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좋은

함께

여러분들이

  • 별빛
  • 조회 수 5576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0년 3월 7일 12시 05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융은 정신의학자이면서 분석심리학의 개척자이다. 삶의 대부분을 임상연습에 몰두하였고 동양과 서양 철학, 연금술, 점성술, 사회학 뿐 만 아니라 문학, 예술 등 심리학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며 그 과정에서 겪게 된 내적·외적 경험들을 통해 심리치료법을 개발하여 이론화하였다.
한 때는 프로이드의 후계자로 지목되기도 하였으나 좁힐 수 없는 견해차이로 결별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별 후에도 프로이드의 치료법을 적용하기도 한 그의 모습과 다른 이들이 비논리적이라 여긴 인류의 모든 무속신앙, 종교 등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고자 노력했던 모습에서 융의 개방성을 엿볼 수 있다. 이 개방성이 자신이 개척한 분석심리학에도 스며들어가 있기에 오늘날 그의 이론이 심리학 뿐 만 아니라 인문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고 보여 진다. 또한 학창시절 학교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기에 고독한 사춘기 시절을 보내며 특히 경쟁을 감당하기 어려워했던 성향이 있었기에 내면의 세계를 그 누구보다도 깊고 폭넓게 여행할 수 있게 되어 분석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펼쳐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어린 시절의 정서적 경험들은 평생을 지배한다고 한다. 융은 자신의 부모의 불화 속에서 우울한 시절을 보내야 했지만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융은 그 시절의 경험을 승화시켜 자신의 이론을 정립해나가는데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나의 모습들을 과거의 경험에 원인으로 돌리곤 했던 나를 다시금 바라보게 되면서 얼마나 정서적으로 풍족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느냐 보다는 내가 그 시절을 어떻게 보냈고 지금 그 경험이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더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융에 따르면 인간은 의식할 수 있는 ‘의식’층과 의식되지 않은 ‘무의식’층이 있다고 한다. 그 무의식의 대표적 형태가 꿈이라고 말하며 우리의 정신은 인류의 문명의 원형적 밑그림과 닿을 수 있는 ‘집단 무의식’이 있다고 설명한다. 학문에서 뭔가를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가지고 있던 융은 이 과정을 체험하고 기록한 것을 과학적 작업의 그릇 속에서 추출해내기까지 45년이 걸렸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큰 틀의 삶을 이해할 수 있어야 중년 이후의 삶을 풍요롭게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 오늘날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바쁘게만 달려가지 말고 가끔 멈추어서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일을 통해 이 무의식에 닿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할 수 있지 않았을까?....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1-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 에 따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 한다.

13- 인간의 생애는 일종의 애매한 선물이다. 그것은 숫자상으로만 보면 거창한 현상이다. 인생은 허무하기 짝이 없고 너무나 불충분하여,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 그 자체라 할 만하다.

14-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52-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 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58- 자애심과 허영심에서 될 수 있는 한 흠잡을 데 없이 보이기 위해 신경을 썼음에도 불 구하고, 이와 같이 나의 자만심을 뒤이은 열등감이 세상사람들 앞에서 드러난다는 것은 나로서는 정말 부당한 일로 여겨졌다.

63-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나를 둘러싼 광대한 세계 앞에서 느끼는 왜소감은 내 마음에 의 욕상실뿐만 아니라 일종의 은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것들이 학교를 극도로 싫어하게 만들었다.

66- 그 수치스러운 사건 전체를 조정해온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 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나를 밀쳐 넘어뜨린 친구에게 나는 한 번도 심하게 화를 내지 않은 것이었다. 그 친구는 이를테면 그 사건에 ‘끼워진’ 것에 불과하며 내 편에서 그 사 건을 간교하게 조정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 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분노했고 동시에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다. 왜냐하면 내가 나 자신에게 옳지 않은 일을 했으며 나 자신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다.

81- 인간의 용기를 시험할 때 하느님은 비록 아무리 신성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전통으로부 터 영향을 받는 것을 거부한다. 하느님은 용기에 대한 그런 시험에서 악한 어떤 것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도록 당신의 전능함으로 이미 보살피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하느님 의 의지를 실현한다면 그는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82- 내게 은총을 가져다준 것은 복종이었다. 그 체험 이후 나는 하느님의 은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하느님에게 맡겨졌다는 것과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무의미한 일에 나 자신을 넘 겨주는 셈이 된다.

89- 결점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를 보상했다. 나는 나 자신이 잘못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못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속으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하나는 부모의 아들로서 학교를 다니고 다른 많은 아이보다 그렇 게 썩 영리하거나 주의깊지도 않으며 근면하거나 단정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못한 아 이였다. 이와 반대로 또 다른 하나는 다 자란 어른으로 정말 늙고 의심이 많아 사람을 믿지 않고 인간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인물이었다.

101- 내가 어떤 것을 인지하고 싶지 않을 경우에는 물론 나 스스로를 속이고 보지 못하는 것처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사물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 는 것이다. ‘진정한 인식’은 본능에서 비롯되거나 타인과의 신비로운 교제에 기인한다. 그것은 비개인적인 관조행위를 통해 보는 ‘배후의 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111- 종교란 하느님이 나와 함께 이루는 그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그것은 하느님 편에서의 행위로 나는 다만 거기에 맡겨져 있을 뿐이었다.

128-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134-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신은 어떤 신성모독에 의해서도 기분이 상하지 않고, 오히 려 반대로 인간이 밝고 긍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어둠과 불경스러움도 갖도록 신성모독 을 요구하기 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136- 나는 가난이라는 것이 불리한 점도 아니며 고통의 주된 원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잣집 아들이라고 해서 가난하고 옷이 꾀죄죄한 소년들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었다.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나는 이전 보다 더 많은 좋은 친구를 얻었다. 내 발을 받쳐주는 훨씬 든든한 기반을 느끼며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까지 갖게 되었다.

166- 내가 최종적으로 의학을 택했을 때도, 인생을 그런식의 타협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좋 지 않다는 언짢은 감정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와 같이 취소하기 어려운 결정이 내려졌 으므로 내 마음은 상당히 홀가분해졌다.

167- 내가 부끄럽게 여긴 이유는,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 이 아니라, 이를테면 모든 ‘윗’사람, 즉 유력한 분들이 나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 지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윗’분들에게 그러한 친절을 기대해본 적이 전혀 없었다. 아마도 착하고 단순 소박한 아버지에 대한 좋은 평판 덕 을 본 것이 틀림없었다.

170- 나는 폭풍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으며, 폭풍은 끝없는 어둠의 세계로 나를 떠밀어 넣으려고 기를 썼다. 그 어둠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의 미심장한 비밀의 표피만을 지각할 뿐이었다.

171- 나를 향해 밀려오는 폭풍은 시간이었으며, 그것을 끊임없이 과거로 흘러가면서도 동 시에 쉼없이 나를 바싹 따라붙었다. 그것은 강력한 흡인력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자기 속으로 탐욕스럽게 끌어들인다. 우리는 단지 앞으로 돌진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잠깐 동안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과거는 무서울 정도로 바로 여기에 실재하며, 충분 한 해답으로써 몸값을 치르고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자들을 모두 잡아서 끌고 가버린 다.

173- 인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개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며, 무엇 보다 먼저 부모의 환경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개성 때문에 부 모의 정신세계와는 제약된 범위 안에서만 일치할 뿐이다. 그런데 가족정신은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나름대로 시대정신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는다. 시대정신 그 자체는 대개 무의식적이다. 이 가족정신이 전반적으로 동의를 표시할 경우 그것은 일종의 세계 확 실성을 의미하게 된다. 하지만 그 정신이 많은 것과 대립하여 스스로 어긋나버리면 세 계 불확실감이 생겨난다.

175-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 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 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 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201- 나는 새로운 관념이나 단지 특이한 측면까지도 오직 사실로써만 전달될 수 있다는 것 을 이해했다. 사실들은 남아 있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책상 밑에 버려져 있지 않고 언젠가 어떤 사람이 그것을 만나게 되고, 그는 자기가 찾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 다.

217- 결국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 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이 셈이다.

236- 결정적인 점은 환자 ‘사연’의 문제다 그것이 인간적인 배경과 인간적인 고통을 드러내 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사의 치료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241- 우둔하고 감정없이 멍청하게 행동하는 듯한 환자들의 마음속에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 다는 훨씬 많은 일, 훨씬 의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정신병에서 새 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바탕과 마 주치게 된다.

246- 그 결과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상태, 즉 정신병이 생기고 말았다. 그녀는 이를 테면 지구 밖 세상에 존재하며 인간들과는 접촉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주 멀리 우주공 간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날개 달린 악마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자면 악마를 나에게 누설하고 지상의 인간과 맺어 지게 된 셈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실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으며 결혼까지 할 수 있 게 되었다.

248-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원칙은 다만 최소한으로 설 정되어야 한다. 심리적인 진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반대로 뒤집을 수도 있을 때에만 타 당한 것이 된다. 나로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해결책도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바로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250- 마음은 신체보다도 더욱 복잡하고 접근하기 어렵다. 마음은 이를테면 세계의 절반으 로, 우리가 그것을 의식할 때에만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은 단순히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며, 정신과의사는 전체 세계에 관여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예전과는 달리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위험이 자연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 니라 인간, 즉 각 개인과 다수의 마음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정신의 변 인은 위험하다!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이 제대로 기능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만일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제정신을 잃어버리면 수소폭탄이 터질 수도 있다!

253- ‘상처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261- 무의식이 시간과 공간을 상대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 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 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다. 이 사례에서는 나의 무의식이 내 환자의 상태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이미 그날 저녁 내내 보통때의 기분하고는 유난히 달리, 이 상하게도 마음이 어수선하고 신경이 예민했던 것이다.

264- 나는 사람들이 인생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 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사람들은 지위, 결혼, 명성, 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 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 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 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 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그런 이유로 인격발달이라는 관념이 나에게는 처 음부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271-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들 외에 가장 어렵고 배은망덕한 환자는 소위 지식인들이다. 그 들이야말로 한쪽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전혀 모른다. 그들은 일종의 구획 심리학 을 계발한다. 감정에 의해 조절되지 않는 지성으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고 한다. 그런 데도 그들은 신경증을 앓고 있다.

284- 자기가 자신의 가장 나쁜 적이 되어 있는 경우, 그 사람의 신랄함보다 더 지독한 실 랄함은 없을 것이다.

286- 권력충동이 에로스에 대해 요구하듯이 에로스 역시 권력충동에 대해 많은 요구를 하 게 된다. 하나의 충동은 다른 하나의 충동 없이 어디에 있겠는가? 인간은 한편으로는 그러한 충동에 굴복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프로이트 는 객체가 어떻게 그 충동에 굴복하는가를 제시했으며, 아들러는 인간이 객체를 지배 하기 위해 어떻게 그 충동을 사용하는가를 제시했다. 운명의 손에 넘겨져 꼼짝할 수 없게 된 니체는 스스로 ‘초인(超人)’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287- 그는 비장한 주장을 하고 곧바로 그것을 취소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신성한 힘에 대 해서는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데, 그러는 게 정상인 것이다. 왜냐하면 신성한 힘이 란 어떤 면에서는 진실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성한 힘의 체 험은 사람을 고양시키기도 하고 동시에 추락시키기도 한다. 프로이트가 성욕이 신성한 힘이며 그것은 일종의 신이면서 악마라는 심리학적인 진리를 좀더 고려했다면, 생물학 개념의 한계에 갇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니체도 인간존재의 바탕을 좀더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면, 아마도 감저의 과잉으로 세계의 가장자리 밖으로 나가떨어지 지 않았을 것이다.

신성한 힘의 체험으로 마음이 격렬히 동요하게 되면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실이 끊어 질 위험이 항상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은 절대적인 긍정으로, 또 다른 사람은 그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부정으로 빠지게 된다.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정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 다.

288- 모든 것은 지나간다. 어제의 진리가 오늘은 허위가 되며, 그저께 잘못된 결론으로 간 주되던 것이 내일은 하나의 계시가 될 수도 있다. 이럴진대 우리가 실제로 아는 것이 너무도 적은 심리학적인 사실들에서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덧없을 정도로 작은 의식이 어떤 것을 인식해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 하는지 우리는 아직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298- 1층은 무의식의 제1표면을 나타내고 있었다. 내가 깊이 내려갈수록 풍경은 점점 더 이상해지고 어두워졌다. 동굴 속에서 나는 원시문화의 유물을 발견했다. 그것은 말하 자면 나의 내부에 있는 원시인의 세계, 의식이 다다를 수도 없고 해명할 수도 없는 세 계였다. 선사시대의 동굴을 인간이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기 전에는 대개 동물들이 차 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인간의 원시적인 마음은 동물의 혼의 활동과 가까이 접하고 있 다.

300- 나에게 꿈이란 자연의 일부로서 속이려는 의도를 품고 있지 않았다.

꿈도 가능한 한 자라나려 하고 동물이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꿈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생명의 형태들은 우리 의 눈을 속이려고 하지 않으나, 우리 자신이 근시안이어서 스스로를 속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귀가 먹었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이지 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이 아니다.

342- 결정적인 것은 결국 언제나 의식이다. 의식이 무의식의 표현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자기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377- 나는 인간의 본능을 에너지과정의 여러 표현으로 여기며, 열이나 빛 들과 유사한 힘 으로 본다. 현대 물리학자가 모든 힘을 이를테면 열에서만 끌어낼 수 없는 것과 마찬 가지로, 심리학자 역시 모든 본능을 권력이나 성의 개념 따위로 분류할 수 없다.

382- 오늘날의 개인이나 문화공동체도 비슷한 위협, 즉 대중화의 위험에 처해있다. 그리하 여 많은 곳에서 그리스도 재림의 가능성과 거기에 대한 희망이 이미 활발하게 논의되 고 환상을 보았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는데, 그것은 구원을 기대하는 마음의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것이 취한 형태는 과거에서는 비교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 고, ‘기술시대’의 전형적인 아이의 모습을 보일 뿐이다. 미확인비행물체(UFO) 현상의 전세계적인 확산 같은 것이 바로 그렇다.

387- 맹목적인 수용은 결코 해답을 주지 못한다. 기껏해야 답보상태로 있게 할 뿐이며, 그 로 인해 다음 세대가 심각한 부담을 안게 된다.

388- 상처입은 자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듯이 치료자는 자신을 치유한다.

394- 인간은 신적인 소명 앞에서도 결행을 유보하는 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자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자유를 위협하는 자를 위협할 수 없다면 그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 겠는가?

395-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부정은 이미 심상치 않게 가까이 다가온 미래의 문제를 예언적 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 꿈은 인간세계에 오래전부터 있어온 생각과 징후, 즉 피조물이 그의 창조주를 근소하지만 결정적으로 능가한다는 관념을 드러내고 있다.

397-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것에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408- 나는 고아, 혼자다. 그런데도 어디서나 발견된다. 나는 하나의 존재, 그러나 나 자신 과 대립하는 존재다. 나는 젊은이인 동시에 노인이다.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를 물고기처럼 깊은 곳에서 끄집어 올려야만 하므로, 아니면 하 얀 돌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므로. 숲과 산에서 나는 두루 쏘다니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다. 나는 누구를 위해서도 죽지만 시간의 변화에 영향 을 받지 않는다.

420- 우리의 마음은 신체와 마찬가지로 조상 대대로 이미 존재해온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 다.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에서 ‘새로운 것’이란 아득한 옛날의 구성요소들이 끝없이 변 화하여 재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체나 마음은 현저하게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으 며 새로운 것, 방금 생겨난 것 속에서는 알맞은 자리를 찾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조 상의 특징들은 그 속에 단지 부분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옛것이 한번 파괴되면 그것은 대부분 아예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파괴적인 전진은 결코 그칠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성의 상실이며 근원과의 단절 로서 ‘문화 속의 짜증’과 성급함을 야기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발전의 역사가 아직 전체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현재에 사는 대신 미래에 살며, 황금시대가 오리라는 터무 니없는 약속에 의지한다. 사람들은 점점 깊어지는 결핍감과 불만, 초조감에 사로잡힌 채, 새로운 것을 향해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돌진하고 있다.

사람들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미래의 약속에 의지하여 살고 있으 며, 현재의 빛 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의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어둠속 에서 적절한 때에 해가 솟아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423- 우리의 내적인 평안과 만족은, 개체를 통하여 인격화된 역사적 가족이 우리 현재의 덧없는 상황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거의 대부분 좌우된다.

430- 나는 문득 이 사람들이 사냥꾼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막연한 불안을 느끼며 사냥꾼 냄새를 맡고 있는 사냥감 짐승들처럼 여겨졌다. 그 사냥꾼은 다시 말해 시간의 신으로 서 아직 영원을 연상케 하는 이들의 시간을 무자비하게 날과 시, 분과 초로 조각조각 잘게 쪼개게 될 것이었다.

유럽인은 자신들이 오랜전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확신하지만, 그들이 그 기간에 어떤 존재가 되어버렸는지는 아직 모르고 있다. 시계라는 것이 소위 중세 이래로 시간과 그 동의어인 진보가 유럽인에게 슬며시 들어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그들로 부터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짐을 가볍게 하고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점점 더 속력을 올리며 여행을 재촉하고 있다. 그들은 중량의 상실과 이에 따른 공허를 열차, 기선, 항공기, 로켓과 같은 성과물의 환상으로 보상하고 있다. 이런 것들 은 빠른 속력으로 인해 유럽인으로부터 존재의 지속성을 더욱더 빼앗아가고, 더 나아 가 유럽인을 속도와 폭발적인 가속도로 이우러진 또 하나의 다른 현실로 옮겨놓는다.

439- 살아 있는 정신구조에서는 단순히 기계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 일이 없다.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관리되며 전체와의 관계성 속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특정한 목적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의식은 전체에 대한 조망이 없으므로 대개 이러한 의미를 이해하 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사실확인으로 그쳐야 하며, ‘자기의 그림자’와의 충 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회답은 앞으로 진전되는 미래의 연구에 맡겨두어야 할 것이다.

443- “우리는 여기서 생각하오.” 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457- 인간은 창조의 완성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세계를 비로소 객관적 실재가 되게 하는 두 번째 세계창조자인 것이다.

490- 나는 인간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지도 않으며 나로부터도 자연으로부터도 그러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내게는 형언할 수 없는 경이이기 때문이다. 자연, 영혼, 그리고 인생은 나에게 활짝 피어난 신성처럼 여겨진다.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에게 존재의 최고의미는 오직 그것이 존재한다는 데 있지, 그것이 원래 아무것도 아 니라거나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하는 데 있지 않다.

491-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 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자신의 열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면 열정은 집 가까이 있게 되고 그가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불길을 일으켜 바로 그의 집 을 덮칠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포기하고 내버려두고 겉으로 잊어버린 체하고 있 을 경우, 그 포기한 것과 내버려둔 것이 두 배의 힘으로 되돌아 올 가능성과 위험이 상존한다.

495- 나는 부처의 삶을 개인의 인생 전체를 통해 스스로를 주장한 ‘자기’의 실현으로 이해 했다. 부처에게 ‘자기’는 모든 신을 넘어서, 특히 인간실존과 세계의 정수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로서 존재 자체의 측면뿐 아니라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 의 인식도 함께 포괄하고 있다. 부처는 인간의식의 우주진화론적인 위엄을 파악하고 이해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는 만약 누군가가 의식의 빛을 꺼버린다면 세계는 ‘무(無)’로 빠져들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496- 부처는 이를테면 이성적 통찰로써, 그리스도는 숙명적인 희생으로써 그 일을 이루었 다. 기독교에서는 더 많이 고통을 겪는 데 주안점을 두고, 불교에서는 더 많이 깨닫고 행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508- 사람들이 이미 있던 무의식 내용을 의식에 통합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 은, 아마도 말로 표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단지 경험할 수 있 을 뿐이다. 그것은 논의할 필요가 없는 주관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하 나의 사실이며, 그 사실을 의심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합당하지도 않다.

510- 사람들이 가는 데마다 그곳을 지배했던 정신에 의해 마음 깊은 곳에서 충격을 받을 때, 그리고 거기 있는 성벽 잔해와 둥근 기둥 하나가 내 눈에 이제 막 새롭게 인식될 때 문제는 달라지는 법이다.

516- 나에게 남아 있는 그것이 바로 ‘나’라고 말이다. ‘나’는 이를테면 남아 있는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나의 역사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참으로 나라는 절실한 느 낌을 지니고 있었다. ‘나(자아)는 성취된 것과 지금까지 있었던 것의 그와 같은 묶음이 다.’ 이런 체험은 나에게 극도의 결핍감을 안겨 주면서도 동시에 커다란 만족을 주었 다. 내가 요구하거나 원하는 것은 더 이상 없었다.

나는 말하자면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즉, 나는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었다. 처 음에는 말살되고 빼앗기거나 약탈당했는 느낌이 지배적이기도 했으나, 한순간 그런 느 낌도 스러지고 말았다. 이전의 일들과 다시 어떤 연관도 맺지 않고 말이다. 어떤 것이 떨어져나갔다거나 빼앗겼다는 아쉬움은 이제 없었다. 그와 반대로 나는 나라고 하는 모든 것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오직 그것만을 가지고 있었다.

527- 사람이 개성화의 길을 가는 중에, 즉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과오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원만해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과 오나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사람들은 아마도 안전한 길이 있 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죽은 자의 길일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어떻든 그건 바른 길이 아니다. 안전한 길을 가는 자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

528- 나는 또한 사람이 자기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온갖 평가를 뛰어넘어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옳으냐 그르냐 하는 범주 는 항시 존재하지만 그것은 구속력이 없다. 왜냐하면 생각이라는 존재가 주관적인 평 가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가 또한 존재하는 생각으로서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도 전체성의 현상에 함께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532- 선입견은 정신적인 삶이 풍성하게 나타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손상을 입힌다.

요즈음의 비판적 이성은 다른 많은 신화적 관념뿐만 아니라 사후의 삶에 관한 관념도 없애버린 듯하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이유는 오늘날 인간이 대부분 오로지 그들의 의 식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자신들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만이 전부인 양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주의와 교조주의는 우리가 앓고 있는 시대병이다. 그것들은 모든 것을 아는 체한다.

533-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치가 있고 치유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화롯가에 앉아 파이프담배를 피우며 유쾌하게 유령이야기를 나 누는 것과도 같다.

535- 우리가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지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을 단념 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우주만물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문제를 학문적이거나 지적인 문제에서 제외시켜야만 한 다. 하지만 거기에 관한 어떤 관념이, 예를 들어 꿈이나 신화적인 전승을 통해 나에게 제공된다면 나는 그것들을 기록해둘 것이다. 심지어 그것으로 하나의 견해를 짜내려고 시도할 것이 분명하다. 비록 그 견해가 언제나 하나의 가설로 남고, 그것이 증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더라고 말이다.

인간은 사후의 생에 관한 견해를 짜내거나 묘사하는 데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을 기울 였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일은 자신의 무능함을 시인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뭔가를 잃어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그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은 태고로부터 내려오는 인류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원형으로서 우리 인생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덧붙여야 마땅한 신비로 가득 찬 삶이다.

536-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 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줄 수 있다. 동시성 현상과 예언적인 꿈, 예감 들을 생각해보라!

551- 어딘가에서 이미 도달하게 된 의식성의 수준은, 내가 보기에는 죽은 자가 도달할 수 있는 인식의 상한을 이룬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지상의 삶이 그토록 큰 의미를 지니며, 사람이 죽을 때 ‘저편으로 가져가는 것’이 그리도 중요한 모양이다. 오 직 이곳, 대극이 서로 부딪히는 지상의 삶에서만 일반적인 의식은 고양될 수 있다. 이 것은 인간의 형이상학적 과제로 여겨지는데 ‘신화화’가 없이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채 워질 수 있을 뿐이다.

신화는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는, 의식적 인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간단계다. 무의식 이 의식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그것은 특별한 종류의 앎으로 영 원 속의 앎, 대개 ‘지금 여기’와 관계가 없고 우리의 지적 언어도 고려하지 않는 앎이 다. 오직 우리가 무의식으로 하여금 스스로 확충하여 진수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때에 만, 앞에서 수를 예를 들어 제시했듯이, 그것이 우리 이해의 범위 안에 들어오게 되고 새로운 측면이 우리에게 지각된다.

556- 다른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하나의 즐거운 사건으로 여겨진다. 영원의 관점에서 죽음 은 일종의 결혼이며 융합의 비의다. 영혼은 이를테면 자신에게 결여된 반쪽에 도달하 여 통합을 이루게 된다.

558- 신화적 상상에서 중간세계가 없다면 정신은 교조주의에 갇혀 경직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반대로 신화적인 내용을 고려하는 것이 피암시적인 약한 마음의 소유자들에게는 예감을 인식으로 여기고 환상을 실체화할 위험이 있다.

560- 서양인으로서는 정적이기만 한 세계의 무의미성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세계의 의 미를 전제해야 한다. 동양인은 이런 전제를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이 그 전제를 구현 한다. 서양인이 세계의 의미를 완성하고자 하는 반면, 동양인은 인간 속에서 의미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며 자신으로부터 세계나 존재를 벗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부처다.

562- 나의 존재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 자 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그것은 내가 오로 지 고심 끝에 인식하게 된 초개인적인 인생과제다.

565- 내적 이미지는 개인적인 회고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막아준다. 외적 사 건의 기억에만 얽매여 있는 늙은이들이 많다, 그들은 그 속에 갇혀 있는 반면, 자신을 성찰하고 이미지로 바꾸는 회고는 ‘전진을 위한 후진’을 의미하게 된다. 내 인생을 통 하여 이 세계 안으로 이끌었고 다시 이 세계에서 밖으로 인도하는 그 줄(노선)을 보려 고 시도한다.

570- ‘자기’가 삼차원의 존재가 되기 위해 인간의 형상을 위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것은 마치 바닷속으로 들어가지 위해 잠수복을 입는 것과도 같다. ‘자기’는 꿈의 영상에 나 타난 작은 예배당이 암시하듯이, 종교적인 자세로서 저승의 실존을 포기한다. 그것은 세속적인 형상으로 삼차원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고, 보다 큰 의식성을 통해 좀더 넓은 범위까지 실현될 것이다.

571- 일반적으로 무의식의 표상들은 의식ㅇ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 고유의 현실과 자발성을 지니고 있다.

572- 무의식의 통합성은 나에게는 모든 생물학적·정신적 현상의 교유한 영적 인도자로 여 겨진다. 그것은 총체적인 실현, 즉 인간의 경우 전적인 의식화를 추구한다. 의식화는 넓은 의미에서 문화이며, 그리하여 자기인식은 이러한 과정의 정수이며 핵심이다. 동 양은 의심할 나위 없이 ‘자기’에 신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고대 기독교의 관점에 따르 면 자기인식은 신인식에 이르는 길이다.

573- 오로지 삶의 공간을 넓히고 합리적인 지식을 어찌해서든지 증가시키는 데만 관심을 두는 시기에는 자신의 단일성과 유한성을 의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단 일성과 유한성은 동의어다. 이것 없이는 무한성을 지각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의식화 라는 것도 없다. 단지 군중과 정치권력의 열광에서 표출되는 그런 것과의 망상적 동일 시가 있을 뿐이다.

우리 시대는 모든 강조점을 이생의 인간에 두어왔다. 이로써 인간과 그의 세계의 신들 림이 초래되었다. 독재자들이 출현하고 그들이 온갖 재앙을 가져오게 된 원인은, 영리 하기 그지없는 지성인들의 근시안으로 인해 인간에게서 내세적인 것이 박탈된 데 있다. 그런 사람들처럼 인간은 무의식성의 제물이 되어버린다.

574-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한, 인간실존의 유일한 의미는 존재 그 자체의 어둠속에 빛을 밝히는 것이다.

580- 선과 악(또는 불완전함)이 상대적이라고 해서 선악이라는 범주가 가치가 없다거나 존 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도덕적 판단은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며 특유한 심리 적 결과가 뒤따른다. 다른 데서 내가 이미 강조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미래에 행해지거나 의도되거나 생각되는 온각 잘못은 세계가 우리를 위해 돌아가든 그 렇지 않든 상관없이 우리 마음을 응질할 것이다.

581- 윤리적 결단이 요구한다면, 버릇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도덕적인 선이라고 알려진 것을 경우에 따라 피하고 악하다고 인정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선악의 대극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인은 보통 자신의 결단능력을 결코 인식하지 못할 만큼 의식이 깨어나지 않은 상태 에 있다. 이러한 이유로 당황스러운 가운데 의지할 수 있는 외부적인 법과 규정을 자 꾸만 소심하게 찾고 있다.

582- 오늘날 제기된 악의 문제에 대해 해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철저한 자기인식, 즉 자신의 전체성에 대한 최선의 인식을 필요로 한다. 그는 자신이 얼마만큼 선을 행 할 수 있으며 어떤 파렴치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는지 냉철하게 알고 있어야 하며, 전자를 사실로 여기거나 후자를 착각이라고 여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두 가지 다 가능성으로서는 진실이다. 사람이 원래 그래야 하듯이, 자기기만과 자기착각에 빠지지 않고 살고자 한다면 전자나 후자를 완전히 모면할 수는 없다.

583- 자기인식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바탕에서 우리가 본능과 마주치게 되는 기층 또는 인간존재의 핵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본능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동적 요 인으로, 우리 의식의 윤리적 결단이 궁극적으로는 거기에 좌우된다. 그것은 무의식과 그 내용으로, 이에 대해서는 어떤 최종적인 판단도 없다. 우리는 그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의 존재를 인식은 하면서도 붙잡을 수는 없고 그 것에 합리적인 한계를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의식을 확장해주는 학문을 통해서만 자연인식에 이르게 된다.

정말 참다운 진실은 우리가 악의 상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악의 상상이 우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594- 인간은 성찰하는 정신 덕분에 동물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게 되며, 그는 인간 본성이 특히 의식의 발달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그의 정신을 통하여 증명한다. 의식의 발달 을 통하여 그는 자연을 소유하고 그 안에서 세계의 현존을 인식하며 이를테면 창조주 를 입증한다. 이로써 세계는 현상이 된다. 의식적인 성찰 없이는 그렇게 될 수 없는 법이다.

596- 우리가 우주에서의 인간실존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주는 하나의 관념을 가진다면, 다시 말해 마음의 통합성, 즉 의식과 무의식의 협력이 이루어지게 하는 근원인 그러한 관념을 가진다면, 신화적 진술에 대한 욕구는 충족되는 셈이다. 무의미는 생의 충만을 방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질병을 뜻한다. 의미는 많은 것을, 거의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도록 해준다.

600- 그럴듯한 비밀의 필요성은 원시단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공동의 비밀은 결속 을 위한 시멘트 역할을 해준다. 사회적인 단계에서 비밀은 개별 인격들의 결속 부족을 효과적으로 보상하는 데 의미가 있다. 개별 인격은 타인과의 근원적이고 무의식적인 동일성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감으로써 반족해서 분열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개성을 의 식하는 개체가 되려는 목표에 이룬다는 것은 거의 가망이 없는 오랜 수련작업이 될 수 박에 없다. 왜냐하면 통과의례를 거친 우수한 개체들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공동체 역 시 사회적으로 분화된 정체성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무의식적인 정체성에 의 해 실현되기 때문이다.

604- 개인적인 목표를 따르면서도 집단성에 보조를 맞추려는 자는 누구나 신경증적인 사람 이 된다.

610- 어떤 의식적인 의지도 생의 충동을 오랫동안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충동은 내 부로부터 일종의 당위나 의지 또는 명령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그 충동을, 이를테면 이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개인적인 다이모니오’이라는 이름으로 지칭한다면, 우리는 최 소한 심리학적인 정황을 적절하게 표현한 셈이다. 그리고 그 디아모니온이 우리를 사 로잡은 곳을 원형이라는 개념으로 고쳐서 더 상세히 표현하려고 시도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스스로 생명의 원천으로 다가갈 뿐이다.

616- 되는대로 말하는 것, 즉 충분한 근거 없이 진술하는 것은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금지 되어 있지만,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도 진술되어야 할 것들이 있 다. 이 경우에도 정신역동적 근거라는 것이 관련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보통 이것을 주관적이라 부르고 단지 개인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사람들은 그 진술 이 진정으로 개별적인 주체로부터 나왔고 오로지 개인적인 동기에서 야기된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보편적으로 나타났고 집단적으로 존재하는 역동적 ‘유형’에서 솟아나온 것인지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실수를 범하고 있다.

617- 원형적 진술들은 본능의 전제조건에 기인하고 있으며 이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 진술들은 이성적으로 논증된 것도 아니고 이성적인 반론으로 제거될 수도 없다. 그 것들은 예전부터 세계상의 일부였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세계상이란 레비 브륄이 적절 하게 명명한 대로 ‘집단표상’인 것이다. 확실히 자아와 그의 의지가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자아가 하고자 하는 것은 대개 자기도 모르는 방식으로, 원형적 과정의 자율성 과 누미노제에 의해 몹시 방해를 받게 된다. 원형적 과정을 실제적으로 고려하면 종교 의 본질을 찾아낼 수 있다.

623- 나는 강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강에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벚나무 줄기가 자라 도록 돌봐야 할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거기 서서 자연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경탄할 뿐이다.

624-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 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625- 사람은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비밀로 가득 찬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해야 한 다. 그리고 그 세게 안에서는 마음속으로 예상되는 일뿐만 아니라 그 외 설명할 수 없 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예기치 못한 일들 과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세계에 속하는 것들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삶은 온전해지는 것이다. 나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무한히 크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었다.

628-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내 인생은 풍성했으며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어떻게 내가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동안 일어난 것들은 그야말로 기대 밖의 일들이었다.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많은 일이 다르게 되 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대로 그렇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629- 나는 나 자신과 내 인생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내가 온전히 확신할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확신을 결코 갖고 있지 않다, 나는 단지 내가 태어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어디 에 실려다니는 것과도 같았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의 토대 위에 존재하고 있다. 온갖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존의 견고함과 내 존재양식의 연속성을 느 끼고 있다.

630- 인생은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또는 인생은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가지고 있지 않기도 하다. 나는 의미가 우세하여 전투에서 이겼으면 하고 마음 졸이며 희망하 고 있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해 불확실해질수록 온갖 사물과의 친화성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그 렇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놓았던 저 생소함이 나의 내면세계로 옮 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낯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자서전은 마음을 가장 진실한 현실로 여겼던 융 자신의 체험과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두 살 때부터 시작된 무의식의 체험과 그 당시 마음속의 갈등을 생생하게 풀어나가며 그의 심리학을 지탱하는 주요한 개념(집단무의식, 원형, 아니마 등)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자신을 도구로써 활용하여 자신의 꿈에 대한 해석과 개인적 경험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마술사와 같은 명의로 명성을 얻어 수많은 환자들의 꿈과 환상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정신의학을 개척하는 과정, 프로이드와의 만남과 결별, 신화와 환상을 통한 인간마음에 대한 진실한 접근, 정신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에 대한 탐색, 연금술의 발견 등을 통한 충실한 자기실현의 과정들이 책안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의 무의식 세계와 의식세계를 넘나드는 내면의 여행들과 아프리카와 인도의 외적인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진솔함에 놀라기도 하고 직관력에는 감탄도 하면서 얼마만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의 머릿속과 마음속을 잠시 들여다 본 듯 한 느낌이다.

아쉬운 점은 뒤에 분석심리학의 개념과 용어가 나와 있기는 하지만 본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만으로는 원형이나 집단 무의식과 같은 개념들은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이런 큰 개념들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이 곁들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융은 생존 당시인 1959년, 영국방송공사 텔레비전에서 진행된 존 프리먼과의 대담에서 인류의 심리학적 자세에 장차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단언하였다. 그 이유를 묻자 융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일한 위험은 인간 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큰 위험인데도 우리는 너무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을 모릅니다. 아는 게 너무 적습니다. 우리는 그의 정신을 연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가오는 모든 재앙의 근원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안의 세계를 탐색해 과는 과정 안에서 그는 한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가늠할 수 없는 큰 세계와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문명의 뿌리들을 발견해가는 과정이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 그 세계의 거대함에 그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에 두렵기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데 이 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인간이 자신들의 위험성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그 위험성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각자 내면의 세계를 여행하여야 한다고 우리에게 그것에 대한 필요성을 일깨워주고 제안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에 평소 자신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을 불편해했음에도 이와 같이 진솔한 자서전을 펴내게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IP *.205.67.12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북리뷰 안보이시는 분들 일단 파일첨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4] 관리자 2009.03.09 106512
358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Review [1] 최우성 2010.03.08 5840
357 북리뷰4주차-기억 꿈 사상 file 이은주 2010.03.08 4792
356 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1] 신진철 2010.03.08 5551
355 기억, 꿈, 사상 (카를 융) [3] 김용빈 2010.03.08 6173
35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을 읽고 - 김영숙 김영숙 2010.03.08 5685
353 북리뷰 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file 박상현 2010.03.08 5623
352 카를 융 자서전 narara 2010.03.07 5537
351 4. 카를 융 자서전 –기억 꿈 사상 미나 2010.03.07 5579
» 4. 카를 융 기억 꿈 사상(노미선) 별빛 2010.03.07 5576
349 4. 기억 꿈 사상(융) 불가능은 없다. 생각의 차이와 한계... 윤인희 2010.03.07 5541
348 어쩌면 좋아.... [3] 맑은 김인건 2010.03.07 5519
347 4. 기억 꿈 사상 박미옥 2010.03.06 6042
346 북리뷰 4. <기억 꿈 사상> [2] 이선형 2010.03.04 5743
345 디지털 혁명의 미래_고든벨, 짐겜멜 맑은 김인건 2010.03.02 5494
344 세번째 북리뷰_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1] 김혜영 2010.03.01 5956
343 3.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노미선) 별빛 2010.03.01 5550
342 북 리뷰3.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2] 박상현 2010.03.01 5995
341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김연주 2010.03.01 5557
340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김용빈 2010.03.01 5743
339 리뷰 3주차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윤인희 2010.03.01 5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