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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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신화란 무엇인가]
결국 나는 이 지구에 놀러왔다. 신나고 재미나게 놀다갈 일이다.
17살 때, 새로 부임해 온 젊은 신부가 신방-일종의 가정방문-을 나왔다. 왜 성당에 나오지 않는지를 물었다. 약간 찔리기도 하고, 겁이 나긴 했지만,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모든 것을 신이 정하셨고, 저의 운명 또한 그런 것이라면, 제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제가 왜 이러는지를 운명을 정하신 분께 되묻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성당에 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젊은 신부는 아무 말 없이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내 얼굴만 붉어졌던 기억이 있다.
‘신이 누구이며, 있는 지 없는 지. 자신의 운명을 믿을 것인지 신이 정하신 뜻을 구할 것인지.’ 사실 이런 화두는 중년을 갓 시작한 내 또래 나이에 인기 있는 화제는 아니다. 이미 사춘기 때 졸업논문으로 제출했어야 하는 주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막상 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화두 삼는다는 일이 새삼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편으로 마흔 두 살, 남들이 흔히 말하는 ‘마흔앓이’를 홍역처럼 앓았고, 지난 1년여 동안 끊임없이 괴롭혀 왔던 주제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여전히 나는 이 화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
마치 홍수가 지난 다음 한바탕 흙탕물이 일고, 다시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차분하게 생각의 편린들이 재조합되는 느낌, 그렇게 만난 사람이 Joseph Campbell이다. 한 장 한 장 그가 삶을 통해 겪어낸 경험들을 통해 이끌어 내는 이야기는 책을 읽는다고 하기 보다는, 벽난로 앞에 앉아 할아버지로부터 인생 상담을 듣는 기분이었다. ‘신화’라는 매우 추상적인 주제임에도 깊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몸으로 부딪치며, 아프고, 상처받고, 다시 치유하며 살아온 삶 속 경험들을 구체적인 소재들로 투영시켜 내는 남다른 내공 때문이리라.
또 다른 느낌은 책을 읽는 내내 어느 종교(영지주의)의 기본 교리서를 읽고 입문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궤적을 따라 내가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책의 글귀들과 문장을 통해 소통을 위한 접속의 불꽃들이 일었다. 개인의 삶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Joseph 그를 통해 그리고 그를 있게 한 이전의 많은 삶들과 무한 연결되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가슴 벅차게 했다. 더 이상 외롭고 두렵지 않을 수 있을 거 같다. 또한 겸손할 일이다. 자신만의 아픔인양 유난 떨지 않고서도 품어 안고 살 수 있을 듯하다.
그렇게 목메어 찾아 헤매던 파랑새는 집에 있었고, 신은 내 안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두운 숲 속으로 나섰던 그날의 선택과 길을 잃고서 두려움에 떨던 그 날들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불혹의 나이를 살아갈 것이고, 한 십년 쯤 후 또 다시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이 되기 위해 집을 나서야 할 때가 된다 하더라도 기꺼이 배낭꾸리는 일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신은 내 안에 있었고, 이제 내게 남은 일은 신과 더불어 껴안고 춤을 추는 일이다.
말에 귀가 멀고, 보이는 것에 눈이 현혹되면 심장소리를 듣지 못한다. 지금도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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