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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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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6일 01시 14분 등록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삶이란 나 아닌 다른 이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싸늘해지는 가을 녘에서 이듬해 봄 눈 녹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 그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다는 듯이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히 남는 게 두려워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려 하지 못했나 보다
하지만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아침에
나 아닌 다른 이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나는 만들고 싶다
- 안도현 ‘연탄한장’, 안치환 노래, 요즘 나의 18번 노래


양재동으로 회사가 이사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새롭게 출발하자는 의미에서 연탄 갈비 집에서 회식을 했다. 연탄불은 열을 전달하는 방식이 복사방식이어서 열이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 고기 속까지 열을 전달, 골고루 익혀준다. 반면에 대류현상으로 열을 전달하는 가스불이나 전열을 이용해 고기를 구울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고기 표면의 수분은 물론 속의 수분까지 모두 증발시켜버리기 때문에 구울수록 고기가 질겨지고 고기 맛도 떨어지는 것이다. 연탄은 고기 맛도 맛이지만 추억을 서비스로 제공한다. 매콤한 연탄가스가 코 끝을 자극하면서 술 한잔이 더해질수록 아련한 그 시절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지금은 도시 웬만한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예전에는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었던 연탄. 그 시절, 김장을 하고 창고에 연탄 가득 채워 놓으면 마음 든든하고 월동 준비 끝이었다. 창고에 연탄이 떨어진 어느 날은 새끼줄에 꼬인 연탄 몇 장을 가슴 아프게 쟁여 놓은 날도 있었다. ‘연탄불 꼭 갈거라.’ 신신당부 하시며 외출하신 엄마의 기대를 무시하고 연탄불 꺼트려서 번개탄 사서 매운 눈 참아가며 부채질하던 기억이 선하다. 그만큼 연탄은 집 아랫목을 훈훈히 달궈준 소중한 존재임에 분명하다. 아랫목에 둘러 앉아 꽃무늬 핑크 담요 덮고 동생들과 좋아하는 만화책 보면서 빠알간 김치 부침개 먹던 일이 벌써 30년이다.

한가지 더 떠오르는 기억을 얘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조그만 연탄 한 장 위에서 쥐포와 쫀득이(?)를 굽고 한 귀퉁이에서 달고나(?)를 2~3개씩 올려서 만들어 먹었던 기억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예전에 많이 회자되던, 자신을 태워 세상의 어둠을 환하게 비추던 촛불의 명성이 어느새 연탄의 그것으로 치환된 느낌이다. 촛불은 ‘촛불시위’로 대변될 만큼 사회 불의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연탄은 소외된 이웃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표현한다. 연탄은 자신의 몸을 다 불태우는 것도 모자라 한 줌의 재가 되어도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아침을 다른 사람이 마음 놓고 걸어갈 길을 만들어 사후 서비스(A/S)까지 확실하게 제공해준다.

도시가스 속에서 따뜻하게 지내는 우리들에게 연탄이란 구석기 시대만큼 먼 얘기처럼 들릴 테지만 아직도 연탄 한 장이 없어서 더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이웃이 많다.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에서는 남한의 어려운 이웃뿐 아니라 북한에도 연탄을 원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밥상공동체라는 봉사단체가 설립한 ‘사랑의 연탄은행'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후원자들의 답지가 끊이지 않아 독거노인과 불우이웃들에게 흐뭇하게 연탄을 제공한다. 현재 전국에 11개의 연탄은행을 설립하여 새로운 복지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연탄은 나 아닌 다른 이웃에게 훈훈한 정을 선물하는 것이다.

한편 연탄은 자신에 대한 열정이다.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연탄은 열 아홉 개의 순수한 구멍을 모두 열어 온 몸을 불살라 한없는 열정을 바치고 나면 한 덩이 뽀얀 재로 남는다. 제 대로 잘 탄 것은 모양도 이그러지지 않고 색깔도 순백색을 띠지만 공기조절을 못해 꺼져버리거나 급하게 타버린 연탄재는 푸석푸석하고 울퉁불퉁하다. 어찌 보면 연탄과 인생은 닮아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열정을 다 바치고 난 인생의 노년의 모습은 잘 타고 난 연탄의 빛깔과 유사하다.

하여 우리 모두 연탄이 됩시다. 뜨거움보다 계산과 명민함이 앞서는 세상살이이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날 우리는 모두 스스로 뜨거웠으며, 서로를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는 연탄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도록 연탄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겨 보길 바랍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밤에 홀로 일어나, 난 살아가는 동안 다른 어떤 이에게 필요한 연탄 한 장 되려 한 적이 있나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난 어떤 이들에게 연탄 한 장이 될 수 있을지 하나씩 조심스레 얼굴을 떠 올려 봅니다.

그런데 나는 왜 안치환의 ‘연탄 한 장’ 같은 치열하고 처절한 노래가 좋은 걸까요?
IP *.51.7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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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5.05.17 17:24:35 *.247.38.177
'사랑의 연탄은행' 에 가입해야겠습니다.
병곤님의 따뜻한 마음씨가 나무를 심는 사람처럼 제게도 따뜻한 연탄재의 A/S를 만들게 하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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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5.05.17 23:17:35 *.51.82.119
박노진님~ 저번에는 해병대 같이 입소하자고 부추기더니 이번엔 연탄은행 가입한다고요? 욕심 좀 줄이세요. 당분간 돈 욕심만 내시고...ㅋㅋ
저, 마음이라도 곱게 먹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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