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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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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7일 06시 44분 등록

내안의 신화찾기 2

 

바람이었으니.... 바람처럼

자신의 소원을 바람에 맡겨본 적이 있는가

그 해 가을, 오후

도서관 앞 햇볕이 참 좋았다

살갗을 타고 넘는 바람은 늘 그렇게 좋았다

바람처럼 살았으면...

 

바람은 눈도 없고, 손도 없고,

발도 없다. 귀도 없고, 말도 없다.

몸만 있다. 불어가다가 부딪혀야 되면,

온 몸으로 부딪히고, 옆으로 비켜 흐르고

잠시라도 머물지 않는다.

머물면, 멈춰 서면 바람이 아니다.

갇히면, 숨조차 쉬지 못하면 죽고 만다.

그 바람에 나를 맡겨 본다.

내 바람들을...

 

오늘 새벽에는 아직 새소리를 듣지 못했다.

끄덕..끄덕.., 꾸역..꾸역..소리를 내며 고개를 넘는 시계소리가 들리고,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촛불이 빠지직하고 타들어 가는 소리

볼펜이 종이 위를 새기고 지나가는 소리

마흔이 넘었는데, 신마담, 어제도 밤을 샜냐고 묻는 상현이 목소리...

커피가 먹고 싶다.

 

모처럼 단잠을 자고 일어났다.

4시 16분, 딱 좋은 시간이다.

명상을 하고, 글을 짓기에 더 없이 좋은 시간이다.

지난 저녁 남겨진 커피를 반 모금 마셨다.

 

1. 고래뱃속

제페토 영감이 촛불을 켜고 청숭맞게 앉아 있다. 제 손으로 깍아 지었지만, 제 맘처럼 되지 않는, 아들 피노키오 생각을 하면서, 고래 뱃속에 앉아 있다.

 

2. 오줌이 마렵다

재크가 어서... 빨리... 거인의 손에 잡히지 말아야 할텐데...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잡고 있는 콩나무를 통해 그가 점전 더 가까이 따라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내 뒷덜미를 낚아 챌 것만 같다.

엄마, 엄마를 불러

빨리, 빨리 도끼를 꺼내

콩나무를 베어야지, 빨리...

거인이 내려오기 전에..

어서, 어서 재크

 

3. 씨앗에 물을 주고 있다

수세미(모양은 호박씨를 닮았지만, 색깍은 짙은 커피색을 하고 있는)

이 수세미도 재크의 콩나무처럼 하늘까지 자라줄까?

시앗대신 동전을 묻고 심으면

주렁주렁 동전이 열리는 나무가 될까?

암소 한 마리를 통째로 씨앗과 바꾼 바보, 재크

여우의 말에 속아 몇 잎 남지않은 금화를 송두리째 땅에 묻고

물을 줬던 피노키오.

 

4. 나는 두꺼비다

항아리 열린 하늘로

물을 끼어 부을 때만 잠깐씩 보이는

그녀, 참 예쁘다

내가 사람이었으면

멋진 왕자라도 되었다면

그래도 난 행복하다

깨진 구멍만 막고 앉아

물벼락만 맞고 있지만 그래도 난 행복하다

그녀가 붓는 물벼락이니까

그녀가 행복해질테니까...

 

5. 이번에는 호랑이다

시암터 옆 가지 끝에 매달린 오누이의 기도가 간절하다

“엄마, 엄마... 우리 어떡해야 돼?”

떡도 먹고, 엄마도 집어 삼키고

저 놈의 호랑이는 도대체 얼마를 더 집어 삼켜야만 배가 부른다지.

“엄마... 엄마...”

하늘에서 내린 동아줄...

동생 먼저... 그리고 감싸안 듯

꼬옥, 놓치면 안 돼.. 알았지? (끄덕끄덕)

 
(요 대목에서 잠깐..울컥했다.. 젠장)

-수수대에 묻은 피는 썩은 동아줄 잡고 따라오던 호랑이가 떨어져 죽은 피란다.

 

6. 선녀들 목욕하는 것이야

침, 꼴깍 넘어가는 일이지

꼭 어떻게 해보겠다는 심산은 아니지만,

이 좁은 바위틈, 다리가 저리지만... 상관없다.

침만 꼴깍, 꼴깍

증말로 환장하겠다.

확- 해버릴 수도 없고...

침만, 침만 꼴깍...


7. 고작 1년에 한번만이라니.

세상에 그런게 어딨어.

얼마나.. 뭘.. 잘못했다고

소치는 일이야.. 지들이 알아서도 잘 먹는데...

옷짓는 일이야.. 좀 춥게 지내면 어때서...

 

사랑도 그런 것인가 보다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그래야 오래오래 행복해질 수 있단다

1년에 한 번이지만,

지금도 걔들 안 헤어지고 살잖아?

 

8. 꼭 세 가지만 말해야 돼?

그냥 소원주머니를 통째로 주면 안 돼?

왜 맨날, 세 가지 소원이야..

고민 되게.

 

9. 누가 그러더군

로미오와 줄리엣, 그 얘들이 살았으면

세익스피어, 아마 땅을 치고 후회했을 걸.

생각해 봐, 뭐 먹고 살아?

할 줄 아는게 뭐가 있어? 농사를 지어봤어.

장사를 해봤어. 허담때 식모를 살아봤어?

님만 보고 살 수 없는 것이고,

달보고 지은 시는 누가 빵으로 바꿔준데?

덥석 얘라도 생겨봐

수술비, 입원비, 치료비... 분유값, 장난감

너라면 노름판 안끼고 싶겠냐?

줄리엣? 그 꼴 보고 살 수 있었을까?

아마 걔들 3년만 살아보라고 했으면

이혼하고, 지발로들 기어서 집으로 들어왔을 것여...

 

(맞겠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았겠다.

폼나게 사랑하다. 죽는 게... 니들 참 부럽다)

IP *.186.57.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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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4.28 02:40:31 *.36.210.38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 다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뎄어. 살아있다고 항시 살 줄 알어?
살아도 죽은 자는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무언지 몰라.
만날 네모나케 울고 세모나케 억울해 하고 뾰족하게 궁시렁댈 뿐이지.               - 저승의 로미오와 줄리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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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2010.04.28 10:36:37 *.36.210.38
그 눈
맞아야 하는데...
팔팔 살아있을 때
펄펄 흩날리는
눈비 꽃비 사랑비에 흠벅 젖어야 하는데



사랑 그거
별거 아니야
그대가 자신을 먼저
강물에 띠우며 바다에 던지며
스스로에게 징하게 미치면 돼



사랑하자 사랑하자
눈처럼 고운
꽃비 사랑비에 실컷 젖어보자
얄궂은 사월
사무치게 그리운 꽃비 사랑비 저만치 멀어지기 전에     (그토록 살고싶었던 줄리엣과 로미오의 짧은 환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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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4.28 08:04:18 *.186.57.251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려는데,
우두두둑
비섞인 바람에
라일락이 진다
우두두두둑
맨 땅바닥에 목숨덩어리들이
떨어진다
분홍빛 사월이...

누나...
마당에 누놔...
연분홍 꽃눈들이.

내게도 사랑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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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10.04.29 11:43:44 *.72.153.59
그대는 아직 바람이 아니군.
그대는 바람을 맞는 사람이야.

'선생님 음陰과 양陽이 무엇입니까?'
'나는 음과 양을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말해줄 수 있지.'
'선생님 양은 어디에서 옵니까?'
'따뜻한 바람은 남쪽에서 불어 오느니라.'


한의사 김홍경님의 한의학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바람은 무엇이고, 바람은 어디에서 옵니까?
당신에게로 따뜻한 바람이 불어갑니다. 그것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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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4.29 20:43:34 *.154.57.140
그것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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