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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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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5일 11시 08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저자는 <깊은 인생>의 마지막 부분에서 재능의 사회적 기부와 연관하여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내 꿈의 첫 페이지'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프로그램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있다. 그가 만들어 가고 있는 세상에는 만남, 인정, 사랑이 있고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삶에 대한 열정이 있다. 그를 통해서 만나게 된 많은 사람들, 그들은 저자 구본형, 싸부 구본형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언젠가 사부를 닮고 싶다고 말씀 드리니, 니체의 말을 빌려 이렇게 답하셨다. “가장 나쁜 제자는 스승을 영원히 빛나게 하는 자다.” 말씀의 깊은 뜻에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나는 사부를 넘지 못할 것이다. 대신에 나는 사부와 조금 떨어진 다른 길을 걸을 것이다. 길은 다르겠지만 방향은 같고 서로 손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때로는 눈동자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을 것이다. 사부는 늘 내 마음에 있을 것이다. 사부는 깊고 섬세하다. 의미를 추구하고 자신의 세계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즐긴다.  - 홍승완 2005. 6. 10

 

구본형 아저씨의 삶이 너무나 샘이 났다. 너무나 멋있어서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기가 좋아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삶 자체를 즐기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씨앗을 퍼트리는 나무 같은 삶.  - 23살 젬마 2005. 7. 28

 

실제로 본 그는 내가 생각한 사람과 인상이 달랐다. 실제의 그는 생각보다 얼굴이 작았고, 곱상했으며, 훨씬 인텔리적인 느낌이었다. 공부를 잘했을 것 같고, 현대적이고 세련된 것 같고, 성공한 엘리트-같은 느낌. 그는 아주 크게, 활짝 웃는 사람이고, 미식가이며, 목소리가 아주 굵고 좋다. 술에 잘 취하지 않는 것 같고, 앉은 자리 매너부터 사람을 챙기는 마무리까지 완벽했다.(그래서 좀 아쉬웠다) 계획에 여유가 있어서, 허둥대거나 조급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 왠지 소극적일 것 같다. 마음을 여는 것이. 먼저 다가가지 않고, 분석하고, 냉담하고. 그의 곁에는 그를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를 더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 같다. 그는 분명, 매혹적이고, 향기가 강한, 꽃이다.  - 박소정 2006. 4. 11

 

구본형 소장님은 나의 역할 모델이 되었다. 그 분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영감을 얻는다. 그럴 때에는 책의 여백에 빼곡히 그 영감들을 적어야 했다. 때로는 책을 읽다가 흥분하기도 한다. 책의 내용을 실천해 보리라는 의욕이 하늘을 찌를 때다. 그의 책을 읽었다는 것은 나에게 행운이었고,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책이 남아 있다는 것은 나에게 행복이다.  - 이희석 2007. 3. 19

 

선생의 인품에는 절대로 남을 비하하거나 꾸짖지 않는 자상함과 인자함, 기다려주고 보살피는 신사다움이 배어있다. 게다가 그 사람의 핵심을 찾아내어 장점을 크게 부각시키고 확장시켜서 그의 단점마저도 다 흡수되어버리게 삶의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나는 이런 확실하게 신들린 무당(?)을 처음 본다. 사주팔자를 챙겨 적어놓고 복채를 준비하여 묻지 않아도 당사자가 가장 갑갑해 하고 궁금해 하는 삶의 궁극적이고 구체적인 방향과 틀을 잡아 명확히 제시하며 함께 고민하고 격려해 나간다. 게다가 슬며시 각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가장 절실한 화두 하나를 던져서 해당 화두를 곰곰이 생각해서 깨우치게 하는 절묘한 스승이다.  - 정선이 2007. 3. 19

선생님은 나의 달콤한 알사탕이다. 한입에 넣어 아자작 씹어 삼켜버리는 비스켓류의 과자와는 성질이 전혀 다르다.  -최정희 2007. 7. 24

 

소시민들은 모두가 부러워하면서도 아무나 그리 살지 못함을 일상에서 하나하나 수를 놓듯 동화같이 예쁘게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나무처럼 가꾸고 덜어내며 수신하는 저자의 내면과 일상적 취향이 하나의 숨결로서 고르게 상생하여 뿜어져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동심을 잃지 않고 점점 순해지는 스승의 마음결을 따라 함께 걷고 나누며 배우는 길은 미혹된 자의 마음까지도 절로 맑게 정화시켜가니 이 틈에 끼여 노는 것이 그저 기쁘고 즐거울 따름이다.  - 써니 2008. 6. 27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그는 매우 조용한 사람이다. 그는 나긋나긋 말을 하는 사람이고 다른사람들이 하는 말을 주로 듣는 편이다. 그러나 그는 내면에 불을 품은 사람이다. 그가 쓰는 책을보면 그렇다. 그의 책은 독자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대고 독자들을 대신해서 화를 내며 그들에게인생을 변화 시킬 것을 은근히 그렇지만 강력하게 꼬드긴다. 오현정 2008. 7. 21

 

동료 연구원들은 선생님을 ‘사부님’이라고 부른다. 때론 맘 좋고 때로는 엄한 멘토이자 존경하는 스승이신 선생님께 대한 최고의 예우를 보이기 위해 이렇게 호칭하고 있음이리라. 하지만 나는 아직 이 호칭을 아껴두고 있다. 언젠가 나의 최고의 존경을 담아 선생님을 부르고 싶을 때 그때를 위해서. 나에게 선생님은 존중하고 싶고 극복하고 싶고 그러면서도 더욱 더 빛내드리고 싶은 그런 분이다.   - 희산 2009. 7. 20

 

: ‘안녕하세요.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인가요?

구본형님 : ‘네. 그런데요. (묵직한 목소리로)

: ‘구본형 소장님좀 부탁 드리겠습니다.

구본형님 : ‘전데요.

: ....... (당황해서 잠시 말을 못이어 나감)  - 이승호 2009. 7. 19

 

나를 인류 최고의 행운아로 만들어준 마법사.  - 박미옥 2010. 12. 28

 

구천을 헤매던 이미지가 한 사람으로 인하여 몸을 찾았다. .구본형, 나의 스승으로 인하여 삶이 詩가 될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 박상현2010. 12. 28

 

우리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스승이라는 그늘 아래에서 삶이라는 주제를 두고 함께하고 있다. 아무튼 그는 일반적이지 않다. 아주 특별하다. 우리는 그의 특별함을 좋아한다.

나의 삶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내일을 확신할 수 없지만 예전처럼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사부님에 대한 믿음과 가르침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서, 가르침을 따라서 나의 길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저 감사하고 사랑할 따름이다.

 

 

 

 

2.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시작하며

꽃봉오리가 열리고 보잘것없는 것으로부터 위대한 것이 태어나는 인생의 정점에서, 하나는 둘이 된다. 늘 우리의 내부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이 위대한 모습은 대각성을 촉구하며 지금까지의 내게 정면으로 맞서 떨쳐 일어난다.   - 카를 구스타프 융 (5)

 

우리는 언제 황금빛 사자가 되는가? 우리의 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위대함의 씨앗은 어느 때 발아하게 되는가? 언제 우리는 그 시점을 계기로 과거의 그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가? (5)

삶에서 어떤 질문을 하느냐는 어떤 삶을 사느냐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부님은 이 책을 쓰시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하셨구나. 나는 나의 첫 책을 위해서 어떤 구체적인 질문을 가지고 있는가.

 

 

프롤로그 시()처럼 산다

 

시처럼 살고 싶다. 나도 깊은 인생을 살고 싶다. 무겁고 진지한 삶이 아니라 바람처럼 자유롭고, 그 바람결 위의 새처럼 가벼운 기쁨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싶다. (11)

 

어느 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사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문득 의미를 발견하여 말할 수 없는 헌신으로 열중하고, 평범한 한 여인이 문득 하던 일을 중단하고 내면의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하는 느닷없는 전환은 아름답다. 그것이 삶을 시처럼 사는 것이다. (11)

삶을 시처럼 산다는 말은 바람이 불어 내 살갗에 닿는 것처럼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듯하지만 언어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사부님에게 시는 무엇이고, 삶을 시처럼 사는 것은 무엇인가. 책을 끝까지 읽은 후에도 시처럼 사는 것에 대한 정의는 어려웠다.

 

위대한 사람들의 삶을 엿보면서 삶이 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갈림길 앞에서 그들의 운명은 한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길 이후 인생의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니, 갈림길마다 새로운 차원의 세상이 열리게 된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도 비범한 분야 하나쯤은 푸른 하늘처럼 가슴에 품고 있다. 이것이 나의 믿음이다. (12)

 

마리츠버그의 역사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는 동안 간디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무엇을 보게 되었을까? (13)

일상의 되풀이에 만족하고 그 일상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그 지점에서 운명은 멈춰있는 것과 같다. 새로운 경험과 배움, 그리고 내면을 향한 물음 그런 부단함이 운명을 조금씩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내 안의 잠재력이 때를 만나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려면,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깊은 인생으로 들어서는 문’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문은 ‘깨우침의 문’이다. 소명에 대한 각성과 교유한 잠재력이 발견되는 대각성의 순간이다. 두 번째 ‘견딤의 문’을 들어서면 오래 참아내야 한다. 침묵의 10년을 고독하게 지내며, 선택한 삶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 마지막 문은 ‘넘어섬의 문’이다. 선생을 넘어서야 하고 나 자신도 넘어서야 비로소 우주의 위대함에 닿을 수 있다. (15)

깨우침 - 견딤 - 넘어섬이라는 영웅의 여정을 잊지 말라. 나는 지금 어디를 걷고 있는지를 아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나의 앞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조금씩 준비하는 위안을 갖는다. 나는 견디고 넘어설 것이다.

 

 

[깨우침] 깊은 인생으로 들어서는 첫 번째 문

 

깨우침 하나 - 우연은 운명을 이끌고 / 마리츠버그 역, 기적의 정차 - 간디

 

상황은 저절로 벌어진다.  - 일리아나 구어 (23)

 

그때 나는 자신의 미래에만 민감한 한 젊고 어설픈 변호사에서 인도인의 권리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이 한 차원 도약한 것이다. (30)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 우연은 비로소 필연적 운명이 될 수 있었다. 장전된 대포에 불이 붙듯, 준비된 바탕 위에 우연이라는 불길이 나를 터지게 했다. (31)

 

"어찌하여 제가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저 우연의 모습으로 나타난 필연에 의해 제게 주어진 역할을 알게 되었고 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당신은 누군가에게 이 역할을 맡기셨을 것입니다.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왜 저였는지는 아직도 모릅니다. 아마 제가 당신을 향해 주저하면서도 한 걸음 다가섰기 때문에 당신이 기뻐하며 제게 열 걸음 다가와 당신의 은총을 보이신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잔을 제게 내미신 것입니다. 그 잔이 제게 왔을 때 무섭고 두려웠지만 그 잔을 들게 하고, 그 우주적 떨림에 의지하여 제 길을 더듬어 갈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일단 이 길로 들어서니 열리지 않았던 문들이 열리고, 모든 것이 착착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진행됩니다. 그리하여 이 길이 제 인생이 되고 말았음에 저는 철철 눈물을 흘리며 감사합니다." (32)

처음을, 시작이라는 부분에 확신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음과 두려움 때문이다. 길의 초입에서 길의 끄트머리를 상상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증명하려는 것은 연목구어하는 것과 결코 다를 바가 아니다. 한 걸음 내딛는 것, 그것을 하는 것이 소명을 향해서 나아가는 가장 빠른 걸음임을....

 

모든 우연이 다 필연이 되지는 못한다. 우연은 우연으로 흘러 잊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오직 특별한 우연만이 우리로 하여금 우주와 공명하고 있다는 일대 각성에 이르게 한다. 그 우연은 이내 우리의 소명이 된다. 우연이 운명이 되는 것이다. (33)

 

운명의 갈림길에서 그는 모험에의 소명을 깨닫게 된다. (34)

 

'삶의 지평은 너무 좁아 더는 그의 영혼의 크기에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바야흐로 또 하나의 삶의 문턱을 넘어야 할 때에 이른 것이다. (34)

영혼의 크기,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가? 그렇다. 나는 어느 정도 자신하여 대답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배웠다. 그것보다도 나는 느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의미 있는 어떤 일을 해 낼 것을 느꼈다. 커가는 것을 확장되는 영혼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어떤 우연한 사건이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사건과 그 사람의 정신세계는 이미 어쩔 수 없이 얽혀 있다는 점을 말이다. (34)

나와 마음 속에 얽혀있는 것. 직장이라는 것, 일터라는 것, 직장인의 삶이라는 것이 싫어서 나는 그곳을 벗어났지만 그 벗어남에서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찾을 수 있기를 갈망했지만 나는 다시 그것으로 돌아갈 것을 기약하고 있다. 그곳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도망가고 싶었던 그 마음은 그 일을 내가 사랑하고 있었다는 방증이었다. 나와 얽혀있는 것을 나는 잘 풀어볼 것이다. 그리고 그 풀어낸 이야기를 나는 세상에 내어 놓을 것이다.

 

사건이 사람을 이끌고 우연이 운명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신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어떤 우연도 위대한 각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제가가 준비되면 위대한 스승이 나타나듯. 사람이 준비되면 위대한 사건이 일어난다. (37)

 

"...방랑하는 동안 나는 생각보다 많이 변했다. 그 깊이는 내가 생각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40)

체게바라의 라티아메리아의 여행이나 내가 하는 변경연을 통한 삶의 여행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지금의 여행을 통해서 과거의 나를 보고 미래의 나를 보고, 오늘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잇다. 나 또한 내가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무적인 것은 이런 길을 통해서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던 지식이 자신에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순간 우리는 체험하게 되고, 느끼게 되고,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막연한 지식이 자신 안에서 구체적 체험으로 전환될 때, 우리는 각성하게 된다. (41)

 

우연은 우연이 아니다. 우연은 우리를 어딘가로 이끈다.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체험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 일이 없었다면 그저 막연하고 피상적 지식에 그치고 말았을 지식을 ‘내가 연루된 직접적인 사건’에 적용하게 함으로써 위대한 지적 도약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깨달음의 실험장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일을 겪는 순간 우레와 천둥처럼 우주적 공명을 겪게 된다. 큰 길은 하늘이 정하고, 작은 길은 인간이 계획한다. 우리가 준비되면 우주는 모험을 떠날 수 있도록 사건을 만들어준다. 우연의 이름을 가진 필연으로 말이다. (42)

 

현업은 시대를 앞서 꿈꾸는 내가 되기 위해서 지금의 나를 모두 바쳐야 하는 수련 과정으로 여겨졌다. (46)

사부님의 이런 사고가 부럽다. 성숙된 생각. 그저 어쩔 수 없는 하루가 아닌 그 어쩔 수 없는 하루의 무대를 다른 것을 바꾸는 것. 생각의 전환. 그것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것임을...

 

 

깨우침 둘 - 야생의 재능이 나를 부를 때 / 춤추는 연신과의 마주침 - 마사 그레이엄

 

진실한 삶을 사는 사람은 신의 이름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흙 속에 묻어두지 않는다. -니콜라이 고골 (54)

 

이 확연한 깨달음, 너무도 분명한 내적 공명, 열일곱 내가 맛본 그 판타지는 내 영혼에 찍힌 각인이었다. 너무도 뜨겁고 너무도 강렬하고 황홀하여 모든 것을 잊게 하는 감격이었던 것이다. 바람과 매가 부딪히듯 아무 소리도 없이 나는 푸른 하늘을 솟구쳐 오르는가 하면, 지금껏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는 높은 곳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한 번도 그렇게 쳐다본 적이 없는 이 세상을 말이다. 어쩌면 나는 낚싯바늘에 단단히 입이 걸린 고기 같았다. (53)

의문이 떠오른다. 어느 순간 이런 천둥 같은 순간이 느껴지기는 하는 것일까. 그 순간 그것을 느끼는 것일까?

 

내 분야를 이렇게 빨리 터득할 수 있고, 이것을 하면 지칠 줄 모르고, 누구보다 열심히 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춤꾼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그리고 기회가 내게 몰려들었다. (55)

 

“그녀의 무용에는 열정과 항의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 그녀는 무용가로서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한 셈이다. ······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57)

 

꿈은 현재라는 점이 하나의 선으로 일렁이며 미래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화폭을 모험이라는 위대한 긴장의 울림으로 가득하게 만든다. 천복에 이르는 업을 찾을 때는 재능을 나침반으로 삼아야 한다. (58)

이런 의미에서 최근에 읽은 강점혁명은 의미가 있다. 나의 몇 가지 특성들에 대한 뒷받침되는 근거를 확보한 것은 스스로에게 신뢰를 준다. 자신에 대한 탐색과 확인. 그리고 꿈.

 

하워드 가드너는 리더십에 대한 특별한 정의를 가지고 있다. 그에 따르면, 리더십이란 신비로운 카리스마를 가지고 사람을 통솔하거나 다루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타고난 재능이 적절한 사회 문화적 조건 속에서 연습되고 다듬어진 훈련된 능력’ 이다. (60)

 

가드너는 성공하고 싶다면 "당신의 독특한 점을 이로운 축복이 되도록 만들어라. 많은 경험을 쌓아라. 그리고 그것을 가장 긍정적인 방법으로 계발하라." 고 조언한다. 인생의 목표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빛나게 하는 것이다. (61)

 

성공은 재능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태어났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카드 게임과 같다. 패는 주어지는 것이다. 좋은 패도 있고 나쁜 패도 있다.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카드 게임에 참가한 플레이어로 주어진 패를 가지고 이기기 위해서, 혹은 즐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재능은 주어진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그러나 받은 재능을 다 쓰고 가야 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다. 그리고 위대함이란 받은 탤런트의 크기가 얼마가 되었든 받은 만큼 다 쓰고 갈 때 찾아온다. (63)

 

평범함이란 없다. 그것은 아직 속에 있는 것이 개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것이 터져 나올 때 누구나 비범함으로 도약할 수 있다. (64)

 

이 빛나는 날 내게는 오늘을 마음대로 할 자유가 주어졌으나 나는 오늘을 보낼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나의 하루가 속절없이 흘러가겠구나. 그렇게 내 인생도 가뭇없이 사라지련만 나는 인생의 절반 지점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이렇게 환한 낮이 밝아오는데 시체처럼 방 안에 누워만 있구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67)

 

새벽은 명징하지만 나는 새벽에 늘 불가능한 것을 꿈꾸고 그것을 믿는 훈련을 한다. (69)

 

나는 내 비즈니스의 영역을 규정했다. 나는 '이야기를 파는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불가능한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믿게 만들수록 내 비즈니스는 번창하게 된다. (70)

 

 

[견딤] 깊은 인생으로 들어서는 두 번째 문

 

견딤 하나 - 끈질기게 삶에 달라붙다 / 사라진 영웅, 다시 살아나다 - 윈스턴 처칠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자신의 마음속에서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곧 다른 사람에게도 진실이 된다.  -R.W, 에머슨 (77)

 

'나라는 사람, 나의 메시지, 그리고 그 메시지를 표현하는 나' (77)

삼위일체의 요소는 나에게도 중요한 과제이다.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대한 고민도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적절히 나를 드러낼 수 있다.

 

극단적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것에 대해 내가 신념을 가지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굴복하지 않는 힘, 도대체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79)

 

그들은 대략 알고 있는 것을 나는 자세히 알고 있었으므로 정보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80)

 

미래를 보는 예지력의 소유자들은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다. ... 대담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마음이 미리 본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지력 하나만 가지고는 힘을 쓸 수 없다. 진실이되 누구도 듣지 않는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비극적인 것이 또 있겠는가. 예지력이 제대로 된 힘으로 작동하려면 마음이 미리 본 것을 지켜갈 수 있는 불굴의 용기와 인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포기하는 순간 예지력은 무력해진다. (81)

어제 확신하고 마음에 들었던 생각들도 하루를 자고 나면 하지 못할 이유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생각을 신념으로 만들고 그 신념을 지켜내는 용기와 인내.

 

위대함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미래의 경영에 성공하는 것이다. 예지력은 현재나 미래를 마치 지나간 과거처럼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래를 잘 볼 수 있는 자는 과거를 잘 아는 자다. 선견지명에 이르는 그 신비의 원천은 신의 선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근면과 노력이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예지력이 뛰어난 인물들은 현재를 이해하기 전에 과거를 연구했고,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본질을 파악했다. 그들은 현재를 바꿀 방법을 강구하기 전에 그들이 처한 현재의 상황과 여기까지 이른 경로를 면밀히 탐구하여 알고 있었다. 미래를 꿰뚫어본다면 그것을 천재적 통찰이라고 부르고 싶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천재의 징표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좀 더 보편적이다. 쉽게 보이지 않는 패턴과 동기, 그럴 수밖에 없는 필요성, 기회와 전조가 되는 사건과 행동들을 파악하기 위한 힘겨운 탐구의 결과가 바로 예지력의 정체인 것이다. (87)

 

마음이 미래를 보지 못하면 평범한 자리에서 위대한 자리로의 도약은 불가능하다. 예지력은 현재에 대한 관찰과 부지런한 탐구의 결과다. 땀의 누적 속에 번개처럼 미래의 결정적 단초가 보이고 전체를 꿰뚫어보게 된다. 그러나 예지력만 가지고는 그저 비극적인 선지자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미리 보고 믿은 것에 대한 집중과 불굴의 용기가 없다면 그것을 지켜낼 수 없다.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확신을 가지기에는 탐구가 모자랐을 것이고, 또 믿었다 하더라도 지켜낼 용기가 없어 다수의 의견을 따라 자신이 미리 본 미래를 포기한 것이다. (88)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면 발명의 아버지는 고집이다. 적당히 단념하고 손쉽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가는 것보다 불리한 역경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이 진보의 역설적 진리다. (89)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알게 되면 그 상황을 만들어낸 요소들의 작용에 의해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89)

 

“미래에 대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래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90)

 

내가 있는 곳, 그곳이 강연자이든 카페든 내가 잠시 머무는 그곳이 바로 사무실이다. 왜냐하면 그곳이 바로 부가가치가 창조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 비로소 나는 경제적 도구로서의 일과 살고 싶은 삶이 분리되지 않는 일을 갖게 되었다. (93)

 

견딤 둘 - 침묵의 10년을 걷다 / 우드스턱이 작은 오두막집 - 조지프 캠벨

 

위대한 사업은 눈에 뜨이지 않게, 아주 서서히 달성된다.  - 세네카 (101)

 

나는 내 인생이니 내 마음대로 할 뿐 대학이 시키는 일을 하지는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까짓 논문은 개에게나 줘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위는 내 열등감을 상쇄하기 위해 갖춰 입는 옷에 지나지 않고, 그 열등감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므로 굳이 학위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위로했다. 그 대신 나는 숲으로 들어가 5년 동안 보고 싶은 책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 덕에 나는 박사 학위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책임질 아무 일이 없어 하늘의 새처럼 자유로웠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삶이었다. 그 기간은 1929년에서 1934년까지 5년 동안이었다. (102)

 

방황을 할 때는 당장 그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되, 내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묻지 말아야 한다. 미리 생각해둔 것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특히 다음 세 가지는 결코 생각해서는 안 된다. 먼저 하나는 굶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려하는 것이다. 그래도 정 걱정이 떠나지 않을 때가 있으면 좀 유치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주술을 걸어보았다. 서랍의 맨 위 칸에 1달러짜리를 넣어두고는 “여기 1달러가 있는 동안 나는 빈털터리가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러면 위로가 많이 되었다.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현재 처한 상황을 희극적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영적인 거리를 얻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웃음과 유머 감각이 우리를 생활고(生活苦)에서 구해준다. 고생은 앞으로 언젠가의 영광을 더 빛내주는 어두운 배경이고, 빈곤은 내가 물질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이 커져가도록 만들었다. (104)

 

삶에는 고정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104)

 

내 방랑은 코를 킁킁거리며 내가 정착하여 뿌리 내릴 곳을 냄새 맡으려는 시도였다. (105)

그래 캠벨로 그러했다. 살아가기 위해서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탐색하고 시도하였던 것이다. 천복이라고 해서 어느 날 신의 계시처럼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방랑과 침묵의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이와 비슷한 어떤 것도 생각하지 말고, 그저 “내가 지금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라고만 말해야 한다. 이것이 유일한 관심사여야 한다. 진짜다.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그저 나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곳에 머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야말로 ‘그들의 생각’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영웅의 방식이란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를 바꾸려고 하기 전에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내팽개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를 기다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105)

 

우리 삶에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삶을 체험하는 것, 고통과 기쁨을 모두 경험하는 것이다. 의미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부여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삶의 체험, 그 떨림만이 살아 있음의 증거다. 그러니 이 세상, 삶이 이루어지는 이곳이야말로 내가 있을 곳이다. (105)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람들은 방랑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대책 없는 기이한 삶이라고 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랑을 하는 동안 나는 신비할 만큼 유기적인 우연을 즐기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았다. ... 제멋대로 내버려두어도 나무는 훌륭하고 아름답게 자란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살다 보면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된다. 자신의 에너지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빠져들어 지낼 일이다. (107)

오늘을 전제해서 내일을 생각하는 논리에는 꿈이 자리할 수 없다. 사부님이 알려주신 대로 미래로 먼저 달려가 보는 것... 내일을 전제해서 오늘을 생각하면 그곳은 꿈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방랑이던 방황이던 엉뚱한 짓이던 나는 미래로 미리 달려가보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타인의 기대를 생각지 말고 스스로의 기대를 탐구하라.

 

그는 자신의 현실을 꿈으로 채워갈 수 있었다. 겨드랑이에서 하늘을 나는 날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109)

 

세기의 명연설문인 링컨의 게티즈버그의 연설문은 전쟁터로 가는 기차 안에서 졸지에 만들어졌고, 부력을 발견한 아르키메데스는 과연 알몸으로 목욕탕에서 뛰쳐나오며 유레카를 외쳤을까? 모두 아니다. 게티즈버그 연설문의 초고들이 백악관에서 무더기로 발견되었으면,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뛰쳐나온 이야기의 원전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창의성과 통찰력, 그리고 천재성에 대한 그럴듯한 이야기들은 천재성에 대한 과장된 일화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111)

 

우리는 보통 이것을 ‘침묵의 10년’ 이라고 부른다. 적어도 이 정도의 기간 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땀의 시간을 보내야 그럴듯한 창조적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최근에 이것은 ‘1만 시간의 법칙’으로 불리고 있다. 1만 시간을 채우기 위해 매일 좀 더 많은 시간을 훈련에 쏟는다면 10년이 채 걸리지 않아서도 전문가로 우뚝 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많아졌다. 캠벨의 사례에서도 그의 방황은 우드스턱 5년으로 채워졌지만, 그는 5년 동안 1만 시간 이상의 땀을 집중적으로 쏟았기 때문에 ‘모든 기초 작업’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침묵의 10년이든, 1만 시간의 법칙이든 메시지는 분명하다. 긴 시간 정교한 훈련 계획을 따라 연습하고 연습하라는 뜻이다. 천재성과 비범한 통찰력은 이 긴 시간 동안 한 분야에 쌓인 방대한 지식이라는 토양 위에서만 작동한다. (111)

 

탁월한 창조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대한 오랜 헌신과 그 분야의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혁신을 만들어낸다. (112)

 

우연이 그저 운명이 되지는 않는다. 오직 땀으로 준비한 사람에게만 재능은 공명하여 위대한 창조적 작품을 선사하는 것이다. (113)

 

나는 내가 진정한 음악가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 재능을 끊임없이 계발하는 대신 그것을 밑천으로 뜯어먹고 살고 있었다. (113)

우리 대부분의 삶. 그저 한번 눈치 챈 자신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 다른 가능성과 잠재력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것. 보이는 가능성을 애써 외면하고 그저 오늘 주어지 하루에 만족하는 것을 배우는 자제.

 

훈련의 첫째 요소는 반복이다.

훈련의 두 번째 요소는 창조성이다. 반복하되 단순히 반복하지 않는다. (1113~114)

 

어떤 분야가 되었든 그 분야의 대가가 되려면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 바로 이 경지에 다다르려면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세월을 견디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고통에 기쁘게 다가서려는 마음만이 이 길을 걷게 한다. (117)

 

먼저 과거의 정점에 서도록 해라. 미래의 풍경은 그 산 너머에 있다. 그러니 매일 걸어라. 매일의 힘만이 꿈으로 인도하는 단 하나의 믿음직한 주술이다. 명심하라. 평범한 자가 비범한 자를 능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 분야를 정하고 들이 파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도 그 분야에 대해서는 너를 당할 자가 없을 것이니, 침묵의 10년을 보내라. 고독한 10, 궁핍한 10년을 보내라. 누구든 우드스턱의 시대를 거쳐야 한다. (121)

지난 시간을 거슬러 올라 나의 의미 있는 것들을 해석해내야 한다. 그것에 많은 비밀이 있다. 시작된 하나를 끝내는 것, 갈무리하여 다음을 준비하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이 길이 아닌가 하는 짐작으로는 새로운 길을 시작할 수도 그 길을 끝낼 수도 없다. 지난 직장인으로의 13년이 나에게 무엇이었는지 해석하고 정의하는 것이 나의 과제로 남아있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서 큰 사람이 될 것이다.

 

견딤 셋 - 여명처럼 고독을 이기다 / 버려진 자의 평온 - 바뤼흐 스피노자

 

고독하다는 것은 사회보다 앞서 간다는 뜻이다.  - R. W. 에머슨 (125)

 

고독과 불행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철학과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미움이란 어떻게든 사랑해보려고 애쓰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미움을 미움으로 갚으려고 할 때 나는 더욱더 증오로 차올랐다. 바르지 못한 보복적 증오로 복수하려 할 때 나는 비참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28)

 

우리는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적을 미워하지 않는다. 미움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단점과 두려움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128)

 

미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변경되지 않도록 이미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희망과 공포는 둘 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생각에 의거한 것이기 때문에 지혜의 결핍에 의해 생겨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희망에 속지 말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129)

희망에 속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지혜. 이성. 오성.

 

고독은 모든 위대함의 필연적 보상인지도 모른다. (133)

 

언젠가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할 이는 많은 것을 가슴속에 말없이 쌓아둔다. 언젠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할 사람은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137)

 

과거는 더는 내게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나 자신을 베낄 바에야 차라리 다른 사람을 모방하겠다. (140)

 

하워즈 가드너는 위대한 비약을 이루기 직전의 정신 상태를 회고할 때 감정상의 절정과 추락이라는 심리적 현상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140)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다 보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질 위험을 피하려면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141)

참으로 역설적 사고다. 타인이 인정하지 않는 이미지의 창조. 대중에게서 벗어나 생각한 창조. 예술가에게 대중을 떠나는 사고를 한다는 것. 글을 쓰는 의미에 대해서 지난 수업 사부님의 말씀을 다시 되새겨본다.

 

세상의 생각 대신 자신의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고독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외로움이란 바로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고 세상에 이미 알려진 상식적 삶에 질문을 퍼붓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은 고독을 만들고, 고독은 철학을 가짐으로써 위대한 생각으로 나아간다. (142)

 

그러나 그것은 철학의 탓이 아니다. 철학은 여전히 과학으로 대답할 수 없는 것들, 즉 질서와 자유, 선과 악,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 같은 것들을 잔뜩 껴안고 ‘숭고한 불만과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에서 발을 빼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 일상의 필요와 성공으로부터 무수히 얻어터지지만 굴복하지 않는 정신으로 빛난다. 그리하여 다시 알게 된다. 철학에서 멀어지면 삶은 먹고 과시하는 저잣거리의 인생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철학이 없으면 우리는 삶이라는 위대함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143)

 

세상은 질문을 좋아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삶은 질문 없이는 살 수 없다. 철학은 바로 삶에 대한 질문이다. (143)

 

철학이란 도중에 있는 것이며, 질문은 대답보다 중요하며, 모든 대답은 새로운 질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생활 속에 있다. 그러므로 제대로 살고 있다는 것은 철학을 한다는 뜻이다. (143)

 

위대함의 결정적 증거는 ‘새로운 생각의 힘’ 이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었다. 그것은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 하나의 믿음의 체계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철학이라 부른다. (144)

 

생각이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그러나 생각이 우리를 위대하게 한다. 이 세상에 성공한 사람은 많다. 그러나 철학이 없으면 결코 위대해질 수 없다. 성공했으나 천박한 자는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평범함을 넘어선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따른 사람들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볼 수 있는 제 세상 하나를 가진 자, 그들이 바로 평범함을 넘어 자신을 창조한 인물이다. (144)

 

 

혁명가는 가슴에 불가능한 것을 품고 사는 사람이다. 나 역시 매일 꿈꾸는 법을 훈련한다. 불가능한 꿈을 꿀수록, 매일 그 불가능을 믿는 훈련을 통해 정신 근육은 단련된다. 불가능한 일을 믿을 수 없다고?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대한 일 중 어느 하나도 한때 불가능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누군가 꿈을 꾸고 목표를 정하는 순간 그것은 현실의 세계로 이끌려왔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자. 매일 꿈꾸는 연습을 하자. 아침밥을 먹기 전 불가능한 일 하나씩을 믿어보자.’ 이것이 내가 매일 새벽에 하는 일이다. 이것은 곧바로 내가 글을 쓰는 행위로 이어진다. (147)

 

사람은 자신이 꿈꿔내지 못한 것을 이루어낼 수 없다. 나비 혁명이 가능 하려면 내 안에 이미 가지고 있는 내면의 힘을 응시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탐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세상이 요구하는 함성에 귀 기울인다. 세상이 돈 돈 돈 하면 돈을 따르고, 모두 명품을 찾으면 명품이 자신을 대신하는 정체성이 되고 만다. 결국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함께 원하여 가지게 되더라도 그것이 ‘나의 나비’가 되는 법은 결코 없다. (150)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을 갖는 다는 것. 나를 주체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되려고 하기보다는 진정한 내가 되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 수단을 목적으로 호도해서도 아니된다. 내가 원하는 것에 항상 왜라는 물음을 붙여야 한다. 그래야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

 

하루의 경영에 실패하면, 화가가 손을 뗀 그리다 만 그림처럼 꿈은 초라해진다. 한 줄기 무상의 바람이 불고 이내 꿈은 추억이 된다. 꿈은 흔적만 남아 미련이 되고 몸은 하루의 밥벌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우리는 불행하다. 그리고 그 불행은 페스트처럼 직장을 휩쓴다. (150)

 

‘불가능한 것을 믿는 것’만으로는 혁명을 이룰 수 없다. 혁명을 이루게 하는 것은 실천이기 때문이다. 실천은 곧 시간이 누적적으로 쌓인 것이다. (150)

 

나를 혁명하자. 어떤 나이든 그 나이는 혁명하기 더 없이 좋은 나이다. 그러나 혁명가들은 외롭다. 자신의 꿈을 세상에 외치기 때문이다. (151)

 

나는 나의 골목길을 발견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곳, 그 길이 아무리 좁아도 내 길이라는 것, 고독이 가장 효과적이 무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경쟁하지 않는다. 싸움이 내 장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쟁은 없지만 수요는 많은 곳을 나의 촉수는 감지한다. 나는 늘 푸른 바다를 찾아 나섰고, 그래서 나의 항해는 늘 혼자였다.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그래도 내가 약간 지나치게 진지해 보이거나 비장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151)

 

세상 속에서 비위를 맞추고 사느니 차라리 내 마음대로 사는 고독을 택해도 좋다고 생각한 지 오래다. 나 스스로 가족이 먹을 것을 벌고, 스스로 선택한 천직으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드는 일에 기쁘게 참여하는 것, 이것이 나의 믿음이다. (152)

 

[넘어섬] 깊은 인생으로 들어서는 세 번째 문

 

넘어섬 하나 - 천둥같은 스승을 얻다 / 문틈으로 건네진 열쇠 - 조주

 

그대는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지만, 아이는 이미 스스로 뛰는 것을 배우고 있다.

-R.W. 에머슨 (159)

 

"그곳에 이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빗나가는 것이다." (160)

 

구도자들에게 진리의 세계는 세속의 세속의 가치와는 뒤바뀌어 있는 것이니, 세속에 사는 이들은 집착하고 구도자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전도된 가치를 표현하고자 발에 신는 신발을 머리에 이고 나왔다. (162)

 

마음의 소리에 대한 상징적 메아리였다. 문이 안에서 열리듯 모든 배움과 깨달음은 안에서 스스로 익어 터지는 것이다. 스승은 제자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많은 역할을 수행하지만, 스스로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제자가 스스로 안에서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스승은 내게 늘 이렇게 마음의 지지자와 응원자로 남아 계셨다. (163)

 

모든 심각한 자야말로 바보인 것이다. (164)

 

사람은 사람을 통해 성숙한다. 그 관계가 스승과 제자든, 선배와 후배든, 예술가와 후원자든, 아니면 서로를 이해하는 동료든 사람은 사람을 통해 영향을 받게 된다. (171)

 

"친구가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171)

사부님 감사합니다. 저도 당신처럼 살고 싶습니다.

 

사람을 얻어 진정한 관계 속에 놓이게 될 때, 결정적 지지와 도움으로 새로운 세계로 건너뛸 수 있게 된다. (172)

 

"논리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웅변이 되지 못하는 잡담이며, 경험의 시험을 거치지 않은 논리는 논리가 아니라 부조리다." (178)

 

‘인생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스스로 모색해라. 헌신하고 모든 것을 걸어라. 그러나 그 길이 아니라 하더라도 실망하지 마라. 앞에 다른 길이 나오면 슬퍼하지 말고 새 길로 가거라. 어느 길로 가든 훌륭함으로 가는 길은 있는 것이다.' (178)

 

“보통의 선생은 그저 말을 하고, 좋은 선생은 설명을 해주고, 훌륭한 선생은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스승은 영감을 준다. (184)

 

 

넘어섬 둘 - 나를 넘어 세계에 접속하다 / 녹색 창고의 거대한 별 - 아니타 로딕

 

네가 누군가에게 준 것은 여전히 너의 것이지만, 네가 꽉 움켜쥐고 있는 것은 이미 잃은 것이다. - 동양의 역설적 금언 (189)

 

에너지와 열정은 사람을 질리게 한다. (191)

경인이는 얼마나 긍정적으로 사람을 질리게 했던가. 보고 싶다.

 

따지고 보면 모든 성공의 요인은 사실 내게 돈이 없다는 점이다. 돈이 없고 배가 고프면 창의력이 생긴다. 노력하지 않아도 가질 수 있으면 생각하지도 않고 추진력도 생기지 않는다. (193)

돈이 성공의 요인이 아님을... 하고 싶은 무엇이 있으면 돈이 없는 것도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 내게 열정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 순치하는 가치를 가진 것이라면 돈이 없어도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세상을 살며 가치 있는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내게 삶은 고마운 것이었다. 내가 삶에 해준 것보다 삶이 내게 해준 좋은 일이 열 배, 백 배 많았다. 내가 깨달아 알게 된 훌륭한 기업가들은 천부적으로 기업가 기질을 계발하는 사람들이다. 꿈을 꾸고 비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광기인 것이다. 미치광이와 기업가는 백지 한 장의 차이일 뿐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본 비전에 눈멀고, 수없이 질문하여 얻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마치 요정처럼 반짝이는 창의적 아이디어들을 쏟아낸다. (194)

 

창의력은 아마 마술일 것이다. 그것은 아마 상상력일 것이다. 체계적으로 혼란을 만들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방되는 것이 창의력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창의력이 없이는 기업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때때로 광인일 수밖에 없다. 생각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것을 해낼 수 있다는 집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띈다. 그 어리석어 보이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병적일 만큼 낙천적이다. (195)

 

그들은 그들의 꿈과 아이디어, 사회를 변혁시키겠다는 생각을 이야기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일반인들의 공감을 얻어낸다. 그들은 모두 위대한 이야기꾼들이다. (195)

 

비즈니스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기업이 할 일은 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개인의 욕심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공익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이익을 내지 못하면 기업은 망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이익을 더 내기 위해 비즈니스를 한다면 그 역시 망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더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진정한 글로벌 비전을 가진 기업이라면 지리적 확장과 점령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확장에 더 기여해야 한다. 나는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이란 직원이 자신의 잠재력과 인간 정신을 훈련하고 계발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기업은 그 자신과 구성원, 그리고 인류를 위한 완전함에 기여해야 한다. 인생에 영적 차원이 있듯이 비즈니스도 영적인 차원을 가져야 한다. 나는 세계를 다니면 깨달았다. 그것은 가장 근본적인 통찰이었다.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 나의 존재는 전일성(oneness)으로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경외심이 나를 가득 채웠다. (197)

 

바꾸려 하지만 세상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할 때가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이 근본적으로 변할 때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198)

그렇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강산이 열 번 바뀐다 하여도 나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나의 생각이 두터운 껍질 안에 갇혀져 있으면 이탈리아에 있건, 스위스에 있건, 궁벽의 시골에 있건 의미가 없다. 나의 생각이 껍질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보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세상의 변화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심장과 영혼으로부터 비즈니스의 목표가 만들어질 때 기업은 인류의 행복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다. (198)

 

돈을 많이 벌면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모은다는 것은 욕망이고, 그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정말 훌륭해지기 시작하는 분기점은 가진 것을 나누어 주기 시작할 때부터다. 나눈다는 것은 자기를 넘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좁은 자아에서 벗어나 정신적이고 영적인 확장을 할 수 있게 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와 다른 사람이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며, 나와 우주가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야 나올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위대함의 한 자락을 얻게 된다. (204)

 

나누기 위해 꼭 부자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돈이 있으면 돈을 나누고, 재능이 있으면 재능을 나누고, 따뜻한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을 나누면 된다. 절망한 사람에게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픈 이들에게 관심과 시간을 나누어 줄 수 있다면 이미 나눔에 나선 것이다. 아무것도 나누어 주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 그들이 바로 리더들이다. 진정한 영향력은 줄 수 있는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큰 것에 헌신하지 못한다면 기껏해야 뜻을 이룬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 평생을 자신을 위해 살고, 자신을 위해 벌고, 자신을 위해 쓴다면, 돈을 얻을지 모르나 존경은 얻을 수 없다. (205)

 

의미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눔과 공헌이 없이는 의미의 문제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 바로 이때였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면 재미없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세상에 빚지지 않은 것이 없다. 좋은 것은 물론 나쁜 것까지도 나는 세상에서 배웠고, 사람들에게서 배웠다. (207)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빛나게 마련이다. 아버지는 그 자식으로 빛나게 마련이고, 스승은 그 제자로 빛나게 마련이고, 국가는 키워낸 인재로 빛나게 마련이며, 인류는 위대한 인물들로 빛나게 마련인 것이다. (213)

 

에필로그 염소, 호랑이가 되다

 

위대한 사람들은 꼭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반드시 한때 세상에서 이해 받지 못하는 고독과 고통을 겪는 창조적 부적응자 들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을 위해 죽고, 진실을 위해 죽는 세속의 실패자들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에서 성공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평범한 안간 속에 살고 있는 위대함에 대해 말하려 했다. 자신의 삶 속에서 그 위대함을 끄집어내 가장 자기다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 평범한 사람들, 스스로 자기 자신의 별이 된 사람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215)

 

내가 미워하는 것은 다만 우리 속에 지금의 우리 삶보다 훨씬 더 깊은 인생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 졸렬한 현재인 것이다. (218)

 

우리에게 꿈은 무엇인가? 자유다. 잠잘 때 무의식이 꾸는 꿈은 사회적 압력을 상징하는 초자아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고, 우리가 깨어 있는 낮에 꾸는 꿈은 현재로부터의 자유를 상징한다. 과거의 강물에서 근원한 답답하고 초라한 현재, 방광에 가득한 노폐물, 터질 것 같지만 억제된 욕망의 배뇨의 길, 그것이 꿈이다. 꿈을 꾸지 못하면 현재는 풀려 나갈 곳을 잃게 된다. 춤추듯 화폭을 휘몰아가는 붓이 힘을 잃고, 화폭의 구석에 겨우 작은 점 하나를 찍고 정지된 채 스스로 응축되어 갇히게 된다. 현재라는 창살, 벗어날 수 없는 감옥, 낡은 과거의 옷을 걸친 비루한 죄수로 살게 된다. 꿈은 창살을 빠져 나오는 바람이 되고, 연가기 되고, 탈옥한자의 웃음이 된다. (218)

자유를 꿈꾸고 자립을 만들어 가는 것. 그 자립을 채워가는 것은 나의 소명이고 나의 행복이다.

나는 일을 통해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일을 통해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

 

꿈은 무엇인가? 자신을 주도적 인물로 정립하기 위한 정신 작용이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기대와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축소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만들어지는 대로 삶을 버리고 세상 속에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신의 제국 하나를 만들어내겠다는 자기 선언인 것이다. 모든 평범한 자는 우연한 사건을 만나 영혼을 흔드는 각성을 거쳐 사회가 강요한 꿈이 아닌 자신의 꿈을 꾸게 되는 위대한 모험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꿈길, 우리의 모든 걸출한 모험은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시작된다. 꿈은 과거에 대한 미래의 승리인 것이다. (219)

사부님 철학의 요약. 자신의 제국 만들기 프로젝트 같은 것...

 

“인간은 확고하고 명료하고 완성된 것이 아니다. 변화해가는 것이다. 인간은 시도이고 예감이며 미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현실을 숭배하거나 존경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현실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때 비로소 달라지는 것이다. (220)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인물들은 자신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는 것을 최우선적 가치로 삼는다. 그것을 위해 현실의 위협에 대항한다. 뻔한 인생을 거부할 권리, 과거의 나를 죽일 수 있는 용기,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 있는 무모함이야말로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들인 것이다. 그때 그들은 삶을 재창조해 내는 데 성공한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서 분명한 도약을 통해 얕은 인생을 건너 깊은 인생으로 들어서게 된다. (221)

 

자신을 가지고 위대한 이야기를 쓰지 못한다면 누구도 자신의 무대를 가질 수 없다. 역할이 없는 배우, 인생에게 통렬한 똥침을 날리는 대화 한 마디 할 수 없는 벙어리, 어느 한 사람하고도 목숨을 건 사랑과 우정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졸렬한 인생, 밥을 찾아 스스로 목에 사슬을 거는 개, 만일 우리 스스로 자신을 위한 신화 한 편을 쓰지 못한다면 결국 자신이 열연해야 할 인생이라는 무대는 없다. 꿈을 꾼다는 것은 어둠 속의 관객, 얼굴이 없는 반편, 박수 기계로 남지 않겠다는 정신적 각성이며,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자신만의 무대가 설치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한다. (223)

 

당신의 신화는 무엇인가? 당신은 인생이라는 모험에 어떤 모습으로 깊이 참여하고 있는가? 단명한 삶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자. 그 단명함이야말로 영생하는 신들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참으로 슬픈 아름다움이기에. 그리하여 그대. 이제 가면 한 장 두께의 얕은 복제 인생을 걷어버리고, 모든 잠재력이 스스로의 강물로 흐르는 깊고 푸른 인생을 살자. (224)

내 삶이다. 나의 인생이다. 나의 인생을 방관자로 살수는 없다. 그래서 오늘 여기 있는 것이다.

내가 갈 길이 어렴풋이 보인다. 참으로 어렵게 찾아낸 길이다. 이 대목에서 확신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의 길을 기쁜 마음으로 호기심 가득한 심정으로 걸을 것이다. 자유의 바람을 등지고 사뿐히 걷고 싶다.

 

 

3. 내가 저자라면

 

사부님의 책 <깊은 인생>은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책인듯하다. 사부님의 삶의 철학적 정수를 7개의 인생에 비추어 읽는 사람을 돌아보게 한다. 먼지 폴폴나는 여름 마당에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져 상큼한 흙 냄새가 나듯이, 나의 어쩌지 못한 인생의 우둔함과 고민들에 단비를 뿌려 많은 사념의 먼지들을 씻어간다. 나는 책의 한 줄 한 줄을 끼니를 약간 놓친 아기가 엄마 젖을 빨듯 그렇게 보게 되었다. 그것에 기대어 내 삶이 살찌워질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깊은 인생>의 곳곳에는 사부님께서 스스로에게 던졌을 법한 많은 질문들이 나온다. 나는 이런 질문들이 사부님의 오늘을 만들었구나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얻는 과제는 나는 나의 인생에 무엇을 물을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첫 책을 두고 무엇을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이렇듯 사부님은 답을 알려주시기 이전에, 깨달음을 알려 주시기 이전에 자신에게 적용했던 질문과 고민, 그리고 실험들을 드러내어 보여 주시는 것을 기꺼이 하신다.

 

<깊은 인생>은 깨우침 - 견딤 - 넘어섬이라는 세 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문을 열고 어떤 공간으로 들어가면 그 공간은 다시 사부님의 배려에 따라 네 개의 작은 구획들로 구분되어 있다. 그런 구조를 따라 책을 여행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산책하듯 여행을 마치게 된다. 하지만 여행 끝의 느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자꾸 불편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한다. 사부님 글이 갖는 인문학적 깊이와 사유의 날카로움이 은근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부님은 얼마 전에 이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신 적이 있다. 국내의 사례들을 책의 주제와 연관하여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시다고. 이 책에서도 역사적인 인물부터 근현대사에 획을 그은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박원순 운동가를 빼고는 전부가 외국의 사례들이다. 나 또한 <내가 저자라면> 국내의 많은 사례, 역사적인 사례를 비롯하여 현대 살아있는 많은 사례들을 조명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한국적 환경과 정서에 부합하는 성공사례와 철학을 집대성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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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5 19:06:17 *.160.33.208
시처럼 산다.   나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정의 내리기 어렵다. 
그것은 정의 할 수 없거나  정의해서는 안되는 것일지 모른다. 
나는 시를 읽을 때 살고 싶어진다.   그 살아 있음  속에 있고 싶다.
바람이 나를 스칠 때, 다시 살아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고,  꽃을 보면  나도 그 꽃이 되고 싶고,
파도를 보면  그 끊임없음에 한번  더  해보고 싶어진다.   시는 살고 싶은 삶일 것이다. 
시처럼 산다는 것은 감탄이 많은 삶이고,  나에게 놀라는 삶이고 , 우주와 공명하는 삶이고,
연민하는 삶이고,  노래하는 삶일 것이다.    나는 네가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꼭 그리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니  너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음을 기억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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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10.26 06:41:25 *.69.251.200
아침에 글을 쓰면서 '나는 지금 좋은 삶을 살고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여전히 확실하지 않은 것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사회적 욕망에 꿰어진 굴비처럼,
아가리를 쩍벌리고 뀅한 눈으로 알 수없는 무언가를 채우려는 삶,
그곳에는 꿈도 없고, 철학도 없고, 동료애도 그리고 스승도 없는 삶이었습니다.
이제는
꿈도 있고, 좋은 책을 보며, 철학하고, 고민하고, 사랑하고 스승을 모시고 있으니
충분히 좋은 삶을 살고 있구나 라고 확신해도 될 듯하였습니다. 
아가리 벌리고 있는 굴비의 삶에 생기가 돋고 작은 꽃봉오리 하나가 움트고 있는 느낌입니다.
 
내 삶의 시 어느 한 부분이 지어지고 있는 그런 하루입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합니다.
사부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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