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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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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30일 01시 38분 등록
 


나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잘하는 것이 있다. 공부? 아니다. 전교 등수 손가락 안에서 노는 친구들, 뼛속 깊이 부러워했다. (그때 그 친구들은 어디에서 뭘 하며 살까?) 나는 그 대신 아주 많이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운동? 역시 아니다.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취미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무지 존경한다. 운전도 운동신경인지 면허증만 고이 간직하고 있다. 내가 정말로 잘하는 건, 바로 ‘술’과 ‘잠’이다.


술 얘긴 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잠. 쉽게 잠이 드는 편은 아니지만 한번 잠에 빠지면 거의 기절상태다. 가끔은 꿈도 기억하지 못한다(꾼 것 같긴 한데). 혼자서도 잘 자고 남편이 옆에서 팔베개 해주면 더 잘 잔다. 같이 자면 따스한 체온을 온몸으로 나누며 입꼬리가 잔뜩 올라간 채로 잠이 든다. 남편이 팔베개를 해주는 날은 사이가 좋은 날이기 때문이다. 잠이 든 후엔? 모른다. 남편 얘기로는 만세를 하고 잔다고 한다.


그리고 술. 이건 진짜 정말 죽인다. 술고래 남편도 맘만 먹으면 이긴다. 밤새 마시고 담날 또 마시는 나를 기특하게 생각한 적도 있다. 것두 여러 번이나. 술자리에서의 내 정신력은 완전 짱이다. 물론 맘을 먹으면 그렇단 얘기다. 맘을 다르게 먹으면, 예를 들어 ‘오늘은 그냥 취해야지’ 그러면 바로 취해주기도 한다. 내 맘대로 되는 건, '맥심 커피믹스'만이 아닌 것이다. 이걸 노력했느냐. 전혀 아니다. 그냥 저절로 잘하는 것이다. 울아빠 유전자, 만만세!


그러니까 결론은, 난 취하는 걸 잘한다. 술에 취하고 잠에 취하고.
요즘은 꿈에 취했다나 뭐라나. 그래서 자주 휘청거린다. 끄억!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더 결론은, 난 ‘꿈’도 잘하고 싶다.
대신 노력할거다. 저절로 잘하게 될 때까지.


내 꿈은 00(비밀!)이다.


***


저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습니다. 술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요? 들어보십시오.

만취하도록 술을 마시려면 하룻밤이 다 가버립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만취는 반드시 숙취를 가져오고, 그 숙취는 다음 날 꼬박 하루를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숙취 또한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글을 쓸 컨디션이 되려면 머릿속이 투명하게 맑아야 하고 몸에 가뿐하게 탄력이 붙어야 하는데, 그리 되려면 또 하루가 꼬박 없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한 번 술을 마시는 데 며칠이 없어졌지요?


이 세상의 모든 노동은 치열할 것을 요구할 뿐 감상적 기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노동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로 행ㆍ불행이 갈립니다.

저는 숨이 막히는 노동의 세월을 ‘글감옥’이라고 표현했고, 그 노동을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작가’라는 직업으로 평생을 살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그 숨 막히는 노동을 견딜 자신이 없으면 작가 되기를 원치 마십시오.


글을 쓰다 보면 뜻대로 될 때보다는 안 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작가들은 그 고통에 부딪칠 때면 잠시 머리를 쉬기 위해 곧잘 술을 마십니다. 제가 그런 고통 앞에서 술 마시는 방법을 채택하지 않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술이 결코 그 고민을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못된 버릇일수록 빨리 습관이 되듯이 그 고민을 자꾸 피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버리기 때문이고,

셋째, 앞에서 말한 대로 술로 아까운 시간을 탕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술은 문학적 고민을 풀 수 없고, 술로 풀리는 고민은 문학적 고민일 수 없다’

저는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을 쓰는 20년 동안 술을 한 번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 조정래 작가 생활 사십 년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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