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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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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7일 17시 46분 등록

아버지가 내 운명을 걱정하시며

“이놈아! 넌 틀렸어!” 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슬펐었다.

눈 한 번 부릅뜨면 온 집안에 조용해지는 무서운 아버지셨다.

그렇게 집안의 모든 질서의 절대적인 집행자이신 아버지가, 성묘 뒤의 퇴주잔을 드시던 아버지가 나를 보시면서

“네 이름에 성(聖)자를 붙이는 것이 아니었는데, 내가 욕심을 내는 바람에 그렇게 됐구나”라고 말씀하셨다. 고생문이 훤하다시며 그것이 나의 운명임을 어쩌겠냐고 말씀하셨었다.

나는 정말 정말 슬펐었다

내이름은 목화토금수 오행에 따라 우리세대 항렬에 주어진 화(火) 가 들어간 돌림글자 렬(烈)자 앞에 성(聖)자를 부쳐 성렬(聖烈)이다. 한 방면에 더 할 수 없이 뛰어난 강한 존재가 되라는 이름이었다.

이름대로 된다더니, 그렇게 나는 태생이나 작명에서부터 전문가 팔자였나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말썽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과 달리 정상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집안에서, 그리고 아버지에게 나는 늘 문제아였다. 나는 엉뚱하고 상상이 불가능한 일을 저지르는 말썽꾸러기였다.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늘 저지르는 사고뭉치였다.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난 그 당시에는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가 왜 틀렸다고 나무라시는지를 알지 못했다.

 

왜, 왼 손잡이여서 틀렸고, 공부를 열심히 안 하고 책만 봐서 틀렸는지, 그리고 내 생각이 왜 엉뚱한 생각이고 그것이 틀린 생각인지 알지 못했다.

당연히 세상으로 나아가서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조금 커서 고등학교 때는 운동하는 놈이 혼자 놀기를 좋아해서 틑렸고, 펜싱을 할 때에도 정석에서 벗어나 에뻬 펜싱을 하는데 상대 칼을 잡아서 찌르려고 해서 틀렸다. 더 커서 코치가 되어서는 너무 학문적이고 이론적이어서 틀렸고, 보고서를 이야기하듯 써서 틀렸고 체육학을 하는 놈이 문학이나 물리학 책을 봐서 틀렸단다.

인생을 절반쯤 살고 난 40대가 넘어서도, 현실보다 꿈을 쫒아서 틀렸고, 다 늦은 나이에 박사과정을 한다고 해서 틀렸고, 논문을 쓸 때는 분석과 증명이 모호한 분야를 하겠다고 고집해서 틀렸단다.

 

그렇게 나는 늘 틀렸고, 틀리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틀릴 것이다. 뻔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 나는 늘 틀렸다. 돈 안되는 일에 매달려서 틀렸고, 심지어는 사람들이 꿈같이 생각하는 일을 일상의 삶속으로 끌여 들여서 틀렸다.

남들은 다들 그냥 그런대로 지지고 볶으며 사는데, 있는 밥그릇 남 주고 사서 고생하는 미련 곰탱이 같은 놈이라 틀렸다. 30년을 넘게 펜싱을 하고도 아직도 그것이 재미있다고 매달려 살고 있으니 틀렸고 쥐뿔도 없는 것이 고개 숙이지 못하고 뻣뻣한 것도 크게 틀려도 한 참 크게 틀린 짓거리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늘 내게 ‘잘못됐다’고 단정지어 말하지 않았지만 사는 동안 나는 늘 ‘틀리다’는 그 말, 잘못됐다는 말이나 매 한가지인 ‘틀리다’는 그 말에 치여 살았다.

나도 답답했었다. 마치 청개구리 이야기처럼 내가 하는 짓은 왜 그렇게 늘 하는 짓마다, 하는 생각마다 영양가 없는 짓이고 사는데 보탬이 안되는 것인지... 난 그렇게 뼛속 깊숙히, 본질적으로 틀리는지,...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른 것은 잘못된 것으로 관주되는 사회에서 태어나 성장하며 끝없이 좌충우돌하면서 살았다. 젠장...

사실 나는 상식이나 원칙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었다. 숟가락을 왼손에 든 것은 내가 아버지한테 저항하고 객이려는 것이 아니다. 아동문학이나 공상과학 소설을 좋아하는 것이 숙제를 하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칼을 잡아 찌르려고 하는 것이 창조적이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단지 왼손에 드는게 편 했을 뿐이고 공상과학소설이 재미있었을 뿐이다. 상대 칼을 잡아찌르려고 했던 것도, 물리나 문학을 좋아했던 것도 박사과정을 하려고 했던 것도, 단지 내게 주어진 펜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일 뿐이다.

난 그저 정신적인 갈등이든, 규범적인 갈등이든 기술과 논리의 갈등이든 상관없이 풀 지 못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막힌 벽을 넘어서려는 것일 뿐이었다.

그게 잘못인가? 아무도 속시원하게 말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답은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아! 너만 별나게 왜 그러냐?’는 것이 답이라면 답일까?

그렇게 정상(normal) 비정상(wrong)이라는 말이 일반(general)과 비일반(different)으로 바뀌기 전까지 내가 늘 듣던 ‘틀렸어...’ 그 말은 내게 늘 ‘잘못됐어!’로 들렸다.

가끔씩 ‘특별한’, ‘희안한’, ‘대단한’, 으로 들려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뒤에는 늘 ‘놈’자가 붙었다.

 

그런 나는 스승의 그늘 아래서 다시 태어났다. 그 ‘창조적 부적응자’ 라는 말로...

그리고 잘못된 것과 다른 것의 차이를 스스로 확실하게 납득하게 되었다.

 

인간과 사회는 자연적이든 의도적이든 원리와 법칙, 질서와 규범이 존재하에 있다. 그것들은 생명유지나 사회 존속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안녕과 평화, 성과와 가치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이 보편성, 동질성, 일반성이라는 것 즉 원리와 법칙 질서와 규범을 만들지만 특수성이나 이질성이 반드시 목적을 붕괴시키거나, 달성하는데 장애를 일으키는 것만은 아니다.

   방법론에 있어서 틀리다 즉 다르다는 것이 잘못됐다고 정의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 불변의 원리와 함께 예외의 성립이 불가능해야만 한다. 방법론에 있어서 다르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그것은 검증되지 않고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샹대적으로 효율적이지 못한 것이다.

왼손으로 밥을 먹어서는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운가? 학과공부를 열심히 안 하고 대학을 안 가면 잘못된 인생이고 죄악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효율성의 문제이고 효율성이란 개인차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왼손으로 밥을 먹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춤을 추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일수도 있다.

단지, 다르다는 것이 반드시 그 목적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이나 사랑, 성과와 가치는 정해진 방법과 원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질서와 규범들로 인해서 더 어렵고 힘들게 될 수도 있다.

 

그 가장 큰 폐해가 위장한 명분과 허례허식 그리고 권위주의같은 것들 아닌가?

오늘날에는 틀리다가 ‘창조적’이라는 말로 대치되는 듯하다. 목적을 달성하는 다른 접근방법으로 이해되는 듯하다.

그러나 틀리다와 다르다를 구분해 보아주지 않는 사회에서는 ‘창조적’이란 개념은 현실적일 수 없다.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 어렵고 곤란한 상황에서만 창조적이기를 원하는데,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은 어떤 안전장치 없이 도전하는 모험이다. 대부분 그런 아이디어는 한심하거나 쪽팔리는 제안이 되기 십상이고 제정신이 아니라는 낙인이 찍히기 쉽다. 잘해봐야 궁여지책이 될 뿐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이 ‘균형’이고 ‘통합’이었을까?

맞다 틀리다와 정상과 비정상은 대립되는 연속선상에 있는 양극이다. 그것은 목적이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혹은 효율성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개인의 능력차이와 주어진 환경에 따라 접근방법은 다른 효율성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요소들 간에는 어떤 이상적인 균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생각하면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귀족사회에서, 한 때는 왼손으로 펜싱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다. 예의와 형식을 중요시하는 귀족사회에서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는 결투이니 당연히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생태적인 속성과 귀족적인 규범은 별개의 문제다. 이젠 왼손잡이를 찾아 펜싱을 하도록 권하는 입장이다. 아무도 그것을 틀리거나 별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균형이란 그것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요소들은 전체라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통합이란 분리되어져 있는 요소들의 전체적인 균형이랄까?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기술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선수의 기술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어떤 선수의 특별한 기술이 내게는 전혀 안 맞을 수도 있다. 나의 기술적 체계와 요소들과  통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찾아오는 선수나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나는 그들의 말 속에서 ‘틀리다’ 즉 잘못됐다와 다르다의 관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통합과 균형의 관점에서 상당한 해결책을 종종 발견한다.

  요즈음에는 장인이셨던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말하곤 한다.

“아버지, 어쩌면 전 확실히 틀린 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IP *.8.23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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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2011.11.07 23:13:53 *.76.174.125
오늘부터 우산에서 볕이 더 필요한 때인것 같아 양산으로 바꿨습니다..ㅎㅎ
틀렸어- 는 아마도 남다른 놈이여? 라는 의미였을거예요.
다만 단어 선택이 그때만 아니 지금도 다른것을 틀리다고 말하니까요..

백산님의 모습에서는 남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바게트같다고 할까요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한없이 부드러움을 갖고 있잖아요..

잘지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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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1.11.08 12:33:45 *.8.230.133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가을에,
잘 지내시는거 같아 기쁨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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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례
2011.11.09 08:57:01 *.133.160.110
틀리다를 다르다로 인식하는 시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군 5기를 하고 있는 사람인데요.

너무 오랫동안 죽 쑤다가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견디는 힘이 약했을지 모르니까요.
도중에 쓰러질 지도 모르고 너무 아파서 무너질 지도 모르니까요.
어떻게든 잘 견디시고 박사과정까지 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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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1.11.11 01:25:08 *.8.230.133
제가 좀 느리거든요...
이리저리 어퍼지고 자빠져서 뗌방을 많이 했는데요...
아직, 씽씽한게 틀릴게 더 있나봐요...^^
단군...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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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9 16:08:55 *.128.229.167
성렬아,  
올가을은 길구나 .  햇빛도 단풍도 여느 가을 보다 곱구나 
여러 곳을 다녀왔다.   그때 그곳에 있어  내 삶의 한 때들이  유쾌했다.  
만추의  고즈넉한 풍요와  기쁨으로  향기로운 들판에 서 있었다.  
가을이 되어 나는 사람들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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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1.11.11 01:55:14 *.8.230.133
전,
마음만 스승님의 그림자를 따라다니는 중입니다.
가을걷이가 아직 마무리가 안 됐습니다. 흘려야 할 땀이 좀 더 필요한 날들입니다.
이 달에 동호인 시합 하나, 그리고 외국 선수 하나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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