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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2일 21시 54분 등록
바깥에 나와 좀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근 들어 짧은 출장은 간혹 있었지만 열흘씩 되는 출장은 오랜만이다. 같이 간 이들과 처음에는 어색해서 좀 거리를 두었지만 이내 친해지고 허물없이 술잔을 나누게 되었다.
보기와는 달리 가끔 나는 사람들 앞에서 낯가림을 하는 편이다. 그건 아마도 혼자만의 리듬에 익숙해 있다가 갑자기 어디론가 튕겨나간 듯한 상황에 적응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고 특유의 점잖음이 잠시 발동하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도쿄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의 공장 도시라 저녁 먹을 곳도 변변치 않은데 우연히 발견한 한국 식당에서 이슬도 팔고 있는지라 저녁엔 한 잔씩 걸치면서 낮에 쌓였던 피로를 이런 저런 이야기로 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실험실에서 꼬박 일 주일 동안 기계만 가지고 씨름을 하다 보니 좀 진이 빠지긴 하지만 힘든 만큼 잔잔한 동료애도 생기면서 평소 보지 못했던 인간적인 부분들을 서로 발견하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서로의 사생활을 조금씩 엿보게 되는 재미도 있다. 이제 백일 지난 아이를 가진 아빠는 지쳐있다가도 아이를 떠 올리면 부쩍 수다스러워진다. 해외를 자주 다니는 책임자란 이는 일의 부담감에 마음이 무거운 듯 연신 술잔을 들이키고 그의 부하는 그나마 입장이 편한지 고개를 좌우로 길게 빼고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고 있다. 아이 아빠는 전화로 아이를 얼르니 녀석이 알아듣곤 웃고 있다고 해맑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집을 비울 때는 고양이에게 전화를 해 목소리를 들려주곤 했다. 그럼 녀석이 나를 찾아 방 안을 헤매더라는 돌봐주는 이의 말이다.

부슬부슬 계속 내리는 비에 봄꽃이 피어있음에도 체감온도가 영하에 가까웠다. 일본이니 만큼 따끈한 술이나 소주로 몸을 덥히면서 먹는 시간만큼은 일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동의하에 우리는 그저 세상 이야기나 일본과 한국에 관해 그러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곤 하는 데 요 며칠 부쩍 화제가 된 총기사건이 일본에서도 난리인지라 자주 화제에 올랐다. 버지니아 사건도 그렇지만 최근 일본에서도 총격사건이 두 건이나 일어나면서 온통 대화가 총기휴대 여부의 찬반과 범인에 관한 것들이다.

총격을 당한 사람들은 정말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그들의 창창한 미래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말았고 그 가족이나 주변사람들 또한 그들과의 미래를 단념해야 하니 그 아픔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리.. 그저 다들 좋은 곳에 갔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무리 선진 사회라 하더라도 먼저 사람이 제대로 성숙되어 있지 않다면 이런 엄청난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에 대해 사람이 사람다워야 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버지니아 대학의 추모식에서 희생자에게는 물론 범인에게도 성숙한 용서의 표현을 하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30여명 되는 사람을 죽인 이가 가졌을 외로움과 적개심을 끌어안는 가슴에서 그들의 저력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낀다. 마음이 경건해지는 대목이다.

사회가 발달하고 편리한 도구들이 많이 발전되면서 인간은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공동체 생활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얼마든지 혼자 살 수 있는 시대다. 삶을 영위하게 하는 최소한의 것들이 그다지 비용이 들지 않아도 얻어지고 커뮤니케이션 역시 앞에 앉아있는 체온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가상공간에서 누구와도 가능하다. 편리하게 자신을 여러 모습으로 변장시킬 수도 있고 그러다 마음에 안 들면 또 다른 가상의 공간으로 옮겨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간단하게 리셋 버튼 하나로 인간관계를 재구성 해 버리는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는 듯 하다.
가상의 공간이 어쩌다 현실로 연결 될 때 버튼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은 실제 인간관계의 번잡함을 감내하지 못하고 가상과 현실의 세계에서 괴리감을 느끼며 점점 “관계 맺기” 에서 퇴행되고 있지는 아닌지 헤아려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삶은 인터넷을 빼놓고 상상하기 힘들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오늘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인류의 탄생이래 가장 단시간에 커다란 변화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고하고 있다.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누구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힘들다고 한다. 사람도 그에 따라 변화해 가야 하는데 거꾸로 기계가 먼저 앞서가는 것은 아닌지,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은 즐거운 반면 첨단 기계의 오용으로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가끔 “미래사회” 하면 마치 오늘의 자신과 미래와의 사이에 한참 거리가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또한 미래의 비전에 관한 장밋빛 꿈이나 상상력은 가끔 무력한 이들을 주눅들게 하고 우울한 이들을 더 위축 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미래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축적한 또 하나의 오늘이며 그 결과에 불과하다.
먼 장래의 일이 아니다. 앞서가는 사람들이 만들고자 하는 내일은 보다 더 인간답고 품위 있는, 인간의 존엄을 위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하면 더 우리의 삶을 품격 있고 외롭지 않게 보낼 것인 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겁먹지 말자. 동참해서 즐겨보자. 미래란 즐기는 자, 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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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을 앞당겨 먼저 돌아 왔다. 매번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나는 거의 무거운 것을 들고 기내에 들어가지 않는다. 허리디스크가 있어서도 그렇지만 짐이 없으면 얼마나 움직이기 편한가. 수하물로 부치면 좋을 것을 바퀴가 달린 커다란 가방을 들고 와 그것을 짐칸에 올리는 것을 보면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만약 기체가 이상기류로 흔들리게 되면 그 충격으로 짐칸이 덜커덩 열리면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못돼서 승객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흉기로 돌변 할 수도 있음이다.

공장 근처의 호텔에서 서울 도착까지는 거의 하루가 걸리는 여정이다. 미래 생활사전을 열심히 읽고 신나는 상상에 젖어있는 동안 비행기는 인천 공항의 활주로에 무사히 도착했다. 잠시 창 밖을 바라보며 나른한 피곤에 젖어 있는데 성질 급한 승객들이 후닥닥 짐칸을 여는가 했더니 순간 어떤 상자가 미끄러지면서 나의 안면을 강타하고 말았다. “악!”하는 비명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오고 잠시 얼굴을 잡고 아픔에 눈물을 꾹 참았다. 졸지에 한 대 세게 맞은 기분, 가뜩이나 상태가 안 좋은 얼굴에 흉터까지 생기면 어쩌나 고민하며 그 와중에 내가 이렇게 해서 성형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는구나, 견적은 얼마나 나올려나 하다, 거울을 꺼내 요리조리 살펴보니 바늘에 살짝 찔린 것처럼 피가 한 방울 약하게 배어 나온 정도였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 이만하길 다행이다 했지만 이런저런 꿈을 꾸다 졸지에 일어난 사건, 마 액땜했다 치부하면서도 어쩌면 게으르고 꿈만 꾸는 내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구 저쩌구 혼자 잘난 척 했지만 결국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게 인생이구나 하며 쓴 웃음을 짓는다. 눈물 나게 아팠지만 미안하다는 사람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냥 삼 일 빨리 땡겨 왔으니 이 정도는 감수하자며 넘어가는 바이다.
IP *.48.4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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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4.23 02:38:06 *.70.72.121
돈 벌었네요. 성형 하기 시작하면 장난 아닐텐데..ㅋㅋ
피곤함 가운데 끝까지 손에 책을 놓지 않았을, 온통 이 과정에 몸과 마음 다 가있었을 (물론 일 열심히 하면서 ) 고생 많았스므니이다.

생각나서 하는 이야기인데 디스크 있다면서 피로해서 마사지시술 받을 때에는 주의 하는 것 잊지 말도록, 왜냐하면 금방은 시원하더라도 악화시킬 수 있음. 반드시 믿을 만한 곳 찾아서 차라리 카이로프래틱이나 침술 받는 편이 근본 치료에 다가갈 수 있음을 전하고 싶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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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4.23 04:18:42 *.167.112.35
내겐 두년의 딸이 일본에 있습니다. 그런데 걱정은 향인님처럽 노스탈리즘이 있어야 할 것인데, 일본이 고향보다 더 좋은것 같습니다. 그렇게 좋은 곳을 떨쳐내듯 돌아오는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사랑도하도, 글도쓰고, 돈도벌고, 또 무었을 바랄 것 인지?
너무 많은건 아닌지? 아참 多多益善의 표상이 이은남씨인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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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4.23 10:07:55 *.99.241.60
공간이동을 해서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멍이 들지는 않았겠지요

고생하셨고,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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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4.23 17:46:48 *.48.44.248
써니님, 잘 유념하지요. 고마워요.
초아샘, 25일날 뵙겠습니다.
영훈씨. 걱정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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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4.24 21:42:33 *.48.44.248
인애님, 그래요, 덕택에 우리도 이렇게 서로 인사하고 언젠가 만날날을 기대하게 되네요, 많은 사이트가 있지만 이곳이 좋은 이유는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제 인물들과의 교류라는 점이지요.
답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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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애
2007.04.25 13:08:32 *.92.200.65
은남연구원님 죄송.
글 읽다가 쓴글에 오타가 보여 수정한다는 것이 그만 삭제.

저도 오늘로 미래생활사전을 완독했습니다. 다음책으로 함께 이동해서 즐거운 나눔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은남연구원님의 글을 통해 연구원님들이 더 잘써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할수 있도록 성심껏 응원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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