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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일 17시 05분 등록
엘도라도로 꿈을 찾아

지난 주 2기 연구원을 광주로 초대하였다. 내가 광주로 내려온 지 꼭 4개월만이다. 2기 연구원들은 모두 8명이다. 모두를 초대하고 싶었고, 함께 어울리고 싶었다. 그리고 선생님을 모시고 그동안의 소회를 풀고 멋진 풍광 속에서 정겨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쉽게도 모두 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광주 근처인 지리산에서 집필활동을 마친 선생님을 무사히 우리 모임에 합류시킬 수 있었다.

계획은 이러했다. 우선 선생님을 비롯한 2기 연구원들에게 휴식시간을 제공하고 싶었다. 또한 꿈을 꿀 수 있는 장소를 보여주고 싶었다. 선생님은 바다를 좋아했다. 세상 모두를 받아들일 줄 아는 광활한 바다를 보면서 우리를 이끌 방향을 가늠하는 모습을 가끔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멋진 바다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해 완공되었다는 경치 좋고 최신시설을 갖춘 리조트를 하나 알게 되었다. 나는 사전에 이 리조트를 방문하기 위해 우리 팀 춘계체력단련 장소로 여기를 택했으며, 사전에 다녀올 수 있었다. 듣던 대로 가볼만한 장소였고, 선생님을 비롯해 모두가 좋아하리라는 판단이 섰다.

이제 선생님과 연구원들을 만나는 일만 남았다. 다행히 선생님은 광주에서 한 시간 남짓한 하동군 억양면 지리산 기슭에서 머물고 계셨다. 이미 언급 드린 바와 같이 선생님은 그곳에서 연구원들과 2박3일 집필활동을 진행 중이었다. 일행에는 2기 연구원들도 있었으며 그분들을 광주로 모시기 위해 지리산으로 향했다. 그곳은 전남을 지나 경남하동의 화개장터에서 다소 떨어진 조그만 쉼터였다. 이름은 ‘작은 영토’라 하였고 황토로 만든 집이라 토속적이면서 매우 친근해 보였다.

포항의 어당팔님으로부터 안내를 받아 집에 들어선 순간 선생님과 변화경영연구소의 미래석학들이 열심히 토론 중이었다. 저를 안내해준 어당팔님을 비롯해 1기의 오병곤, 홍승완, 2기의 한명석, 김귀자, 3기의 박승오 그리고 꿈벗 이은미(존칭은 생략)가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2박3일의 일정으로 연구원과 꿈벗들이 공저로 책을 만들기 위해 모인 자리다. 선생님은 이 책에 ‘나의 강점을 찾는 방법’을 담을 것이라 말씀하신다. 서로 다양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나의 강점을 찾는 방법’을 실례(實例)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맞는 ‘강점찾기 안내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과 상호피드백이 끝날 즈음 토속음식의 맛향이 우리 코를 자극했다. 이 집 사장님내외의 정성어린 손놀림으로 탄생한 먹거리였다. 맛이 기가 막혔다. 광주 음식 맛은 전국최고였지만 경남 하동집 안사장님(나는 그렇게 부르고 싶었고 그 분은 사실 전라도 출신이었다)의 맛자랑은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복분자를 몸에 싣고 맛향을 머금으며 서로를 소통했다. 하룻밤을 풀향과 차향을 벗삼아 몸의 피로를 녹였다. 안사장님의 차에 대한 철학을 듣는 동안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몰랐다. 흥겨운 밤이 그렇게 흘렀다. 정말 독특한 경험이었다.

미끈한 황토로 칠해진 따뜻한 방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 한 끼를 맛난 토속음식으로 때운 뒤 부득이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때 나는 무척 미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를 광주에 초대했어야 했는데 숙박이나 이동편이 여의치 못해 초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우 섭섭했을 것이다. 그러나 2기 연구원 모임이기에 이해해주리라 믿고 선생님과 함께 광주로 향했다.

우리는 여분의 시간을 활용해 잠시 구례의 사성암(四聖庵)에 들렸다. 사성암은 544년 백제 성왕 22년에 연기조사가 처음 세웠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하지 않다. 원래는 오산암이라고 불렀으나 이곳에서 연기조사,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 등이 수도하였다 하여 사성암(四聖庵)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암자는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유명한 마애여래입상이 마치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바위에 그려져 있었다. 전라남도는 1999년 7월 유형문화재 제 220호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사찰에는 금동으로 주조한 불상이 있건만 이곳은 벼랑의 암벽에 부처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 특이하다. 둘은 사성함 자체가 바위에 붙혀져 건축되었다는 점이다. 깎아지르듯 험준한 바위 옆에 커다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암자를 앉히니 그 모습이 가히 절경이다.

이곳에 오르면 섬진강이 한눈에 보이고 저 멀리 지리산이 안중을 점한다. 불현듯 날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행글라이더에 몸을 실고 가벼운 날개 짓으로 저 멀리 보이는 섬진강 물살위에 살포시 앉고 싶었다. 잠시 암벽을 돌아본 후 선생님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마애여래입상 앞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나는 우리가 꿈꿔온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앞으로 걸어갈 길에 장애가 있다면 거두어주실 것을 소원했다. 아마 모두가 나와 비슷한 내용을 기원했을 것이다. 저 멀리 아래서 불어오는 시원한 강바람과 뒤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산바람을 내 가슴에 담으며 우리는 바쁜 발걸음을 광주로 향했다.

광주에서는 경빈, 미영, 소정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광주역에서 조우하여 우리의 목적지인 엘도라도리조트로 방향을 잡았다. 엘도라도리조트는 남해안 관광벨트사업의 일환이자 휴양타운 조성사업으로 증도라는 섬에 건설된 보기 드문 휴양지였다. 광주에서 차량으로 2시간가량 소요되었으며 현재는 육지나 다름없는 지도와 사옥도라는 섬을 지나 배로 10분가량 이동한 후 약 15분 정도 차로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었다. 작년 7월 개장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나는 지난 4월 팀원과 함께한 후 두 번째 찾게 된 곳이다.

이곳은 21개동의 팬션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팬션 어느 곳에서도 시원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우리는 1층 한 곳에 모두를 채웠다. 이 방 역시 넓은 바다를 바라다볼 수 있어 좋았다. 바다는 바라는 곳이기도 하고 받아주는 곳이기도 하였으며 바라보는 곳이기도 했다. 바다에 오면 무엇인가를 바라볼 수 있다. 먼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고 바다위를 나는 갈매기와 멀리 떠있는 섬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점점 커가는 태양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떨어지는 붉은 해를 볼 수 있어 좋다. 앞으로 다가올 밤에 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바다에 오면 바라는 바를 속삭이며 내면으로 승화시킨다. 바다를 보면서 내가 무엇이 될 것인가를 되새기고 미래의 나를 그려 본다. 그리고 그 모습이 어느 시점에 반드시 성공되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이 휴식의 장소는 창조적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누군가는 꿈을 이루리라고 기도한다. 누군가는 어제의 목표를 내일에 이루기를 바랄 것이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아내와 이곳에 머물 것을 약속한다. 누군가는 연인과 함께하기를 빌 것이다. 누군가는 가족 모두가 여기 있기를 고대한다. 누군가는 모든 사람에게 지속적 변화를 갈망할 것이다. 그렇게 바다는 바라는 모든 이와 함께 한다. 무안한 가능성이 바다로 향한다.

그러면서 바다는 버려지고 씻겨지고 흘러내린 세상의 부적응자 모두를 받아준다. 육지의 원치 않은 싸움에서 패배의 쓴 잔을 맛보았다 할지라도 기꺼이 그들을 수용한다. 그리고 그들을 깨끗이 정화한다. 바다가 짠 이유가 그래서인가. 고요한 바다는 없다. 수많은 잔물결과 파도를 통해 세태에 찌든 때를 씻어 내린다. 그리고 그들을 또다시 육지로 되돌려 준다. 고기가 되어 돌려주고, 바다풀이 되어 돌려준다. 심지어 소금마저 돌려준다. 언제나 바다는 육지의 부족을 받아주면서도 늘 우리에게 대가를 지불한다. 그래서 인간은 바다를 좋아하고 바다를 찾는지 모른다.

우리는 바다에서 돌려준 회로 저녁을 대신했다. 포도주가 오가고 복분자로 잔대보며 소주로 목을 데웠다. 얼큰한 분위기가 선생님을 자극했다. 나가자는 우렁찬 목소리가 우리 모두를 바닷가로 밀었다. 긴 모래사장은 좋은 놀이공간이었다. 모처럼 어린애처럼 떠들고 노래하고 싸웠다(닭쌈). 어떤 때는 차가운 바닷물에 지친 발을 담그기도 했다. 나는 그토록 진지하게 바다를 즐기는 선생님을 본 적이 없다. 일전에 연구원 모임에서 바다를 등지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생생하다. 지금은 너희들이 바다를 바라보지만 언젠가는 너희들이 바다가 되어야 한다.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주는 소통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을 통해 소통의 공간을 창조한다. 글의 바다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것이 우리의 꿈인지 모른다. 그러다가 고기도 낡게 되고 조개도 줍게 되고 게도 잡게 된다. 그것이 작가로 가는 길이다.

어둠이 우리 공간을 찾아올 즈음 서쪽에 빛나는 별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름 모를 그 별에 대해 호칭하기 시작했고 무명의 그 별은 서극성(西極星)이라 명명됐다. 분명 빛나는 별이건만 북쪽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잔돌림이 빨라지면서 노랫가락이 흘렀고 흥겨움이 더해갔다. 어떤 때는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면서 눕기도 했다. 무슨 생각들을 하였을까. 나는 그 때 드러누워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보았다. 도시의 찌든 때와 먼지로 인하여 별들 보기가 만만치 않던 차 모처럼 별다운 별들을 볼 수 있었다. 별은 나의 소박한 꿈이기도 하다. 나는 언제 저 별처럼 빛날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어둠을 거두어주는 대역을 맡을까. 만약 내가 별이 된다면 해만큼이야 못하지만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부여할 만한 가치는 비추어주지 않겠는가. 별들의 조그만 빛을 쐬며 우리는 그렇게 밤의 기운에 몸을 맡겼다. 저편에서 바다의 합주곡이 들렸다. 시원한 파도소리의 합창이었다.

다음날 곤한 몸을 일으켜 해변가를 걸었다. 선생님과 경빈이 사라진 후였다. 3㎞에 가까운 해변가를 거닐면서 여러개의 발자국을 볼 수 있었다. 발자국의 모양이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뚜렷했다. 어떤 사람은 앞으로 깊이 패여 있었다. 어떤 사람은 뒷꿈치가 깊었다. 어떤 사람은 발자국자체가 희미했다. 사람은 발자국을 남기길 원한다. 그러나 여기에 남긴 발자국은 언젠가 지워질 발자국이다. 우리는 그 발자국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챙기고 엘도라도를 떠났다. 그리고 담양으로 행했다.

이미 담양은 사전 답사를 한 곳이기에 선생님을 비롯한 연구원들을 안내하기가 수월했다. 메타스콰이어 가로수길을 거쳐 담양호에서 맛있는 매운탕으로 요기를 하고 죽녹원을 들러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광주역에 도착했다. 광주역에서 선생님을 비롯한 연구원들과 석별했다. 입찰구에서 마지막 배낭끈이 사라질 때까지 모두를 바라보았다. 헤어짐이란 가벼운 것이 아닌가보다. 왠지 허전했다. 혹여나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것이라도 있었던가. 좀 더 잘해줄 수는 없었던가. 그러나 우리는 또다시 만난다. 서로를 이해하고 너그럽게 넘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더욱이 한마음 한 뜻으로 뭉친 사람들이기에 부족함이 문제없다. 나는 우리 모임에서 늘 그것이 좋았다.

엘도라도는 황금도시로 불린다. 황금은 부의 원천이지만 우리를 어둡게 하기도 한다. 우리를 게으르게 할 수도 있다. 자만심과 허영심을 불러올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엘도라도는 또 다른 꿈의 도시이다. 황금이 아니라 꿈을 찾기 위해 모인 도시다. 선생님의 꿈이 하나하나 현실이 되듯이 우리 연구원의 꿈이 실현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그리고 언젠가 성취된 꿈들에 대해 모두 야기기하길 원했다. 그렇게 길지 않은 1박2일의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동안 멀고도 힘든 여정이지만 흔쾌히 동참해주신 선생님과 우리 2기 연구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꿈과 끈으로 이어진 변화경영연구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 본다.
IP *.18.19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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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6.03 07:47:26 *.209.121.44
이번 여행의 발견은 '짱뚱어'였지요. 그토록 날렵한 군무를 보여주면서도, 코 앞에 떨어지는 '짱돌'을 감각하지 못하는 특이한 괴물... ^^ 밤바다에서의 어울림은, 내 인생에 장면 하나를 추가하는 순간이었지요. 언제나 여유있게 베푸는 명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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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철
2007.06.03 20:41:54 *.86.104.114
안녕하세요? 12기 꿈틀투몽 진동철입니다.
댓글로서는 불쑥 생뚱맞겠지만, 서쪽 하늘에서 보셨다는, 멋지게 이름붙이신 '서극성'에 눈이 가네요..^^ 선배님들께서 보신 '별'은 '별'이 아니구요. 행성이었을 거로 생각됩니다. 행성 중에서도 아주아주 유명한 '금성'이었을 거에요. 밤하늘에서 그렇게까지 밝게 빛나는 '별'은 없지요... 겨울철에 보이는 '시리우스'가 가장 밝은 별입지요...
이번주 모임에서 뵐 수 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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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7.06.05 10:44:35 *.149.20.193
정말 엘도라도 였어요.
마음껏 노래부르고, 마음껏 걷고, 마음껏 놀고, 마음껏 자고...ㅎㅎ
명수님 덕에 황홀한 시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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