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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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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4일 13시 19분 등록


캐나다 출신의 드니 뵐뇌브 감독의 영화지만 영화의 주 무대는 아랍세계이다.
그러고보니 아랍세계의 일상 생활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 접해보기는 처음이라고나 할까.
뉴스에서 간혹 접하게 되는 그들의 모습 뒤편에 있는 아랍인들의 삶, 아랍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기회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주제나 다루고 있는 소재는 결코 매력적이지 않았다.
영화가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내가 왜 이렇게 무거운 영화를 보러왔지..하는 후회아닌 후회마저 살짝 들 정도로 영화는 아랍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 마디로 매우 불편한 영화였다.

하지만, 왜 불편한지에 대해서는 절대 그대로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영화이다.
왜 불편한가. 그들의 모습이 내 안에도 있고, 그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도 될 수 있기때문이다.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몬은 어머니가 남긴 유언 앞에 망연자실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를 찾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형을 찾기 전에는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는 유언 말이다.
공증사무소의 평범한 여비서로만 알고 지냈던 어머니에게 어떤 과거가 있었던 걸까.
아버지는 누구이며, 형은 또 누구일까.

망설이는 시몽을 뒤로 하고 잔느는 홀로 어머니의 과거를 찾아 레바논으로 떠나는데
거기, 그 곳에서 만나게 되는 어머니의 과거는 실로 충격적이고 놀라움의 연속이 아닐 수 없었다.

어머니, 나왈은 정작 본인은 기독교인이었으면서도 기독교 리더를 암살한 죄목으로 15년이나 정치범 감옥에 수용당하고 그곳에서 강간을 당해 그들의 오빠이자 형을 낳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슬픈 역사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니, 그곳에 가야했던, 기독교 리더를 암살할 수 밖에 없었던 더 큰 삶의 뿌리는 사랑과 종교의 어긋남이었다. 기독교 집안 출신인 그녀가 회교도를 사랑했고 그의 아이까지 낳았던 것이었다. 결국 회교도 연인은 기독교인들의 손에 죽게 되고, 아이는 고아원에 버려진다.

여기서 한가지. 종교란 참으로 무서운 존재임을 다시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민족이나 신념 역시 인간들의 삶을 좌지우지 하지만, 종교는 그것들조차 뛰어넘어 사람들로 하여금 맹목적으로 복종하거나 헌신하게 만드는 것 같다. 타인을 살해하는 것도 심지어 스스로 자살하는 것조차 순교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미화되니 예나 지금이나 종교가 인류 역사에 끼치는 영향력은 가히 가공할만한 것 같다.

서구 역사의 오랜 세월을 종교가 지배해오다 근저에 와서 과학이 그 자리를 대처하는 듯 보였지만, 아무래도 종교의 영향력은 쉬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인류의 유전자에는 종교적이라는 인자가 어느 정도 각인이 되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와 형/오빠를 찾던 쌍둥이 형제는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름아닌 1+1= 2가 아닌 1이라는 엄청난 현실 말이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저 멀리 그리스의 오이디푸스의 신화가 떠올랐다.
근친상간 또한 인간이 떨쳐버릴 수 없는 또 하나의 원죄인걸까.
역사가 계속되는 한, 이 원죄 역시 그 모습을 달리해 계속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이 영화는 나왈이라는 한 여성은 물론이지만 그 밖의 어떤 인물도 승리자이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 경계선이 매우 모호하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우리 모두 일정부분 가해자이자 피해자의 삶을 끌어안고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더욱 삶에 물어봐야 하는 것 같다. 어찌 살겠냐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때로 인생이란 우리들을 한 순간에 바닥이 보이지 않는 끝갈데없는 검은 골짜기에 처박아 버리기도 하고, 분명 내 이득을 위해 취한 언행이 어느 날 부메랑처럼 돌아와 내 발등을 찍어누르기도 하니 말이다.

그에 대한 해답으로 감독은 나왈의 말을 빌려 "관용"을 제안하고 있다.
끌어안고 살자고. 우리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니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고 살자고.
이 영화가 극단적인 부분들을 안고 있으면서도 유려하게 펼쳐지는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영화를 보는 중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문을 나가는 순간부터 다시는 종교인이라 말하지 말아야지.
신화의 아버지인 죠셉 캠벨이 일생을 두고 내린 결론처럼, 우주 자체가 신이요, 나는 그 일부라는 범신론적인 신앙을 품고 살아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란 무엇인가. 인간이 신의 존재를 우리들의 틀에 맞혀 제도화한 것이 아닐런지.
그런 후, 우린 오랜 세월 서로를 해하며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하여 왔다. 종교란 이름으로.
그런 의미에서 이젠 제발 종교가 신 앞에 무릎을 꿇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종교에 대해서는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정도로 민감한 주제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정치와 종교. 이 두가지 주제만은 절대 피한다.

그래서 불편했다. 그런 민감한 주제를 정면으로 들이대는 감독의 의도가 불편했고
그 사이 사정없이 짓밟히는 인간의 존엄성을 마주대하는 것이 거북했다.
영화를 보고 돌아서서 바로 리뷰를 쓰지 못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신은 사랑이 아닐런지. 그러므로 우리 또한 사랑이 아닐런지.
신은 당신을 닮은 존재를 창조하셨다하니 말이다.

그래서 난 감독이 제안한 관용의 편에 서기로 했다.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치기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에 삶을 걸어보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종교의 참 목적성 존재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한번 정리하게 된 이유만으로도
힘들고 무거웠던 영화지만 충분히 가치있는 아름다운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인류 역사상 아름다운 문명을 찬란히 일구었던 아랍인들이
다시금 빛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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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애니어그램 이야기들- http://blog.daum.net/alysa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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