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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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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3일 17시 43분 등록

신이란 무엇인가?


내면의 우주를 바라보다

어느 날 새벽,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깜빡 졸았다. 순간 평생 잊지 못할 체험을 했다. 내 안에 거대한 우주가 펼쳐져 있음을 보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 본 우주보다 더 광대한 그런 우주였다. 그곳은 여러 개의 달이 떠 있고, 밝은 별이 둥둥 떠 다니며, 파도가 넘실대는 검푸른 빛의 바다였다. 그렇게 신비로운 감상에 젖어 있다가 문득 저 멀리 바다 한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한 사내의 뒷모습을 보았다. 의연해 보였고, 조금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결코 낯설지 않은 아주 오래 전, 내가 생명을 받기 전부터 알아온 듯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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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경영연구소 한정화 연구원이 그려 준 나의 꿈 그림

한정화 , <별을 뜨는 사람>

 

1080배의 기적

2004 8, 3 4일 간의 길상사 선수련회 마지막 날 밤, 1080배를 시작했다. 당시 나는 술과 담배에 찌든 삶을 살았지만, 젊고 다부졌고 108배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었다. 1080배는 108배를 10번만 하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절을 한 번에 다하는 것이 아니라 3번으로 나누어 한다고 하니 문제될 게 없었다. 죽비 소리에 맞추어 절을 시작했다. 첫 번째 시간, 거뜬히 해냈지만 다리가 조금씩 후들거렸다. 두 번째 시간, 땀이 비오 듯 쏟아졌고, 팔목이 시큰거리고 다리가 풀렸다. 무릎에 엄청난 통증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본 고통 중에 으뜸이었다. 더는 할 자신도 할 마음도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떠올랐다. 몇 해 전부터 어머니께서는 척수염으로 인한 신경손상으로 다리가 불편하셨다. 오래 서 계시지도 오래 걷지도 못하신다. 그 어떤 사내 대장부보다 호탕하시던 어머니께서 점점 약해지시기 시작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벌써 뇌졸중으로 2번의 위기를 넘기셨다. 그 힘겨운 고비를 넘기시고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불편해진 다리를 이끌고 강에 나가셨다. 순간 섬광처럼, 내 무릎에 찾아온 이 고통 따위는 어머니 아버지 당신들께 주어진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순간 만큼은 나를 걸어 당신들의 고통을 다 끌어 안고 싶었다.

 

눈물샘이 터지며, 나의 두 다리에 기적이 일어났다. 그렇게 고통스럽던 무릎에 신령하고 찌릿한 기운이 흐름과 동시에 내 의지와 통제에서 벗어났다. 죽비소리에 맞추어 절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닌 또 다른 무엇이었다. 나는 그저 우렁찬 목소리로 '석가모니불'을 외치기만 하면 되었다.

 

 

수평선과 지평선을 너머

어느 해 겨울, 바다가 나를 불렀다. 웅장한 위용의 푸른 바다와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또 어느 해 여름, 드넓은 중국대륙을 기차로 달리며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나의 눈은 수평선과 지평선을 바라보았지만, 나의 마음은 수평선과 지평선 너머에 있는 '진짜 바다' '진짜 대지'가 전하는 이야기를 원하고 있었다. 내 마음이 본능적으로 찾는 저 너머에 세계엔 과연 무엇이 존재하고 있을까?

 

 

두 개의 트라우마

'그랜다이저는 생명을 건다. UFO 군단을 무찌른다!' 1986년 여름, 교회 앞마당에서 만화주제가에 맞추어 율동을 열심히 따라 하고, 성경학교 선생님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어둡고 심각한 얼굴로 "네가 교회에 갈 때마다 이 엄마 머리 아프고, 몸 안 좋아지니깐 앞으로 교회 안 나갔으면 좋겠다." 그 동안 모은 달란트와 재미있는 성경 만화영화, 선생님들의 칭찬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1998년 봄, 우연하게 알게 된 기독교 동아리 선배와 6번째 만남을 가졌다. 선배는 대학 입학 후 아는 사람 하나 없어 허허벌판 같이 낯설었던 순간 가장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이었다. 학번도 나보다 4학번이나 위였음에도 꼬박꼬박 존댓말도 써주었고, 집으로 데려가 손수 밥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런 정성에 감복해 그날 만남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당시 뒤늦은 사춘기로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던 내게 영원한 진리와 생명, 따뜻한 선배의 모습은 말 그대로 구원의 손길과도 같았다.

 

우리는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던 캠퍼스의 한적한 벤치에 않아 의식을 거행했다. 영접의식의 마지막 단계, 영생의 다리를 건너는 순간이었다. 이 다리를 건너고 나면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가족들과 결별을 해야 하는 것만 같았고, 그 동안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을 '예수쟁이'이라며 비웃던 바로 나와 같은 친구 녀석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것 같아 두려웠다. 선배에게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후 선배는 나를 여러 번 찾았지만, 나는 연락을 받지도,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우연히 내 쪽에서 먼저 그를 보기라도 하면 마치 죄인이 된 것마냥 피해 다녀야 했다.

 

 

나도 ''을 알고 싶다.

내 기억 속에 신에 대한 이미지는 어릴 적 들었던 우스개 소리 속, 가부좌를 틀고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동그랗게 모으고 '돈 내놓으시오' 하시는 금빛 부처님과 양팔을 펴고 '돈 없소' 하시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성당에 갔을 때, 그리스도 성화와 성모 마리아 상을 보며, 신은 왜 모두 외국 사람일까? 라고 궁금해 했던 기억도 난다. 나의 유년시절엔 ''이란 절대 존재에 대한 고민의 씨앗이 되곤 하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섰던 경험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과 같은 상실의 경험이 없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머리맡에 달아놓은 양말에다 대고 '꼭 좋은 장난감 주세요'라고 기도하던 경험 말고는 간절한 기도의 경험도 없었다. 어린 나에게 있어서 신은 그저 교회나 절을 찾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늘 나라에 사시는 후덕하고 인심 좋은 할아버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신이 나의 의식의 영역으로 찾아 들어온 것은 특정 종교가 아닌 한 사람으로부터였다. 군복무 시절 법정(法頂)스님의 수필집에 '절이나 교회에 신 없습니다. 신은 본래부터 자신의 내면에 본래 청정하게 그렇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본래 청정한 본 모습에 먼지가 끼지 않게 쓸고 닦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입니다'라는 구절을 보고 '! 내가 원래 죄 많고 악한 존재가 아니었구나! 본래 청정하고 선한 존재였구나!'라며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 타성에 의해 존재했던 신에 대한 패러다임은 처음으로 나의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렇게 불교보다 법정스님을 먼저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나의 종교적인 패러다임은 스님을 닮은 불교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그렇게 접하게 된 불교적 패러다임은 삶에 대한 나의 본질적인 질문에 많은 답을 해주었다. 삶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유가 '집착(執着)'에서 비롯된 것임을, 삶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의 영혼은 여러 삶을 거쳐 성장과 퇴보를 거듭하는 데, '용맹정진(勇猛精進)'의 수행을 거쳐 궁극적 경지인 해탈(解脫)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패러다임은 삶의 지침과 같은 관념적인 것이었지 그 너머의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살아 있는 체험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새벽에 펼쳐진 내면의 우주, 1080배의 기적, 수평선과 지평선 너머에 대한 동경. 이러한 몇 가지의 신비체험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사유와 인식의 영역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큰 힘의 존재를 희미하게나마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신비 체험을 통해 내가 만난 것이 ''이라고 단언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내가 체험한 것은 신의 그림자, 혹은 지금 막 자리를 떠난 신의 자취나 여운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나의 심연 속 우주 한 가운데에,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애틋한 마음 속에, 대자연의 신비로움 속에 말과 사유의 영역을 넘어선 더 큰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존재가 나를 살아있게 하고, 나의 신화를 찾아 떠나는 모험으로 이끌며, 바다가 되어 소년인 나에게 스스로 바다가 되라고 이야기 한다. 나의 내면에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이 움트게 하는 바로 그 손. 나는 감히 그 존재를 ''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융은 죽기 2년 전 BBC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기자는 융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수백만 시청자들은 융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긴장하며 기다렸다.

융이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신을 압니다.”

- 카를 구스타프 융, <기억, , 사상> 중에서

 

* 동영상 "I know God ex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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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선
2011.03.14 11:50:43 *.45.10.22
멋지다 경인아 나도 불교적 패러다임에 물들어 있는 사람으로서 이번 책이 상당히 어려웠는데 너의 글을 읽고나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꿈의 레이스 무사히 완주한 걸 축하하고 함께 연구원으로 얼굴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Good day~ 한정화님의 그림 참 이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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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3.14 12:08:05 *.219.84.74
경인님의 글은 꽃잎이 모여서 예쁜 꽃을 만들듯이 그런 겹겹의 꽃잎을 보게 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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