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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2일 07시 03분 등록
2010.5.12.
약속

'1. 발 쿵궁거리는거
 2. 때쓰는거
 3. 문 쾅닫는거
    안할꺼예요

 4. 소리지르지 않기
 5. 말 잘 듣기
 6. 손 옷에 닦지 않기
 7. 똑바로 앉아서 밥먹기
 8. 코딱지 파먹지 않기'

이것은 최근 3~4일 동안의 큰아이(6세)와의 실갱이 흔적이다.
나는 며칠 내내 맘이 좋지 않았다. 아이에게 화내고는 나 혼자서 맘 아파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며칠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와락 쏟아질 것 같았다.
잠자기, 일어나기, 밥먹기, 씻기,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기...등등의 아이가 지켜주었으면 하는 일상적인 생활 규칙들을 무시하고 자기고집을 부릴 때마다 어떻게 이 아이에게 삶에는 지켜야 할 약속들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지 난감했다.

처음에는 분명 비폭력 대화원칙에 입각하여 접근하였다.
"지은아, 네가 이러이러한 행동을 하면 엄마는 저러저러해서 힘들단다. 네가 요러요러해주면 정말 좋겠는데, 그렇게 해줄래?"
그러나, 아이는 나의 진지함과 정성과 달리 매우 장난스러웠다. 내 말에 집중하지 않았고 들리는지 마는지 제 할 일을 계속 했고, 느물거리며 도망다니기 일쑤였다. 더구나 바로 방금 전에 철썩같이 약속을 하고도 번번이 '뻔뻔하게 반복되는' 약속 위반에 화가 나버렸다. 
'아무리 아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수십번, 골백번 같은 얘기를 하는데도 무시할 수 있는가?'
그동안 참아왔던 것들이 일순한 한꺼번에 폭발해버렸다. 나는 불같은 화를 퍼부었다.
이 녀석이 분명 버릇이 잘못 든게야. 단단히 고쳐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감정이 격해진 나는 목소리 하이소프라토 톤으로 올라갔고, 사랑의 매가 아닌 화풀이가 분명한 매질을 했다.
아이는 그제서야 내 말에 주목했다. 놀래고 겁먹은 눈으로 동그랗게 나를 응시했다.
눈물이 났다. 아이가 원망스러워졌다.
'아이야, 아이야. 왜 엄마를 이 모양으로 흉하게 만드니? 왜 나와 네가 이렇게 아파야 하니. 도대체 왜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하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네가 달라질 수 있겠니...."
"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내 맘속에서 자꾸 그렇게 하라고 그래요.
약속한 걸 자꾸 까먹어요"
아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멍하니 아이를 바라봤다. 아! 내가 아직 너무 어린 아이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건가? 
혼란스러워진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잠시 망연자실해졌다.  아이는 멍한 나를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쳐다보는 듯 하더니, 참으로 아이답게 지루함을 느끼는지 발을 꼼지락거리고 손을 만지작거리고 입으로는 흥얼흥얼 노랫가락도 흘러나온다. 입가에 실소가 머금어졌다.. 아.. 요녀석 봐라... 나는 이렇게 맘이 복잡한데..저는 벌써 아무렇지도 않네...헐~~
감정을 추스리고 아이에게 제안했다.
"그러면, 벽에다 써서 붙여놓고 잊어버리지 말자"
아이가 종이를 가져와 삐뚤빼뚤하게 글씨를 썼다. 나는 거실에서 아이 눈에 잘 띄는 문갑에다 종이를 붙이게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몇 번 읽게 했다. 그 날의 격전을 그렇게 일단락을 지었다. 잠이 든 아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며 잠들었다.

아이의 약속 리스트는 하루가 지날때마다 늘어나 벌써 8개가 되었다.
약속 리스트가 효험이 있냐고 누가 묻는다면, 글쎄..."쬐금 있긴 하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이가 약간 흥분했을때는 효험이 있다. 하지만 아이 본인이 무지하게 화가나고 흥분했을 때는 소용이 없다. 발을 쾅쾅구르고 소리지르면서 제 주장을 할 때는 약속 종이를 말해도 소용없다
"저거 다 거짓말이야!"
아이는 종이를 가르키며 자신의 약속을 부정해버린다. 그래도 감정을 가라앉힌 후, 가서 다시 보고 읽으라고 하면 읽는다. 제 녀석도 이게 제 손으로 쓴 약속이고 그래서 지켜야한다는 것은 인정하는 눈치이다. 비록 스스로 절제가 안되어서 실행이 잘 안될 뿐이다.

아이와의 실갱이 덕분에 새로 구입하고도 읽기를 시작하지 못했던 '비폭력 대화(마셜B.로젠버그/바오)'를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읽는데 귓볼이 화끈거렸다. 나의 일상의 폭력적인 대화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아이에게 절대로 화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물론 나 역시 아이처럼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저나 나나 피장파장인가보다. 하지만 나도 아이처럼 매일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아이야, 너와 내가 함께 조금씩 크는 구나, 아이야, 사랑하는 내 아이야'

 

IP *.187.148.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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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5.12 23:47:59 *.108.80.129
직장일 하는 엄마가 참 힘들겠다 싶다가
코딱지 파먹지 않기...에서 웃음이 절로 나오네요.
몇 가지 일이 겹쳐 다운된 것 같은데,
슬기롭고 자연스럽게  잘 헤쳐나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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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건친구
2010.05.13 21:18:09 *.120.80.243
한선생님의 말씀이 참 따뜻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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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5.14 23:33:09 *.20.49.115

어린아이에게 '... 하지 않기'는 효과가 거의 없습니다.
인지발달이 초기 상태라 논리적 사고나 추론등을 잘 못합니다.  아니 그 나이라면 거의 못합니다.

그냥 정서가 대부분을 지배한다고 아시면 될 거 같습니다.
... 하지 않기 보다는  ... 할 때는 뭐하면 더 좋을지를 물어보시고 ... 그것을 하시는게 좋을 거 같군요..^^

사실 , 어른들도 똑같습니다.
흥분하면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가 나죠...
다만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이 있기는 하지만
참는 것은 꾹꾹 눌러서 쌓아 놓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역치를 넘으면 폭발합니다. 일 순간에... ^^ 주의해야 되는 거 아시죠?^^

눈높이를 낮추시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변화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얘가 왜 발을 쿵쿵 구르는지,  왜 코딱지를 파는지
저도 가끔씩 고무다리를 긁습니다.   다 큰 어른인데도요...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죠.
아이를 다룰 수 있는 대화와  그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실 때가 된 거 같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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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건친구
2010.05.16 14:48:06 *.187.148.134
저는 백산님의 얼굴을 아는데, 백산님은 절 모르시겠죠? ^^ ( 작년 송년회에서 뵜거든요. ㅎㅎ)
한때 선수의 쐬꼬챙이에 찔려서 불같이 화를 내던 백산님을 상상하며 웃었습니다.
제가 요즘 꼭 그러거든요
아이들이 고의없이 제게 상처를 주면 펄떡펄떡 뛰며 불같이 화를 내죠.
백산님처럼 화가나면 일단 화장실로 달려가는 버릇을 한 번 시도해보렵니다.
습관이 될 때까지 노력해볼꼐요.
따뜻한 조언 정말 감사합니다.  나중에 얼굴뵙고 꼭 인사드릴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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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5.16 08:24:18 *.163.37.227
건방지게 한 말씀 더 드리면
아이들은 정서를 통해서 인지를 발달시키는 중이기 때문에
애착행동을 (사랑받을 수 있는 행동)을 본능처럼 기억하죠 
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 사랑받는다는 것을 아는 거죠^^

 그것은 자신의 욕구만족을 위해서인데,
그런 점에서 자기 욕구적 충동이 더 우선하겠죠.

제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정서지능이라는 게 있습니다.
자신의 정서를 아는 것
자신의 정서를 표현할 줄 아는 것
타인의 정서를 아는 것
그리고 자신의 정서를  관리할 줄 아는 것

이런 것을 배워가는데 시간이 걸림니다.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습득하기 때문에...

어른 의 입장에서는 정서 인지평가 이론이 있는데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아이여서 참는 것, 사랑해서 참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피곤하고 쫓기면 정서적으로 먼저 반응하고 후에 인지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후회하고
마음이 아프고 그렇습니다.

초보 선수를 가르칠 때는  설명하고 납득시키고 다음은 될 때까지 반복 연습을 시킴니다.
몇 회를 했느냐가 아니고  자동화됬는가 아닌가 가 중요합니다.
제 개인적인 노력의 한 예는 거의 10년이 걸린 적이 있습니다. 습관하나 고치는데...
일년 내내 가르쳤는데 시합장에서 한 번도 쓰질 안 더군요...
화가 나죠,,, 하지만 그 선수는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 두렵고 더 긴장해서
생각으로 배운 것을 그 순간에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화를 내지는 않습니다. 서운하기는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자극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의식으로 생각하기보다 정서적인 충동과 욕구가 훨씬 앞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생물 생태학적으로 말하면 아직 인간이 되기 전의 동물적 욕구들이 우선하는 비인격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엄마 아빠는 그 자식을 키우면서 성숙해지는 거지요...

제가 늘 주장합니다. 감성, 정서적 충동들 (,도박, 음주, 알콜, 성적욕구, 등등,)을 인지적으로 제어하기는 어렵습니다. 대부분 재발합니다. 왜냐면 그것은 100만년간 진화한 것이고요...  사고... 언어로 생각하는 것은 태어나서 배우는 것이거든요....  게임이 안 되는 거죠... 

 마찬가지로 분노, 희열, 슬픔, 기쁨,등도 일단 발화되면 조절이 안됩니다. 
제 습관중에 하나는 화장실가는 것입니다.  무조건 화장실에 가서,,,, 그 순간을 모면합니다.

이런 내용 자체를 아시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훨씬 덜 화나게 되죠...
그리고 반복되다보면 무뎌집니다.
마치 제가 선수들에게 렛슨받다가 선수들의 잘못된 동작에 찔려서 열받는 거 같은 것입니다.
쇠꼬챙이에 아픈 데 찔린다고 생각해보십시요.정말 아픔니다.
알면서도 성질이 불같이 나거든요...  패 죽이고 싶죠... ㅎㅎㅎ
이제는 살이 찢어져도 화 안 냄니다.  아니 안 나는 거죠... 그러려니 하는 거죠... ^^

그걸 모르는 코치들은 불같이 화를 냅니다. 선수를 잡죠...
그러나 선수가 잘못찌르고 싶어서 그러겠습니까.  잘 할려고 하는데 몸이 말을 안듣는 거죠...   
어떤 코치는(초보코치나 수양이 안된 코치들) 선수를 잡습니다. 아예 ... 그러면 선수들은 벌벌 떨게 되고 동작은 더 잘 안되고 그러다보면 더 혼나고...  악순환이죠...  

아이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말이 많아졌습니다.    글의 내용에 그만 정서적으로  너무 빠져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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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건친구
2010.05.15 09:53:54 *.187.148.134
네. 조언과 관심 감사합니다 ^^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사실, 지금 필요한 것은 느긋하게 믿고 기다리는 마음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를 가지고 대하는게 쉽지가 않더라구요..ㅠ.ㅠ
아이의 사고와 판단 능력은 참...혼동스러워요. 어떨때는 어른 찜쪄먹을 만한 비상한 머리회전을 보이는데 엄마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커뮤니케이션이 안된다는 것이 잘 안받아들여집니다. ㅎㅎ
좀 더 느긋한 마음 갖기..에 대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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