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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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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26일 08시 16분 등록
산과 바다의 기도

김남조님의 산문집 [이브의 천형]중에서



저희 영혼에 기름을 부어 주소서

젊고 청청한 자연의 맥동이 이 마음에 울려 퍼짐을 감사하나이다.

이때에 귀한 향유 적시이게 하옵소서

첫겨울 찡한 냉기 속에 눈시럽게 짙푸른 소나무숲을,

태고에서 오늘까지 우렁우렁 파도치는 바다를,

억천만 번이나 대양에서 솟아오른 산호빛 햇덩이를 예찬하게 하옵소서.

건강하고 확실한 대자연의 맥박에게 저의 모든 감관으로 응답하옵나이다.

오묘한 이 리듬에 폐부 속속들이 감동하옵나이다.

천지 만물의 조물주시여,

진실로 대자연을 찬미하나이다. 이 모두를 지으신 당신을 아득히 우러러뵈옵나이다.

감사드리나이다. 하오나 무량한 아름다움을 어찌 다 섬기오리까.

저희 작은 마음으로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깊고 까마득 높으나이다.

만물의 창조주시여,

아름다움이야말로 무섭게 심각한 충격이나이다.

아울러 막중한 음미의 넘치는 일거리옵나이다.

미와 그 진실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겠는 때에는 망연자실,

그냥그냥 서 있게 하여 주소서.

두 손을 드리우고 천천히 눈물짓게 하여 주소서.

음악의 도취 같은 감미로운 부담이 헐거운 포옹으로

안아 주게 하옵시고 증류수보다 새벽이슬보다 깨끗한 수분으로

저의 전심전령을 축여 적시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라오니 지난날이 모든 메마름도 이에 용서받고자 하옵나이다.

전능하신 창조주시여,

지금 저희는 의지 없는 심정이옵나이다.

가슴속의 공동을 깨닫나이다.

아무것도 먹어 보지 못한 위장이듯 심히 배고프나이다.

한 번도 위로받지 못하고 한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처럼

얼얼한 추위가 영혼의 높고 낮은 골짜기마다 스산히 바람 부나이다.

과장 없는 여심으로 아뢰옵거니 이 시간엔 생각나는 사람 하나 없나이다.

그럴 리 없다고 외치면서 정작으로 누구도 기억나지 않나이다.

이토록의 조요함에선, 이토록의 청명함에선, 이 밖의 다른 도리가 없다고 이르시겠나이까.

조물주신 어른이시여,

간청하오니 저희가 당신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바람에 풀어 말씀하심과 파도 소리로써

분부하심을 모두 해석하게 하여 주소서.

말씀의 색조와 채광까지도 눈으로 고루 보게 하여 주소서.

가려져 꽃피는 식물처럼 구름 너머 반짝이는 별들처럼 현신(顯身)이야 있건 없건

꽃핌과 빛남의 내밀한 충족을 살펴 내게 하여 주소서.

상처를 입은 심장이라 하더라도 다시금 치료하여 새생명을 기르게 하여 주소서.

소망하고 인내하여 이윽고 풍요에 나아가게 하여 주소서.

가만히 입속말로 부를 소중한 이름들을 부디 마음깊이 가꾸게 하여 주소서.



태양은 이제 뜨겁지 않나이다. 거대한 사막에 밤이오듯이 사납던 열기는 식어지고

냉쾌한 온도의 편하고 온화함이 충만하나이다. 대기라 이름 하는 청결하고 싸한 촉감의 바다......

위대하 조물주시여,

태양은 뜨겁지 않고 알맞게 따스하옵니다. 하옵기에 햇빛을 피하는 이는 아무도 없사옵고

챙이 넓은 모자나 암회색의 선글라스를 쓴 사람도 없사옵니다.

그늘을 찾아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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