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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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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2일 10시 38분 등록


기억 하나.

 중학교 1학년 때, 미국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라 미국 큰아버지 댁에 어학연수 차 잠시 보내졌다. 어학원은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해 아시아계 학생들이 무척 많았는데, 일본과 중국계 학생들은 그들끼리 한자어로 필담을 나누며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서예학원에 다니고 한자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들이 쓰는 글자를 다 알아보지 못하고 한자로 대화를 나눌 수 없었던 나는 무척 놀랐다.

기억 둘.

 서른 살,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 교환학생으로 체류한 유럽에서의 경험은 나의 혼란을 부추겼다. 한국 사회에서 가졌던 조금의 기득권도 다 벗겨졌다. 한국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프랑스의 명문 학교에 다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프랑스어도 제대로 못 하는, 한낱 아시아 여성일 뿐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내가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겉모습만 동양인일 뿐, 알고 있는 지식의 기반도, 종교도, 그에 따른 생활양식도 동양의 것이 아니었다. 외모는 동양인이지만 동양의 사상, 유교와 도교와 불교의 차이를 깔끔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창피한 일이지만 중국인과 일본인, 한국인이 어떻게 다른지 명쾌하게 분류하기도 너무 어려웠다. 외국에 나가서야,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들에 내가 얼마나 무신경하게 살아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파고든 서양의 문명과 종교가 유럽인들에 비길 수 있느냐, 그것도 물론 아니었다. 한국에선 열심한 가톨릭 신자처럼 보이는 나이지만, 전세계에서 가톨릭을 가장 먼저 국교로 받아들인 프랑스인들의 뿌리깊은 신앙보다 훨씬 미약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매주 미사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수많은 성인과 가톨릭 교회의 전통을 뼛속 깊이 이해하고 있는 그들 앞에서 동양의 열심한 신자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비록 짧은 체류였지만 위에서 언급한 외국에서의 경험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끊임없이 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동양의 것에 아주 무관심하지는 않았다고 자부해왔기에 충격이 더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 지리산 청학동에서 옛날 방식으로 배우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었고, 템플스테이 체험 기사를 쓰겠다고 자원해 일부러 절에 찾아가기도 했다. 고전읽기 프로젝트를 스스로 계획해 논어와 장자, 대학 등도 읽었는데, 체계적이지는 않았으나 어렸을 때부터 익숙했던 것들이 이 안에 있었구나 하는 느낌 정도는 가졌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불교의 맥과 선의 영향, 도교와 유교 등과의 결부 등에는 무지했다. 절박했다면 미리 체계적인 공부에 착수했을 텐데, 동양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우리 시대의 흐름 탓을 하기엔 나의 노력이 부족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선의 황금시대>에서 따끔하게 지적된 바와 같이 동서양의 활기찬 종합은 동양 것을 소화해 역수출하고 있는 서양에서 먼저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항상 결론은 ‘지금부터라도 잘하자’고 맺게 되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한 살이라도 젊은 지금부터라도 시작할 마음을 먹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글자를 알고 읽을 시간이 있으니 스스로 공부해나가면 되고, 그간 체계적이지 못했던 독서의 문제는 길잡이가 될 좋은 책을 찾아서 읽으면 해결될 문제다. 나의 의지만 굳건하다면, 나는 반쪽 짜리 동양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양 사상에 대한 공부는, 이번 독서를 통해서 조금 맛보았듯이 나의 신앙과 생활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도와줄 것으로 확신한다.


 프랑스의 떼제(taize) 공동체는 종파를 초월한 그리스도교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범신론이나 만신전은 아니지만, 형식만 다를 뿐 같은 진리를 추구하는 동서양 종교의 수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하는 모습을 꿈꾸어 본다. 어쩌면 종합병원마다 마련된 ‘기도실’이 그 좋은 모델이 될지도 모르겠다. 종교 간 갈등으로 폭력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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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2 10:50:37 *.8.27.5
아인 님의 지적에 자신 있게 한 발 앞으로 나설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완전하지는 않아도 '노력하는 동양인'은 되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어제, 오늘 컬럼을 통해 얻은 자극이 만만치 않네요. 두통이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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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2 14:25:41 *.255.182.40
제가 외국생활하면서 느꼈던 것과 참 비슷하네요.
전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얘네들은 영어가 모국어니까 그거 배우는데 시간 안쓰는데
우리는 그거 배우는데 쓰는 시간만도 얼만지...그런거 생각하니까 엄청 억울하더라고요.
어쨋든 동양인으로서 우리 스스로를 서구인들보다 모른다는 건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잘하자"에 강한 동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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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
2009.03.06 22:28:48 *.232.219.144
아, 어쩌면 지금 읽고 있는 제국의 미래와도 조금 관련이 있는 듯 하네요.
제 정체성에 대해 저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하고, 끝까지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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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6 12:01:26 *.43.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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