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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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30일 06시 59분 등록

모든 요일의 카페- 커피홀릭 M의 카페 라이프/ 이명석 글・사진/ 효형출판 2009



1. 저자: 이명석李明錫

1970년생. 저술업자. 어릴 적 읍내 가게를 찾아든 도매상 사모님의 손을 붙들고 다방에 들락거리는 것으로 카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십 대 시절 인스턴트커피로 카페인 부적응을 겪은 뒤 커피 알레르기가 있다고 자체 선언, 이후 오랫동안 카페 인생을 폐했다. 이십 대 중후반, 유럽 여행 도중 카푸치노와 에스프레소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로 십 년 넘게 카페 정키Cafe Junkie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만화, 영화, 여행, 코미디, 환상소설 등 다채로운 장르와 테마의 글을 잡다한 매체에 기고해왔는데, 이 모든 생업은 카페와 커피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부정기적으로 ‘M의 이탈리아 가정식 카페’를 열어 커피 날품팔이를 하기도 한다.

「이매진」기자와 웹진「스폰지」의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주요 저서로『이명석의 유쾌한 일본만화 편력기』,『만화, 쾌락의 급소 찾기』,『모든 요일의 카페』,『여행자의 로망백서(공저)』, 『고양이라서 다행이야(공저)』등이 있으며, 또 다른 칼럼니스트 '박사'와 함께 '사탕발림'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책, 사이트, 비주얼 프로젝트들을 함께 만들며, 인문학적인 테마를 즐거운 놀이의 대상으로 삼는 인문주의 엔터테이너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표지 및 예스 24 제공 인용>



2. 본문 인용

특정 카페를 소개하기보다는, 내가 카페에서 만나는 온갖 종류의 눈과 혀와 귀와 마음의 즐거움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카페를 편안하면서도 가벼운 흥분을 이끌어내는 공간으로 만들어낼지, 주인과 손님이 서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슬쩍 흘려볼까 합니다. p9


1장 카페는 노래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태양이 폭발할 때는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래도 여기서 당분간 죽을 걱정은 없어 보이는데?" 우리는 깔깔대며 빵과 정수기와 커피 원두 중에서 무엇을 먼저 사수해야할지 논쟁을 벌였다. 카페 주인은 우리의 탐욕스런 눈빛과 미친 듯한 웃음에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그런 때, 내려놓고 팔지도 못할 '오늘의 커피'를 들고 와 한 잔씩 채워줄 생각을 그는 왜 하지 못하는 걸까? 오늘도 수많은 카페 주인들이 우리 추억의 망막에 너무나 근사한 사람으로 포착될 기회를 놓치고 있다. p34

어떤 날은 마구마구 카페에 가고 싶어진다. 비가 올 때, 낙엽이 우수수 쏟아질 때, 햇볕이 넘쳐날 때, 구름이 멋진 날, 너무 추운 날...... . 모든 날씨는 카페를 부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거기에 있다. p37

'삼사라'나 '마다가스카르'가 세계의 구체적인 어느 한 지점으로 떠나게 하는 여행 카페라면, 도쿄 아오야마의 '카페 246'처럼 세계의 모든 곳으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카페도 있다. 그곳에는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한편에는 여행 책 전문 서점이 있고, 반대편에는 여행 테마의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지도, 나침반, 여권 지갑, 우표, 표지판..... . 여행의 몽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그곳을 거닐면 공항 로비의 카페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p47

갈색 소음과 발톱 소파가 있는 작업실

그때 간판이 보였다. 'Kitchen Table Novel', 부엌과 탁자와 소설? 여긴 뭐하는 데지? 모퉁이를 돌아가는 데 일행이 소리를 질렀다. "고양이다!"

환한 불빛 아래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손에 손에 노트북과 책을 쥐고 빼곡 앉아있었다. 그 한가운데 있는 소파의 등에 고양이 한 마리가 엎드린 채 졸고 있었다. 여긴 어디고, 이 시간에 다들 뭐하는 거지? 아까 보니 학교가 대규모 공사 중이던데, 그래서 도서관을 바깥에서 운영하고 있나? 출입문에 붙은 노란 안내문이 보였다. '12월 8일~11일, 24시간 오픈, 단 23시 이후에는 아메리카노만 주문 가능합니다.' 카페인가? 그런데 왜 이때만 밤새도록 영업하는 거지? 눈치 빠른 일행이 말했다. "시험 기간이라서 그런가 봐."

갑갑한 도서관과 집중 안 되는 자취방을 피해, 공부하며 밤을 새우려는 대학생들을 위해 특화된 카페였다. 테이블은 잘 분리되어있고, 무선 인터넷과 멀티탭이 잘 갖추어져있어 노트북 쓰기도 편하고, 2층에는 편안히 기대어 족욕할 수 있는 자리까지 마련되어있었다. 더불어, 밤새 공부하는 자들의 출출함은 듬직한 웨지 포테이토와 클럽 샌드위치가 채워주고, 적적함은 고양이 세 마리와 강아지 한 마리가 위로해 주고 있었다. 발톱 자국 가득한 소파 등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의 이름은 '샴푸' 였다. 학생들이야 시험 때문에 밤을 새운다지만, 고양이는 웬 고생인가 싶긴 했다. p51

홍대 앞의 '커피 볶는 곰다방'에 가면 거의 언제나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산만한 공간 속에서 책과 논문을 꺼내놓은 사람이 적지 않다. 옆자리의 대학생이 정치인의 비리에 대해 성토하고 있을 때, 그 소리를 피하기 위해 더욱 집중하며 자신의 리포트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어떤 이들이 백색 소음white noise에 기대어 잠을 청하듯이, 이들은 카페에서 생겨나는 '갈색 소음'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쓴다. 어쩌면 갑갑한 방구석에서 혼자 외롭게 논문과 싸우느니, 이렇게라도 바깥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p53

톡톡톡, 재봉틀이 돌아가는 공방 카페

그 카페 뒤편에 재미있는 옷가게가 있다. 매번 옆을 지날 때면 장사를 하는지 마는지, 주인은 어수선하게 옷을 정리하거나 무언가를 고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도 나와 친구가 들르면 항상 반갑게 맞아준다. 우리는 인사만 하고 지나가려는데 굳이 옷과 가방을 옆으로 치우고 어렵사리 자리를 만든다. 주인은 일본에서 사왔다며 봉지 수프를 나눠주고, 차를 대접한다며 옷걸이 뒤로 돌아 들어간다. 거기에 타일로 된 오래된 세면대가 있다. "원래 이발소였거든요. 이거 보고 반해서, 바로 계약해버렸어요." 수십 년 된 세면대로 만든 간이 주방이라니, 그게 또 그렇게 탐난다. 차라리 여기가 카페였으면 좋겠네. p61

북 카페가 낯 뜨거울 때

북 카페는 얼핏 가페의 이상에 닿아있는 것 같다. 약용이 아닌 음용의 커피가 널리 퍼진 것은, 예멘의 수도사들이 잠을 쫓아내고 공부에 열중하는 데 그것을 활용하면서부터의 일이다. 와인이 사람들 속의 디오니소스를 불러내 흥분시킨 뒤에 잠에 빠지게 한다면, 커피는 그들 속의 아폴론을 불러내 냉철한 이성의 시간을 지속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커피 광신으로 유명한 발자크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 각성의 음료가 오랫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왔음은 자명하다. 카페 역시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의 모임 장소로서 크게 성장했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가 만나던 파리의 '라 푸폴'을 상상해봐도 좋다. 세기말 빈wien의 문학 카페에서 독서대에 꽂힌 신문을 돌려 읽으며 논쟁을 벌이던 지식인들도 부럽다.

그럼에도 나는 북 카페라고 하면 의심부터 한다. 그 감정은 대략 이런 것이다 누군가 자기소개서의 취미란에 '독서'라는 글자를 써놓았을 때, 사실 요즘의 세태에서는 자신 있게 독서를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다. 그래서 반갑기도 하다. 그러나 독서 행위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 보편적 '생활'이어야 한다는 내 편견이 어쩔 수 없는 위화감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당연히 책을 읽어야 하고, 카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당연히 북 카페여야 한다.

의심은 반복된 실망을 통해 단단해졌다. 솔직히 '북 카페'는 이런 저런 테마 카페의 콘셉트 중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느슨하다. '커피는 장사꾼이 파는 거지만, 나는 책과 함께 문화를 판다.' 나는 이 순수한 주장 앞에 도사린 함정을 본다. 북 카페 간판을 내건 카페 안에는 주인장의 집에서 그대로 옮겨온 듯, 편안하지만 낯 뜨거운 책들이 꽂힌 서가가 들어선 경우가 적지 않다. 예전 어느 문인에게 "만화는 쓰레기가 많지 않나요?"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들은 적 있다.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요. 모든 만화의 칠십 퍼센트는 쓰레기죠. 모든 책의 칠십 퍼센트도 그렇고요." 나는 북 카페라는 간판을 내걸고 싸구려 처세술, 사이비 종교 서적, 심지어 학습지까지 꽂아두는 자신감에 당혹한다. 책의 옥석 가리기에 무신경한 주인이 원두 통에서 결점두를 골라내고, 기한이 지나 시큼해진 콩을 갖다버릴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p71

카페는 도서관이 아니다. 그러니 무작정 많은 책을 꽂아두려는 욕심 자체가 무리다. 원두의 블렌딩처럼 북 카페의 책 역시 무조건적인 다채로움보다는 분명한 포인트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때론 어떤 서점보다도 또렷한 전문 서가를 갖춘 카페들에 압도당하고 싶다. 특정 출판사의 그래픽 서적만 모아둔 대학로의 '타셴', 여러 종류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을 만날 수 있는 홍대 앞의 '위Oui', 직접 만드는 잡지 등 일볼 로하스 LOHAS 계열의 하위문화 서적들이 보기 좋게 꽂혀있는 산울림소극장 1층의 '수카라' 등이 나를 책에 빠지게 하는 장소다. p75

북 카페의 책이라고 무조건 무게 잡는 것일 필요는 없다. 카페에 앉아있는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없는 책이라면 감질만 날 수 있다. 영미권에는 '커피 테이블 북coffee table book' 이라는 말이 있다. 사진, 그림, 만화책 등 커피 테이블에서 가볍게 읽고 내려놓는 책이라는 뜻이다. 책의 장이 잘게 나뉘어있어, 눈에 들어오는 부분만 살짝 읽고 그쳐도 괜찮은 책들이기도 하다. 결국 이런 책들이 카페에 가장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p76


2장 커피는 익어간다

지구를 지지고 볶고 구워 마신다

나는 못됐다. 여기저기 로스팅 하우스를 오가며, 커피 깡통에 대한 나의 신뢰를 깡통처럼 차버렸다. 커피라는 음료가 생두를 갖가지 방법으로 구워 먹는 것이라는 사실은 관념으로 알고 있었지만, 매번 전혀 다른 맛을 만들어낸다는 걸 실제로 확인하는 놀라움은 적지 않았다. 복숭아맛 가루 주스(인스턴트커피)를 마시다가, 복숭아 통조림(캔에 든 커피원두)을 먹다가, 방금 딴 진짜 복숭아(커피 방앗간에서 구워온 원두)를 입에 무니 알게 되었다. 커피는 더 신선할수록, 먹기 직전에 조리할수록 좋다. 코스트코 커피 원두 깡통에 적혀있는 'best before 200X' 따위의 글자는 말장난이다. 구워서 2주 안에 마시지 않으면, 아무리 제대로 보관해도 산패散敗하여 엉망이 된다. 삼청동의 '빈스 빈스'는 원두를 팔 때 기한이 거의 다 된 원두를 덤으로 건네주며 자신들이 구운 콩의 유통기한을 지켜나간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준다.

커피콩만 볶아 파는 방앗간이 아니라도, 자가 로스팅의 카페들이 부쩍 늘었다. 나는 똑같은 원두라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오래 볶느냐에 따라 팔색조처럼 다채로운 맛이 나타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맛은 로스터리의 스타일에 따라 더욱 다양해진다. 직화로 확 태워버린 듯하지만 탄 맛의 개성이 더 살아나는 경우도 있고, 시나몬 로스팅의 엷은 듯 서늘하게 침투하는 맛을 제대로 만들어내는 곳도 있다. '칼디'의 숯불 배전이나 버터로 구워 캐러멜 향이 나는 베트남 식 로스팅의 개성도 재미있다.

매년 연말이면 '서울 카페쇼'가 열린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인기를 등에 업은 바리스타 선발대회, 캡슐 형 등 한층 다양해진 에스프레소 머신, '티파덴티스'를 앞세운 브라질 원두...... . 모두 달콤한 하이라이트를 기대하며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쇼에서 가장 주목받은 주인공은 의외의 모습이었다. 커피 볶는 데는 자기가 최고라고 뽐을 내는 각국의 로스터 기계들이 거뭇거뭇한 얼굴로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 그러나 나는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자가 로스팅 카페들이 달갑지만은 않다. 커피콩을 굽는 일은 커피 맛을 만드는 과정에서 개인의 역량에 따라 가장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부분인 것 같다. p102

나는 카페 정키로서 그저 맛있는 가게들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그 한구석에 로스팅 머신이 있으면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구경할 것이다. 염가의 터키산 기계에서부터 '로스터의 벤츠'로 알려진 '프로 바트 엘5probat L5'까지, 로스팅 기계를 탐닉하는 여행도 즐겁다. 가장 기쁠 때는 별다를 바 없는 머신을 쓰고 있는데도, 아주 색다르고 흥미로운 커피를 내놓는 가게를 만나는 경우다.

커피를 사랑하고 커피에 빠지는 사람은 직접 내려보고, 직접 뽑아보고, 그리고 직접 구워보고 싶어 한다. 철인 28호나 자이언트 로보 같은 거대한 로스터가 다투고 있는 '서울 카페쇼' 의 한편에는 깡통 로봇처럼 소박하지만 기발한 생김새의 자작 로스터를 선보이는 동호회 전시회가 있었다. 나 역시 작은 로스팅 수망과 한 줌의 샘플 생두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며 생애 처음 원두를 구워볼 꿈에 젖었다. 마침 동네로 접어드니 백인 남자가 러닝셔츠 바람으로 골목에 나와 프라이팬에 구운 커피 원두를 바람에 식히고 있었다. p103

에스프레소를 맛없게 만드는 삼위일체에 맞서는 방법

한 때 나도 에스프레소는 지옥의 음료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나 같은 변두리 미각은 한약을 마시듯 눈 딱 감고 들이킨 뒤, 0.3초 이내에 설탕과 물로 입안을 소독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모두를 에스프레소 맹인으로 만든 거대한 음모가 있음을 알고 있다. 한국 땅에는 에스프레소를 맛없게 만드는 삼위일체가 존재하고 있는 거다.

삼각 편대의 첫 번째 축은 지금 세계 경제를 위태하게 만들고 있는 팍스 아메리카나다. 우리나라에 에스프레소 계열의 커피 음료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게 된 계기는 '스타벅스'를 필두로 한 미국, 특히 시애틀 계열 커피 전문점의 진출이 결정적이었다. 사실 시애틀은 미국 치고는 커피 맛이 괜찮은 동네다. 미국의 커피란 원래 웨이트리스가 들고 다니는 주전자에서 미시시피 강물처럼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게 제 모습이다. 그만큼 멀겋고 풍미 없는, 약간의 카페인이 희석된 채 들어있는 듯한 커피가 대부분이다. 시애틀은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커피 문화를 가져와 미국인의 커피에 대한 관념을 확실히 바꾸었다. 그러나 컵은 클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그 패권주의는 바꾸지 못했다. <심슨 가족>을 보면 광고물 속 경찰관이 들고 있는 거대한 컵을 이용해 라디오 전파를 쏘기도 한다. 시애틀의 카페 체인은 에스프레소 기반의 커피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다채로운 시럽을 첨가해서 먹는 문화를 제공했다. 달리 말해, 고객들이 우유와 시럽을 넣어 마시는 걸 전제해 커피를 만든다는 거다. 우유의 양도 이탈리아에 비해 훨씬 많다. 그래서 우유와 시럽의 두터운 층을 뚫고도 커피의 향이 올라오도록 에스프레소의 블렌딩을 쓴맛이 강하게 한다. 로부스타 원두의 비중이 높고, 풍미는 떨어진다. 이런 카페 체인에 들어가 '나도 이제 에스프레소 좀 마셔봐야지.' 하는 사람들은 곧바로 그 강하기만 하고 풍미는 별로 없는 커피에 질린다.

두 번째 원흉은 한국 카페 문화의 조급증이다. 한편에는 로스터리와 핸드드립을 통해 커피의 진수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벌어지고 있지만, 에스프레소 중심의 카페는 기계 판매처에서 패키지로 공급해 주는 경우가 많다. 원가 절감을 위해 저질 원두를 대량으로 받아서 쓰는 것이다. 에스프레소 자체의 맛보다는 라테아트 같은 외형에 치중하고, 인테리어를 그럴싸하게 하면 커피 맛있다고 느낄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비싼 에스프레소 머신이 너무 아깝다.

세 번째 축에는 우리가 있다. 에스프레소의 진짜 맛을 즐길 기회를 잃은 고객들은 '원래 쓴 거잖아.' 하며 우유와 설탕과 시럽을 듬뿍 듬뿍 넣는다. 그러면 다시 첫 번째의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카페 주인은 생각한다. 어차피 에스프레소만 시키는 사람도 별로 없고 맛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뭐하러 신경 쓰느냐고? p132

예전에 명동에 있을 때는 '명동 커피집', 그다음 인사동에 있을 때는 '인사동 손흘림', 지금은 다동에 자리잡아 '다동 커피집'이 된 이정기 선생의 에스프레소가 한쪽 방향의 개성을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생각된다. 이 카페는 여러모로 특색이 넘친다. 같은 블렌드러 로스팅의 정도만 다르게 해서 핸드드립과 에스프레소를 만들어낸다는 점도 흥미롭고, 다른 곳에 비해 연하게 구운 커피로 신맛과 과일향이 풍성한 커피를 뽑아낸다는 점도 특이하다. 무엇보다 3,000원 만 내면 모든 메뉴를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어 커피 공부에 아주 적격이다.

나는 친구들을 이 카페에 데리고 가면 '리스트레토 더블'로 첫 잔을 마셔보라고 한다. 리스트레토는 에스프레소보다 더 빠른 시간에 적은 양을 뽑아내기 때문에 에스프레소를 특징짓는 본질의 맛을 더욱 충실히 전달한다. '다동 커피집'이 원래 배전이 약한 카페인 데다, 리스트레토 자체가 빨리 뽑아낸 커피라 크레마는 약하다. 앞에서 말한, '꿀꺽' 하고 설탕을 삼키는 크레마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가 보통의 커피에서 만나기 어려운 상큼한 과일 향의 맛있는 신맛을 확실히 느끼게 해준다. 에스프레소가 쓰지 않으면서 강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p137

정말 맛있는 카푸치노는 에스프레소의 맛에서 80퍼센트 이상 승부가 난다. 에스프레소의 진미에 물들면 얼치기 에스프레소의 나쁜 맛을 알아내 오히려 괴로울 수도 있다. 카페 정키의 딜레마다. p138

연금술사의 방에서 커피를 뽑는 증기기관차를 만나다

커피는 지상에서 살아온 대부분의 시간 동안 에티오피아 고원의 빨간 열매로 은둔해왔다. 이 자그마한 콩이 신비한 각성의 음료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몇 백 년 동안 승려, 상인, 의사, 과학자 들이 굽고 부수고 끓이고 우려내는 실험을 거듭한 덕분이다. 이제 커피는 세계인의 상식이 되었고, 자판기에서 단추 하나만 누르면 누구든 입에 댈 수 있는 생필품이 되었다. 그러나 커피의 깊이에 다가가는 사람들은,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일에도 고도의 과학 기술과 숙련된 정성이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p142

에스프레소 머신은 주 생산지는 이탈리아다. 그러니 오죽하겠는가? 그 기계들은 성능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있어서도 불꽃 튀는 경쟁을 하고 있다. 여기저지 카페를 돌아다니다 보면,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침을 질질 흘리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내 시계에 있는 특수 버튼을 눌러 로봇처럼 철컥철컥 두 발을 움직여 따라오게 하고 싶은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쏙 들어온 놈을 만나기 위해 나는 한때 목숨을 걸 뻔했다.

경복궁역에서 청와대로 가는 몇몇 길에는 예전부터 자그마한 카페가 생겨났다 사라졌다 하곤 했다. 그런데 조금 썰렁했던 바로 그 창성동 영추문길에 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 갤러리 팩토리, 헌책방 가가린 등이 모여들어 아주 기분 좋은 골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mk2' 라는 카페가 있다. 나는 가끔 이 카페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들어가곤 한다. 물론 주인인 사진가 이봉명 씨 때문은 아니다. 이분은 예전에 내 작업실에 놀러왔다가 동네가 좋다며 혜화동에서 집을 구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내는 사이다. 나를 떨리게 하는 것은 바로 페이마faema E61머신이다. 너무 미니멀해 휑뎅그렁해 카페 안에서, 불빛이 은은히 흘러나오는 이 녀석의 뒤통수가 그렇게 빛나 보일 수가 없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보면 앞쪽- 커피를 뽑아내는 부분-이 예쁜 부류와 뒤통수가 예쁜 부류가 있는데, 확실히 이 녀석은 카페 좌석 쪽으로 뒷머리를 내놓고 있어야 한다. ... 육중한 머신의 매력 반대편에는 다시 시간을 거슬러 마법사의 방으로 안내하는 카페 도구들이 있다. 알코올램프의 불로 작은 유리관의 물을 뿜어 올리는 사이펀과, 긴 유리관으로 커피를 차갑게 천천히 우려내는 더치커피 기구들이 그 대표자다. 가끔 이 기구들을 정말 잘 쓰는 장인을 만나기도 하지만, 요즘은 욕심 많은 카페들이 모든 도구를 갖추고 모든 커피를 만든다고 나서는 통에, 겉멋만 든 허술한 커피를 만나 실망하는 일이 종종 있다. 내가 카페의 도구들에 열광하고 미치는 것은 단지 그것이 그럴듯한 앤티크 소품이라서가 아니라, 언제나 살아 움직이며 나를 신비한 커피의 나라로 데려가 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p147~148

고양이 똥, 그리고 달팽이와 코끼리

코피 루왁Kopi Luwak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의 일이다. 나는 그때 그 고양이를 꽉 붙들고 똥을 구걸하지 않은 걸 백만 번 후회했다. 인도네시아의 긴꼬리사향고양이는 근처 숲에서 자라는 커피콩을 먹는데, 겉에 있는 과육만 소화시키고 그 안에 든 콩은 배설물로 내놓게 된다. 그런데 그 배설된 원두가 진국이다. 일단 이놈들이 따 먹는 커피 열매가 제일 잘 익고 좋은 것들이고, 더불어 뱃속의 독특한 발효 과정을 통해 다른 어떤 원두에서도 만날 수 없는 풍성한 맛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우수한 콩을 선별하고 과육을 세척하는 섬세한 과정을 생물학적으로 해결해버리는 건데, 거의 시럽과도 같은 바디에 지극히 복잡한 아로마를 만들어낸다나?

이런 정도니 전설과 숭배가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면 평범한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면서 원두 속에 손가락을 넣고 "코피 루왁" 이라고 주문을 외는 장면이 나온다. <버킷 리스트>에서 졸부로 연기한 잭 니콜슨이 휴대용 사이펀 세트로 내려 마시며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커피도 코피 루왁이다. 이 원두가 지상 최고의 커피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희귀한 커피라는 건 사실인 것 같다. 한 해에 불과 500킬로그램 정도만 생산될 뿐인데, 일본에서 거의 휩쓸어간다. 가끔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이벤트 성으로 판매되고, 국내의 백화점에 등장해 뉴스를 타기도 했다.

카라콜리Caracoli 또는 피베리Peaberry라 불리는 커피는 가끔 만나볼 기회가 있다. 보통 두 쪽으로 가려야 할 원두가 하나로 붙어버린 변종이다. 통통하니 모양도 실한데, 맛 역시 부드럽고 풍성하다. 공 같은 모양이라 구울 때도 골고루 잘 구워진다. 카파콜리라는 이름은 달팽이를 뜻하는 스페인어 카라콜caracol에서 왔다. 코끼리 콩이라고도 불리는 마라고지페Maragogype 역시 큰 몸집과 부드러운 맛으로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피베리는 보통 나무의 가지 끝에 드물게 열리는 큰 원두인 데 비해, 마라고지페는 원두의 크기 자체가 큰 종이다.

와인 만큼은 아니지만, 커피 역시 다채로움과 희귀성을 무기로 특별한 날의 한잔을 기대하게 한다. 그렇지만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라는 무거운 이름을 입에 담은 뒤, 커피 한 잔에 들어가는 50알의 원두 중 블루마운틴이 두세 알이나 되었을까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믿을 수 있는 로스팅 하우스나 로스팅 카페에서 확실한 원산지의 커피를 두루 맛보는 것이 커피의 진미에 다가가는 올바른 길이다. p164~165

M의 이탈리아 가정식 카페로 어서 오세요

삼청동의 '빈스빈스'에서는 새 원두를 사면 기한이 살짝 지난 원두를 덤으로 주는 1+1 행사를 한다. 예전에 거기에서 원두 200그램 두 봉지를 사고 두 봉지를 더 얻어가면서 "갈아주세요."하고 외치는 아가씨를 목격했다. 나는 당장 쫓아가서 묻고 싶었다. "혹시 혼자 사는 건 아니겠죠?" 아무리 좋은 원두도 갈아놓으면 불과 몇 시간 안에 그 향이 졸렬해진다. 그 아가씨는 열 명 이상과 동거하거나, 아니면 그라인더를 장만해야 한다. 아니면 출장 핸드밀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 나 같은 친구를 사귀든지.

집에서 직접 콩을 가는 것은 더 큰 즐거움을 준다. '나의 아침을 깨우는 한 잔의 커피.' 지독한 상투어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당신은 커피를 대하는 순간들 중 언제 잠을 깨는가? 쌉사래한 액체가 혀에 닿을 때? 조금 더 앞이라면, 커피 향이 주방 모퉁이를 돌아 와 코에 닿을 때? 나는 그 전에 깨고 만다. 바로 내 손 안의 그라인더가 끄르륵거릴 때.

커피를 코로 즐기는 데는 여러 단계가 있다. 원두의 프래그런스, 커피액의 컵 아로마, 마신 뒤 콧속의 애프터 테이스트...... . 그중에서도 신선한 원두를 부술 때 터져나오는 프래그런스만큼 폭발적인 향기는 없다. 왜 이 즐거움을 로스팅 가게에서 소모하고 마는가? p171


3장 메뉴는 꼬드긴다

바다에서 만나는 모닝커피와 계란의 발라드

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카페 '보헤미안Bohemian', 핸드드립 커피나 로스팅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이리라. 한국 커피게의 대가 중 한 사람인 박이추 선생이 바다를 찾아와 만든 카페 겸 펜션이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납죽 업드려 아침 커피상을 받았다. 아침의 커피라는 것 자체로도 매혹적인데, 하물며 장인이 내려주는 모닝 드립 커피임에야. 세상 어디를 가서 이렇게 맛있는 모닝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 첫 잔은 하우스 블렌드, 그리고 어제 커피를 주지 못해 죄송하다며 또 한 잔의 커피를 내려줬다. 이번엔 인도 커피다. 마음이 갑자기 울렁울렁했다.

그때 내 마음을 확 하고 사로잡은 것은 어느 쪽의 커피도 아니었다. 커피와 함게 토스트와 삶은 계란이 나왔는데, 그게 가슴속 깊은 곳을 찔렀다. 일본에서 커피를 배워오셨다더니, 역시 일본 휴양지의 유럽 식 펜션 같은 느낌의 아침을 내려주시는구나. 그러니까 료간 식의 전통 일본 요리가 아니라, 일본 사람들에게 여행지에서 서구식 식사를 즐기는 기분을 주기 위한 메뉴인 게다. 동해에 와서 일본인의 서구 판타지를 만나다니...... . 아니다. 더 깊다. 더 먼 곳의 기억이 떠올랐다. ... 커피의 각성과 계란의 영양을 합치면 훌륭한 아침이 될 거라는 기대는 우리 다방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헝가리에서는 커피에 날계란과 그 껍질, 소금을 넣고 끓인 뒤 액체만을 마신다. 독일의 아이에르 카페는 커피에 계란과 우유를 넣고 힘껏 저어 거품을 만든 뒤 들이키고, 지중해와 남미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다. p188

버터 바른 빵 한 조각과 와플 전쟁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옆길의 카페 '베네Bene'는 한동안 나의 베이스캠프였다. 등정의 목표는 정독도서관의 우람한 장서.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만만찮은 책들을 발굴한 뒤 허겁지겁 그 문을 열고 들어가곤 했다. 그 주변에 카페가 별로 없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베네'가 나를 부른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당시로서는 괜찮은 편이었던 한 잔의 라바짜, 그리고 그와 아주 잘 어울리는 한 끼의 식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끈하게 누른 파니니와 수프, 수제 요구르트를 커피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오늘의 메뉴'는 모든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주는 알라딘의 램프였다. 바깥바람이 아무리 스산하게 불어도, 내 손에 쥐어진 책이 아무리 무뚝뚝해도, 나는 그 따뜻한 에너지를 몸에 채우고 그날의 책 속으로 쏜살같이 달려 들어갔다.

유럽의 카페는 작은 식당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자크 프레베르의 어느 시에는 배고픔에 지쳐 카페의 '스테인리스 카운터에 삶은 달걀을 깨는' 환청에 시달리다 강도 살인을 저지르는 남자가 나온다. '크림 커피와 따뜻한 크루아상, 럼을 탄 커피, 피를 탄 크림 커피......' 를 되뇌다, 2프랑을 훔쳐 술 탄 커피와 버터 바른 빵을 먹는다(그 와중에 팁도 챙겨준다.). 이런 모습을 보면 순수하게 '커피'가 카페의 중심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오므라이스, 햄버거스테이크, 김치볶은밥 등의 식사 메뉴에 중점을 두고, '후식'으로 멀건 커피를 내주는 카페들도 적지 않다.

빈속에 카페인을 쏟아부어 위장을 긁어놓지 않으려면 든든한 지원군이 필요하다. 장기 체류를 원하는 카페 정키들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카페들은 요깃거리를 갖추어야 한다. 그럼에도 너무 제대로 된 식사를 파는 가게들은 외면하게 된다. 연하게 구운 이르가체페의 미묘한 고구마 향을 입안에 담으려는 순간, 강력한 카페 냄새가 콧속으로 돌진해온다고 생각해보라. 비록 내 입에 넣은 게 아니더라도 옆 테이블에서 풍겨오는 향기만으로 커피의 미묘한 향을 깨뜨리기란 어렵지 않다. 어떤 카페 체인은 주변에 강한 냄새가 풍기는 식당이 있다면 카페의 입지로는 절대 부적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p210

서구에서 카페 문화를 본격적으로 연 것은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 하우스들이다. 빈은 약해 빠진 서구인에게 커피를 소개하기 위해 '검은 가루를 거르고 우유 넣은 커피'라는 레시피를 만들어냈고, 더불어 크루아상과 도넛이라는 달콤한 친구들을 발명했다. 그 도시에 커피 원두를 두고 떠난 투르크 병사들을 떠올려 그들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으로 구운 롤빵이 크루아상, 동그랗게 튀긴 빵에 시럽을 채운 것이 도넛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빵이 카페의 상식적인 구성물이 된 데에는 서구인의 주식이 빵이었다는 사실도 중요하게 작용하겠지만, 커피의 향과 맛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카페인을 중화하고 고소함을 더할 수 있는 음식이 바로 빵이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아주 순수한 커피주의자라면 빵조차 커피 맛을 일그러뜨린다며 거부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태껏 최소한의 빵까지 거부하는 커피 지상주의 카페는 발견하지 못했다. p212

식사인지 디저트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파이의 시절을 지나, 요즘은 타르트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듀크렘'처럼 작정하고 여러 메뉴를 먹을 수 있는 곳도 좋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은 종로경찰서 건너편 아름다운가게 길에 있는 에그 타르트 가게다. p217

검은 왕자를 만나러 가는 통로는 오아시스의 폭포

빈의 카페는 여러 독특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카페의 나무 독서대에는 항상 다양한 종류의 신문이 꽂혀있어, 신문을 사서 보기 힘든 시대에 지식인들이 모여 시사 정보를 접하고 토론을 하던 전통을 엿보게 한다. 여흥을 위한 당구대 역시 이 지역 카페의 전통으로, 모차르트가 휴식 시간에 나타나 실력을 뽐냈다고 한다. '카페 프뤼켈'에는 당구대는 없지만 그 대신 피아노가 놓여있다. 정기적으로 현대의 모차르트들이 초청되어 연주를 펼친다고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우유를 첨가한 복잡한 메뉴와 토르테와 같은 달콤한 간식거리도 빈 카페가 세계화시킨 것들이다. 여기에 하나 더, '카페 프뤼겔'이 자신들이 원조라고 주장하는 것이 있다.

깔끔한 셔츠와 베스트 차림의 웨이터가 우리가 주문한 커피를 가져다준다. 은색 쟁반에는 커피와 더불어 우유와 티스푼, 그리고 물이 담긴 유리잔이 함께 나온다. 요즘은 우리나라 카페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세팅인데, 이것이 '카페 프뤼겔'에서 태어난 서빙 방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물'이다. p226

빈에 가기 전에도 나는 여러 카페에서 물컵을 함께 내주는 모습을 보곤 했다. 한국의 다방이나 식당에서는 공자로 물을 주니 당연한 서비스로 여겼다. 그리고 그 용도는 쓰디쓴 커피를 마신 뒤에 입을 헹구기 위한 건 줄 알았다. 그런데 반대였다. 빈 카페의 물은 커피를 마시기 전에 들이켜야 한다. 커피를 맞이하기 전에 입안을 정화하는 의식인 것이다.

정통 아랍식 커피를 마실 기회가 있다면, 역시 쟁반 위에 상냥하게 놓인 물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랍에서는 커피를 마시기 전에 그 고귀한 맛을 맞이하기 위해 입안을 물로 깨끗이 하고, 커피를 마시고 난 뒤에는 뒷맛을 즐기기 위해 물을 마시지 않는 게 상식이다. 이러한 정화의 의식은 지구 반대쪽에서는 더욱 강화된 형태로 존재한다. 삼성동 코엑스의 복잡한 상점가를 헤매다 보면 '타라덴테스Tiradentes'라는 카페 체인을 만나게 된다. 브라질에서 태어난 카페로, 그곳 문화에 따라 에스프레소와 함께 탄산수를 내준다. 탄산수로 입안을 깨끗이 하면 커피의 맛과 향을 더욱 투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란다.

나는 또 다른 이유 때문에라도 커피 잔보다 물 잔에 입을 먼저 대곤 한다. 커피의 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잔의 커피에서 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구할을 훨씬 넘는다. 물맛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지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수돗물에 남은 철분이 타닌의 효과를 강화해 좋지 않은 쓴맛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미네랄워터의 금속 성분이 커피 맛에 나쁜 영향을 주기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도 나폴리 지역의 에스프레소를 최상급으로 치는데, 그 지역 물이 베수비오 화산 암반을 거치며 미네랄 함량이 이상적으로 조절된다는 설도 있다.

나는 먼저 물컵을 통해 입안에 머금은 물 한 모금이 정말로 평온할 때에야, 다음에 따라올 커피가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 기대한다. 커피 전문가들도 카페 장비를 갖출 때 놓치기 쉬운 부분이 정수기라고 강조한다. 물맛의 중요성은 <미스터 초밥왕> 의 쇼타만이 아니라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은찬 역시 똑바로 알고 있어야 하는 포인트다. p228

미국인들은 오래전부터 미시시피 강물처럼 묽은 액체를 끝없이 리필해주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살아온 것 같다.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에 여행을 가서는 커피가 너무 진하다고 불평을 해댔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에스프레소에 다량의 뜨거운 물을 타 묽게 만든 '아메리칸 커피'다. p229

나는 혼자서 쓸데없은 고민에 빠졌다. '커피 중에는 에스프레소가 가장 카페인이 적고, 그걸 또 물에 타서 마시면 확실히 위에 오는 강한 자극을 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드립의 명가에 와서 스트레이트 커피를 마시지 않고, 에스프레소를 물에 희석해 마시는 것 역시 너무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불가의 절제를 위해서는 커피의 풍미에도 너무 깊이 다가가지 않는 것이 옳은 건가?

중생의 상념은 상념일 뿐, 스님들은 그에 개의치 않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만은 알려드리고 싶었다. 정녕 물과 에스프레소를 섞고 싶으면, 뜨거운 물이 담긴 큰 잔에 에스프레소를 넣는 편이 에스프레소를 먼저 넣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것보다 맛이 낫다는 사실을. 이것 역시 집착이라고 해야 할까? p231

요즘은 이런 행운이 점점 아슬아슬해지는 걸 느낀다. 어떤 인간이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켰기에 '물은 셀프'이며 '별도로 비치된 식수는 없습니다.' 란 말인가? 정수기에 돈을 아끼는 카페도 얄밉지만, 물과 유리컵을 내주는 데 야박한 카페도 달갑지 않다. p232

태양을 사냥하고 곰과 껴안고 자는 법

1990년대 후반, 그리스 북부의 항구도시 테살로니키에 간 적이 있었다. ... 박람회장을 나선 나는 목을 축일 곳을 찾아 헤맸다. 어느 숲의 계단을 내려오는데 담벼락 아래로 고양이들이 보였다. 카페 한쪽 벽 위에 마치 손님들이 올려둔 가방들처럼 줄지어 앉아있었다. 나는 어느새 그들 옆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옆 테이블의 사람들은 보기에도 시원한 얼음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웨이터에게 저게 뭐냐고 물었다. "카페 플라페 café flappé요." 난 그걸 달라고 했다. 꿈쩍도 하지 않는 고양이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빨대를 힘껏 빨았다. 아, 진하다. 깜짝 놀랄 정도로 강하고 달콤하고, 그러면서 익숙한 맛이었다. 후에 나는 그 음료의 유래를 알게 되었다. 내가 찾아가기 40년 전인 1957년에 바로 그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국제 무역 박람회가 열렸다. 스위스의 유명한 인스턴트커피 회사 네스카페가 이곳에서 '동결 건조 커피'라는, 인스턴트 역사상으로는 매우 획기적인 제품을 내놓게 되었다('맥심 아라비카 100' 이나 '테이스터스 초이스 수프리모'처럼 굵은 입자를 지닌 나름대로 고급형 인스턴트커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박람회장 안에 물을 끓일 도구를 마련해두지 않았던 거다. 성질 급하고 목소리 높은 그리스 고객들은 마구 난리를 피워댔을 것이다. 네스카페측은 하는 수 없이 커피를 찬물에 녹여 내놓게 되었는데, 이게 진화하여 얼음을 넣고 셰이크 상태로 만들어 빨대로 빨아 마시는 오늘날의 플라페가 되었다고 한다.

커피의 질과 맛이야 어떻든, 얼음에 뒤덮인 강렬한 카페인은 여름날의 한순간을 짜릿하게 만들어주었다. 사교 생활에 굶주려있었던 그리스인은 이 플라페 덕분에 카페 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고, 지금 플라페는 테살로니키와 그리스를 넘어 터키와 발칸 지역을 점령한 범 콘스탄티노플 세계의 음료가 되었다. 나라마다 조금씩 레시피가 다른데, 커피를 녹일 때 물 대신 코카콜라를 쓰기도 한단다. 하긴 코카콜라 맛 코피인 '코카콜라 블랙Coca-Cola Blak' 이란 제품도 출시되었으니. p237

가까운 이탈리아에도 플라페의 소식은 들려왔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이 그딴 싸구려 커피에 만족할 리 없다. 그들은 네스카페 대신 에스프레소를 사용한 에스프레소 프레도freddo와 카푸치노 프레도를 통해 여름 커피의 진화에 동참했다. '스타벅스'는 이를 상품화한 '프라푸치노'를 여름 시장의 주력 메뉴로 내놓고 있다.

한 여름에 이들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잘게 갈린 얼음 조각 사이로 스며든 커피는 묘한 질감으로 무장한 채 입속으로 뛰어든다. 프라푸치노가 든 컵을 머리 위로 들어 반짝거리는 햇빛을 투과시켜보라. 그 다음 입속으로 들어와 씹히는 얼음 조각들은 얄미운 태양을 씹어 먹는 듯한 통쾌감을 준다.

에스프레소 본연의 맛을 차갑게 변신시키고자 하는 여러 카페의 노력들도 재미있다. 최근에는 에스프레소 샷 네 개를 한 컵에 넣어 그 강렬함으로 냉기에 맞서고자 한 부암동 '드롭dropp'의 레시피가 흥미로웠다. p238

요즘은 그렇게, 없을 법한 곳에 있는 카페들에 더 정이 간다. p247


4장 보물은 숨어있다

잔이 그릇그릇 나도, 손댈 놈은 따로 이시랴

'ㅅ' 카페는 정겨우면서도 두렵다. 책 한 권을 기증하면 커피 한 잔을 주는 곳이라 한동안 책장도 정리하고 커피도 얻어 마시는 이중의 신세를 졌다. '북스프레이 조오찬朝午餐 책모임'이라는 것도 열어, 시끄럽게 떠들면서 매상도 안 올려주는 객들을 불러 모으곤 했다. p251

커피를 아무리 좋아해도, 학교 운동장의 수도꼭지라도 되는 양 드리퍼나 퍼켈레이터에 입을 대고 마시는 사람은 없다. 화분 없는 꽃은 있지만, 잔 없는 커피는 없다. 둘의 관계는 절대적이다. 어떤 잔은 커피라는 선물을 전달해주는 택배 기사에 불과할 수 있지만, 때론 데이트 상대가 입고 있는 옷이나 타고 온 자동차와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 우리의 눈은 잔을 바라보고, 손가락은 잔을 만지고, 입술은 커피보다 잔을 먼저 맛본다. 카페 정키들이 커피 잔의 무늬와 질감과 온도와 무게에 민감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p253

강릉의 '테라로사'나 양수리의 '왈츠와 닥터만' 같은 박물관 급 카페들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컵 컬렉션을 만끽하게 해준다. 스페인의 도자기 커피 잔은 하얀 타일 위로 푸른 샘물이 흐르는 아랍 식 정원을 재현해 놓은 듯하다. 독일과 북유럽의 잔은 추운 날씨 때문인지 묵직함과 두꺼움으로 검은 보석을 보위한다. 시애틀 스타일의 카푸치노라면 당연히 하얀 바탕에 초록색 로고가 그려진 잔에 받아야 할 것 같다. 도회적인 카페 체인의 잔은 너무 청량한 것보다는 아프리카 풍의 그림이나 커피의 로망을 들썩이게 하는 이국적 지명들이 적혀있는 편이 어울린다. p253

유리잔은 커피와 우유가 층층이 섞여있는 모습을 만끽할 수 있게 하는 점도 좋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뜨거운 카페라테를 유리컵에 담아서 준다. 손잡이가 없으니 냅킨으로 감싸주기도 한다. 조금씩 마시면서 우유와 커피가 섞이며 만들어내는 갈색의 스펙트럼을 눈으로 감상할 수 있어 좋다. p254

카페의 음악이 나를 '아주 그냥 죽여' 주는 방법들

겉보기엔 멀쩡했다. 그러나 카페에 들어간 우리는 10초도 안 돼 튀어나오고 말았다. 때마침 갈고 있던 원두의 시큼한 군내 때문에? 솔직히 그 정도의 경륜은 못 된다. 메뉴판에 적힌 가격이 터무니없어서? 비싼 값의 정체가 궁금해 주저 앉아보기도 한다. 우리는 코가 아니라 귀를 찔렸다. 시끌벅적한 수다와 소음은 차라리 참을 만했다. 음악이 우리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 상큼한 외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시끄러운 댄스 가요가 귓전을 때리기 때문이다. 혹시 그런 카페를 주로 찾는 어린 세대의 취향을 반영한 것일까? 갓 주민등록증이 생긴 친구가 대답해 주었다. "이런 데서 누가 음악에 신경을 써요? 맘에 안 들면 헤드폰 끼면 되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 저음질의 MP3 음악 두세 곡을 끝없이 틀어대는 건, 무신경해서가 아니라 배짱과 소신 때문인 건 아닐까? 나아가 철저한 계산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여대 앞 카페 주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음악이 시끄러워야 빨리 먹고 빨리 일어나요. 조용하면 수다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죠." 정말로 좌석 회전율을 높이는 데에는 그만한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나처럼 카페에 죽치고 사는 인간들은 문을 연 뒤에 바로 질겁하고 달아나게 하는 효과도 있으니까. p259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넘버 파이브>를 보면, 주인공 넘버 파이브가 들고 있는 커피 잔 안을 클로즈업한 컷으로부터 작은 엘피판이 돌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커피 잔 속 소용돌이는 엘피판의 소용돌이와 겹친다. 검고 둥근 우주 위에서 하얀 음표들이 손에 손을 잡고 뱅글뱅글 돈다. 나 역시 예전부터 그와 비슷한 착각을 하곤 했다. 커피 잔을 들고 천천히 돌리면, 그 안의 소용돌이가 엘피판처럼 돌아가며 음악을 흘려내는 ..... . 그런 시각적 연상 때문인지, 취향의 유사성 때문인지, 핸드드립커피 전문점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다. 정독도서관 앞의 '연두'가 그렇고, 교대역 근처의 '바오밥나무'도 그렇다. 디지털화된 차가운 소리가 아니라, 오래된 음반의 눅진눅진한 소리가 커피의 향을 더욱 아련하게 만든다. 넘버 파이브 역시 <브람스 교향곡 제1번 C단조>를 듣고 있었다.

많은 카페 주인은 자신이 내리는 커피만큼이나 이 음악들을 사랑한다.

젊은 뮤지션들이 즐겨 돌아다니는 홍대 앞은 음악 듣는 재미만으로도 찾아갈 만한 카페가 적지 않다. 조금 과장되게 말해, 주인의 음악적 취향이 구리면 살아남지 못하는 동네다. 약간의 문제는, 여기저기 있는 보석들 사이로 뭔가 부족한 이미테이션이 스미듯이, 이곳 카페들의 음악적 정체성도 서로 닮아가며 질리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p261~262

많은 카페가 음악과 어쩔 수 없는 연애에 빠져있듯이, 많은 뮤지션이 카페에 대한 사랑으로 끼니를 거르고 있다. 커피에 넋이 나간 딸들은 어쩔 수 없다는 내용의 바하의 <커피 칸타타>, 커피 중독자를 경쾌하게 풍자한 <자바 자이브> 등 커피와 카페를 테마로 한 음악도 적지 않다. 지금도 어느 카페에 빠져 커피 한잔의 도움으로 악보를 채워나가는 뮤지션들은 저도 모르는 새 그 카페 같은 노래를 만들고 있을 거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밴드 '모카Mocca'는 왜 고향인 자바를 버리고 모카를 택했을까? 역시 이국 취향일까? p265

바리스타와 아르바리스타 사이로 깊은 강이 흐른다

나는 소박한 '두부집'이든 유명한 '슈만과 클라라'든, 바로 그 사람이 바리스타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카페가 좋다. p288

시럽보다 달콤한 소파, 대지보다 평온한 테이블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정작 내가 그들의 카페 스타일 중에서 가장 부러워한 요소는 그 모든 커피들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가 간절히 기대한 것은 그들의 카페 '센트럴 퍼크' 한가운데 자리잡은 푹신한 소파에 앉아보는 거였다. 외로운 독신들이 뉴욕이라는 차가운 행성에서 카페를 자신들의 아지트로 만드는 데 그 소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p294

요즘은 내가 아끼던 소파들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 굳이 소파가 아니더라도 나를 꾀는 의자는 적지 않다. 예전 카페들은 모든 것을 단정한 세트처럼 맞추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했지만, 요즘은 같은 테이블의 의자도 제각각의 디자인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단발머리를 아무렇게나 잘라놓았다고 멋들어진 섀기커트가 되는 게 아니듯, 서로 다른 듯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빈티지 스타일 의자만이 우리를 매혹시킨다.

여기에도 두 가지 타입이 있다. 하나는 정말 주인이 의자 컬렉터라서 오랜 시간 동안 모은 것들을 정성 들여 배치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컬렉터 풍 세트를 주문해 들여오는 경우다. 요즘은 후자가 많아, "빈티지인 척하고 서로 다른 척하지만 중국 어느 공장에서 지난달에 찍어낸 이 의자 세트는 어느 어느 카페의 것과 똑같네." 하는 예민한 친구의 말을 듣기도 한다.

누군가는 집에서도 마실 수 있는 커피를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써가며 카페에서 마시냐고 한다. 카페라는 공간을 찾는 이유는 단순한 커피 이상이다. 우리는 돈과 시간과 실력의 한계로 자기 집에는 갖추어놓을 수 없는 라이프스타일을 그곳에서 잠시 체험하는 것이다. 그 대가는 단순히 커피 원가가 얼마인가를 논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어야 한다. p296

달콤한 시럽보다 간절한 소파가 있듯이, 때론 커피 한잔보다 더 아른거리는 테이블이 있다. 나의 오래전 단골 카페였던 대학로의 '더 테이블'은 그 이름처럼 가운데 커다란 테이블을 지니고 있었다. p298

작품과도 같은 테이블을 찾는다면, 대학로의 '테이크아웃 드로잉 아르코'가 좋은 기회다. 그곳에서는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의 평범한 테이블은 찾아보기 어렵다. 카페를 채운 가구들은 조각가 안규철의 작품으로, 이곳은 살아있는 테이블 전시장인 셈이다. 구멍이 뽕뽕 뚫린 철망으로 덮어 씌운 삐죽삐죽한 테이블 속에 웅크리고 들어가려면 어딘가 찔리기 일쑤지만, 한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다. p301

쿠폰 없는 지갑은 여권 없는 입국 수속

홍대 앞의 카페들을 다니면서 생각했다. 일본을 닮으려고 꽤들 애쓰는구나. 지방의 여러 카페들을 다니면서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홍대 앞을 닮아가려고 다들 애쓰는구나. p306

어떤 카페는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쿠폰에 예쁜 도장을 채워가는 재미만으로 들락거리게 된다. 그런데 막상 쿠폰과 음료를 바꾸는 순간이 되면, 그동안 찍어둔 도장들이 아까워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래도 하는 수 없다. 보통 쿠폰은 그동안 마신 음료와는 상관없이 꽤 괜찮은 메뉴를 공짜로 마시게 해준다. 나는 그 쿠폰 덕분에 가장 싼 음료인 에스프레소 열 잔을 모아, 내 돈으로 절대 시키지 않을 '카페 럭셔리 왜 비싼지 주인도 몰라치노'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 쿠폰은 어떤 의미에서는 카페 정키의 집념과 의지를 대변해주는 문서다. p310

내가 카페 주인이라면 좀 더 세련된 꼼수를 부리리라. 커피 한 잔에 도장 하나는 식상하다. 과테말라, 예멘,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의 커피를 한 번씩 마시는 미션을 만들어, 쿠폰이라는 여권에 세계 일주하는 재미를 차곡차곡 채워가게 하는 거다. 임무가 완수되면 상파울루에 있는 자매 카페의 음료권을 준다. 항공료는 본인 부담. p311



3. 감상

한줄기 단비와도 같이 저자의 개성이 유난히 돋보이는 책으로, 내가 선호하는 방식의 구성이 마음에 든다!
또한 작가에 대하여 마음대로 상상해 보게 되는 카페와 커피를 향한 맛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개성이 강하며 독특한 생활을 하는 작가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는 그의 글쓰기가 마음에 든다. 그동안의 6권의 카페 관련 책 중 가장 나와 분위기가 맞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작가 상상
저자는 다방면에 걸쳐 해박하고 열정적인 실력을 갖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다가온다. 글의 독특한 구성과 자유로운 형식이 그러하고, 그러면서도 심도 있는 균형감이 묻어난다. 알 것은 다 알며 누릴 것 또한 확실히 누리려 드는 조금은 욕심쟁이이나 그렇다고 금전적 소유욕이 강한 위인 같지는 않다.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뿌리를 쫓아 서슴없이 직성이 풀릴 때까지 달려들지만,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하지 않는 고집스러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한 섭리가 이 책의 곳곳에서 풍겨 나옴이다. 히피족 같은 행색을 하고 다니며 소심한 관찰력을 지닌, 약간은 괴짜 사나이가 연상된다. 어떻게든 자신의 내공을 마음껏 펼치며 할 말 다하고 사는, 주장 강한 모습이 재미나고 매력적이다.

책의 기획
책은 4장으로 구성하였다. 서술적인 문구로 카페, 커피, 메뉴, 그밖의 요소를 구성하는 것들인- 커피잔, 카페 음악, 소파, 테이블 등의 부대 요소와 소품을 한덩어리로 하여, 크게 네가지의 부분에 대하여  하나하나 세밀하게 언급해 나간다. 주 내용은 여늬 책들과 비슷한 관점을 지니나, 책의 접근 방법과 제목 및 목차를 나타내는 어휘적 선택에 있어 다른 카페 서적과는 차별성을 지닌다. 자기답게 쓰면서 표현할 수 있는 방향 대로 개성을 한껏 발휘하며 구성한 점이 독특하고 흥미롭다. 기존의 책들과는 달리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고 할까. 이렇게도 카페에 관해 책을 쓸 수 있구나 하고 감동했다.

수필 형식
내용을 베끼기 힘들게 이야기 형식으로 서술한 점도 나의 글쓰기 취향과 유사하여, 나와 같은 사람도 이와 같이 책으로 출판해볼 수 있겠구나 하는, 나름 야무진 착각과 포부를 가져보게 한다. 다른 책들처럼 카페 언급이 많으나, 일반적으로 기피하는 비평도 서슴없이 가한 점이 시원하다. 그러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치밀하며 설득력과 타당성이 있기에 작가의 주장에 매료된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카페 관련 다른 책자들의 경우와 같이 대중을 향하여 이도 저도 아닌, 무색의 내용들을 콘셉트 삼아 테마 중심으로 엮거나, 마치 까페 업주들과 짜고 치는 고스톱 마냥 들어 내놓고 전시효과 내지 볼거리나 제공하기에 급급하지  않은 점 역시 내 취향에 맞다. 무엇보다 글의 구성이나 전체적 기획 등 모든 면에서 사소하게나마 자기만의 고유성을 지니며, 작가의 이야기 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형식을 취한 점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다.

영상 자료의 활용 기법
사진의 삽입도 카페 홍보나 전략적 광고 목적에 부합하지 아니하고, 작가의 주관성과 태도를 녹여내는 맥락과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일체 공간의 인테리어 및 아웃테리어에 집착하며 치장을 부각시켜주기 위해 선심을 쓰거나, 그럴듯한 분위기 연출에 가담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톤과 기법의 취향 중심으로 나타낸 점이 이 책의 일관성이다.

전체 마무리
글과 사진, 카페와 커피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사랑 등, 카페의 커피와  더불어 일상을 영위하는 낭만적 카페 정키로서의 삶과 지향성이 당당히 들어난다. 한마디로 저자가 붙여놓은 책의 부제처럼 "커피 홀릭 M의 카페 라이프" 그대로인 것이다. 이러한 일상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책으로 옮겨놓을 수 있는 배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바로 '실력 있음' 때문이란 결론이다.
저자에게는 독자를 향한 카페 탐방이나 레시피적 소개가 아닌, 카페와 함께 일상을 영위해 가는 소박하고 구수한 행복과 뚝배기에 담긴 장맛과도 같이 곰삭은 진정성이 우러나온다.
글의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다소의 동질감이 느껴졌지만, 어쩐지 저자의 실제 외모나 생활상이 그리 매력적일 것 같지는 않다. 대화 역시 어떤 분위기 일지 잘 모르겠다. 나로서는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시니컬하고 보이시한 인상이 아닐까 짐작해볼 뿐.
참 궁금하다. 작가의 일상을 영위해 나가는 독특한 삶의 방식과 취향적 태도가 말이다. 우연한 일치감에 혹시 혈액형이라도 같을까 하고 감상적 추측을 해 본다. 언제 기회가 되어 만나게 되면 꼭 물어봐야겠다. 혹시 그 이상하다는 ×형이세요? 하고. ㅋㅋㅋ

나도 이와 같은 형식의 산문적 수필 형식과 구성으로 책을 엮어보고 싶다. 허면 내공과 자질이 관건이렸다. 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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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6.30 07:08:45 *.197.63.9
비몽사몽이다. 기분에 넘쳐 밤을 새운 까닭이다. 그러나 정작 리뷰 때문이 아니다. 창조놀이의 카페 탐험과 더불어 단군의 후예에의 참여를 통한 문제 해결의 욕구와 과정에 대해 글을 쓰느라 그랬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못 올리고 만다. ㅠㅠ 그걸 리뷰 [5]과 [6]번 사이에 넣고 싶었던 이유가 뭘까? 올리기는 하되 숨기고 싶은 것 같다. ㅎ~

까탐 리뷰 [5]과 [6]번의 인용 부분은 사실 새벽 책읽기를 하며 비몽사몽 간의 내용을 적은 느낌이다. 재독 후 올리려 했으나 너무 미뤄져 그냥 올린다. 후에 다시 읽게 되면 그때 넣고 싶은 부분을 보충하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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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
2010.07.01 06:13:00 *.197.63.9
다시 확인 했다. 내가 나를 의심하는 기우였다. 버릴 것이 없는 맛있는 책! 가슴이 울렁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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