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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7일 00시 03분 등록
에스키모는 자기 내부의 슬픔, 걱정, 분노가 밀려올 때면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슬픔이 가라앉고, 걱정과 분노가 풀릴 때까지 하염없이 걷다가,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면 그 때 되돌아선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서는 바로 그 지점에 막대기를 꽂아 둔다.

살다가 또 화가 나 어쩔 줄 모르고 걷기 시작했을 때, 이전에 꽂아 둔 막대기를 발견한다면 요즘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고, 그 막대기를 볼 수 없다면 그래도 견딜 만하다는 뜻이 된다.
- 김정운 저, <노는 만큼 성공한다> 중에서

아마 작년 가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직장에 다니며 세 권의 책을 동시에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한 권은 출판사와 함께 출판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권은 공저 작업의 리더로 한창 원고를 쓰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한 권도 공저자인 승오와 매주 두 번씩 만나 집필 작업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후, 글을 쓰는 데 가슴이 막혀왔습니다. 글을 쓰고 싶은 의욕은 여전한데 몸이 말을 안 들었습니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습니다. 당황했습니다. ‘쓸 게 있고, 쓰고 싶은 데, 그런데도 쓸 수 없다? 이럴 수가 있나?’

더 이상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일단 나가자. 걷자.’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건물에 둘러싸여 자동차와 걷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한강으로 가자. 강을 보며 걷자.’ 근처 한강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전에도 가끔씩 한강을 걸은 적이 있었습니다. 보통 2시간 정도 걷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걸어가고 싶어’, 마음이 말했습니다. ‘그래, 안 될 것 없잖아.’ 

한참을 걸었습니다. 몇 개의 한강다리 밑을 지났습니다. 목적 없이 걸었습니다. 뭔가 생각이 떠오르면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두었고, 마음이 내게 말을 걸면 받아 주었습니다. 강물처럼 흘러 흘러 ‘이대로 가면 성산대교까지 가는 것도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시간 넘게 걷고서도, ‘더 걷고 싶다, 더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지점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왔던 길을 다시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그래, 글쓰기도 걷기와 다르지 않을 거야. 더 쓸 수 있어. 게다가 쓰고 싶어 하는 거잖아. 오늘 걸은 것처럼 계속 쓰자.’ 

집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6시간 넘게 걸었지만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고, 에너지가 조용히 불타올랐습니다. 그 에너지가 그 후 몇 달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올해 3월 마지막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번아웃(burn-out) 됐습니다. 이것이 회사를 그만두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번아웃에 대한 고통이나 이 지경에 빠진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보다 용케 버틴 내가 자랑스러웠습니다. ‘나란 사람도 내 모든 것을 불태울 정도로 성실할 수 있구나.’ 아마 그날 그렇게 걷지 않았다면 저는 세 권 중 적어도 한 권은 중간에 포기했을 겁니다.

제게 글쓰기는 나란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고, 걷기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입니다. 글쓰기와 걷기는 서로 시너지를 내는 좋은 친구입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존재 확인법과 에너지 충전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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