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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 조회 수 2706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0년 1월 17일 23시 22분 등록
 

?


언제 시를 쓰세요?

-내가 시인임을 잊었을 때


어디서 시를 쓰세요?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왜 자꾸 이사 다니세요?

-왜 한곳에 계속 살아야 하지?


같이 사는 사람이 있나요?

-지난날의 수많은 나, 그리고 미래의 나와 더불어


왜 혼자 식사하나요?

-남들과 어울리면 음식의 맛을 모르니까


무슨 재미로 혼자 마셔요?

-술 마시는 재미로


누구와 자느냐고

그들은 내게 감히 묻지 않았다


- 최영미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 중에서



나는 요즘 누구와 자나? -지난날의 수많은 나, 그리고 미래의 나와 더불어

그래서, 짜증난다. 잠까지 나와 자야하다니. 남편은 도대체 어디에 쓰는 이름이란 말인가.

결혼 몇 년차인지는 양손가락 꽉 차게 헤아리고는 잊혀졌다. 그냥 아주 오래됐단 느낌.

몰론 사랑은 변한다. 그러니 이미 물 건너간, 잊혀진지 오래인, 열정적인 사랑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명색이 ‘부부’인데. 해님달님 전래동화 속 오누이도 아니고.


회식이다 모임이다 남편보다 내 약속이 더 많아진 요즘, 남편은 집에서 아이들과 저녁을 함께 하는 날이 많아졌다. 손에서 김치냄새, 마늘냄새가 떠나질 않는다는 남편. 자기가 여자란다. 오누이도 모자라 자매가 될 판이다. 사랑이 이렇게 변하다니.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행복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행복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 메네데모스)


요즘 내게 남편은, 개코딱지다!

나는, 사랑이 고프다. 이걸 개코딱지한테 전달할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머잖아 해결해야 할, 이성애자로서의, 사랑하고픈, 나의 고민이다.


***


어느새


사랑이 어떻게 오는지

나는 잊었다


노동과 휴식을 바느질하듯 촘촘히 이어붙인 24시간을

내게 남겨진 하루하루를 건조한 직설법으로 살며

꿈꾸는 자의 은유를 사치라 여겼다.

고목에 매달린 늙은 매미의 마지막 울음도

생활에 바쁜 귀는 쓸어담지 못했다 여름이 가도록

무심코 눈에 밟힌 신록이 얼마나 청청한지,

눈을 뜨고도 나는 보지 못했다.

유리병 안에서 허망하게 시드는 꽃들을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의식주에 충실한 짐승으로

노래를 잊고 낭만을 지우고

심심한 밤에도 일기를 쓰지 않았다


어느 날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

비스듬히 쳐다볼 때까지


- 최영미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 중에서




IP *.210.111.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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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3 23:59:28 *.148.134.54
"오누이도 모자라 자매가 될판..."에서 빵 터졌네요
글빨...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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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2010.06.02 12:28:10 *.9.79.211
실장님~ 감솨~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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