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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4일 23시 51분 등록

김용규

여전히 어디를 뒤져보아도 선생님에 대한 글은 잘 발견할 수가 없다.

간혹 블로그들에 우리 연구원들이 올려 놓은 선생님의 함자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없어도 나는 저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열정적인 강연가

처음 인터뷰를 요청할 때에도 그러셨고 강연을 처음 시작할 때에도 그러셨다. 자신은 인터뷰를 잘 하는 사람도 아니며 재미있는 강연가도 아니라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지만 그를 만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런 말을 하는 그의 안에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말이다. 한 마디 한 마디를 하실 때마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듯 열정을 담아서 말씀을 하신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타인들에게 전달해주시려는 열기가 대단하신 분이다 .그는 청중을 휘어잡는 열정적인 강연가이다.

따뜻한 선생님

처음 선생님을 뵈러 갔던 날에도 처음 만난 우리들을, 서로가 서먹한 우리들에게 웃으시며 말씀을 건네주시던 분이었다. 그의 책을 보면 그의 따뜻함이 더 잘 느껴진다. 마치 투정부리는 어린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하나를 둘을 가르치는 사람처럼 부드러운 말투로 우리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듯이 글을 쓴다. 우리가 빠지기 쉬운 오류를 조금씩 조금씩 설명해 주며 우리가 이해해 나가는 모습을 따뜻하게 격려하는 느낌이 든다. 강연을 할 때에도 그랬다. 이런 작가는 되지 말아야 한다며 여러 번을 강조하는 모습에서 왠지 우리네 선생의 모습이 그려진다.

인간미 넘치는 지식인

지식인에게는 뭔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진다.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지식으로 나를 주눅들게 할 것만 같은 어쩌면 지지리도 못난 마음일지라도 그런 마음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왠지 까다롭고 왠지 근엄할 것 같은 그런 모습 말이다. 그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사람들에게서 상처도 받고 동네 세탁소 아저씨와도 친근하게 말을 하는 그런 편안한 일상의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사는 평범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듯한 그는 어느 날 보내 드린 수국 화분 하나로 우리의 강연요청을 흔쾌히 수락해 주시기도 했다.

철저히 준비된 사람

우리가 너무 짧은 시간을 마련한 이유로 그 날의 강연은 1시간 30분 정도 밖에 되지 못했지만 그는 그날의 강연을 위하여 일주일을 준비하셨다 했다. 자신이 아는 것에서 어떻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주실까를 고민하시고 어떤 주제를 잡아야 할까 어떤 내용을 말하여야 할까를 말이다. 직접 원서를 번역하시고 하이데거의 강연을 읽으시고 준비해 오셨다. 우리들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말이다. 인터뷰 때도 그랬다. 막힘없이 술술 한참을 말씀하시다가 불현듯 그러셨다. “이 정도면 제가 받은 질문의 답이 다 되었나요? 빼먹은 것이 있나요?” 라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상의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내가 만난 선생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이와 인간미를 동시에 갖춘 분이셨다. 어떻게 이제껏 세상에 자신을 그렇듯 감출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광채를 지닌 분이셨다. 그리고 그 광채는 다른 이들의 열정과 만날 때에 빛을 더했다. 앞으로도 그 빛을 느낄 수 있도록 선생님께서 항상 건강히 자신의 작업에 열중하실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내가 저자라면

다시 읽은 이 책의 매력은 역시나 수사법이었다. 앞선 철학책들의 딱딱한 말투에 질려버렸던 것일까. 이 책은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독자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저자의 마음이 흠뻑 느껴지는 책이었다. 초보자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힘들다 느껴지는 신학을, 철학을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풀어놓으신다

.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의문으로 하여금 책을 구성해 나가는 방법은 우리가 더욱 더 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이 책을 읽으면서는 도대체 어디서 끊어야 하는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왠지 지금 끊으면 흐름을 놓칠 듯한 기분에 조금 더 읽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책이 잘 놔지지를 않았다.

적절한 예의 활용은 어려운 것의 이해를 쉽게 돕는다. 어떻게 이런 예를 찾아내었는지 예의 활용은 정말 적절하다. 어려운 신학이나 철학의 내용이 나올 경우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예를 들어 설명한다. 아리송했던 말이 한 걸음에 다가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책의 처음 시작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벽화 이야기이다. 이 천장 벽화에서 묘사되어 있는 신의 모습을 시작으로 커다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마지막 장면 역시 이 벽화이다. 이 벽화에 나타나 있는 미켈란젤로의 신에 대한 생각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처음의 장면으로 끝을 맺는 이 방식은 우리가 한 편의 영화나 이야기를 끝을 맺는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준다. 하나의 그림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 그림으로 끝을 정리하는 구성은 여러 이야기를 했던 이 책에서 꼭 필요한 방법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해 본다.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ㆍ신은 언제나 종교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신은 언제나 종교 밖으로 나가 종교 아닌 것들 속으로 스며들어 가지요. -8

궁극적으로 신이란 이렇다고 생각한다. 신이 종교 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 또한 재미없는 일이 되지 않을까? 어디든지 있는 것. 이것이 신이라 생각한다.

 

ㆍ심층적 이해 없이는 해결도 없습니다! -9

진정한 이해가 따른 뒤에 나온 해결책이 가장 옳다는 말. 어떤 문제이던지 문제의 핵심을 이해한 후에 나온 해결책이라야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간 내가 해결책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반성하게 한다.

 

ㆍ 그것을 비속하지만 생동하는 일상용어로 바꾸어 표현함으로써 독자나 청중을 대화의 상대로 끌어들이고, 그들과 함께 담화를 나누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수법이지요. -10

책을 쓴다면 이런 글법으로 책을 쓰고 싶다. 편안한 일상의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

 

ㆍ신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27

 

ㆍ사람이란 항상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법닙니다. 밀턴의 사려깊은 경고는 사실상 무시되었고, 그의 탁월한 묘사는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히게 신을 의인화하는 데 뚜렷한 공헌을 하고 말았습니다. -31

 의도대로 이해되는 것은 힘든 일이구나…..나 역시 너무 내 방식대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ㆍ네 음울한 자만에 가장 합당한 형벌은

오직 너 자신의 분노이리라. -35

 

ㆍ인간이 신과 같은 불멸의 존재가 될 수는 없어도 심성과 육체를 단련하여 신처럼 위대해질 수는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37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신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한 노력을 그리 가벼이 치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라하더라도 그 노력하는 시간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꿈을 가지는 것은 반드시 이루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이루기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갖고자 하는 의미도 되니까.

 

ㆍ인류 역사를 두고 인간의 육체를 이처럼 신성화한 적은 없었습니다. -38

 그래서 철학도 인간미가 있구나. 그래서 우리는 그때로 돌아가는 운동이 펼쳐지는 것이 아닐까. 물질이 우리를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한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아닐지. 내가 세상에서 미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인간이라는 한계를 가지고도 대단해 질 수 있다고 말한 그들의 말이 마음 깊숙히 박히는 것은 아닌지.

 

ㆍ이데아의 미란 가시적(可視的)자연이 아니라 가지적(可知的) 인간정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 이지요. -41

 

ㆍ회화는 정신의 노동(cosa mentale)이다. 이성을 사용하지 않고 손재주와 눈가늠에 기대어 그리는 화가는, 앞에 놓인 모든 물체를 고스란히 재현하지만 그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울과 같다. -43

아무리 많은 모작들이 존재하더라도 결국은 그 누구도 모나리자가 되지는 않는다. 다빈치의 마음, 정신까지 재현할 수는 없으니까.

 

ㆍ에로스는 우리 영혼을 본향인 ‘이데아 세계’로 귀환시키기 위한 ‘혼의 날갯짓’이고 ‘상승적 창조자’입니다. 또한 참되고 선하며 이름다운 천상의 이데아 세계로 연셜시키는 열정이자 신에게 인도하는 안내자예요. -45

나의 무지를 알게 되는 부분

 

ㆍ확실히 하는 사람은 이제껏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네.

심지어 누가 그런 것들에 대해 완벽하게 옳은 말을 했다 해도

그 자신은 그것을 모르리라. 그저 추측으로짜인 거미줄일 뿐 -50

 크세노파세스

 

ㆍ즉 모든 존재물은 신이라는 존재 안에서 존재를 부여받아 존재하지요. -56

신이 어디든지 함께 한다는 것의 근거. 내 주변에 나를 둘러싼 이가 혹은 자연이 사물이 나와 똑같다는 근거.

 

신이 곧 존재라는 가르침에서 신을 떠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존재상실. 곧 사망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단지 육체적인 죽음이 아닌 영적 죽음일 뿐이지요. -59

 아담과 이브의 추방은 죽음과 같다는

 

ㆍ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이 같지 않기도 하고, 게다가 그 관계도 분명치는 않으니까요. -65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같지 않지. “나도 그 사실을 알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잖아.

 

ㆍ초췌하고 금욕적인 탁발수도사를 예상했던 국왕은 이 학자가 그 큰 몸집으로 유쾌하게 떠들며 열심히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무척 재미있어 했다고 합니다. -72

 우리가 생각한 모습이 아닐 때, 대단해 보이던 사람이 우리와 같은 모습임을 느낄 때 우리는 이런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쾌한 성격

 

ㆍ‘있는 자’는 그 자체 안에 전체를 내포하며 무한하고 무규정적인 실체의 거대한 바다와도 같이 존재자체를 갖고 있다. -75

 

ㆍ우리는 어떤 것이 무엇인지알아내기 위해 먼저 그것의 이름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80

 

ㆍ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곧 새로운 신분이나 새로운 삶의 목적을 얻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80

이름을 하사하거나 이름을 부여받거나 하는 경우가 있잖아. 새로운 삶의 목적을 추구하고 이를 얻었다는 의미

 

ㆍ고대인들에게 이름은 단순히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수단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자체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름은 사실상 일종의 또 다른 자기(alter ego)가 될 수 있었다. -81

 

그러므로 신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알아보는 데 있지 않고,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데 목적이 있다.” -82

 사람을 처음 만나도 우리는 이름을 묻곤 한다. 이름을 알면 그 사람을 알고는 있다고 생각한다.

 

ㆍ신이 자기 이름을 감춘 것은 사실 신에게는 이름이 없기 때문이지요. -83

 

ㆍ세상 만물은 모두 ‘무엇’이라는 본질을 가짐으로써 비로서 존재하며, 일반적으로 그 ‘무엇’이 우리가 부르는 그것의 ‘이름’입니다.

따라서 이름이란 어떤 것을 그것이게끔 하는 본질이 이미 규정되고 한정된 ‘존재물’에만 붙일 수 있지요. -84

신에게 이름이 없는 이유.

 

ㆍ‘어떤 것’이 예컨대 우주처럼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것을 우주라고 규정하고 이름 붙이면 우주는 동시에 우주 아닌 것과 구분되어 최소한 둘 중의 하나일 뿐, 만물의 궁극적 근원은 될 수 없습니다. -85

읽다보면 쉽게 이해 가는데 한 번도 이런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다.

 

네가 신을 차악하지 못한다는 것이 뭐 그리 놀라운 일익나? 만일 네가 그 분을 파악한다면, 그분은 신이 아니다.” -86

 아우구스티누스

 

ㆍ존재는 생성되고 소멸되지 않으며,

온전한 일자(oulon mounoqenes)이고 흔들림이 없으며 완결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미래에 있게 될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있으며,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87

 

ㆍ출발에서 벌어진 미세한 틈새가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간격이 되는 법입니다. -93

오역이 낳은 엄청난 불찰. 어떤 일이든지 작은 차이는 큰 차이를 낳게 되는 법이기 않은가? 어렸을 때는 정말 사소한 차이로 보였는데 성장하고 난 후에는 그것이 가져오는 큰 차이가 보이는 거지.

 

에흐예 아세르 아흐예라는 신의 자기 계시를 히브리 원어가 가진 의미에 좀 더 가깝게 번역하자면 나는 있는 자다.’가 아닌, ‘나는 있음이다.”여아 하고요, 설사 철학용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나는 존재자다.’가 아니라 나는 존재다.’가 되어야 합니다. -95

 

ㆍ신은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그의 이름을 계시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존재현현을 계시한 것입니다. -96

 

ㆍ우리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존재보다는 볼 수도 있고 만질수도 있는 존재물을, 다시 말해 신보다는 세상을 더 믿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 자신의 가려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요. 기독교에서는 이 같은 우리의 성향을 죄성(罪性)이라고 부르지만, , 우리는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간절히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고 싶은가요! -98

우리가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하는 원인인가. 예전에 성상을 사용하여 게르만족에게 포교를 하였다는데, 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신이다.”라는 말을 해주기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잘 믿어지지 않는 것. 나도 눈에 보이는 것이 진리라는 말에서 가까운 듯 하다.

 

ㆍ신이 그의 이름을 묻는 모세의 질문에 “나는 존재다”라고 한 대답에는 '너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었다는 말이지요. 즉 “너는 흙이나 흙으로 돌아갈(청세기 3:19)” 존재물이라는 것입니다. -99

 

ㆍ한미다로 인간과는 저혀 달라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신은 세상의 모든 존재물이 조재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존재하지도 않지요. 신은 ‘무엇’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저’ 존재합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신에게는 우리가 사용하는 ‘.....는 존재한다.’는 술어도 사용할 수 없지요. -101

신의 거대함이 느껴진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존재.

 

ㆍ하나님의 존재를 무정하는 것이 무신론인 것처럼 긍정하는 것도 무신론이다. -101

 파울 틸리히.

 

ㆍ그가 있다는 것(영원불변하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한 반면, 우리는 그에게 현존한다는 것’(세상에 가시적으로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108

 우리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그와, 그러면서 이해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복잡한 앞 부분을 읽지 않으면 말이 안되는 것이군. 그러나 좀 복잡…..

 

ㆍ모든 것이 영원불변하게 존재하며, 그렇기에 참되다는 것이지요. 반면 우리가 사는 이곳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렇기에 헛되다는 것입니다. -109

영원불변하게 존재하는 것을 온전히 느껴본적은 없는 듯하다. 하지만 변화하는 것에 많은 의미를 두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는 한다.

 

ㆍ개개의 사물 안에는 이데아가 들어있습니다. 이 ‘들어 있음’을 통해 개개의 사물들은 그것을 그것이게끔 하는 그것의 ‘본질’은 물론, 있음이라는 ‘존재’를 부여받게 되지요.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까지 얻게 됩니다. -111

나에게도 본질이 있고 그로 인해 존재를 부여받고 나라는 이름이 있다. 그럼 그 본질은 무엇인가. 결국 철학인가......

 

ㆍ플라톤에 의하면, 이데아는 사물들에 완전히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부분적으로만들어 있지요. 그래서 개개의 사물은 이데아처럼 완전하지고 않고 영원불변하지도 않습니다. -112

 

ㆍ신은 단일하고 영원불변하며 우주만물에 본질존재그리고 이름을 주는 완전한 자다.그리고 우주만물은 다양하고 일시적이며 끊임없이 변하는 불완전한 자다. 다라서 신만이 진리의 근거이며, 우주만물에 대한 지식은 단지 불완전한 지식일 뿐이다. -114

 플라톤의 분여 이론에 존재대신에 을 대입한 결과. 이렇듯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ㆍ플라톤이 순수하게 형이상학적으로 제공한 피라미드형 층계는 우선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의 사다리라는 말로 표현하면서 자연학으로 들어왔습니다. -117

ㆍ다윈은 진화의 사다리대신 생명의 나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모양도 약산 다르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같지요. -119

학문은 많은 곳에서 연결된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겠지.

 

ㆍ신이 계층적 질서를 통해 자연의 사다리를 만들어 놓고 그것에 맞춰 우리의 지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단계적으로 설정했으니까 그것을 따르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120

그것을 따르면 신에게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사다리를 잘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ㆍ교회에서는 크게 나누어 평신도 사제 주교 교황이라는 교회제도를 확립했고, 사회에서는 농노 기사 영주 왕이라는 봉건제도를 구축했지요. 이들 제도가 피라미드식 계층 구조를 따른다는 것은 위로 올라갈수록 그 지위나 그 지위에 있는 사람이 더 참되고 선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뜻합니다. -125

 올라 갈수록 신에게 가까워짐. 왕권 신수설이 그냥 나온말은 아닌 듯 하다. 그러니 제일 위에 있는 그 둘이서 세력 다툼을 할 수밖에.

 

ㆍ그대의 존재를 그대 안에 한정시켜라. 그리하면 결코 더는 비참해지지 않으리라. 존재의 대연쇄에서 자연이 당신에게 할당한 자리에 머물러있으라. 그리하면 아무도 당신에게 그곳에서 떠나라고 강요하지 않으리라. -129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였을 것이라 생각이 되면서도 분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쯤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직 나의 내공이 얕은 것인가?

 

ㆍ부자는 최하위 노동자를 경멸하지 말지어다.

그도 자연의 연쇄 속에 있는 동등한 고리이니:

동일한 목적으로 노동하고 동일한 관점으로 합일되어

양자는 다 같이 신의 의지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129

 하층이 반드시 무시될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이랬다. 마치 심리학의 교도소 실험을 보는 듯 하다.

 

ㆍ문명에도 이렇듯 유행이 있기 마련입니다. -138

우리가 세계사를 배워도 그렇다. 그 시대의 주류 사상이 있기 마련이고 철학, 미술, 음악 모든 것들이 그 당시의 사조를 따라서 흘러간다. 지금 우리도 무엇인가의 유행에 따라 가고 있을 테고, 나의 생각도 그 유행에 따른 것일테다. 후세에 보면 “말도 안돼”라고 생각되어질 수도 있겠지.

 

ㆍ한 계단이 무너지면 결국 거대한 모든 계단이 무너질 것이다 .

자연의 사슬에서 그대가 빼 낸 하나의 고리는

열 번째건 만 번째건 사슬을 파괴할 것이다. -141

왠지 환경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다. 꼭 신과 관련된 존재의 대연쇄에 비쳐서 보지 않더라도 많은 부분들이 설명되는 부분이다.

 

ㆍ세상 만물은 그 무엇이든 끊임없는 자기동일적 생성과 작용을 통해서만 불변할 수 있습니다. -148

가만히 있는 것이 불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내가 나다울 수 있으려면 나 다움을 계속 생성해내야 한다는 것.

 

ㆍ즉, 신은 시간 밖에서는영원히 안식하지만, ‘시간 안에서는부단히 활동한다는 것이지요. -154

 그래도 어렵다.

 

ㆍ신은 성질이 없어 선하며, 양이 없어 크고, 결핍이 없어 창조적이며, 지위가 없어 통치자이며, 외관이 없어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장소를 갖지 않아 어디든지 있고, 시간을 갖지 않아 영원하며, 변함이 없어 변화하게 하고, 아무 작용을 받지 않아 모든 작용을 한다. -155

뜬 구름 잡는 소리 같아도 고개가 끄덕여 진다.

 

ㆍ그들은 오히려 그러한 개념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또는 이해하기를 초기하는 것이 종교적 미덕이라고 여김으로써, 신에 관한 개념이 인간정신으로는 결코 다가갈 수 없는 더욱 탁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155

 그래도 우리는 지금 해야 하는 거지?

 

ㆍ야훼는 세계에 항상 내재하지만, 동시에 세계를 언제나 초월합니다! -165

신의 존재

 

ㆍ원래 그게 신이고 본디 그게 인간이지요. 신은 무한하고, 인간은 무한한 어떤 것을 상상하거나 생각할 수 없습니다. -166

인간으로써 신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들린다.

 

ㆍ신에 대한 모든 상상, 모든 형상화, 모든 규정과 언급은 사실상 부질없을 뿐만이 아니라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166

잘못된 믿음에 빠지는 사람들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런 노력을 하는데.

 

ㆍ어떤 식으로든 신을 인식하지 못하고야 어떻게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사랑과 은혜를 갈구할 수있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우리의 가엾은 실존적 상황이지요. 따지고 보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또 이디 있을까 싶습니다만, 달리 어찌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167

나를 이해해주는 듯 한 말이랄까. 상처받은 마음을 어르고 달래주는 말투다. 그래 나만 그런게 아니야 라는 안도감이 생긴다.

 

ㆍ주님, 여기에 당신이 안 계시면 어디서 당신을 찾겠습니까?

그러나 당신께서 어디에든 계시면, 왜 저는 존재하는 분은 뵙지 못합니까?

그러나 확실히 당신께서는 <가까이 가지 못할 빛>가운데 사십니다.

그러면 어디에 <가까이 가지 못할 빛>이 있습니까?

또 제가 어떻게 그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다다르겠습니까? -167

 

ㆍ곧 모든 것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보듯이 온전하게 알게 되는 그대가 오기 전가지는 겨우 비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비유를 통해서신에 대해 상상하고 말할 수 밖에 없지요. -170

 그 날이 오는거야? 인류에게가 아니라도 개인에게는?

 

ㆍ존재의 바다라는 비유를 통해 우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에 관한 가르침들을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170

 바다, 그 안에 물고기, 물방울, . 이런걸 우리가 생각해 본다면 조금 더 가까운가? 이해가 되는가?

 

ㆍ기획투사란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향해 그 자신을 던진다는 의미이고, 앙가주망은 역사적, 사회적 현실에 제 스스로를 잡아매는 것을 뜻합니다. 이로써 인간은 무의미하고 권태로운 사진의 삶을 의미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178

 

ㆍ신은 정의상 그 이상 완전한 존재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가장 완전한 존재다.

가장 완전하다는 것은 그 어떤 결핍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신은 인간의 정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한다. -181

 안셀무스. 신이 현존하는 증거

 

ㆍ그러므로 모든 자연적 사물이 각각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질서를 지어주는 어떤 지적 통치자가 존재한다. 그 존재를 우리가 신이라 한다. -195

 

ㆍ예 하나가 곧이곧대호 들리지 않는 말을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교훈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수사학적 논증법으로서 예증법이 지닌 힘이자 체일리의 논증이 가진 설득력의 비결이지요. -201

 예증법

 

ㆍ페일리의 시계 유추를 비판한 흄, 칸트, 밀 같은 철학자들은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을 뿐, 페일리가 설명한 자연의 복잡성과 함목적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개안을 내놓지는 못했던 것이지요.  -202

 대안이 없으면 근본적인 변화는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비판부터 시작이다.

 

ㆍ‘신 없는 세상’을 사는 것이 가치가 덜 있을지는 몰라도 더 편안하고 즐겁다고 느꼈기 때문이지요. -203

가치가 있는 삶만이 삶의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즐거운 삶이 나는 좋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내가 즐거우면서 가치가 충만한 삶이겠지만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사람의 본능아닌가? 나만의 본능인가...? 신이 있음은 믿지만 신을 갈구하지는 않는데 나의 삶이 편안하고 즐거운 것은 사실같은데.....

 

ㆍ‘안에 있는 적이 더 위험한 법’입니다.-205

내부의 적이 가장 위험한 것처럼 비단 한 조직의 내부가 아니더라도 나의 내부에 있는 적이 가장 큰 적이다.

 

ㆍ플라톤은 철학을 하는 신학자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을 하는 과학자였던 겁니다. 위대한 두 거인의 이러한 학문적 취향이 그들 이후의 서양 학문을 크게 두 줄기로 갈라놓았지요. -210

 최초의 차이의 한 단어였을 수도 있다.

 

감성이 없으면 어떤 대상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며, 오성이 없으면 어떠한 대상도 사유되지 않을 것이다.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그러므로 개념을 감성화하는 일(즉 개념에 대해 그 애상에 직관을 부여하는 것)은 직관을 오성화하는 일(즉 직관을 개념 아래 넣는 것)과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 이 둘의 종합에 의해서만 인식이 나올 수 있다. -212

 칸트 <순수이성비판>

 

ㆍ칸트에 의하면 인간의 이성은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지만 감성이라는 섬안에 있어야만 안전합니다. 한마디로 감성의 한계가 곧 이성의 한계지요! 감성의 한계를 벗어난 모든 사고는 발붙이지 못하고 내쫓겨, 폭풀이 이는 험한 바다를 떠돌게 되지요. -213

 이성은 감성 안에

 

ㆍ그것은 (매력적인 이름인) 진리의 땅인데, 폭풍우 치는 망망대해로 둘러 싸여 있다. 가상의 본거지인 이 바다는 짙은 안개와 이내 녹아 없어지는 무수한 빙산들이 마치 새로운 육지인 양 항해자들의 눈을 속이다. 그럼으로써 탐험에 나선 항해자들은 부단히 속으면서도 헛된 희망에 부풀어 무모한 모험을 계속하게 된다. 이 모험은 겨로 끝나지도 않고 끝낸수도 없다. -214

 형이상학, 신학

 

ㆍ진리는 타당할 뿐 아니라 건전해야 한다는 것인데, 타당하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고 건전하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218

 현대 논리학 진리

 

ㆍ바로 이것이 삶이라는 늪에서 매 순간 운명과 죽음, 허무성과 무의미성, 죄책과 정죄에 대한 불안을 경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 종교에 대해 진정 바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딱딱한 신학 이론이나 따분한 설교보다는 생생한 종교적 경험을 원합니다. 그러니 “어서 줄이나 던져라!”라고 외칠 수 밖에 없지요. -222

경험에 의한 것이 가장 잘 믿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사이비같은 종교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순간 체험하게 해주는 신비함 이것이 종교적인 것이라 한다면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신의 세상을 살아가는 신과의 괴리감이라 해야할까.

 

ㆍ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해가 되는 법이지요! 후기 이신론자들은 본래 목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진실한 종교는 초이성적인 것들을 포함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기독교 내의 기적과 에언 등 모든 비이성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223

 이성과 비이성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거야?

 

레기날드 난 할 수가 없네. 내가 본 것과 내가 계시된 것에 비교해 볼 때 내가 쓴 것은 모두 지푸라기처럼 여겨지네.” -226

 토마스 아퀴나스. 무엇을 경험한 것일까?

 

ㆍ종교적 경험의 일상적 형태한 인간의 삶의 모든 것을 신과 연관해서살펴보고 삶의 모든 관계와 책임의 영역에서 신에게 대응하는 태도를 말하는 겁니다. -227

 

ㆍ‘그렇게 생각하니 그렇게 보이고, 그렇게 보이니 그렇게 생각한다’-227

 

ㆍ하나의 패러다임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경험은 서로 엉켜있어서 패러다임이 다르면 경험도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228

 

ㆍ우리가 ‘무엇을 보는(또는 경험하는)것’이 아니라 ‘무엇을 무엇으로 본다(또는 경험한다)는 것’을 말해주지요. 결국 우리의 인식은 일종의 해석(interpretation)인 것입니다.-228

같은 현상을 보는 사람도 같은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 같은 일을 경험하는 생각도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도 같은 행동의 양상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이란 이렇듯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하지만 생각의 힘은 크다. 왜 ‘신’이라는 책을 보면서 내가 이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의 내용이 나의 생각과 많이 비슷해서....

 

ㆍ구약시대의 히브리인들이 겪은 숱한 전쟁과 고난이 역사가들에겐느 이스라엘과 인접 국가 간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사건이지만, 예언자들에게는 하나님이 그의 택한 백성을 인도하고 훈련시키고 벌을 줌으로써 그의 목표를 이해시키는 과정이자 도구였던 것입니다. -229

 다른 시각 다른 패러다임

 

ㆍ‘신의 현존을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는 결국 당신이 어떤 패러다임을 가졌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230

이 문제 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제가 그렇겟지. 모두가 같은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ㆍ진정한 회심은 인간으로 인해 수없이 진노한 존재, 인간을 어느 때나 정당하게 멸할 수 있는 보편적 존재 앞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무()로 만드는 데 있으며, 그 존재 없이는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또한 그에게 버림받았음 외에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음을 인정하는데 있다. -233

 

ㆍ어떤 종류의 신비적 체험을 한 후 그것이 전화점이 되어 그 사람의 삶이 기독교적으로 변한다면-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면 그는 분명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면, 아닌 것이지요. -234

 모든 신비척 체험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ㆍ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우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보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린도 전서 13:1~2) -235

사랑. 기독교에서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 불교에서 부르짖는 자비와 유사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행위가 훌륭하더라도 의도의 중요성을 잊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한다.

 

ㆍ그를 찾는 사람은 그를 알 수 있고,

찾지 않는 사람은 그를 알 수 없는 표시를 주었다.

<오직 보기를 원하는 자에게 충분한 빛이 있고,

이와 반대되는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충분한 어둠이 있다.> -235

찾고자 해야 찾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신이 아닐 지라도 오직 원하는 자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무엇이던지.

 

ㆍ어머니는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철저하게 절제하며 오로지 아들을 축복하려고 애썼습니다. -240

내가 죽을 때가 되면 이렇게 하은이를 축복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ㆍ통에 채원진 첫 번째 포도주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통에서 그 향기를 풍기는 법 -246

 

ㆍ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397, 그의 나이 마흔셋에 썼습니다. -264

공통점 찾기 놀이

 

ㆍ이 모든 것이 하나같이 훗날 그가 위대한 기독교 신학자가 되는 데 필연적이 준비과정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264

어떤 경험이라도 나에게 마이너스를 가져오는 것은 없다. 우리는 단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있을 뿐이다. 나에게 아픔을 주고 시련을 주는 경험이라도, 정말 쓸모 없어 보이는 경험이라도 나를 키우고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의미만 제대로 파악할 힘이 있다면 말이다. 우리가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경험은 쓰레기와 같이 정말 없었으면 하는 그런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경험도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되는 일도 내 인생에서 지워버렸으면 하는 그런 일들도 나에게 자양분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은 내 안에서 할 수 있다.

 

ㆍ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위대한 후계자이자 경쟁자이기도 한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지적 탁월성과 영적 경건함을 타고난 사람이 결코 아니었어요. 마치 우리들이 그렇듯이 그의 영혼도 본디 칠흑처럼 깜깜했고, 그 안에서는 세속적 욕망이 용광로처럼 들끓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으면서 그것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269

 

ㆍ시간이란 항 형상이 다른 형상으로 바뀌는 사물의 변화는 이루어지는 거이옵니다. -275

 사물과 사건이 없으면 시간도 없다.

 

ㆍ창초성과 백뱅이론 사이에 존재하는 부인할 수 없는 유사성에 먼저 놀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종교와 과학이 설사 같은 용어로 같은 내용을 말할지라도,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는 사사리을 역시 적잖은 놀라움 속에서 발견하게 될 겁니다. -277

 

ㆍ우주는 그야말로 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284

 

ㆍ과학자들은 그건 아직 모른다라고만 대답하고, 신학자들은 당신들이 모르는 그 원인이 바로 신이다.”라도 말합니다. -286

 조금은 편안한 해결법이라 보이지 않는가?

 

ㆍ설사 언젠가 그 궁극적 가정들을 설명할 증거가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그 새로운 증거의 근거에 대한 물음은 계속 되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신학자들은 그때마다 :그 대댑을 할 수 없는 궁극적인 물음의 해답은 언제나 경험과학의 영역 너머에 놓이게 마련입니다. -287

 무수한 반복?

 

ㆍ창조론과 다중 우주론 가운에 어느 주장이 옳을 까요? 판다은 아직은 혹은 영원히 당신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298

 

ㆍ삶의 양식이 변하자 언어놀이가 변했고, 개념과 더불어 단어의 의미가 변한 것이지요.

 

ㆍ“하나의 언어를 떠올리는 것은 하나의 삶의 양식을 떠올리는 것이다.

 

ㆍ어떤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삶의 양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ㆍ같은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은 같은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303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잣대를 가지고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맥락에서 그를 이해해야 한다. “공감의 시대”에서 볼 수 있는 핵심과 비슷하다.

 

ㆍ과학과 종교의 대립에서도 이들이 전혀 다른 문법으로 서로 다른 언어놀이를 하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과학과 종교 사이에 바람직한 소통이 비로소 가능해지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이해의 진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305

과학과 종교 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경우는 많이 있다. 한글을 쓰지만 말이 안 통하는거.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쉬운듯 보이면서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ㆍ우리는 자신의 언어놀이에 속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언어놀이의 문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이해의 진보를 가져와 타인과의 의사소통이 오히려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307

 

ㆍ만일 당신이 상대의 주장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 같은 새로운 합의나 일치를 얻어 냈다면 당신은 비로소 ‘이해의 진보’를 이룬 것이고 그로써 상대와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것이지요. -309

 

ㆍ과학과 종교간에 이뤄져야 하는 대화와 소통의 조건이자 목표는 어떤 합의나 일치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 담론에 대한 ‘진정한 이해’입니다. 그러지 않은 채 성급히 어떤 일치나 합의를 끌어낼 목적으로 하는 소통은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논쟁이 되거나, 획일화를 강제로 유방하기 때문이지요.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상대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일치나 합의에는 -설사 그것이 옳은 자가 그른 자에게 베푸는 선의라는 겉옷을 입고 나타날 때조차-사실상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가하는 부당한 대우와 폭력이 들어 있게 마련입니다. -311

아이에게 말하는 나를 반성하게 된다. 다치지 않게 하려고 “하지마”를 남발하고 있는 나는 그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아이를 억누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결국 아이는 다치지 않겠지만 내가 하는 말이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ㆍ서로 다른 문법들을 가진 담론들을 어느 하나의 문법으로 획일화하려는 야망을 갖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이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 진리라는 생각, 그리하여 그것을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기인한 만행에 불과합니다. -313

반성하자....

 

ㆍ같은 대상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조명하여, 단지 하나로 통합하거나 융합하는 게 아니라 나란히 겹쳐 놓음으로써 보다 진리에 가까운 입체적이고 생생한 지식이 제 스스로 드러나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313

 

ㆍ학문에서는 항상 개념 또는 용어가 문제 해결의 관건입니다. ….. 새로운 개념과 용어가 새로운 사유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지요.  -319

 

ㆍ누가 내게 묻지 아니하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나이다.

하지만 누가 내게 물어 그것을 설명하려 하면, 나는 알지 못하나이다. -324

때로는 느낌을 전달하는 게 힘이 들 수 있다. 시간이라는 건 단어적인 의미만 가지는 것이 아닐 때가 있으니까.

 

ㆍ우리는 다시 플라톤으로 돌아가 그에게 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도 너무나 자주 그랬듯이 그가 우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오래전에 내놓았기 때문이지요. -325

 

ㆍ시간은 ‘마음 밖에서’ 파악할 수 없고 오직 ‘마음 안에서’ 드러나며, 마음과 하나라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변하면 삶이 변하고, 삶이 변하면 시간도 변하지요. -326

 

ㆍ‘이전’은 이미 존재하지 않고 ‘이후’는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뿐이지요. 그나마도 그 ‘지금’에는 시간적 연장, 곧 지속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분산되는 수많은 찰나들, 즉 지금, 지금, 지금, 지금이 무한히 반복될 뿐이지요. -333

지금 행복하십시오. 라는 말이 와닿는다.

 

ㆍ서양사람들은 시간을 크로노스라도고 부르는데요. 그리스 신화에서 그로노스는 자기 자식을 낳는 대로 잡아먹는 끔찍한 신이지요. 크로노스 안에서 경험하는 우리의 삶은 단지 흘러가고 마는 것, 그래서 값어치 있는 것, 허무한기 작이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333

 

ㆍ과거의 현재는 기억이고, 현재의 현재는 직관이며, 미래의 현재는 기대입니다. -334

 

ㆍ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무한히 분산되지 않고 하나의 통일체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의 통일체 안에서는 과거도 사라져서 허무한 것이 아니며, 현재 역시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미래 또한 다가올지 오지 않을지 모르는 불안한 것이 아니지요. -335

 

ㆍ우리의 마음은 다릅니다 .물리적 시간을 살 수도 있고, 심리적 시간을 살 수도 있어요. 존재물의 시간과 세속적 시간을 살 수고 있고, 존재의 시간과 신적 시간을 살 수도 있습니다.

 

ㆍ우리 마음(영혼)이 심리적 시간을 살 때 우리의 삶은 현전하는 과거, 현재, 미래로 인해 의미와 가치 그리고 희망으로 충만하고 풍요로워지지요, 그래서 존재물보다는 존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신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우리 마음이 심리적 시간, 존재의 시간, 신적인 시간을 살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337

당연히 그래야 하고 그럴 수도 있는데 많은 순간은 물리적 시간으로 살고 있는 나를 본다. 몸이 물리적 시간 안에 갇히더라도 마음이라도 훨훨 날아 심리적 시간으로 살 수 있도록 놓아 주어야지.

 

ㆍ당신의 마음이, 모든 과거가 기억으로 현전(現前)하고 모든 미래도 기대로서 현대 안에 있는 시간을 산다면, 당신을 결코 그런 짓들을 하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결코 사라지지 않고 현전하는 수치스런 과거와 이미 다가와 함께하는 암울한 미래 때문에 평생 괴로울 테니까요. -338

우리가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하는 이유. 과거의 잘못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힐 수도 있으니까. 나의 미래를 저당잡힐 수도 있으니까.

 

ㆍ우리는 여전히 일주일의 고통의 대가로 한순간의 환락을 사지 않나요? 달콤한 포도 한 알을 얻기 위하여 덩굴을 모두 망치지 않나요? 영원을 팔아 순간을 사지 않나요? -339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이런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살다가 한번쯤 물어보는 순간이 있어야 겠다.

 

ㆍ역사의식이 없이는 역사적 사건도 없다. -344

 헤겔

 

ㆍ인간에게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나는 ‘무의지적 기억’은 단지 잊었던 옛 추억을 떠올려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그것은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겹쳐 놓음으로써 시간에 의해 분산된 여러 가지 상들을 모아 이전까지는 감춰져 있던 삶의 진실을 드러내 보여 주는 일을 합니다. 그 결과 일어버린 자신의 정체성,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찾아 주는 일을 하지요. -342

 

ㆍ인간은 역사의 객관일 뿐 아니라 역사의 주관이요, 주체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창조할 뿐 아니라 의식하고, 과거를 기억 속에 축적할 뿐 아니라 미래를 기대 속에서 기획하지요. 그럼으로써 현재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의식은 사실 과거와 미래를 현전하게 하는 상기의 힘에 의해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지요. -344

 

ㆍ물리적 시간으로 자신의 삶과 세계를 파악하는 관점에서 심리적 시간의 관점으로 바꾸는 것이은 인간의 관점에서 신의 관점으로 바꾸는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이지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타노이아의 회심입니다. -346

 

ㆍ창조는 그 근거와 결과가 모두 선하고 아름답다 -367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 사람이 존재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의 기독교적인 모습.

 

ㆍ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고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혀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370

 

ㆍ다바르를 로고스로 표기한 요한의 작업을 통해 로고스의 의미가 다바르의 의미까지 포괄하여 저 확장된 것이지요. 즉 다바르에 내포된 동적, 인격적, 행위적 성격 그리고 비물질적 세계초월성이 로고스에 담진 정적, 지적, 이성적 성격 그리고 물질적 세계내재성과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387

 언제나 갇히지 않고

 

ㆍ그에게 행복은 여전히 마찬가지인데

왜 창조의 여섯 날을

칭송과 명성의 기념비로 세우려고 일했는가?

풍요한 부자가 무엇이 필요하며, 자족하는 자가 무엇을 만들 것인가? -397

 

ㆍ자기충적적인 사람은 홀로 살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봉사나 사랑의 필요 똔느 사회생활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것은 특히 신의 경우에 명백하다. -398

 어쩌면 모두다 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일수고 있겠군.

 

ㆍ세상은 신을 필요로 하지만 신은 세상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신은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만 세상은 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세상으 stl에게 의존하지만 신은 세상에 의존하지 않아요. -401

 

ㆍ우조 밖에서 그것을 하지 못하도록 받는 것이 없는 이상 우주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보하는 것이 틀림없다. -409

 라이프니츠

 

<종의 기원>이 내포하는 유물론적, 실증ㅈ의적 경향이 당시 지식인들의 취향과 맞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다윈의 이도와는 무관하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무신론적 경향도 한 몫을 했지요. 다른 하나는 서술 방식과 관련이 있는데, 풍부한 사례와 뒤어난 수사학적 기법을 동원한 다윈의 표현 기법이 대중을 매혹시키는 데 통분했다는 점입니다. -413

 다윈의 <종의기원>이 히트친 이유

 

ㆍ상상력이 달라지면 관념이 변학 관념이 변하면 세계가 달라 지는 법이지요. -418

 

ㆍ자연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인간사회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도 그렇지요 -418

 

ㆍ자연 상태와 마찬가지로 인간사회에서도 치열한 생존경쟁 관계가 존재하고 그 결과 적자생존이라는 비정한 현상에 생겨난다는 것과 그것이 사회적으로 정당화된다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424

비정한 형상이 생겨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정당화 되어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생겨나더라고 사람은 그것을 수용하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ㆍ자연과는 달리 인간과 사회는 언제나 가치지향적이고, 또 항상 그래야만합니다. 따라서 역사는 진보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하지요. -425

퇴보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의식은 언제나 진보할 수 있다.

 

ㆍ그들은 인간이 짐승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말했을 뿐이지 짐승과 ‘같다’라고 말한 건 아니었지요. 다윈은 오히려 인간이 저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데 자부심과 희망이 있다고 했고, 등산에 열광했던 토머스 헉슬리는 인간을 “살아있는 세계의 알프스 산맥”으로 비유하면서 한껏 드높였습니다. -430

 

ㆍ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거기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은 먼 미래에 더 높은 운명을 항하여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431

말의 의미는 해석하는 것에 따라 여러 의미를 줄 수 있다. 다윈의 말을 이런 식으로 해석해 본 적은 없다. 상당히 과학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거였구나.

 

ㆍ자연석택이라는 다윈의 진화 원리 또한, 신이 만들어 지속적 창조를 위임한 현실화 원리 내지 자연법 또는 영원한 법치의 일부로 밥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454

 

ㆍ신학은 특정 교리를 영구불변하는 진리로 주장하는 체계라기보다는 그것의 시대적 해석이 적절하니 또는 수용가능한지를 늘 질문하면서 성서와 전통적 사상들을 통해 부단히 재고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process)입니다. -460

 

ㆍ성서에 나타난 계시는 신이 오래전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맞춘 것으로 간주하고 오늘날의 우리는 우리의 문화와 사고방식에 맞게 성서를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고 교훈했지요. -461

 

ㆍ기독교 신학은 항상 성서에 근거해야 하지만, 그것은 -마치 역사학이 그렇듯이-언제나 과거와 현재 사이의 창조적 상호작용 속에서 재해석, 재정립되기 때문이예요. 461

신학도 학문이라면 당시의 사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겠지. 결국 학문이라던가 해석이나 이해도 그것과 하는 대화이니, 항상 변화되는 모습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거다. 신학이나 성서에 대해 나와 생각이 비슷한 저자라는 생각.

 

ㆍ우리가 행할 바를 하나님이 예지하시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가 자유 의지로 무엇을 원하는 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467

ㆍ하나님이 예지로 그대의 장래 행복에 관하여 오늘확실히 아신다고 해서 장차 그대사 행복해지기 시작할 때 행복해지련느 의지를 그대에게서 빼앗지는 않는다. 그와 맟나가지로 하나님이 그대의 의지가 장차 범죄를 저지르리라고 에지하신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그 범죄가 자유의 의지가 아닌 것은 아니다. -467

ㆍ우리가 다르게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만일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른다면 우리의 행동이 자유롭다는 것은 여저히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469

 

ㆍ나는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노라.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가 없었기에.

자연을 사랑했고, 다음으로는 예술을 사랑했다.

나는 삶의 모닥불 앞에서 두 손을 쬐었다.

이제 그 불길이 가라앉았으니 나 떠날 준비가 되었노라. -498

세네카의 죽음

 

ㆍ개개인의 인생이 서로 아주 달라보여도 결과는 마찬가지라오, 우리가 받은 것은 무엇이든 사라질 것이며 우리 자신도 사라진다는 것이오. 그런데 왜 우리가 분개하며 무엇 때문에 불평해야 하는 거요? -503

 세네카

 

ㆍ자기 본성상 고통을 ㅂ호르믐 신은 고통의 저쪽에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써 고통 속애서 태어나 이성과 용기로 고통을 극복한 스토아 철학자들은 고통의 위쪽에 위치한다고 했지요. -505

 좀 맞는 말 같자 않나? 세네카

 

ㆍ기독교는 예수가 전한 복음에서 시작하여 그것에서 끝나는 종교지만 예수의 복음만으로 만들어진 종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514

 한계를 정확히 알 필요는 있다.

 

ㆍ칼빈에게 중요한 일들은 평생 동안 정작 자신의 의지와 별 관계가 없이 일어났다는 것이지요. 객관적으로 보면 그건 칼빈의 소심하고 나약한 성격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칼빈 자신도 그것을 인정했고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칼빈 자신이 그 모든 일을 수치스럽거나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527

 받아들이기 나름

 

ㆍ그리스 철학자들이 이성으로 그 잡을 착았을 때 그들은 신의 침묵을 경험했디만, 히브리인들이 신앙으로그 답을 찾았을 때 그들은 신이 말을 걸어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545

 신앙과 이성

 

ㆍ신의 인격성에 대한 인간의 인격적 대응이 곧 기도입니다. -559

신이 인격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가치가 있다고 들린다.

 

ㆍ선한 목적과 의도에서 나온 강제는 오히려 그 인격성을 강화해 줄 수도 있음을 보여 주지요. 신의 섭리와 인격성의 관계가 바로 그렇다는 것이 기독교의 입장입니다. 다시 말해 신의 섭리에 의한 강제는 선한 목적과 의도에 따른 것어서 신의 인격성을 더 잘 드러낸다는 말이지요. -561

 

ㆍ기독교인에게 신을 빋는다는 것은 신의 인격성을 믿는 것이자 곧 그의 섭리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전능하고 신실하여, 설사 내가 이 눈물 골짜기에서 악한 일을 당하게 하실지라도 그것이 변해 선이 되개 하실 것을 믿고 의심치 않기 대문에 나의 모든 것을 그의 뜻에 맡긴다는 의미이지요. -563

 

ㆍ그러나 어머니는 여전히 어머니고 어머니의 눈길은 여전히 인자하고 부드럽다. -564

이런 어머니가 되고 싶다.

 

ㆍ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가르침을 기도란 ‘자신에게 합당한 것’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합당한 것을 청원하는 것”이라고 표현했지요. -567

 

ㆍ기돈느 우리사 신을 조종하는 도구가 아니라 신이 우리를 조종하는 도구가 됩니다. 그래야만 기도가 우리를 자신의 뜻과 의지를 따르려는 자율적 인간이 아니라 신의 뜻과 의지를 따르려는 신율덕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이지요. -567

 우리가 변한느 것인가?

 

ㆍ예수가 말한 신이 더해 줄 “모든 것”이란 ‘신이 보기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이지)마태복음 6:7, 32),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모든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신은 오직 그의 섭리에 따라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좋은 모든 것’을 더해 준다는 뜻이지요. -571

 

ㆍ“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부분이지요. 이때 예수가 말하는 ‘좋은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것이 아니라 신이 생각하는 좋은 것입니다. -571

간혹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그것을 기도라고 생각한다. “하느님 이제 때가 되지 않았나요? 이번엔 되겠죠?” 라는 식의 말을 그냥 하는 거다. 내가 말로 구구절절히 읊지 않아도 신은 내가 원하는 바를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루어질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신은 그렇다.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신을 비방하지는 않는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얻는 것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ㆍ신의 강제적 섭리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한없이 유익하다는 것이지요. 왜냐고요? 가도하는 사람은 기도를 통해 원하는 응답을 받으면 받는대로, 또 받지 못하면 받지 못한 대로 그 결과를, 자신을 향한 신의 섭리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75

실패의 원인을 자신이 못나서라고 생각하는 자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자는 같은 실패를 한 것 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ㆍ신의 섭리를 믿는 사람이라면 기도로 신의 섭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자기 자신의 마음은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576

결국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중요한 것.

 

ㆍ기도는 누구에게나 자신을 향한 신의 의지를 드러내도록 하며 자족하게 하지요. -576

 leh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ㆍ세네카는 네로 같은 향락주의자들을 “살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죽을 줄도 모르는 인간”이라고 평했지요, 그래서 이들은 항상 삶에 대한 불안과 절망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린다고도 주장했습니다. -582

무섭고도 불쌍한 인간. 그런 인간이 되지 말아야 겠다고 수없이 생각한다.

 

익서도 좋고 저것도 좋다가 아니라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양자택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지요. -583

 자유. 왠지 역설적이지만 공감이 간다.

 

ㆍ절망하라. 그러면 그대 정신은 결코 더 이상은 우울 속에서 신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가, 비록 그대는 그 세계를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볼 것이지만, 다시금 그대에게는 아름다워질 것이고, 즐거운 것이 될 것이고, 그리고 그대의 해방된 정신은 자유의 세계로 날개 치며 솟아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585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라는 신조로 사는 그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스스로 갖지 못하ㅕ,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진실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지요. 따라서 그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긑 간데 는 병적 불안감은 여기서 기인합니다. -586

 

ㆍ인간은 오직 뉘우침과 죄의식이라는 처절한 절망감 속에서만 무한한 자기테념을 할 수 있게 되며 그제야 비로소 신을 발견하게 되고 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의지하고 헌신하는 <종교적 단계>로 들어가가 된다듣 말입니다. -593

 

ㆍ주님이 기다리신다면,

그것은 우둔한 지체가 아니라 지혜입니다.

주님이 기다리시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고,

우리를 도와주셔야 할 때를 미리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기다리신다면,

그것은 인색함 때문이 아니고

적절한 때에 자녀들에게 주시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안전한 곳에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경 륜이십니다. -607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이리 생각하는 것은 정말 마음이 편한 행위다. 적절한 때에 가장 좋은 모습으로 나에게 주시려 한다는 믿음을 나는 가지고 있다. 좋은 것을 주어도 모르는 때가 있다. 내가 받이들일 때가 되지 않아서 주지 않으실 때도 있고 혹은 더 좋은 것을 위해 거두어가실 때도 있다. 그래도 내가 절망하지 않고 신을 믿는 것은 이런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ㆍ혼탁한 강물이 범람하는 땅에서 달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자라는 법이지요. -688

 

ㆍ인간의 한계로 조용이 받아들였지요. 그리고 곧바로 이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위대한 일로 자신의 관심사를 돌렸어요, 그것은 삼위일체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 또는 지시하는 바다 무엇인지를 피악하는 일이었습니다. -717

 힌계를 인정하고 다른 문을 열다.

 

ㆍ진리는 말 뿐만 아니라 행위를 통해 구현된다는 것, 기독교를 통해 서양문명 안에 잠재되어 부단히 내려오는 바로 이 고귀한 사유를 감안할 때, 우리가 삼위일체의 내용을 단순히 사변적으로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실천적 지침이 되느냐 하는 것이지요. -720

성서를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하느님의 계시를 한자한자 따져보는 것도 좋지만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ㆍ진리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면 우리의 사고 영역을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723

 

ㆍ아가페는-마치 여러 악기가 서로 다른 자신들의 역할을 오히려 굳기 지킴으로써 다상성을 가진 하나의 음악을 이루어 내는 교향악처럼-서로 다른 개체들이 모여 서로의 이질성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어럿이면서 하나’인 공통체를 마침내 이루어 내는 사랑이지요. -726

 

ㆍ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 신이 갖는 유일성은 포괄성이지 베타성이 아니라는 것, 또한 그것은 통일성이지 단일성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ㆍ그 말은 오히려 ‘신의 이름으로’ 상호내주적이고 상호침투적인 포용과 사랑을 베풀어 “나란히 그리고 더 불어”실존하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엄중한 선언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만 하지요. -732

우리는 흔히 배타성으로 기독교를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믿지 않는 자는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말을 들으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 종교를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모습을 가진 종교인들은 싫어하게 된다.

 

ㆍ십자군을 일으키며 신의 뜻이시다.”라는 구호로 민중을 선동했던 중세 성직자들이 그랬듯이,ㅅ 신을 왜곡하여 빌미로 삼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쉬운 선동 방법이지만 동시에 가장 나쁜 방법이기도 하지요. -742

 

ㆍ그렇다면 신의 대한 이해와 표현의 변천은 단지 ‘인간에 의해 경험된 신의 역사’일 뿐입니다. 시간 밖에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하는 신이 역사 안에서 인간정신과 문화의 진보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이해되고 표현되었다는 뜻이지요. -748

내가 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식과 비슷한 느낌.

 

ㆍ하지만 나는 당신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마치 대지가 당신을 이해하고 있듯이.

내가 성숙함에 따라

당신의 나라도

성숙합니다. -749

 개인이 성숙해야 하는 이유

 

ㆍ신에 대한 인간의 관념은 역사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다양한 시점에서 그 관념을 사용했던 각 집단에게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시대에 한 집단에 의해 형성된 신 관념은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에게 무의미할 수 있다. -750

우리는 지금 애니미즘이나 샤머니즘을 믿고 있는 건 아니니까.

 

ㆍ신에 대한 어떤 하나의 생각이 의미나 적절성을 상실했을 때 그것은 조용히 폐기처분되고 곧바로 새로운 식한으로 대체되었다. -751

 

ㆍ인간에게 계시되는 신은 역사 안에서 진보하는 인간정신과 문화에 따라 그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해되고 표현된다는 것이지요. -753

 

ㆍ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드링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 어떤 존재인지, 그가 어떻게 활동하는지 모른다 하더라도 그들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하 사람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해 나간다면 신이 그들의 사람에 간여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769

 포용성

 

ㆍ결국 백살 노인이 되어 족은 그는 다시금 천구의 문을 두드렸지요. “거기 누구시오?” 또 다시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때 수도자는 황급히 대답했지요. “당신입니다. 주님, 당신이예요1” 그러자 즉시 문이 열러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774

 루미의 시

 

ㆍ신은 언제나 그 시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들의 외연이며, 도이에 그것들의 정점이다. -781

 

ㆍ인간은 어떤 문명에 살고 있던 간에 다른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가치관, 제도, 관행을 확대하는 방법을 꾸준히 모색하고 그 방안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런 노력들이 쌓이게 되면 문명의 충돌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단일 문명의 실현 가능성도 높아진다. -782

 

ㆍ신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아낀다는 사실이지요, -790

이 쉬운 듯 보이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는 많은 곳에서 발견한다. 예로부터 종교는 많은 충돌을 가져왔으니까. 지금도 끊이지 않는 종교 분쟁지역의 소식들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떤 종교의 신이든 다른 종교를 배척하라고 하지는 않을 텐데.

 

ㆍ신의 뜻을 거역하는 독선적이고 탐욕적이며 배타적인 성직자들와 교인들아! 너희는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듯이 신의 가혹한 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나에게 밝혓듯이 신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아끼기 때문이다. -790

 

ㆍ이것을 취하되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하지요. 요컨대 작은 이야기들도 하되, 큰 이야기도 함께 하자는 말입니다. -808

 

ㆍ작은 이야가 없는 큰 이야기는 공허하며 큰 이야기 없는 작은 이야기는 맹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이야기와 작은 이야기들이 서롤르 보완하고 견제하게 하자는 거지요. -809

 

ㆍ그가 말한 ‘온전한 사랑’ 안에서는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이 신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공허함을 해소하고, 신 사랑과 이웃 사랑이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의 맹목성을 바로잡아 줍니다. -809

 

ㆍ길이 없으면 만들어 가야겠지요. 여기서부터 희망입니다. -810

나는 이런 희망적인 결론들이 좋다.

 

ㆍ고대가 저물어 갈 무렵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종합이 이뤄졌고, 중세가 황혼에 물들 때 르네상스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우리도 새 길을 찾아야 할 때 입니다. 쉬운 일은아니겠지만, 아마도 이것이 오늘날의 인문학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성공한담ㄴ, 그건 새로운 종합이 될 것이며 새로운 르네상스가 될 것입니다.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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