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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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차 리뷰: 기억 꿈 사상(카를 구스타프 융)
1. 저자에 대하여
군대에서 전역한 후인 2000년 경에, 나의 적성에 맞는 곳에 취직하기 위해 MBTI검사를 했다. 당시 한국 산업인력공단의 직업능력개발센터에서 한 듯하다. 나의 성격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나마 그것을 통해 나를 많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큰 아이 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학부모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 중에도 그 검사에 대한 것이 있었기에 또 한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렇지만 내 개인의 특성이 너무도 독특한지 잘 맞지 않았다. 나는 유별나게 섬세한 면이 많아 구체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아마 그 검사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카를 융을 만났더라면 나의 섬세한 부분까지 해결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성격이 나와 비슷한 면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유연성을 가지고 전방향적 사고를 하면서 진정으로 환자를 위하는 사명감이 투철한 면이 그렇다. 실제로 그는 그런 장점을 환자를 위해 사용하여 많은 효과를 보았다. 나의 경우도 병원에서 환자 간병을 한 적이 있다. 융과 같은 마음과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고, 나의 적성이 평범한 사람을 위하는 것보다 고통받는 분들에게 희망이 되고자 하는 면이 강했기에 망설임 없이 그 직업을 택했다. 물론 우리 정서상 그런 직업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적성과 흥미에 맞는 것을 하고 싶었고, 나에겐 특별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은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그저 단순하게 생계유지 만을 위해서 하는 정도의 간병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위하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 24시간 생활하면서 동고동락하고 때로는 생사를 같이 하고 싶었다. 약 1년 6개월 정도 정말 진이 빠지게 일 했다. 그러면서 나의 소신을 함께하는 환자와 그 가족분들, 그리고 동료들에게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매우 높았다. 나의 진정성이 전달되지 않았다. 정말로 환자가 발병(發病) 이전의 삶보다 더욱 성공적인 삶이 되도록 도와주고 싶었고, 자신도 있는데 거의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밤낮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분들이 전방향적全方向的 사고는 아예 하지 않고 유연하지도 않은 것이다. 차분하면서 진지하게 현재의 병세에 대해 대화하면서 더 좋은 방법을 모색하고 함께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한 것도 많은데 그런 생각과 시도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웠다. 다른 평범한 상황도 아닌, 언제 사망하게 될 지도 모를 상황인데도 무엇인가 지푸라기라고 잡으려는 절박함이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카를 융은 자신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만이 가치가 있고, 외적실재를 통해서는 불가능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자기 스스로를 객관화하기기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 대해 나는 이의를 제기한다.
먼저, 외적 실재를 통해서 불가능하다는 부분에 대해 한 마디 한다.
나의 경우는 나 혼자만의 정신적인 가치만이 아니라 외부의 실재를 통해서 더욱 많은 것을 깨달았고 얻었다. 나는 모든 면에서 너무도 부족했으면서 한편으로는 자존감은 높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하면서 나아지려고 발버둥을 쳤다. 여러 조직이나 단체에서 가장 많은 경험이 될 만한 직책이면 자진해서 맡아 솔선수범했다. 그러면서 나의 단점이나 실수한 것들이 있으면 지적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 지적을 해 주는 분에 대해서는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말하기 힘든 부분- 나에게는 있어 정말 소중한 부분- 임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지적해 주는 분에 대해서는 더욱 고마움을 더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나의 흐뭇한 가치이고 의미였다.
아마 융의 경우는 나와는 다를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상황에 맞는 처신을 한 것일테고 그것이 그 당시와 그에게는 최선의 방법이었으리라. 성격이 내성적이고 사교성이 없었음과 아울러 그의 능력이 뛰어났음으로 인해 조직이나 단체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솔선수범하면서 섬기는 활동을 안했을 것이고,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외적 실재를 통해 자신을 바라 본다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자기 스스로를 객관화하기기 불가능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다. 융이 살았던 시기에는 아직 여러 보도 매체들을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여건이 못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누구라도 겸손하면서도 유연하고 전방향적 사고를 한다면 어떤 삶이 훌륭한 삶인지, 특히 인생을 마감할 때 남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 될 지에 대해 항상 염두에 두고 생활한다면 자신을 완전하게 객관화하기는 힘들어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각종 매체를 통해 누가 훌륭한 삶을 살았고 그렇지 못한 삶을 살았는지 항상 기준을 두고 있다. 그런 면에서 사리분별력이 좀 있는 편이다. 그것도 입체적 균형감감과 함께 자신을 항상 돌아 본다. 그렇게 생활하니 나의 무의식 속에 있는 것들이 의식 밖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습관화 되어 간다. 주위 분들에게 칭찬을 받게 된다. 그러니 객관적 평가 검증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든지 개인의 성향에 따라 그 정도는 크게 차이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대표적 저술로는 <정신분석의 이론>, <심리학과 종교>, <영혼을 찾는 현대인>, <심리학적 유형>, <미발견의 자아>, <심리학과 연금술>, <인간과 상징> 등이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옮긴이 서문 - 자서전 문학의 백미
8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 경험의 정신적인 정수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융은 처음에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자서전 출간을 거부했으나 ~
9 융은 80세가 넘은 나이에 자기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일생을 한 마디로 규정.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실현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등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는 ‘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의 상징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그와 같이 ‘자기’가 ‘자아’에게 보내주는 신호들을 포착해 나가는 과정이 융 자서전의 중심 내용을 이루는 셈이다.
9 이 책은 인간의 정신의 깊이와 폭이 얼마나 깊고 넓을 수 있는가를 인상깊게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의 존재를 심리학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한 저서라고 할 만하다.
■ 프롤로그 -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인격의 가장 깊은 구심점-옮긴이)실현의 역사다.
11 내적 견지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영원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14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
15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 일생을 사로잡은 꿈 - 유년시절
26 그 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함을 뜻하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출발하면서 함께 가져가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27 이런 소녀(하녀)의 유형이 나중에 내 아니마(Anima)의 한 측면이 되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생소한 느낌과, 그런데도 그녀를 처음부터 알아온 것 같은 감정은 나에게 훗날 여성적인 것의 본질을 나타내는 여성상의 특징이 되었다.
■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 학창시절
1.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59 ‘주 예수’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차츰 불가능해지기는 했지만, 열한 살 때부터 신의 관념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억. 나는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순이 없는 듯이 여겨졌으므로 어쨌든 나를 만족시켜주었다.
67 신경증은 나의 또 다른 비밀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부끄러운 비밀, 일종의 패배였다. 그럼에도 신경증은 나를 결국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했다. 그럴 무렵 나는 성실해지기 시작했다.
67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돌 하나, 식물 하나, 그 모든 것이 생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형용할 수 없는 듯이 여겨졌다. 그 무렵 나는 자연으로 빠져들면서, 말하자면 자연의 본질 속으로 숨어들면서 모든 인간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2. 너는 누구냐?
68 이 순간 ‘나에게 내가’ 생겨났다. 이전에도 내가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내’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78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하지 말라는 것인가? 나는 하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도 지금 당장 나와 함께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알아내야만 한다.’
3. 두 인격의 어머니
95 내 유년시절의 체험에 나타난 상징과 그 이미지의 폭력성은 나를 몹시 당황하게 했다. 나는 자문해보았다. “도대체 누가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인가? (중략)
이러한 것들은 내 생애의 결정적인 체험이었다. 그 무렵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나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가 나에게 제기되었다. 그런데 누가 그 문제를 제기했는가?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 답을 주지 않았다. 그 해답을 나 자신의 고유한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하느님 앞에서 나는 단독자이며 하느님만이 이와 같은 무서운 일을 나에게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부터 나는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내 생애에서 그것을 실현해야만 될 것처럼 여겨졌다.
110 나는 교회로부터, 그리고 아버지와 다른 모든 사람의 신앙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그들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교회로부터 굴러 떨어졌다. 그것이 나를 슬픔으로 가득 차게 했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줄곧 마음을 어둡게 했다.
112 ‘자아’라는 것은 나로서는 어쨌든 파악하기 어려운 사실로 보였다.
첫째로, 나에게는 자아라는 요소에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측면, 즉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형태든 저런 형태든 자아는 뭔가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자아는 또한 온갖 자기기만과 오해, 기분, 감정, 열정 그리고 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4. 악의 기원
118 드디어 나는 악과 그 세계장악력을 알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을 어둠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는 데 악이 맡은 신비로운 역할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여태껏 있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괴테는 나에게 예언자라 할 만했다.
118 그 책을 읽고 나는 파우스트가 일종의 철학자였으며, 철학에서 돌아섰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으로부터 진리를 위한 개방성을 분명히 배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철학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었으나, 새로운 희망이 내 안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가진 질문에 대해 숙고하고 나에게 빛을 던져줄 수 있는 철학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123 여기서 이야기하는 여러 가지 내용은 한동안 오래 중단되기는 했으나 수년에 걸친 사색의 발전과 관련이 잇다. 그것들은 오로지 나의 제2의 인격 안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그야말로 자못 비밀스러운 것이었다.
130 나는 항온동물이면 모두 좋아하는 편. 내가 그 동물들을 좋아했던 것은 그것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혼을 가지고 있으며, 내가 믿기로는 우리가 그 동물들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31 그 당시에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나 자신의 감정과 예감을 눈에 보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나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능동적이면서 사물을 파악하는 나의 자아, 즉 제1의 인격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동안 제2의 인격에서 일어났고, 또한 수세기에 걸친 ‘노인’의 영역으로 수용되었기 때문이었다.
133 나의 탐구가 가져다 준 큰 소득은 쇼펜하우어였다. 그는 눈에 보이도록 여실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고통, 그리고 혼란과 고난과 악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
136 철학적 발전은 열일 곱 살부터 의학공부를 하던 시절까지 이어졌다. 이것은 세계와 인생에 대한 나의 태도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에는 내가 수줍고 소심하고 의심 많고 창백하고 마르고 병약한 모습이었으나, 이제는 모든 방면에서 왕성한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바라는 바를 알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했다.
또한 나는 확실히 붙임성 있고 속이 트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가난이라는 것이 불리한 점도 아니며 고통의 주된 원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잣집 아들이라고 해서 가난하고 옷이 꾀죄죄한 소년들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었다.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137 나는 그런 비방을 들을 만한 잘못이 어찌하여 나에게 있는지 알아내려고 무척 고심했다. 조심스럽게 물어서 조사해본 결과, 내가 사람들이 알리가 없는 것들에 관해 자주 발언하거나 넌지시 의견을 말하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꺼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38 ‘신’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 아름다운 시간들 - 대학시절
1. 파우스트와 요한복음
164 몇 주 전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이 결정을 앞두고 갈등하고 있을 때 나는 두 개의 꿈을 꾸었다.
165 이 두 개의 꿈이 나로 하여금 자연과학 쪽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밀어붙이는 바람에, 그 점에서는 나의 회의가 사라졌다.
169 그 무렵 다소 충격적으로 깨달은 바지만, <파우스트>는 내가 좋아하는 <요한복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파우스트>속에는 내가 직접 공감할 수 있는 뭔가가 생동하고 있었다. <요한복음>의 그리스도는 나에게 낯설었는데, 그보다 더 낯선 것은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구원자였다. 이에 반해 파우스트는 제2의 인격의 살아 있는 등가물等價物이었으며, 나는 괴테가 그 시대에 제공한 해답이 바로 파우스트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169 나의 대부요 보증인은 위대한 괴테 바로 그 자신이었다.
175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 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이와 같이, 적어도 우리 존재의 일부는 수세기에 걸쳐서 살아온 것이다. 그 부분을 나의 개인적인 용어로 ‘제2의 인격‘이라고 일컬었다. 그것이 한낱 개인적인 흥밋거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 서양 종교에 의해 입증되었다. 서양종교는 분명히 말해 이런 내적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2천년 전부터 내적 인간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려 그 인격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왔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
2.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시절
186 나는 반복해서 자문해보았다. “아버지가 꿈속에서 돌아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아버지가 그토록 ‘실재’처럼 보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체험으로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사후死後의 삶에 대해 생각하도록 했다.
3.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193 나는 철학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관해서 그 어떤 것도 들은 일이 없었다.
197 동물들에 대한 나의 연민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불교적인 몸짓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원초적인 정신적 태도의 바탕, 즉 동물과의 무의식적인 동일시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4. 정신의학에서 길을 찾다
206 왜, 어떻게 해서 식탁이 갈라지고 칼이 파열된 것일까? 우연이라는 가설은 분명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이것은 전적으로 커다란 체험이었으며, 나의 이전 철학들을 모두 지양하고 나로 하여금 심리학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는 인간의 영혼에 관해 어떤 객관적인 것을 경험했다.
210 크라프트 에빙의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게 되었다. “정신의학 교과서들이 다소 주관적인 특색을 띠는 것은 아마도 그 분야의 특이성과 학문 형성의 불완전성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몇 줄 더 나가자 저자는 정신병을 ‘인격의 병’이라 일컫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나에게 정신의학 외에는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격적으로 계시처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의학에서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흐름이 합류하여 그 합해진 물의 힘으로 스스로 물길을 내어 흘러갈 수 있을 것이었다. 여기에 내가 사방으로 찾아 헤매었으나 발견하지 못했던, 생물학적 사실과 정신적 사실에 관한 공동경험의 장場이 있었다. 정신의학은 자연과 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인 셈이었다.
211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213 정신의학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병든 정신과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사의 정신 간의 대화이며, ‘병든’ 인격과 치료자 인격 간의 대결이다. 그런데 치료자 인격이라는 것도 병든 인격과 마찬가지로 원래 주관적인 것이다. 나는 망상관념이나 환각이 정신병의 특이한 증상일 뿐 아니라 일종의 인간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217 나는 자서전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잘못을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되었어야만 했느냐에 관해 환상을 엮어나간다든지 생애를 위한 변명을 쓰는 그런 잘못 말이다. 결국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219 문제는, 신화의 상실을 견지지 못하고 외적이 것에 불과한 세계,
즉 자연과학의 세계상으로 향한 길을 찾을 수도 없고, 지혜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언어의 지적인 즉흥연주로 만족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1. 환자들
222 이런 상황에서 프로이트는 나에게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히스테리와 꿈의 심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탐구를 그가 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트의 견해는 나에게 개별적인 사례들에 대한 보다 폭넓은 연구와 이해의 길을 열어주었다. 프로이트 자신은 정신의학자가 아니고 신경학자였지만 심리적인 문제를 정신의학에 도입했다.
224 동료에게 문의했다면 그들은 아마도 “제발 그 부인에게 그런 사실을 말하지 말게나. 그녀를 더 미치게 만들 뿐일세” 라고 나에게 경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견해로는 결과가 그 반대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심리학에는 명백한 진리가 거의 없다. 하나의 문제는 우리가 무의식적인 요소를 고려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대답할 수 있다.
226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 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환자의 비밀이며 바로 거기서 좌절하고 만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치료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 의사는 단지 그 비밀스러운 사연을 어떻게 알아내는가를 터득해야만 한다.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궤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239 나는 환자들의 사례를 열심힌 살펴본 결과, 이제까지 정신병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사실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정신이 돈’ 것들만은 결코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여러 차례 나는 그런 환자들에게도 그 배후에는 정상이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간주될 만한 ‘인격’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발견
241 나는 정신병에 보편적인 인격심리학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과, 여기서도 오랜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우둔하고 감정없이 멍청하게 행동하는 듯한 환자들의 마음 속에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일, 훨씬 의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정신병에서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바탕과 마주치게 된다.
2. 꿈의 분석
250 정신치료자는 단지 환자만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의사 자신이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의 필수조건은 이른바 교육분석이라고 일컬어지는 자기분석이다. 환자의 치료는 말하자면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들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교육분석에서 의사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인식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의사가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환자도 이를 배우지 못한다. 의사가 배워 알지 못한 마음의 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환자 역시 마음의 한 부분을 잃고 말 것이다.
251 의사가 자가 자신을 바치지 않고는 치료할 수 없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치료에서 중요한 고비를 맞았을 때, 결정적인 것은 의사가 자기 자신을 드라마의 한 부분으로 보느냐 아니면 스스로를 자기 권위로 씌워버리느냐 하는 것이다. 인생의 심각한 위기에서는, 다시 말해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인 중대한 순간에는, 암시의 잔꾀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때 의사는 그 전존재가 도전을 받게 된다.
치료자는 자기 자신이 환자와의 대결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수시로 해명해야 한다. 우리는 의식으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이 이 상황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가?”하고 항상 자문해보아야 한다.
253 나는 의사로서 환자가 나에게 어떤 소식을 가져오는지 항상 자문해야 한다. 환자가 나에게 무엇을 예시하는가? 환자가 나에게 아무것도 예시하지 않는다면 나는 공격목표가 없는 셈이다.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3. 집단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260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272 나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성과가 있었던 대화들은 이름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 프로이트와의 만남
1. 이론적인 불화
276 억압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점에서는 프로이트가 옳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억압의 원인을 성적 외상(Trauma)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나로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의 치료과정에서는 신경증의 많은 사례에서 성욕의 문제는 다만 부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고 다른 요인들이 주요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84 프로이트는 왜 자신이 성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지, 왜 그러한 생각이 자신을 그토록 사로잡고 있는지 한 번도 자문해보지 않았다. ‘해석의 단조로움’이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 혹은 아마도 ‘신비주의적’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자신의 또 다른 면으로부터의 도피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2.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310 돌이켜보면 프로이트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두 가지 문제를 논리적으로 추구해 들어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두 가지 문제는 ‘고태적 잔재’와 ‘성性’이었다.
311 프로이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아마도 신경증 환자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들의 독특한 개인적인 심리를 파고들어간 데 있을 것이다.
■ 내 안의 여인 아니마
1. 신화와 환상
327 나는 지금까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감정에 나 자신을 스스로 내맡겼다. 자주 터무니없어 보이고 저항감을 느끼게 하는 환상을 기록했다.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것은 고상함과 우스꽝스러움이 마구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것을 견뎌내려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었다. 나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서야 비로소 그 미로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환상을 붙잡기 위해서는, 이를테면 나 자신을 그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해야만 했다. ...
내가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한 가지 중요한 동기는 내가 감히 스스로 행할 수 없는 것을 나의 환자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는 확신이었다.
2. 죽은 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
356 만다라가 참으로 무슨 의미인지 나는 차츰 깨달아갔다. 그것은 ‘형성, 변환, 영원한 마음의 영원한 재창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즉 인격의 전체성이었다. 모든 것이 잘돼가면 조화로우나 자기기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 연금술을 발견하다
1.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365 나는 인생 후반기가 시작되면서 무의식과의 대면을 시도했다. 무의식에 관한 나의 작업은 오랜 기간이 걸렸다. 20년쯤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내 환상의 내용을 약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나는 내적 체험에 관해 역사에서 예시의 증거를 찾아야만 했다. ... 그런데 연금술과의 만남은 나에게 결정적인 경험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때까지 부족했던 역사적 기반을 나에게 제공해주었기 때문이었다.
367 연금술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상징의 하나는 물질의 변환이 완성되는 그릇이었다. 나의 심리학적 발견의 핵심도 이와 같은 내면의 변환과정, 즉 개성화였다.
373 연금술에 대한 나의 작업에서 나는 괴테와의 내적인 관계를 보게 된다. 괴테의 비밀은 그가 수세기 동안 지속된 원형적 변환과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파우스트>를 필생의 역작 또는 신성한 작품으로 여겼다. ...
나 자신도 그와 같은 꿈에 사로잡혀 있었고 열한 살 때부터 착수해온 ‘주요과업’이 있었다. 나의 생애는 하나의 과제, 하나의 목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것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즉, 인격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과제요 목표였다. 모든 것은 이러한 중심점에서 설명되며 나의 모든 연구는 바로 이 주제와 연관된다.
2. 성배전설과 동물 상징
397 밑바닥에 도달한 그 순간, 나는 학문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마지막 한계에 부딪혔다. 초월적인 것, 원형 그 자체의 본질에 관해서는 더 이상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397 나의 저술들은 내 생애의 정류장들이라 여겨질 만하다. 그것들은 나의 내적 발달의 표현이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애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이것들은 하나하나 떼어놓을 수가 없다.
나의 모든 저술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로 이루어졌다.
■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1.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
401 나는 가장 깊은 생각과 나 자신의 인식 들을 이를테면 돌에 표현하거나 돌로써 고백해야 했다. 내가 손수 볼링겐에 지은 탑이 그 일의 시작이었다. 허무맹랑한 착상처럼 보일지 모르나 나는 실행에 옮겼고, 그것은 나에게 깊은 만족을 주었을 뿐 아니라 큰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
404 처음부터 탑은 나에게 성숙의 장소였다. 즉, 그 안에서 내가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로 다시 존재할 수 있는 자궁, 모성적 이미지의 장소였다. 탑은 내가 돌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미리 예감했던 것의 실현, 즉 개성화의 표현으로 여겨졌다. 청동보다도 오래갈 기억의 징표였다. 그것은 나의 존재에 대한 긍정처럼 느껴져 나에게 유익한 영향을 끼쳤다.
2. 카르마
421 사람들은 모든 좋은 것이 나쁜 것들의 대가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 여행
1. 북아프리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428 나는 다른 눈으로 보는 법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백인’을 그 고유의 환경 밖에서 관찰하는 법을 배웠다.
434 나는 늘 동시에 두 개의 영역에서 사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하나는 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싶으나 할 수 없었고, 또 하나는 무의식적인 면에서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꿈의 형태 이외로는 더 잘 표현할 길이 없었다.
2. 푸에블로 인디언,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
443 나는 타오스 푸에블로의 추장 옥비에비아노(산의 호수라는 뜻)에게 왜 백인이 넋이 나간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그들은 머리로 생각한 것을 말하오.”
나는 놀라서 물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신은 어디서 생각하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하오.” 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3. 인도, 이방의 문화에서 유럽의 뿌리로!
491 나에게는 해방이란 것이 없다. 내가 소유하지 않고 내가 행하거나 체험하지 않은 그 어떤 것들로부터도 나를 해방시킬 수 없다.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내가 참여하지 않고 물러서면 거기에 해당하는 영혼의 부분을 그만큼 절단하는 셈이 된다.
491 자신의 열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 환상들
1. 융합의 신비
526 객관적 인식을 통해서만 진정한 융합이 가능하다.
527 이제는 나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려고 애쓰지 않고 생각의 흐름에 나를 맡겼다. 그리하여 문제들이 하나하나 차례로 나에게 다가와 무르익으면서 형상화되었다.
그런데 나는 병을 통하여 또 다른 것을 얻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었다. 주관적인 반론 없이 말이다. 현존재의 조건을 내가 보는 그대로, 내가 이해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527 병을 앓은 후에 비로소 나는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 사후의 삶에 관하여
1. 꿈과 예감
533 신화적인 인간은 ‘그 너머로 나가기’를 갈망하지만 학문적인 책임을 고려하는 인간은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이성의 차원에서는 ‘신화화’야말로 쓸모없는 사변일 뿐이다. 하지만 감정의 차원에서는 치유를 가져오는 활동력이며 인간존재에 광채를 부여한다. 그 광채를 사람들은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런 것 없이 지내야 하는 어떤 그럴 듯한 이유도 제시할 수 없다.
534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인생이 현존을 넘어서 무한정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훨씬 더 이성적으로 잘 살며 더욱 편안해질 것이다.
535 나의 가설은 무의식이 이를테면 꿈을 통해 우리에게 보내는 암시의 도움으로 그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536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줄 수 있다. 동시성현상과 예언적인 꿈, 예감들을 생각해보라!
2. 신화,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
신화는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는, 의식적 인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간단계다.
3. 단일성과 무한성
559 서양인의 신화에 대한 갈구는 ‘시작’과 ‘목표’를 지닌 진화론적 세계상을 요청하게 된다. 이러한 세계상은 시초와 단순한 ‘끝’을 가진 세계라든가 그 자체 안에 폐쇄된, 정적이고 영원한 순환과 정의 세계관을 배척한다. 이에 반해 동양인은 이런 관념을 허용할 수 있는 듯이 보인다.
572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
574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한, 인간실존의 유일한 의미는 존재 그 자체의 어둠속에 빛을 밝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무의식이 우리에게 작용하듯 우리 의식의 증가가 무의식에 작용한다는 사실까지도 추정해볼 수 있다.
■ 만년의 사상
1.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582 오늘날 제기된 악의 문제에 대해 해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철저한 자기인식, 즉 자신의 전체성에 대한 최선의 인식을 필요로 한다. 그는 자신이 얼마만큼 선을 행할 수 있으며 어떤 파렴치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는지 냉철하게 알고 있어야 하며, 전자를 사실로 여기거나 후자를 착각이라고 여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583 정말 참다운 진실은 우리가 악의 상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악의 상상이 우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584 신화가 생동하지 않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으면 신화는 죽은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신화는 벙어리가 되었고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한다. 잘못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은 신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런 방면의 온갖 시도를 억압한 우리 자신에게 있다.
588 심리학적 관점에 한해서 보면, 신의 표상은 심적 토대에서 현시된 것이며 이제 심한 분열의 형태로 의식되기 시작했다. 그러한 분열이 세계정치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벌써부터 이에 대한 심리적 보상이 눈에 띌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원 모양으로 보이는 자발적인 통합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정신 내부의 대극의 합(合:Synthese)을 묘사하고 있다.
592 신은 인간의 현실로 들어서며 ‘인간’의 형상 속에서 인간과 함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종류의 육화를 통해 인간, 즉 그의 자아는 내부적으로 ‘신’으로 대체되며 신은 외부적으로 인간이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과 상응한다. “나를 보는 자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
594 창조신의 표상에 내포된 필연적인 내적 대극은 ‘자기’의 통일성과 전체성 속에서 연금술의 대극융합이나 신비적 합일로서 화해하게 될 것이다. ‘자기’를 체험하는 가운데, 이제는 더 이상 이전처럼 ‘신과 인간’의 대극이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신의 표상에 내포되어 있는 대극이 극복되는 것이다. 그것이 ‘신에 대한 예배’, 즉 인간이 신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는 예배의 의미다. 빛이 어둠속에서 생겨나며 창조주가 그의 창조를 의식하고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된다.
597 어떤 학문도 신화를 대체하지 못하고 어떤 학문으로도 신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이 아니라 신화가 인간 안에 있는 신적인 삶을 계시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고안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일종의 ‘신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원형, 그 역동적인 에너지
600 그럴듯한 비밀의 필요성은 원시단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공동의 비밀은 결속을 위한 시멘트 역할을 해준다.
604 개인적인 목표를 따르면서도 집단성에 보조를 맞추려는 자는 누구나 신경증적인 사람이 된다.
3.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620 사랑은 그의 빛이며 그의 어둠이며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다. 그가 “천사의 혀로 말할지라도” 또는 과학적인 정밀성으로 세포의 생명을 가장 깊은 바탕까지 주의깊게 관찰한다고 하더라도, “사랑은 결코 그치지 않는다”.
■ 회고
1. 비밀로 가득 찬 세계
624 다른 대부분의 사람과 나의 차이점은, 내게는 ‘칸막이벽’들이 투명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고유한 특성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벽들이 너무 두꺼워서 그 뒤를 보지 못하므로 거기에는 전혀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 정도 그 배후의 과정을 인지하는 편이라서 내적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 또한 아무런 확신도 갖지 못하며, 아무런 결론도 끌어낼 수 없거나 자신의 결론을 믿을 수도 없다. 나로 하여금 삶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무의식 그 자체일 것이다. 어쩌면 어릴 적 꿈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내 삶의 방향을 처음부터 결정해버렸다.
배후의 과정에 대한 지식이 세계에 대한 나의 관계를 일찍부터 미리 형성했다.
624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2.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629 나는 단지 내가 태어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어디에 실려다니는 것과도 같았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의 토대 위에 존재하고 있다. 온갖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존의 견고함과 내 존재양식의 연속성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태어난 이 세계는 거칠고 잔혹하며 동시에 신성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무의미와 의미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하다고 믿느냐 하는 것은 기질의 문제다.
630 노자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늙은 나이에 느끼는 바다.
노년이란 그런 것이면서 또한 하나의 제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주 많다. 식물, 동물, 구름, 낮과 밤, 그리고 인간 속에 있는 영원한 것 등이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해 불확실해질수록 온갖 사물과의 친화성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그렇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놓았던 저 생소함이 나의 내면세계로 옮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낯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의 뼈대는 일생을 사로잡은 꿈.(유년시절) -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학창시절) - 아름다운 시간들(대학시절) -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 프로이트와의 만남. - 내 안의 여인 아니마. - 연금술을 발견하다. -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 여행 - 환상들 - 사후의 삶에 관하여 - 만년의 사상 - 회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참고적으로 절들을 포함하고 있다. 시대적으로 기술하면서도 별도로 중요 사안을 다루는 혼합의 형태를 띠고 있다. 구성 자체에 별다른 이의는 없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이다.
본문 내용 중, “동료에게 문의했다면 그들은 아마도 ~ ‘그런 사실을 말하지 말게나. 그녀를 더 미치게 만들 뿐일세‘ 라고 나에게 경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견해로는 결과가 그 반대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심리학에는 명백한 진리가 거의 없다. 하나의 문제는 우리가 무의식적인 요소를 고려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대답할 수 있다.” 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융이 매우 유연하고 전방향적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판단된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라는 부분이 나의 경우와 연관이 깊어 약간 기술한다.
나는 나름의 깊은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삶이 즐겁고 행복했다. 어렸을 때는 동네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 후 부터는 삶에 대해 많은 고뇌를 겪어야 했다. 결혼해서도 가장 행복하고 남들로 부러움을 사는 가정을 꾸려 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혼자 만의 노력으로는 되질 않았다. 가정과 가족에 아무리 잘하려고 노력해도 삶에 대해 호전되지 않았다. 행복은 멀어져만 갔다. 그러면서 인생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겠지만 나는 인생에 대해 항상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기에 더 힘들었고 반면 의식적으로 많이 성숙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결혼생활 내내 소통하려고 노력했으나 안 되었기 때문에 그 소통 부분에 대해 늘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러면서 더욱 낮아지면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깨달아 갔다. 정말 깊고 진정으로 깨달은 것은 고통받는 환자 가까이에서 돌보며 생활한 덕이 컸다. 불교에서는 그 일이 ‘인간의 마지막 봉헌’이라고 어떤 분은 말하며 칭찬을 하였다. 이렇게 깨달은 것을 크게 사용하려고 청와대 사회통합위원회에 민간자격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글이나 말로써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일시 중지 상태이다. 여하튼 상처입고 경험해 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것 같다.
책으로 만나게 된 카를 구스타프 융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기억된다.
80세가 넘은 나이에 자기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서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라고 규정지었던 사람.
환상적이고 남과는 다른 독특한 꿈이나 예시 등의 자신만의 경험으로 인해 무의식에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고, 이를 통해 평생을 인간 정신세계의 연구에 몰두하였던 사람.
죽기 2년전 평생에 걸친 신에 대한 작업 끝에 신을 안다고 하였던 사람.
그리고 존재 그 자체의 어둠 속에 빛을 밝히려고 끝까지 홀로 투쟁했던 사람.
신은 절망과 희망을 선택하는 자율성을 우리들에게 부여 하였다. 신에게 종속되어 지는 인간이 아닌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의해 삶을 살아가는 형태의 우리들의 인생 여정. 그 여정에서 오늘 융을 만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나에게 나즈막히 속삭였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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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북리뷰 안보이시는 분들 일단 파일첨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4] | 관리자 | 2009.03.09 | 106512 |
358 |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Review [1] | 최우성 | 2010.03.08 | 5840 |
357 | 북리뷰4주차-기억 꿈 사상 | 이은주 | 2010.03.08 | 4792 |
356 | 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1] | 신진철 | 2010.03.08 | 5551 |
355 | 기억, 꿈, 사상 (카를 융) [3] | 김용빈 | 2010.03.08 | 6173 |
354 |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을 읽고 - 김영숙 | 김영숙 | 2010.03.08 | 5685 |
353 | 북리뷰 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박상현 | 2010.03.08 | 5623 |
352 | 카를 융 자서전 | narara | 2010.03.07 | 5537 |
351 | 4. 카를 융 자서전 –기억 꿈 사상 | 미나 | 2010.03.07 | 5579 |
350 | 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노미선) | 별빛 | 2010.03.07 | 5576 |
» | 4. 기억 꿈 사상(융) 불가능은 없다. 생각의 차이와 한계... | 윤인희 | 2010.03.07 | 5540 |
348 | 어쩌면 좋아.... [3] | 맑은 김인건 | 2010.03.07 | 5519 |
347 | 4. 기억 꿈 사상 | 박미옥 | 2010.03.06 | 6042 |
346 | 북리뷰 4. <기억 꿈 사상> [2] | 이선형 | 2010.03.04 | 5743 |
345 | 디지털 혁명의 미래_고든벨, 짐겜멜 | 맑은 김인건 | 2010.03.02 | 5494 |
344 | 세번째 북리뷰_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1] | 김혜영 | 2010.03.01 | 5956 |
343 | 3.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노미선) | 별빛 | 2010.03.01 | 5550 |
342 | 북 리뷰3.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2] | 박상현 | 2010.03.01 | 5995 |
341 |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 김연주 | 2010.03.01 | 5557 |
340 |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 김용빈 | 2010.03.01 | 5743 |
339 | 리뷰 3주차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 윤인희 | 2010.03.01 | 57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