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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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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8일 12시 11분 등록

이 동네에서 그녀는 20년 넘게 살았습니다. 예전에는 신대방동에서 20여 년을 살다가 그곳이 재개발을 한다기에 이리로 이사를 오게 되었지요. 그녀는 이곳에 이사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지역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그녀의 주장은 강남 쪽으로 가자고 하는 것이었지만 그녀의 가족 중 아무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곳에 가면 먹고 살기 힘들 것이라며 지레 겁을 먹고 서민들이 득시글하게 들러붙어 사는 이곳을 교통과 시장이 가깝고 주변에 학교가 있어 손자들 키우기에 편리하다고 판단하여 이사를 한 것이었습니다. 새로 지은 집을 그녀의 어머니와 큰 오라비가 함께 다니며 계약을 했더랬지요. 그러니까 막내인 그녀가 20대 후반에 들어설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아비는 오랜 공직생활자 이었어요. 밖의 일은 사명감을 다해 헌신하는 양반이지만 가정 살림은 전혀 무관심해 보이기만 하는 흔한 말로 밥이 끓는지 죽이 되는지도 전혀 모를 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채로 무난히 정년퇴임까지 임기를 마치고 그 퇴직금을 가지고 이래저래 보태고 꾸어가며 마련한 집이었지요.

담벼락엔 작은 화단이 붙어있는 대지 50평에 미니 삼층으로서 아래층은 반 지하로 지은 집이지요.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언제가 비가 많이 온 해에 이집 지하로 물이 스며드는 바람에 난장판이 된 적도 있었답니다. 애시부터 마음에는 별반 차지 않은 집이었지만 그래도 코너에 위치해 몫이 괜찮다고 장만을 한 후 살아보니 허술하기 짝이 없어 왕년에 손수 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어 더욱 꼼꼼한 그녀의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순전히 날림으로 지어 팔았다고 의심이 되는 그런 집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해마다 집수리에 골병이 들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어제는 외출해 들어오며 언뜻 돌아보니 남의 집 담장 더럽힐 새라 괴팍한 그녀의 어미가 모과나무의 곁가지들을 몽창 끊어내어 볼품없이 몸통만 덩그마니 버티고 선 그 나무를 부드럽게 감싸듯 타고 올라가는 잎사귀들이 보였지요.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길게 늘어져 매달려 있는 것이 콩잎사귀와 줄기였어요. 몇 개나 따겠다고 그것까지 심었나 하고 그녀 모친의 억척스러움에 웃음이 다 나기도 했지요. 이왕에 둘러보는 김에 화단을 두루 살펴보니 이름 모를 보랏빛 꽃들이 잔잔히 피어있기도 하고 벌건 열매가 달려 있는 나무며 한껏 흐드러졌다가 시들어가는 장미 등등 여기 저기 온통 저마다의 얼굴로 환하게 내밀며 즐겁게 활짝 피어들 있네요. 요즘 이 집의 작은 화단은 초록이 빽빽하게 들어차 작은 숲이 연상될 정도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늘상 힘들다고 하면서도 하루 종일 그녀의 어미가 옥상에서 화단으로 위아래를 수 없이 반복해서 오르내리며 물을 주고 가꾸어가는 꽃과 열매들이니까요.

화단과 옥상에 만들어놓은 텃밭이 있어 조용한 이들의 집안에는 언제나 대식구들로 왁자지껄 할 때처럼 할일들이 가득 밀려있고 마치 사람 사는 일과도 같이 화단도 꽤나 시끌벅적 하지요. 그녀의 어미는 힘에 부쳐하며 해마다 내년에는 절대 안한다고 늘 다짐을 하고는 때가되면 화단과 옥상을 밭 삼아 친구 삼아 오르내리기 일쑤랍니다. 대가족을 돌보듯 힘들어 하면서도 정성스레 가꾸는 그녀 어머니가 가꾸는 화단과 옥상에 꾸며놓은 밭은 한 집안의 울타리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식들과도 같이 몹시 애착이 가는 일인가 봅니다. 눈만 뜨면 달려가는 곳이 이들에게 이니까요. 어떨 때는 마치 어린 아가의 뒤집기나 걸음마라도 보듯 신기해하며 “이것 좀 보거라. 얼마나 예쁜지 아느냐?” 고 자랑을 하며 신기하다고 흡족해 하시지요. 손수 가꾸신 농산물을 자식 대하듯 기뻐하며 감탄을 멈추지 않는 모습이 여간 밝지 않답니다. 도시 생활의 빡빡함 가운데 낮 동안의 시름을 잊고 시원하고 훈훈한 저녁풍경을 자아내기도 하는 즐거운 광경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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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
2008.07.09 16:00:12 *.75.127.219
써니언니의 글은 폭포수처럼 숨가프게 돌아갑니다.
쓰라린 경험을 떨쳐내시느라 몸부림치시는 것을 옆에서
보는듯합니다.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골이 깊으면
산 또한 높지않고 못배기겠지요.
크게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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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7.15 15:00:15 *.244.220.254
지난주 주말 사부님의 댁에 처음으로 가보았습니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북한산 풍광이 유혹적이었습니다.
누님의 거처도 여름 들꽃처럼 수수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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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7.15 19:10:35 *.36.210.11
이수형아, 이제는 마음 놓으시고 대빵으로써 팍팍 지원하기로 나서셨나 보네요. 한다리 걸치니 좋아요~ ㅎㅎㅎ


거암, 소원풀이 하셨구먼. 잘 하시었네. 그나저나 사부님깨서는 이 더위에 괜찮으신 겐지. 맨날 미루며 안부 전화도 넣지 못하고서리 있었구먼.

우리가 새겨놓은 팻말 보셨지? 예쁘지? 부럽지롱. 씨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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