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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4일 10시 17분 등록
어제는 휴직을 한 지 딱 16일째 되는 날이었다. 필요한 만큼 헤맸다. 많아진 시간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진 것 없는 생산성에 좌절하기도 하고 또 너무 서두를 것 없다며 다독거리기도 하고 그러는 사이에 내 인생은 360시간만큼 휘발했다. 

너무 서두르고 싶지는 않았다. 이정도는 쉬어도 좋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으니까..그런데 362시간의 문턱을 이부자리에 흘려 보내고 있을 즈음 몸에서 뭔가 스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시계는 정확히 새벽2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한 때 참으로 좋아하던 옷이 한동안 눈에 띄지 않는다는 생각에 옷장을 뒤지던 꿈을 꾸다  '정말로 그 옷을 잃어버렸으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의식의 영역을 건드린 순간이었던 것 같다.  도저히 날이 샐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켜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없었다. 도대체 어디다 쑤셔박아 놓은 걸까? 내다 버렸을리는 없고..친정과 시댁 그리고 우리집 사이를 정신없이 오고가던 중 어딘가에 놓아둔 것이 틀림없다. 어쩌면 세탁소에서 찾아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대체 어느 집 세탁소를 확인해야 하는 걸까? 머릿속은 점점 엉망으로 엉켜갔다. 어디서부터 찾기 시작해야 하는 걸까?

두시간쯤 우왕좌왕하다 포기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4시 반이었다.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 허둥댄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차분히 생각을 더듬어 차근차근 찾아가다 보면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지도 모르고 살던 다른 물건들을 덤으로 찾게 될 수도 있다. 일단 이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수차례의 심호흡과 함께 온 몸을 꽉 채우던 블라우스 생각을 밀어내고  입으로만 떠들어대던 새벽 두시간 글쓰기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남편과 아이를 보내고  집청소도 했다. 익숙치 않은 가사를 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선뜻 손대지 못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의외로 재미도 있었다. 남의 손을 빌릴 수 없는 영역, 그래서 지금껏 방치되던 영역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책이나 자료정리같은 것 말이다. 치워야 할 것과 더 가까이 두어야 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대신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치우다보니 1년도 전에 적어놓은 짜장면집 전화번호까지 있었다.  게으름때문에 불필요한 것들에게 공간을 침범당하고 살아 왔던 것이다. 하다보니 점점 욕심이 생겨 집안 전체를 뒤짚어 업고 싶어졌지만 일단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정리하는 선에서 멈추기로 했다. 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To be continued.
IP *.53.8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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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5.15 08:46:40 *.251.229.85
나도 별 성과없이 하루를 보낸 저녁에는
'또 하루가 미망 속으로 사라졌구나' 착잡한데 '휘발'이라는 단어도 좋네요.

요즘은 삶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도 자주 드는데
그렇다면 '내가 꼭 살아있어야 할 이유' 가 무엇인가 자문해 보았을 때
ㅎ 별로 없더라구요.
서둘러 만들어야겠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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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마
2010.05.18 10:27:23 *.53.82.120
저는 선배님께서 꼭 살아있어야 할 이유를 알고 있는데..
선배님의 글 보면서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는지 모르시는구나..
저 뿐만이 아닐걸요?  ^^

며칠전 정독 도서관 갔다가
5월의 책을 소개한 포스터 상단에 자리잡은
 '늦지 않았다'를 발견하고
제 가슴이 다 터지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 오프라인에서도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봅니다.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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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
2010.05.15 10:04:10 *.163.78.249
깨어있는 마음님
이렇게 깨어 있음을 표현하시는 것하며  순간의 생각을
단숨에 정리해놓고 또 다시 이어가겠다고 하신 방법 멋집니다.
매순간 잠시 머물다가 떠나가는 생각과 꿈들을 붙들고 되새김질을 해서
의미를 부여하겠다고 하는 몸부림이 모이면 분명히 뭔가 되긴 될것 같습니다.
저도 따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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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마
2010.05.18 10:35:24 *.53.82.120
정확하게 보셨네요.
저의 의도를!!  ^^

스스로 즐기던 글쓰기가
연구원이 되면서
오히려 너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왤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너무 '잘하려는 마음'이더라구요.
순간순간의 느낌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나아갈 힘을 얻던 이전의 즐거움을 회복하고 싶습니다.
부담없이 순간순간 스쳐가는 생각, 느낌, 상상을 채집해보려고 합니다.

역시 제 맘을 알아주는 분을 만나면 수다스러워지는군요. 저는..^^
온,오프라인에서 모두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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