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백산
  • 조회 수 1613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07년 6월 5일 12시 02분 등록
현장르뽀 3

현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아는가?

타인의 칼럼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논란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누군가가 항의하듯 질문하는 내용에 대한 답변을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내가 칼럼에 대한 다른 견해를 갖더라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면 주제가 다름아닌 ‘다름’에 대한 포용을 이니까,





‘다름’ 대한 포용을

“요즘은 젊은이들을 보면 말하다가도 멈춥니다. 나이 덜 먹은 게 특권인 세상. 늙은 건 모조리 없어져야 한다는 젊은이들에게 행복은 나이 적은 순서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더군요. 그리고 세월에 장사가 없다는 말을 알게 될 즈음에 후회하면 너무 늦는다는 걸 젊은이들은 모르더군요.”인터넷의 게시판에서 올려진 어느 나이 든 독자의 안타까움이다.


=> 요즈음 젊은이들에 대해서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들은 과거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들의 사고는 우리 기성세대 혹은 나이 든 세대를 모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도덕성이나 경노사상이 사라진 것은 우리가 그것을 무시하고 이기와 맹목과 편견으로 일방 통행했기 때문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라는 노래를 부르던 것이 노래에 그치지 않고 행동과 사상과 삶 전체에 반영된 것이 요즈음의 젊은 세대다.
미래가 암울한 것은... 돈 쓰고 일하지 않는 젊은 세대들이 만든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만약에 우리들 나이든 세대 중 누군가의 자식이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반성을 해보아야 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한 말처럼 우리 자신들은 행동하고 있었는지?
“내 가족, 내 직장, 내 꿈” 이라는 이유로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개인적으로야 ‘정치는 덧없다’고 생각하지만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면 무척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언젠가 힐러리 상원의원의 자서전에서 읽었던 한 문장이 생각난다.왜, 정치를 하는가. 그는 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빌려 “다른 놈들이 우리를 멋대로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치도 결국 한 국민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기는 힘들다.


=> 우리만큼 정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우리만큼 정치에 목숨을 걸고 고개숙이는 사람을 나는 본적이 없다.
우리 만큼 공무원의 무사안일을 탓하고 전시행정을 탓하면서 9 급 공무원이 될려고 고시공부하듯 학원을 다니는 사람들은 무언가?
공무원과 정치가 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법이 그래서,,, ”
“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
이 둘은 재량권에 의해서 개인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온정주의”로 사용되거나 “덕석몰이”가 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프랑스인 친구가 그랬다.
“ 한국은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
경쟁에 내 몰려보지 않은 그들은 말도 안되는 연공서열에 눈치보느라고 힘들다고 말하거나 '제 소관이 아닌데요' 라고 말할 때 열 받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노량진 어느 학원에서 공익에 대한 사명감과 양심을 가르치기는 하는가?
그래도 세금은 갈수록 늘어만 간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숙고(熟考)하기보다는 즉흥성이, 개별적 사고보다는 집단적 사고가 보편적인 것으로 자리를 잡는 사회에서는 정치가들은 민중주의 즉, 포퓰리즘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민중주의가 화려하게 꽃을 피울 수 있는 좋은 토양이 되었다.
이런 토양을 무시하고 정치가들에게 ‘정도를 걸어가라’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한 요구일 것이다.
소설가 복거일씨는 ‘민중주의를 막아내는 길’이란 책에서 민중주의의 특징을 이렇게 말한다.
“민중주의는 사회적 문제들을 대하는 단순주의적(simplistic) 태도와 접근 방식을 가리킨다.
실제로 단순주의는 민중주의의 가장 중심적이고 두드러진 특질이다.단순주의는 ‘어떤 일의 한 측면만 고려해서 모든 다른 요소들과 측면들을 배제하는 경향’을 뜻한다.

그래서 민중주의는 어떤 문제가 놓인 사회적 맥락을 보지 못하고 문제 자체에만 눈길을 주며, 자연히 그 문제의 원인들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을 가능성을, 즉 그것이 실은 보다 깊은 사회적 문제들의 증상일 가능성을 고려하는 적이 드물다.”하지만 이를 걱정하고 우려하는 사람들은 항상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정권을 잡는 것이 목적인 정치가들은 민중들이 큰 관심을 가진 문제들에 주목해 간단 명료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그런 해법을 갖고 접근하여 표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 안 방에서는 보수주의자 였다가 행랑채로 옮기게 되면 개혁주의자가 되고 마당에 내몰리면 급진주의자가 된다고 한다.
인맥과 연고로 철옹성이 된 제도권은 능력과 성실함은 책임과 의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출세와 권위를 위한 가장 명분 있는 도구다. 조직화될 수 없는 대중은 억눌린 온당치 못함에 참던 울분은 가진 자들이 흘리는 미끼에 발화되어 광분한다. 우리는 그것은 민중주의로 잘못알고 있다.
형식과 조직과 체계로 무장한 제도권의 편의주의의 방패를 뚫을만한 창을 대중은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대중은 길거리로 나가 돌맹이만큼의 가치밖에 없는 목숨이라는 마지막 남은 돌팔매질을 한다.
본질적으로 민중은 단순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목숨을 건 몸부림을 책망하는 제도권은 그 광기로 휘두르는 몸부림을 준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더 악랄한 것은 목숨을 건 몸부림을 부추켜 제도권들이 내부의 편싸움을 한다는 것이다.



한 사회가 성숙한다는 것, 발전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다름에 대한 관용에 있다. 서로가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지만, 그 주장이 다를 수 있음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타인의 주장에 경청할 수 있을 때 한 사회는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기대를 걸었던 젊은 세대들의 경우도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상대방에게 야유와 욕설을 하고 익명성 뒤로 숨어버리고 만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역사는 흘러갈 것이다.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서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나누어서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내다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민중주의의 부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땅에서 민중주의의 앞날에 대한 복거일씨의 견해는 한국 사회의 앞날에 무척 시사적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민중주의를 막아내는 일은 겹으로 힘들다.원래 민중주의가 큰 호소력을 지닌 데다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세고 목청이 높은 세대들이 민중주의를 따른다.
반면에 다수에게 호소력이 큰 민중주의적 접근에 담긴 논리적·사실적 오류들을 지적하고 민중주의적 처방이 불러올 문제들을 드러내는 일은 보답이 그리 크지 않고, 으레 도덕적 고지를 선점한 민중주의자들로부터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한다는 비난을 받는다.”조금만 찬찬히 되돌아보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하지만 한 사회의 진로란 거대한 유조선이 나가는 것과 같다.
진행방향을 되돌리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낮다.
결국 비용을 지불하고 배우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의 본성은 고통을 토해 내는 것이지 타자로부터 해결받기 위한 것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외침에 불을 당기는 것은 ‘관용’ ‘책임’ ‘양심’ 같은 것을 글자나 논리로만 아는 제도권의 출세욕과 야심에 찬 책동이 배후에 있다.
알고 있지 않은가? 민중이라는 거대한 유조선의 조타실에는 단지 몇 사람만 있을 뿐이고 그들이 모든 권한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댓가로 존경받고 대접받고 호사했다는 것을...

그 증거는 건전한 민중주의는 항상 따돌림 당하며 굶주리기 때문이다.

테레사 수녀님이 끝까지 반대하던 조직이나 단체의 결성의 이유가 그 때문이다.
조직이나 제도라는 것이 원래 태생 자체가 본질과 초기의 결속력이 사라지는 것에 대체해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탁월한자에게 체계가 필요없듯이 강을 건넌 사람에게 배가 필요없듯이 진실한 사람에게는 어떤 것도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형편없는 인간들이 연공서열과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제도권이라는 것을 오염시켰다, 그러니 제도권의 우행을 탓할 수 없는 것처럼 민중주의의 단순함에 대해서도 책망을 해서는 안 된다. 그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합당하겠다.

젊은이들이 몰려다니는 것은 돈벌이에 눈이 먼 어른들의 미끼에 유혹된 것이고 젊은이들의 시건방진 태도는 올바로 본보기를 보이지 못한 어른들의 형편없는 태도 때문이다.

어른들이여! 세태를 한탄하지 말고 당신 한몸이나 정직하게 살지어다.

도는 도라고 말하지 않는다.
관용을 베푸는 사람은 자신이 관용을 베풀고 있는지 모른다.
일류는 일등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겸손해지기 위한 겸손은 없다.

내가 아는 어떤 정직한 공무원은 한직에서 세상탓 안하고
좋은일 많이 한다.
IP *.46.151.24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06.06 02:12:00 *.70.72.121
낮에 어떤 친구가 <꼿>이 뭐냐고 물어왔습니다. 답장을 보내기를 너처럼 나무도 아닌 것이 꽃도 못되는 것이 선 채로 꼿꼿한 모양 아니겠냐고 보내고 나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강원지방의 방언으로 꽃과 같은 말이라고 쓰였더군요. 꼿꼿한 글을 보게 되니 꼿= 꽃 생각이 나서요.^^

저는 어렵거나 귀찮은 일은 나이 먹은 사람들이 해결해 주기를 당연 바라는 똑똑하고 현명하며 자기 몫 잘 챙기는 젊은 이들 보면 겁납니다.
저도 완전 비껴갈 수는 없는 가운데서... 아마도 어르신들은 영악한 이런 모습에 당혹해 하실 것입니다.

앞으로는 더욱 더 공무원들에 대한 처우가 더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인재들을 기업에 뺏긴 것이 대체적 현실입니다. 물론 그러하겠지만 그래도 사기업에 비해 공기업이 먼저 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사명감도 찾고 책임의식도 양심도 더 꼿꼿하게 지켜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 늘 대기업이나 몇몇 사기업에서 먼저 설쳐야 합니까.
공무원은 개인의 이익에 앞서 공익을 전제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보다 나은 의식 함양을 위해 처우도 그 만큼 좋아야 한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그 의식의 수준을 수험생이나 지도하는 사설학원에서 감당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수용한 그 집단에서 당연 큰 소리쳐가며 가르치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낙하선 인사는 그러하지 못하겠지요?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파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답답하면서도 우물을 파지 않은 채 맥을 놓거나 세상을 한탄하는 모습이 더 문제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차피 잘난 놈(?)들은 무엇을 해도 잘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 몫을 챙기고 봅니다. 문제는 어영부영 눈 뜨고도 코를 베어버리고 마는 다수가 있다는 사실이고, 이들은 힘을 모으지 않고는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막무가내식 쪽수를 채워 밀어부치는 그런 따위의 몰지각과 무지막지한 내달음을 선동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정작 노력해야 할 사람들이 노력하지 않는 모습이 더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 대목도 저 역시 비껴가지 못할 것입니다만.

어느 유명하고 터프하신 목사님과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을 만나 그 자신 별로 넉넉치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이를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봉사활동을 참 열심히 하시는 군요.> 라고 인사를 건넸다가 제가 오히려 창피했습니다. 왜냐면 그분께서 봉사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것을 위에서 아래로 베풀기나 하듯 한 그 용어가 싫다> 합당치 않다는 그분의 말씀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어려운 형편에 그들을 돕겠다는 생각에서 멀쩡한 새 것을 버리는 사람들이 많기에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수거한 물건들을 수리해서 필요한 것을 가져다 주고는 했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오래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며 남에게 무엇을 줄 때에는 헌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면서 새 것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내가 조금 허름한 것을 쓰더라도 역시 남에게 주는 것은 새 것이어야 한다는 지론을 얻게 되시어 당신의 용돈의 1/10로 적으나마 새 것으로 도우려고 노력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아, 그래서 저는 오늘 또 새삼스레 우리의 COREANITY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남에게 주는 것은 꼭꼭 싸매고 아껴두었던 것을 주시던 우리 어른들의 근본적 사람 섬김과 나눔의 정신이 절대 틀린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지금은 양이 아닌 질의 시대인데 많은 것을 주는 것보다 원하는 좋은 것을 돕는 것이 비록 적더라도 옳은 일 같다는 경험은 귀중한 일깨움 이었습니다. 그 분 말씀이 트렌드가 있는데- 그것은 모두에게 해당 되는 것이지- 없다고 늘 못난 것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하는 말씀 같았고 옳은 의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입장을 바꿔보면 그저 끄덕여 지는 말씀아니겠습니까? 네게 소중한 것을 내게 주었을 때 진정으로 고마운 것이지 실컷 다 쓰고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쓰레기치우듯 내놓으며 생색이나 내면 역겹지 않겠습니까.

도를 깨우치기 전에는 도를 도라 가르치고 올바로 알도록 교육하는 것이 정도일 것입니다. 스승님께서 어려우나 그러한 가운데도 저희를 모은 것은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늘 바르고 옳은 것을 취하려 애쓰시는 글을 올려주심에 생각해 보게 됩니다. 토를 단 것은 반박하려 함이 아니라- 실상 글을 쓰기보다 반론이 더 쉽듯이 - 토론적 분위기와 더 나은 모색을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저의 의견이기도 하고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7.06.06 22:24:35 *.75.166.113
언젠가 토플을 공부하는 학생을 보았는데
영어실력을 늘리기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는 토플 영어 시험점수를 높이기 위해 점수따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시험이 개인의 능력을 변별해내기 위해 있는 것인데
공부를 하는 사람은 능력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변별하는 방법을 학습하고 시험에 통과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물론 기회를 얻고 실천을 하기 위해서는 요령이 필요하지만 그 기교나 재주가 사람의 심성을 키워주지는 않는 것같습니다.
아니면 아주 미미하든지...

재능이 있는 것과 올바로 쓰는 것은 다르다고
스승님은 공자님의 공직에 있었던 실예를 인용해
언급하신적이 있습니다.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행정과 교육은 국민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그들이 조금은 더 공익이라는 말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말의
참된 의미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머리로가 아니고 마음과 함께 행동을 통해 실천으로 ...

그래서 그런말이 안 나왔으면 합니다.
"세상이 그래서,,, 어쩔수없어서요..."

옳고 그름, 정과 사를 함부로 논해서는 안되겠지만
그것들을 지키고 가리려고 하는 이유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질과 공존이라는 보다 더 잘 더불어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라면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하여 가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과정이 정과 사와 옮고 그름을 분별하는 기준을 마련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사용자와 고용자 사이에 놓여서 한 때 엄청난 딜레머에 빠졌었습니다. 각자의 입장을 중재하려는 노력은 단기적인 뗌방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과 상처을 얻었습니다.

최근의 나의 생각은 누구의 입장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입장에서
이야기합니다. 동일한 목적과 함께 맞이하고 있는 상황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방법을 스스로 재고할만한 가치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상당히 좋았거든요...

젊은 세대가 어떻다는 것은 우리의 입장일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고 앞으로의 그 세상을 살아갈 그들의
생각이 어떤가를 알려고 할 뿐입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있으므로 또 우리가 그들을 가르쳤으므로
그들의 말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의 문제를 그들을 통해서 발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깃발아래 모이는 자는 반드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거..
깃발의 의도가 퇴색하지 않기 위해서 지켜야할 것들이 있다는거...

국가라는 깃발,
그 깃발아래 모여 선도를 하여야 할 공무원이라면 ....
더욱 그래야 하지 않을까싶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7.06.06 22:47:42 *.75.166.113
써니님! 잊어서 죄송합니다.
깊은 생각을 담은 댓글에 감사드림니다.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06.07 09:28:45 *.75.15.205
꿈벗모임 주관하여 준비하고 도우시느라 바쁘게 애쓰고 계시지요? 보이지 않는 숨은 노력들 때문에 저희가 좋은 자리 얻어 만남과 상생의 기회를 갖게 됩니다. 공연히 벌써부터 다음 기수 때 어떻해야 할까 걱정이 된답니다. 그저 마음만...
모쪼록 잘 해 주시고 또 저희에게 많이 알려 주시기바랍니다. ^^

일전에 전체를 아우르며 노사가 함께하는 현장 같은 분위기, 또 보다 적극적으로 함께 잘 살기 운동본부 같은 노력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감동 받고 있습니다. 모쪼록 훌륭한 사업 펼치시고 사례들을 열어 보여주시면 더 많이 깨닫고 용기가져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스승님 말씀을 이 공간에서는 그대로 체험해 나가는 것이 참 귀한 만남이 아니겠는지요. 배움을 실천해 나가는 선배들의 모습 언제나 가장 큰 감동이고 변.경.연 최고의 강점임을... 그래서 저는 늘 떨린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