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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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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9일 00시 25분 등록
“이건 또 뭐냐?”
“엄마,이건 설문진데 꼭 답해 줘야 해요.”
큰딸이 큰 책을 옆에다가 펼쳐두고는 뭔가를 열심히 베껴 적고 있었는데, 그것도 이건가 보다. 딸 것을 얼핏보니, 짤막하게 단답형으로 적어 두었다. 큰애가 내민 종이에는 질문이 가득하다. 옆에 있던 막내에게도 하나 써 달라고 조른다.
“넌 꼭 이상한거 가져와서 하라 그러더라. 내건 그냥 언니가 대신 써.” 나도 막내 딸네미랑 같은 생각이다.
“이거 꼭 자기가 답해야 하거든. 동사무소나 병원이나 어디 가서 서류 떼면 나오는 거 물어보는 거 아니야. 꼭 그 사람이 답해야 알 수 있는 거라서 그래. 그러니까 내가 물어볼 테니까 네가 답해. 그럼 내가 받아 적을께. 엄마두.”

“그래. 어디 보자.”
“이건 이 책을 쓴 사람이 자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고,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하는대, 이모의 일기장에서 당시에 유행했던 신상의 질문과 답변을 모아놓은 고백수첩이란 것을, 이걸 보고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아버지 인생이 어땠는지 생각해 봤대. 그리고, 이 책 쓴 사람은 이것 보면서, 아버지를 나타내는 일종의 묘비명도 될 수 있겠다 했지 뭐야. 그래서 나도..... 난 그냥 우리 가족들을 더 잘 알고 싶어서...... 언제 우리가 이런 거 얘기 해봤어야 말이지. 한번쯤 심심풀이로 해본다고 생각하고......”

심심풀이로 하기엔 큰애가 너무 열심히 졸랐다. 딸의 이야기를 듣기 전엔 그래도 설렁설렁 대충 답하면 되겠지 했는데, 그리고, 이건 꼭 나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고 하고, 묘비 어쩌고 하니 그냥하기엔 좀 무겁다. 좋아하는 것을 묻는 것 몇 개는 쓰겠는대, 몇 가지는 답하기 어렵다. 쓰다보니, 질문들이 내가 본 나라는 사람을 묻는 것들이다. 미덕? 남성관? 여성관, 그리고, 행복에 대해서. 내가 본 내 장단점, 기질들.

“언니, ‘어떻게 사는가?’라는 질문에 언닌 ‘쓸데없이 심각하게’라고 써.”
맞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도 큰 애는 너무 진지한 게 탈이다.

책 속의 이 아저씨는 참 많이도 답했다. 이사람은 가족들을 소중히 했겠고, 권투를 좋아했고, 그리고 자신이 보기에 기회를 잘 놓치는 좀 안풀리는 사람이었나 보다. 또, 먹고 살기는 힘들었고.

에구, 월간지에 심심풀이로 나온 걸 읽다가 답했다면 그냥 수월하게 답했을 것을. 정말이지 쓸데없이 심각한 딸네미 덕에 진지해진다.
휴우~ 조른 김에 한번 내게 묻고 답해보자. 내 생각과 인생을 묻는 질문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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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미덕: 강인한 체력.
여자의 미덕: 정절.
내가 생각하는 행복: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는 것.
내가 생각하는 불행: 불운
내가 제일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기회를 놓치는 것, 기회를 움켜쥐는 것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학문: 없음
같이 어울리고 싶은 모임은: 가족
가장 싫어하는 것은: 현대사회
좋아하는 작가/음악가: -
좋아하는 책과 악기: 피아노
좋아하는 소설의 주인공이나 역사상의 인물: 워릭 백작
좋아하는 색깔과 꽃: 장미
좋아하는 음식과 술: -
좋아하는 이름: -
좋아하는 운동: 권투
좋아하는 놀이: 브리지
어떻게 사는가?: 조용히
나의 기질과 성향: 빗나간 이상주의자, 몽상가
좌우명: 오늘 먹을 것이 있으면 충분하다. 조금 더 있으면 더 좋겠고.

<미완의 시대> 저자(에릭 홉스봄)의 아버지에 관한 부분을 옮겨 적은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거기에 맞춰 내 답도 단답형으로 했었다. 모두 대답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읽었을 때, 문제들의 무게가 느껴졌다. 앞에서 밝혔듯이 때로는 재미삼아 한 것에도 자신의 생각이 묻어나기도 한다. 인생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거기에 진지함을 더해 다른 질문들을 만들어 대체했다. 단답형이 아닌 질문들이다. 에릭 홉스봄의 이야기대로 죽음과 인생을 연결지어서 ‘자신의 묘비를 미리 써 둔다면?’이라는 아직은 답하고 싶지 않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싶은 질문과, 거기에서 출발한 조금은 짓궂은 다른 질문 ‘자신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질문은?’이다.

가족들의 생각을 더 잘 알고 싶다.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을,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 알고 싶다. 이들에겐 가볍게 재미삼아 하는 것으로 해서 묻고 싶다. 내게 한 질문이 아닌 좀더 가볍고 재미나게 질문을 바꾸어서 꿈에 대한 것도 하나 포함하고 싶다. ‘지금은 하지 못하는 데, 로또에 당첨된다면(경제적인 것이 제약이 안된다면) 꼭 하고 싶은 것은?’ ‘자신에게 꼭 물어봐 줬으면 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니, 앞의 20개의 질문은 각 분야에 걸친 정말 좋은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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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3.09 07:07:26 *.145.80.24
정화의 글을 나열하는 법이 많이 좋아졌다. 이렇게 자꾸 시도하면 자신의 내면의 실력이 표출되는 법이다.
그러나 더 쉽게, 한번 읽어 봄으로써 작가가 전달하려는 내용을 명학히 알수있도록 노력하거라.
현대의 독자는 깊은 내용을 알기 위해 두번 세번 읽지 않는다. 읽어 가다 공감을 얻지 못하면 덮어버린다. 오히려 유머감이 있어야 독자의 시선을 끄는 법이다. 쉬운 것이 진리이며 아름다운 것이다.
많은 발전에 찬사를 보낸다. 더욱 노력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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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2007.03.09 10:07:43 *.111.247.32
정화언니. 나두 고백수첩 읽으면서 내 답 달아봤지용..^^ 남자의 미덕과 여자의 미덕에는 잠시 발끈할뻔했지만.. 크크크.. 언니가 말한 질문들이 들어간다면 정말 더 좋겠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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