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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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3일 08시 29분 등록
오늘은 그곳에 가서 차분히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싶다. 혼자 가도 좋은 곳, 나만의 아지트가 될 만한 곳을 오래 전부터 갖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찾으면 떠오르는 곳이 별로 없곤 하다. 누군가 만나고 싶은데, 막상 전화번호를 넘기며 훑어내리면 별로 불러낼 이가 마땅찮은 것처럼.

동네 카페 탐색을 해보는 요즘, 그래서 막역한 친구 사이와도 같이 스스럼 없이 찾아가도 좋을 카페를 찜해 두려 한다.
문득 유안진의 시가 떠오른다.  무덤덤한 친구처럼 편안하게 나를 반겨줄 카페가 필요한가 보다.


지란지교를 꿈꾸며

        - 유 안 진-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 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불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 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여도 좋고 남성이여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도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 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겨질 자신이 돼 있을껄...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 같아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자리서 탄로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바랄 뿐이다.

나는 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 눈 속 침대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에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되 미친 듯,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시킬 때는 여왕처럼 품위 있게,
군밤은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때는 백작보다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의 꽃을 사서
그에게 들려줘도
그는 날 주책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꼽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추가루가 끼었다고 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신사다움을 의심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여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 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2010년 7월 20일 오후 4시경

더위에 까라지는 것이 싫어서 동네 카페 산책을 나갔다. 어디로 향할까 잠시 머뭇거리다가 우리 집에서 가까운 서울대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대학가에 자리한 유명 고시촌부근이어서 제법 그럴싸한 카페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신림 9동 우리은행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약간 언덕진 길을 따라 무작정 걸으며 이리저리 더듬어 본다.

조금 이른 해거름 인데, 가게 문들이 별로 열려 있지 않다. 그렇다. 이곳은 밤이 익어가며 더욱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녁이 다 되어서야 문을 여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전날부터 밤을 새워가며 늦도록 가게 운영을 한 탓이다. 그러니 아침이 되면 잠을 자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저녁 장사를 하기위해 다시 느린 걸음으로 나와 본격적으로 가게 문을 연다.
 
크기변환_IMG_2270.JPG 
< 멀리서 보면 카페 같은 미용실 지베르니 >

어느 카페를 들어가 볼까 찾다 보니 카페 같은 미용실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니 카페인 줄 알고 가까이 가보니 미용실이다. 언젠가부터 미용실도 카페처럼 분위기며 내외장을 치장하는 곳들이 많아졌다. 생활수준이 향상 되면서, 또한 고객을 유치하려는 경쟁과 창의력이 심화되면서 다목적 시스템이 선호되기 때문이다. 즉 카페 같은 안락하고 쾌적한 분위기에서 머리카락을 손질하기 위해 머무는 동안, 음악도 듣고 차도 마시며 잡지 책을 넘기는 여유를 만끽하는 등의 시스템을 이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증가하는 까닭이다.

크기변환_IMG_2272.JPG  < 향이 있는 공간 카페 차연의 입간판 >

길을 따라 죽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거리를 훑어본다. 그다지 마땅한 카페가 별로 없다. 차만 마시려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다가 나올 생각이기 때문에 되도록 분위기와 실내공기가 맑은 곳을 찾아야 해서 더욱 그러하다.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리는데 한 곳이 눈에 들어온다. 차연이란 이름의 건물 2층에 자리한 카페가 괜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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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은 허름한 건물의 2층에 있는데, 외부에서 간판만 보고도 제법 운치가 느껴진다. 하여 일단 찜해 두고 다시 길을 따라 직선도로를 죽 걸어 내려갔다가 다시 되돌아 오며 찬찬히 살펴보지만, 이 근방에서는 아까 찜해둔 차연 이란 곳이 가장 괜찮아 보인다. 그래서 그곳을 향해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크기변환_IMG_2275.JPG

들어가보니 차탁이 마련된 전통 찻집에다가 손수 차를 우려 마시거나 간단하게 다례를 익히며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마련된 곳이다. 전통차를 주방 안에서 내어 오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준비된 차탁에 앉아 자신이 선호하거나 카페지기가 추천하는 차를 직접 우려 마실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다.

아기자기한 각종 찻잔과 더불어 차우들로 차탁은 빼곡하다. 찻집 분위기에 어울리는 묵화도 이곳의 운치를 더하기엔 그만이다. 안쪽 벽면은 온통 각종 차들로 가득채워져 있는데, 중국에서 들여온 차들이다. 쥔장은 자주 중국을 드나들며 차를 구입해 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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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차를 주문하면 약간의 다과류를 곁들여 내어놓는데, 주로 떡과 약식이나 견과류와 마른 과일 등을 맛갈스럽게 곁들인다. 차는 원하는 대로 마실 수 있고 이용료는 회원은 7,000원, 비회원은 9,000원이다. 네이버를 통해 블로그에 회원 가입을 마치면 그 다음부터는 7,000원에 다양한 차를 마음껏 맛볼 수 있다. 나는 이날 생차인 청차와 숙차인 황차 그리고 보이차를 마셨다. 동네를 구경하느라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이른 저녁을 먹고 들어간 곳이라 저녁 내 한가하게 휴식을 취하며 다례을 익히는 등 차를 우려 마시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곳 카페지기는 임석교라는 남자분인데, 꽤나 유명 인사라고 한다. 그는 말이 별로 없이 잔잔한 중국 음악을 틀어주며 카운터부근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았는데, 공간을 흐르는 음악을 들으니 마음이 평화로와지고 기분이 담담해 졌다. 쥔장은 여자 종업원 한 사람과 같이 이곳을 운영하였고, 그녀는 내가 찻집에 들어서자 정성스레 손님을 맞이하며 얌전하게 다가와 다례의 절차와 대강의 차 종류에 대한 설명을 차분하고 절도 있게 해주었다. 직원의 손님을 대하는 전반적인 자세와 분위기를 보니 믿을 만한 곳이란 신뢰감이 절로 생긴다. 이곳에서는 차와 관련한 강좌도 열리고 동호인들의 모임도 갖는 등 다양하고 활발하게 공간 운영이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찾은 이날은 손님이 많지 않아 조용히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가롭게 차를 마실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여유롭고 좋았다. 그래서 들고간 책을 몇 페이지 읽다가 차를 마시기를 반복하며 저녁 더위를 마음껏 피서하고 돌아왔다. 방문 첫날이라 이것 저것을 캐묻지 않고 어떻게 운영하는지 대강의 느낌과 분위기를 파악하며 체험하는 데 더 중점과 의미를 두었다.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기억하며 새겨두었다. 

오늘 문득 그곳을 다시 찾고 싶어진다. 삶이 헛헛할 때 혹은 갑자기 보고 싶은 친구를 찾아가듯, 편하게 들릴 수 있는 카페 하나 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내게도 지란지교를 읊을 수 있는, 때로 시와 시인의 생각과 잘 갈무리되는 찻집 하나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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