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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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하여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는 1954년 9월 6일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출생했다. 결혼 전 이름은 Cara Carleton Sneed로 법학자인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세계 곳곳을 옮겨 다니며 학교를 다녔다. 1976년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하고(역사와 철학 전공) 1980년 메릴랜드대 MBA와 1989년 MIT대 MBA를 거쳤다. 1980년 25세의 나이로 AT&T 장비부문인 네트워크 시스템 영업직으로 입사한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놀랍도록 재기 발랄한 두뇌’라는 평가와 함께 발군의 비즈니스 역량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한국, 대만, 일본 같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합작사업을 훌륭히 성사시키고 덩치만 비대했던 가전산업을 과감히 정리했다.
이후 피오리나는 35세에 AT&T 네트워크 부문 최초의 여성임원에 오르고 40세엔 북미 영업 담당 이사로 승진하는 기록을 세워나갔다. 1996년 AT&T는 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통신장비 부문을 분할시키기로 했으며 피오리나를 새 회사 창립준비팀에 전격 발탁했다. 이 때 피오리나는 기업분사를 성공적으로 주도했으며 96년 4월 루슨트테크놀로지를 AT&T로부터 분사시키면서 올린 30억 달러의 수입은 당시로서는 기업공개 분야에서 최고 액수였다. 이후 피오리나는 루슨트테크놀로지의 글로벌 서비스 부문 책임자로 일했고 루슨트에서 2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전체의 60%)을 올리는 이 부문의 대표를 맡으면서 그녀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때 루슨트 주가는 12배 정도 올랐다.
1999년 휴렛팩커드(HP)의 최고경영자(CEO)로 영입되었으며, 2001년 컴팩을 인수합병하여 합병된 회사의 CEO를 맡게 되었다. 남편 프랭크 피오리나는 아내가 HP의 CEO가 되자 유능한 아내를 돕기 위해 회사를 사직하고 집안 일을 맡기도 하여 화자게 되었다. 피오리나는 1998년부터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이 매년 발표하는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기업인 50인”중 1위에 뽑혀왔다. 그러나 2005년 2월 회장 겸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사임했다. 피오리는 2002년 주주와 중역들의 거센 반발을 무릎쓰고 강행한 컴팩 인수와 이후 주가 하락, 미래 전략을 둘러싼 이사회와의 이견 때문에 사실상 축출되었다. 그녀는 실적부진으로 물러났는데도 거액의 퇴직금을 받아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100만 달러(약 246억원)의 퇴직수당과 2000만 달러(약 235억원)의 스톡옵션)
그 후 그녀는 타이완 세미컨덕터 매뉴팩처링 컴패니(TSMC) 사외이사로 재직하다가 유방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했으며 유방암에서 회복된 후, 정계 진출을 결심하였다. 그는 공화당의 캘리포니아주 연방 상원의원 후보고 선출되어 2010년 11월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2855
네이버 인물정보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B9%BC%EB%A6%AC_%ED%94%BC%EC%98%A4%EB%A6%AC%EB%82%98
[참고기사]
실패한 뒤 더욱 빛나는 칼리 피오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