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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6일 02시 20분 등록

알을 품고 돌아가라!


문 요한 (변화경영 연구소 연구원, 정신과 전문의)



유년시절의 기행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던 옛 동네를 나는 한동안 잊지 못했다. 치렁치렁 매달린 포도나무 넝쿨, 담벽 위에 피어난 장미, 마당 옆 우물, 너무나 멀게 느껴졌던 대문 옆의 변소, 친구들과 뛰어놀던 그 골목길 풍경, 그리고 좋아했던 여자아이의 집!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사를 해서 옛 집을 떠났지만 대학생이 되어서도 잊을 수가 없었다. 옛날 집 생각이 나면 나는 불쑥 찾아가곤 했었다. 어느 때는 아쉬움에 대문과 전봇대를 만지고 오기도 하고 운 좋은 날에는 열린 문틈으로 몰래 들어가 집안 구경까지 하고 돌아왔었다. 옛 집이 그대로 인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오는 길은 온 몸에 편안한 기운이 넘쳤다. 마치 그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어 한동안 기쁘게 생활할 수 있었다.

모천회귀(母川回歸)하는 물고기, 연어!
연어는 강에서 부화하여 치어 상태로 바다로 나아가 3-5년 동안 성장한 다음 수 천 개의 알을 품고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온다. 모천(母川)의 물줄기를 잊지 않고 수만리를 헤엄쳐 오는 연어는 정말이지 영험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재간이 없다. 그것도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온 몸으로 올라온다. 그리고는 어미의 강에 새로운 생명들을 부화시키고 나서 까맣게 타 죽어 떠내려간다고 한다. 물살을 가로 지르고 바위를 솟구치는 연어의 몸짓만큼 역동적인 장면이 있을까! 정말 살아있는 감동이다.

성장을 위한 변화는 순환이다.
연어는 태어난 곳에 다시 이르러서야 새 생명을 내려놓는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원래 태어난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진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후퇴가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생명활동의 본질이다. 우리는 변화하기 위해 자꾸 앞으로 앞으로만 나가려 한다.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날 것도 아닌데! 변화는 앞으로만 나아가는 직선적인 과정이 아니다. 변화는 돌고 돌면서 위로 가는 것이다. 현재의 자원을 품고 과거로 돌아갔을 때 내가 서 있는 위치는 과거의 그 자리가 아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X축의 좌표는 같지만 Y축의 좌표는 다른 상태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 머물러 통과할 때는 말할 수 없는 충만감과 사명감이 채워진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원래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냥 돌아가서는 안 된다. 연어처럼 알을 품고 돌아가야 한다.

회귀(回歸)냐! 퇴행(退行)이냐!
때로 힘이 들면 우리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자신을 지탱하는 것이 너무 힘들면 어머니 손을 놓기 전 그 시절로 돌아가 젖이라도 빨고 싶어 진다. 견디다 못해 자신이 붕괴되어 버리면 그때는 아예 어머니 자궁 속으로 들어가려고 기를 쓴다. 그것이 퇴행이다. 현재의 정신발달 이전의 단계로 돌아가 미숙함을 자처하며 한없이 보호받고 싶은 상태이다. 영화 박하사탕 주인공인 영호의 ‘나, 돌아갈래!’라는 외침이 바로 그것이다. 빈손으로 과거를 향해 후퇴하는 것이 퇴행이라면 회귀는 오늘을 사는 나의 자원과 지혜들을 알처럼 품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캄캄한 자궁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 퇴행이라면 내 안에서 태어난 생명들이 마음껏 헤엄치도록 자궁을 열어 놓는 것이 회귀이다.

태초의 나! 무한한 가능성의 나!
변화는 신대륙을 찾거나 미지의 우주를 탐사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는 모래바람에 뒤덮힌 잃어버린 나의 유적(꿈과 가능성)들을 다시 발굴해내는 작업이다. 그것이 과거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그 꿈을 꺼내어 먼지와 때를 닦아 보라! 빛나는 보석 같은 나의 진짜 모습이 나타난다. 씨앗처럼 모든 가능성을 품은 상처받지 않는 나를 만날 수 있다. 그 옆에 먼지 묻은 고서를 털어서 펼쳐보라! 원대한 바다로 나가 마음껏 헤엄치고 새로운 생명을 담고 오라는 나의 사명이 선명하게 쓰여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빈손으로 고향에 가면 낙향이지만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가면 귀향이다. 빈손으로 돌아가면 퇴행이지만 알을 품고 가면 회귀이다.

당신의 손에는 무엇이 들려 있습니까?


* 회귀라는 내용으로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제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유아 세례를 받았고 영세명 ‘요한’이 그대로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당에 잘 안 나간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저를 가엽게 보시며 항상 기도하십니다. 언젠가는 더 큰 은총을 받고 하느님의 품 안으로 회귀하리라는 믿음을 결코 내려 놓은신 적이 없습니다.

IP *.245.16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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