 개별 탐구자의 특징인 개인적 편견이다. ‘시장의 우상’은 말의 횡포와 관련된다. ‘극장의 우상’은 수용되는 사유체계와 관련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스콜라 철학이 언급할 만한 가장 좋은 사례이다. [702]

제8장 홉스의 리바이어던

우리 마음속 사유 작용은 임의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때로는 연상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때로는 생각의 결과인 목적에 의존한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708]

어떤 공동체이든 두 가지 위험, 즉 무정부 상태와 전제정치의 위험에 직면하다. [716]

제9장 데카르트

이렇게 확고한 기초를 놓은 다음, 데카르트는 지식 체계라는 건축물을 재건하기 시작한다. 존재한다고 입증된 나는, 나는 생각하므로 생각하는 동안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추론되었다. 만약 내가 생각하기를 그친다면, 나의 존재를 증명할 증거도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하는 것이요, 순수한 본성이나 본질을 생각한다는 것에서 성립하고, 존재하기 위해 장소나 물질적인 부분이 필요 없는 실체이다. 그러므로 영혼은 육체와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로 육체보다 더 쉽게 알려진다. 그러니깐 육체가 없어도 영혼은 존재한다는 말이다. [727]

제10장 스피노자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외부 원인에 의해 규정되는 정도에 비례하여 구속되며, 스스로 규정한 정도에 비례하여 자유롭다. [738]

고요하고 침착하게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면서 되도록 우리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야 한다. 이런 식의 고찰은 순전히 개인적인 다른 불행의 경우에도 다 적용된다. [744]
➜ 순간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들을 이렇게 바라볼 수 있다면 마음의 요동을 가라앉히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진심으로 실천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한계를 제외하면 그리스도교 원리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744]

“증오심은 보복하면 더 커지지만, 사랑의 힘으로 없어지기도 한다. 사랑의 힘으로 극복된 증오심은 사랑의 감정으로 옮아가는데, 이런 사랑은 증오심을 먼저 경험하지 않은 경우의 사랑보다 더욱 위대하다.” [745]

당신의 운명이 인류의 범상한 운명보다 더 비참한(혹은 당신에게 비참해 보이는)역경을 참고 견디어 낼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우주 전체를 생각하거나 아니면 당신의 슬픔보다 더 큰 문제를 생각하라는 스피노자의 원리는 유익한 교훈이다. 온갖 악과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을 우주적 차원의 생명에 속한 극히 작은 일부로 생각하면,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사색은 하나의 종교를 구성하기에는 불충분할지 몰라도, 고달픈 세상에서 제정신 차리고 사는 데 힘을 보태며, 아득한 절망의 늪에 빠져 무기력해진 경우에는 무력감을 치유할 해독제가 되기도 한다. [746]

제11장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고 수준의 지성 능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되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칭찬할 만하지 않다. [747]

사실상 세계에는 선한 면도 있고 악한 면도 있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게 되면 ‘악의 문제’가 발생한다. [758]

제12장 철학적 자유주의

나는 양 극단 사이에 진실이 놓여 있다고 믿는다. 여느 경우처럼 사상과 실생활은 대등한 수준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느 쪽이 원인이고 어느 쪽이 결과냐는 질문은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는 질문만큼이나 어리석고 쓸데없는 질문이다. [766]

제13장 로크의 인식론

대단히 취약한 근거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덧없는 행동과 무분별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안다기보다는 믿을 수밖에 없는 삶의 모습을 감안한다면, 남의 자유를 빼앗고 의견을 강요하지 말고 부지런히 자신을 알고 분별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마땅하다.···사람이 더 나은 교육을 받으면 남에게 자기 의견을 덜 강요할 것이라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780]
➜ 나를 아는 만큼 타인에게 무언가를 덜 바랄 것이라는 말일까.

로크는 지각이란 “지식에 이르는 첫 단계이자 지식을 얻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재료가 모이는 입구” 라고 말한다. [781]

우리는 모두 합리적으로 쾌락을 추구한다면 당연히 가야 할 치과 방문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을 알고 있다. 요컨대 설령 쾌락의 추구와 고통의 회피가 우리 행동의 동기라 해도, 먼 장래의 일이라면 그만큼 쾌락의 매력은 상실되고 고통의 공포도 틀림없이 약화된다. [786]

제14장 로크의 정치철학

우리는 지금도 개인이 자기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정치권력에 관해서는 상속 원리를 거부하지만 경제 권력에 관해서는 상속 원리를 수용한다. 정치 분야의 왕조 지배는 사라졌지만, 경제 분야의 이름난 가문은 살아남는다. 지금 두 가지 권력 형태를 이렇게 달리 취급하는 태도가 옳은지 그른지 따지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사실이 그러한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의식하지 못하는 실정을 지적할 뿐이다. 막대한 부로 타인들의 삶을 지배하게 된 경제적 힘이 상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얼마나 당연하게 여기는지 생각해보면, 로버트 필머와 비슷한 사람들이 어떻게 왕의 권력에 대해 그 같은 견해를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로크의 생각에 동조한 사람들이 주장한 혁신 사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잘 이해하게 되리라. [794]
➜ 정치세습도 분개하지만 대기업에서 보여주는 세습을 보면서도 분개하기는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유산상속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사회계약론에서 정부는 계약에 참여한 당사자로서, 만약 계약 내용의 일부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804]

노동가치설은 이익에 눈이 먼 약탈자로 비친 계급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지지를 얻어왔다. [811]

제15장 로크의 영향

쾌락이 곧 선은 아니지만 유덕하고 고결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면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821]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 사람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행복을 소중히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더욱이 어떤 사람의 윤리학은 보통 그 사람의 성격을 반영하며, 자비심이 일반 대중의 행복을 바라도록 이끈다. 따라서 행복을 인생의 목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더욱 자비로운 경향을 나타낸 반면, 다른 목적을 내세웠던 사람들은 잔인성이나 권력욕에 무의식적으로 압도당하곤 했다. [821]

제16장 버클리

상기recollection는 우리가 자연스레 ‘정신적’이라고 부르는 현상들에 나타나는 어느 정도 고유한 효과들 가운데 하나이다. 자신의 효과들은 습관과 관련이 있다. 불에 데어본 아이는 불을 두려워하지만 불에 달구어진 부지깽이가 불을 두려워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833]

관념론자는 ‘정신’이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유물론자는 ‘물질’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독자들이 관념론자들은 덕을 중시하지만 유물론자들은 사악하다는 사실도 인식하기를 바란다. [837]

제17장 흄

믿음이란 ‘현재의 인상과 관계를 맺거나 그 인상으로 인해 연상된 생생한 관념’이다. [845]

제2부 루소에서 현대까지

제18장 낭만주의 운동

18세기 프랑스의 교양인들은 감수성을 높이 찬양했는데, 감수성은 감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표현하는, 특히 공감의 정서를 잘 느끼는 경향이다. 다할 나위 없는 충분한 감정은 직접적이며 격렬한 동시에 사고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은 빈곤 상태로 버려진 농부 가족을 보고 눈물을 쏟지만, 농민 계습 전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심사숙고한 끝에 마련한 계획에 대해선 냉담하기 일쑤일 것이다. [858]
➜ 마음으로 상황을 이해한다고 해서 다는 아니라는 것, 실질적인 도움을 위해서는 머리와 마음이 같이 움직여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미래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포기하는 습관은 고리타분하고 싫증나는 일이다. 열정이 솟아날 때 사회적 행동들에 대한 사려 깊은 제약들은 참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시대에 사회적 제약 요소를 벗어던진 사람들은 내적 갈등의 휴식기에서 새로운 에너지와 힘의 느낌을 획득한다. 그러다 결국 재앙을 맞게 되어 파멸에 이르긴 하지만, 그 사이에 신적인 도취감을 즐긴다. [866]

인간은 고립된 고독한 동물이 아니며, 사회생활을 통해 살아가는 한에서 자아실현이 윤리학의 최고 원리일 수는 없다. [869]

제19장 루소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지만, 도처에 그를 구속하는 사슬이 놓여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주인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들보다 더 자유롭지 못한 노예일 뿐이다.” [883]

일반의지가 언제나 옳다고 말하는 것은, 일반 의지가 각양각색 시민들의 자기 이익들 가운데 공통적인 것을 대표하기 때문에, 공동체에 가능한 자기 이익 가운데 가장 큰 만족을 대변한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886]

제20장 칸트

“한 인간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의지에 복종해야만 하는 경우보다 더 끔직하고 두려운 일은 없다.” [894]

이 책(순수이성비판)의 목적은 우리의 지식이 경험을 초월할 수 없지만 일부는 선험적이어서 경험에서 도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895]

제21장 19세기 사상의 흐름

근대 기술에 의해 새롭게 형성된 힘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예전에 산과 폭포는 자연 현상으로만 보였다. 오늘날 불편한 산은 허물어버릴 수 있고, 편리한 폭포라면 새로 만들 수도 있다. 예전에는 황무지와 기름진 땅의 구분이 명확했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만 한다면, 황무지도 장미꽃처럼 피어나게 만들 수 있는 반면, 과학적인 지식이 부족한 낙관주의자는 기름진 땅을 황무지로 변하게 만들 수도 있다. [920]

인간관계를 다루면서도 모든 명에서 만족스러운, 현대에 어울리는 윤리 체계를 세우려면,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상호간의 권력 행사에 바람직한 한계를 긋는 일도 필요불가결하다. [922]

제22장 헤겔

헤겔에 따르면 과정은 결과를 이해하는 데 본질적인 요소이다. [927]

“세계사는 억제되지 않은 자연의 의지가 보편적인 원리에 복종하도록 함으로써 의지에 주체적인 자유를 부여하는 훈련장이다.(...)” [931]

제23장 바이런

“나의 긍지를 낮추는 것은 무엇이든 거짓으로 판단해야 한다.” [947]

제24장 쇼펜하우어

의지가 우월하다는 학설은 염세주의보다 더욱 중요하다.(...) 의지의 규모가 커지는 정도에 비례하여 지식의 지위는 더 낮아졌다. [960]

제25장 니체

“채찍을 잊지 말라.” 그러나 여자들 가운데 십중팔구는 그에게서 채찍을 빼앗을 것이며, 니체도 그런 사실을 알았기에 여자들을 멀리하며 상처받은 허영심을 고약한 말로 달랬다. [969]

아무도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는 행복할 수 없을 테지만, 정말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행복해질 겁니다. [975]➜ 행복 또한 조건이 아닌 마음먹기 나름인 것을. 내 삶을 그 자체로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면 세상의 작은 행복들이 마음으로 들어 올 것이다.

니체는 보편적 사랑을 경멸했지만, 나는 보편적 사랑이야말로 세계에 대해 바라는 모든 일을 추진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976]

제26장 공리주의자들

아주 나쁜 결과는 스튜어트가 부친의 사고방식이 협소하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조차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981]

칸트는 “당신은 해야 한다”가 “당신은 할 수 있다”를 포함한다고 역설했다. [983]

제27장 카를 마르크스

살아있는 동안에 가능하지 않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리라는 희망이 언제나 마르크스의 연구를 고무했다. [988]

철학자들은 단지 여러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과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다. [989]

제28장 베르그송

현대 세계는 반항하는 실천철학을 요구한다. [998]

철학자들의 주된 목적이 인내와 세밀한 사고로 아무것도 배울 수 없음을 보여주는 데 있는 한, 우리는 오히려 무지한 자의 편견을, 헤겔의 경우라면 ‘이성’의 이름 아래 혹은 베르그송의 경우라면 ‘직관’의 이름 아래 숭배해야 하고, 꽤 오랫동안 철학자들은 헤겔이 이익을 얻었던 오류를 수학자들이 이미 제거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게 될 것이다. [1006]

제29장 윌리엄 제임스

제임스는, 회의주의자는 속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지나쳐서 중요한 진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희망을 통한 속임이 두려움을 통한 속임보다 더 나쁘다는 사실을 보여줄 어떤 증명 방법이 있는가?” [1013]

철학의 기능은 이런저런 세계 설명 공식이 참이라면 당신이나 나에게 어떤 차이가 생기는지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여 이론은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아니라 도구가 된다. [1015]

제30장 존 듀이

대체로 인간의 조종을 받지 않는 사실들에 의존하는 ‘진리’개념은 여태까지 철학에 필요한 요소인 겸손을 가르쳤던 방식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자긍심에 대한 견제가 사라지면, 다음 단계는 일종의 광기에 도취되는 길로 접어들고 만다. 이러한 광기는 피히테와 더불어 철학 속으로 침투한 후로 철학자이든 아니든 현대인들이 쉽게 빠져드는 힘의 도취이다. 나는 이러한 도취가 우리 시대에 가장 커다란 위험 요소이며, 의도하지 않더라도 힘의 도취에 일조하는 철학은 모두 끔직한 사회 재앙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확신하다. [1029]

제31장 논리 분석철학

진정한 철학자는 모든 선입견을 검토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진리 추구에 어떤 제한을 받게 되면, 철학은 공포심으로 마비되어 ‘위험사상’을 퍼뜨리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검열을 준비하게 된다. 사실상 진리 추구에 제한을 둔 철학자는 이미 자신의 탐구 활동에 검열 장치를 마련해둔 셈이었다. [1037]

3. ‘내가 저자라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일대기를 훑고 그들의 주된 학설, 주장에 대한 설명과 당대 주류를 이루던 분위기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다음단계로 넘어가게 되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그 당시 상황묘사와 더불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때론 작가가 직접 그 시대에 주목받던 논증의 오류를 제기하고 현재와 연결시켜 질문을 제기하기도 하면서 본인의 의견을 펼쳐가기도 한다.   뚜렷한 차이가 보이는 철학자들의 비교도 보여주고 그 당시 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다른 세대의 철학자들과 문화에는 그 사상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갔으며 후대에 어떤 영향을 주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어 갔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각 시대별 장을 마무리하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는 문제들에 있어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부분에서 작가의 솔직성을 볼 수 있고 사이사이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모습, 철학자들의 실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그만의 명쾌함이 돋보인다. 또한 독자들이 주의해서 읽어 줄 부분과 기대할 부분에 대해서 다시금 집어주는 대목과 자신이 어떠한 방식으로 설명할 것인가에 대해 상세하게 말해주고 있는 부분에서는 작가의 친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함에도 이 책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너무나 많은 철학가들이 쏟아져 나오고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시간의 거리 앞에서 나는 망망대해 안에 책 한권 들고 오로지 혼자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책의 마지막 장은 작가가 그 당시 시대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과 우리가 가야하는 길에 대한 작가의 의견으로 이루어져서 작가의 생각을 더 들어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 시대와 민족을 이해하려면 철학자가 되어야 하고 철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러셀은 당시 시대상의 모순들 속에서 민족들이, 사람들이 각각 제대로 서기 바라는 마음에 이 방대하도고 심오한 철학사 책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내가 저자라면, 당대에 많은 영향력을 남겼거나, 살아생전에는 그렇지 못했지만 후대에 영향력을 남기고 있는 철학자를 중에서 더할 나위 없이 소심했거나, 고립된 생활을 하며 연구에 몰두 했던 철학자들을 몇 명 뽑아서 그들의 일대기에 대해서 다뤄보고 싶다. 성격과 그들이 이루어낸 철학적 이론이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이론에 특별히 영향을 받은 그룹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뤄보고 싶다. 여기에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철학자들도 몇몇 넣어서 같은 방식으로 비교한 것을 넣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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