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자로
  • 조회 수 1901
  • 댓글 수 13
  • 추천 수 0
2006년 8월 27일 20시 35분 등록


울트라 마라톤

토요일 약속이 두 개나 겹쳤습니다.
꿈두레 안성모임과 강화 햄울트라마라톤이 그것이었습니다.
정작 당일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가 수업이 끝날 때쯤 마라톤을 뛰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꿈두레 모임에 가고 싶었지만 울트라마라톤에 의미를 부여한 나름대로의 뭔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꿈두레 멤버들도 보고 싶었고, 서포터즈로 참석하는 분들도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고쳐먹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마침 서울에 있어서 영등포역에서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버스에 타자마자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집니다. 은근히 가지 말걸 그랬나?
경기서북부 지역에 200m 가까운 비가 온다고 예보까지 했는데도 설마 했건만 눈앞에 내리는 비를 보고서도 믿기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버스는 출발하였고 마음과 달리 몸은 마라톤대회장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전날 대학원 입학식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 빡시게 책과 씨름해야 할 미래에 대해서 스스로 자축하고 싶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찐하게 한 잔 했을 겁니다. 주위 친구들과 부어라 마셔라 밤새 술과 함께 흥청망청 보냈을 그렇고 그런 축하보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마음어린 축하의식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울트라마라톤이 계획되어 있기에 이를 의식으로 삼고자 했지요.

그리고,
과거의 내 몸뚱아리와 작별하고 싶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의 회귀와 자기혁명을 위한 전면적인 싸움에서 저에게 힘을 실어주는 의식이고자 하였습니다.
단식이 어제와 오늘 사이의 단절을 꾀하는 계기라면, 이번 마라톤은 저에게 몸뚱아리와 잘못된 습관들로 점철해왔던 과거를 단절할 수 있는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완주는 그런 의미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미래를 그냥 놔두기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울트라 마라톤이라 하면 상식적으로 100km를 제한시간 15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저는 이번에 100km를 달린 것이 아니라 65km를 10시간 안에 완주하는 미니울트라에 도전하였습니다.
마라톤을 시작한지 1년 반 만에 별 연습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전 자체가 무모한 짓이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남들의 100km 울트라마라톤보다 더 심각한(?) 도전인 셈이었죠. 말이 65km지 160리를 쉬지 않고 밤새 달린다는 걸 생각해 보십시오?
호기롭게 뱉은 말보다 과연 끝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6:30 경에 강화에 도착해 클럽 회원들이랑 조인하였습니다.
이번 대회에 우리 클럽에서는 100km 4명, 65km 4명이 신청하였고 도중에 다리를 다친 100km 도전자 한 분을 제외하고 모두 7명이 참석하였습니다.
헤드램프, 야광등, 우의 등을 구입하고 발과 몸 구석구석에 바세린을 듬뿍 바르고 출발 준비를 하고 대회장으로 모였습니다. 배가 고플것에 대비해 영양갱 5개, 쵸콜렛 몇 개와 파워젤도 4개를 사고 물도 2병을 챙겼습니다. 벌써 배낭이 묵직해졌습니다.
700여명의 선수들과 500여명의 응원오신 분들로 강화문예회관은 가득 차 보였습니다. 어둠이 내릴 때 쯤 준비운동과 몸풀기를 하였고 기관장으로 소개된 몇 분의 축사를 듣고 드디어 출발지점에 섰습니다.

정각 8시에 출발신호가 울렸습니다. 100km 선수들이 먼저 출발하고 2진급인 우리들도 서서히 출발 칩을 밟고 대회장을 떠났습니다. 시내를 관통하는 약 5km 동안은 후덥지근한 지열과 서로간의 몸 열기로 인해 땀이 범벅이 되어 버립니다.
완연한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시내의 네온싸인과 강화에 사시는 분들의 격려 속에 벌써 5회째를 맞는 햄강화울트라마라톤의 명성이 헛되 보이지 않더라구요. 막바지 몇 가지의 미숙함만 뺀다면 준비과정의 꼼꼼함이 돋보였습니다.

울트라 마라톤을 준비하려면 적어도 2개월 전부터는 준비운동과 몸관리를 해야 합니다. 술, 담배는 물론이거니와 매 주 약 30km 정도의 언덕주 연습은 필수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완주는 보장할 수도 없거니와 무릎이나 몸의 어느 한 곳이 잘못되어 한 동안 고생해야 하는 부담도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막상 대회 당일까지도 운동이라곤 한 달에 두세 번 운동장에서 한 시간 정도 달리는 것과 집에서 러닝머신으로 걷기를 한 것이 고작이어서 여간 부담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왕 출발했으니 아자! 파이팅!

아니나 다를까 10km를 달리니까 몸에 이상신호가 옵니다. 같이 뛰던 클럽 회원 한 분은 페이스가 맞지 않게 되자 앞으로 달려 나갑니다. 나중에 보자는 인사와 함께. 그리고 나머지 우리 세 명은 20km 까지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다 제가 나중으로 처지고 말았습니다. 화장실이 급해 인근 슈퍼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동안 먼저 출발해 버린 거죠. 한 번 늦어지면 따라 붙기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헤드랜턴이 아니면 바로 앞의 길도 잘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밤이라 사람을 찾는다는 것도 힘들기도 하고 해서 따라 붙는 것을 포기하고 혼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강화도는 인천에서는 제일 큰 섬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제주도 거제도 다음으로 큰 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닷가를 달릴 때는 비릿한 바다냄새가 외지에서 온 손님을 맞이해 주었고, 해안선을 따라 길게 철책선이 쳐져 있는 것을 보면서 아직도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하였습니다. 군데 군데 조그만 배를 해안도로변에 올려놓고 전시를 하는 것을 보아 나름대로 관광을 위한 섬의 자발적인 노력도 엿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몽고와의 항쟁에서 근거지의 역할을 하였으며 대원군 시절 쇄국정책의 요충지이기도 하였던 강화는 강화도령으로 불리운 조선 철종의 고향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갈수록 힘이 부쳐 오는 것이 영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20km를 지나 클럽에서 응원오신 분이 차량으로 인사를 합니다. 멋지게 손을 들어 주었지만 40km 지점에서 만났다면 아마 포기하고 차에 탔을지도 모를 정도로 연습부족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29km 지점에서 간단한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밤톨만한 주먹밥과 미역냉국으로 허기를 때우고 옆의 어떤 분이 맨소래담을 바르길래 염치불구하고 빌려 양 무릎에 듬뿍 발랐습니다. 한 5km는 맨소래담 힘으로 갔나 봅니다.
약간의 휴식 후에 다시 출발해서 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엔가 아주 젊은 여성이 순식간에 지나쳐 갑니다. 배낭도 메지 않고 아래위 검정색 쫄반바지에 탱크탑을 입고는 아주 가볍게 뛰어갑니다. 아니 이런? 나도 질 수야 없지. 한 100m 따라 가다가 포기하고 다시 혼자 달리기 시작합니다.
아마 속으로는 같이 뛰고 싶었나 봅니다. 아주 괜찮은 맵씨의 여성달리미는 굉장히 섹시해 보이거든요. 운동중에 이런 차림의 분들을 가끔 보기는 하지만 오늘 밤은 솔직히 저렇게 잘 달리는 것 자체가 부럽습니다.

35km를 지날 즈음 드디어 몸이 지쳤습니다. 아예 달리는 것은 포기하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 참을 걷다 보니 어느 노인분이 신발끈을 고쳐 매길래 헤드랜턴으로 비쳐주고 같이 걸었습니다.
나이가 59세이고 김포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인데 인상이 좋아 보이는 분이었습니다. 일행이 앞으로 갔는지 뒤에 있는지 몰라 기다리면서 가시는 중이랍니다. 저도 식당을 하고 있노라 말씀드리고 이런 저런 얘기로 한참을 걸었습니다.
나주에 전화하라고 알려준 번호가 080-080-9987입니다. 이 사장님 덕분에 가장 힘들었던 길 중의 하나를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마음속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드디어 일행 분들이 뒤에서
IP *.118.67.80

프로필 이미지
미 탄
2006.08.27 20:40:38 *.81.21.72

자로님, 정확하게 동시에 글이 올라와서 깜짝 놀랐네요. 저는 겨우 오서산에 가서 한 시간 짜리 산책하고 왔는데, 대단하시구요.

우리 어릴 때 소풍갈 때면 빠지지 않던 양갱, 요즘도 옛날 생각하며 군것질하곤 하는데, 마라톤의 비상음식이군요.

성취의 기쁨, 기꺼이 축하드리구요. 푸욱 쉬세요~~
프로필 이미지
숲기원
2006.08.27 21:08:30 *.190.172.55
자로님 드디어 울트라마라톤까지 정복하셨군요.
그다음은 어디가 될지?
축하드려요.
상상하기 어려운 일,
꿈같은 일을 이루셨군요.
프로필 이미지
신재동
2006.08.27 21:12:14 *.142.141.28
안성에서 도착했는데 보이지 않으시 마라톤 뛰러 가셨구나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의 멋진 성취를 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심민정
2006.08.27 21:45:45 *.115.227.220
귀감이 되는 분이세요~~
프로필 이미지
승완
2006.08.27 22:39:44 *.147.17.40
노진 형,
잘 했다!
대단하다!
역시 자로다!
프로필 이미지
박노성
2006.08.28 07:38:07 *.75.11.83
도전할 생각조차 어려운 일을 망설임 끝에 뚝닥 성취해버린
그리고는 '나 해 냈어!' 라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로 공표(?)하고 자축하는 멋진 사나이 그 이름 노진!!
다음엔 또 어떤 일로 많은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를까 궁굼해진다.
축하한다!!!
그런데 하나 고쳐 도(주라의 경상도 버전)
59세가 노인이냐? 행님이지, 전국의 59세 행님들 일어나기 전에 고쳐라! ㅎㅎㅎ
프로필 이미지
황성일
2006.08.28 08:28:45 *.103.178.195
축하합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야간에 울트라 뜀을 하는군요.
자로님의 성공을 향한 질투와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에너지를 어떤 엔진으로 연소하느냐에 따라 삶의 코스와 결과물이 달라지겠죠? -거인생각
프로필 이미지
귀한자식
2006.08.28 09:24:54 *.145.125.146
그 새벽이라면...열심히 술먹고 라죽먹고 뻗어있을 때군요.
아~ㅈㅏ로님이 자랑스럽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꿈의 선장
2006.08.28 19:26:54 *.177.160.239
완주를 하셨다니.. 대단하시네요.
프로필 이미지
어당팔
2006.08.28 20:52:02 *.224.77.209
감탄!
존경!
부러움!
놀람!
할말을 잃음!
......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
프로필 이미지
아름다운놈
2006.08.28 23:56:23 *.128.8.231
자로님, 무서워요~
전생에 다물군이 아니셨을지...^^
프로필 이미지
원아이드잭
2006.08.29 00:08:34 *.140.145.80
원잭은 아직 자로님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자기자신다운 방법으로 앞으로 전진하고
있음은 알 것 같다..

이번 주말에 못뵌게 아쉬웠지만 이 정도의 멋진 사투를 벌이고
계셨다면 당근 감수해야겠지요.. 다음에 영화한편 보여드릴께요..^^
프로필 이미지
이준일
2006.08.31 15:27:58 *.46.159.38
저도 내일 개강하는데 마음을 준비하는 의식을 치러야겠어요!!

형님~ 존경&감탄!!!!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