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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

2단계,

두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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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4일 04시 16분 등록
                                    가을편지

                                                                        이해인

19
오늘은 빨갛게 익은 동백 열매 하나 따 들고 언덕을 오르며,
당신을 향한 나의 그리움 또한 이 작은 열매처럼 하도 잘 익어서
'툭' 하고 쪼개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20
고추잠자리 한 마리 내 하얀 머리수건 위에 올려 놓은 바람.
그리고 손에 쥐어보는 유리빛 가을 햇살.
잠자리 날개의 무늬처럼 고운 설레임으로 삶을 더욱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당신의 가을 햇살
잊지 못합니다.

21
사랑할 때 우리 모두는 단풍나무가 되나 봅니다.
기다림에 깊이 물들지 않고는 어쩌지 못하는 빨간 별,
별과 같은 가슴의 단풍나무가 되나 봅니다.
  
22
버리기 아까워 여름 내내 말린 채로 꽂아 둔 장미꽃 몇 송이가 말을 건네 옵니다.
"우린 아직 죽은 게 아니예요."
그래서 시든 꽃을 버리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함을 깨닫는 아름다운 가을의 소심증.
  
23
세수를 하다 말고,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문득 놀라워서 들여다보는 대야 속의 물거울.
'오늘을 더욱 사랑하며 살리라'는 맑은 결심을 합니다.
그 언제가 될지 참으로 알 수 없는 나의 마지막 세수도 미리 기억해 보며,
차감고 투명한 가을 물에 가장 기쁜 세수를 합니다.

24
늦가을, 산 위에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깊이 사랑할 수록 죽음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하며 사라지는 무희들의 마지막 공연을 보듯이,
조금은 서운한 마음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봅니다.
매일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지켜 보듯이
  
28
여름의 꽃들이 조용히 무너져 내린 잔디밭에 작은 새 한마리가 하늘을 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새도 즐기는 이른 새벽의 침묵의 향기
새의 명상을 방해할까 두려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다른 길로 비켜 갔습니다.

29
사랑하는 이여, 나는 당신을 쉬게 하고 싶습니다.
피곤에 지친 당신을 가을의 부드러운 무릎 위에 눕히고,
나는 당신의 혼(魂)속으로 깊이 들어가
오래오래 당신을 잠재우는 가을바람이고 싶습니다.

30
가을엔 언제나 수많은 낙엽과 단풍의 이야기를 즐겨 듣습니다.
페이지마다 금빛 지문(指紋)이 찍혀 있는
당신의 그 길고 긴 편지들을 가을 내내 읽고 또 읽듯이

33
바람 부는 들녘,
저마다의 자리에서 유순한 얼굴로 꽃들이 일어섰습니다.
뜨거운 여름의 불길을 지나 더욱 단단해진 믿음의 보석 하나 빛나는
첫 선물로 당신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의연한 눈빛으로 일어서야겠습니다.

34
올 가을 들어 처음으로 감을 먹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감꽃의 그 얼굴도 떠올리면서,
조그만 불덩이 하나 입에 넣듯 이 감을 먹었습니다.
어느 해 가을,
가시 박힌 아픔을 잘 익은 말로 삭혀 주던 어느 사제의 모습도 떠올리면서,
뜨거운 마음으로 감을 먹었습니다.

IP *.10.2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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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울
2011.10.14 05:12:37 *.85.42.183
완전한 가을이네요 시를읽으니 새벽부터감성에 한껏 취하는데요 ㅋㅋ 좋은시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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