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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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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1일 10시 38분 등록

 

쥴리앙 슈나벨 감독이 쿠바 시인, "레이날드 아레나스"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작품, "비퍼 나잇 폴스 Before Night Falls"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현대 쿠바의 이야기이다.
그러니 결국 한 인간이 시대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까.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이 좌파이던 우파이던간에 상관없이 권력이 독재화하고 그것으로 인간의 자율성을 말살하는데 삶 전체를 통해 거부했던 감수성 예민한 어느 예술가의 이야기이다.
그러니 결국은 우리들 모두 안에서도 헐떡이며 숨쉬고 있는 자유를 꿈꾸는 영혼의 이야기이기도 하겠다..

쿠바의 어느 촌락.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연에 던져져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레나스가 등장한다.
이 장면을 보는데, 페루 시인, "네루다"가 묘사한 라틴 아메리카의 자연이 이러할까 싶어 마음이 두근거렸다. 성장 배경이나 삶의 환경은 엄청 다르지만, 네루다 역시 어릴적 마음껏 취해있던 라틴 아메리카의 자연이 자신의 예술세계의 바탕을 이루었다고 하는 점에서는 두 라틴 시인간의 커다란 공통점을 이루는 것 같았다.

어릴적부터 남다른 시상을 표현하고 십대에 이미 혁명군에 가담하고자 집을 떠나던 아레나스.
이십대에는 하바나의 대학에서 문학에 빠져든다.
자연 속에서 너무도 자유로운 영혼으로 성장했던 그가 혁명군에 끌리고 영혼의 자유를 논하는 문학의 길로 접어든건 어찌보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위대한 영혼이 무르익기 위해선 늘 그러하듯이, 그 앞에 놓인 운명은 순탄치 않다.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며 접어든 문학의 길에서, 모든 것을 정부에 대항하는 도구로 삼으며 어느덧 쿠바 사회를 휩쓸고 있는 동성애를 포함한 섹스혁명에까지 가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에 정부는 자유를 부르짖는 예술가들을 동성애자와 정신병자와 같이 취급하며, 그들 모두를 전부 반정부주의자들로 몰아 감옥에 가두기 시작한다.

2년간의 감옥 생활. 살인범과 강간범이 들끓는 그곳에서도 작가란 것이 알려져 편지를 대필하고 글을 쓰는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다 결국 죽음의 협박 아래 정부를 위해 글을 쓰겠다는 각서를 쓰고 겨우 풀려나는 아레나스.

이후 80년 카스트로 정부에서 쿠바에 쓸모없는 인간들을 해외로 보내주겠다는 정치적 결정아래 간신히 쿠바를 탈출하여 친구인 라자로와 뉴욕에 정착하게 된다. 총 9권의 작품 중, 쿠바에선 단 한권만 출간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겨우겨우 해외로 빼돌려 해외출간을 하고 프랑스에선 해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뛰어난 시인이지만, 뉴욕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건 역시나 빈곤과 견디기 어려운 형벌인 에이즈.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는 47세의 짦은 생을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자살로 마감한다..

격정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을..
뜨거운 로맨스적인 의미가 아니라, 급류에 휩쓸린 듯한 운명말이다..

영화 도입부에 하나의 물줄기가 흐르고 흘러 거대한 물결을 이루면
그 거대한 물줄기는 주변 모든 것을 휘감아 들이고, 결국에는 그 자신의 원래 형체도 사라진체
물결만이 남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시인의 삶은 정녕 그러했다.
문학을 통해, 자유로운 섹스를 통해 자신의 젊음으로 거대한 물줄기에 거품을 일으켜보았지만
결국은 그 물결 속에 삼켜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물거품이 두려운건
네루다 시인의 말처럼 아직 거대한 문맹국인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이 깨어날 때
전 세계 문학계, 더 나아가 전 세계 정신사상은 그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아서였다.

육신의 안락함 속에 영혼의 자유를 가두어놓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을 살아내는 그들이다.
온 몸으로 부딪히고 고뇌하고 갈등하고 쏟아내는 그들의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오랜 의문점 하나가 서서히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어째서 위대한 인물들은 위대함만큼이나 깊은 굴곡 속에서 탄생하는지 말이다.
추락이 깊으면 올라오는 탄성도 높을 수 밖에 없다.
질곡의 농도가 진할수록, 그것을 극복하고 헤쳐나오는 영혼 속에 축적된 힘은 강할 수 밖에 없을터이니 말이다..

한편 색다른 동성애의 코드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천재들의 동성애 코드는 대개 시대적 배경상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여자들이 결코 이해해줄 수 없는 부분을 이해해주는 파트너로서의 동성애 코드가 강했다면, 이 영화는 어릴 때는 심리학적 요인에 의해 커서는 사회적 요인에 의한 동성애가 드러난다고나 해야 할까.

융에 의하면 동성애자들 가운데는 유아기시절 어머니로부터 안정적인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성에 대한 두려움 혹은 삐뚤어진 아니마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아레나스 역시 어릴 적,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로부터 끊임없이 버림에 대한 협박 아닌 협박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를 키워준 것은 부모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자연이었다.

커서는 처음에는 문학가의 길을 가기 위해 부자 스폰서를 잡고자 시도했던 동성애가 나중에는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벌이는 유희 아닌 유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조차 헷갈리는 동성애자가 되지만 말이다..

동성애를 별도의 코드로 들여다보는 이유는, 이것이 반사회적 혁명 도구로도 쓰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워서인 것 같다. 어떤 의미로든 우리들 인간 안에는 사회적으로 억눌려있는 반사회적 기능이 "그림자"가 되어 내재되어 있고, 그것이 이런 식으로도 분출될 수 있다는 것을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이론으로 접했는데, 막상 영화를 통해 만나게되니 그 나름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사회에 의해 억눌린 개인들의 그림자와 그것의 표출방식에 대해..

개인의 운명이 절대적으로 개인의 자율성에 맡겨지지 않고
그보다 훨씬 더 큰 사회에의해 얼키고 설켜 휘말릴 때
우린 과연 하나의 존재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혁명의 시대는 아니지만, 결국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기, 이 사회 속에서도 개인은 여전히 사회의 커다란 영향력 아래 놓여있을진대 말이다..

그런 우린 과연 어떤 선택을 할수 있을까..?
거대한 급류에 휩싸여 떠내려가면서도 나만의 물거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정부에 쫓기면서도 숲 속에 숨어 글을 쓰던 아레나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간절함.. 나는 내 삶을 얼마나 간절히 내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지..

결국 쿠바의 자연 속에서도, 감옥 속에서도, 뉴욕의 외로운 도심 속에서도
아레나스는 아레나스였다는 생각이 든다.
끝없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 헤매이던 쿠바의 어린 소년.
커서도 어린시절 자신의 세계를 물들였던 쿠바의 자연을 잃지 않고 늘 그 속에서 자연 그대로의 자유를 추구하던 영혼은 결국 죽음만큼은 스스로 선택하여 떠난다..

철학은 곧 스스로의 삶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이라 한다.
내 스스로 묻지 않으니, 영화가 내게 묻는다..
얼핏 인간이란 한 나약한 존재는 거대한 급류에 휩쓸리기만하는 존재인듯 싶지만
때로 그 도도한 물줄기를 바꾸어갈 수 있는 존재 또한 인간이라 믿는다.
어찌보면 바다란 스스로 물거품을 일으키며 물줄기를 만들어낸 영혼들만이 도달하는
깊고 푸른 세계가 아닐런지..

끝으로 너무도 매혹적인 연기를 펼치는 조니 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정도급의 배우가 주연이 아니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단 두 장면, 그것도 감옥을 방문하는 봉봉이라는 유명한 동성애자로 나온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

그런데 말이다.. 그가 등장하는 첫 번째 장면은 그의 뒷모습을 비춰준다.
그런 고혹적인 뒷태를 연기할 수 있다니..!
그가 맡은 배역은 너무도 매력적인 호모여서, 감옥에서 많은 것을 빼돌린다는 역인데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수긍이 가게 만든다. 여자인 내가 봐도 매혹적이란 느낌이 드니 말이다..

조니 뎁. 참으로 대단한 연기자라는 생각밖에는..
아레나스라는 시인이든, 조니 뎁이라는 연기자든
참으로 자신들의 삶을 철저히 살아내는 이들이란 생각을 하며 영화에서 시선을, 마음을 거두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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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파격적인 소재로 자아찾기 여정을 그린 이탈리아 영화, "아이 엠 러브" 영화리뷰: http://blog.daum.net/alysa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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