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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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1일 21시 14분 등록
커피 오다 005.JPG    글쓰기는 개인 기업이다!
글쓰기의 승부는 언제나 혼자 하고, 혼자 해야 옳고, 비평도 스스로 해야 한다. 글쓰기는 혼자 하는 일이기에 자유롭고, 즐겁고 창조적이다
p514



<안정효의 글쓰기만보>

1. 저자: 안정효

1941년 12월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1965년 서강대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60년 초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영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소설과의 인연을 맺은 그는 1964년 「코리아 헤럴드」 기자로 입사해 한국일보사의 「코리아 타임스」 「주간여성」 기자(1969~1970), 한국 브리태니커 회사 편집부장(1971~1974), 「코리아 타임스」 문화체육부장(1975~1978)을 역임하였다. 1967년에는 월남전에 지원하여 1년간 백마부대에서 복무했으며, 1975년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비롯, 지금까지 약 150여 권의 도서를 번역하였다.

1973년 <실천문학>에 장편 『전쟁과 도시』 (후에 『하얀전쟁』으로 개제)로 등단한 이래, 『가을바다 사람들』 『학포장터의 두 거지』 『동생의 연구』 『은마는 오지 않는다』 『미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나비 소리를 내는 여자』 『낭만파 남편의 편지』 『태풍의 소리』 『착각』 『실종』 『미늘의 끝』 『지압 장군을 찾아서』 등을 발표하였다. 작품 가운데 『하얀전쟁』 『은마는 오지 않는다』 『착각』 등은 영어, 독일어, 일본어, 덴마크어 등으로도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1989년 미국에 있는 출판사에서 『하얀 전쟁』이 출간되면서 한국 중진의 소설가가 된 안정효는 1982년 제1회 한국번역문학상과 1992년 중편 「악부전」으로 제3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밖에,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미늘」「태풍의 소리」「나비소리를 내는 여자」「낭만파 남편의 편지」「실종」「가을바다 사람들」등의 많은 작품을 집필했고, 20년이 넘는 번역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터득한 영어에 관한 지식을 담은 「안정효의 영어 길들이기」시리즈(번역편, 영작편, 영역편)를 펴내어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대학원에서 문학 작품의 번역을 강의한 바 있다.

'재미가 없으면 절대 하지 않는다'는 그는 이어령 교수의 권유로 시작했던 번역도 다른 작가의 작품을 한국어로 옮기는 일이 즐거워 계속 하는 것이라고 한다. 엄격하게 자기관리를 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번역하고 있는 그는, 보통 한 작품에 10년 이상의 준비를 해서 글을 쓴다고 한다.

20세기에 만들어진 영화 약 이만 편을 종교 영화, 역사 영화, 서부 영화 같은 식으로 분야를 나누어 각 장르당 한 권씩 써 나갈 계획으로 『헐리우드 키드의 20세기 영화 그리고 문학』의 집필을 시작하였으며, 지금까지 『전설의 시대』,『신화와 역사의 건널목』,『정복의 길』, 『지성과 야만』, 『밀림과 오지의 모험』, 『동양의 빛과 그림자』, 『영화 삼국지』, 『인생 4계』 등을 출간하였다.

"70이 넘어서도 계속 글을 쓸 생각이야. 마흔 이후부터는 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기 위해서 먹을 것 이상은 돈 벌지 않겠다고 각오했지. 그때부터는 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았어. "

"소설가에게 가장 큰 재산은 경험인데, 실제로 경험하는 것보다 책에서 얻는 경험이 더 많거든."

"인생이란 담벼락에 낙서를 하듯이 아무렇게나 살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경험을 쌓고 지혜를 얻고 생각이 달라진 다음 뒤늦은 깨우침에 따라 다시 고쳐 써도 되는 그런 무책임한 것이 아니다." - (예스24 인용)

 

* 책 속에서의 저자 인터뷰

하나, 글쓰기는 개인기업이다!

작가는 언제 어떤 작품을 쓰게 될지 잘 모른다. 일단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고 나면 언제 어디서 어떤 자료를 필요로 할지 모르고, 그래서 아무리 평화 시라고 해도 나는 모든 글쓰기 전쟁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해놓는다.

전쟁. 그렇다. 좀 험악하게 비유하자면, 작가의 삶은 다른 모든 경쟁적인 직업인의 삶이나 마찬가지로 하나의 전쟁이고, 하나하나의 작품은 저마다 한 차례 전투여서, 여러 전투에 대비한 갖가지 전략과 전술을 포괄하는 전체적인 전쟁 계획이 필요하다. p300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싶은 작가는 평생 써야 할 여러 작품을 설계하고 준비해 나가야 한다. 작가로 등용되기 전에 많은 작품을 써보고, 신춘문예 당선 소설의 후속작들을 미리 어느 형태로든 만들어 놓아야 하는 필요성이 거기에서 생겨난다.

번역에 대해서도 그런 얘기를 했었지만, 글쓰기는 개인 기업이다. 기업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기도 해야 하지만, 부기학(簿記學)도 이해하고, 제품 관리와 배급과 수송, 반품의 관리, 그리고 함께 일할 인력을 선발하고 다루는 용병술까지 알아야 한다. 거기에다 다른 제품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한 상품의 다양화도 필수적이다. p301

처음에는 무계획적으로 진행되던 자료 수집은 작품이 인물소설이냐 아니면 상황소설이냐, 또는 기둥줄거리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에 필요한 본격적인 형태로 수집 방법이 바뀐다.

그리고 작품을 임신하면 입덧이 시작된다. 거듭되는 입덧과 함께 자료 수집에는 가속도가 붙고, 아직 다른 작품을 끝내지 않았는데도 다시 만삭에 이르면, 해산을 준비해야 한다. 해산의 준비는, 문학용어로 표현하자면, 구상(plot)이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멍하니 앉아 담배를 피우고 허공을 응시할 시간이 없다. p302

아무리 늦은 정보라도 나는 쓸 만한 내용이라면 절대로 버리지 않고 쪽지를 만든다. 그러고는 개정판이 나오는 경우를 위해 그런 지각 정보는 따로 모아 보관한다. 특히 어떤 작품이 잡지에 실리기는 했어도 아직 단행본이 나오지 않은 경우에는 자료 수집을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작품의 퇴고는 책으로 묶여 나올 때까지 계속해야 하고, 그래서 예를 들어 2004년 「현대문학」에 발표했던 중편소설「뗏장집 김노인의 마지막 하루」를 위한 자료철은 아직도 폐기하지 않은 채 쪽지들을 차곡차곡 먹인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를 펴낸 출판사가 문을 닫아 절판이 된 지 벌써 오래이고 보니, 혹시 개정판이 절대로 안 나온다고 하더라도, 앞에 소개한 일화 정도의 자료라면 좀처럼 버릴 마음이 나지 않는다. 지금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지만, 혹시 어느 단편소설에서 나이 많은 등장인물이 어렸을 적에 겪은 전쟁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올지 모르고, 그러면 이런 쪽지들은 틈을 찾아 들어가 제자리를 마련할 잠재성이 적지 않아서이다. p306

'나중에 글쓰기 인생을 위한 에필로그' 항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어는 정도 작가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 콩트나 수필 같은 조각글을 써달라는 청탁서가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오는데, 바로 이런 때가 성공한 다음의 몸가짐과 작품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시기다. 성공의 단맛에 도취되고 흥분하여 아까운 정보를 부스러기로 낭비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p307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준비가 이루어지면, 나는 그동안 모아놓은 모든 관련 자료를 꺼내 바구니에 담아놓고, 다시 정리하여 제 1장에 들어갈 쪽지들만 따로 뽑아낸다. 그러고는 쪽지들을 가지고 그림 맞추기를 하듯, 제 1장에서 벌어질 상황의 기승전결을 연결시킨다. 이렇게 순서대로 모든 쪽지를 작은 책처럼 배열한 다음, 나는 낚시를 간다.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낚시를 가는 까닭은, 물가에 나가 앉아 휴식을 취하는 동안 가장 생산적인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고기가 잘 잡힌다고 해도 사람이 많은 곳에는 자리를 잡지 않는다. 입질이 없더라도 혼자 조용히 앉아, 서울로 돌아가서 써야 할 글에 대한 구상을 하고 싶어서이다. 앞으로 한 주일 동안 써야 할 부분의 상황과 인물 설정, 대화 따위를 생각하다가, 좋은 표현이나 단어, 새로 첨가할 내용 따위가 생각나면 다시 쪽지에 적어 호주머니에 자꾸자꾸 쑤셔 넣는다. 그래서 나는 나의 차와 낚시복뿐 아니라, 자주 얻어 타는 남의 자동차에도 필기 도구를 여기저기 비치해 놓는다. 글판과 차안, 온 세상이 나의 집필실이다.

과제가 주어지면 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구상을 위한 산책부터 나가보라. 줄거리가 안 풀려 답답해지는 글 막힘 상황(writer's block)이 닥치면, 조바심을 할 필요가 없다. 다른 모든 일이나 마찬가지로,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머리를 혹사하면, 모든 분야의 과로한 노동자나 마찬가지로, 일을 못한다. 반면에, 강이나 산으로 가면 저절로 피로가 가시고, 피로가 가시면 생각의 낚시에 저절로 물려 올라오는 착상이 적지 않다. 생각을 돌려 풀어주면, 나는 가만히 있어도 생각 혼자 돌아다니며 쓸 만한 단어와, 표현과, 사건을 물어다 주고는 한다.

그래서 나는 산으로 낚시를 간다. p310


둘, 저자가 설명하는 작가로서의 일상과 신념 및 성실한 항상성!

나는 아침 여섯 시쯤에 일어나면 세수도 하지 않고, 이도 닦지 않고, 신문도 보지 않고, 글쓰기부터 시작한다. 가장 머리와 마음이 맑을 때 가장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간혹, 좀 창피한 얘기지만, 깜박 잊고 오후에 세수를 하지 않은 채로 외출을 하는 지저분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렇게 네 시간쯤 집중적으로 글을 쓰고 나면, 머리가 탁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머리가 탁해지는 시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빨리 돈다. 글쓰기처럼 극심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을 네 시간이나 하고도 머리가 아프지 않은 사람은 '돌대가리' 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머리가 맑지 않으면 글쓰기를 중단한다. ... 그런 상태에서 쓴 글은 어차피 나중에 다시 써야 한다. 그래서 웬만한 날이면 이 시간에 나는 산으로 '낚시'를 간다.

한 시간 가량 숲 속을 돌아다니다 내려와 목욕을 한 다음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나면 오후 두 시가 되고, 이때부터 오후의 일과가 시작된다. 그러고는 오후에 다시 머리가 탁해지면 잔디밭에 나가 풀을 뽑는다든지 낚시방을 다녀오는 등, 어쨌든 작업실을 벗어난다.

능률이 굉장히 왕성한 날에는 저녁에도 일을 계속하지만, 오후 내내 좀처럼 머리가 맑아지지 않으면 그날의 글쓰기는 거기에서 끝난다.

간밤의 과음과 숙취에 시달리는 아침을 맞으면 역시 일을 하지 않고 오후까지, 때로는 저녁까지 머리가 맑아지기를 기다린다. 참으로 시간이 아깝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때로는 하루 종일 쉬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낮잠을 워낙 많이 자다 보면 새벽 한 시나 두 시에 잠이 깬다. 그러면 억지로 잠을 계속 자려고 애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글을 쓴다. 피곤하지도 않고 머리가 맑으면, 그런 시간은 절대로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셋째마당 모두(冒頭)에 나오는 '줄거리 짜기' 항도 어느 날 새벽 한 시에 일어나서 네 시간 동안 쓴 글이다. 그렇게 하루의 작업량을 한밤중에 채우고 나면 다시 피로가 쏟아지고, 그러면 날이 밝을 때까지 다시 잠을 잔다.

나에게는 잠을 자는 시간이 자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자신이 자거나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정하는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바로 그것이 글쓰기 인생의 즐거움이다.

주말이면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이틀 동안 낚시터로 일을 하러 간다. 글쓰기는 은행 업무나 철도 안내원처럼 시간당으로 작업량이 누적되는 직업이 아니어서, 서두르거나 빨리 한다고 해도 별다른 혜택은 없이 자칫하면 실수만 저지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리 일이 지나치게 잘되거나 아니면 반대로 작업량이 밀리더라도, 주말만 되면 나는 강제로 쉰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나의 글쓰기가 대단히 태만하고 불규칙한 생활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누구보다도 규칙적으로 일한다고 믿는다. 한 주일치 작업량을 항상 채우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150권의 책을 번역하는 동안 정말 단 한 번도 마감을 어겨본 적이 없고, 시간 약속도 천재지변이 없는 한 어기지 않는다. 그것은 30년 동안 직장도 없이 자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살아온 나 자신에게 내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성실성이다.

나는 자유롭고 불규칙하면서도 규칙적인 시간표를 따라야 하는 이런 생활을 무척 행복하다고 믿는다. 출퇴근을 하느라고 답답한 길바닥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근무시간에 대해서 잔소리를 하는 상사도 없고, 어느 누구의 눈치도 살펴야 할 필요가 없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하고 싶은 만큼만 해도 되는 직업이면서, 거기다가 조금쯤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까지 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자신을 엄격히 통제하는 간단한 의무마저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그냥 죽는 수밖에 없다. p316

새로운 경험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작가는 눈과 귀를 발달시켜 남이 못 보는 사물의 측면을 관찰하고, 타인들의 얘기를 들으면 내용뿐 아니라 화법도 분석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관찰은 의도적인 경험이다. 작가는 똑같은 경험을 관찰하더라도 타인들과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작가에게는 자신의 삶 자체가 밑천이다. 삶은 경험이요 교육이며, 훈련이고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나쁜 경험은 교훈으로 해석하면 약이 된다.

작가는 자신이 숨 쉬고 밥 먹는 행위까지도 잠재적인 자료로 간주하여 열심히 관찰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삶과 경험과 만남과 인연에서 수집한 온갖 자료 쪽지들은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당시에 내렸던 판단을 담았을 테니까. 여러 다른 시점에서 작성한 잠언적 진술들을 하나의 관점으로 통일시켜야 하며, 그렇게 통일된 관점을 지렛대로 삼아 이어나가며 정리하여 하나의 작은 조각 장면으로 엮어놓고, 여러 개의 작은 조각 장면을 긴 장면으로 다시 엮어 기승전결을 만들며, 군데군데 소종결(小終結)을 맺어놓은 다음 문맥의 흐름도 바로잡는다. p317


셋, 책의 엘필로그에 담긴 저자의 작가관

자서전의 두께는 나이를 먹을수록 얇아진다. 그래야 정상이다.

살아갈수록 애깃거리가 많아지기는 하지만, 남에게 책으로 써서 전할 만한 가치를 지닌 경험담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 알찬 벼이삭이 머리를 숙일 만큼 성숙해지면서 점점 더 절실하게 깨닫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 사람들은 주로 정보를 사고 팔면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중년에 이르면 옺갖 정보를 소화하여 지식으로 정리하고 자신만의 사상체계를 이루며, 장년기에 들어서면 지식을 삭혀 지혜를 쌓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혜는 없어도 용기가 넘치는 것이 젊음의 본질이다. 그래서 젊은이는 행동을 모험한다. 그러니까 젊었을 때는 글을 쓰고 싶으면 마구 써야 한다. 쓰기는 함부로 쓰되, 지나치게 자만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나는 생각한다.

경험을 얻고 지식과 지혜를 쌓으려면 엄청난 정보의 경험이 필요하다. 연습과 훈련은 많을수록 좋다.

글쓰기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은 자유에서 비롯한다.

한 번 작가는 영원한 작가이다.

최종적인 해답은, 무슨 일을 선택했거나 간에 그 일을 즐겨야 한다는 인식이다. 고생을 즐기는 사람한테는 아무도 당하지 못한다. 이 세상을 이끌고 나가는 상위층 4퍼센트의 사람들을 보라. 모든 분야에서 앞장 선 사람들은, 노력과 고생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노력을 즐기는 까닭은 성공의 희열이 무엇인지를 알고, 고통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다. p511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이 참된 작가이다.

다작(多作)은 진지한 작가의 미덕이 아니다.

젊은 시절의 삶이 조금도 지혜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친 다음, 나는 먹을 만큼만 밥을 벌고 남는 시간에 나 자신을 위한 새김질을 누리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필요 없는 돈은 벌지 않는 대신 혼자 앉아서 생각하는 자유의 시간을 벌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의 명상은 명상이 아니라 잡념이었던 모양이라고.

산책과 명상의 시간이 생존과 생활을 위한 시간에게 밀려나는 삶이란, 집단생활에게 빼앗겨버린 타인의 인생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의 양과 질에 대해서 새로운 계산법을 설정해야 되겠다고.

세상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작가로서의 능력을 내가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나이가 마흔이 되어도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뼈아픈 자각이 찾아온 다음, 인적이 드문 길과 집단사회의 길이 갈라지는 이정표 앞에 서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이야 물론 하지 말아야 하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무엇도 하지 않아야 되겠다는 판단을 나는 했고, 그리고 '무엇'을 해야 되겠다는 선택이 이루어지더라도 그 '무엇' 조차도 조금만 하면서, 그토록 아껴 모은 남은 시간에, 하나만의 '무엇' 을 위해 그만큼 공을 더 들여야 한다고 믿기로 했다.

글쓰기 인생의 두 번째 고빗길이 그곳에서 나를 기다렸다. p515



2. 본문 인용문

첫째마당... 단어에서 단락까지


이문열의 안맞춤 글쓰기

작품은 하나의 생명체이다. 하나의 작품이 태어나는 과정 자체가 그 또한 나름대로 하나의 한 살이를 이룬다. 잉태한 줄거리 하나가 스스로 왕성하게 자라나고, 그러고는 완성이라는 절정에서 창작 과정은 끝난다. 그야말로 절정(orgam)에 올라 황홀하게 맞는 죽음이다.

작품은 스스로 끝나야 한다. 지정된 매수로 끝내는 작품은 타살(他殺)이다.

주어진 지면이 모자라는 경우만이 타살은 아니다. 마땅히 남아야 할 공간을 억지로 채워도 마찬가지이다. 해야 할 얘기, 하고 싶은 얘기가 끝났는데도, 억지로 지면을 채우기 위해 덧붙이는 글은 비만성 지방질이다. 그것은 잘 지어놓은 새 집의 마당 한쪽에 쌓아놓은 쓰레기더미이다.

기승전결을 갖춘 단락이 이루어지면, 주저하지 말고 줄을 바꿔야 한다.

이 원칙은 하나의 작품을 마무리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쓰고 싶은 얘기를 썼으면,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서야 한다. 자꾸만 살을 붙이면 그 작품은 너덜너덜해진다. p18


동굴에서 하던 글쓰기

일찍이 원시인들은 동굴에서 벽에다 글쓰기를 했다. 원시인들은 동굴벽화를 남겼는데, 그림은 생각을 기호화한 것이다. 그림을 더욱 기호화하면 글씨가 된다. 그러니까 원시인들은 그들의 사상과 철학을 기록하는 글쓰기를 한 셈이다. 그렇게 원시인들은 그들의 역사를 후대에 전했다.

조금씩, 날마다, 꾸준히- 이것이 글쓰기의 세 가지 원칙이다. p19


글쓰기 준비운동

컴퓨터로 글을 쓰지 말고 공책을 따로 마련하라고 하는 까닭은 글쓰기를, 적어도 습작 과정에서는 손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기 전에, 모든 글을 쓰기 전에, 무슨 글을 쓰거나 간에,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하루쯤은 미리 생각해보는 습관을 키운다. 문학에서는 이 단계를 '구상'이라고 한다.

인간은 실제로 작업을 하는 동안이 아니라, 계획하고 기다라는 동안 가장 많은 일을 한다. p20


요령으로 글쓰기

능력 대신 요령을 익히면, 그만큼 손해를 본다. 손해를 보는 듯싶지만 남의 일까지 대신 다 하는 사람은 능력 또한 남의 몫까지 얻는다. 그러니까 손해를 봐야 손해를 안 본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미련하게 힘든 글쓰기가 요령 좋은 글쓰기를 이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읽기에 쉬운 글이 가장 쓰기가 어렵다고 했다. 쉽게 쓴 글은 막 쓴 글이다. 그러니 읽기에 쉬울 턱이 없다. 아무렇게나 쓴다면 글쓰기가 쉽다. 하지만 그런 글은 사람들이 읽어주려고 하지를 않는다.

글씨도 또박또박 시간 걸려 써야 읽기에 쉽다. 휙휙 휘갈겨 쓰면, 쓰는 사람은 편하고 즐거울지 모르지만, 받아 보는 사람은 읽기 힘들어서 편지가 그만큼 덜 반가워진다.

음식도 정성껏 차려놓아야 맛이 좋다. 그래서 눈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얘기한다. 작품도 눈으로 보고 머리로 흡수한 다음이라야 마음이 따라 움직인다. 마음을 감동시키기 전에 눈을 즐겁게 해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거기에서 찾는다. p22

요즈음 나는 하루에 A4 용지 한 장 가량의 글을 쓴다. 어휘 수로 계산하면 4백 단어쯤 된다. '충동적인 영감'이 작용하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원고를 쓰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초과한 부분을 거의 틀림없이 이튼날 다시 손질해야 한다. 충동적인 영감은 정신적인 설사와 같다. 아무리 언어의 설사(catharsis)라고 해도, 모든 설사는 멈추도록 치료해야 한다.

하루에 7매의 작업량에는 실제로 글을 쓰기 전에 필요한 구상이나 퇴고(堆敲) 과정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초고(草稿)만을 만드는 과정이 그렇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규칙적인 글쓰기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계속된다. p23


있을 수 있는 것

번역을 가르칠 때 나는 학생들에게 처음 몇 달 동안 그들이 서놓은 글에 서 '있었다'와 '것'과 '수' 라는 단어를 모조리 없애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킨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그 세 단어를 문장에서 너무 자주 사용한다.

자신이 쓰는 글에 이 세 단어가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있을 수 있는 것" 단 세 가지 단어를 모조리 제거하기만 하더라도 글이 얼마나 윤기가 나는지 스스로 놀라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똑같은 표현을 다른 방법으로 다양화하는 첫걸음이다. 이제 본격적인 글쓰기 훈련이 시작되는 셈이다. p25


'진행한다' 와 '진행하고 있다'

글쓰기에서는 이런 개성(個性)을 문체(文體)라고 한다. p27


외래종 표현

'있다' 와 '것' 과 더불어 단어 '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글쓰기에서 '3적(三敵)'으로 꼽힌다. '수' 는 물론 헤픈 사용빈도수 때문에 가시처럼 눈에 박힐 만큼 닳아빠지기도 했지만, 다른 책에서 번역의 기술을 얘기할 때 내가 이미 언급했듯이, 그 용법에서도 퍽 귀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말의 '수'가 이제는 영어의 'can' 을 지나치게 닮아버렸기 때문이다.

'수' 는 "아니 세상에 어쩌면 그럴 수가 있나." 에서처럼 낭패를 뜻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좋은 수'에서처럼 긍정적인 잠재성을 나타내는 의미에 사람들이 훨씬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그릇된 영어에 심하게 오염된 방송 용어에서 우리는 '수' 의 어색한 모양새를 자주 의식하게 된다. 화재나 질병 따위 사고와 재난에 관한 보도에서 "누전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라거나 "광우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라거나, "유대가 깨져 파탄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영어에 중독된 귀에 자칫 'can (be)' 으로 들리는 이런 표현은 "누전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라거나 "광우병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또는 "파탄을 가져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라는 식으로 표현을 다양화하면, 우리말 같지 않은 어색함이 사라지고 훨씬 자연스럽게 들린다. p31


일기 지어내기

모든 논리적인 글쓰기는 6하 원칙을 따라야 한다. 따라서 무슨 일 때문에 왜 어떻게 얼마나 기분이 좋은 하루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을 가짜 일기에 담아야 한다.

그리고 몇 줄 안 썼는데도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으면, 거기에서 끝내야 한다. 겨우 석 줄밖에 안 되더라도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

억지로 쓴 글은 좀처럼 좋은 글이 되지 않는다. p33


글짓기 집짓기

작품 쓰기는 책을 짓는 작업이다. 글쓰기는 집짓기이고, 번역은 집을 옮겨 짓기와 같다. 한 권의 소설은 한 채의 집이고, 작가는 그 집을 짓는 대목(大木)이다. p33

소설 쓰기는 지극히 정밀한 노동이어서,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 쓰기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 p34


힘이 빠지는 표현

글은 목소리만 낮추었을 뿐, 절제된 웅변의 성격을 지닌다. 웅변에서는 설득할 결론이 힘을 얻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유부단한 '같아요' 를 잘라 없애야 한다. p39


던져진 주사위

할 말이 있으면, 분명하고 자신만만하게 해야 한다. p41


고쳐 쓰는 일기

이제는 이미 써놓은 가짜 일기 '재수 좋은 날'을 가지고 복습을 해보자.

자신이 써놓은 글에서 '있다' 와 '것' 과 '수' 가 발견되면,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고쳐본다. 그러면 같은 일기를 두 번 쓰는 셈이 된다.

그렇게 고쳐 쓴 글에서 다시 '너무' 나 '같다'처럼 다른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남발하는 단어들을 모두 제거한다. 단어만 달랑 하나 바꿔 넣기가 힘든 경우에는 아예 문장 전체를 바꿔도 된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거기에서 문장 쓰기 공부가 시작된다.

수동태와 영어식 표현도 일부러 찾아내어 고쳐보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접속사 또는 그와 같은 기능을 하는 모든 표현을 찾아내어 수리공사를 한다.

이렇게 해서 얻은 마지막 결과물을 처음 썼던 가짜 일기와 비교해보고, 짧은 자평(自評)을 끝에 기록해 둔다.

다음에는 일단 정리한 글에서 자신이 사용한 단어들을 품사별로 나누어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의 목록을 만든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글쓰기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을 보여주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해서 참고자료로 삼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짜 일기를 한 번 더 써보자. 새로운 제목은 '더럽게 재수 없는 날' 이다. 그냥 '재수 없는 날'이 아니라 앞에 '더럽게' 가 들어갔음을 유의하기 바란다. '재수 좋은 날' 과는 무엇인가 반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하며, 왜 '더럽게' 라는 말이 들어갔을까를 함께 생각해보기 바란다. 물론 뒤에 나오는 설명 부분을 미리 읽어보는 비겁한 짓은 하면 안 된다. 스스로 해답을 찾지 않고 타인이 제시하는 공식을 먼저 확인하여 훔쳐다 쓰려고 한다면, 그것은 엄마가 대신 일기를 써주기 바라는 아이처럼 어리석은 세상살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p45


이론과 실제

누리지 못하는 성공이라면 그것은 실패다. p47

실질적인 글쓰기는 사상에 대한 이해보다 낱단어를 다루는 방법과 기술에서 시작된다.

이론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듯한 이런 주장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겠지만, 이것은 이론의 부정이 아니라, 환상적인 개념에 앞서 구체적인 단어와 문장 구사력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p47


눈에 보이는 웃음소리

하나의 작품에서는 첫 장면, 특히 첫 문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며, 그것은 단편소설의 기본적인 공식이기도 하다.

남자가 웃었다.

하나의 명사와 하나의 동사로 이루어진 이 문장은 두 단어가 모두 기초적인 어휘인 데다가 짧기 때문에 폭발력을 만든다. 제시된 문장을 이해하고 선명한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데 필요한 부담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쉽고 짧은 문장을 쓰면 마음이 캥긴다. 실력이 모자란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명을 한 마디 덧붙인다.

젊은 남자가 웃었다.

그러면 '젊은' 이라는 단어와 연결된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느라고 집중력이 조금쯤은 소모되고, 그래서 웃음소리가 작아진다. '웃었다' 라는 동사까지 이동하여 시선이 미치는 데 시간이 그만큼 더 걸리기 때문이다. p49

거느려야 하는 어휘 수가 늘어나고 기교와 순발력이 능해지면 문장에서는 힘이 빠진다.

그것이 장식적인 글쓰기의 약점이다. p50


장식적인 글쓰기

번역을 통해 우리 현대소설에 크게 영향을 끼친 19세기의 서양 문학이 수사학과 장식적인 문체에 많은 공을 들였던 까닭은 당시 유렵의 독서문화가 지닌 특성 때문이었다. 책이 비싸고 귀했던 시절이었던 터라 여러 가족이 모여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동안 한 사람이 대표로 낭독하는 형태의 집단 글 읽기를 했던 시절이어서, '아! 그들의 슬픈 사랑은 얼마나 애절했던 것인가!" 라는 식의 변사체(辯士體)가 필요했고, 멋진 대목은 다시 읽어가며 작가의 글솜씨에 함께 감탄하고는 했으니, 문학에서는 아름다움이 필수적이었다. 또한 정장을 하고 둘러앉아 책을 읽는 분위기에 알맞은 도덕적인 격식도 갖추어야만 했다. p50


젊고 정력적인 문장

인생에서는 젊음을 영원히 유지하기가 불가능하지만, 문장에서는 젊은 정력을 가꾸기가 가능하다.

우선 명사와 동사를 눈에 잘 띄게 전진 배치한다. 동사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움직임은 정력의 증거이다.

무리가 가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 부사는 형용사로 바꾸고, 형용사는 가능하면 동사로 바꿔본다. "그는 태만하게 근무한다"보다 "그는 일솜씨가 게으르다'가 조금쯤은 힘이 있어 보이고, "휘청거리며 걷는다" 보다는 "휘청거린다"가 강하다. "빠르게 말한다" 보다는 "말이 빠르다"가 의미의 전달 속도가 빠르고, "많은 눈이 내렸다" 보다는 "눈이 쏟아졌다" 또는 "눈보라가 휘몰아쳤다"는 표현이 훨씬 생동한다.

가장 약졸(弱卒)인 접속성 품사의 어휘는 흐름을 토막 내기 때문에 가급적 피하도록 한다.

힘센 직선적 문장은 상업적인 글쓰기와 기사 작성에 특히 잘 어울리지만, 감성적인 문학 작품의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가장 빠른 시간과 가장 집약적인 공간을 통해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언론 보도, 그리고 빠른 속도로 다수를 설득해야 하는 광고 문안 같은 글쓰기에서는 구호와 표어의 맥락이 통하는 짧고 간결한 문장이 효과적이다. 토론과 설득을 목적으로 삼는 논문이나 논술 시험 같은 대부분의 글쓰기가 그렇다.

문장의 길이가 권위를 상징하던 시대는 분명히 갔다. 이제는 갖가지 새로운 공식이 필요하다. p53


간결함과 단순함

둘 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존 스타인벡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1950~60년대의 미국에서는 단순함(simplicity)과 간결함(brevity)이 글쓰기의 기본 원칙이었다. 그들 두 사람은 종군기자로서 언론 경험을 거쳤고, 그래서 너덜너덜하고 장식적인 미사여구를 낭비라고 여겼다.

단순하고 간결한 글은 저널리즘의 생명이다.

세밀한 기교보다 튼튼한 단어의 선택에서 일차적인 승부가 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간결함이 재치의 정수(Brevity is the soul of wit.)" 라고 했다.

튼튼한 힘은 또한 논리성에서도 나온다.

진리와 진실은 그 자체가 힘이기 때문이다.

진실과 논리는 아무런 꾸밈도 필요 없다. 꾸밈은 오히려 거짓된 장식일 따름이다. 황금 장신구를 아무리 몸에 주렁주렁 매달아도 그런 황금은 인간 자신이 아니다. 장신구는 인간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거짓이기 때문이다. P54


관점(관점, point of view)

우선, 일기를 써놓은 형식을 살펴보라. 만일 연대기식으로 하루 동안 일어난 사건들을 나열하기만 했다면, 그런 글은 언론 글쓰기에 적합한 문체이다. 더구나 사용한 어휘가 명사와 동사가 주류를 이루었다면, 정력적인 글을 쓰는 요령과 자질을 지녔다고 봐도 괜찮겠다.

사건의 나열에서 끝나지 않고, 예를 들어 너무 재수가 나빠서 화가 났기 때문에 어떠어떠한 행동을 취했다는 따위의, 주어진 과제(제목)를 전제로 삼아 나름대로 상황을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킨 글을 썼다면, 소설을 쓸 만한 잠재력도 갖춘 사람이겠다.

나아가서 재수 없는 상황을 발생시킨 인물이나 사물에 대한 묘사를 하면서 자신의 감정으로 채색까지 한 사람은 문학적인 소설까지도 보인다. 이런 사람의 글에서는 형용사와 부사가 많이 나타나는데, 과다하게 남용만 하지 않는다면 그런 글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함께 적절히 담기기가 쉬운데, 이런 작인구조(작인구조, low of causality)는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그리고 그 흐름은 일관된 논리성을 요구한다. 어떤 재수 없는 상황이 어떻게 발생하여, 거기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반응했으며, 그 반응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느냐 하는 연상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쓴 글을 검토할 때 이제는 하나하나의 단어를 확인하고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견지하는 시각(angle)에서 벗어나 갈팡질팡하지 않도록 스스로 견주고 통제하는 능력도 필요해진다. p55


비둘기를 죽이는 이유

자신이 쓴 글은 1인칭으로 쓴 일기여서 객관성을 잃었다는 핑계는 내밀지 말자. 주관적 서술도 객관적으로 타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고활동과 표현은 당위성을 생명으로 삼는다. P56


집단적인 상상

비둘기에 대한 글을 쓰려면 비둘기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상식은 갖추고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상상이라고 해도, 가설에는 정당한 논리적 근거가 필요하다. p59


사실적인 거짓말

소설은 '희한한 거짓말'이다.

적어도 제대로 구색을 맞춘 문학 작품이라고 하면, 거짓말이 아닌 거짓말을 해야 한다.

소설은 사실적인 허구이다. 서투른 거짓말은 바람직한 글쓰기가 아니다. 진실을 얘기할 때는 빈틈이 어느 정도는 용납되지만, 거짓말은 완벽해야 한다.

서투른 거짓말로는 소설 한 편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p66


거짓말을 위한 진실

그런 작업이 필요했던 까닭은 우리들의 생활에서 결코 흔하지 않은 살인사건이 실제로 발생한다는 상황을 독자가 사실이라고 믿게 만들려면 다른 모든 요소부터 '진짜' 라고 만들어야 해서였다. P68


여객선에서 맺은 사랑

독자로 하여금 소설에서 지어낸 얘기에 공감하고 믿게 만들려면 철저한 사실화(factualization)가 도움이 되듯이, 박진하는 현실감으로 전체를 믿게 만들려면 세밀한 구성이 필수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자질구레한 모든 요소가 사실적이면, 거짓된 결론을 사람들은 저절로 믿게 된다.

소설은 상상력이 아니라 체험으로 쓰되, 현실의 허술한 빈틈을 상상력으로 완벽하게 메워야 한다는 원칙을 내가 받아들이기로 했던 계기는 습작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황금의 군중(The Golden Multitude)」(Frank Luther Mott, 1947)이라는 책을 읽은 다음부터였다. '베스트셀러 이야기' 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모두에서 저자 모트는 이런 내용의 얘기를 했다.

사람들에게 잘 읽힐 만한 얘기를 엮어내기 위해, 작가는 뉴욕에서 유럽으로 가는 여객선에 멋지고 매혹적인 젊은 남녀를 함께 태운다. 성탄절 전야에 짝이 없어 외로운 그들은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나간에서 우연히 만나고, 고독한 처지를 서로 이해하면서 사랑을 시작한다.

정말로 완벽해 보이는 이런 상황을 설정하여 소설을 써내면, 책이 출판된 다음에 어디에선가 어느 독자가 연감(연감)을 찾아보고, 소설의 시간적인 배경으로 선택한 해의 성탄절을 전후하여 정말로 뉴욕에서 유럽으로 떠난 여객선이 있었는지를 확인한다고 모트는 말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독자는 그 성탄절이 음력으로 보름이었는지, 그리고 그날 밤 여객선이 통과한 지점에서 해상 날씨가 맑아 달의 관측이 가능했는지까지 확인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작가는 작품에 등장하는 갖가지 사실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그는 충고했다. p74


스웨터 구멍

역사는 짐작이 아니라 확인을 해야 하는 사항이다.

기억은 결코 확인을 이기지 못한다. p76


동일시(동일시, identification)

'지어낸 얘기(fiction)'에 대해서 사람들이 보이는 이런 반응을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공감(共感)' 또는 '대리 만족' 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보다 양심적으로 그것을 "빈틈없는 논리적 거짓말" 이라고 부른다. p79


'나쁜 자식' 죽이기

관객(독자)은 물론이요 작가에게도 치유효과를 가져오는 몰입 상태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실감(實感)' 을 느껴 동일시에 이르게 해야 하며, 그러지 못하면 공감 작용이 어려워진다. 나처럼 꼬치꼬치 허물 찾기에 눈이 뒤집혀 마음이 좀처럼 작품에 몰입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 마찰과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장치가 헤밍웨이의 빙산이론(빙산이론, iceberg theory)이다. "그의 냉정한 압축 기법은 기술적인 장치가 아니라 인생에 대한 작가의 본질적 관점(His trick of dispassionate compression is not a technical device; it is the essential part of his attitude toward life.)" (Robert E. Spiller,「미국문학대계 The cycle of American Literature」, 204쪽)이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체험을 빙산에 비유하면서, 작가는 물 위로 보이는 부분처럼 전체 경험에서 확실하게 드러나는 지극히 작은 일부만 작품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속에 잠긴 90퍼센트의 빙산은 아낌없이 밑거름으로 남겨두라는 뜻이다.

하지만 체험의 10퍼센트를 활용하는 대신, 스스로 경험조차 하지 않고 남에게서 전해 들은 얘기를 열 배로 불려서 작품을 만들려고 하면 당연히 무리가 간다. 한 가지 거짓을 믿게 만들려면 아홉 가지는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 아홉 가지 거짓말로 한 가지 진실을 믿게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p80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좋은 글쓰기를 위한 낱단어의 선택은 정확성을 기준으로 따라야 하고, 선택한 단어는 저마다 정확하고 명확한 개념을 갖춰야 한다. 문장은 그렇게 선택한 낱단어들을 연관지으면서 군더더기 말을 피하기 위해 일관된 관점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간결함과 단순성을 도모해야 한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려면 한 문장에는 단 하나의 상황이나 행위(action) 또는 개념을 담는 데서 그쳐야 이상적이다. 그리고 아무런 개념도 담지 못한 문장은 존재 이유를 부여받지 못하기 때문에 가차 없이 잘라내야 한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여러 단어를 모아놓는다고 해서 문장이 되지는 않듯이, 단순히 문장이 모였다고 해서 단락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하나의 단락에서는 하나 이상의 행위가 진행(progression of action)되거나, 개념이 전개(development of idea)되는데, 여기에서 진행과 전개는 기승전결을 뚜렷하게 거치면서 생명력을 얻는다.

단락의 단위는 길이가 아니라 상황과 행위의 종결을 기초로 삼는다. 기승전결은 인과(因果)의 흐름이다. 단락은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며, 생각이 잘라지는 곳에서 단락도 잘라진다. 따라서 주제나 행동의 기승전결이 맺어지기 전에는 함부로 줄을 바꾸지 않도록 해야 한다. p81


전개되는 생각

글이란 쓰고 싶은 순간에 당장 자리에 앉아 생각나는 대로 무턱대고 쓰는 행위가 아니라, 줄거리를 구성하고, 구성한 내용의 개별적인 요소를 분석하고, 실제 작업을 실행하는 과정을 계획하고, 탄탄한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써내려가고, 낱낱의 단어와 문장과 단락을 재확인하고 다듬어 나가는 기나긴 역정(歷程)이다. p82

장면이 바뀔 때는 줄을 바꿔준다. 하나의 독립된 상황이, 독립되기는 했지만 다음 장면과 이어지는 단위 '상황'이 끝났기 때문이다.

반응은 앞으로 계속해서 전개될 상황과 작품의 궁극적인 종결을 고려하여 설정한다.

작가는 남들이 하지 않는 상상도 하고, 그 상상의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p84


단락 짓기의 요령

미국에서 출판된 글쓰기 안내서「단락과 주제(Paragrapbs and Themes)」(P.Joseph Canavan)가 추천하는 '요리법'(p423~4)

1. 목적을 확고하게 마음속으로 정해놓는다.

2. 전개하고 발전시킬 소재(대상)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을 확보했는지를 확인한다.

3. 원인과 결과를 분명하게 구분한다. 이 단계에서는 갖가지 원인과 결과를 분류하여 일차적으로 목록을 만들어놓으면 도움이 된다.

4.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원인들을 분류한다. 자신이 설정한 기본적인 구상을 전개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원인들과 결과들을 선정한다.

5. 어떤 한 가지 사건에서 작가가 특별히 관심을 느끼는 요소가 조건들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예를 들어 어느 미성년자가 마약을 훔치다가 체포되었다고 가정하자. 그가 마약에 중독되고 범죄를 저지른 원인은 보는 사람([1] 마약 중독자 [2] 그의 부모 [3] 그를 체포한 경찰관 [4] 재판관 [5] 변호사 [6] 주치의 [7] 가석방 관리관 [8] 검사 [9] 심하게 폭행을 당한 가게 주인 [10] 가게 주인의 가족)의 시각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한다.

6. 복합적인 사건이나 상황은 흔히 몇 가지 조건이나 환경의 영향을 함께 받아서, 어떤 조건들은 중요하고 직접적인 관련이 분명하지만, 어떤 조건은 중요하지 않고, 또 어떤 조건은 우발적이기도 하다.

7. 진정한 원인이 아니라면 원인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어느 해 마지막 경기에서 뇌진탕을 일으켰다고 가정하자. 그후 몇 달 동안 그의 성적이 계속해서 떨어진다. 학기 말에 그는 휴학한다. 다수의 학생은 머리를 다치고 성적이 떨어져서 그가 학교를 떠났다고 추측한다. 가을이 되어 그가 학교로 돌아온 다음에야 친구들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학업을 중단했었다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

8. post hoc(논리학에서 전후관계나 인과관계를 혼동하는 오류를 뜻하는 라틴어 표현)을 저지르지 말라. "post hoc, ergo propter hoc" 이라는 말은 "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래서 이것 때문에"라는 뜻이다. 가까운 시간 내에 '가' 라는 사건에 이어 '나' 라는 사건이 뒤따라 발생하면 '가' 때문에 '나' 가 일어났으며 그래서 그것들이 저마다 원인과 결과라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추정한다. 이런 오류는 앞에서 지나간 검은 고양이, 엎질러진 소금, 깨진 거울, 벼락이 친 순간에 맛이 시어지는 우유, 식탁에 둘러앉은 13명의 사람, 집안에서 펴는 우산 따위에 관한 갖가지 미신을 낳는다. 한 사건에 이어서 발생하는 다른 사건은 우발적인 연관성에 대한 구실은 될지 모르지만, 확실한 관계를 이루지는 않는다.

9. 연쇄적인 원인과 결과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의 원인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효과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로 인해서 발생한 갖가지 원인과 결과의 고리를 생각해보라.

인과의 유연성은 자연스러운 전개의 필수 조건이다. p87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분위기

단락의 길이는 장단(長短)을 만들고, 장단은 분위기를 마련한다. 단락에서뿐 아니라 문장과 단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쉽고 짧은 단어로 표현한 '미련한 놈'과 어렵고 긴 단어를 동원하여 '무지몽매한 인물' 이라고 표현한 경우를 비교해보라. 같은 인물을 서로 다른 수준의 어휘로 표현하면, 사람 자체가 달라진다.

제시된 상황에 담긴 대단히 복잡한 심리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감정의 기복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장치가 필요하고, 우리의 경우에는 단락의 길이가 정신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기준으로 기능한다.

소설은 정물화가 아니어서, 고정되지 않은 상태로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활자로 묘사한 움직임은 시각적으로 생동감을 일으켜야 한다. 더구나 격렬한 순간의 묘사는 평화로운 균형과 조화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 그래서 때로는 한 문장, 또는 단 하나의 단어가 독립된 한 단락을 이루기도 한다. p88


계산된 혼란

결렬한 감정의 표현을 절제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일단 설사를 하듯 마음놓고 좔좔 써대는 배설이다. 우선 쓰고 싶은 대로 써놓고, 나중에 걸러내는 이 방법은 그러나 일단 살이 찐 사람이 다시 살빼기를 하는 만큼이나 힘이 든다. 그러니까 아예 처음부터 운동과 식이요법을 계속하여 몸매를 유지하듯, 초고를 쓸 때부터 단어의 섭취와 소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일단 써놓은 글에서는 무엇이 군더더기이고, 어떤 표현이 비논리적이고, 어떤 단어가 잘못된 선택인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것은 다 그려놓은 그림에서 숨은 그림을 찾는 격이다.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기 위해 짐을 싸는 과정을 생각하며 첫 원고를 쓰는 훈련이 필요하다. 여행을 하려면 가방의 수를 줄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물건만 골라 넣고, 아쉽더라도 편의를 위한 많은 물건을 버리게 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꼭 필요한 단어만 골라내어, 기름을 짜내듯 비틀어 절제된 문장을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계산된 길이의 문장을 엮어 단 한 번의 기승전결로 마무리를 짓는 단락을 만든다.

아무리 그러려고 해도 할 말이 너무 많아 통제가 불가능하면 어째야 할까? 그렇다면 보다 길고 복잡한 형태의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서는 - 통제가 안 되면 아예 입을 다물어라.

헤픈 얘기를 버리고, 보다 알찬 다른 소재를 찾아보라. p90

간접화법이 필요한 이유

대단히 극적인 장면을 제시하면서 내가 묘사 내용을 두 개의 단락 안에 가두라고 요구하며, 대화체는 나오면 안 되고, 꼭 필요한 경우에는 간접화법으로 처리하라고 앞에서 조건을 달았던 까닭은 대화체 단락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하나의 문장에는 하나의 개념(idea) 이나 행위(action)만이 담겨야 이상적이듯, 하나의 단락에는 하나의 상황만을 담기가 보통이다. 그래서 상황이 끝나면 줄을 바꾸고 새로운 단락을 시작한다. 그러나 대화체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말을 주고받을 때, 그러니까 말하는 주체가 달라질 때마다 단락의 길이를 고려하지 않고 줄을 바꾸는 것이 원칙이다. 영화에서 대화를 주고받을 때 말하는 주체가 달라지면 장면 전환을 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더구나 우리말에서는 따옴표 안에 담긴 말의 내용과 그 말의 주체도 행갈이를 하여 따로 새로운 단락을 만든다. 이렇게 말이다.

"내가요?"

갑분이가 말했다. p91

원인과 결과를 잇는 흐름

글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흐름이다. 아무리 어수룩하더라도 기승전결을 따라 전개되는 얘기라면 저절로 흐름을 이룬다. 그래서 아무리 마침표를 찍어가며 여러 문장으로 잘라놓더라도 글은 저절로 흐른다.

문제는 그 흐름 속에서 막힘과 걸림이 손으로 만져지고 눈에 보이느냐하는 여부이다.

글에서는 인과의 장치가 유연한 흐름을 만든다. 질문(원인)하고 대답(결과)하는 형식은 이유를 설명하는 설득 과정이 다리 역할을 하는 인과의 흐름이다. 무엇인가를 제기(질문)하여 흐름이 솟아오르게 했다가, 해답(설명)으로 풀어내는 파랑(波浪)을 가라앉힌다. 이것은, 특히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 같은 주인공을 앞세우고 1인칭 심리묘사를 할 때, "아, 나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라는 질문과 "이것이 이유이다." 라는 해답의 혼잣말을 되풀이하며 풀어나가는 흔한 방식으로 자주 활용된다. 심리적 회오리로 인해서 때로는 격렬해지기도 하는 문답식 점층법(crescendo)에서는 울퉁불퉁하지 않은 인과의 고리를 세심하게 배치하여 그물처럼 단단하게 전체적인 흐름을 엮어야 한다. p94


노루 꼬리의 복선

두 단락을 앞뒤로 이어주는 보다 보편적인 몇 가지 기본적인 방식 가운데 하나는 심어두기(복선 깔기, planting)이다. 앞으로 어떤 얘기가 전개 될지를 어렴풋하게 암시하는 실마리를 미리 심어놓는 이 기법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도에서 끝나야 하며, 너무 많이 보여주었다가는 '뻔할 뻔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여자가 남자를 유혹할 때, 보일 듯 말 듯 살짝 속살을 보여주는 탄탈로스(Tantalos) 기법이 여기에 해당된다. 아름다운 여자가 침실 밖에서 속살을 너무 많이 보여주면 신비한 아름다움이 천박한 음란성으로 타락하고 만다.

실마리는 작가가 보여주기는 해도 주의 깊게 꼼꼼히 읽어가는 독자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눈치 채지 못해서 그냥 흘려버리기 쉬운데, 영화에서 그렇게 힐끗 보고 지나간 하찮은 복선이 나중에 결정적인 상황을 촉발시키도록 이끌어가는 기법의 대가는 알프렛 힛치콕이었다. 보여주기는 하면서도 사람들의 눈에 안 띠게 보여주는 기술, 그것은 흐르면서도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눈에 띄지 않는 물의 흐름과 같다.

추리소설의 노루 꼬리 전법도 그와 비슷하다. 신문기사는 모든 정보를 첫 단락에서, 그것도 가능하면 첫 문장에서, 6하원칙에 따라서 최대한으로 많이 제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독자로 하여금 항상 긴장하여 두뇌 활동을 계속하도록 유도하는 추리소설에서는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늘어놓으면 과부하가 걸려서 중요한 한두 가지 사실을 잘못 이해하거나 또는 소화하지 못한 채고 놓치기 쉽다. 그러면 이해를 못한 정보가 자꾸만 누적되어 계속해서 읽어나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아이들이 왜 수학 공부를 하기 싫어하게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만한 현상이다.

노루 꼬리 글쓰기는 속도가 빨라야 한다. 형용사와 부사를 털어내고 접속사를 말끔히 제거한 다음, 명사와 동사로만 엮어지는 문장이 이럴 때 대단한 속력을 낸다. 그리고 지문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화로만 이어지는 문체 또한 눈부신 효과를 거둔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찰스 웹(Charles Webb)의 소설 「졸업생(The Graduate)」이 바로 그런 본보기이다. p96


점층하는 전개

흥망성쇠(興亡盛衰)의 흐름을 타는 서술 모형(pattern)은 가장 전통적인 형식이어서 역사물이나 대하소설에서 즐겨 동원한다.

변천의 역사는 흐르고, 역사를 기록하는 글도 따라 흐른다. 그래서 연대기적 서술(chronological narrative)은 가장 쉽고도 편리한 흐름의 화법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연대기적 흥망성쇠 모형의 서술은, 상황이나 사건을 한꺼번에 쏟아놓는 대신 점진적으로 야금야금 전개시킨다면, 긴장감의 수위를 조금씩 올리면서 독자의 관심을 끝까지 잡아두는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이 화법의 요령 역시 무더기로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약 올리기(Tantalos, tantalizing)'의 비교가 필요하다. 조금씩 긴장감을 증강시키는 이러한 방법을 나는 개인적으로 '볼레로 기법' 이라고 부른다.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라벨(Maurice joseph Ravel)의 「볼레로(Bolero)」를 아는 사람이라면 따로 설명이 필요없으리라는 생각이다. p97


뒤통수치기

질질 짜고 울어대는 수다스러운 한탄보다 눈물까지 참는 슬픔과 인내의 고통이 때로는 훨씬 비극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단락을 한 줄로 끝내고 한 줄을 비운 다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잠시 정신적인 휴식을 취하도록 아예 다음 장면은 새로운 장(章)으로 시작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으면, 끝내라." 던 루돌프 플레시의 단호한 말도 잊지 말기 바란다.

'정곡'은 발라당 뒤집히기도 한다. 무엇인가 질펀하게 얘기를 늘어놓다가, 느닷없이 결론을 지어 독자의 기가 막히게 만드는 기법 또한 절묘하다. 예를 들어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에서 인디아나 존스가 아랍인과 장터에서 벌이는 대결 장면이 그러하다. 아랍인이 멋지게 칼을 휘두르며 뜸을 들이자, 인디아나 존스는 한참 구경하다가 한심하다는 듯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고는 권총을 꺼내 쏴버린다. 극장 안에서 폭소가 터진다. p104

속이려는 작가와 속지 않으려는 독자 사이에는 항상 긴장이 존재한다. 이 긴장의 대결에서 독자보다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작가라면, 특히 추리소설 작가가 그렇다면, 얼른 직업을 바꿔야 마땅하다. p105


틀린 모범답안

독창성은 반항에서 시작된다. p106


독후감 쓰기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목적을 알면서 임해야 한다.

1. 우선 글을 읽은 다음 내용에 알맞은 제목을 스스로 붙인다. 제목 붙이기에 대한 보충 설명은 작품에 뒤이어서 분석과 검토를 거친 다음에 수록했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낱단어들 가운데 좋아 보이는 단어와 문장의 목록을 만든다. '있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를 찾아보고, 그 세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어떻게 글을 쓰는 일이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바란다.

남의 글을 그대로 베끼는 것도 때로는 좋은 훈련이 된다. 좋은 작품에 등장하는 멋지거나 아름다운 단어는 일부러 머릿속에 담아두었다가 나중에 자신이 쓰는 글에 실제로 사용하는 연습도 창조적인 글쓰기에 크게 움이 된다.

다만, 같은 단어를 너무 자주 반복해서 사용하면 안 된다. 몇 개의 단어만 머리에 담아두고 자꾸 꺼내 쓰면 당연히 진부한 글이 되니까. 수많은 단어를 계속해서 머리에 담아 넣고, 샘물을 퍼내서 마시듯 계속 퍼내야 한다. 샘물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고, 오히려 자꾸 퍼내야 물이 썩지 않고 맑아진다.

3. 작가가 구성해 놓은 단락들이 저마다 완전하고 독립된 단위를 구성하는지 검토해보고, 꼭 고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나름대로 고쳐본다. 단락은 길이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승전결의 단위로 글뭉치를 묶어내는 훈련을 쌓는다.

4. 하나의 단락 안에서 또는 앞 단락이 다음 단락과 이어지면서 어떤 인과법칙이 작용하는지, 인과의 흐름이 유연한지 어떤지 살펴본다. 두 주인공의 심리가 서로 어떻게 작용하고 반작용을 일으키는지도 비평가의 안목에서 살펴본다.

5. 작품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두 주인공의 성격을 참조하며 스스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는 과제를 풀어야 하니까, 두 사람의 성격을 꼼꼼히 분석하여 대비하기 바란다. p109


겨냥하며 읽기

숙제나 학점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 자신을 위한 어떤 목표를 겨냥하며 읽으면, 같은 작품이라고 해도 훨씬 더 재미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겨워하는 공부를 즐겁다고 하는 아이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스스로 글을 쓰고 싶어서 남들의 글을 읽으면, 깨침과 배움의 폭도 커지고, 그만큼 얻는바 또한 크다. p117

깨진 문장(broken sentence)은 파격(破格)으로서, 심리적인 충격이나 어지러운 생각 따위를 돋보이게 잘라내는 데 효과적이다. 극도로 긴장한 이발사의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이 단편소설에서는 깨진 문장이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등장인물의 불안감이 그런 대목에서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곰곰이 확인하기 바란다. p118



둘째 마당...

이름 짓기에서 인물 만들기까지


율동하는 제목

글은 읽히기 위해서 분투하고, 제목은 눈길을 끌기 위해 분투한다.

문장형인 경우에는 함께 가는 다른 모든 소제목이 문장형이어야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달랑 하나만 문장형인 제목을 만들어 끼워놓으면 그 제목은 다른 제목들에게 왕따를 당한다.

무슨 일에서나 지나치게 튀면 왕따를 당하게 마련이다. p129


낡은 웅변의 수사학

긴 제목은 그 길이만큼 수사학적 사치를 부릴 여유가 남아돌지만, 상상력이 활동할 빈 공간을 남겨놓지 않는다. 반면에, 예를 들어 달랑 한 단어로 붙인 제목은, 「토지」의 경우처럼 상상의 여지를 무한으로 남기기 때문에 아직 하지 않은 말의 무한한 위력을 보여준다.

짧아서 여백을 남기는 제목은 끝없는 잠재력을 담은 침묵의 힘을 발휘한다. p130

멋을 부린 표현이 이렇게 눈과 귀에 거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멋'이 겉치장이기 때문이다. 겉멋은 아무리 열심히 꾸미더라도, 내면의 성실성을 보여주기는커녕 더욱 가리고 감추기만 한다. 멋진 단어릐 나열은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보라고 과시하는 행위여서, 그런 표현은 마음(心性)이나 두뇌(논리)에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어려운 글이 왜 좋은 글이 되기 힘든지 그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추상적인 표현은 비논리가 심하고, 영화나 문학에서는 신선한 독특함을 말초적인 겉멋에서만 찾으려고 해서는 짧은 첫인상의 차원을 넘어서기가 어렵다. 말재주와 말장난도 분명히 문학적 재능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경박한 기발함의 대중화가 철학이나 감동을 낳기는 무척 힘들고 어렵다.

간단히 얘기하면, 요령으로는 뚝심을 당하지 못한다. p132


제목이라는 이름의 이름

역사물이나 대하소설의 제목은 짧아야 오히려 인상적이기가 쉽고,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우면 「장길산」이나 「홍길동전」처럼 역사적 사실성까지 돋보이게 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를 위시한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의 이름을 작품의 이름으로 내걸기를 좋아한다.

주인공의 이름을 작품의 이름으로 재활용하는 행위란 어쩐지 비겁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주인공의 이름을 짓기가 작품의 제목을 붙이기만큼이나 힘들기 때문이다. 제목과 이름을 우선 외우기 쉽고, 부르기 좋고, 다른 제목이나 이름과 헷갈리지 않게 독특해야 제대로 가능하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창녀촌에서 만난 어머니와 딸의 이름을 왜 '한분순'과 '장미'라고 설정했는지를 내가 설명했듯이, 고유명사는 보통면사의 역할도 맡아서, 일반적인 개별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p134


이유 있는 작명(作名)

일제강점기에서부터 한국전쟁 직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번안(飜案)이라는 형태의 반쪽짜리 문학이 퍽 왕성했었고, 요즈음에는 희작(parody, 戱作)이라는 미명 아래 공연 예술에서 염치없는 베껴먹기가 극성이다.

이런 짝퉁 문학은 스스로 창작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모방은 창작의 아버지"라는 핑계를 내세우며 자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록 직업적으로 해먹을 짓은 아니지만, 혼자서 쓰고 읽어보는 습작 시절에는 사실 남의 글을 베껴보는 훈련이 크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모방은 혼자 하면 훈련이지만, 베낀 작품을 나눠주며 돈을 받고 팔아먹으면 도둑질이 된다는 뜻이다. p135

첫째 마당에서 나는 작가를 목수에 비유했는데, 목수는 집을 짓기 시작하기에 앞서서 설계도를 완전한 형태로 준비하고, 그렇게 한 가지 일을 끝낸 상태에서 실질적인 일을 시작해야 한다.

글쓰기는 이렇게 복잡하고도 큰 규모를 감당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p137


인물 만들기

영어로 'characterization(인물 구성)' 은 'character를 만들기' 라는 뜻이다.

그런데 charecter' 란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가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에서부터 초등학교 학생들ㅇ 이르기까지, '케릭터 산업' 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우리말로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속 시원히 대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영어로는 알지만 우리말로만 모른다는 핑계도 거짓말이다. 우리말로 무슨 뜻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영어 단어라면 결국 그 영어 단어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서강대학교를 다닐 때 미국인 교수들에게서 영어로 영문학 공부를 하면서, 소설을 크레 나누면 'character novel'과 'situation novel'로 분류한다고 배웠다. 'situation novel' 이라면 상황을 중심으로 꾸며나가는 소설이어서 '상황소설' 이라고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지만, 그러나 'character novel' 은 어떠한가?

교육출판공사에서 펴낸 「세계문예대사전」에서는 이것을 '성격소설(novel of character)' 이라고 하여 '행동소설' 과 '극적소설' 에 대비시키며,「소설의 구조(the Structure of the Novel)」(E. Muir, 1928)를 기초로 삼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극적소설과 행동소설은 사건이나 행동에 중점을 두고 시간 중심으로 구성되나, 성격소설은 사건이나 행동보다는 당대의 사회, 즉 공간 중심으로 구성되며, 따라서 1920년대의 서울이라든지, 영국의 런던이라든지 하는 역사적 사회가 현장으로서 배경이 되며, 모험적이고 극적인 사건이 없고 단지 전형적이며 보통의 사건이 완만하게 진행되고, 인물도 부단히 변화하는 입체적 인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결되고 고정되어 있는 전형적 성격, 평면적 인물이다. 성격소설의 무대는 문명사회이므로 자연히 그 시대의 풍속, 의상, 습관 등을 그리게 되고, 인물은 처음부터 불변의 완결된 성격으로서 새로운 상황 속에서 인물 상호간의 관계만 변화되어 갈 뿐이다." 그러나 외국의 문학이론이나 분류법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방법은 저마다 다르기도 해서, 한국의 문예사전이 얘기하는 'character(성격)' 와 내가 이해하는 'character(인물)' 의 정의는 그 'character(특성, 양상)' 가 퍽 다르게 느껴진다. 따라서 루돌프 플레시를 위시한 대부분의 창작 이론가들이 정의하는 바에 따라, 나는 'character novel' 을 우리말로 '인물소설' 이라는 명칭으로 고정시킨 다음 얘기를 계속하겠다. 같은 이유에서 'characterization' 은 '인물 구성'이나 '(등장) 인물 만들기' 라는 표현으로 일관할 생각이다. p152


보이지 않는 작가

모든 소설의 소재가 인간관계의 변화를 다루기 때문에, 실재하는 다양한 인간 집단의 대표격인 등장인물들은 항상 소설에서 큰 관심거리이며, 흔히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소설 공부를 위한 길잡이(A Handbook for the Study of Fiction)」(Lynn Altenbernd and Leslie L. Lewis, 1966) 는 56쪽에서 밝힌다. 그리고 인물 구성은 작가나 다른 인물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설명적 방법(expository method)과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서 인간성을 보여주는 극적 방법(dramatic method) 으로 구분된다.

설명적 방법은 「홍보전」같은 판소리에서 그러듯이 작가(소리꾼)가 관광안내를 하는 사람처럼 앞에 나서서 그가 만들어낸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를 직접 설명하는 19세기적 화법인 반면에, 극적 방업은 훨씬 현대적이고 객관적이다. 앞 항목에서 설명한 '배경적 관점'의 개념을 적용하면 이해가 빨라지겠지만, 극적 방법에서는 작가의 모습이 독자의 눈에 보이지 않아야 원칙이어서, 줄거리의 전개와 상황의 발전이 작가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지를 않고, 등장인물들끼리 서로 상호 작용을 하여 저절로 펼쳐지는 듯한 효과를 내야 한다. 세부적인 사실성과 인과법칙이 그래서 중요하다.

언론에서는 이런 두 가지 방법의 글쓰기가 보도 기사(straight news)와 논설(editorial) 의 형태를 취한다.

기자는 '견해9opinion)' 를 기사에서 피력하지 못한다. 기명기사(by-line) 나 기획기사(featured article) 또는 사설이 아닌 일반적인 보도기사에서는 논설 화법, 즉 논설 쓰기(editorialization) 가 금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 시간에 수많은 기자들이 '보도' 대신 '비평' 을 한다.. 154

좋고 나쁘거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은 기자의 몫이 아니다. 그래서 기자는 보이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

그리고 문학 작품에서의 말하기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작가는 유리처럼 보이지 않아야 하고, 유리처럼 차가워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면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장기판 위에 늘어놓고, 그들끼리 스스로 승부를 내도록 유도해야 한다. p156


판지(板紙) 와 박지(箔紙)

때로는 주변 인물이 아니라 주인공 자신이 밋밋하여 별로 두드러진 개성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런 주인공은 글쓰기 용어로 '판지 인물(cardboard character)' 이라고 한다. 큰 가위로 상자를 오려 만들어놓은 듯 생동감이 전혀 없는 등장인물을 뜻한다.

주인공의 인문 구성을 돕느라고 자주 동원되는 또 다른 유형은 고해신부(告解神父)처럼 고민거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인물인 '단짝 친구(confidant)' 이다. '고해신부' 는 주인공의 갈등과 고민을 그리고 때로는 희망과 소망과 음모를 작가가 앞장서서 설명하는 대신 주인공 스스로 독자에게 직접 전달하도록 만드는 장치이다. 따라서 흔히 흉금을 털어놓아도 부담이 없을 만큼 친하고 믿을 만한 단짝 친구의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해설자로서의 작가나 마찬가지로 그(녀)의 존재는 도드라질 정도로 독자의 눈에 띄지 않아야 보다 효과적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투명한 고해신부는 존재의 이유를 잃는다. 자칫 그는 박지나 판지처럼 인물이 아니라 장치로서만 존재하고 만다. 그들은 방송용 극본에서 '포졸3' 이나 '지나가는 남자' 또는 '취객' 이라고 대충 지칭하는 단역이 되어, 사람보다는 배경의 역할에 생명을 바치다가 허무하게 사라진다.

그렇다면 작가 대신 주인공의 고해를 전해 주는 역할을 제대로 하면서도 독자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조역과 단역은 어떻게 분장을 시켜야 제대로 기능하는가?

아무리 단역이라고 해도 그들 모두를 주인공 못지않게 저마다 꼼꼼히 묘사하면 된다.

사람들은 풍경화를 그릴 때, 넓은 들판이나 강변을 시원스럽게 그리기도 하고 몇 그루의 나무로 가까이 다가가서 잎사귀까지 그리기도 한다. 글쓰기에서는 풍경화와 달리 영화의 '깊은 초점(deep focus)' 처럼, 응시하는 대상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인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p162


발전하는 악마 이야기

어떤 인격의 도덕적인 발전에서 가장 극적인 뒤집기는 살인마나 악당이 마지막 순간에 선행을 실행하여, 위기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자신은 죽는다는 설정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서양의 기독교적인 잠재의식이 작용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악한이 순식간에 그리스도로 변신하는 이 장치는 온갖 잘못을 저지르고도 한 번만 제대로 회개하면 천국으로 간다는 비겁한 종교적 계산법으로서, 나는 정통 문학에서라면 그런 불공평하고 손쉬운 용서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미늘」에서 타락한 남편이 뉘우치고 돌아왔을 때 아내로 하여금 "나는 온갖 못된 짓을 하고 돌아와도 호락호락 받아주는 옛날 조선 여자가 아니다."라면서 그를 골방으로 유배시키도록 했다. p166


인물 만드는 방법

상황소설의 글쓰기에서는 커다란 하나의 상황으로부터 출발하여, 먼저 준비된 상황에 맞춰 등장인물을 구상한다. 좋은 주제가 먼저 머리에 떠올라 쓰기 시작하는 소설은 주제를 돋보이도록 살려나갈 몇 가지 작은 상황이 필요해지고, 그렇게 무대처럼 준비된 상황에 알맞은 등장인물들을 나중에 구성하게 된다. 극적인 소설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극적인 상황을 꾸며놓고는, 그런 상황을 이끌어나갈 만한 인물들을 필요에 따라 찾아내어 배치하는 순서가 보통이다. 그러니까 세 가지 경우 모두 인물은 상황이나, 주제나, 사건의 수요(需要)에 맞춰 구성되는 셈이다.

그러나 인물 소설은 인물부터 머릿속에 나타나 상상력을 휘젖기 시작하고, 작가는 그 인물을 조명하기 위한 상황과 사건, 그리고 주제를 나중에 생각해내어 작품을 보완하는 역순(逆順)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인물소설에서 주인공과 상대역의 인물 만들기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까?

사건이나 주제 그리고 상황보다 인물에 초점을 맞춘 소설에서는 당연히 대상 작품을 잉태하는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주인공을 상대적으로 깊이 이해하고, 그의 인간성을 실감나게 그려내려고 한다. 그런 이유로 해서 인물소설은 자전적 성향을 많이 보인다.

나는 내 작품들이 자전적임을 인정하기를 주저한 적이 없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쓰는 글의 내용에 따라 나는 나의 어떤 한 부분을 잘라내어, 그 부분을 분석하고 장식하여, 하나의 새로운 인물로 만들어낸다. 세상에서 나 자신보다 더 관찰하기 좋은 대상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좋은 부분이 과장되어 천사 노릇을 하고, 나쁜 부분은 강화되어 악마의 역을 맡는다.

대화는 독백보다 항상 독자의 관심을 더 효과적으로 붙잡아둔다.

처음 글을 쓰는 사람들은 독자를 붙잡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내 슬픈 인생 얘기 좀 들어보소." 라고 매달리면서 통곡하고 싶은 충동을 심하게 느낀다. 하지만 독ㅈ자는 자신이 기쁨을 얻기 위해 책을 읽지. 남의 넋두리와 하소연을 듣느라고 시간을 낭비하기 위해 돈을 내고 책을 사지는 않는다.

자전적 소설을 쓰려는 사람은 자신의 얘기를 타인의 눈으로 보고 3인칭으로 말하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백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1인칭 얘기를 객관적이고도 사실적으로 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주인공(작가)의 대사를 받아주며 '초를 치는' 상대역은 주인공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도록 유도하는 자연스러운 장치를 여기저기 늘어놓고, 그러면 작가는 대신 펑펑 울며 독자에게 매달리는 책임을 주인공이 떠맡도록 마음 놓고 전가시켜도 된다.

그리고 자전적 글쓰기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하나 숨어서 기다린다. 그것은 잡담을 문학으로 착각하려는 태만함이다.

작가도 생로병사의 기승전결을 거치고, 글쓰기에도 나름대로의 생애가 따로 있어 나이를 먹을수록 글에서 힘이 빠지기는 한다. 그러나 적어도 젊고 싱싱할 때는 젊고 싱싱한 글을 써야 한다. 모든 글쓰기가 문학은 아니다. 문학의 '모양' 은 문학다워야 한다.

1인칭 일기로 적어두고 잊어버려도 괜찮은 체험을 굳이 작품으로 만들고 싶으면, 실존 인물을 허구화하는 제련(製鍊) 과정이 필요하다.


인물의 재구성

아직 컴퓨터가 대뇌를 그리고 로봇이 인간의 동물적인 능력을 못 따라가듯, 상상은 현실을 못 따라간다고 지금까지도 믿기 때문에 나는 이렇듯 소설의 등장인물을 주변에 찾아내고, 주인공의 모습이나 성격 등 부수적인 정보 또한 거의 모두 '기성품' 을 활용한다. p172


등장인물 보충대

「에필로그를 위한 전쟁」이라는 제목이 끝내 햇빛을 보지 못했고, 애써 '창작' 한 학교명은 이미 존재하다니, 세상에는 쉬운 일이 하나도 없고, 때로는 이렇게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러나 무엇을 하거나 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첫째 마당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미 써놓은 글에서 형용사와 부사를 아무리 없애려교 해도 안 없어진다면, 형용사와 부사가 주류를 이루는 글을 쓰면 된다. 자신이 쓰는 글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맍는 문체를 스스로 개발하면 그만이다. 문학적 글쓰기만이 모든 글쓰기는 아니고, 대중적 글쓰기도 분야는 무진하다. 자신의 글쓰기 습성을 바꾸기 어렵다면, 자신에 맞는 글쓰기 분야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정마로 글쓰기가 힘들어 못하겠으면, 집어치워도 좋다. 골프나 바둑을 한다고 해서 야단칠 사람은 없다. p176


야금야금 보여주기

인물 묘사에서는 '약 올리며 옷 벗기(striptease)' 방식이 효과적이다. p177

춤추는 여자의 옷 벗기처럼 감질나게 조금씩만 보여주면, 상상력을 여백에 맡기는 동양화에서처럼, 독자는 스스로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상을 머릿속에서 만들어 간직한다. p179


연속의 그물 질

줄거리와 사건과 상황과 인물을 저마다 토막 내어 여러 가닥으로 하나의 밧줄을 엮듯이 이어가기를 하려면, 이들 요소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이 필수적이다. 인물들이 일관성을 유지하는 동안 상황과 사건의 전개를 또한 나름대로의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 모든 요소가 촘촘한 그물 속에 담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주인공과 상대역은 작품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만큼 꾸준히 자꾸만 얼굴을 내밀어야 한다. 이런 연속성은 작품 전체를 단단하게 죄고 엮어주는 그물처럼 작용한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 내가 수영 애기를 자꾸만 하고, 목수의 집짓기 얘기도 자꾸 꺼냈던 이유 또한 연속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내용의 얘기가 거듭해서 나오고, 뒤에서도 다시 나오도록 설계한 이유 또한 일관성을 도모하기 위한 부수적인 장치를 마련하려는 뜻에서였다. 반복은 기대감을 자극할 뿐 아니라, 새로운 얘기를 들어도 친숙한 느낌을 받고, 귀소(歸巢)의 안도감까지 느끼게 만든다.

마음이 편한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경계심이 풀어져 의심을 하지 않고, 의심을 하지 않는 사람은 남의 말을 잘 듣는다. p182


그림으로 글쓰기

"말로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Don't tell, show!)" 이것은 글쓰기 책상 앞에 써 붙여놓아도 좋을 만큼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가르침이다. p187


푼수들의 행진

'훈수 연기'로 유명한 연기자는 많은데, 왜 '지성인 연기' 로 유명한 배우는 없는가? 왜 바보를 숭배하는 문화가 그토록 왕성하게 계속되는가? 그것은 과연 못난 군중에게 동일시의 위안을 준다는 잠재력만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강자는 대리(proxy)를 필요로 하지 않고, 동일시 현상이 정말로 약자에게만 작용하기 때문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모든 기준의 상한선을 충족시키는 모범생이 아니라 괴팍스럽거나 우스꽝스러운 개성이 사람들의 마음과 머릿속에 훨씬 더 강한 인상을 각인하는 탓이리라.

'몸짱'과 '얼짱'의 표준을 벗어난 사람들이 성공하는 현상은 문학에서도 통하는 공식이다. p195


변두리 사람들

작품 속에서 제시된 사건이나 상황보다는 주인공의 극적인 성격과 매력이 훨씬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는다는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인물소설이 태어난다. p197


글쓰기 전투

작가 지망생들이 흔히 생각하듯, 갑자기 무슨 대단한 영감을 받아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다음 책상 앞에 앉으면 밤낮으로 손끝에서 글이 줄줄 흘러나오는 그런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긴 글쓰기란, 집을 지을 때처럼 설계도를 만들고 기초를 닦은 다음, 땅을 밑으로 파고 들어가 지하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작업이다.

재미있는 줄거리 하나만 쓰면서 '내려'가면 된다는 생각은 지붕부터 올리고 그 지붕을 한 손으로 돌고는 거기에다 기둥을 받치고, 그렇게 겨우 고정시킨 지붕과 기둥이 무너지지 않도록 벽을 메워 넣고, 벽을 만들면서 남겨놓은 구멍에다 창문과 문을 끼워 넣고, 마룻바닥을 깐 다음 땅 밑으로 더 파고 내려가 주춧돌을 박고는 막지막으로 기초를 다지겠다며 무모하게 거꾸로 덤비는 격이다.

막상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너무나 할 일이 많다. 그것도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한꺼번에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낱단어 고르기로부터 시작하여, 문장을 만들고ㅡ 의도적으로 균형을 깨뜨리고, 남들과 다른 독창적인 시각을 부여하고, 의도적으로 균형을 깨뜨리고, 남들과 다른 독창적인 시각을 부여하고, 눈에 보이는 생생한 묘사를 하여 다채로운 인물상을 만들어내는 따위의 온갖 사항을 고려하며 한 줄 한 줄 써내려가야 한다.

도대체 그렇게 많은 사항을 어떻게 항상 염두에 두고 글을 써나가느냐는 불령은 하면 안 된다. 모든 작가는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p200


구구리와 뚝배기

창조적인 글쓰기는 그렇게 쉽고 간단한 활용을 무기로 삼지 않는다. 202


토막과 켜의 활용법

문학은 원자재를 가공하거나 요리하는 기술적인 행위를 거쳐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원자재로 삼은 작품을 퍽 많이 썼으며, 그런 소설을 쓸 때마다 취사선택과 발췌 과정을 의식적으로 거치고는 했다. 그래서 답답한 도시인으로 살아가는 나의 일부는 「하얀 전쟁」의 한기주가 되고, 40 고비를 넘어 인생의 반추룰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나의 일부는「미늘」의 서구찬이 되고,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임병석을 구성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은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만식이가 다시 살았다.

생선은 한 마리를 다 먹어도 맛이 좋지만, 동태의 내장만 따로 모아 얼큰하게 끓인 찌개도 삼치구이 못지않게 맛있다. p203

작품은 하나의 새로운 지적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등장인물로 황우석을 차용하고 싶다면, 그 인물을 어떤 특정한 각도에서 새로 이해하고, 이해한 내용을 새롭게 해석한 다음, 다른 극적인 인물로 재구성해야 한다. 아무리 같은 인물이라고 해도 써야 할 작품에 어울리도록 필요에 따라 재단(裁斷)해야 한다는 뜻이다. p204

이렇게 복잡한 어떤 한 인물에 관한 모든 헷갈리고 엇갈리는 정보를 작품에 남김없이 담는다면, 그런 등장인물들은 일관성과 개성을 갖추기가 어렵다. 따라서 모든 정보의 균형을 맞추려는 민주적인 윤리는 글쓰기의 의무사항이 아니고, 바람직한 시각도 아니다. p205

실존 인물의 완벽한 실체는 그대로 재현하기가 불가능하고, 그래야 할 필요나 의무가 작가에게는 없다. 소설적 진실은 작품 자체 내에서 성립되는 당위성이 우선하기 때문에, 형편이 안 맞는 경우도 많다. 소설의 맛은 바로 거기에서 생겨난다. p206



셋째 마당...

줄거리 짜기에서 초벌 끝내기까지


줄거리 짜기(Plotting)

뉴욕대학에서 창작을 가르쳤고 잡지 편집자로서도 활약한 러스트힐스(Rust Hills)는 「장편・단편소설 창작법(Writing in General and the Short Story in Particular)」에서 '구성(plot)'을 "차례로 이어지는 사건이나 상황의 연속(a sequence of actions or incidents that lead one into another)"이라고 정의한다. 첫째 마당에서 간헐적으로 언급했던 '인과의 기승전결' 이라는 뜻이겠다.


영감(靈感)의 정체

사람들은 흔히 작품이 순간적인 영감에서 싹이 튼다고 믿는다. 영감은 씨앗이나 마찬가지여서. 신으로부터 계시가 내리듯, 어떤 깨달음이 열리고, 그러고는 영감의 씨앗에서 뿌리가 힘차게 뻗어 내리면서 싹이 돋아나 나무가 자라고, 잎이 무성하게 피어나고, 꽃과 열매가 맺힌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나의 글쓰기는 결코 그렇게 쉬웠던 적이 없다. p209

이른바 '영감(inspiration)' 은, 특히 장편소설의 경우, 한 순간에 반짝 떠오르는 축복이 아니라, 이렇게 오래 시간이나 세월에 걸쳐 공을 들여 조금씩 쌓아 올리는 무형의 집 한 채와 같다. p213


열어주기(Opening)

우리도 이제는 실제로 소설을 쓰기 위해 제1장의 첫 문장을 써야 할 단계에 이르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문단에 등용되는 가장 확실한 길이 신춘문예의 단편소설 부분임을 고려하여, 단편소설 작가인 나오미 밥슨(Naomi Lane Babson)이 체험에 기초를 두고 작가 지망생들에게 한 충고를 우선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습작 시절루돌프 플레시의 지침서들과 더불어 나에게 가장 확실한 스승 노릇을 했던 「글쓰기의 길잡이(The Writer's Handbook)」(Edit.A. S. Burack, The Writer, Inc.,Boston, 1956)에 그녀가 기고한 글("Where to Begin and Where to Stop")을 보면 "끝은 곧 시작의 한 부분"이라고 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단편소설에서는 시작 부분에서 "흥미를 빨리 유발하고, 엄격하게 절제된 어휘로 분위기 조성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는 뜻이다. "처음 몇 단락이나, 아예 처음 몇 문장에서, 독자는 상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상상의 인물들을 진짜라고 받아들이도록 속아 넘어가야 하며, 그래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더 잘 알고 싶은 호기심을 느껴야 한다."고 밥슨은 말한다.

오늘날에는 편하고 판에 박힌 열어주기 공식이 통하지 않으며, 작가는 "문을 열고 다시 여는 반복 과정을 거치지만, 매번 다른 열쇠를 사용하여 같은 문을 열어야 한다."라고 밥슨은 충고한다. 이것은 필자가 앞에서 이미 설명했고, 앞으로 다시 설명하게 될 '볼레로 기법'을 의미한다. 어떤 인물이나 사건, 또는 상황을 한꺼번에 쏟아버리지 말고, 춤추는 여자가 옷 기를 하듯, 야금야금 보여주는 점층법 말이다.

독자는 문턱처럼 발에 걸리는 서론을 참고 들어줄 인내심이 없어서, 단숨에 어떤 상황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싶어한다. 그래서 "시작에서 시각하면 안 되고 중간의 앞부분에서 시작한다."라는 원칙이 생겨났다. 달편소설이란 성격상 소수의 등장인물이 하나의 상황 속에서 줄거리를 엮어나가면서 중요하고도 진지한 정서적 동일시의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상황이 짧다면, 건더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 한 편의 훌륭한 단편소설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살아 숨쉬고, 시작과 끝은 그래서 같은 몸에 붙은 팔다리와 같다.

시간과 공간이 제한된 단편소설에서는 대부분 상황이 몇 시간이 며칠로 끝나지만, 인물에 대한 작가의 이해는 총체적이고 완전해야 한다. 일단 시작이 되면 단편소설에서는 하나하나의 단어가 중요성을 지니며, 전개는 끊임없이 그리고 중단 없이 앞으로만 나아간다. 단편소설에서는 시에서처럼 "잠시 멈춰 서서 웅시하는 여유의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밥슨은 주장한다. 훌륭한 단편소설은 필연적인 시작으로 시작되어,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필연적인 기승전결이 이루어지며, 설명과 묘사로 지면을 낭비하는 사치가 용납되지 않는다. 하나의 문장은 가급적이면 한 단어로 줄이고, 하나의 단락은 하나의 문장으로 줄이려는 습성이 단편 작가에게는 본능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시작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대부분이 작가 지망생들이 생각하는 바와 정반대로, 짧게 제한된 단편소설은 길어서 지면의 여유가 넉넉한 장편보다 훨씬 쓰기가 어렵다. p221


길게 열어주기

시작부터 종결까지 모든 요소를 압축하고 집약해야 하는 단편소설과는 달리, 시간과 공간과 지면이 보다 풍족한 장편소설에서는 열어주기도 상대적으로 길어지고, 첫 문장으로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으려는 과욕을 부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첫 단락이나 첫 장이 승부를 벌이는 터전 노릇을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독자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는 원칙은 같다.

50년이 넘도록 절판이 되지 않으면서 꾸준히 15만 부나 팔린 「읽히는 글을 쓰는 기술(The Art of Readable Writing)」(Rudolf Flesch, Harper & Row, 1949)에서 플레시는 이렇게 말한다.

"심리적으로 얘기하자면, 열어주기에서는 독자의 관심을 끌고, 다음에 벌어질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시키기는 하지만, 몽땅 보여줘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전체적인 얘기를 대충만 짤막하게 털어놓고, 내용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비중에 따라 세부적인 사항을 조금씩 차례대로 독자에게 알려준다. 그러고는 하고 싶은 말을 다했으면, 끝내라.(When you've said what you wanted to say, stop.) 마지막으로 종합하여 설명하는 종결은 불필요하다." p222


움직이는 열어주기

"중간의 앞부분에서 시작하면서도 단숨에 어떤 상황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기는 하지만, 시작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라는 밥슨의 말을 잠시 새겨보자. 이것을 고지식하게 꼭 "줄거리의 중간에서 시작한다."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한 편의 작품이 1-2-3-4-5-6-7-8-9-10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면, 여기에서 말하는 '중간'과 '한가운데'는 '2'가 되기도 하고, '6'이나'9'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의 '중간'은 '진행형'을 뜻한다. p225


도치법과 둘러싸기

둘러싸기(envelopment)라는 기법도 도치법의 일종이라고 하겠다. 문학에서 자주 활용되는 둘러싸기란 작품의 시작과 끝이 동일한 내용으로 이어지며, 그 한가운데 극적 사건을 배치하는 방법으로서, 회상 장면에서 많이 쓰인다. 영화「러브 스토리」가 좋은 예이다. p228

이렇듯 첫 문장 하나를 쓸 때도 철저한 계산과 분석이 뒷받침을 해야 하고, 글쓰기에서는 무엇 하나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영감만으로는 계산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p230


전개(展開)의 양 날개

주제의 설정과 구상을 끝내고 열어주기를 한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사건(action)과 상황을 펼쳐 전개(development)를 시작해야 하는데, 소설 전개의 기능을 맡은 두 가지 추진력은 서술과 대화라는 두 날개이다. p230

노먼 메일러는 하버드대학에서의 글쓰기 교육을 회상하면서 소설의 말하기가 실제 말하기를 얼마나 정제한 형태를 갖춰야 하는지에 관해 이런 설명을 했다. "훌륭한 글쓰기는 사람들이 말을 할 때라면 섣불리 그리고 감히 동원하지 않는 정밀함을 보여주지만, 그러면서도 얘기를 하는 듯한 말투의 뒷맛을 남긴다. 그런 문체를 제대로 터득하려면 평생이 걸린다." 이것은 서술뿐 아니라 대화 쓰기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대화체는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실제로 말하는 그대로 쓰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들린다. 사람들은 말을 더듬고, 중복하고, 쓸데없는 단어가 많이 들어가지만, ㄱ런 모든 '자연스러운' 요소를 제거하며 열심히 다듬어야 오히려 '자연스러운' 대화체가 된다.

그것은 현실에스는 로또 복권에 당선되는 사람이 많지만, 소설에서는 그런 우연이 용납되지 않는 원칙과 마찬가지이다. p232

인물을 구성하는 말투

말투(manner of speech)는 인물 구성의 중요한 요소로서, 등장인물의 말투에서는 저마다 다른 개성이 드러나야 한다. 직업과 성별, 나이와 성격에 따라서 사용하는 어휘와 표현 방식 그리고 말버릇이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이고, 등장인물이 한 번 입을 열었다 하면 그의 언어적 특성은 그 인물이 죽거나 퇴장하여 사라질 때까지 작품 전체를 관통해야 한다. 그것은 참으로 만만하지 않은 도전이다. p232


따옴표의 힘

노래의 가락 역할을 글쓰기에서는 대화가 맡는다. 대화는 서술과 묘사를 입체화한다. 그래서 무기력한 서술체를 활성화하면서 대화 자체도 더욱 힘을 얻는다. 서술적인 묘사보다 짤막짤막한 대화를 쓰기가 더 어려운 까닭을 아마도 그렇게 설명해도 되리라는 생각이다. p245


초벌 끝내기

'데누망' 은 단락이나 장(章)에서 정곡이 하는 역할을 작품 전체에서 맡아 처리하는 '종결' 하는 끝내기이다.

'종결' 은 '극점(climax)'에서 독자나 관객의 긴장과 흥미를 최고조에 올려놓은 다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한칼에 잘라버린 고르디우스의 매듭만큼이나 시원스러운 해답을 제공하는 기교가 이상적으로서, 그런 모범답안은 낭만적인 악당 아르센 뤼빵을 창조해낸 모리스 르블랑이나 셜록 홈즈를 탄생시킨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그리고 주제나 문학성보다 문체의 기교로 훨씬 더 유명한 에드가 앨런 포유의 작품에서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p252

하지만 쿠리극의 '풀어내기'는 때때로 종결에 모든 힘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폐단을 가져오기도 한다. 연극 사상 최장 공연을 기록한 「쥐덫(Mousetrap)」의 경우, 극장으로 가는 택시 손님이 팁을 적게 주면 운전사가 극장으로 들어가는 손님의 등뒤에 대고 "범인은 누구다!"라고 소리쳐 김을 뺐다는 일화도 그래서 전해진다. p252

어떤 작품이 '반한 얘기'가 되지 않게 하려면 작가가 결정적인 마지막 사실을 감추는 데서만 끝나서도 안 된다. 감추기는 감추면서도 감추지 않은 듯한 인상을 줘야 하는데, 애거타 크리스티가 중간에 가끔 엉뚱한 인물이 범인이라도 되는 듯 의심과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기법이 이런 의도된 오도(誤導, misleding)의 한 가지 전형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반복되는 그런 기법에 익숙한 독자나 관객은 전반부나 중반에서 범인으로 지목받는 인물을 아예 대상에서 제외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여기에서도 노련한 줄타기가 필요하다.

속이려는 작가와 속지 않으려는 독자 사이에는 항상 긴장이 존재한다. 이러한 긴장의 대결에서 독자보다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작가라면, 특히 추리소설 작가가 그렇다면, 얼른 직업을 바꿔야 마땅하다. p253


집사가 하는 일

사족은 본론만으로 설득과 감동을 이끌어낼 자신이 작가에게 없음을 보여주는 물적 증거이다. 이른바 경계 허물기(crossover)나 이질적인 형식의 융합(fusion)은 개척과 탐험의 실험정신에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때로는 개척자 정신이 넘쳐서가 아니라 보수적인 화법의 실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정통(orthodox) 승부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의 핑계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면 돌파와 정면 승부가 아니면 어떤 분야에서도 정상에 오르기가 어렵다. 기발함으로는 좀처럼 뚝심을 이기지 못한다. p258


먼저 뒤집기

글쓰기에서 지정된 공식이 따로 없기는 끝내기 과정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품에 따라 줄거리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이 당연히 달라야 하듯이, 마무리를 짓는 종결 방법 또한 작품의 성격에 따라서 다르다.

그리고 뒤집기는 끝내기에서도 절묘하게 돋보인다.

단편소설에서는 시작과 끝을 같은 장면으로 연속시키는 기법, 그리고 비슷한 구조나 내용으로 연결되는 둘러싸기(envelopment) 기법이 끝내기로서는 효과적이어서, "끝과 가장 가까운 시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문장 이론가들이 적지 않다. (?)



넷째 마당...

시작에서 퇴고까지


무작정 만드는 쪽지

나는 소설 한 작품이나 번역 따위에 관한 책 한 권을 탈고하면, 바로 그날이나 적오도 이튼날 당장, 미리 준비해 두었던 다른 계획에 착수한다. 따라서 나에게는 영화「미저리」첫 장면에 나오는 그런 화려한 끝내기 행사도 없고, 할 일이 없거나 글이 안 써진다는 핑계도 없다. 물론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애꿎은 담배를 피우며 허공을 쳐다보고 한숨을 짓는 일도 없다. p296


보물상자

작가는 언제 어떤 작품을 쓰게 될지 잘 모른다. 일단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고 나면 언제 어디서 어떤 자료를 필요로 할지 모르고, 그래서 아무리 평화 시라고 해도 나는 모든 글쓰기 전쟁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해놓는다.

전쟁. 그렇다. 좀 험악하게 비유하자면, 작가의 삶은 다른 모든 경쟁적인 직업인의 삶이나 마찬가지로 하나의 전쟁이고, 하나하나의 작품은 저마다 한 차례 전투여서, 여러 전투에 대비한 갖가지 전략과 전술을 포괄하는 전체적인 전쟁 계획이 필요하다. p300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싶은 작가는 평생 써야 할 여러 작품을 설계하고 준비해 나가야 한다. 작가로 등용되기 전에 많은 작품을 써보고, 신춘문예 당선 소설의 후속작들을 미리 어느 형태로든 만들어 놓아야 하는 필요성이 거기에서 생겨난다.

번역에 대해서도 그런 얘기를 했었지만, 글쓰기는 개인 기업이다. 기업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기도 해야 하지만, 부기학(簿記學)도 이해하고, 제품 관리와 배급과 수송, 반품의 관리, 그리고 함께 일할 인력을 선발하고 다루는 용병술까지 알아야 한다. 거기에다 다른 제품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한 상품의 다양화도 필수적이다. p301

처음에는 무계획적으로 진행되던 자료 수집은 작품이 인물소설이냐 아니면 상황소설이냐, 또는 기둥줄거리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에 필요한 본격적인 형태로 수집 방법이 바뀐다.

그리고 작품을 임신하면 입덧이 시작된다. 거듭되는 입덧과 함께 자료 수집에는 가속도가 붙고, 아직 다른 작품을 끝내지 않았는데도 다시 만삭에 이르면, 해산을 준비해야 한다. 해산의 준비는, 문학용어로 표현하자면, 구상(plot)이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멍하니 앉아 담배를 피우고 허공을 응시할 시간이 없다. p302


붓다와 그리스도가 마난 걸레스님

실존 인물이나 역사적인 사실을 작품의 필요성에 따라 가공하는 의도적인 왜곡 작업을 문학용어로 창작적 일탈(poetic license)이라고 한다. 이 용어는 본디 시를 쓸 때 문학적 감동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운율이나 문법 그리고 논리와 사실 따위가 어긋나도 된다는 파격을 뜻하는 말이었다. p304


뒤늦은 정보의 처리

아무리 늦은 정보라도 나는 쓸 만한 내용이라면 절대로 버리지 않고 쪽지를 만든다. 그러고는 개정판이 나오는 경우를 위해 그런 지각 정보는 따로 모아 보관한다. 특히 어떤 작품이 잡지에 실리기는 했어도 아직 단행본이 나오지 않은 경우에는 자료 수집을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작품의 퇴고는 책으로 묶여 나올 때까지 계속해야 하고, 그래서 예를 들어 2004년 「현대문학」에 발표했던 중편소설「뗏장집 김노인의 마지막 하루」를 위한 자료철은 아직도 폐기하지 않은 채 쪽지들을 차곡차곡 먹인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를 펴낸 출판사가 문을 닫아 절판이 된 지 벌써 오래이고 보니, 혹시 개정판이 절대로 안 나온다고 하더라도, 앞에 소개한 일화 정도의 자료라면 좀처럼 버릴 마음이 나지 않는다. 지금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지만, 혹시 어느 단편소설에서 나이 많은 등장인물이 어렸을 적에 겪은 전쟁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올지 모르고, 그러면 이런 쪽지들은 틈을 찾아 들어가 제자리를 마련할 잠재성이 적지 않아서이다. p306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교훈

'나중에 글쓰기 인생을 위한 에필로그' 항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어는 정도 작가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 콩트나 수필 같은 조각글을 써달라는 청탁서가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오는데, 바로 이런 때가 성공한 다음의 몸가짐과 작품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시기다. 성공의 단맛에 도취되고 흥분하여 아까운 정보를 부스러기로 낭비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p307


산으로 가는 낚시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준비가 이루어지면, 나는 그동안 모아놓은 모든 관련 자료를 꺼내 바구니에 담아놓고, 다시 정리하여 제 1장에 들어갈 쪽지들만 다로 뽑아낸다. 그러고는 쪽지들을 가지고 그림 맞추기를 하듯, 제 1장에서 벌어질 상황의 기승전결을 연결시킨다. 이렇게 순서대로 모든 쪽지를 작은 책처럼 배열한 다음, 나는 낚시를 간다.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낚시를 가는 까닭은, 물가에 나가 앉아 휴식을 취하는 동안 가장 생산적인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고기가 잘 잡힌다고 해도 사람이 많은 곳에는 자리를 잡지 않는다. 입질이 없더라도 혼다 조용히 앉아, 서울로 돌아가서 써야 할 글에 대한 구상을 하고 싶어서이다. 앞으로 한 주일 동안 써야 할 부분의 상황과 인물 설정, 대화 따위를 생각하다다, 좋은 표현이나 단어, 새로 첨가할 내용 따위가 생각나면 다시 쪽지에 적어 호주머니에 자꾸자꾸 쑤셔 넣는다. 그래서 나는 나의 차와 낚시복뿐 아니라, 자주 얻어 타는 남의 자동차에도 필기 도구를 여기저기 비치해 놓는다. 글판과 차안, 온 세상이 나의 집필실이다. -> 작가의 일상과 작가관

과제가 주어지면 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구상을 위한 산책부터 나가보라. 줄거리가 안 풀려 답답해지는 글 막힘 상황(writer's block)이 닥치면, 조바심을 할 필요가 없다. 다른 모든 일이나 마찬가지로,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머리를 혹사하면, 모든 분야의 과로한 노동자나 마찬가지로, 일을 못한다. 반면에, 강이나 산으로 가면 저절로 피로가 가시고, 피로가 가시면 생각의 낚시에 저절로 물려 올라오는 착상이 적지 않다. 생각을 돌려 풀어주면, 나는 가만히 있어도 생각 혼자 돌아다니며 쓸 만한 단어와, 표현과, 사건을 물어다 주고는 한다.

그래서 나는 산으로 낚시를 간다. p310

글쓰기의 하루

나는 아침 여섯 시쯤 에 일어나면 세수도 하지 않고, 이도 닦지 않고, 신문도 보지 않고, 글쓰기부터 시작한다. 가장 머리와 마음이 맑을 때 가장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간혹, 좀 창피한 얘기지만, 깜박 잊고 오후에 세수를 하지 않은 채로 외출을 하는 지저분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렇게 네 시간쯤 집중적으로 글을 쓰고 나면, 머리가 탁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머리가 탁해지는 시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빨리 돈다. 글쓰기처럼 극심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을 네 시간이나 하고도 머리가 아프지 않은 사람은 '돌대가리' 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머리가 맑지 않으면 글쓰기를 중단한다. ... 그런 상태에서 쓴 글은 어차피 나중에 다시 써야 한다. 그래서 웬만한 날이면 이 시간에 나는 산으로 '낚시'를 간다.

한 시간 가량 숲 속을 돌아다니다 내려와 목욕을 한 다음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나면 오후 두 시가 되고, 이때부터 오후의 일과가 시작된다. 그러고는 오후에 다시 머리가 탁해지면 잔디밭에 나가 풀을 뽑는다든지 낚시방을 다녀오는 등, 어쨌든 작업실을 벗어난다.

능률이 굉장히 왕성한 날에는 저녁에도 일을 계속하지만, 오후 내내 좀처럼 머리가 맑아지지 않으면 그날의 글쓰기는 거기에서 끝난다.

간밤의 과음과 숙취에 시달리는 아침을 맞으면 역시 일을 하지 않고 오후까지, 때로는 저녁까지 머리가 맑아지기를 기다린다. 참으로 시간이 아깝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때로는 하루 종일 쉬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낮잠을 워낙 많이 자다 보면 새벽 한 시나 두 시가에 잠이 깬다. 그러면 억지로 잠을 계속 자려고 애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글을 쓴다. 피곤하지도 않고 머리가 맑으면, 그런 시간은 절대로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셋째마당 모두(冒頭)에 나오는 '줄거리 짜기' 항도 어느 날 새벽 한 시에 일어나서 네 시간 동안 쓴 글이다. 그렇게 하루의 작업량을 한밤중에 채우고 나면 다시 피로가 쏟아지고, 그러면 날이 밝을 때까지 다시 잠을 잔다.

나에게는 잠을 자는 시간이 자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자신이 자거나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정하는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바로 그것이 글쓰기 인생의 즐거움이다.

주말이면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이틀 동안 낚시터로 일을 하러 간다. 글쓰기는 은행 업무나 철도 안내원처럼 시간당으로 작업량이 누적되는 직업이 아니어서, 서두르거나 빨리 한다고 해도 별다른 혜택은 없이 자칫하면 실수만 저지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리 일이 지나치게 잘되거나 아니면 반대로 작업량이 밀리더라도, 주말만 되면 나는 강제로 쉰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나의 글쓰기가 대단히 태만하고 불규칙한 생활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누구보다도 규칙적으로 일한다고 믿는다. 한 주일치 작업량을 항상 채우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150권의 책을 번역하는 동안 정말 단 한 번도 마감을 어겨본 적이 없고, 시간 약속도 천재지변이 없는 한 어기지 않는다. 그것은 30년 동안 직장도 없이 자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살아온 나 자신에게 내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성실성이다.

나는 자유롭고 불규칙하면서도 규칙적인 시간표를 따라야 하는 이런 생활을 무척 행복하다고 믿는다. 출퇴근을 하느라고 답답한 길바닥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근무시간에 대해서 잔소리를 하는 상사도 없고, 어느 누구의 눈치도 살펴야 할 필요가 없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하고 싶은 만큼만 해도 되는 직업이면서, 거기다가 조금쯤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까지 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자신을 엄격히 통제하는 간단한 의무마저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그냥 죽는 수밖에 없다. p316


비낭만적인 일과

새로운 경험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작가는 눈과 귀를 발달시켜 남이 못 보는 사물의 측면을 관찰하고, 타인들의 얘기를 들으면 내용뿐 아니라 화법도 분석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관찰은 의도적인 경험이다. 작가는 똑같은 경험을 관찰하더라도 타인들과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작가에게는 자신의 삶 자체가 밑천이다. 삶은 경험이요 교육이며, 훈련이고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나쁜 경험은 교훈으로 해석하면 약이 된다.

작가는 자신이 숨 쉬고 밥 먹는 행위까지도 잠재적인 자료로 간주하여 열심히 관찰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삶과 경험과 만남과 인연에서 수집한 온갖 자료 쪽지들은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당시에 내렸던 판단을 담았을 테니까. 여러 다른 시점에서 작성한 잠언적 진술들을 하나의 관점으로 통일시켜야 하며, 그렇게 통일된 관점을 지렛대로 삼아 이어나가며 정리하여 하나의 작은 조각 장면으로 엮어놓고, 여러 개의 작은 조각 장면을 긴 장면으로 다시 엮어 기승전결을 만들며, 군데군데 소종결(小終結)을 맺어놓은 다음 문맥의 흐름도 바로잡는다.


개성 없는 정답

개성도 노력이 만든다.

작가의 존재를 인정하는 근거가 되는 당위성은 주관적 객관성이다.

정답에 집착하는 습성이 무개성을 낳는다.

남들보다 조금 먼저 알기보다, 늦게라도 좋으니 스스로 깊게 깨치는 배움이 필요하다.

진지한 글쓰기는 이력서용 교육이나 훈련이 아니다.

틀을 벗어나는 능력이 자유로운 창조의 출발점이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Meursault)가 저지른 살인은 원인과 결과의 흐름을 깨뜨리지만, 모든 소설의 모든 주인공이 모두 똑같은 방법으로 틀을 깨뜨리면, 그런 틀 깨뜨리기는 새롭고도 낡은 틀을 하나 더 만들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뒤늦게 고백하지만, 첫째와 둘째 마당에서 글쓰기 과제를 낸 다음 '모범답안'을 제시할 때마다 참으로 못할 짓을 한다는 거북함을 느끼고는 했다. p320


박절기(拍節器) 머리

잘못 튀면 떨어질 때 다리가 부러진다. p323


현상의 빈도수와 해적질

비슷한 경우가 많으면 자연의 보호색이나 마찬가지로 주변 환경과 잘 어울려 어쩌다가 슬그머니 훔치기를 하더라도 쉽게 들키지 않는다. 도독이 어둠 속에서 검정 옷을 입고 돌아다닐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너무 특이한 상황은 신빙성이 없을 뿐 아니라, 지나치게 노출이 심해서 손해를 본다.

상황뿐 아니라 표현과 낱단어도 마찬가지이다. 작위적인 기발함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도스또예프스끼나 바이런 또는 까뮈가 '알콩달콩' 이라는 어휘를 사용했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방정맞은가.

특히 산문에서는 평범하지만 정확하고 논리적인 표현이, 달지도 않고 아무 맛도 없는 떡처럼, 오히려 맛이 깊다. p326

묘기와 말장난

기발한 진부함은 훔치기의 한 형태라고 욕을 먹지만, 따분한 지루함은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다 말고 덮어버리게 한다. 그렇다면 튀는 발랄함과 더딘 진부함 사이에서 어떤 줄타기를 해야 하나?

만사에 중용이 해답이다. p328


자유로운 상상의 한계

상상력은 문학적 글쓰기의 샘이다. 창작(創作)이라 함은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뒷받침하는 창조적인(創) 글쓰기(作)이다. 그러니까 창조는 상상을 구체화하고 가시적으로 실현하는 한 가지 양상이다. p328


스티븐 킹의 독보

작가는 본디 저마다 혼자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독보적인 존재가 많기는 하지만, 변칙적인 작가라면 나는 스티븐 킹(stephen King)을 꼽겠다. 그가 독보적인 까닭은 그의 고유 분야가 공상과학인지 아니면 괴기(Gothic)인지, 환상(fantasy)인지 아니면 추리(mystery)인지 따로 틀에 잡아넣어 분류하기가 어려우면서도, 그의 작품세계는 누가 보더라도 확실하게 독특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냥 스티븐 킹적일 따름이다. p331


어스킨 콜드웰을 위한 변론

스티븡 킹이 내용(contentz) 면에서 독보적인 작가였다면, 중편소설을 '이상적인 크기(optimum size)' 로 삼아 전문적으로 썼던 어스킨 콜드웰(Erskine [Preston] Caldwell, 1903~87) 은 형식(form) 면에서 독보적인 작가였다. p338

하버드를 비롯하여 여러 대학에서 문학사를 가르쳤던 로버트 스필러(Robert E. Spiller) 교수가 「미국문학대계(美國文學大系)」에서 토머스 울프, 어니스트 헤밍웨이, 제임스 패럴(James T. Farrell), 존 스타인벡, 윌리엄 포크너와 더불어 193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았던 언스킨 콜드웰은 다수의 걸작 단편소설을 썼고, 하나같이 길이가 150쪽 정도인 20여 권의 중편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의미의 장편소설은 한권도 쓰지 않았다. p341


짧은 소설과 긴 단편 사이

콜드웰의 여러 작품에서는 살 냄새가 물큰한 통속적인 서술과 대화가 외설에 가까워 자주 예술성 여지가 논란이 되기도 했으며, 비록 고전 작가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어도, 나는 콜드웰이 그가 살았던 당시보다 오히려 요즈음 글쓰기에 알맞은 방식으로 일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다분히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나는 중편 형식이 지금의 시대와 잘 맞아떨어지는 틀이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작가들은 등단 시절에는 단편을 열심히 쓰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면 장편이나 대하소설을 쓰는 양극화 현상을 보였지만, 활자가 영상에 밀려나 몰락하고, 독자층이 긴 글을 읽으려 하지 않으며, 다수가 접속하는 대량매체의 발달로 숨이 긴 설득의 어려움이 현실로 떠오른 요즈음 같아서는 5백 매에서 8백 매 정도의 중편소설이야말로 개발의 여지가 넉넉하여 전력투구를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p343


중편의 늘이기와 줄이기

작품의 크기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라면 물론 주제와 소재이다. 하지만 한 작가의 삶에서는 원기가 왕성한 젊은 시절에 장편을 쓰고, 대부분의 주요 작품을 다 쓰고 난 다음 중연이나 장년부터는 한 달이나 두 달이면 탈고가 가능한 중편을 쓰고, 노년에는 단편을 쓰겠다고 전체적인 계획을 세워도 합리적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50을 넘으면 긴장을 유지하기에 장편은 너무 길다.

어휘의 낭비가 용납되지 않는 단편소설을 만드는 힘겨움은 앞에서 몇 차례 이미 언급했지만, 장편소설을 쓸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잘라내기와 다듬기를 통해 모든 요소를 압축하여 엮어내는 원칙만큼은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단편을 쓰는 데 필요한 긴장을 장편의 길이만큼 연장해야 한다는 뜻인데, 그 고통스러운 부담이 어느 정도일지는 쉽게 상상이 가리라고 생각한다.

첫 장편을 쓰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고통이 힘겹다고 느끼는 경우라면, 중편 쓰기를 권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편적으로 중편을 장편으로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단편 못지않게 장편으로 등단하는 기회가 많이 열렸으므로, 단편의 속박을 벗어나 곧장 '큰 물건' 만들기를 시도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럴 때는 일단 중편을 만들어 놓고, 다듬기 과정에서 장편으로 개작하는 방법도 하나의 요령이 된다. 그리고 반대로, 어설픈 중편을 정성껏 다듬으면 놀랄 만큼 좋은 단편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중편은 숩작기에 늘이기와 줄이기를 연습하기에 알맞은 '크기'이기도 하다. p345


3단계 고치기

1차적 글쓰기가 끝난 다음 초고를 손질하여 책으로 출판하는 제작 과정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원고 읽기와 다듬기 그리고 고쳐 쓰기 이렇게 보통 세 가지 주요 퇴고 단계를 거친다.

원고 읽기(copyreading)는 따로 담당자를 두어 신문이나 잡지에 게재할 글의 맞춤법과 띄어쓰기 따위 형식상의 손질을 하는 일로서, 작가 자신이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고쳐 쓰기(rewriting)는 작가가 자신의 글을 출판사에 넘겨주기 전에 혼자서 스스로 하는 작업을 뜻하며, 진정한 의미의 '퇴고'가 여기에 해당되기 때문에 뒤에서 본격적으로 설명하겠고, 여기에서는 흔히 '편집' 이라고 사람들이 지칭하는 '다듬기(editing)'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겠다.

'편집' 이라고 하면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판짜기(layout 또는 makeup)' 를 뜻한다. 인쇄할 글자의 크기와 모양, 사진이나 도표 및 그림 따위의 부수적인 자료의 배열, 삽화와 풀이(註)의 처리 방식 따위를 결정하는 과정.

우리나라 사람들이 '판짜기'와 자주 혼동하는 '다듬기' 는 서양(그러니까 적어도 영어권) 출판계와 한국 문학계에서 그 개념과 위상이 서로 크게 다르다. 다듬기란 우리나라에서는 출판사나 잡지사의 편집부 일반 직원이 담당하는 원고 읽기 차원의 과정을 뜻한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퇴고까지 거친 최종 원고를 다시 편집자와 작가가 함께 손질하는 공동작업을 의미한다. p349


토머스 울프와 맥스 퍼킨스

문장 전문가로서의 경험으로 다져진 편집자의 능력과 초보 작가의 잠재력이 가장 이상적인 조화를 이룬 유명한 사례가 토머스 울프(Thomas wolfe)와 맥스 퍼킨스(William Maxwell Evarts Perkins, 1884~1947)의 경우였다. 울프는 엄청난 양의 원고를 생산하고는 했는데, 그것을 다듬어 '작품으로 만든 사람은 울프가 아니라 편집자 퍼킨스였다. 그래서 울프는 작가로서 그가 성공한 이유를 자신의 글쓰기가 아니라 퍼킨스의 다듬기 덕택이었다고 평생 고마워했다. p350


죽이고 살리기

가장 뛰어난 글쓰기는 자살을 잘하는 글쓰기이다.

문장의 마름질에서는 잘라내기가 기본이며, 자신의 문장을 자르는 용기만이 글의 흐름을 압축하여 폭발력을 상승시킨다.

남의 글을 잘라내듯 자신의 글을 잘라낼 줄 아는 능력은 참된 작가가 되는 첫걸음이요 지름길이다. p353


홀가분한 버리기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서 작품을 ㅆ는 일은 독자에 대한 의무가 아니라 작가 자신에 대한 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남을 위해서, 독자인 타인들을 위해서 글을 쓴다고 해도, 어차피 작가 자신도 독자의 한 사람인 바에야, 작가는 자신에게 책임을 져야하며, 자신을 스스로 심판해야 한다.

누군인지 이름조차 모르는 여러 독자들이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글을 쓴다면, 지금 내 앞에 앉아서 어느 독자가 내 작품을 읽더라도 당당하고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그것은 작가 자신에게도 당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나 자신이 읽어서 낯이 뜨거워지고, 남이 읽으면 더욱 부끄러워질 작품이라면, 그런 작품은 버려야 한다.

어떤 문장을 아무리 고쳐 써도 마음대로 안 되면, 그 문장은 잘라버려야 하고, 아무리 여기저기 고쳐가며 다시 써도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작품도 버려야 한다. p356


무자비한 학살

헬렌 졸드는, 특히 단편소설의 다듬기에서 "단 하나의 강렬한 감동으로 독자를 사로잡기 위해", 자신의 글을 작가가 어느 정도로 무자비하게 학살해야 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주문했다. 단편소설이란 웃음이나 눈물이나 낭만이나 공포 가운데 단 한 가지 정서만 담아야 하며, 체홉이나 모파쌍조차도 그 네 가지 감정을 모두 한 작품 속에 담지 못한다고 졸드는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의 감정을 뒤흔들어놓을 만한 감동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기여하지 못하는 모든 단어와 문장, 모든 단락을 잘라내야 한다. 창작교실에서 'A' 학점을 받을 만큼 장식적이고 유려한 문장은 작위적인 인상을 줄 뿐이어서, 가차 없이 잘라내야 한다고 졸드는 충고한다. p357


반복이 일으키는 혼란

초벌 원고 만들기와 고쳐 쓰기에 이어서 이루어지는 세 번째 훑어가기 과정은 출판사에서 편집을 끝낸 다음 보내주는 교정지를 가지고 하는 작업인데, 시간은 한 달 가량 걸린다. p360


하나씩 따지는 낱단어

간결함과 생동감이 서로 동반하는 현상은 낱단어의 선택에서도 이루어진다. 수정과에 띄워놓은 몇 알의 잣이 그토록 맛지고 보기에도 좋은 까닭을 따져보면, 희귀성 때문이다. 쓸데없이 중복된 단어들이 줄지어 나타나는 질펀한 문장은 독자의 눈과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 p362


이슬비 내리는 아침의 우산 세 개

글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이어야 한다. p365


꼬막과 송이버섯

인상(impression)은 그림으로 각인(刻印), imprint)된다. p367


내치는 고쳐 쓰기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솔 벨로우는 하루에 다섯 기간에서 여섯 시간씩 꼬박꼬박 글쓰기를 했으며, "열 번의 고쳐 쓰기는 드문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여러 차례의 고쳐 쓰기는 대부분의 진지한 작가에게는 지극히 일번적인 습관이며, 비교적 순수했던 습작 시대에는 나 또한 「은마는 오지 않는다」를 십여 차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고쳐 쓰기를 했다. p368



다섯째 마당...

글쓰기 인생의 만보


전지신과 주제

러스트 힐스는 「장편・단편소설 창작법」에서 작가란 그가 창조하는 세계를 다스리는 신과 같은 존재로서, 모든 등장인물의 운명을 좌우할 뿐 아니라, 그 세계를 하나의 완벽한 단위로 만들게끔 전체적인 일관성을 부여할 책임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일관성을 부여하는 작가의 두 가지 관점은 세계관과 도덕관인데, 그 두 가지는 때때로 상충하기도 한다. p379

동일시는 공감과 문학적인 동의어이다. 독자는 특정한 등장인물들을 사랑하거나 미워할 이유가 정당하고 합리적이기를 원한다. 불가항력이라는 비논리적 설득 방법은 너무나 낡은 수법이다. p380


주제를 넘지 않으려는 줄타기

독자는 다양하다. 그들이 느끼는 관심의 대상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작가는 글쓰기를 직업으로 택하기 전에 어떤 종류의 독자, 어떤 차원의 독자를 겨냥해야 할지를 미리 결정해야 한다. p288

포스터는 소설이란 다른 모든 요소를 '촌충(tapeworm)'처럼 접합시키는 '등뼈(backbone)' 가 필요하며, "폭군과 야만인에게서 똑같은 효과를 거두는 유일한 문학적 도구인 긴장"의 조성이 가장 효과적인 기법이라고 말했다.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기대감으로부터 긴장은 생겨나고, 긴장을 늦춰주면 월척 붕어처럼 독자는 줄을 끊고 도망친다. p390

작가는 소설의 전개를 계속하는 동안, 귀소 본능이 잘 발달한 짐승처럼, 회귀를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p391


주제와 철학의 세계

어떤 한 작품의 일관된 시각을 '주제' 라고 하면, 어떤 한 작가의 모든 또는 대부분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시각을 우리는 그 작가의 철학이나 사상, 또는 '세계' 라고 한다. 여기에서 '세계(world)'는 다른 말로 작가가 지향하는 '가치관(values)' 이나 '세계관' 그리고 작가가 전달하려는 '의미(message)' 와도 같은 개념이다.

'작가의 세계' 라고 하면 주인공들로 구성된 사회학적인 요소를 의미하기도 하고, 개별적인 '작품의 세계'는, 가장 유명한 예로 꼽히는 허만 멜빌의 소설「모비 딕」의 경우, 에이하브(Ahab) 선장을 주축으로 하여 이루어진 피쿼드(pequod) 호 선상(船上)의 독립된 단위 사회, 즉 '소우주'를 지칭하기도 한다. 박경리의 「토지」나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이런 소우주를 형성하는 셈인데, '작은 우주(mikros kosmos=micro cosmos)'는 '세계'의 축소판인 공동체나 마을 같은 집단사회를 뜻하기도 하며, 중세문학에서는 저마다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인간'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널리 쓰였다. p392


문체의 문제

어떤 작가들은 줄거리의 구성이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어떤 비평가들은 인물의 구성이 훨씬 더 주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문장이론가들은 소설에서 문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서술의 관점이나, 주제나, 작품 자체의 품격을 강조한다.

지금까지 앞에서 몇 차례 거듭하여 강조했듯이, 나는 글쓰기에서 모든 요소가 똑같이 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 가운데 이제부터 살펴볼 문체는 언어의 갖가지 요소, 그러니까 어휘와 구문(syntax)과 구두법(句讀法, punctuation) 따위를 중심으로 삼아서, 단순한 일반적 기교에서부터 작가의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어업까지를 모두 포괄하며, 주제는 물론이요 '목소리'와 '시각'을 표현하는 기법까지를 통틀어 의미한다. p393


벌거벗은 대화

21세기는 초고속통신의 시대이고, 그래서 소설문학에서도 주렁주렁 장식을 달지 않은 벌거숭이 대화체가 널리 사용되는 추세이다. 그런 예문을 찾아본다면 첫째 마당 '노루 꼬리의 복선' 항에서 소개한 찰스 웹의 「졸업생」이 좋은 본보기 노릇을 한다. p401


방황하는 마음의 언어

「이야기 잡지 (Story Magazine)」의 편집자로서 노먼 메일러, 조셉 헬러, 테네시 윌리엄스, 트루먼 케포티 같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다루었던 휫 버넷(Whit Burnett)은 "문체는 작가의 자아를 독창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줄거리를 살리기 위해서 문체를 희생시킨다면, 작가의 '나(Ⅰ)' 라는 존재를 죽이는 셈이라고 그는 말했다. 외국 문학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람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만한 경고이다. p403


시와 산문을 고리 짓는 수필

중국 남송(南宋)의 홍매(洪邁)는 「용재수필(容齋隨筆)」의 서문에서 "뜻하는 바를 따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써두었기 때문에 수필이라고 일컫는다."라고 했다. "앞뒤를 가리지 않고"라는 말이 퍽 무책임하게 들린다. 그리고 까마득한 옛날 국어교과서에서도 나는 수필이란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배웠다. 이런 '정의' 역시 수필이 함부로 써도 되는 무책임한 잡문과 같다는 편견을 자칫 유도하기라도 할까봐 염려 스럽다.

그러나 홍매가 "뜻하는 바를 따라"라며 분명히 글의 방식을 밝혔듯이, 수필에는 격(格)과 식(式)이 따로 존재하므로, 만만히 깔보고 함부로 대하기를 삼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관촌수필」은 한학에 밝은 이문구가 묵은 우리말의 아름다움까지 살려 수필체로 엮은 소설로서, 시적인 감성의 흐름과 의미의 함축 그리고 산문의 구조를 고리 지어 하나로 엮어낸 작품이다. 그러나 문체가 아무리 수필체라고 하더라도 구조와 소재와 주제는 소설임이 분명하다. p417

수필체 글쓰기에서 문학의 분야로 학고하게 자리잡은 가닥으로서는 일기가 으뜸으로 꼽힌다. 우리 문학사에서도 이규보(李奎報)의 「남행월일기(南杏月日記)」그리고 의유당(意幽堂) 연안 김씨가 한글체로 쓴 「동명일기(東溟日記)」가 유명하고, 궁정수릴로 손꼽히는 「계축일기(癸丑日記)」로부터 근대오 내려와 춘성(春城) 노자영(盧子泳)의 「산사일기」와 김정한 (金庭漢)의 「석류일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일기가 문학사에 올랐다.

이 책에서도 창작 공부ㅡㄹㄹ 일기 쓰기로부터 시작했던 까닭은 정식으로 문학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될 욕심은 그리 없었지만 자서전 한 권이나마 스스로 써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부터라도 일기를 쓰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당연한 첫걸음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휴 프레이더(hugh Prather)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꿈을 버리지 못해 고등학교 교사인 아내에게 돈벌이를 떠맡기고는 2년 동안 열심히 작품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고, 그러던 어느 날 밤, 불쌍한 아내의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인생과 사랑에 관한 애달픈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소설쓰기는 집어치우고 대신 그동안 써놓았던 일기장에서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문장들을 발췌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나에게 쓰는 편지(notes to Myself; my struggle to become a person)」가 백만 부 이상 팔려나가면서 그는 어쨌든 '문인'이 되어 여러 권의 수상록을 계속해서 펴냈다.

프레이더가 쓴 일기 수필은 대부분 이런 내용이었다. p418

완벽주의는 천천히 죽는 죽음이다.

만일 내가 원했던 그대로 모든 일이,

내가 계획했던 그대로만 이루어진다면,

나는 아무런 새로움도 경험하지 못할 터이고,

내 삶이란 썩어버린 성공들로 끝없이 이어지는

반복이 되리라. 내가 실수를 한다면 그제서야 나는

무엇인가 예상하지 않았던 바를 경험하는 셈이다.

투쟁을 벌일 때 나는 내 시야를 스스로 제한하고

나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무시한다. 무엇인가 파악하는 과정에서

나는 미지의 사실들을 하나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알게 될 때까지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내 감정에 대해서 거의 아무런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각성하는 인식은 내 욕구에서

근시성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제거한다.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아무런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하다고 느끼는지를 알기 위해

미래를 검토할 필요가 없다.


강물처럼 흐르는 자서전

문학사에서 사적 수필(私的隨筆, personal essay)의 창시자로 알려진 미셸 드 몽떼이뉴(Michel [Eyquem] de Montaigne)의 「수상록(Essais, 1571~80)」보다 훨씬 먼저 키케로와 세네카 그리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세상에 나왔고, 중국에서는 작가의 사상이나 인생관을 담은 '필기소설(筆記小說)' 이 위(魏)와 진(晉) 시대에 유행하다가 당과 송에서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1960년대에는 영어로 집필한 「생활의 발견(The Importance of living)」을 비롯하여 린위탕(林語堂)의 전집이 한국에서 번역되어 널리 읽히기도 했다. 우리 문단에서는 김진섭의 「인생철학」이나「인생예찬」이 나오고, '인생론' 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들이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우리 주변에서 맴돈다.

이렇게 딱딱한 문체는 현대로 넘어오며 서정적인 소설과 감성적인 시 쪽으로 훨씬 기울어 이른바 '자전적인 소설'로 발전한다. 이제는 무척 흔해진 이 분야에서 「관촌수필」보다 더 수필적인 소설을 찾아본다면, 이문구의 '수필'에서는 그나마 아지랑이처럼 반투명하게 아련히 보이던 소설적 가공의 흔적을 아예 손으로 짚어내기가 도저히 어려울 만큼 지워버린, 정말로 이상한 '소설'도 나타난다.

상상력을 하나도 동원하지 않고 대학교수가 담담한 고어(古語)로 우아한 문장을 엮어 자서전으로 써놓은 듯싶은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and Other Stories)」은 사실 '회고록'이라는 명칭이 훨씬 더 잘 어울려서, '소설'이라고 분류하기가 힘겨울 지경이다. p424


수필과 시와 저서전과

수필로 쓴 인생관과, 수필로 쓴 소설 그리고 수필로 쓴 자서전 따위의 다양한 수필체 글쓰기의 본보기를 살펴보았다. 그런가 하면 시인이 수필체로 쓴 자서전도 발견된다.

웬만한 사람에게 자서전을 출판해 줄 테니 한번 써보라고 하면 300에서 500쪽은 거뜬히 넘길 듯 싶은데, 보리스 빠스쩨르나끄는 100쪽이 겨우 넘는 「어느 시인의 죽음」에 그의 젊은 시절 얘기를 모두 담았다. 매클린의 「흐르는 강물처럼」이나 프레이더의 「나에게 쓴쓰는 편지」도 겨우 100쪽 내외이고 보면, 작품의 깊이는 분명히 항상 길이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느 시인의 죽음」은 똘스또이와 스크리야빈 그리고 혁명시인 마야꼬프스끼의 얘기까지도 감동적으로 모두 담았고, 그래서 검약한 문체의 심오함이 더욱 돋보인다. 젊은 시절 사랑의 아픔을 얘기한 이 짤막한 회상을 찬찬히 음미해보기 바란다. p426


수필체의 특성

사람들이 흔히 이해하는 현대수필은 뭐니 뭐니 해도 소설보다 우선 길이가 짧다. 그래서 기승전결의 극적인 구성이나 줏대로서의 주제를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면제된다. 짧아야 한다는 구조적인 특징은 또한 문맥의 건너뛰기를 하나의 정당한 요령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인과법칙을 의도적으로 무시해도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하지만 이런 요령은 터득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별로 장황하지도 않은 한 대목을 덥석 잘라내면서도 빈자리의 허전함이 느껴지기는커녕 생략의 시원한 여유를 맛보도록 독자의 눈과 마음을 유도해야 하는 요령이라면, 그것은 보통 어려운 예술적 묘기가 아니다.

수필에서는 어휘를 아껴 경제적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함축적인 한시적(漢詩的) 표현과 정겨운 우리말 표현이 사이좋게 조화를 이루며 양쪽의 맛이 서로 작용하여 상승효과를 가져오도록 해야 이상적이다. 그리고 이 또한 말처럼 쉬운 과제가 아니다.

시와 산문 사이를 오가는 수필체라면 쉬운 토속어의 짙은 맛이 한문체의 운치와 어울려 궁합을 맞추면서, 여운을 남기기 위해서는 선언(宣言)적이거나 단언(斷言)적인 표현은 삼가야 한다. 때로는 구문을 파괴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또한 부러지지 않고 휘청이면서도 버티고 이어지는 복합적인 문장은 수필의 유연성을 만들어내는 비결인데, 이럴 때의 이음새를 마련하는 도구가, 다음 항에서 설명할 용법, 즉 형용사와 부사의 변칙적인 어미(語尾)변화이다. p428


어휘의 수필체 변화

"그것은 현재를 앎이 미래이고, 인간의 미래는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p433


시청각 시대의 글쓰기

「어느 시인의 죽음」에는 시인 보리스 빠스쩨르나끄의 어린 시절 사진이나 그가 그린 그림 따위의 갖가지 시각적인 보충 자료가 자서전답게 꼼꼼히 실렸고, 「흐르는 강물처럼」에서는 고급스러운 엣날 판화 몇 장을 삽화로 썼으며, 「나에게 쓰는 편지」에는 사념적인 단상(斷想)들 틈틈이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듯한 두 장의 잎사귀를 갖가지 형태로 배열한 그림을 쪽마다 그려 넣었다. p434

길고도 길고도 길고도 길고도 길고도 길고 긴 숨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작품집 「순진한 에렌디라와 그녀의 무정한 할머니에 관한 슬프고도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la increible y triste historia de la cándida Eréndira y de su abuela desalmada: Siete cuentos, 영어 제목 Innocent Erendira and Other Stories)」에 실린 「잃어버린 세월의 바다」에서는 주인공 또비아스(Tobías)가 한없이 깊은 바다 속으로 헤엄쳐 내려가서 보고 온 세상에 관해 아내에게 얘기를 해준다. 그곳 해저 세계에서는 망자(亡者)들이 여기저기 둥둥 떠다니고 거북이가 몇 백만 년씩이나 잠을 자며,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난 듯싶기도 한데 알고 보면 마녀 키르케(Kirke)의 섬(Aeaea)에서처럼 하루밖에 안 지난 듯하기도 하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역사의 한 조각을 단편(斷片)으로 잘라 그 흥망성쇠를 논리와 원칙의 범주 바깥에서 표출시킨 이런 얘기라면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분명히 '환상' 적인데, 그르시아 마르께스와 다른 여러 남아메리카 작가들은 '마술적' 이라는 단서를 붙여가면서까지 악착같이 자신들의 작품이 '사실주의' 라고 우긴다. 다른 작가들이 어휘를 구사하듯 상상력을 구사하는 그들은 '사실'에 대하여 우리들과는 확실히 다른 개념을 가지고 글을 쓰는 모양이다. p458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설명이다.

"나는 시간의 개념은 전혀 문제 삼지 않습니다.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이라면 나한테는 그런 사건들이 어떤 순서로 발생했느냐 하는 차례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요. 작품에 등장하는 소도구도 마찬가지여서, 주인공이 무장한 리무진을 타고 가면 좋겠다고 여겨지면 그런 차를 타게 되고, 그러다가 19세기 마차가 좋겠으면 다시 19세기 마차에 태웁니다. 그러니까 아침에 무장한 리무진을 타고 나갔다가 저녁에는 같은 주인공이 캐딜락을 타고 돌아오기도 하죠. 그런 사항은 작품상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별로 문제되지 않아요." p459


의식처럼 흐르는 문장

20세기 영어권 문학에서 문체를 논할 때 가장 대조적이라며 자주 언급되는 두 사람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윌리엄 퍼크너이다. 그리고 포크너의 문체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서술 기법(narrative techique)이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다. 인간의 의식은 조각조각 분리되고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강물(stream)처럼 지속적으로 흐르면서 시시각각 변한다는 이론에 기초를 둔 용어 '의식의 흐름'이 처음 등장하기는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 원론(Principles of Psychology, 1890」에서 기능심리학을 제창했을 때였으며, 19세기 말에 발달한 이 기법은 등장인물의 심적(psychic)인 삶을 작품 속으로 끌어내어 주관적 및 객관적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 동원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을 의식과 무의식과 전(前)의식의 세 켜로 분석하여, 의식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기초가 되고, 전의식은 의식화로 발전하기 직전의 상태이며, 무의식은 의식화가 되지 않아서 꿈이나 환상의 형태로 의식에 침투한 다음에야 깨닫게 된다고 했다. 프로이트의 이런 이론에 시간을 순수 지속(durée pure)으로 그리고 의식을 분리가 불가능한 흐름으로 보는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개념이 결합하여 생겨난 문학용어로서의 '의식의 흐름'은 논리적으로 조직되기 이전 상태로서의 형상군(形象群)을 포착하여 기록하는 기법을 뜻한다. 따라서 의식의 흐름 기법은 등장인물의 생각과, 느낌과 반응 등을 작가의 설명이나 언급은 개입시키지 않고서, 말로 표현하기 이전(preverbal) 상태의 근사치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문장은 의식적인 생각의 언저리에서 이루어지는 심적 상태를 묘사하는 도구고 삼기 위해 연상작용과, 어휘나 상징적 주제(motif)의 끊임없는 반복과 표면적인 일관성이 결여(apparent incoherence)와, 변화적인 구문이나 구두법을 동원하여, 자유롭게 흐르는 등장인물의 정신 상태를 흉내 낸다. 따라서 의식을 타고 흐르는 서술은 줄거리나 구성을 갖추지 않았고, 그런 조직적인 요소는 독자가 글을 읽어가며 스스로 구성해야 한다. p467


문체에 접근하는 이유와 방법

흉내는 모방과 표절에서 끝나면 안 된다. 흉내는 어떤 기술을 학습하여 발전시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치는 과정이다. 응용은 진화의 법칙이다. 그대로 흉내만 내는 표절은 퇴화의 지름길이다.

나는 좋아하던 국내외 작가가 워낙 많았고, 그들에게서 배울 만한 기교와 기술도 많이 발견해서, 실제로 그들이 보여준 본보기를 나름대로 소화하여 나의 글쓰기에 융합시키려는 노력도 많이 했다. 나는 존스타인벡의 문체를 가장 좋아하여, 그런 방식으로 글을 쓰고 싶어했다. 헤밍웨이처럼 건조하고 냉정한 어휘를 피하고, 포크너처럼 지나치게 흐르는 서술도 피하고, 구수한 우리나라 옛날얘기 화법을 살리려면 스타인벡의 문체가 이상적이라고 나는 생각했으며, 그래서 나는 존 스타인벡의 세속적인 어휘 선택과, 친근감을 주는 인물 구성과, 편안한 서술체를 스승으로 택했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인 기법에서까지도 나는 가끔 스타인벡을 흉내냈다. p483

타인들의 글쓰기를 보고 어떤 문체를 택하고 흉내 내느냐, 또는 제시된 모든 본보기를 무시하느냐, 그것은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해야 할 사항이다. 나는 비록 스타인벡의 문체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나 자신의 글쓰기가 어떤 하나의 제한된 문체에만 매달리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나쁘게 얘기하면 내 문체에는 줏대를 이루는 개성이 따로 없고, 좋게 말하면 편협하거나 독선적인 고집 없어서 모든 문체를 자유롭게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는 뜻이다.

나는 다양한 문체를 시도하고 구사하려고 노력한다. 작품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문어의 보호색처럼, 저마다의 배경에 적응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어떤 특정한 장면이 내용이 장난스러우면 문체도 장난스러워지고, 사태의 발전이 심각해지면 어휘의 선택부터가 덩달아 심각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논리적인 내용일 때는 마찬가지 이유로 해서 또박또박 당정하고 확실한 문장을 쓰려고 노력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문구의 문체를 얘기할 때는 나름대로 이문구의 문체를 흉내 내기도 했다.

문체는 결국 작품의 터닦기를 하기 위해 마련하는 기본이다. 그리고 「소설가의 길잡이」 (66쪽)는 문체의 기본 원칙을 이렇게 요약하여 길을 잡아 준다.

구두법은 숨을 쉬는데 도움이 되도록, 감정의 표현이나, 장단이나, 문체에서 강조해야 할 필요가 생길 때마다, 자연스럽게 구사하라.

단락 역시 본능에 따라 구사하여, 한 가지 개념만을 선보이고, 그것을 발전시키고, 그러고는 그것이 내포하는 확실한 의미를 종결짓도록 하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움직일 때는 짧은 문장을 쓰고, 사색할 때는 긴 문장을 쓰고, 감각적인 암시가 함축된 정서를 서술할 때는 더 긴 문장을 쓰도록 하라. 분노는 흔히 스타카토 문체가 제격이다.

빛깔이 없거나, 무안하거나, 머뭇거리는 대화체를 피하고, 별다른 부담이 없을 때는 항상 능동태의 동사를 써야 한다. p487


위대한 작가가 될 때까지는

위대한 작가는 독자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어서이다. 독자나 시청자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려는 작가의 야합은 창작의 차원에 이르지 못하고, 그래서 삼가야 마땅한 것이다.

그리고 독자나 편집자가 뭐라고 생각하든 나는 내 마음대로 글을 쓰겠다고 고집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 위대한 작가가 아닌 사람이 적ㅈ 않다. 그런 고집은 위대한 작가가 된 다음에 부려도 늦지 않다.

아직 위대한 작가가 되지 못한 사람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쓴다는 의무감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무감은 물론 야합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핑계가 아니다.

집을 다 지으면 남이 들어가 살 듯이, 작품도 다 쓰고 나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익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작품은 완성되기 전까지만 나의 소유이고,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오면 독자들의 소유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 동안 작가는 나중에 소유권을 넘겨 받게 될 고객으로서의 독자를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니까 세상이 나를 위대하다고 인정해 주기 전까지는 웬만하면 아직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다가 위대한 작가로 성공하면, 그때는 '무식한 군중'의 정신적인 스승 노릇을 해도 나무랄 사람이 없다.

오랫동안 창작을 가르쳤던 윌렛 켐튼(Willet NMain Kempton) 교수는 「대학에서 배우는 글쓰기(Here's What They Learn in College, 28~34쪽, The Write's Handbook)」라는 글에서 독자를 위한 모범적인 글쓰기가 무엇인지, 그 50거지 원칙을 소개했다. p488

1. 자신만의 문체를 개발하고 유려한 표현력을 가꾸기 위해서는 하루도 빼놓지 말고 조금씩이나마 글을 써야 한다. 휘황찬란한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거나 첫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성공을 거두리라며 대박을 기대하지 말라. 아무리 조금이라고 하더라도 날마다 글을 쓰는 꾸준한 습관이 성공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다.

2. '사랑' 이라는 주제 달랑 하나만으로는 독작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세상에서 치약만큼이나 흔해빠진 것이 '사랑' 이다.

3. 작품 속에서 지금 독자가 읽어가는 내용이 어떤 상황인지, 사건의 개요를 작가가 앞에 나서서 설명하지 말라. 꼭 설명을 해야 한다면, 등자인물들의 대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고, 작가는 절대로 독자에게 직접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념이나 대의명분을 알리기 위해서도 깃발을 흔들며 앞장서지 말라. 정치적인 선전은 돈을 받고 길바닥에 나가서 떼를 지어 하는 짓이지, 예술행위가 아니다.

4. 대부분의 어휘는 머릿속에서 생각할 때보다 실제로 써놓고 나면 힘이 약해진다. 멋진 단어 하나를 머릿속에서 굴리며 혼자 감격하는 사람은 문학 작품을 쓰는 대신 사전을 만드는 출판사로 가야 한다.

5. 단편소설에서는 중요한 갈들 하나남 다루어라. 두 가지 갈등을 제시하고 싶으면 두 편의 작품을 써야 한다. 하나 이상의 갈등은 새로운 선택의 갈등을 낳는다.

6. 단편소설이나 짧은 글을 쓸 때는 극점(climax)에서 가능한 한 가장 가까운 시점에서 얘기를 시작하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한평생을 회고하는 일대기부터 늘어놓으며 단편소설을 시작하면 독자는 일찌감치 달아난다. 여행을 떠나 어떤 여자를 만나서 사랑하게 되었다는 줄거리의 단편소설을 쓰면서, 이렇게 열어주기를 했다고 가정하자. "나는 2006년 4월 25일 오후 4시 47분에 강릉을 떠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서울로 올라오다가 거시기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동안 배가 고파 가락국수를 사먹었는데, 그때 건너편 자리에 앉아서 냉면을 먹고 있던 아가씨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런 간결한 열어주기는 어떨지 생각해 보라. "그녀는 어딘가 달랐다."

수필이나 논문을 써놓은 다음에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단락을 뒤로 보내고 세 번째 단락을 앞으로 끌어올려 놓고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비교해보라. 대부분의 경우, 서론 역할을 하는 앞부분은 그냥 자라라버려도 상관이 없다. 독자의 이해를 위해서 꼭 필요한 내용이라면, 길이를 줄이고 압축하여 중간쯤 눈에 띄지 않도록 삽입하도록 한다. 세 번째 단락에서 시작되는 글이 첫 번째나 두 번째 단락에서 시작되는 글보다 훨씬 극적인 긴장을 증폭시킨다. 소설의 열어주기에서도 도치법이 확실하게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7. 처음 서너 쪽에서 두 번째 주요 인물을 등장시키면 주인공이 빛을 잃는다. 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없어질 무렵에 다른 인물을 등장시키도록 하라. 독자에게는 여러 인물에 대해서 천천히 넉넉한 새김질을 할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8. 재치 있고 발랄한 대화는 섣불리 시도하지 말라. 튀는 화법을 구사하는 능력은 고도듸 기술과 정보와 훈련을 필요로 한다.

9. 사투리(方言)를 구사할 때는 "그랬지비"나 "그랬시껴" 같은 이상한 발음의 표기에 열중하지 말고, 해당 지역의 독특한 어휘나 표현법을 동원하라. 개성과 특성은 표기법이 아니라 내용에서 우러난다.

10. 독서를 많이 하라. 대부분의 작가는 체험보다 책을 통해서 더 많은 정보와 자료를 얻는다. 독서는 2차적인 경험의 폭을 넓혀준다.

11. 등장인물이 적을수록 독자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이 줄어든다. 7항과 같은 원칙에서이다.

12. 주제는 작품을 뒷받침한다. 문학에서 작품이 주제를 뒷받침해서는 안 된다. 작품이 먼저이고, 주제는 나중이다.

13. 독자는 매력이 없는 등장인물에 대해서는 냉담하고, 그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은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악역이라고 해도 모든 등장인물이 어느 정도는 독자에게서 호감을 사야 한다.

14. 실존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작품에 차용할 때는 그들을 그대로 복제해서는 안 된다. 인물 구성은 이력서를 작성하는 작업이 아니고, '인상(impression)'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신빙성을 지닌 세부 사항을 정확히 묘사하되, 지나치게 실제 그대로를 보여주면 역겨움과 식상함을 자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작가는 '사실성'이 아니라 '사실적인 인상'을 창조해야 한다.

15. 악역을 맡은 등장인물 또한 논리적인 이유에 따라 행동하는 입체적인 인간이어야 한다. 모든 유형(類型)은 단편적이고, 그래서 기피해야 한다. 이기적이고 야비하며 무자비한 악역의 착한 면을 신파조롤 강조하여 우스꽝스러운 인물을 구성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나 소설에서 온갖 나쁜 짓을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좋은 일을 하고 죽는 주인공을 보고 사람들이 감동하던 시대는 1960년대에 다 지나갔다.

16. '거의(nearㅣy, almost)' 따위의 막연한 표현은 문장에서 힘이 빠지게 한다. '아주(very)' 나 '너무' 따위의 부사는 대화에서가 아니고는 아예 사용하지 말라. 등장인물이 슬프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장면을 묘사하고 싶다면, 그 감점을 살코기처럼 따로 잘라내어 저울에 달고 자로 재어 숫자로 계산한 다음, 그 수치에 맞게끔 정확하고도 구체적인 표현을 찾아 쓰도록 하라.

17. 극적인 대화는 갈등과 충돌로 이루어진다. "날씨가 좋군요." 라고 여자가 말할 때 남자는 "좋긴 뭐가 좋아요." 라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는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호기심을 갖는다. 남자도 "예, 날씨가 좋군요." 라고 말한다면, 그런 재화는 가차 없이 삭제해도 좋다. 쓸데없는 말을 잘라내면 대화에 속도가 붙는다. 반면에, 더딘 대화는 인물구성에 구정물을 끼얹는다.

18. 동사에 힘과 명확성을 부여하려면 부사를 없애야 한다.

19. 대화체를 많이 사용하라. 따옴표는 독자의 눈을 자극한다. 때로는 대화가 서술체보다 인물의 행동을 훨씬 가시적으로 묘사한다. 작가가 "그는 빨리 밥을 먹었다." 라고 설명할 때보다는, 한 등장인물이 다른 등장인물에게 "너 왜 밥을 그렇게 빨리 먹니?"라고 말할 때 밥을 먹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진다. 적어도 독자는 그렇게 착각한다.

대화에서는 짧은 문장을 사용하여, 탁구공을 치고 받는 선수들처럼 빨리 화자가 바뀌게 하라.

20. "자, 이제는 설명이 좀 필요하겠구나." 하는 식으로 묘사를 삽입해서는 안 된다. 작가의 생각에 아무리 통렬하고 아름다운 묘사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길이로 압축하라. 가능하다면 멋진 묘사도 대화 속으로 흡수하라. 인상적인 표현은 작가의 서술체가 아니라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 독자가 듣도록 하라.

21. 셋째 마당 "열어주기(Opening)' 항에서는 첫 단락이 매우 긴 하나의 문장 그리고 둘째 단락은 아주 짧은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졌다. 왜 그렇게 했을지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무장과 단락을 구성할 때는 앞뒤를 살펴 길이를 바꿔가며 장단을 만들어야 독자의 관심을 긴장시킨다.

22. 하느님이나, 우발성이나, 우연이나, 자살이나, 로또 복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주인공 스스로 논리적인 방법을 통해 갈등이나 위기를 해결하도록 하라. 주인공이 갖추었다고 앞에서 독자에게 이미 작가가 보여준 능력과 자질과 성품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방법으로 소설 속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는 멋진 우연은 소설 속에서라면 절대로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23. 주인공이 삶에서 전환점을 맞으면 그의 인간성이 달라져야 한다. 중대한 갈등과 위기를 넘기고도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양상은 작품 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24. 독자의 지능을 모욕할 정도의 설명은 절대로 하지 말라.

25. 독창적인 화법으로 생길ㄹ 불어놓도록 하라. 텔레비전 연기자 김미숙의 어린 조카가 "발이 저린다." 라는 말을 몰라서 "발이 반짝반짝해."라고 표현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혼자만의 표현은 이렇게 싱싱하다.

26. 초고를 쓸 때의 '즉흥적인 신선함'이 고쳐 쓰기 과정에서 훼손될까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즉흥성은 흔히 논리성만큼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6항의 내용을 참조하여, 초고의 열어주기에서 4분의 3을 잘라낸 다음, 여러 토막으로 분리하여 뒷부분 여기저기 눈에 잘 띄지 않게 심어보도록 하라. 응어리가 풀리고, 전체의 흐름이 안정되는 기분이 느껴지리라.

27. 등장인물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자꾸만 장면 전환을 하지 말라. 독자의 정신이 산란해진다. 지금 묘사하려는 장면이 고정된 연극 무대에서 제한된 시간에 벌어진다고 상상하라. 한 토막의 기승전결이 모두 이루어지기 전에는 무대장치를 바꾸면 안 된다. p494

영감의 즉흥성과 고쳐 쓰기의 논리

아무리 멋진 문장이라고 해도 작품 자체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아까워하지 말고 잘라내야 한다.

문제는 영감과 논리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감각은 책으로 가르치기가 불가능하다. 글쓰기의 동물적인 감각은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p496


작업의 힘겨움

"대학에서 창작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은 어떤 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엄청난 양의 일을 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괄목할 만한 모든 업적은 눈앞에 닥친 큰 일을 무작정(unstintingly; 아낌없는, 아낌없이 주는) 달라붙어 해내는 헌신적인 사람들만이 성취한다."

헬렌 졸드의 충고도 마찬가지이다. "촌티가 나는 서투른 글을 팔아먹겠다고 여기저지 찾아다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젊은 시절에는 글쓰기 기술을 배우는 데만 모든 정성을 바쳐라. 그리고 무엇인가 할 얘깃거리가 생기고 능률적으로 그 얘기를 전할 기술도 갖출 만큼 나이가 성숙해지면, 그대부터 성공의 열매를 거두기 시작해라."

글쓰기에서 영감은 1퍼센트이고, 나머지 99퍼센트는 계획된 노력이다. p498


글쓰는 기술

영감은 예술적인 창조의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즐거운 현상으로서, 아주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다. 작품 하나를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글쓰기는 반면에 오랜 기간 동안 힘겨운 훈련을 거쳐서 쌓는 기술이다.

여성 단편작가이며 문장론 이론가인 진 오웬(Jean Z. Owen)은 그런 김매기를 하는 요령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삼아, 나름대로 몇 가지 공식으로 만들었다.

오웬은 처음에 기술과 기교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자신이 쓴 글에서 생명이 사라져버렸고, 그래서 그녀가 창조해낸 인물들이 '작위적인 배경 앞에서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인조인간"처럼 현실감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처음에는 기본적인 공식과 보편적인 기술을 모두 익히기는 하되, 그런 기법이 저절로 손끝에서 나올 정도가 되면 관행이나 규칙에 연연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기술은 몸에 밴 본능이 되어야 하며, 창조적인 글쓰기는 어떤 법칙의 제약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오웬은 또한 "줄거리가 계속 멈추지 않고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불필요한 설명을 보충하기 위해 옆길로 빠져서는 안 된다." 라는 요구도 한다. p500

작가 지망생들은 성공한 소설가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작품을 읽어보고 '조언'이나 '비평'을 해달라고도 하는데, 나는 그것이 좋지 않은 습성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어디 추천을 받고 싶어서 그런 경우라면, 연줄을 타지 말고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인정을 받도록 정식 등용 과정을 밟아야 한다. 작가는 결국 작품으로 승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평가'를 받고 싶어하는 경우도, 원고를 들고 돌아다니는 대신,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평가하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p501


독자와 관객의 읽기

작품의 수준은 쓰기를 하는 작가가 아니라 읽기를 하는 독자가 결정한다. p506



글쓰기 인생을 위한 에필로그

자서전을 두께는 나이를 먹을수록 얇아진다. 그래야 정상이다.

살아갈수록 애깃거리가 많아지기는 하지만, 남에게 책으로 써서 전할 만한 가치를 지닌 경험담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 알찬 벼이삭이 머리를 숙일 만큼 성숙해지면서 점점 더 절실하게 깨닫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 사람들은 주로 정보를 사고 팔면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중년에 이르면 옺갖 정보를 소화하여 지식으로 정리하고 자신만의 사상체계를 이루며, 장년기에 들어서면 지식을 삭혀 지혜를 쌓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혜는 없어도 용기가 넘치는 것이 젊음의 본질이다. 그래서 젊은이는 행동을 모험한다. 그러니까 젊었을 때는 글을 쓰고 싶으면 마구 써야 한다. 쓰기는 함부로 쓰되, 지나치게 자만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나는 생각한다.

경험을 얻고 지식과 지혜를 쌓으려면 엄청난 정보의 경험이 필요하다. 연습과 훈련은 많을수록 좋다.

남의 작품을 많이 읽는 경험도 훈련이어서, 문학과 잡문의 차이를 터득하도록 도와준다. 모든 고전은 시대를 이겨낼 만한 가치를 지닌다. p508

글쓰기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은 자유에서 비롯한다.

한 번 작가는 영원한 작가이다.

글쓰기가 힘들어서 하기 싫다면, 다른 직업을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새벽에 생선을 팔러 나가는 일도 글쓰기보다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글쓰기가 안 된다면, 그것은 선택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는, 새로운 선택이 필요하다.

최종적인 해답은, 무슨 일을 선택했거나 간에 그 일을 즐겨야 한다는 인식이다. 고생을 즐기는 사람한테는 아무도 당하지 못한다. 이 세상을 이끌고 나가는 상위층 4퍼센트의 사람들을 보라. 모든 분야에서 앞장 선 사람들은, 노력과 고생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노력을 즐기는 까닭은 성공의 희열이 무엇인지를 알고, 고통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다. p511

'두 번째 작품(The Secomd Book)' 이라는 표현은 미국 출판계에서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유행어이다. 첫 소설이 출판된 다음 일시적인 행복감에 도취되어, 축하해 주는 친구들과 날마다 아울려 즐겁게 술을 마시고, 그래서 이성의 마비 상태에 빠져 다음 글쓰기에 공을 안 들이고, 자만심으로 인해 소홀하게 써낸 두 번째 소설이 독자를 실망시켜 작가 생활을 일찍 마감하는 현상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아예 두 번째 소설을 쓰지 못하는 단명한 작가도 적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다음 두 번째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것은 성공에 대한 준비, 그리고 성공 이후를 위한 설계를 게을리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결과이다. 성공하기보다 선두를 계속해서 유지하기가 훨씬 힘들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습작 시대에 써놓은 어떤 원고도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습관 역시 성공 이후를 위한 준비 가운데 하나이다.

모든 자료를 정성껏 간직하는 일은 글쓰기의 본질적인 습성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이 참된 작가이다.

다작(多作)은 진지한 작가의 미덕이 아니다.

다분히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또 한 가지 삼가야 할 일이라면, 글쓰기를 집단 활동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다른 직업과는 달리 글쓰기는 동업자들을 많이 알면 손해가 나기 쉽다. 계보와 관록을 개성이나 창조적인 사고방식보다 중요시하는 집단은 반문학적이고 반문화적이다.

글쓰기의 승부는 언제나 혼자 하고, 혼자 해야 옳고, 비평도 스스로 해야 한다. 글쓰기는 혼자 하는 일이기에 자유롭고, 즐겁고 창조적이다.

한 작품을 오래 쓰면, 거기에는 젊은 시절의 총기와 감각 그리고 싱싱한 영감이 그대로 살아남은 채로, 경험과 지혜가 나중에 곁들어 함께한다. 모든 세대는 젊었을 때 힘차게 발달하고, 나이를 먹으면 경험을 되새겨 보다 높은 차원으로 성숙시킨다. 아직 젊어 알찬 생각이 별로 없는 사람의 글쓰기에는 줏대가 보이지 않고, 그래서 사람들은 젊어서 시를 쓰고, 장년에는 소설을 쓰고, 늙어서는 수필을 쓰라고 하는 모양이다.

글이란 쓰면 쓸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는 작업이다. 자신의 글을 비판할 능력이 생기면 글쓰기는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p514

젊은 시절의 삶이 조금도 지혜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친 다음, 나는 먹을 만큼만 밥을 벌고 남는 시간에 나 자신을 위한 새김질을 누리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필요 없는 돈은 벌지 않는 대신 혼자 앉아서 생각하는 자유의 시간을 벌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의 명상은 명상이 아니라 잡념이었던 모양이라고.

산책과 명상의 시간이 생존과 생활을 위한 시간에게 밀려나는 삶이란, 집단생활에게 빼앗겨버린 타인의 인생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의 양과 질에 대해서 새로운 계산법을 설정해야 되겠다고.

세상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작가로서의 능력을 내가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나이가 마흔이 되어도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뼈아픈 자각이 찾아온 다음, 인적이 드문 길과 집단사회의 길이 갈라지는 이정표 앞에 서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이야 물론 하지 말아야 하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무엇도 하지 않아야 되겠다는 판단을 나는 했고, 그리고 '무엇'을 해야 되겠다는 선택이 이루어지더라도 그 '무엇' 조차도 조금만 하면서, 그토록 아껴 모은 남은 시간에, 하나만의 '무엇' 을 위해 그만큼 공을 더 들여야 한다고 믿기로 했다.

글쓰기 인생의 두 번째 고빗길이 그곳에서 나를 기다렸다. p515



3. 감상 & 내가 저자라면


하나, 소설 작법을 위해서라기보다 글쓰기에 대한 학습을 위하여 책을 펴들다

저자의 실력에 감탄한다. 자신의 체험과 경험을 녹아내며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며 책을 구성하였다. 작가를 지망하는 많은 무리들에게 어떤 정신으로 어떻게 임하여야 할지에 대하여 선배 작가로서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는 한편, 각 장의 짜임새 있는 구조를 통하여 구체적인 실 사례와 비교로써 꼼꼼한 분석을 곁들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 책 속 저자의 말, 말, 말... >

조금씩, 날마다, 꾸준히- 이것이 글쓰기의 세 가지 원칙이다. p19

누리지 못하는 성공이라면 그것은 실패다. p47

독창성은 반항에서 시작된다. p106

요령으로는 뚝심을 당하지 못한다. p132

작가는 유리처럼 보이지 않아야 하고, 유리처럼 차가워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면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장기판 위에 늘어놓고, 그들끼리 스스로 승부를 내도록 유도해야 한다. p156

인물 묘사에서는 '약 올리며 옷 벗기(striptease)' 방식이 효과적이다. p177

"말로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Don't tell, show!)" 이것은 글쓰기 책상 앞에 써 붙여놓아도 좋을 만큼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가르침이다. p187

독자는 다양하다. 그들이 느끼는 관심의 대상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작가는 글쓰기를 직업으로 택하기 전에 어떤 종류의 독자, 어떤 차원의 독자를 겨냥해야 할지를 미리 결정해야 한다. p288

남들보다 조금 먼저 알기보다, 늦게라도 좋으니 스스로 깊게 깨치는 배움이 필요하다. p324

"("그것은 현재를 앎이 미래이고, 인간의 미래는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p433

글쓰기에서 영감은 1퍼센트이고, 나머지 99퍼센트는 계획된 노력이다. p498

작품의 수준은 쓰기를 하는 작가가 아니라 읽기를 하는 독자가 결정한다. p506

글쓰기의 승부는 언제나 혼자 하고, 혼자 해야 옳고, 비평도 스스로 해야 한다. 글쓰기는 혼자 하는 일이기에 자유롭고, 즐겁고 창조적이다 p514


두울, 독서를 위한 장소 선택 - 카페를 이용한 책읽기

연구원을 하며 글쓰기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다고 생각하며 구해 놓은 책이었는데, 당시는 짬이 없었고, 후에는 절박감이 식어서 등한시 한 책이다. 요즘에 다시 꺼내어 놓으면서도 한참을 두께와 촘촘한 글씨에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내 취향이거나 쉽사리 손이 가는 책은 아니다. 그래도 읽어야겠기에 읽기를 시작했으나, 책장이 더디 넘어가 처음에는 몸살을 앓았다. 이 7월의 복 더위에 읽을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집 앞의 카페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시원함 때문인지 외부라는 긴장감 때문인지 비싼 찻값 내며 이용하는 것이라 그런지 원두를 갈아대는 그라인더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글이 잘 들어왔다. 두 번째 방문 시에는 예상시간 보다 빨리 읽히기도 하였다. 앞으로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며 이런 낭만을 즐겨볼 작정이다. 카페탐험도 찬찬히 지속하고 학습 의욕도 고취시켜 나갈 수 있다면 그 아니 즐거움이랴 싶다.


세엣, 소설쓰기 입문 혹은 작법에 해당하는 책의 구성

너무 빼곡하게 촘촘히 쓰여진 글씨가 보기만 해도 읽기에 힘이 든다. 작가의 치밀함이 그대로 배어남이다. 물론 저자는 이보다 훨씬 방대하고 많은 양의 학습을 스스로 찾아서 해왔을 것이며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고 하겠지만, 글쓰기 초보수준에서 읽을 만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전업 소설 작가를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텍스트감이라고 해야 좋을 듯싶다.

따라서 글을 써보려는 초기에 읽기에는 너무 겁을 주는 감이 없지 않고 부담스러운 일면이 있다고 느껴진다. 앞으로는 대중의 글쓰기가 더욱 확대될 양상이라 생각된다. 글쓰기가 전업 작가로서 명성을 날리기 위함 만이 아니라, 자기계발 향상을 위해서라든지 자전적 글쓰기나 치유로서의 글쓰기 등으로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는 요즘이고 보면, 경쾌한 접근도 필요해 보인다. 책은 꼭 작가라는 전문 직업군들에 의해서만 출판될 수 있다거나 그들만의 전유물이기에 앞서, 일반인들도 책 쓰기에 참여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에 맞추어,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글쓰기에 다가 설 수 있도록 쉬운 방법론을 제시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거져 얻어 갖겠다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어떤 관점에서 어떤 비유를 들어 어떤 맥락으로 전개해 나가느냐에 따라 독자가 글쓰기를 하는 데에 보다 활발하고 의욕적으로 접근해 나가는 계기가 되어 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글쓰기 쉽지 않다. 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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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7.19 10:37:55 *.209.239.190
창조놀이 쪽은 잘 안 와보게 되는데
써니 요즘 글쓰기 책 차분하게 정리하고 있나봐요?

나온 지 오래 되었고 조금도 유명하지 않지만
내가 영감 팍팍 받은 책 두 권을 소개하고 싶어지네요.^^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
밥하기 보다 쉬운 글쓰기,
두 권 다 도서관에서 읽어야 할 꺼구요,
써니가 원하는 '일반인의 글쓰기'에 적합할 것 같아 추천합니다.

내 경험으로는' 뼛속까지~~' 하고 '누구나 글을~~ ' 정도로 기본 자세를 잡고
세부적인 지침은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를  숙지하는 정도면
글쓰기 책은 충분한 것 같아요.
-- 아! '글쓰기 생각쓰기'가 빠졌네요.^^

내 경우, 연구원 시절 했던 작업처럼
인상깊은 책들의 구성과 관점, 저자가 글을  풀어나간 방식을 뜯어볼 때
암시를 많이 받던데, 참고가 되기 바라구요.

더위 잘 보내기 바래요.
하긴 써니는 연수 가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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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7.20 03:22:17 *.197.63.66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꼭 읽어 보도록 할께요. 늘 언니의 독서량과 힘에 부럽기만 하답니다.
연구원이랍시고 제 때에 하지 못한 공부를 뒤늦게 하려니 좀 우스운 것 같기는 하지만, 이제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꾸역꾸역 해보려던 참이었습니다.

여행 재미있으려는지... . 오래 기다리며 참여하는 것이고는 한데 말예요. 노는 것 그만하고 정신을 좀 차려야 할까봐요. 그것 역시도 허망한 집착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고요, 부질 없는 소망인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여유 있어서라기보다 또 다른 경험과 먼 기다림을 향해 놓지 못하는 희망사항이기도 한데... .

다녀오면 변신 내지는 달리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어쩐지 이번 가을이 예사롭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아 사실 스산한 기분이 벌써부터 들고는 한답니다. 저 역시 아직은 여행 하나 마음대로 계획하며 참여치 못하고 살아요.  한 번의 여행을 위하여 많은 날 공치며 기다려 하곤 하거든요. 참 우습죠? 저의 살아가는 방법.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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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7.21 09:17:31 *.197.63.66
넹... . 어제 외출해 돌아오는 길에 추천해 주신 두 권의 책 사가지고 왔어요. 차분히 읽어야겠네요.

글쓰기를 하며 시름을 잊기도 하는데, 어느 일면 멍~ 해지는 점도 있어요.
경계를 살랑이는 줄타기를 잘 해야 할 텐데, 제 성향과 역량이 부족하여 어느 쪽으로 가나 치우치는 감이 있곤 하지요.
 
한때 너무 길게만 느껴졌던 세월이 코 앞에 다가서니 감개가 무량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떨리네요. ㅠㅠ

할 수만 있다면 감성충전 해 와야지요. 매번 얼마나 벼르며 하는 여행인데, 작년에는 상황이 안 좋아 돌아와 일지 하나 못 남겨 무척 아쉬웠답니다. 올해는 정신 차리고 떠나야겠어요. 늘 말로만.^^ ㅋㅋ
가을,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함 헤매봐야죠. 조만간 우리 노래방에라도 한번 가야는뎅. 넘 덥나요? 시원히 지내세요.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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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7.20 09:16:54 *.108.82.198
희망과 기다림이 없어지면 그 때부터 늙는 것 걸요.
아니 늙음을 넘어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장례식만 늦게 한다 뿐이지.^^
여러 날 공치며 계획하고 참여할 여행이 있다는 것이
살아있음의 경험 아니겠어요?
계속 우선순위를 유지하여 연구원 연수 100프로 참여의 기록을 달성하기 바래요. ㅎㅎ
요새 한 해가 다르게 남의 일에라도 애틋하게 공명하는 마음이 줄어드는 것이 느껴져
가슴이 철렁하네요.
감성충전, 아티스트데이트에 여행 만한 게 어디 있겠어요?
맘껏 즐기며 다녀 오구요,
가을에는 또 가을대로 즐길 일을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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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0 18:22:05 *.124.233.1
까탐기 하루에 한 편씩 차근 차근 보고 있어요!
누님의 글에는 언제나 철렁 철렁이는 에너지의 출렁임이 느껴져요!
어여 빨리 2차 부족 모임이 와서 보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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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7.21 09:22:19 *.197.63.66
아이고, 앞으로는 좀 더 잘 해야겠는 걸.

나둥... .  나중에 전 부족원 모이면 원주로 1박 2일 코스 꼭 가세! 조만간 번개 한 번 새차게 때려 보시던가. W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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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4 18:18:24 *.210.34.134

There’s no other color that represents empire more than yellow, and we love strapless chiffon wedding dress. Yellow evokes fun, femininity and fearlessness. It is a color that immediately grabs your attention. We love its eye-catching power — bright, loud and bold.Fashionistas and designers alike warn against wearing corset wedding dresses because it’s prone to misha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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