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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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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2일 10시 25분 등록

1. 버트란트 러셀에 대하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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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지식을 추구하다

러셀의 확실한 지식에 대한 추구는 어려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예 몇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그가 다섯 살 때 지구가 둥글다는 말을 듣고, 땅바닥에 구멍을 파서 실제로 오스트레일리아로 나가는가를 확인하려고 했다. 또 러셀이 수학의 기하학을 배울때 그 자체로 증명이 되지 않고, 그냥 믿을 수밖에 없는 여러 공리에 부딪치자 몹시 분한 표정으로 "증명도 못하면서 어째서 이런 것을 인정해야 되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밀의 경험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는데, 수학의 기본인 2+2=4라는 진리는 '경험적인 지식'인가, 아니면 '절대적인 진리'인가하는 문제에 빠졌다고 한다. 이런 의문으로부터 그는 논리학과 수학 기초론에 관심을 품었다고 한다.

 

마르크스주의와의 만남

22살에 결혼 후 러셀은 수학과 철학에 대한 공부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래서 그는 경제학과 사회주의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1895년 러셀은 독일의 사회주의 운동을 연구하기 위해 독일을 방문하였다. <자본론>을 독파하고 사회주의자들과 교류를 했다. 그가 느꼈던 것은 독일이 영국에서 볼 수 있는 진보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사고방식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과, 반대로 온갖 형태의 억압과 악정이 판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2년간의 독일 사회주의 연구 성과를 1896년 <독일 사회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최초의 저서였다. 러셀은 자유주의자였지만 국민의 빈곤에 대한 사회주의자의 항의에는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을 "고금의 정치 문헌 중에서 최고 걸작의 하나 이다"라고 극찬하였다. 하지만 공식주의적, 교조주의적 사고방식과 계급투쟁이론 그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취하였다.

 

러셀의 습관

그의 복장은 항상 단정하였다. 그의 복장의 특색은 칼라였다. 언제나 풀기가 빳빳하고 하얀 윤기가 있는 칼라가 있다. 게다가 예전엔 없었던 하이칼라로 턱을 가려 버릴 정도로 높은 것이었다. 도보 여행을 하는 낮에는 부드러운 칼라를 했으나, 밤이 되면 어느 시골의 작은 숙소에서도 하이칼라로 단정한 모습을 갖추었다. 또 한 가지, 그는 언제나 한꺼번에 네 잔의 차를 마시고, 찻잔을 두 손으로 들고 손을 녹이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리영희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고 그가 정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과 적극적으로 사회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발언하고 활동한 것을 보면, 한국의 고 리영희 선생님이 떠오른다. 징병반대운동으로 프링크스턴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소련과 중국에 대한 전망을 책을 쓰며, 공산주의에 대한 이성적인 관찰을 한 면이 그렇다. 그러나 직접 정치에 뛰어들려고 한 점이나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는 등 귀족적인 면모 등 차이점도 많다. 허나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저서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 이성적인 접근 방법 등은 두 분을 겹쳐보이게 하는 공통점이 아닐까 싶다.

 

1950년 노벨문학상 수상강연

"우선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그 정신적 병폐인 바람직하지 않은 모든 욕구를 심리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본적인 것으로써 의식주 등 생존에 필요한 욕구, 소유욕, 경쟁심, 허영심, 권력욕 등이 있고 그밖에도 자극 애호심이나 공포심, 증오 따위가 있다. 그럼 이런 것들을 치료할 처방전은 무엇인가."

 

말년에 실존주의 철학을 받아들이다

그는 1960년(80세)에 <서양의 지혜>를 내면서 처음으로 '실존철학'을 언급했다. 이전까지 그는 철학사를 쓰면서 실존주의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쓰지 않았었다. 이는 세계대전이라는 절망적인 사건 후 과학기술이 반드시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의 세계관은 예전의 낙천주의로부터 상당히 비관주의 요소를 더해 가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인간은 고통과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전진해야 한다. 그와 같은 사고방식이 그로 하여금 실존주의 철학에 그리고 특히 야스퍼스에게 접근하도록 한 것이다.

 

러셀의 죽음

그가 세계에 초연하고 나서지 않았다면 귀족으로서 조용한 여생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사고방식에 따라 움직이며 인생을 추구하였다. 그는 회의론자처럼 사색하고 신자처럼 행동하는 근대인이며, 강한 의지와 정열을 가지고 언제까지나 일을 계속하는 인간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서전>을 집필, 전3권을 출간하였다.

1970년 2월 2일 밤, 러셀은 웨일스의 자택에서 인플루엔자 때문에 오랫동안 빛나던 생애를 마감하였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 귀

옮긴이 서문

5. 명료성이 바로 이 책의 미덕이다.

5. 러셀의 해석에 따르면 철학은 그리스 문명 속에서 처음 과학과 분리되지 않은 형태로 탄생했는데, 두 가지 경향이 그리스 문화를 지배했다.

6. 그리스 문명은 철학을 처음 탄생시켰고 중세 시대 그리스도교 문명의 출현에도 일조했으며, 중세 말 르네상스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 철학의 사상적 원류이다.

7. 로마 시대에 독창적인 철학이 생겨나지 않고 일종의 처세 철학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로마 행정의 지배력이 강하고 일상의 삶이 투쟁으로 점철 되었던 탓이다.

 ☞ 현대와 유사하네

8. 러셀이 제시한 해독제는 합리적 회의주의자의 태도로 사태를 지시하고,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사회를 다듬고 재편해 나가자는 것이다.

지은이 서문

9.  역사의 변화 과정에 통일성이 있으며, 먼저 일어난 일과 나중에 일어난 일이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하자. 이 점을 밝혀내려면 앞선 시기와 나중 시기를 한 사람의 정신 속에서 종합해야 한다.

10. 철학은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으며, 나는 바로 이 부분을 고찰하려 애썼다. 이러한 관점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서론

17.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 철학은 사변적이지만, 권위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19. 확실한 진리는 없다고 주저하며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지 않고 의연히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 철학 연구자를 위해 철학이 지금도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 철학연구자들이 우리 시대를 위해 해야할 일? 오역이 아닐까?  

 20.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이른 6세기 반 동안, 사회 결속은 철학이나 고대 그리스의 충성심이 아니라 무력에 의해, 처음에는 군사력에 의해 다음에는 조직화된 행정 권력에 의해 보장되었다.

20. 그리스도교는 의미심장한 견해 하나를 대중에게 전파했다. ... 즉 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국가에 대한 의무보다 더 중대한 명령이라는 생각이다.

22. 교회의 지도층 인사는 대부분 이탈리아, 스페인, 혹은 남부 프랑스 출신이었다. .. 교회는 과거의 전통을 계승한 곳이자 당대의 가장 뛰어난 문명을 대표하는 조직이 되었다.

22. 모든 군대가 왕들 편에 섰는데도 교회는 마침내 승리했다. .. 주된 이유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지배자와 민중이 다 같이 교회가 바로 천국의 문을 여는 힘을 가졌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24. 대개 화약의 힘에서 유래한 민족국가는 사람들의 사상과 감정에 전에 없는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문명의 통일을 믿은 로마인의 유산은 점차 파괴되어 사라졌다.

25. 16세기 이후... 민족적 동기, 경제적 동기, 도덕적 동기가 한데 결합되어 로마 교황청에 강력히 저항했다.

26. 진리는 더는 권위자에게 물어서 확인하지 않고, 내적 성찰을 통해 확인했다.

28. 규율주의와 자유주의의 갈등은 모습을 달리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졌고, 수세대에 걸쳐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9. 자유주의의 핵심은 비합리적인 교의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서 사회 질서를 보장하는 동시에, 사회 보존에 필요한 이상으로 개인을 구속하지 않고서 사회 안정을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제1권 고대 철학

제1부 소크라테스 이전

제1장 그리스 문명의 발흥

34. 그리스인들..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전통에 구속되거나 얽매이지 않고 세계의 본성과 인생의 목적에 대한 사유를 자유롭게 펼쳐나갔다.

42.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완성되기까지 약 200년이 걸렸다.

43.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전례는 대개 인간 제물을 먹는 의식보다 더 오래 지속되었으며, 그리스에서도 역사 초기에는 근절되지 않았다.

44. 숙명은 그리스 사상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이 자연법칙에 대한 믿음을 도출하게 된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

47. 디오니소스 : 주신 숭배로부터 후대 여러 철학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심오한 신비주의가 발생하고, 그리스도교 신학의 형성에도 한몫을 하게 되는 도정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49. 사냥은 현재의 쾌락을 즐기려는 것이므로 예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경작은 노동인데, 자연적 충동에 따라서는 경작을 할 수가 없다.

49. 점점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기 현재를 희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49. 인간이 성취한 가장 위대한 업적에는 도취의 요소, 즉 사려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열정의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있다.

50. 과학은 지식에 한계를 그을 수는 있지만, 상상력에 한계를 그어서는 안 된다.

53. 므네모시네(기억의 강물), 영혼이 다음 세상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망각해서는 안 되며 반대로 자연의 한계를 넘어선 기억력을 유지해야 한다.

 ☞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고, 사진찍고 정리해야 한다. 그게 구원의 길이리지도 모른다.

57. 그리스인들은.. 바로 지성과 열정을 결합함으로써 위대해졌다.

제2장 밀레토스 학파

64. 탈레스의 이야기 : 철학자들이 원하기만 하면 쉽게 부를 축적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철학자들의 야심은 다른 것이다.

제3장 피타고라스

70. 피타고라스는 아인슈타인과 에데 여사를 뒤섞은 복잡한 인물로 묘사해도 좋으리라. 그가 창시한 종교의 주요 교리는 영혼이 윤회한다는 가르침과 콩을 먹는 것은 죄라는 가르침이었다.

73. 경험만을 믿는 철학자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에 매달리는 노예로 전락하기도 하지만, 순수한 수학자는 음악가처럼 질서정연한 미의 세계를 창조하는 자유로운 존재에 가깝다.

  ☞ 경험론의 한계, 내 작업이 나가야 할 길. 먼저 개념을 세워라. 나의 철학을 사유하라.

 75. 수학에 근거하여 사유가 감각보다 우월하고 직관이 관찰보다 우월하다고 가정했다.

77. 개인적 성향의 종교는 무아경에서 도출되고, 신학은 수학에서 도출된다. 그리고 무아경과 수학은 둘 다 피타고라스에서 근원을 찾아야 한다.

 ☞ 수학이 말하는 완전함=신, 이데아로 이해됨

78. 피타고라스에서 유래한 무시간적인 영원한 존재를 향한 도덕적 염원과 논리적 동경

78. 지성에는 드러나지만 감각에 드러나지 않는, 순수하고 영원한 세계의 착상은 피타고라스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피타고라스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여기지는 못했을 것이며, 신학자들 역시 신과 영혼의 불멸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려 하지 못했을 것이다.

  ☞ 서양 철학의 근원에 피타고라스가 있었다니!

제4장 헤라클레이토스

80. 그리스인들은 추상적 사유에 더 오래 지속되는 불변적 가치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수학과 연역추리 기술을 발견한 것이다. 특히 기하학은 그리스인의 독창적인 발명품인데, 기하학이 없었다면 근대 과학은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85. 진흙탕 속에 빠진 사람이 진흙탕에다 발을 씻으려는 짓이나 마찬가지이다.

86. 헤라클레이토스의 '대립물의 혼합 학설 : "사람들은 다양하게 변하는 존재가 어떻게 자신과 일치하여 조화를 이루는지 알지 못한다. 조화는 활과 리라처럼 대립하는 힘의 긴장을 조율하는 것이다.".. 대립물이 투쟁 속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운동하는 가운데 결합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통일되지만, 통일은 바로 이질성에서 비롯된다.

88. "당신이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까닭은 늘 새로운 강물이 당신에게 흘러들기 때문이다."

"태양은 날마다 새로워진다."

 ☞ 만물유전의 정신, 헤라클레이트스의 제자들

88. 인간을 철학으로 이끄는 깊은 본능 가운데 하나가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은 당연히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나 위험을 피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89. 지상의 삶에 절망하게 되면, 평화를 구할 곳은 천국뿐인 셈이다.

90. 불이 영원하다는 말은 실체가 영원하다는 뜻이 아니라 과정이 영원하다는 뜻이다.

97. 대부분의 경우 반박은 철학 이론의 정교화를 촉진하는 서곡일 따름이다.

98. 실체는 있는 그대로 2000년 이상 존속하면서 철학, 물리학, 심리학, 신학의 근본 개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제6장 엠페도클레스

105. 엠페도클레스가 과학 분야 밖에서 보여준 독창성은 4원소설을 내놓고 사랑과 다툼이라는 두 가지 원리를 이용하여 변화를 설명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제7장 아테네의 문화

108. 노동할 필요가 없었던 젊은이들은 여유 시간의 대부분을 과학, 수학, 철학 연구에 썼다.

 ☞ 노동의 시대를 어떻게 탈출하나? 유토피아는 올까? 

 109. 플라톤이 가르쳤던 아카데미는 다른 모든 학파보다 오래 살아남아,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도 200년간 이교사상이 허용되는 섬처럼 존속했다.

제8장 아낙사고라스

113. 처음으로 아테네에 철학을 전파하고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형성하느 데 영향을 준 철학자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제9장 원자론자들

117. 인과관계는 어떤 것에서 시작해야 하고 그것이 시작되는 곳이 어디든 최초의 여건을 설명해줄 원인을 말하기는 어렵다.

122. 현대 물리학자들은 지금도 물질이 어떤 의미에서 원자라고 믿지만 빈 공간이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물질이 없는 곳에도 어떤 것, 특히 빛의 파동이 여전히 존재한다.

124. 사유도 일종의 운동이기 때문에 그 밖의 다른 것에 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

125. 철학은 르네상스기에 이를 때까지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특징이던 활력과 독립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 절대 진리 라는게 확립되면, 삶은 무의미하다. 고로 '오직 모를 뿐', '합리적 회의주의'의 자세가 중요하다.

제10장 프로타고라스

126. 민주정치가 노예제도에 손을 대지 못했던 까닭은 노예제도가 바로 부유층이 자유 시민계층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부를 향유할 수 있는 토대였기 때문이다.

133. 도시국가 아테네의 부는 급속도로 증대하고 문화도 빠르게 성장했는데, 특히 부는 외국과 무역을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는 전통 도덕과 전통 신앙이 파괴되는 시대에 늘 일어나는 일이다.

135. 아테네 민주정치는 특별사면을 통해 내부 정적들끼리 정면으로 맞서 보복하는 것을 막았으나, 서로 기소하기 위해 온갖 구실을 지어내곤 했다. 이런 정세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재판을 받고 사형되었다.(기원전 399)

 

제2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139. 우둔한 사람은 자신이 들은 내용을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이해할 수 있게 바꾸어 말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보다는 차라리 철학자들 가운데 나를 가장 호되게 비판하는 철학자가 내 사상을 전달해주기 바란다.

 ☞ 쉽게 산다고, 쓴다고 가치있는건 아니지, 지혜를 키워, 날카롭게 사유하자. 

141. 소크라테스는 "사악한 자이며 땅 아래에 있는 것과 하늘 위에 있는 것을 탐구하는 괴상한 사람이고, 나쁜 명분을 좋은 명분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에 능한 데다 그런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까지 한다"는 고소장에 따라 기소되었다.

143. "오로지 신만이 지혜롭지요.. 자신의 지혜가 사실은 가치 없다는 것을 아는 자가 바로 가장 현명한 자라고 말이지요."

 145. "나는 여러분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여러분의 말보다는 신께 순종하렵니다... 신의 뜻에 봉사하는 일이 국가에 봉사하는 일보다 더 선한 일이라 믿기 때문이지요."

 ☞ 기독교의 교리를 보는 듯

146. 만약 여러분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으로 어떤 이가 여러분의 악한 생활을 꾸짖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지요... 가장 쉬우면서 가장 고결한 방법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빼앗고 해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151. 현미경의 발달로 발견한 사실, 예컨대 박테리아가 질병을 퍼뜨린다는 사실을 보자. 이전에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이 질의응답 방법을 써서 경험적 지식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는 도저히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152. 변증법, 자유로운 토론 습관은 논리적 일관성을 증진하기 때문에 유용하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의 발견이 목적이라면 소용없는 방법이다.

제12장 스파르타의 영향

155. 훈련의 목적은 강인하고 고통에 무심하며 훈육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문화교육이나 과학교육을 가치 없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교육의 목표는 국가에 완벽하게 헌신하는 훌륭한 군인을 배출하는 일이었을 따름이다. 

 160. 이상주의와 권력애가 통합된 결과로 인간은 몇 번이고 길을 잃었으며, 오늘날도 여전히 헤메고 있다.

제13장 플라톤 사상의 근원

166. 플라톤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 . 첫째는 이상향Utopia, 둘째는 이상이론으로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보편자 문제를 다룬 선구적 시도로 평가된다. 셋째는 영혼 불멸을 지지하는 논증이고, 넷째는 우주론이며, 다섯째는 지각이 아닌 상기로 간주되는 지식 개념이다.

제14장 플라톤의 이상향

170. 이상 국가론에서 도출된 한 가지 결론은 통치자가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176. 일본인 천황 사상 예, 플라톤은 이러한 신화를 강제로 수용하도록 교육하는 일이 철학과 양립할 수 없으며 지성의 성장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듯하다.

 179. '이상'은 자기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욕구하는 사람이 그 밖에 누구나 욕구하기를 바라는 욕구의 대상이라고 정의 내려도 좋다. 나는 누구나 넉넉하게 먹고, 누구나 서로 친절하게 대하기를 바랄 수도 있는데, 만약 내가 바란다면 남들도 그렇게 바라기를 원하기 마련이다.

 183. 전운에 휩싸인 분위기에서 철학자가 성취할 일은 많지 않았다.

제15장 이상 이론

185. 플라톤의 이상 이론 : 철학자는 '진리를 통찰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 그저 아름다운 사물만 사랑하는 사람은 꿈에 빠져 있는 데 반하여 절대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사람은 완전히 깨어 있다.

187. 이상적인 고양이는 실재하지만, 개별 고양이들은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189. 창작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정도가 크든 작든오래 애쓴 끝에 진리나 아름다운 형체가 한순간 눈부시게 훤히 나타나거나 나타나는 듯이 보이는 체험을 한다. 그저 사소한 일에서 시작해 체험하는 수도 있고, 우주를 바라보며 체험하기도 한다.

189. 나로서는 어떤 주제로 책을 쓰고 싶으면 우선 주제와 관련된 다른 내용들 하나하나에 친숙해질 때까지 세부 사항을 차근차근 알아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운이 좋으면 가각 다른 내용이 서로 알맞게 연결되면서 전체 윤곽을 파악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파악한 내용을 적어 내려갈 따름이다. .. 비유를 들자면, 우선 안개 속에서 산책로와 산등성이와 산골짜기에 따로따로 익숙해질 때까지 구석구석 산을 돌아다녀보고 나서, 멀리서 밝은 햇빛에 드러난 산 전체를 보는 체험과 같다.

192. 플라톤 철학의 구석구석에서 피타고라스 사상과 마찬가지로 지성주의와 신비주의가 융합되지만, 앞서 말한 최고 정점에 이르면 신비주의가 우위를 차지한다.

199. 플라톤이 찾으려 했고 사모스 출신 아리스타르코스가 표면상 찾아낸듯했던 기하학적 단순성은 결국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199. 전문화의 폐해 : 결국 누구든 플라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태에는 마음 쓸 겨를조차 없이 그리스어를 공부하느라 젊은 시절을 다 보내지 않았다면 플라톤에 관한 글을 써서도 안 된다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 그리스어, 히브리어 해야지. 수학도 해야지, 철학도 해야지, 과학도 알아야지 아이고 골이야~

제16장 플라톤의 영혼 불멸설

202. 이원론에서 금욕주의 도덕이 자연스럽게 파생한다.

204. 육체의 폭정에서 해방되면 위대한 무엇을 성취하는 데기여하게 되지만, 덕이 커지는 바로 그만큼 죄가 커지기도 한다.

205. 경험주의자에게 육체는 우리가 외부의 실재계와 접촉하게 되는 통로이지만, 플라톤에게 육체는 이중으로 악한, 망원경을 통하듯 희미하게 보이도록 사물을 왜곡하는 매체인 동시에 지식 추구와 진리 통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욕의 근원이다.

207. 성 바울로 "씨앗은 썩지 않고서는 싹을 틔우지 못한다"

 212. 소크라테스는 이전의 몇몇 철학자들과 달리 사고가 과학적이지 않고 우주가 자신의 윤리적 기준과 일치한다고 증명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이것은 진리를 배반하는 태도이며, 철학자가 저지르는 가장 큰 죄이다.

제17장 플라톤의 우주론

214. 플라톤의 신은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의 신과 달리 무에서 세계를 창조하지 않고 이전에 존재하던 물질을 재배열했을 따름이다.

215. 이미지 : 움직이지만 불변하는 영상을 시간이라 부른다. (피타고라스학파의 행성이야기)

219. 세계 속에 필연과 목적이 혼합되어 있다는 믿음은 철학이 생겨나기 오래 전부터 그리스인들이 모두 실제로 공유한 일반화된 믿음

 제18장 플라톤의 지식과 지각

224. 담론과 지식이 가능하려면 조금이라도 불변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232. 플라톤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을 받아 다른 지식을 지나칠 정도로 수학과 비슷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는 다른 위대한 철학자들처럼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실수는 실수였다.

 제19장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235. 아리스토렐레스는 오늘날의 교수처럼 글을 쓴 첫 인물이다.

236. 대략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상식으로 희석된 플라톤 사상이라고 묘사해도 좋다.

237. 요점은 보편자란 홀로 실존할 수 없고, 특정한 사물들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239. 스콜라 철학에서 '본질' essence 이란 "당신의 본질은 '당신이 바로 당신의 본성에 따라 존재하게 하는 무엇'이다"

239. 대리석은 질료이지만 조작가가 틀을 잡은 모양은 형상이다.

243. 신을 지지하는 주된 논증은 제일 원인 논증이다. 말하자면 운동의 기원이 되는 무엇이 존재함이 틀림없고, 이 무엇 자신은 운동해서는 안 되며, 영원한 실체이자 현실태여야 한다.

244. 플라톤은 수학에 기울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에 기울었다.

247. 그는 그저 인간이 이성을 지니는 한, 불멸하는 신성에 참여한다고 믿었을 따름이다. 자신의 본성 속에 깃들인 신성한 요소를 늘리는 일은 인간에게 열려 있으며, 신성한 요소의 증대가 바로 최고 덕이다.

제20장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253. 우리는 본질적인 구조 탓으로 최선의 것들은 소수에게만 제한적으로 부여하고, 다수에게는 차선의 것들에 만족하도록 요구하는 사회에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나는 어쩔수 없는 구조를 받아들일 것인가? 정말 어쩔수 없는 것인가?

254. 관현악단에서 제일 바이올린과 오보에는 둘 다 탁월한 연주를 위해 필요하지만, 제일 바이올린이 오보에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262. 그는 종교에 관해 인간이 체험하는 전체 영역을 저버리고 무시했다고 말할 수도 있겟다. 그의 주장은 열정이 없이 안락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나 유익한 견해이다.

제21장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267. 철학자들이 내놓은 견해는, .. 그들이 속한 계급의 금전상 이익과 일치했다.

 ☞ 계급을 이해하라. 사회 경제의 흐름을 이해하리라~ 예측도 가능하리라.

 269. 정치 체제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목표로 하면 좋은 정치 체제이고, 정치 체제 자체만 돌본다면 나쁜 정치 체제이다.

275. 르네상스 시대에 평민 계급이 문화를 향유하기 시작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교양을 갖춘 신사 계급에 의한 정치라는 그리스식 개념이 점점 더 퍼져나가 18세기가 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제22장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277.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서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은 삼단논법 학설이다.

284. '실체'는 한마디로 주어와 술어로 구성된 문장 구조를 세계 구조로 옮겨놓은데서 기인한 형이상학과 관련된 실수의 산물이다.

285. 사실 근대 전반에 걸쳐 과학, 논리학, 철학 분야는 모두 아리스토텔레스 제자들의 반대에 맞서는 과정을 거쳐서 진보했다.

제23장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287. 천체들이 그리스인이 사랑한 질서와 기하학적 단순성을 지닌 신성한 존재의 의지에 따라 운동하나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291. 발사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운동한다는 갈릴레오의 발견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에 속한 그의 동료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 당연한 관찰을 못했구나. 왜 그랬을까? 왜 잘보지 못했을까?

 제24장 초기 그리스 수학과 천문학

296.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은 지금까지 저술된 위대한 저술 가운데 하나로서 그리스인의 지성이 보여준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296. 그리스인 순수하게 이론을 사랑하면서 이룩한 업적은 갑자기 전쟁과 천문학의 열쇠가 되었다.

298.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10은 신비의 수였다.

302. 로마 군대의 지배 아래서 그리스인들은 정치적 자유를 누리는 데 필요한 자신감을 잃게 되었고, 마비된 듯 무력하게 이전 학자들을 존경할 뿐이었다.

 

제3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 철학

제25장 헬레니즘 세계

 305. 알렉산드로스가 침입한 곳이라면 어디나, 아프가니스탄의 산속이든 작사르테스 강의 기슭이든 인더스 강의 지류이든 그리스 도시가 들어섰으며, 자치정부의 법령과 더불어 그리스 제도를 재현하려 했다.

306. 그리스인들은 야만인들에 대해 우월감을 아주 강하게 느꼈다.

308. 오늘날까지도 히말라야 산지의 족장들은 자신들이 알렉산드로스의 후예라 주장한다.

315. 불확실성의 시대는 뛰어난 덕을 겸비하여 성인의 경지에 이른 극소수 사람들의 삶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겟지만, 평범한 일상의 덕을 갖춘 훌륭한 시민들에게는 해롭게 작용했다. 당신이 저축해둔 돈이 내일 전부 없어질지도 모른다면 검약이란 소용이 없어진다. 당신이 정직하게 대한 사람이 당신을 속인게 확실하다면 정직이란 어떤 이득도 주지 못한다.

315. 비위나 맞추는 변절만이 생존과 행운을 가능하게 만든다면 진실을 놓고 벌이는 논증이란 헛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 너무나 현실적인 글이다. 난 헛공론 속에 외롭게 서있는가? 탈출하자~!

 제26장 키니코스 학파와 회의주의 학파

 317. 19세기 초, 괴테는 현실에 만족한 편이고, 벤담은 개혁가이며, 셸리는 혁명가이고, 레오파르디는 염세주의자이다.

318. 그들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좋은 국가를 세울 수 있느냐는 물음을 던지지 않고, 이렇게 물엇다. 인간은 어떻게 하면 사악한 세상에서 덕을 갖출 수 있을까, 또는 고통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

 ☞ 질문이 중요하다. 세상은 사악한 것인가? 바꿀 수 없는가?

323. 회의주의가 게으른 사람에게 위안을 준 까닭은, 무지한 사람도 평판이 좋은 지식인 못지않게  현명하다는 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330. 올림포스의 신들이 신뢰를 잃게 되면서 동방의 종교들이 침투할 길이 활짝 열렸고, 동방의 종교들은 그리스도교가 승리를 거둘 때까지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제27장 에피크로스 학파

 333. 에피쿠로스는 순수하고 인간적인 우정을 맺는 아주 비범한 재능을 타고난 인물로, 공동체에 소속된 회원들의 어린아이들에게도 상냥하고 유쾌한 편지를 쓰곤 했다.

336. 에피쿠로스는 빵만 먹고 살았으며 잔칫날에도 치즈를 조금만 먹었다.

 ☞ 쾌락주의에 대한 오해가 있었구먼~

339. 에피쿠로스가 신들의 존재를 굳게 믿은 까닭은, 그러지 않으면 신들에 대한 관념이 널리 퍼진 현상을 설명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343. 그리스도교는 지옥에 관한 이전의 민간 신앙을 체계화했을 뿐이다.

344. 인간의 본능 속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깊게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에피쿠로스의 복음은 어느 시기에든 대중의 마음을 폭넓게 사로잡을 수가 없었다.

제28장 스토아 철학

349. 참으로 선할 뿐인 덕은 완전히 개인에게 달려있다.

357. 철학자들은 보통 사생활 속에서 빚어지는 우연한 사건들을 대체로 도외시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다... 철학자들은 난세에는 위안을 찾고, 태평시대에는 훨씬 순수하고 지적인 연구에 관심을 쏟는다.

359. 그리스와 로마 문명은 농촌지역에 거의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 채 실제로 도시 지역에 국한되었다. 심지어 도시들에서도 극심한 가난으로 고통을 겪는 무산자 계급과 노예 계급이 존재했다.

361. 에픽테토스 : 인간은 저마다 연극 속의 배우이고, 신이 배역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배역이 무엇이든 우리의 배역을 훌륭하게 연기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364.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모순은 초기부터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가 바뀜에 따라 형태를 다양하게 바꾸면서 철학사를 관통하여 흐른 모순 가운데 한 가지이다.

367. 스토아 철학자들은 지성의 빛에 따라 명백한, 만인이 인정하는 어떤 원리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368. 17세기의 전제정치에 효과적으로 맞서 전투를 벌일 기회가 왔을때, 스토아 학파의 자연법 학설과 자연권 학설은 그리스도교의 옷으로 갈아입고, 고대의 어떤 황제도 결코 부여하지 못한 실천적 힘을 획득했다.

 제29장 로마제국의 문화

369. 로마 제국의 역할 : 단일 문명이란 생각에 익숙해지도록 기여, 헬레니즘 문명을 이슬람교도들에게 전하고, 마침내 서유럽에 전달한 역할.

372. 로마 세계는 행복했지만 모험보다 안전을 선호했기 때문에 삶의 맛이나 재미는 사라졌다.

373. 로마인들의 분위기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연애의 모험을 즐긴 다음 이성에 따라야 하는 결혼 생활에 정착한 듬직한 청년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374. 콘스탄티누스는 동족 절반 지역의 수도를 비잔티움에 세우고, 콘스탄티노플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불렀다.

 ☞ 현재의 이스탄불, 동로마(그리스어권)

381. 종교들 가운데 그리스도교가 위안을 이끌어내는데 가장 효과적인 종교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로마의 국교가 될 때까지 그리스에서 많은 요소를 흡수했고, 이런 요소를 유대교의 요소와 함께 후대의 서유럽에 전달해주었다.

383. 한 인간 가족, 한 카톨릭 교, 한 보편 문화, 한 세계 국가라는 개념은 로마가 거의 실현한 단계에 이른 때부터 내내 여러 사상가의 사고를 지배했다.

 ☞ 지구촌, 세계화, 통합, FTA 등

제30장 플로티노스

388. 플로티노스는 스피노자처럼 도덕적 순수와 고결함을 갖추어 대단히 감명을 주는 인물이다... 끊임없이 할 수 있는 만큼 간단한 방식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믿음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390. 플라티노스의 형이상학은 일자 The One, 정신 Spirit, 영혼 Soul의 성 삼위일체에서 시작한다.

393.  자신의 육체 밖에 서 있게 되는 '무아경, ecstasy' 체험은 플로티노스에게 자주 일어났다.

 ☞ 체험이 있었구나. 머릿속에서만 생각한건 아니었구나.

401. 플로티노스는 끝이자 시작이다. 즉 그리스인의 관점에서는 끝이고 그리스도교 세계의 관점에서는 시작이다.

 

제2권 가톨릭 철학

서론

404. 내가 사용할 가톨릭  철학이란 말은 아우구스티누스부터 르네상스까지 유럽 사상을 지배한 철학을 의미한다.

405. 교회와 자주 갈등을 빚던 세속 통치자들은 자신들을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이 가톨릭 신앙의 진실성을 깊이 확신했기 때문에 교회의 힘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진보운동, 노동운동도 진실성이 담보된다면 거대한 자본의 힘도 굴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09. 후대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누에 보이는 세상에서 누리는 이렇듯 단순한 행복을 알지 못한 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상을 희망할 분이었다.

 

제1부 교부 철학

제1장 유대교의 발전

412. 그리스도교 안에서 가장 중요한 유대교적 요소, <성스러운 역사>, <신이 선택한 민족>, <의로움>, <율법>, <구세주>, <천국>

 417. 유대 민족과 다른 고대 민족을 구별하는 특징은 유대인들이 보여준 불굴의 민족적 긍지였다.

425. 유대교도는 그리스도교도와 마찬가지로 죄에 대해 많이 생각했으나, 그들 자신을 죄인이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429. 중세 시대 내내 이슬람교도는 그리스도교도보다 문명을 더욱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면에서도 훨씬 더 훌륭했다.

  ☞ 이런 과거의 역사가 이스라엘과 중동의 화해를 이끌 수는 없을까.

 제2장 초기 그리스도교

 430. 성 바울로는 이방인들을 포용하기 위해 할례나 모세 율법의 준수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437. 기번이 정리한 그리스도교 성장의 원인: 1. 이단을 관용하지 않는 종교적 열의, 2. 개선한 내세 교리 3. 기적의 영향력, 4. 순수하고 엄격한 도덕, 5. 그리스도교 사회의 통합과 규율

441. 정통 그리스도교는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어가야 햇다. 성부와 성자의 구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아리우스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고, 성부와 성자가 하나라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사벨리우스주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단에 빠지기 참 쉽다.

제3장 교회의 세 박사

 443. 네 사람: 성 암브로시우스, 성 히에로니무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

455. 히에로니무스 : "..그리스도는 우리 문 앞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헐벗고 굶주린 채 죽어간다네."

458. 그리스도교 신학은 두 분야로 나뉘는데, 하나는 교회와 관련되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영혼과 관련된다. 후대에 이르러 가톨릭교는 교회를 강조하고 개신교는 개인의 영혼을 강조

464.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원론을 받아들인 마니교도와 반대로, 악이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탈선에서 비롯된다고 믿게 되었다.

제4장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과 신학

 466. 신은 질서와 배열 뿐만 아니라 물질도 창조하셨다. 무에서 일어나는 창조가 불가능하다는 그리스인의 견해는 그리스도교 시대가 지나는 동안 간헐적으로 등장해 범신론으로 이어졌다.

468. <독백> : "알고 싶어하는 너는 네가 누구인지 아느냐?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안다. 너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너는 너 자신이 단일한 존재라 생각하는가, 아니면 합성된 존재라 생각하는가? 나는 모른다. 너는 네가 생각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당연히 알고 있다."

 ☞ 데카르트와 가생디의 "나는 걷는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의 철학이 들어있다.

472. 점성술의 거짓은 같은 별점을 타고난 쌍둥이의 운수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로 입증되기도 한다.

479. 종말론은 유대교에 원래 있던 사상으로 주로 <요한 묵시록>을 통해 그리스도교로 들어왔다.

480.

야훼 = 변증법적 유물론

구세주 = 마르크스

선민 = 프롤레타리아

교회 = 공산당

그리스도의 재림 = 혁명

지옥 = 자본가의 처벌

천녀왕국 = 공산사회

482. 교리들이 교회가 개종한 야만인들에게 넘겨준 선입견이었다는 점을 알아차리면, 그 뒤에 이어진 시대에 다른 어느 시대보다 잔혹한 사건과 미신이 득세한 현상은 조금도 놀랍지 않다.

제5장 5세기와 6세기

 492. 유스티니아누스는 아테네의 철학 학원들을 폐쇄하는 위업(532)을 세운 지 3년 만에 훨씬 칭찬할 만한 다른 위업, 즉 성 소피아 성당 건축에 착수했다.

제6장 성 베네딕투스와 그레고리우스 대교황

495. 6세기 이후, 교회는 살아남은 고대 로마 문화를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교회 제도는 후대의 학문과 세련된 예술의 부흥을 가능하게 만든, 튼튼한 기초를 닦아놓았다.

495. 수도원 운동, 교황 체제의 영향, 선교를 통한 개종에 주목하자.

498. 베네딕투스 수도회 대수도원장의 솔직한 고백 : "나는 청빈을 서원함으로써 매년 10만 크라운을 받았으며, 순명을 서원함으로써 군주의 반열에 올랐다."

507. 학문에 대한 이러한 적대감은 적오도 4세기 동안 교회 내에 살아남아 제르베르 시대까지 지속되었다. 교회는 11세기 이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학문에 호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509. 몰락해가는 동안에도 로마는 로마 시를 정복한 자들의 영혼에 로마의 족쇄를 채우는데 성공했다.

 제2부 스콜라 철학

 제7장 암흑기의 교황 체제

 513. 교황들은 샤를마뉴의 영도 아래 이탈리아와 독일을 정복한 프랑크 왕국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위기를 돌파했다. 이 동맹의 결과 신성 로마 제국이 출현하고, 신성 로마 제국은 교황과 황제가 조화롭게 공존을 추구할 정치제도를 갖추었다.

  ☞ 잘 몰랐던 유럽 역사

515. 로마가 누리는 특권이 동방의 여느 도시의 특권을 능가한 까닭은 제국의 전통을 베드로와 바울로의 순교 전설이나 초대 교황 베드로의 전설과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523. 교황은 때로는 지지를 보내는 대중의 박수로 선출하고, 때로는 황제나 왕이 지지하여 선출하거나 10세기에 그랬듯이 로마 도시 지역의 지배권을 장악한 자들이 추대하여 선출하기도 했다.

526. 다가올 몇 세기 동안 만약 문명이 존속한다면 르네상스 이후보다 더욱 다양한 양상을 보일 것 같다. 문화 제국주의는 권력을 앞세운 제국주의 보다 더욱 넘어서기 어려운 장애물이다.

제8장 요한네스 스코투스의 사상

529. 학자들은 자주 유목민처럼 어쩔 수 없는 유랑 생활로 내몰리곤 했다.

제9장 11세기 교회 개혁

537. 배후의 동기는 성직자와 속인을 완전히 분리함으로써 성직자 계급의 힘을 키우는 것이었다.

543. 대주교와 하위 성직자들은 귀족 계급과 결연하여 개혁에 강력히 반대했다. 다른 한편 상인 계급과 하층 계급은 성직자들이 경건해지기를 소망했다.

548. 성 안셀무스 : 신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의 제창자, 브래들리 "있을 수 있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존재한다"

 제10장 이슬람 문학과 철학

551. 이슬람의 기원 헤지라 : 무하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피신한 사건을 가르킨다.

553. 661년 무하마드의 사위 알리가 죽은 뒤 이슬람교도는 두 종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엇다. 수니파가 더 큰 종파이고, 시아파는 알리를 계승햇다.

제11장 12세기

 562. 12세기 / 1. 황제권과 교황체제의 계속되는 갈등, 2. 롬바르디아 도시들의 발흥, 3. 십자군, 4. 스콜라 철학의 등장

572. 아벨라르 <긍정과 부정> 1121~1122년에 씀. 논쟁 자체를 즐기고 있다. 독잔의 선잠에 빠져 있던 사람들을 깨우는 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574. 무미건조한 스콜라 철학 방법과 정반대로 강한 신비주의 운동이 일어났는데, 성 베르나르두스가 이 운동의 지도자였다.

제12장 13세기

578. 13세기의 위대한 인물들, 인노켄티우스 3세, 성 프란체스코, 프리드리히 2세, 토마스 아퀴나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 유형에서 최고 권위를 갖는 대표자들이다.

587. 종교재판소는 전반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590. 성 도미니코에 대해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인간적 특징은 작센의 요르단에게 나이 든 여자보다 젊은 여자들과 대화 나눌 때가 더 좋다고 고백했다는 것뿐이다. 1242년 도미니코 수도회는 요르단이 쓴 도미니코의 전기에서 이 구절을 삭제해야 한다는 교령을 엄숙하게 선포했다.

 ☞ 완전 코메디~ 기억해두고 싶은 예화!

제13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

593. 중요한 저작 <이교도 반박 대전>, <신학 대전>

595. 신이 자신의 본질인 까닭은 그렇지 않으면 단순하지 않고 본질과 존재로 합성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597. 그리스도교도는 예정설을 믿기 때문에 신이 개별 사물을 인식한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602. 신을 아는 세 가지 길이 있는데, 이성으로 통하는 길과 계시로 통하는 길, 그리고 오직 계시로 미리 알려진 중요한 것을 직관함으로써 통하는 길이다. ... 아퀴나스는 신비주의보다 이론을 다지기 좋아하는 철학자이다.

604. 그는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는 탐구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그는 철학을 시작하기 전에 벌써 진리를 알고 있다. 진리는 가톨릭 신앙 안에서 선언된다.

 제14장 프란체스크 수도회의 스콜라 철학자들

615.오컴의 격률에 따르면 "존재들은 필요 없이 늘어나서는 안 된다." 오컴은 이 격률을 말하지 않았지만 똑같은 효과를 내는 말을 했다. "더 작은 수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큰 수로 하는 짓은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620. 13세기에 접어들면서 철학, 신학, 정치, 사회, 모든 측면을 아우른 위대한 종합에 이르렀는데 여러 요소들이 결합하는 과정을 거쳐 천천히 이루어졌다. 첫째 요소는 철학 사상들이었다. 다음 요소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결과로 대량 유입된 동양의 종교들이었다.

622. 그리스도교는 여러 종교에서 힘의 원천이 되는 요소들을 찾아 결합했다. 그리스도교는 유대인들에게서 성서와 한 종교 이외에 모든 종교는 거짓이며 악하다는 교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극단적인 배타성과 모세 율법의 불편은 피했다. ... 부활절은 유대교의 유월절과 이교도 신의 부활축전을 결합한 결과물이었다.

 624. 1300년을 희년으로 제정하고, 그 해 로마를 방문하여 머물면서 일정한 종교 의식에 참석한 모든 가톨릭교도는 완전한 대사를 받는다고 선포했다. 덕분에 교황청의 금고에 엄청난 돈이 쌓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 시민들의 호주머니도 두둑해졌다. 100년마다 희년이 돌아오게 되어 있었으나, 50년으로 기간을 단축하고 나서 이익이 커지자 다음에는 25년으로 단축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633.  정신은 새로 맛본 자유에 도취되었다. 도취는 지속될 수 없었지만, 짧은 순간이나마 공포심을 차단했다. 이렇게 기쁨에 찬 해방의 순간 속에서 근대가 탄생했다.

  

제3권 근현대 철학

제1부 르네상스에서 흄까지

제1장 일반적 특징

638. 보통 ‘근대’라고 부르는 역사적 정신적 전망은 여러가지 점에서 중세에 속한 사고방식과 달랐다.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특징은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과학의 권위가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638. 근대 문화는 성직자보다 속인의 삶과 관계가 더 깊다. 국가의 힘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문화를 조정하는 정부 권력 기구가 교회를 대체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639.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 이후, 현대적인 의미에 민주주의가 중요한 정치적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사유재산제에 근거한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사회주의는 1917년 에 이르러 최초로 정권을 획득한다.

 640. 응용과학은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부터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고, 비중이 계속 중가하여 인간의 사고에서 이른과학을 거의 몰아내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642.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영감을 받은 철학이 바로 힘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여기서 인간이 아닌 존재를 단지 가공되지 않은 재료로 생각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제 목적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숙련과정에만 가치를 부여할 따름이다. 이러한 경향도 일종의 광기요 바보짓이다. 이는 우리 시대에 가장 위험한 철학이다. 건전한 철학은 이에 대항할 해독제를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제2장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

647. 중세적 사고방식 대립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운동과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인들은 문화를 대단히 진지하게 다루고 소중히 여기지만, 도덕과 종교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649. 르네상스기는 철학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룬 시기는 아니지만, 17세기 위대한 철학의 도래에 꼭 필요한 예비 단계였다. 우선 르네상스 운동은 지성을 옥죄는덮게가 되어버린 엄격한 스콜라 철학의 체제를 무너뜨렸다.

650. 르네상스 운동은 신플리톤주의자와 아랍의 주석가가 억지로 갖다 붙인 허황된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원전을 통해 직접 얻은 진정한 지식을 증가 시켰다. 지적 활동은 예정된 정통 신앙의 보존에 두며서 수도원에 틀에박힌채 빠져드는 명상이 아니라, 기쁨에 찬 사회적 모험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장려한 점을 더욱 중요했다.

650. 르네상스는 대중의 지지를 얻은 운동은 아니었다. 소수 학자와 예술가들이 참여한 운동으로서 자유사상을 지지한 후원자들, 특히 메디치 가문과 인문주의에 경도된 교황이 장려한 지적 흐름에 속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 후원자들 때문에 르네상스 운동이 크게 성공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 해석이 애매하다. 후원자들 때문에 르네상스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다가 문맥에 맞는 것이 아닌지?

653. 도덕의 영역 바깥에서 보면 르네상스 운동은 여러 면에서 탁월한 장점이 있다. 건축, 회화, 시 분야에서 르네상승 운동은 명성을 유지했는데,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같은 위대한 인물을 배출했다. 르네상스 운동은 교육받은 지식인을 중세문화의 편협상에서 해방시켰으며, 여전히 고대 숭배의 노예 상황에 놓안 학자들로 하여금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뿐만 아니라 권위가 논박되기도 한다는 점을 의식하게 했다. 그리스 세계에 대한 지식의 부흥을 이끈 르네상스 운동은 고대 그리스의 업적과 성취에 맞서 다시 경쟁하는 정신적 분위기를 형성했다.

 ☞ 르네상스의 의미

 

제3장 마키아벨리

654. 르네상스기에 중요한 이론 철학자는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지만 정치철학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린 니콜로 마키아 벨리가 출현한다.

654. 그의 정치 철학은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학설로 사태를 직시하며 스스로 경험한 것에서 나온 결과물인데, 목적의 선악 여부와 상관없이 정해진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 

654. 마키아벨리란 이름에 늘 따라다니는 비방이나 악평은, 대체로 악행을 솔직하게 인정한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긴 위선자들의 분개에서 비롯된다.

655. 그의 유명한 저술인’군주론’은 1513년애 집필하여 로렌츠 2세에게 바쳤는데, 메디치 가문의 호의를 얻으려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657.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가 국가 안에서 두드러진 자리를 차지행야 하는 까닭은 종교가 곧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결속과 유대감 형성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662.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떤 종류든 권력이 필요하다.이런 쳥범하고 분명한 사실은 “정의가 이긴다’ 다시 말하면”악은 승리해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표어에 묻혀버린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이 이긴다해도 그것의 힘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제4 장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665. 에라스무스도 모어도 엄리한 의미에서는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바로 혁명 시대 이전의 기질을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이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가 있다. 혁명 시대 이전에는 온건한 개혁을 요구하는 태도가 널리 퍼졌는데, 극단주의자들의 반동에 소심한 개혁가들이 겁을 먹지 않아도 되던 시대였다. 그들은 또한 신학이나 철학에서 스콜라 철학을 배경으로 일어난 보수적 반동사상의 특징인 체계성이라면 전부 혐오했다.

676.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사는 삶이 대부부의 다른 유토피아에서 사는 것 못지않게 지루해 견디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성과 변화는 행복한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데, 유토피아에서는 다양성과 변화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점은 바로 게획에 의해 조직된 모든 사회가 지닌 결점인데, 상상 곳에서든 현실 속에서든 마찬가지이다.

 제5장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677.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은 둘 다 문명의 발전이 더딘 나라들이 지적인 문명의 발전이 앞선 이탈리아  지배에 맞서 일으킨 반란이었다. 종교개혁은 정치적인 반항이자 신학적 반항이기도 했다. 반 종교개혁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자유에 맞선 반항일 따름이다. 종교개혁은 독일 중심에서 일어났고, 반종교개혁은 스페인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678.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세 위인이 바로 루터, 칼맹, 로욜라이다.

679. 신학상의 문제와 결부되지 않을 때면 언제나, 그들은 최고 수준의 교육을 제공했다. 다른 곳에서는 배우지 못할 수준 높은 수학을 데카르트에게 가르친 자들도 바로 예수회 수사들이었다. 정치적으로 그들은 일사분란한 고행 단체의 일원으로서 어떠한 위험이나 역경에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680.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결과는 처음에는 지성계 전반에 나쁜 영향을 미쳤으나 종국에는 유익한 편이었다. 30년 전쟁으로, 개신교나 가톨릭교도 가운데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승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

680. 신학상의 싸움을 혐오하게 되면서, 유능한 사람들은 세속 학문, 특히 수학과 과학에 점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6세기는 루터의 등장 이후, 철학적인 면에서는 불모의 시대였으나, 17세기에는 위대한 인물들이 나타났으며 그리스 시대 이후 가장 괄목할만한 진보를 이루었다.

 ☞ 종교적인 싸움이 끝이 없다는 사실이 종교에 대한 무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시대 현상이다. 그래서 문화적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문화제국주의, 대중문화의 벽을 넘어서기가 쉽지는 않다. 제6장 과학의 발흥

682. 위대한 과학자 네 사람,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은 과학을 강조한 뒤어난 인물들이다. 이들 가운데 코페르니쿠스는 16세기에 살았으나 당대에 미친 영향은 전무했다.

684. 과학자를 과학자답게 구분해주는 특징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그리고 왜 그것을 믿느냐에 달려있다. 과학자들의 신념이 잠정적인 믿음으로서 독단적인 믿음이 아닌 까닭은 증거에 근거할 뿐 권위나 직관에 기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이론을 가설이라고 말할 권리가 있고, 그에게 반대한 자들은 새로운 가설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치부해버렸기 때문에 오류에 빠졌던 셈이다. 근대 과학의 토대를 마련한 과학자들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두 가지 장점을 다 지닌다. 하나는 한없는 인내를 요구하는 관찰이고, 다른 하나는 대담하게 가설을 세우는 능력이다.

688. 갈릴레오는 근대 과학을 정초한 과학자들 가운데 뉴턴을 제외하고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난 날에 출생하였고 뉴턴이 태어나던 해에 죽음을 맞았다. 나는 이런 흥미로운 사실을 아직도 윤회 사상을 믿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말해주고 싶다. 그는 천문학자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지만, 역학의 창시자로서 더 중요한 인물이다.

695.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다른 결과는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일이다. 중세의 세계관에 따르면 지구는 하늘의 중심이며, 만물은 인간과 관련된 특정한 목적을 가졌다. 뉴턴의 세계관에서 지구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행성에 불과하며, 천문학적 거리는 너무나 광대해서 지구는 상대적으로 핀 끝만큼 작아 보였다. 거대한 우주 체계가 전부 핀 끝 위의 작은 인간을 위해 계획되었다는 생각은 그럴듯해 보이지 않았다.

698. 현대 물리학의 답변은 완벽한 수준이라 말하기는 어려워도 충분히 만족스럽기 때문에, 거의 모든 물리학자가 운동과 시간이 완전히 상대적이라는 견해를 수용하게 되었다. 공간과 시간을 시공간으로 통합한 상대성 개념은 갈릴레오나 뉴턴의 연구 결과로 탄생한 근대적 우주관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

제7장 프렌시스 베이컨

699. 베이컨의 철학에 불충분한 면이 많다고 해도, 베이컨은 귀납법의 창시자요, 과학적 탐구 절차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려 노력한 선구자로서 영원히 기억할 만하다.

700. 그의 철학 전체를 꿰뚫는 기본 정신은 실제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수단으로 인류에게 자연을 지배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703. 가설을 세우는 일은 과학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대단한 능력을 요구하는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제8장 홉스의 리바이어던709.  홉스는 플라톤의 철학에 반대하여, 이성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며 근면과 경험에 의해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노력’은 작은 운동의 시작으로, 만약 어떤 대상에 다가가면 욕구이고 어떤 대상에서 멀어지면 혐오이다. 사랑은 욕구와 같고 미움은 혐오와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권능에 대한 두려움이 공개적으로 허용되면 종교이고, 그렇지 않으면 미신이다.

709. 우리는 어떤 대상이 욕구의 대상이 욕구의 대상일 때는 ‘좋다’ 고 하고, 혐오의 대상일 때는 ‘나쁘다’ 고 한다.

제9장 데카르트

711. 군주는 전제적인 군주가 되기도 하지만, 심지어 가장 나쁜 전제정치도 무정부 상태보다는 낫다고 홉스는 주장한다.

718. 전쟁을 막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지 않은 채 개별 국가 간의 전쟁 수행 능력만 향상된다면, 모든 국가의 파멸은 불을 보듯 명백한 일이다.

719. 르네 데카르트는 흔히 근대 철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데 , 내 생각도 옳은 평가이다. 그는 고도의 철학적 능력을 갖춘 최초의 인물로서, 그의 철학관은 새로 등장한 물리학과 천문학에서 깊은 영향을 받는다.

725. 데카르트적 회의라 불린 의심의 방법을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그는 철학의 확고한 기초한 세우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의심할 수 있는 대상은 전부 의심하기로 결심한다. 의심 과정에 다소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고 예견했기 때문에, 의심을 감행하는 동안에 자신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용한 규칙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725. “내가 모든 것이 거짓이라 생각하고 싶어 하는 동안에도, 그렇게 생각한 무엇으로서 나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727. ‘나는 생각한다.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주장은 물질보다 정신을, 타인의 정신보다 나의 정신을(나에 대해) 더 확실한 존재로 만들었다.

728. ‘우리가 아주 명석하고 판명하게 생각한 내용은 모두 진리이다.” 하지만 이러한 명석하고  판명한 생각들이 진리라는 사실을 인식하기가 때때로 어려워지기도 한다. 데카르트는 ‘생각’을 아주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생각하는 활동은 , 의심하고 이해하고 개념을 사용해 생각하며 긍정하거나 부정하고 의지하고 상상하고 느끼는 정신 활동을 가리킨다.

제10장  스피노자733. 스피노자는 위대한 철학자들 가운데서 고결한 품성을 갖춘 매력 넘치는 인물이다. 지적인 면에서 그를 능가한  철학자가 몇 사람 있지만, 윤리적인 면에서는 아무도 따르지 못할 최고 수준에 이른 철학자이다.

737. 스피노자가 제안한 감정이론은 정신의 본성과 기원을 다룬 형이상학적 논의 뒤에 이어지는데, 점차 ‘인간의 정신은 신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에 적합한 지식을 가진다“는 놀라운 명제에 이른다.

738.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한 현자는 신의 관점인 영원의 상하에서, 즉 영원성의 측면에서 보려 노력한다.

740. “명석하고 판명하게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이해한 사람은 신을 사랑하며,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신을 더 많이 사랑하게 마련이다.” 이 명제는 ‘신에 대한 지적 사랑’ 으로 이끄는데, 신에 대한 지적 사랑 속에세 지혜를 얻는다.

743. ‘윤리학’ 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현자는 현명하나 사람 자체로 생각되는한, 정신이 흐트러지는 일이 절대로 없으며, 자신과 신과 사물을 결코 멸하지 않는 영원하고 필연적인 존재로 의식하며, 언제나 자기 정신의 영원성을 진심으로 인정한다.

746. 당신의 운명이 인류의 범상한 운명보다 더 비참한 역경을 참고 견디어낼 수 박에 없는 처지라면, 우주 전체를 생각하거나 아니면 당신의 슬픔보다 더 큰 문제를 생각하라는 스피노자의  원리는 유익한 교훈이다. 온갖 악과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을 우주적 차원의 생명에 속한 그히 작은 일부로 생각하면,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사색은 하나의 종교를 구성하기에는 불충분할지 몰라도, 고달픈 세상에서 제정신 차리고 사는데 힘을 보태며, 아득한 절망의 늪에 빠져 무기력해진 경우에는 무력감을 치유할 해독제가 되기도 한다.

제11장 라이프니츠

751. 진공과 같은 존재가 없는 까닭은 가능한 각각의 관점이 현실로 존재하는 하나의 단자로, 오직 하나의 단자로만 채워지기 때문이다. 두 단자가 정확하게 서로 같은 경우는 성립하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라이프니츠가 말한 ‘구별불가능자의 동일성’ 원리이다.

757. 라이프니츠 철학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러 가능세계가 존재한다는 학설이다. 무더운 날 당신이 너무 목이 말라서 들이켠 물 한 모금은, 목마른 상태가 고통스럽기는 해도 견딜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당신에게 큰 쾌락을 주기도 한다. 그 까닭은 목마름의 고통이 없었다면 물을 마신 다음에 누리게 될 기쁨이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764. 라이프니츠는 여전히 위대한 인물이며, 그의 위대성은 이전 시대보다 오늘날에 와서 더욱 두드러진다. 수학자나 미적분학의 발명자로서 누리는 명성과는 별개로, 그는 수리 논리학의 개척자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던 중요한 의미를 통찰했다.제13장 로크의 인식론779. 우리의 지성은 종종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에 이성을 믿고 따를 수 밖에 없으며, 타인의 의지와 지시에 맹목적으로 복종해서는 안 된다.

781. 정신을 아무 특성도 관념도 없는 하얀 종이라고 가정해보자.이 하얀 종이 위에 어떻게 글씨가 쓰이는가? 인간의 분주하고 복잡한,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상상력으로 거의 끝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 넣은 방대한 기억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디에서 이성과 지식의 재료를 얻는가? 이 질문에 나는 경험에서 온다고 한마디로 답변한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경험에 기초하며 궁극적으로 경험에서 모든 지식이 도출되기 마련이다.

784. 로크는 벤담처럼 인정 많고 상냥한 정서로 충만한 사람이었는데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포함하여) 자신의 행복이나 쾌락만을 위한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사물은 쾌락이나 고통과 관련될 경우에만 선하거나 악하다’. ‘선한’ 사물은 우리 안에 쾌락을 야기하고 증가시키거나 고통을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무엇이 욕망을 좌우하는가? 나는 행복이라고, 행복뿐이라고 대답한다. 최고에 이른 행복은 우리에게 가능한 최대의 쾌락이다.“ ..우리는 미래에 얻을 쾌락보다 현재의 쾌락에, 먼 미래의 쾌락보다 가까운 미래의 쾌락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788. “우리는 오로지 쾌락을 욕구한다. 하지만 사실상 많은 사람은 쾌락 자체가 아니라 가까운 쾌락을 욕구한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쾌락 자체를 욕구하기 때문에 악하다는 학설과 모순을 일으킨다.” 철학자들은 대부분 각각의 윤리 체게 안에서 먼저 거짓인 학설을 단언하고, 그 학설이 거짓임을 보여주는 행동은 악하지만 문제의 학설이 참이었다면 악한 행동은 불가능했으리라고 주장한다. 로크는 이러한 유형에 속한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제14장 로크의 정치철학798. '사람들이 이성의 명령에 따라 더불어 살며 그들 상에 재판을 담당할 권위를 가진 공동의 우월한 자가 없는 상태가 바로 자연 상태이다.'

 805. 아메리카의 깊은 숲에서 살던 오만방자하고 해로운 행동을 일삼던 자가 왕좌에 올랐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지는 않으리라. 그는 아마 국민들에게 행활 모든 일을 정당화하려 지식이나 종교를 동원하고, 이윽고 검을 써서 감히 이의를 제기한 모든 국민의 입을 다물게 할 것이다.제15장 로크의 영향

820.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만약 당신이 형제를 좋아하기 때문에 친절하게 대한다면 도덕적으로 아무 가치도 없다.어떤 행동은 도덕법칙의 명령에 따라 행한 경우에만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그래서 칸트는 주장한다. 쾌락이 곧 선은 아니지만 유덕하고 고결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면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이 세상에서 유덕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이들이 죽고 난 후에 덕에 상응한 보상을 받는 다른 세계가 존재해야 한다. 또한 내세의 삶에서 정의로운 심판을 보증해 줄 신도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

   ☞ 이런 결론이 나온다는게 신기하다. 철학이란 없던 신도 다시 만들어 내는구나.

821. 쾌락은 곧 선은 아니지만 유덕하고 고결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면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이 세상에서 유덕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이들이 죽고 난 후에 덕을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다른 세계가 존재해야 한다.

821.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 사람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행복을 소중히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제16장 버클리제17장 흄

831. 단맛은 쾌락을 일으키고 쓴맛은 고통을 일으킨다.그러므로 둘 다 정신에 속한다. 또 내가 건강할때는 단맛을 내는 것이, 병에 걸렸을 때는 쓴맛을 낼 수도 있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839. 흄은 직접 쓴 사망기사, 장례식사에서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나는 온순한 사람으로, 기분을 조절할 줄 알 뿐만 아니라 솔직하고 사교적이며 쾌할한 유머도 구사하고 누구나 친근감을 느낄 만큼 정감이 풍부하다. 다만 적대감을 견디기 힘들어하기는 하나, 모든 정념을 기막히게 조절할 줄 아는 온건한 성품을 갖추었다. 심지어 나를 지배하던 정념인 문학적인 명성을 향한 갈망조차, 실망하는 일이 잦았는데도 온화한 기질을 까다로운 성격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842. "나로선 내가 가장 친밀하게 나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들어갈 때, 항상 이러저러한 개별적인 지각들, 즉 뜨거움이나 차가움, 밝음이나 어두움, 사랑이나 미움, 아픔이나 기쁨과 마주친다. 나는 어는 때든 지각하지 않고서는 나 자신을 결코 붙잡을 수 없으며, 지각들 이외의 어떤 것도 결코 관찰할 수 없다."

852.  원인과 결과에 관한 추리는 모두 습관에서 유래할 따름이며, 믿음은 우리 본성의 인지적인 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정확히 말하면 감각적인 부분의 활동이다.

제18장 낭만주의 운동

858. 18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예술, 문학, 철학 심지어 정치학도 넓은 의미의 낭만주의 운동의 특징인 감정이나 격정에서 영향을 받았다.

859. 교양있고 세련된 감수성을 가진 자들의 상상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몇 뙈기 안되는 땅을 부모에게 물려받아 자기들의 노동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외부와 교역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은 늘 형편없는 상황 속에서 몇 뙈기 땅마저 잃고 마는데, 늙은 아버지는 이미 일을 할 기력이 없어지고 사랑스런 딸마저 폐병에 걸렸으며 고약한 저당권자는 그의 땅을 노리고 사악한 영주는 딸의 정도를 빼앗으려 했기 때문이다.

861. 낭만주의 운동 전체의 특징은 한마디로 공리적 기준을 미적 기준으로 대체한 것이다.

868. 낭만주의 운동의 본질은 인간의 개성을 사회적 규약과 도덕성의 족쇄에서 자유롭게 하려는 목표에 있다.

869. 인간은 고립된 고독한 동물이 아니며, 사회생활을 통해 살아가는 한에서 자아실현이 윤리학의 최고 원리일 수는 없다.

 제19장 루소

873. 루소는 과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은 도덕의 가장 큰 적이며 탐욕을 조장하는 노예근성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학과 덕은 양립할 수 없으며, 모든 과학은 천한 기원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천문학은 점성술이란 미신에서, 기하학은 탐욕에서, 웅변술은 정치적 야심에서, 물리학은 헛된 호기심에서 나왔다. 심지어 윤리학의 기원도 인간의 자만심이다. 교육과 인쇄술의 개발은 개탄할 만한 일이고, 문명인과 교육받지 못한 야만인을 구별하는 모든 차별은 악이다

874. 루소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방식을 택하고 앞으로는 시간을 알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시계를 팔아 버렸다.

874. 그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며, 제도로 인해 악해질 뿐이다.” 라고 주장했다.

879. "나는 다른 어떤 진리를 믿는 것만큼 강하게 신을 믿는데, 믿느냐 안 믿느냐는 세상에 마지막 남은 나에게 달려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883.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도처에 그를 구속하는 사슬이 놓여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주인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들보다 더 자유롭지 못한 노예일 뿐이다. 자유는 루소 사상의 명목상의 목표였고, 사실 그가 진심으로 높이 평가하며 자유를 희생시켜서라도 지키려 한 가치는 평등이다. 루소의 사회계약이란 개념은 홉스의 사회계약과 더 흡사하다. 문제는 전체 공동의 힘으로 각 구성원의 인격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하며, 각 개인이 스스로 전체의 일원이 되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의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이전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 형태를 찾는 것이다.

889. 루소의 철학이 실제 정치 현장에서 거둔 첫 결실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였다. 러시아와 독일의 독재 정치는 부분적으로 루소의 가르침의 성과로 볼 수 있다. 나는 루소의 망령이 미래에 또 다른 어떤 사건을 초래할지 예측하는 위험까지 감수할 의도는 없다.

 제20장 칸트

894. 칸트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했는데, 동내 사람들은 그가 산책하면서 문 앞을 지나갈 때 시간을 맞출 정도였다. 그런데 언젠가 7일 동안 그가 시간표를 지키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루소의 ‘에밀’을 읽고 있던 때 였다.

897. 칸트의 말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은 개념이 아니라 ‘직관’ 형식이다.

897. 만약 당신이 언제나 파란색 안경을 끼고 있다면, 당신은 모든 것이 파랗게 보인다고 확신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마음속에 늘 공간적인 안경을 쓰고 있다면 당신은 항상 모든 대상을 공간속에 있는 현상으로 보게 된다.

909. 칸트의 직접적인 후계자 피히테. 독일 국가주의의 창시자로서 중요한 인물이다.

 

제21장 19세기 사상의 흐름

908. 당신이 어떤 남자가 하는 말을 듣고 나서 그에게 대답을 하면, 그는 당신의 말을 듣는다. 그가 말하는 일과 당신의 대답을 그가 듣는 일은 둘 다 당신 쪽에서는 지각되지 않는 세계에 존재한다.

916. 낭만주의적 반항은 바이런에서 비철학적인 옷을 차려입고 등장했으나, 쇼펜하우어와 니체에서는 철학의 언어를 몸에 익혔다. 낭만주의적 반항은 지성을 희생한 대가로 의지를 강조하고 추론의 연쇄를 참지 못하며 어떤 종류의 폭력을 찬미하는 경향이 있었다.

922. 인간관계를 다루면서도 모든 면에서 민족스러운, 현대에 어루리는 윤리 체계를 세우려면,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인간의 제배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사람들 상호산의 권력 행사에 바람직한 한계를 긋는 일도 필요불가결하다.

916. 낭만주의적 반항은 바이런에서 비철학적인 옷을 차려입고 등장했으나, 쇼펜하우어와 니체에서는 철학의 언어를 몸에 익혔다. 낭만주의적 반항은 지성을 희생한 대가로 의지를 강조하고 추론의 연쇄를 참지 못하며 어떤 종류의 폭력을 찬미하는 경향이 있었다.

 

 제22장 헤겔927. 헤겔에 따르면 과정은 결과를 이해하는 데 본질적인 요소이다. 변증법에서 이후 각 단계는 녹아들 듯이 이전의 모든 단계를 포함한다. 이전 단계들은 어느 하나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필요하며, 전체 과정 속의 한 계기로서 고유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변증법의 모든 단계를 밟아나가는 길을 제외하면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다.

930. ‘이념’ 즉 ‘이성’은 진리이며 영원한 존재이고, 절대적 힘을 가진 본질이다.

930. "지성과 의식적인 의욕에 세계는 우연에 맡겨지지 않고 자기인식의 관념에 비추어 자기 자신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939. 윤리 문제에 대한 진술은 한 가지 중요한 점, 즉 목적와 수단의 구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함이 있다. 눈은 살아 있는 신체의 일부일 때 유용하다. 말하자면 눈은 수단으로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눈은 신체에서 떼어내면 고유한 본래적 가치를 갖지 못한다.

942. 논리가 형편없을수록 거기서 생겨난 귀절은 더욱 흥미롭다는 사실이다.

제23장 바이런

948. 슬픔은 지식에서 비롯되지. 가장 많이 아는 자 치명적인 진리를 넘어 가장 깊은 슬픔으로 비통해하네.

제24장 쇼펜하우어

956. 고통은 모든 생명에 도사린 본질적 요소이며 지식이 더 해질 때마다 고통의 양도 증가한다. 의지에는 성취되면 흡족과 만족을 주게 될 고정된 목적이 없다.

956. 고통은 의지가 강렬하고 격렬한 탓에 생긴다. 그러니까 의지를 덜 발휘할수록 우리는 고통을 덜 받게 된다는 말이다.

957. 선한 인간은 완전한 자비, 자발적인 가난, 금식과 자기고행을 실천하려 한다.

960. 낙관주의는 우주란 우리를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입증하려 하지만, 염세주의 관점에서 보면 우주는 우리를 불쾌하고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 한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낙관주의이든 염세주의이든 우리와 관련된다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제26장 공리주의자들

983. 사람은 제각기 자기 자신의 행복을 바란다는 진술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데, 하나는 자명한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 주장이다. 내가 무엇을 자라든지 소원을 성취하고 나면 쾌락을 얻게 마련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내가 욕구하는 대상이 무엇이든 하나의 쾌락이며, 좀 느슨하게 보면 내개 욕구하는 바를 쾌락들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984. 윤리학은 인간의 다양한 욕구가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갈등의 첫째 원인은 인간의 이기적 성향이다.

984. 윤리학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는데, 첫째는 선한 욕구와 악한 욕구를 구분하는 규준을 찾는 일이고, 둘째는 칭찬과 비난을 통해 선한 욕구를 증진하고 악한 욕구를 단념하도록 이끄는 일이다.

제28장 베르그송

1000. 직관은 사심 없이 자기를 의식하고 대상을 반성하면서,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본능을 의미한다.

1000. 지성의 특징은 자연 그대로의 생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1002. 무엇보다 기억 속에 지속이 드러나는 까닭은 기억 속에서는 과거가 현재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 사진 이미지의 의미!

1003. 기억은 원리상 물질과 완전히 독립된 힘이라고 해야 한다. 그때 정신이 실재라면, 우리가 정신과 경험적으로 접촉할 가능성이 있는 지점도 여기 기억 현상이다.

제9장 윌리엄 제임스

1017. 그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만약 신에 대한 믿음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면 신을 믿게 놓아둔다. 신에 대한 믿음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면, 그 믿음은 ‘참’ 이라고 말하는 경우에는 철학이 된다.

제30장  존 듀이

1028. 여전히 지배당할 수박에 없는 한계보다는 자연의 힘을 통제하는 인간의 지배력에 더 깊은 인상을 받은 사람들에게, 도구주의 철학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 요인도 바로 사회적 힘이다.

1029. 인간의 조종을 받지 않는 사실들에 의존하는’진리’ 개념은 여태까지 철학에 필요한 요소인 겸손을 가르쳤던 방식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자긍심에 대한 견제가 사라지면, 다음 단계는 일종의 광기에 도취되는 길로 접어들고 만다. 이러한 광기는 피헤타와 더불러 철학 속으로 침투한 후로 철학자이든 아니든 현대인들이 쉽게 빠져드는 힘의 도취이다. 나는 이러한 도취가 우리시대에 가장 커다란 위험요소이며,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힘의 도취에 일조하는 철학은 모두 끔찍한 사회 재앙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확신한다.

제31장 논리 분석철학

1038. 객관적인 철학 방법을 실천에 옮기면서 획득한, 주의 깊게 진실을 말하는 습관은 인간 활동의 전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으며, 객관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어느 곳에서나 광신 행위는 감소하고 공감 능력과 서로 이해하는 능력은 증가하게 될 것이다. 철학이 독단적인 일부 주장을 포기한다고 해서,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 삶에 영감을 불어넣는 일까지 멈추지는 않는다.

 

3. 내가 저자라면

서양철학사의 출간 배경

70세의 고령으로 아직 학교에 다니는 세 자녀를 포함한 가족을 거느리고 있던 러셀은 감염에 의한 축농증과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에 대한 비난과 가십 때문에 대학은 자리를 내주지 않았고, 논문을 게재할 곳도 없었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그는 영국에서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는 스탠리 언윈 경에게 연락하여 반즈재단에서의 강의를 바탕으로 철학사를 쓰기로 하였다. 그리고 장래에 발생할 인세를 미리 받기로 했다. 그 인세로 아들의 대학 학비를 마련하고 생활비로 충당할 수 있었다 한다. 그는 계약한 철학사를 정리하는데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그의 생활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불행한 환경 속에서 태어난 작품이 <서양철학사>(1945)이다.

 

이 책의 특징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부제가 '정치 및 사회적 상황과 관련하여' 인 것처럼 역대 철학자와 학설을 선정하고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것의 사회적, 역사적 배경과 아울러 포괄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려는 시도였다. 이 책의 내용은 제1부 고대철학, 제2부 가톨릭철학(중세), 제3부 근대철학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 근대철학은 상대적으로 간략히 서술되어 있다. 그가 영국 귀족이어서 였던지, 그는 영국의 경험론을 높이 평가하고, 독일 관념론의 칸트와 헤겔 및 베르그송을 강력히 비판한다. 흄과 니체는 권력을 찬미하여 파시즘을 만드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하였다. 그리스 시대의 철학사상에서 소피스트를 높이 평가하였다. 전반적으로 러셀은 신비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고, 경험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이 책은 러셀의 개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각 철학자에 대해 자신의 입장과 평가를 적극적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썼기 때문이다.

 

내가 저자라면

서양의 모든 철학과 사회/역사적 배경을 한꺼번에 다루려고 한 것이 이 책을 대중을 위한 책이기 보다, 소장을 위한 책으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서양의 지혜>가 떠오른다. 그 책도 쉽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된 번역에 원전의 삽화와 판형을 따랐다면 대중들에게 편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서양의 지혜>에서 삽화는 역대 철학자의 초상과 생가 그 밖의 역사적 자취, 첫 저술의 초판본 표지 등과 더불어 추상적인 아이디어와 사고방식을 구상적인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서술도 <서양철학사>보다 평이해서 읽기가 쉽다. 하지만 이 두 책보다 더 읽기 편한 책이 필요하다. 아무리 어려운 철학사상이라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서 메시지를 심어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저술가가 아닌가 싶다.

내가 저자라면 12세기, 13세기 식의 연대기적 접근이 아니라 그 시대나 철학에 대해 대중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뽑아서 한 장을 만들고 싶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서양철학에 시초가 된 이유'와 '그들의 사상이 그리스도교에 미친 영향', '중세시대에 교황과 황제가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아무 것도 없던 교황이 결국 이길 수 있었던 이유', '독일의 관념론이 세계사에 미친 폐혜', '현대 과학기술 문명을 만든 철학적 배경은?', '과학기술문명의 한계를 넘어서게 할 철학은 없는가?' 등 철학과 관계된 학생, 일반인들의 질문을 뽑아서 주제별로 이끌고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 책을 소화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열망을 일으키는 책이기도 하다. 내 평생 언제 서양의 철학과 역사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한 이런 책을 읽어볼 기회가 있으랴. 이 책을 선택하게 될지 확신할 수 없지만 두 번 읽기 주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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