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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5일 22시 28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그의 인생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기사 한 편을 소개하며 이번 저자에 대하여를 갈음하려 한다.

 

희망의 인문학 캠페인 특별기획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

여럿이 함께하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 - 성공회대 신영복 석좌교수

 

지난 11 23일 이화여대 언어교육관에서 열린정재승, 신영복 교수 특별대담 -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현장. 3백여 명의 관객이 자리를 메웠다. 매서운 추위가 닥친 저녁이었지만,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스승을 기다렸다. 신영복 교수가 등장하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혼란과 좌절의 시기를 건너고 있는 젊은이들은 진지하게 듣고, 물었다. 스승의 답은 따스했다. 강의 말미,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에숲으로 가는 길을 새긴 듯했다. 이날 대담은 페이스북으로 생중계 되었다. 사회는 유정아 아나운서가 맡았다.

유정아 : 안녕하세요. 사회를 맡은 아나운서 유정아입니다. ‘희망의 인문학 -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라는 주제로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10분의 인문학자를 만나셨는데요. 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 강신주 철학박사, 건축가 황두진, 사회학자 송호근, 물리학자 장회익, 그리고 10번째로 신영복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큰 자리다 보니 저는 도우미로 초대를 받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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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정재승 교수님을 소개해드릴께요. 책 『과학콘서트』로 큰 열풍을 몰고 오셨죠. 과학서적의 이전, 이후를 나눴다는 평을 받았는데요. 어려운 과학이라는 주제를 쉽고 재미있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애매하고,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막무가내식 주장이 만연하는 가운데 제대로 된 정보를 던져 준 과학자이기에 젊은이들의 멘토로 자리잡으신 게 아닌가 합니다. 정재승 교수 뜨거운 박수로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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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 안녕하세요. 정재승입니다. 반갑습니다.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10번째 인터뷰까지 왔습니다. 오늘은 정말 각별한 시간이 될텐데요. 바로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님이 주인공이십니다. 간단하게 약력을 소개해드리고 모시겠습니다. 1941년 밀양에서 태어나셨고요.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셨습니다.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시던 중 통일혁명단 사건으로 구속되셔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으셨습니다. 20년간 의 수감생활을 거치셨고 1988년 특별가석방 되신 후, 성공회대에서 사회과학부 교수로 계셨죠. 2006년 정년퇴임 하셨습니다. 지금은 석좌교수로 계십니다. 선생님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나눔과 소통의 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신 우리시대의 스승 신영복 교수님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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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 반갑습니다. 오늘 두 분 양쪽에 계셔서 믿음직합니다. (웃음) 경험이 많은 분들이 계셔서, 제가 조리 없어도 잘 잡아주시리라 믿습니다. 또 어느 정도 준비된 청중들이실 것 같아요.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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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 젊은이들과 만날 기회가 많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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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 , 자주 만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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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 젊음을 통째로 감옥에서 보내셨잖아요. 어느 곳에청춘은 감옥이었다고 쓰기도 하셨는데요. 요즘 젊은이들 보시면 어떠세요
.
신영복 : 지금 청년들도 감옥에 있는 것 같아요. 청년실업이나 지금 시대에 겪는 고통, 보이지 않는 감옥 같은 생활이죠. 그런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해서 오늘 나를 부르신 게 아닌가 해요
.

청년시절 20년의 감옥생활, 인간에 대한 이해의 기간


정재승 : 그간 인문학분야 10분의 석학을 만나왔습니다. 지금 인문학은 어디에 와있고 나아갈 방향은 무엇이며,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를 알아봤는데요. 어떻게 살아오셨고, 고민하는 것은 무엇인지, 편안하고 솔직하게 답해주시면 됩니다.
신영복 : 오늘 주제가희망의 인문학이죠. 우리시대 고민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가를 봐야 할텐데요.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공부가 아닌가 해요. 청년시절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2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요. 가장 중요한 시기를 감옥에 있던 셈이죠. 감옥에서 느꼈던 인간에 대한 이해, 그것이 우리가 천착해 있는 인문학적 내용과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재승 : 선생님의 삶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통일혁명당을 조명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떤 사건이었고, 왜 감옥에 가게 되셨나요.
신영복 : 제가 59학번이에요. (웃음) 몇 년 전에 서울대 가서 09학번 학생들과 만났어요. 59 09의 만남이었죠. 50년의 세월차가 있더라고요. 물어보신 사건, 참 오래됐네요. 그때 상황을 여러분은 잘 모르실거에요. 대학 2학년 때 4.19가 있었고요. 3학년 때 5.16 군사혁명 이후로 학생들의 저항과 반대 분위기가 형성되었어요. 제가 학생서클 운동의 1세대입니다. 사실, 당시엔 통일혁명당이란 게 없었어요, 감옥에 들어간 후에 만들어졌다는 걸 들었죠. 아무튼 감옥에 가게 되고, 무기징역까지 받을 줄 전혀 몰랐죠. 중앙정보부에서 취조할 때도 자기들끼리 얘기 하더라고요 ‘3, 5년일꺼야라고요. 그런데 사형구형이라고 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저는 군사재판을 받았습니다. 현역으로 육군중위였기 때문이죠. 68년 김신조 사태가 일어났고,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
拿捕)되어 북한에 억류되기도 했죠. 또 삼선개헌, 한일회담, 독도문제가 거론되며 복잡한 상황이었죠. 정확하진 않지만, 당시 서울대 학생서클 간부 하나를 사형을 시켜야한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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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 , 그러니까 통일혁명당이 존재하진 않았지만, 주요 간부라는 누명을 쓰신거네요
.
신영복 : 사실, 문리대 정치과 선배 한 분이 관련이 있었어요. 북한에 다녀오고 간첩사건과 관련이 있었고요. 난 학생서클 1세대였고,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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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 당시에 150여명의 간첩단 사건 같은 게 나왔죠
.
신영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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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 어떻게 보면 억울한 상황으로 감옥에 가고, 무기징역까지 선고 받으신거네요
.
신영복 : 여러 가지 생각이 참 많았죠. 조금씩 자기 문제를 사회적 관점, 역사적 관점으로 보게도 되었어요. 그러고 보니 역사적 격동기에 감옥에서 인생을 보낸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더라고요. 나도 그 중 하나구나, 팔자구나 생각했죠
.

유정아 :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것이 나의 일이 되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인생을 다시 극복하지 못하게도 만들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청춘을 보내며 자기성찰적인 글이 나왔는지요
.
정재승 : 정말요. 그런데도 피부가 너무 뽀야세요. 동안의 비결은 뭔가요 (웃음
)

신영복 : (웃음) 당시 150명이 구속됐어요. 선배 후배들이 다 들어갔지요. 나는 후배들을 많이 데리고 들어온 선배입장이었기 때문에 죄책감, 미안함으로 고통스러웠어요. 나 자신의 문제보다 그것이 훨씬 고통스러웠죠. , 조용히 혼자 있을 땐사형이라니. 너무 빨리 죽는구나이런 쓸쓸한 마음이 들었어요. 할 것도 참 많았는데 말이죠. 막상 무기로 감형이 되고 나서는 암담하기도 했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동굴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용케 잘 걸어나왔죠.


한 달에 한 번 쓸 수 있는 엽서, 정신의 해방구

정재승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대학생들이라면 한번쯤 읽었을텐데요. 가족들과 나눈 편지글입니다. 어떻게 그 글들을 쓰게 되셨는지요.
신영복 : 지금은 감옥이 많이 달라졌죠. 집필, 티비 시청도 되고요. 그때는 일체 집필도 허가되지 않고, 편지도 한 달에 한 번씩 엽서를 신청해서 쓸 수 있었어요. 교도관의 감시하에 썼고요. 생소한 감옥에 던져지니, 충격적인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그 생각들을 어디다 좀 적었으면 했죠. 다 잊어버릴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유일하게 기록이 허락되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 쓴 거에요. 아마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런 사색적인 내용을 쓴 사람은 없었겠죠
.

정재승 : 굉장히 사색적이고, 산문이긴 하지만 시적이기도 해요. 그런 편지들을 받은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
신영복 : 아직 정신적으로 무너지진 않았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겠죠
.

정재승 : 전 반대였을 것 같아요. 아니 점점 이상해지고 있구나. 이런... (웃음
)
유정아 : 내지는 피부를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 같아요
.

신영복 : 개인적으로 한 달에 한 번 밖에 못쓰기 때문에 한 달 내내 이 내용을 이렇게 쓰자 머릿속으로 정리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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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 월간지 기고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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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 교정까지 완벽하게 끝냅니다. 20대라 머리가 명석했죠. 지금은 『엽서』라는 영인본이 나와 있죠. 그걸 보고 사람들이 말해요. ‘어떻게 고친 데가 하나도 없냐고요
.
유정아 : 그 속에서 퇴고를 다 하신거네요
.
신영복 : 그렇죠
.

정재승 : 교도관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
신영복 : 편지를 검열하는 건 보안과, 교무과에서 하는데 사실 조심스럽죠. 검열을 전제로 하니까요. 통과되지 않을 이야기는 안됐어요. 그렇게 했는데도, 보낸 편지가 없어진 게 상당했어요. 검열 과정에서 사라졌겠죠. 까다로운 검열관 때는 피해서 썼어요. 통과수위가 낮은 사람이 검열할 때 썼어요. 그랬는데도, 많은 독자들이 물어요. ‘국가보안법이나 통혁당 간부라는 사람의 서신에 비전투적인 글만 나오느냐고요
.

유정아 : 정재승 선생님은 어떤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
정재승 : 많은 분들이 꼽으시는 부분일거에요. 옆에 있는 동료들을 열덩어리로 느끼게 해 증오하게 만드는 여름에 대한 글이요. 생명, 계절의 변화에 주목하신 여러 부분 모두 인상적이었어요. 그 안에서 마치 득도하신 것 같았어요. 굉장한 분노와 억울함이 있었을텐데, 어떻게 밖에 있는 사람에게 평온함을 줄 정도로 사색의 심연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정말 신기했어요. 문장을 한 번 쭉 읽어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여러 번 읽고 상상을 해야 그려지는 책이었어요
.
신영복 : 까다로운 자기검열을 하게 되어, 글 전달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어요. 저는 글을 읽다보면, 행간에 묻어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 괴롭기도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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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끼가 그랬듯이, 감옥생활은 나의 대학생활


정재승 : 책에 실린 에피소드 중, 감옥생활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신영복 :
감옥 20년을 나의 대학생활이라고 하는데요. 고리끼가 쓴 『나의 대학』이라는 책이 있어요. 고리끼의 학력은 초등 3학년이 전부였죠. 볼가강의 뱃사공 일을 도왔는데요. 배의 주방장이 독서를 하는 사람이었대요. 그게 책을 보게 된 시작이었죠. 그의 책 『나의 대학』은 해방 직후에 번역되었고, 대학 다닐 때 고서점을 다 뒤져 찾아냈어요. 볼가강 근처 노동자 합숙소에서 지낸 2~3년간의 시절을나의 대학시절이라고 해요.

내가 보낸 20~30년도 그랬던 것 같아요. 갇혀 있는 세월이긴 했지만, 밖에 있었다면 절대로 만나지 못했을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와 역사 그리고 인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정재승 : 그래서인지 관계와 소통에 주목하고 계신데요. 감옥 안과 밖의 관계, 소통은 어떻게 다른가요.
신영복 : 오늘의 주제가희망의 인문학인데요. 근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존재론적인 패러다임입니다. 자기의 주체성을 완강히 지키며 상대를 타자화시키고, 자연까지 대상화합니다. 이걸 청산하고 뛰어넘는 게 탈근대죠. 우리 시대가 당면한 과제라는 생각에서 관계론을 이야기하곤 하는데요. 인간적 관계를 가장 밀도 높게 경험한 게 감옥이 아닌가 합니다. 뜨거운 여름에는 칼 잠을 잡니다. 옆으로 누워서요. 수용인원이 많으니까요.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돼요. 사실, 그 사람은 아무 죄가 없거든요. 인간적인 관계를 잘못 파악하는 경우도 참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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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마다 버릇없는 친구가 있어요. ‘싸가지 없는사람이 각 방마다 있어요. 그 사람 만기 기다리다 자기징역 다 간다는 말까지 있어요. ‘쟤 언제 나가지?’ 그러고 기다리는 거에요. 재미있는 건, 그 사람 나간 날은 참 행복한데 2~3일 지나면 또 그런 사람이 들어온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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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 자신의 복역기간을 짧게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일 수도 있네요
.
신영복 :
그러니까 증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결함이 없진 않지만, 몇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겪으며 상황이 그런 사람을 만들어 내는구나라는 깨달음을 겪게 되었죠. 우리가 갖는 인간관계가 얼마나 잘못되는가 말이죠.

정재승 : 싸가지 없는 사람의 특징은 이기적인가요, 무례한가요.
신영복 : 그런 면도 없지 않죠. 한편 열악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 배려하면 자기가 너무 힘들어요. 1차적 반응은 배타적 자기존재성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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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자살하지 않은 건 햇빛과 가족, 친구들 때문


정재승 : 지금 생각해보면 20년을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건 정말 끔찍한데요. 그 기간의 감정 변화는 어땠나요. 낙담도 하다, 희망도 가졌을 수도 있고요.
신영복 : 교도소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보도가 안 되지만요. 재소자가 지켜야 할 준수사항이 30개 정도 있거든요. 제가 붓글씨를 잘 써서, 그걸 많이 썼어요. 1항이 교도관의 지시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5~6번째에 자살을 해서는 안 된다는 항목이 있죠. 꽤 비중이 높은 준수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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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기징역 받고 추운 독방에 앉아 있을 때, 왜 자살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심각하게 고민했었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거든요.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햇빛 때문에 안 죽었어요. 그때 있었던 방이 북서향인데, 2시간쯤 햇빛이 들어와요. 가장 햇빛이 클 때가 신문지 펼쳤을 때 정도구요. 햇빛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내일 햇빛을 기다리고 싶어 안 죽었어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비록 20년의 감옥이 삶 속에 있지만 결코 손해는 아니다. 태어나지 않은 것과 비교한다면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다음에는 내가 자살하면 굉장히 슬퍼할 사람들이 있었어요. 부모, 형제, 친구... 자기의 존재라는 것이 배타적 존재성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해요. <어린왕자>를 보면 리비아사막에서 어느 비행사가 불시착하잖아요. 살아날 가망성이 없으니 모래톱을 파서 시체가 들어갈 무덤을 준비하며 조난당해서 죽는구나,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죠. 너만 죽는 건 아니야. 너의 소식을 기다리는 가족들도 조난자야. 이런 질문을 던지죠.

유정아 :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살진 못할지라도, 어떤 사람에게 큰 슬픔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
신영복 : 맞습니다. 우리 삶이란 게, 존재성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저도 근대적 교육을 받았기에 사고방식도 근대적이었죠. 같은 무기수이면서도 다른 재소자를 일단 타자화했어요. 딱 거리를 두고 분석을 해요. 죄명, 형기, 출신, 학력 이런 걸요. 대상화하는 거죠. 겉으로는 친절하지만요. 나중에 알았지만, 5년간은 왕따였어요. 특별하게 따돌리진 않지만,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지 못했던 시기였죠. 그 후 그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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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만 소개할게요. 마흔쯤 된 친구인데, 집도 절도 없어 접견(면회)도 오지 않습니다. 어느날 접견 호출을 받아 놀랍니다. 우리도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몰려가서 물으니 대꾸를 하지 않고 침울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놈이 왔대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 친구가 두세 살 때 누이동생과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살 길이 없어 삼촌댁에 맡기고 어머니가 돈 벌러 가셨다 못 돌아오고 재가(
再嫁)를 합니다. 재가 한 집이 마침 두세 살 남매를 두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자기 자식을 못 키우고, 다른 아이들을 키운거죠. 그렇게 키운 애가 찾아 온 겁니다. 나중에 알고 나니 이 사람이 쓸쓸하다는 거죠. 찾아온 분이 하는 말이만약, 당신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로 모시고 오지 않았다면 내가 그 속에 있고, 당신이 밖에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훌륭한 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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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을 객관화하는 존재론적 사고에서 벗어나자 왕따 면해


나도 그 사람과 같은 환경, 부모였다면 똑같은 죄명으로 앉아 있겠구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근대적 사고로 타자화 하던 시기에서 5년쯤 후에 다른 사람의 삶을 공감하게 되었고 그때 왕따를 면했던 것 같습니다. 참 많은 발전을 한 거죠. 흐뭇했죠.

공감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인간관계가 되지 않았어요. 공감, 동정 모두 좋은 품성이지만, 다른 사람을 동정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일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니까요. 물질적 도움은 되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선내가 가여운 입장에 있구나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죠. 어떤 면에선 잔인한 거죠. 그래서 동정하고 동정 받는 관계는 대칭적 관계가 되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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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회가 도달한 최고의 사회적 윤리, 똘레랑스가 그것이죠.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똘레랑스라는 프랑스 중심의 근대적 사고가 도달한 문화가 그 정도인 것 같아요. 감옥에서 그걸 깨닫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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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 다른 사람과의 연대, 연민은 초보적인 감정에서 비롯되는 거잖아요. 공감이라는 건 불쌍하지 않고, 극악무도한 존재라도저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었겠구나라는 정도라면, 관용이라는 건 그 사람이 되어보고, 그 외에 어떤 게 한 단계 더 보태지는 건가요
?
신영복 : 바로 그 부분, 나는 상당한 정도의 발전이라고 생각했죠. 근대적 사고의 공감이요. 머리에서 가슴까지 왔다고 한 그 표현인데요. 그 먼 여정을 감옥에서 겪은 겁니다. 책에도 썼지만, 대단히 충격적인 경험을 해요. 목공장에서 목공일을 배웠던 때인데, 목수가 주춧돌부터 그리고 지붕을 마지막에 그렸어요. 제가 충격을 받았어요. 보통사람이라면 지붕부터 그리지 않았을까요. 학교에서 책을 통해서 도달한 인식이 얼마나 관념적인가 알게 됐거든요. 일하는 사람은 집짓는 순서와 그리는 순서가 같더라고요. 만약, 그런 시기에 똘레랑스가 최고의 덕목이라면, 당신은 주춧돌부터 그리세요. 난 지붕부터. 우리 평화적으로 공존하자. 이게 똘레랑스죠. 타인을 역시, 밖에 세우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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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애정에서 머물러서는 안되고, 관용으로 자기 변화 이어져야


중요한 건 사유와 다양성을 공존이 아니라 내가 변화할 수 있는 대단히 반갑고 고마운 기회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자기 변화로 이어지는 노마드, 탈주와 유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걸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공감과 애정도 근대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다시, 가슴에서 발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는으로 가야 합니다. 오만한 이야기지만, 발까지 가려고 노력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정재승 : 나는 똘레랑스를 갖고 상대의 의견을 참을 마음이 있는데, 내 생각을 참아주지 않아 관용이 부족한 사람과 어떻게 공존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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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 어려운 문제죠. 탈근대라는 것이 근대사회가 도달한 공존, 똘레랑스를 넘은 탈주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똘레랑스와 공존도 이루지 못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정말 필요한 거죠. 논리적 사고마저도 부족하죠. 뭔가 변화하고 뛰어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를 적어도 제가 감옥에서 겪은 것처럼, 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그 사람만이 아닌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와 지금의 처지를 아울러서 우리가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 두 개를 떼서 받아들이는 게 분석한다는 거거든요. 감옥에서 10년 이상을 살면 만기자를 보내며 우리끼리 이야기해요. ‘한 번은 더 들어오지, 아마’ ‘1년 안에 들어와제가 처음에 계속 틀렸어요. 그런데, 그게 반대로 되더라고요. 장기수 노인들은 짜게 평가하더라고요. 차이를 알게 된 게 저는 그 사람만 봤는데, 저보다 오래 있었던 분들은 나가서 어떤 상황에서 살아갈 건가를 아울러 봐요. 그래서 관계를 만든다는 건, 사람만이 아닌 살아갈 환경과 처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처음에 그런 몇 번의 경험을 하고 나선, 그 부분에 대해서 아주 절제를 했습니다
.

관계 맺음, 그 사람만이 아니라 살아갈 환경과 처지까지 봐야


대전교도소에만 15년을 있었어요. 참 많은 사람들이 만기 출소하는 걸 봤어요. 만기인사라는 걸해요. ‘신세 많이 졌습니다. 몸 건강히 계시다 나오시기 바랍니다.’ 판에 박힌 교도소 인사법이 있어요. 그러면 우리 같은 국가보안법 무기수는국가의 은총으로 사회에 나오세요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들어와요. (웃음) 다시 출소해서, 또 같은 인사를 해요. 가장 많이 만기인사를 나눈 횟수가 무려 7번입니다. 나와 나이도 비슷해요. 나중엔 자기도 민망했던지 악수하면서 이런 말을 해요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처럼 새출발 하게라는 인사를 안하세요. 생각해보니, 전 한 번도 그 말을 안했더라고요. 그 사람이 나가서 살아갈 상황을 대강은 알아요. 사람만 보지 않는 거죠. 집도 절도 없이, 그런 사람이 마음잡고 어떻게 살아요? 자리라도 잡아야 할텐데,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나가면 잘해봐라.’ 그 이상을 못했어요. 인간관계란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그 사람의 장점에 대해서 고래가 춤출 정도로 칭찬이 필요해요. 학교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교육학과도 관계되는데요. 지금 교육은 모난 부분을 깎아서 원만하게 해요. 결함을 교정시키죠. 그러면 안 됩니다. 그걸 포용할 수 있는 더 큰 원을 만들어, 그 안에 모를 넣어야죠. 큰 품성을 만드는 게 진정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니까요. 그 사람의 처지를 아울러 생각하고, 장점은 고래가 춤출 정도로 칭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도, 자기를 이해하는 것만큼은 못해요.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할께요. 변소를 다녀오며 한 밤에 문을 쾅 닫는 친구가 있었어요. 자전거 튜브를 가운데 끼워 꽉 닫히게 해놨는데도요. 시끄럽다고 아침마다 핀잔을 받았죠. 제가다른 사람이 싫어하는데 왜 그래?’라고 물었더니, 답이 이래요. ‘제가 야간 주거침입을 하고 달아나다 축대 위에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다리를 다쳤어요. 쪼그렸다 일어나면 완전히 마비가 돼요. 추운데 마비 풀릴 때까지 있을 수가 없어서, 늘 문을 놓치는 거예요얼마나 놀랬는지 몰라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양해를 구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어떻게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이해를 받고 사나요. 그냥 욕먹고 살아야죠.’ 그러는 거에요.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었죠.

춘풍추상(
春風秋霜), 나에겐 엄격하게 다른 사람에겐 부드럽게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말이 있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춘풍처럼 부드럽게 하라는 말입니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고요. 대신 나를 생각할 때는 추상같이 엄격하게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반대로 하죠. 다른 사람에겐 엄격하고 자기는 춘풍처럼 대하잖아요. 그 사람은 자기처럼 없이 살고, 부족한 사람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갖고 있었던 거죠. 제가 그런 걸 보며 굉장히 많은 걸 배웠어요. 관계를 가질 땐,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연이 있겠다는 태도를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정재승 : 마지막으로 감옥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만 여쭤보고, 질문을 받을께요. 선생님, 감옥에서 부르던 18번 노래가 있으셨다고요.
신영복 : 사실은 노래보다는 글을 썼어요. 같은 층 연구실 김창남 교수가 노찾사 창단 멤버였는데요. 노찾사 재기하며 책을 썼죠. 거기다 노래에 대한 얘기를 쓰래요. ‘노래가 없는 세월을 산 사람에게 무슨…’ 그랬는데 그래도 쓰래요. 생각해보니, 이런 이야기거리가 있어요. 만기 출소 전에 영치금이 좀 남아 건빵 한 봉지씩 나누는 조촐한 만기파티, 가난한 만기파티가 있어요. 건빵 한 봉지씩 나눠받으면 훈훈해져요. 누군가가 노래 하나씩 하자고 해요. 내 차례가 오면 한사코 안하죠. 어쩔 수 없이 20년간 부른 노래가시냇물이에요. 여러분도 다 아시죠. ‘냇물아 흘러서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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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 음이... 어떻게 되죠?(웃음
)
신영복 : 음은 안 해도 돼요. 우리세대는 노래에 대한 생각이 달라요. 우리는 가사 중심의 서사양식에 충실하게 들었죠. 전달이 어려우면 곡을 붙이고 그래도 안 되면 춤을 추고요. 그런데 요즘나가수보면 조금 이상해요. 그렇게까지 온 몸을 던져서 부를 필요가 있나, 오버하는 게 아닌가 해요. 그러다 지금은 동작 하나하나가 작품이구나. 이게 퓨전이구나 해요. 당시엔시냇물부를 때 마다넓은 세상 보고 싶어부분만 되면 숙연해졌어요. 처한 상황이 그렇다보니, 와 닿는 부분이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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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청년들도 감옥 밖의 재소자


인문학적 얘기를 하나 더 할까요. 출소하자마자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했어요. 종강파티를 했는데, 또 노래를 부르라고 해, 아는 게 시냇물 밖에 없어서 하면, 아이들 표정이넓은 세상에서 재소자와 비슷하게 되요. 그때, 이 사람들도 갇혀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미셸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그런 말을 했죠. “감옥이란 밖에 있는 사람이 갇히지 않았다는 착각을 하게 하는 정치적 공간이다참으로 역설적인 말이죠. 우리 시대 청년들도 보이지 않는 감옥에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시냇물은 참 인문학적 노래 같아요.

유정아 : 다 같이 시냇물을 부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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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 그래요.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박수) 같이 넓은 세상을 보기도 하고,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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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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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 정말 소리도 맑으시네요. 질문을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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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1 : 만나 뵈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감옥이나 귀향을 다녀오면 가장 큰 대학, 배움의 자리였다고 많은 분들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20살 때부터 제 나이가 되는 마흔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모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저희는 어떻게 하면 그런 큰 배움의 자리를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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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 감옥과 같은 배움의 대학! 굉장히 와 닿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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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 보통의 젊은이들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공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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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 모두 깨닫죠. 저처럼 책을 쓰지 않을 뿐이겠지요. 감옥이 특별한 공간은 아닙니다. 밀집된 공간이기에 인간관계가 더 풍부할 뿐이겠지요. 도시는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으면 되죠. 감옥은 싫은 사람도 계속 만나야 하죠.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6.3사태 때 제가 써줬던 원고가 압수되어 울산 해변가에 숨어 있었어요. 한 달간 너무 무료해서 바닷가에서 파도를 봤죠. 자갈들이 길게 펼쳐져있어요. 모두 동글동글 다듬어져있었죠. 오래 보고 있다, 다듬어지는 과정을 깨달았어요. 파도가 들었다 내려놓으면 서로 막 부딪혀요. 그걸 수천만 년 했겠죠. 서로 부딪히고, 마모되며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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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학생들에게 그런 말을 해요. 선생이 뭔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여러분끼리 부딪혀 절차탁마하는 게 필요하다. 저는 감옥에서 책도 읽고 했지만, 가장 깨달음에 도움이 된 게 있다면 사람들에 대한 이해였던 것 같아요. 농밀한 인간적 관계에서 얻은 게 많습니다. 제 친구 후배 중 한 사람이 결혼 6개월 만에 감옥에 들어왔어요. 신부 같은 처를 두고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거에요. 그가이번 달엔 제 처가 몹시 아파 접견을 못 온대요.’ 그래서 제가편지를 받았나요?’ 했더니보내온 옷에 향수가 두 배 이상 짙게 뿌려져왔어요해요. 아파서 접견가지 못하는 마음을 향수의 양의 증가로 표현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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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살이에서 가장 큰 힘든 건, 개인의 고통이 아니에요. 그건 다 견딜 수 있어요. 자기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의 고통이 자기 아픔으로 건너와요. 짐을 질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에요. 기쁨과 슬픔의 근원은 바로관계에요. 책은 그저 관념적인 수준에 끝날 수 있어요. 적어도 가슴까지 내려오려면, 인간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 부딪힘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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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관계머리에서 가슴, 더 나아가 발까지 가야


독자 2 : 성신여대 4학년 학생입니다. 똘레랑스에 대한 부분,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저도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는 걸 신념처럼 믿고 살아왔는데요. 최근 유럽에서 다문화주의로 인한 테러, 분쟁을 보며 너무 협소하게 생각한 게 아닌가 했어요. 절대 악 같은 게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혼란을 느꼈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신영복 : 우리 시대에 없는 것들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겁니다. 함께 하는 공감과 가치의 결핍을 느끼실 겁니다. 저는 함께 하지 못하는 이유가 참 많다고 생각해요. 제가 감옥에서 함께 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슴에서 했던 공감을 기초로 해서, 자기 반성이 더해졌다는 의미에요. 그런 노력이 꼭 필요해요. 우리가 사는 서울만 해도,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인간관계를 이루지 못하죠. 숲의 공간을 만들지 못하고 있죠. 감옥 10년쯤 살고 나면 다른 사람을 잘 판단해요. 죄목과 형기를요. 다른 사람에 대한 민감한 감각을 출소 이후에 잘 사용하는 곳이 바로 지하철에서 자리잡을 때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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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하철을 탈 때, 누가 어느 역에서 내릴 때 거의 알아맞춰요. (웃음) 앉으려고 마음먹으면 언제든 앉을 수 있어요. 어느 날은 인천에 특강이 있어 가는데 영등포역에서 1호선을 탔어요. 자리가 없었어요. 신도림에서 내릴 사람을 찾는데, 바로 앞 사람이 일어나요. 바로 앉으려는데, 젊은 여자분이 내 앞에 빈자리로 옮기더니 자기 앉아 있던 자리에 친구를 앉히는 거예요. (웃음)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죠. 누가 보더라도 그 자리에 대한 권리는 제게 있었는데 말이죠. 불법적으로 그 자리를 가져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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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 깊은 만남 없으니 관계 맺지 못한다


제가 『강의란 책을 썼습니다만. 맹자가 인자하기로 유명한 왕을 찾아가 이런 소문을 확인했다고 해요. 제사 지내려는 소를 불쌍하다 놔주라고 한 적이 있냐고요. 그때 왕이 이렇게 말해요. ‘양으로 바꿔 지내라고 했다고. 맹자가 묻죠. ‘소가 불쌍해 보여서인가요? 그렇다면 양은요?’ 소와 양을 바꾼 이유를 맹자가 이야기해요. 소는 죽는 걸 봤고, 양은 못 봤다는 겁니다. , 만남과 관계가 있다 없다는 것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전철에서 내 자리를 가로챈 사람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죠. 본 적도 없고 볼 일도 없는 사람이죠. 대부분 서울시민들이 그런 관계로 살고 있어요.

지하철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평균 탑승시간이 20, 10정거장이에요. 그러니 자리를 불법점유를 하는 거죠. 3년간 함께 밥해먹고, 같이 산다면 그럴 수 없었겠죠. 그래서 관계가 중요한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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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 비싼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거기 지하철이 유명하죠. 지하 150미터. 노인이 탑승하면 젊은이들이 모시고 자리에 앉혀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을 해요. ‘저 노인들이 청춘의 혁명적 정열을 바쳐 건설한 전철이니 당연히 양보해야죠!’ 우리 학생들에게 비슷하게 물어봤죠. ‘너희들이 타는 지하철, 지금 노인들이 젊어서 만든 건데 왜 양보를 하지 않니?’ 그랬더니 학생들이 칼 같이 대답해요. ‘노인들이 만든 건 맞지만, 봉급 받으려고 한 거지 우리와 무슨 상관이에요?’ 똑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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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인간관계 실상이기도 하죠.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공동체, 인간적 관계를 만들어가겠어요. 대단히 어렵죠. 그래서 제가작은 숲을 만들자고 제안을 하는 겁니다. 바로 여기도 작은 숲일 수 있죠. 오신 분들이 비슷한 고민을 갖고 계실테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작은 약속을 했으면 좋겠어요. 꼭 물리적 공간이 아닐 수도 있고요. 작은 숲과 숲이 소통하는, 의식적인 노력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걸 통해 우리 사회의 인식과 문화도 탈근대적인 것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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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으로 지속가능한의 공간 만들자


정재승 : 저도 지금 질문한 학생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얼마 전 노르웨이에서 극우단체 한 사람이 다문화행사에서 어린이들을 무차별로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있었어요.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총을 겨누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린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런 문제를 고민하게 되거든요. 결국 노르웨이 정부는 그 사건을 보듬고 더 큰 관용으로 보복하겠다고 했지요.
신영복 : 크게는 똘레랑스의 과정을 거쳐 공동체적인, 지속가능한 숲의 공간을 만들자는 게 합의되겠지만 그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선택적 정책 방향도 필요하겠죠. 한 가지 방법을 고집하긴 어렵겠죠. 다만 사회의 주류문화가 흔들리지 않는 방향성을 확보한다면 효과적인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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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 자연스럽게 요즘 이야기로 옮겨갈까 합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가 겪은 일들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예컨대, 의회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 시민정치로 나아가려는 정치적 변화들이 있었고요. 최근 들어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조롱, 정부에 대한 풍자나 희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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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 우리사회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어요. 2.0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사회 주류 계층의 사고는 웹 1.0사고에 머무는 게 문제죠. 자기 서버를 많이 키우고, 더 강력한 서버에 접속하려는 거죠.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창의적인 서버로 나가려고 하는데 말이에요. 이렇게 서로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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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
년 인조반정 이후로 지배계층의 성격 바뀐 적이 없다


최근에 너무 답답해서, 한국사를 다시 읽으니 이런 게 나와요. 1623년 광해군을 쫓아낸 인조반정 이후에 지배계층의 정치적 성격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조선 후기 내내 노론, 한일합방 때도 노론 권력체계였죠. 의회정치에 대한 실망이 많다는데, 우리 의회 구성을 보면 국민들의 구성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국민의 대표기관이 못되죠. 사법과 행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단히 보수적이고 완고합니다. , 언론을 보세요. 거의 보수적인 기조를 갖고 있죠. 이런 상태에서 사회를 바꾸자고 하는 것보단 변방에서 새로운 모델을 가지는 게 좋지 않나 싶어요. 최근에 일어난 안철수 현상, 시민운동을 기반으로 한 서울시장의 당선 같은 건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험하고 있는 과정 같습니다.

정재승 : 그러면 대의민주주의, 의회정치에 대한 체질개선 없는 새로운 시민정치 형태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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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 보수적인 구조가 일정하게 비판되면 그 자체가 달라진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오히려 의회권력이 바뀌게 되면 국회의원 선거법부터 바꿀 수 있죠. 정당투표제를 병행한, 국민들의 구성을 반영할 수 있는 의회도 만들 수 있겠죠. 밖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여러 운동들이 그런 압박이 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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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 문제는 기득권자들이 정당투표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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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 그래서 저는 객관적 조건은 굉장히 완고한데, 바꾸려는 주체역량은 대단히 취약한 상태라고 봅니다. 비대칭적인 힘의 대치상태가 실상이라고도 보는데요. 다만, 이런 상황에선 전혀 다른 전략, 전술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대응방식이 있으니까요. 난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신뢰합니다.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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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 정치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다른 사람들을 타자화시키는 근대성까지 바꿔줄 수 있다고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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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 쉽지는 않겠죠. 『놀라운 가설』의 저자 프랜시스 크릭은 내 머릿속에 있는라는 게 뭔가 고민했는데요. 모든 보수성의 기본적인 출발점이죠. 인지과학, 뇌과학에 의하면 한 존재는 다세포로 발전하며, 자기 생명을 여러 기관과의 관계성을 통해 증명한다고 해요. 우리 역사가 근대사라는 존재론적인 패러다임을 갖고 왔기 때문에, 나의 관계론적 본성 자체가 잘못 굳어져온 측면이 있습니다. 그걸 바꿔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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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 혹자들은 『놀라운 가설』을 두고, 놀랍지도 않은 가설을 놀랍다고 주장한 책이라고도 했는데요. 선생님 말씀 듣고 나니 놀라운 얘기를 담고 있네요. 또 한 수 배웠습니다. (웃음
)

대학은 백년 뒤를 예비하는 미래담론을 창조해내는 공간


유정아 : 페이스북을 통해 올라온 질문도 받아볼까요. ‘고판동네라는 아이디가 올려주셨습니다. “꿈의 의미가 비틀어지고, 돈을 벌기 위해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있고, 클럽이나 도서관에 박혀있는 대학생들, 본인의 일 외에는 관심도 열정도 없는 젊은층이 깨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영복 : 정재승 교수가 한 번 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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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 세상을 너무 책으로 배우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사실,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학생들이 학교 교육에 충실한데, 그걸 수행한다고 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죠. 놓고 있으면 왠지 불안하기도 하지만요. 사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지도를 쥐어주고, 목적지까지 가장 빨리 가는 법을 계속 훈련시키는데요. 정작 필요한 건,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지도를 그리는 일이거든요. 어떻게 둥지를 틀어야 하는지도요. 세상과 부딪히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으니 학교가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나 물어보게도 됩니다. 요즘 대학들이 인지적으로라도 대학생들을 가두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신영복 : 일생 중 가장 중요한 시기가 청년시절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청년시절이 없는 것 같아요. 학원이나 교실에서 시험, 취업준비만 하니까요. 꿈과 이상을 불태우는 청년시절이 없다면 그의 인생은 사회적 기준에서 아무리 성공했다 해도, 실패했다고 봐요. 마찬가지로 한 사회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대학공간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스펙만 쌓아서 기업에 부품 납품하는 대학이 아닌, 그 사회의 백년 뒤를 예비하는 그런 미래담론을 창조해내는 대학 본연의 공간이 없다면. 한 개인이 청년시절이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 청년들의, 한 사회의 비극입니다.

한 학생이 와서 시민운동단체에 가서 일을 하고 싶다고 해요. 그런데 엄마가 반대를 한다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이 알 만한데 취직을 하라고 하셨대요. 그래서 내가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엄마와 대화를 해라, 커피빈 같은 커피숍에서 마주 앉아 정식으로 대화를 해라. 그러면 모든 엄마는 다 네 편이다그랬어요. ‘주변 사람들 때문에 꿈과 이상을 접어서야 되겠나요. 힘들지만 좋아하는 일을 위해 살면 안될까요이렇게 정식으로 대화하라고 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해서 성공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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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엄마는 자식 편이다. ‘정식으로대화하라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럴거에요.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아서 그렇죠.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를 보면산티아고라는 목동이 갖고 있는 게 별로 없죠. 가죽물푸대와 무화과나무 밑에서 펼치고 잘 담요 한 장, 책 한 권, 그리고 양떼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죠. 마지막엔 무화과나무 밑에서 보석상자를 캐내죠. 그때 독자는 묻게 됩니다. 연금술이 실제로 있다는 건가? 코엘료가 말하는 연금술은 바로 이런 거죠. 삶에서 겪는 고난의 긴 여정이, 매 발자국 그 순간순간이 황금의 시간이라는 거요. 그게 바로 소설이 보여주는 연금술 같아요.

소유하고 소비하며 만족을 느꼈던 문화, 분명 달라질 수 있어요. 지금 젊은 사람들은 대단히 경쾌해요. 노인들이 뭘 많이 가지려고 해서 문제죠. 전 그런 변화된 정서를 신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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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인용하자면 진짜 인생은삼천포에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판을 새로 짜보시면 어떨까요. 독자 우종훈님이 물어보셨습니다. “선생님을 좌파지식인이라고 하는 기사를 봤는데 어떠신지요
.”
정재승 : 좌파세요? (웃음
)

좌우, 진보보수처럼 분석하고 나누는 것은 근대성의 일면


신영복 : 좌우, 진보보수. 분석하고 나누는 것도 근대성의 일면입니다. 그걸 뛰어넘기 위해서경계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누가 나한테경계에 선다고 해요. 저는 그게 잘못 되었다고 생각해요. 경계는 좌와 우를 나눈다는 전제하게 나오는 말이니까요. 명백하게 구분되어 있는 건 아니죠. 잘못된, 불운한 역사 때문에 좌와 우가 소통하는 게 아니라소탕하고 있어요. 우파로부터 좌파라고 공격당하기도 하는데요.

누가 저한테 이렇게 말해요. 이승만 아니었으면 북한처럼 될 뻔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 때문에 400만명이 죽었다.’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어요. 그때 더디더라도 통일된 정부를 만들었다면 지금 아시아의 스위스 정도는 되어 있지 않을까. 프랑스처럼 좌우가 상생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나 해요. 사실 좌우라는 것, 극단적으로 나뉘지 않는 거예요.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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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은 좌, 실천은 우로 공존해야 한다


정재승 : 구체적으로는 무상급식, 반값등록금을 지지하시죠?
신영복 : 그 문제는 겉으로 보기엔 좌와 우의 옷을 입고 다투지만, 사실은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봐요. 무상급식하면돈 더 내지 않을까이런 게 핵심이죠. 그런데 이런 문제는 가려지고 좌우로 치환돼서 나타납니다. ‘라는 것은 조금 불편하지만 뭔가 현 단계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가치지향을 하자는 거고. ‘라는 것은 현재의 모든 생명을 따뜻하게 지키자는 겁니다. 둘 다 좋은 거고, 공존해야 하는 거죠. 이론은 좌경, 실천은 우경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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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 김재형, 우선영님이 주신 질문 이어가볼까요. 저희도 가졌던 의문이기도 한데요. “다른 사람에게 공감, 관용을 베풀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요. 상대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면서 본인도 에너지를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
신영복 : 적절한 일화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교도소엔 단기수와 무기수가 있어요. 단기수는 만기일만 기다리죠. 무기수는 먼 길을 가는 사람들이죠. 그들의 정서는 고진감래 끝에 뭔가 아름다운 성취가 있을 거라는 패러다임이 필요해요. 한 걸음 한 걸음이 다 황금의 시간이에요. 그 길 자체를 견딜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제가길의 정서를 갖자!’고 해요. 삶이란 무엇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죠.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하는 일 자체가 아름답고 보람 있는 자세로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가 길의 정서로 가자고 말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가다가 코스모스, 사람도 만나고 발자국도 남기며 그 자체로 동력과 자체를 이끌어 가는 거죠. 그런 일하는 자세를 갖는 게 필요하겠죠. 커다란 과제이기도 합니다.


유정아 : ‘먼 길을 가는 사람들의 정서오늘 담고 갈 키워드 중에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우선영님이 정재승 교수께 질문 주셨네요. “트윗을 보면 강의에 연구, 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는데, 그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머리가 워낙 좋아 처리속도가 빨라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는 건가요.”
정재승 : 머리 좋은 거 맞고요. (웃음) 흉내 내려 하지 마세요. 다칩니다. (폭소) 사실, 주변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거기서 에너지를 받아요. 도와주고 싶고 참여하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계속되어 왔어요. 남들이 안하는 걸 해보는 걸 두려워하거나, 벽은 없는 것 같아요. 관계와 소통 말씀하셨는데요. 저에게도 소통의 욕망이 강해요.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기뻐하면 저도 그 관계 속에서 저를 찾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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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 저도 학교에서 말하기를 10년 정도 가르쳤는데요. 처음에는 모교에서 강의했어요. 그러면서, 나는 이 학교 몇 학번이야 이렇게 말했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학기부터는 그런 말을 안 했어요. 몇 학번이라고 했더니, 어떤 학생이어머 그러면 몇 살이야?’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고 나서였죠. 더 이상 같은 세대가 아닌, 젊은 선생님이 아닌 것 때문에 위축된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세대 간의 폭을 좁히려고 노력을 많이 하시잖아요.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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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하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


신영복 : 나이든 사람들이젊은이들이 버릇없다!’고 하면 제가 이렇게 말해요. ‘당신은 다 살지 않았나. 다음 세상 만들 젊은이들이니 그냥 지켜보라고 해요. 누가 뭐라고 한들, 젊은이들이 스스로 포맷하고 만들어가야죠. 제가 붓글씨를 잘 써요. 출소하고 사회단체들이 기금 마련전 한다고, 찬조작품 내라고 해서여럿이 함께를 썼어요. 궁체와도, 훈민정음 판본체와도 다르다고 사람들이 말해요. 그런데 어느 후배교수가 와서 “‘여럿이 함께참 좋은데, 그건 방법론만 말하고 목표지향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지적을 해요. 그 후로 제가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고 써요.

지금까지 우리는 계몽철학이든, 신학질서든 어디로 갈 건지, 어디로 갈 건가만 고민했죠. 여럿이 함께, 그 사람들이 결정해야 하는거에요. 뭔가 자기들끼리 시행착오하면서 가면 길이 생기는 거죠. 선험적으로 갖고 있는 건축적 의지를 허무는 게 필요해요. 여러분들의 역량만큼 만들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세상을 위해서요. 저는 전적으로 신뢰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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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하면서 선험적인 건축의지 허무는 게 필요


유정아 : 벌써 2시간이 흘렀네요. 정재승 교수님,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재승 :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김제동씨에게 상담을 받아요. 그때마다제가 겪은 일의 천분의 일 정도 되는 고통이네요. 악플 20만개 받아봤어요?’라고 하는거에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 제 삶으로 돌아오게 돼요. 감옥 말씀하실 때는, 너무 좋은 이야기고 겪으신 것들이 엄청난 일이라 과연 내가 범접할 수 있는 경지인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더 이야기가 지나가면서 선생님 매력에 빠진 것 같아요. 관객들과 같은 위치에서 몰입했어요. 너무 많은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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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를 깨우쳐주는 구도 없다. 각자의 그림이 있을뿐.


신영복 :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늘 제가 이야기를 하는 입장이었거든요. 사실, 이야기하고 듣고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 구도는 누군가 아는 사람이 누군가 모르는 사람에게 깨우쳐주는 구도는 없습니다. 모르는 건 아무리 얘기해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해요. ‘내가 아는 이야기는 내가 겪은 사진을 보여주는 겁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앨범에 비슷한 사진을 뽑아서 보시면 됩니다.’ 모두 아는 이야기라는 거죠. 감옥만 감옥이 아니라, 처하고 있는 상황은 비슷합니다. 내가 보여드리는 그림, 여러분이 갖고 있는 그림이 공감하는 거에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요. 작은 약속도 하고요. 그게 바로 이런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두 분 도와주시고, 질문도 해서 쉬울 것 같았는데 조리가 없었던 것 같아요. 제 자신도 정리가 안 되는데 여러분도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걱정도 됩니다. 돌아가서 다시 정리하세요. 앨범에 있는 사진들 꺼내보면서요. 명시적이진 않지만 서로가 작은 약속을 했다고 생각해요. 살아가는 삶의 골목에서 작은 것들을 만들어내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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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 오늘 애써주신 신영복 교수님, 정재승 교수님께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를 주시면서 마치겠습니다

 

출처 http://www.shinyoungbok.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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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문구

 

책을 내면서

 

P6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면서 동시에 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짐이기 때문에 지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을 지혜로 만드는 방법이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고전 독법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면서 동시에 미래와의 대화를 선취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그러한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다만 그러한 독법의 필요를 이야기한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필자로서는 이 책이 고전에 대한 관심보다는 우리 현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1)

 

1 서론

 

P16 유년 시절의 경험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층의 정서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서는, 특히 독방에 앉아서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감옥의 독방이 그런 공간입니다. 우선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유년 시절에서부터 내가 자라면서 받은 교육을 되돌아보게 되고 우리 사회가 지향했던 가치에 대해서 반성하게 됩니다.

 

P17 내가 동양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러한 사회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분단과 군사 독재에 저항하면서 열정을 쏟았던 학생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그것도 무기징역이라는 긴 세월을 앞에 놓고 앉아서 나 자신의 정신적 영역을 간추려보는 지점에 동양고전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말하자면 나의 사고와 정서를 지배하고 있는 식민지 의식을 반영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21 고전을 읽겠다는 것은 태산준령 앞에 호미 한 자루로 마주 서는 격입니다.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먼저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에 이르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회 변혁기의 사상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사회 변혁기는 사회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담론이 주류를 이룹니다.

 

P22 주왕실을 정점으로 하는 고대의 종법 질서가 무너지면서 시작된 춘추전국시대는 부국강병이라는 국가적 목표아래 군사력, 경제력, 사회 조직에 이르기까지 국력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무한 경쟁 시대입니다. 주 왕실은 지도력을 잃고 대신 중원을 호령하는 패국이 등장하게 됩니다. 수십 개의 도시국가가 춘추시대에는 12제후국으로, 전국시대에는 다시 7국으로 그리고 드디어 진나라로 통일 되는 역사의 격동기입니다. 이 시기는 흔히 축의 시대라고 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상의 백화제방 시대입니다. 처음으로 고대 국가가 건설되는 시대였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최대한의 담론이 쏟아져 나왔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과 이러한 열망을 사회화하기 위한 거대 담론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상황이라는 인식이 고전 강독에 전제되어 있습니다.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근본적 담론을 재구성하는 과제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특히 그것이 관철하고자 하는 세계 체제와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춘추전국시대 상황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부국강병이 최고의 목표가 되고 있는 무한 경쟁 체제라는 점에서도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시의 담론을 통하여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 전망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21세기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문명론 그리고 최대한의 사회 건설 담론이 개화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고전 강독은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사회와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근본적 담론을 주제로 할 것입니다.2)

 

P23 또 한 가지는 고전 강독의 전 과정이 화두를 걸어놓고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이 화두는 물론 21세기의 새로운 문명과 사회 구성 원리에 관한 것이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서보다는 오히려 현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두라고 하는 것이지요.

 

모델을 미리 설정하고 그것으로부터 실천을 받아오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교조적이거나 관념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새로운 문명과 사회 구성 원리에 관해서는 앞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언급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우리가 걸어 놓은 화두는 관계론입니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3) 존재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발적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운동 원리를 갖습니다. 그것은 자기 증식을 운동 원리로 하는 자본 운동의 표현입니다.

 

P24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에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미래로 가는 길은 오히려 오래된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P25 과거는 그것이 잘 된 것이든 그렇지 못한 것이든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미래를 향해 우리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이지요.4)

 

P26 하루 종일 걸려서 그제야 깨닫는 그런 비능률적인 방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매우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마음에 드는 고전 구문을 선택해서 암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P27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암기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원문을 해독하고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면 금상첨화지요. 그러나 일단을 고전에 담겨 있는 내용을 이해하고 그 뜻을 재조명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사상과 현대의 사상이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래는 오래된 과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를 테면 사상의 시간적 존재형식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상은 시간적인 존재 형식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인 존재 형식도 갖습니다.

 

P28 그뿐만 아니라 무엇과 무엇의 차이를 비교하는 방식의 접근 방법을 나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시각 즉 비교하고 그 차이를 드러내는 관점은 몇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생각합니다. 우선 그러한 관점은 가장 본질적인 것, 핵심적인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물론 본질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만 그러한 경우보다는 그 형식에 있어서나 그 표현에 있어서의 차이, 즉 지엽적인 부분이 비교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어떤 본질에 대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먼저 그것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최대한으로 수용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비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엄밀한 의미에서 대등한 비교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교나 차이는 원칙적으로 비대칭적입니다.

 

P29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수많은 관계 그리로 수많은 시공으로 열려 있는 관계가 바로 관계망입니다. 우리가 고전 강독의 화두로 걸어놓은 것입니다. 여기서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를 비교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고전 강독의 화두인 관계론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내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P30 서양문화의 기본적 구도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인즘의 종합 명제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흄과 칸트의 견해입니다. 서양 근대 문명은 유럽 고대의 과학 정신과 기독교의 결합이라는 것이지요. 과학과 종교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학은 진리는 추구하고 기독교 신앙은 을 추구합니다. 과학 정신은 외부 세계를 탐구하고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종교적 신앙은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며 사회의 갈등을 조정합니다. 서양 문명은 과학과 종교가 기능적으로 잘 조화된 구조이며 이처럼 조화된 구조가 바로 동아시아에 앞서 현대화를 실현한 저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지요.5)

 

그러나 서양문명은 이 두 개의 축이 서로 모순되고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 결함이라는 것입니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모순된 구조라는 것이지요.

 

P31 종교의 과학에 대한 억압이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급속한 발전이 오히려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압도적 우의로 말미암아 진리와 선이라는 서양 문명의 기본 구조가 와해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의 경이적인 발전이 인간적 가치를 신장하기 위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지요. 신무기나 신상품의 생산 기술이 과학 발전의 동기가 되고 있으며, 과학은 다시 자본 축적의 전략적 수단이 되어 사회 변화를 증폭하고 미래에 대한 압도적 규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P32 현대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패권 국가의 일방주의적 세계 전략은 이러한 모순을 더욱 첨예화하고 있습니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전략이 말하자면 대립면을 상실한 질주입니다. 자기 증식을 운동 원리로 하는 존재론의 필연적 귀결입니다. 패권주의적 세계전략은 자기 중식 운동의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그러한 전략은 결국 위기를 심화할 뿐이라는 것이 모순이지요. 이를테면 패권주의적 질주는 자기의 목표를 부단히 허물어버리는 모순 운동 그 자체라는 것이지요.

 

서구 문명의 구성 원리에 대한 반성이 주목하는 것이 바로 동양적 구성 원리입니다. 서구 문명이 도덕적 근거를 비종교적인 인문주의에 두었더라면 그러한 모순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성이지요. 동양의 역사에는 과학과 종교의 모순이 없으며 동양 사회의 도덕적 구조는 기본적으로 인문주의적 가치가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 등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문주의적인 가치들로 채워져 있습니다.6)

 

P34 동양적 사고는 현실주의적이라고 합니다. 현실주의적이라는 의미도 매우 다양합니다만 대체로 우리들의 삶이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하는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주의는 한마디로 적게 소비하고 많이 저축하여 자본 축적을 이루어냈으며 나아가 자본주의라는 최선의 사회 제도를 가능하게 했다는 논리입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금욕주의가 바로 신의 소명이라는 논리입니다.

 

동양 사상이 비종교적이며 현실주의적이라는 점은 베버가 옳게 지적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주의를 현세적 향략과 체면의 문화로 규정하고 있는 논리적 무리인 것이지요.

 

P35 동양 사상은 물론 사후의 시공에서 실현되는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P36 서양에서는 철학을 Philosophy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지혜를 사랑하는것입니다. 에 대한 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양의 는 글자 그대로 길입니다. 길은 삶의 가운데에 있고 길은 여러 사람들이 밟아서 다져진 통로입니다. 자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의 회의문자입니다. 은 머리카락 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입니다. 는 물론 사람의 머리 즉 생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도란 걸어가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7)

 

P37 진리란 일상적 삶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고독한 사색에 의해 터득되는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가 서양에서는 형이상학적 차원의 신학적 문제임에 반하여 동양의 도는 글자 그대로 입니다. 우리 삶의 한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도재이 道在邇, 즉 도는 가까운 우리의 일상 속에 있는 것입니다. 동양적 사고는 삶의 결과를 간추리고 정리한 경험 과학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동양 사상이 윤리적 수준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고 할 수 있지만 반면에 비종교적이며 과학과의 모순이 없습니다.8)

 

P39 근대사회의 신념 체계인 자본주의의 성장 논리는 물론이고, 더욱 거슬러 올라가서 서구의 인본주의 자체가 반자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인간뿐만이 아니라 우주의 어떠한 지점도 결코 중심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P41 인성은 개인이 자기 개체 속에 쌓아놓은 어떤 능력, 즉 배타적으로 자신을 높여 나가는 어떤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성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논어』에 덕불고 德不孤 필유린 必有隣이란 글귀가 있습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입니다. 덕성(德性)이 곧 인성입니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간 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것이지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인간입니다. 이 사회성이 바로 인성의 중심 내용이 되는 것이지요.9)

 

인성의 고양을 궁극적 가치로 상정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인성이란 개별 인간의 내부에 쌓아가는 어떤 배타적인 가치가 아니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망의 의미라는 것이 동양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P42 이처럼 동양 사상은 가치를 인간의 외부에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종교적이고, 개인의 내부에 두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개인주의적이 아닙니다. 동양학의 인간주의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인간을 배타적 존재로 상정하거나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두는 인본주의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천지인 天地人 삼재 三才의 하나이며 그 자체가 어떤 질서와 장의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입니다.10)

 

P43 동양적 구성 원리에서는 그러한 모순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화와 균형에 대하여 대단히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중용 中庸이 그것입니다.

 

동양 사상의 조화와 균형은 널리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유가와 도가의 견제입니다. 유가는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적입니다. 따라서 유가적 가치는 인문세계의 창조에 있습니다. 그것이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 문화 생산자로서의 인간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적극 의지는 하늘을 다스리고 모든 것을 부리는 이른바 감천역물 勘天役物 사상으로 나아갑니다. 바로 그 오만한 지점에 인간의 좌절과 인성의 붕괴가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인간 중심주의, 좁은 의미의 인간주의가 갖는 독선과 조절을 사전 견제하고 사후에 지양하는 체계가 내부에 존재합니다. 그것이 유가의 대립면으로서의 도가 사상입니다.

 

노장을 중심으로 하는 도가는 기본적으로 자연주의입니다. (중략)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 것이지요. 자연의 일부인 인간에 대하여 무위무욕 無爲無慾할 것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만과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유가의 인본주의를 견제하고 그 좌절을 위로하는 종교적 역할을 도가가 맡고 있는 셈입니다.

 

P45 나는 21세기 담론은 그것이 진정한 새로운 담론이 되기 위해서는 근대사회의 기본적 구조를 새로운 구성 원리로 바꾸어내고자 하는 담론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46 고전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어쩌면 오늘날처럼 속도가 요구되는 환경에서 너무나 한가롭고 우원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가 쌓아가고 있는 모순과 위기 구조는 근본 담론을 더욱 절실하게 요구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P47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금언이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2 오래된

 

P52 우리가 『시경』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의 사실성에 있습니다.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지만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국풍 國風에 주목합니다. 『시경』의 국풍 부분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백성들이 부르던 노래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시경』의 국풍 부분을 읽는 이유는 시의 정수는 이 사실성에 근거한 그것의 진정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과 정서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과 생각은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P56 국풍은 각국의 채시관이 거리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백성들의 노래를 수집한 것입니다.

 

P62 사실이란 결국 진실을 구성하는 조각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의 조합에 의하여 비로소 진실이 창조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문학의 세계이고 시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11)

 

민심을 읽고 민심을 다스려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써 채시관들이 조직적으로 백성들이 노래를 수집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P65 시적 관점은 사물이 맺고 있는 광범위한 관계망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를 읽고 시적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P66 자기의 개인적 세계를 열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자기의 좁은 체험의 세계를 부단히 열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지요.

 

P67 『서경』은 2(, ) 3(우왕, 탕왕과 문왕 또는 무왕)의 주고 받은 , 즉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유가의 경전이 되기 전에는 그냥 『』 또는 『상서』라고 했습니다. 중국에는 고대부터 사관에 좌우 2사기 있었는데 좌사는 왕의 언을 기록하고 우사는 왕의 행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각각 『상서』와 『춘추』가 되었다고 합니다.

 

P68 사마천은 『사기』에서 『서경』을 평하여 정에 장하다고 하였지요. 『서경』에는 수많은 정치적 사례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에 정통하게 되면 정치력을 높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난 후에 서적을 불사르고 학자들을 매장하는 문화적 탄압, 이른바 분서갱유를 하게 되지만 그는 무엇보다 천하 통일 사업의 일환으로 중국의 문자를 통일합니다. 이 문자의 통일은 엄청난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고대 문자와 고대 기록의 해독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P72 한마디로 무일은 불편함이고 불편은 고통이고 불행일 뿐이지요.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P75 레닌은 『우리는 어떤 유산을 거부해야 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역사 공부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계승할 것인지를 준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을 피력했지요. (중략)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어떠한 시대나 어떠한 곳에서도 변함없이 관철되고 있는 인간과 사회의 근본적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무일>편이 무엇보다 먼저 효율성과 소비문화를 반성하는 화두로 읽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능력있고 편안한 것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을 반성하는 경구로 읽히기를 바랍니다. 노르웨이의 어부들은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를 저장하는 탱크 속에 반드시 천적인 메기를 넣는 것이 관습이라고 합니다. 천적을 만난 불편함이 정어리를 살아있게 한다는 것이지요. <무일>편을 통해 불편함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씹어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P76 물론 도시 유목민이 정보화 사회의 미래상이라는 전망이 없지 않습니다. 농본 문화에서 유목 문화로 전환되는 과정이 현대라는 것이지요. 노인 퇴출은 그러한 전환기의 부수적인 현상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유목 문화에서는 과거의 경험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부단히 새로운 초원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노인들의 경험문화는 주변화되고 청년들의 전위문화가 주류로 자리 잡게 되다는 것이지요.

 

P77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화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권력은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12)

 

P78 『초사』는 한나라 유향(BC. 77~6)이 굴원, 송옥 등의 작품을 모아 낸 책을 말합니다.

 

『시경』이 북방 중원의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한 4언체 운문인데 비하여 『초사』는 이러한 북방 4언체를 혁신한 양자강 유역의 남방문학입니다. (중략) 『시경』이 사실적이고 노동과 삶과 보행의 정서로 이루어진 시 세계임에 비하여 『초사』의 세계는 자유분방, 정열, 상상력, 신비, 환상 등 낭만적이고 서정적입니다.

 

『시경』이 집단 창작과 전승을 통하여 만들어졌음에 비하여 『초사』에서는 시인의 이름이 처음 등장합니다. 굴원이 중국 시인의 대표인 것도 처음으로 그 이름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P81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의 먼지를 떤 다음 갓을 쓰는 법이며 몸을 씻은 사람은 옷의 먼지를 떤 다음 옷을 입는 법이라고 선언합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P82 나는 굴원의 이 시를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라는 의미로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모순과 갈등은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주제인지도 모릅니다. 이 오래된 주제에 대한 굴원의 결론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가장 정갈하게 간수해야 하는 갓끈을 씻고 반대로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 것입니다. 비타협적 엘리트주의와 현실 타협주의를 다같이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획일적 대응을 피하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서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13)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좌경적이라느 의미는 신목자 필탄관 新沐者 必彈冠 신욕자 필진의 新浴者 必振衣처럼 비타협적인 원칙의 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경적이라는 의미는 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는 발을 씻는다는 현실주의와 대중노선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P83 낭만주의가 대체로 부정적 의미로 인식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을 구속하는 억압에 대한 원천적 저항과 비판 의식을 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응 방식의 개인주의적 성격 때문입니다.

 

3 『주역』의 관계론

 

P87 판단형식 또는 사고의 틀이란 쉽게 이야기한다면 물을 긷는 그릇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바라로부터 물을 긷는 것입니다.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름의 인식 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P89 우리가 보통 점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상, , 으로 나눕니다. 상은 관상, 수상과 같이 운명 지어진 자신의 일생을 미리 보려는 것이며, 명은 사주팔자와 같이 자기가 타고난 천명, 운명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상과 명이 이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미리 엿보려는 것임에 반하여 점은 선택판단에 관한 것입니다. 이미 결정된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판단이 어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 찾는 것이 점입니다.

 

P90 의난이 있을 경우 임금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묻고, 그 다음 조정 대신에게 묻고 그 다음 백성들에게 묻는다 하였습니다. 그래도 의난이 풀리지 않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비로서 복서에 묻는다, 즉 점을 친다고 하였습니다. (중략) 그래서 점괘와 백성들의 의견과 조정 대신 그리고 임금의 뜻이 일치하는 경우를 대동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대학의 축제인 대동제가 바로 여기서 연유하는 것이지요.

 

P91 공자 이전 2500년은 점복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 이후의 시기는 『주역』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시대입니다. 은 원본 텍스트이고, 은 그것의 해설입니다. 공자학파가 경에 대한 해설을 이루어 놓기 이전에 『주역』은 복서미신의 책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해설의 의미는 대단히 큽니다. 그것이 바로 텍스트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이 철학적 해석이 곧 사물과 사물의 변화를 바라보는 판단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주역』의 경은 8, 64괘와 괘사, 효사의 네 가지입니다. 괘와 효는 고대 문자이며, 괘사와 효사는 점을 친 기록이라고 합니다. 8괘를 소성괘라고 하고 이 소성괘를 두 개씩 겹쳐서 만든 64개의 괘를 대성괘라고 합니다.

 

『주역』의 은 괘사와 효사에 관한 10개의 해설문을 말합니다. 경에 달린 10개의 날개란 뜻으로 십익이라 합니다. 공자의 저작이라고 전하지만 대체로 훨씬 후대인 진한 초기의 공동 창작으로 추측됩니다.

 

P92 『주역』을 읽고자 할 때는 십익을 먼저 익는 것이 좋습니다. 십익은 해설서기 때문에 『주역』의 전체 구성과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P93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8괘를 낳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8괘 중에서 태극기에 있는 네 개의 괘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8괘를 구성하는 세 개의 음양을 나타내는 부호를 효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효과 괘를 중심으로 『주역』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P95 우리들의 단순한 인식 구조를 반성하자는 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이러한 우리의 인식 구조에 비하여 『주역』의 판단 형식은 객관적 세계의 연관성을 훨씬 더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려는 것이지요.

 

P96 양효()는 하늘 또는 남자를 나타내고 음효(--)는 땅 또는 여자를 나타냅니다. 물론 여러 가지 다른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세 개의 효로 한 개의 괘를 만듭니다. 세 개의 효는 천지인의 삼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세 개의 효로 이루어진 괘를 소성괘라 하고, 소성괘 두 개가 대성괘가 된다는 것은 이미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대성괘는 여섯 개의 효로 이루어집니다. 효의 명칭은 아래에서부터 초효, 이효, 삼효, 사효, 오효, 상효로 읽습니다. 양효를 , 음효를 으로 읽습니다. 그리고 이효가 음효인 경우에는 이음이라 읽지 않고 이륙이라 읽습니다.

 

P100 『주역』의 독법에서 가장 먼저 설명해야 하는 것이 입니다. 자리입니다. 어떤 효의 길흉화복을 판단할 때 그 효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효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를 보고 판단합니다.

 

P101 개인에게 있어서 그 자리가 갖는 의미는 운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됩니다. 제 한 몸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트리고 나아가서는 일을 그르치게 마련입니다.

 

나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 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겠지요.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밖에 없습니다.14)

è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나 같은 사람들이 마음에 담아야 할 이야기인 것 같다. 나 역시 항상 내 자리가 내 능력보다 작다고 생각했고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 안간힘을 썼었다. 그러다 보니 참으로 힘이 들었다. 결국 지쳐버리고 말았다.

 

P102 자기의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양학에서는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체의 능력을 개체 그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 딛고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하는 생각이 바로 『주역』의 사상입니다.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의 길흉화목이 그 사물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역』사상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득위와 실위의 개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서구의 존재론과는 다른 동양학의 관계론입니다.15)

 

『주역』에서는 이 가운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중략) 산전수전을 두루 겪으신 노인들은 대체로 모나지 않고, 나서지 않고, 그저 중간만 지키기를 충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P103 내가 중간을 선호하는 이유는 앞과 뒤에 많은 사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망의 적이 되고 있는 선두는 물론 스타의 자리입니다. 최고의 자리이지요. 그 자리는 모든 영광이 머리 위에 쏟아질 것같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매우 힘든 자리입니다. 경쟁으로 인한 긴장이 가장 첨예하게 걸리는 곳이 선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두가 전체 국면을 주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선두는 겨우 자기 한 몸 간수에 여력이 있을 수 없는 고단한 처지입니다.16)

è  직장 다닐 때 소위 선두그룹이 있었다. 어디서나 주목 받고 어디서나 앞자리에 서는 사람들. 생각해보면 그들의 결말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혹자는 자만해 실패하기도 했고, 혹자는 지쳐 나가떨어지기도 했고, 혹자는 사건에 연루되어 타의로 인해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선두는 고달픈 자리이다.

 

아무튼 『주역』에서는 중간을 매우 좋은 자리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가장 힘있는 자리로 칩니다.

 

P106 이나 처럼 이미 결정되어 있는 운명을 엿보려는 것이 아니라 의난을 당하여 선택과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역』이 복서라고 하더라도 단순한 미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점이라고 하는 것 역시 그 본질에 있어서는 어떤 현상과 상황을 우리들의 일상적 관점과는 다른 논리로 재해석하고 조명하는 인식 체계입니다. 그것 역시 사물과 변화에 대한 판단 형식의 일종이며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철학적 구조를 띠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P107 『주역』은 글자 그대로 주나라 역사 경험의 총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나라 역시 그 이전의 여러 문화 사상의 총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역』과 주나라의 문화 사상은 이후 중국 문화와 동양적 사고의 기본 틀이 되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공자는 『주역』을 열심히 읽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 하였습니다. 죽간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은 것으로 유명하지요.

 

P110 경복궁 교대전은 바로 『주역』의 지천태괘에서 이름을 딴 것입니다. 천지교태입니다. 전과 지가 서로 교통하여 태평하다는 뜻입니다.

 

P113 무평불피无平不陂 무왕불복无往不復은 어려움을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한 번 겪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어느 한 단계를 마무리하는 시점에는 그에 따른 어려움이 반드시 있는 법입니다. 따라서 그럴수록 마음을 곧게 가지고 최초의 뜻, 즉 믿음을 회의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17)

 

P119 나아가기 보다는 물러나 강호에 묻히는 것이 난세를 살아온 사람들의 처세였습니다.

 

P123 가정이 어려울 때 좋은 아내가 생각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 충신을 분별할 수 있으며, 세찬 바람이 불면 어떤 풀이 곧은 풀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P124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잎사귀를 떨고 나목으로 서는 일입니다. 그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가지를 직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거품을 걷어내고 화려한 의상을 벗었을 때 드러나는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18)

è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모든 가식을 벗고 알몸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가을 나무가 낙엽을 떨어뜨리고 나목으로 추풍 속에 서 있듯이 우리 시대의 모든 허위의식을 떨어내고 우리의 실상을 대면하는 것에서부터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엽락이분본葉落而糞本 입은 떨어져 뿌리의 거름이 됩니다. 우리 사회의 뿌리를 튼튼히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자립성, 정치적 주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은 현실을 직시하는 일에서부터 키워내는 것임을 박괘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P126 동양사상에서는 의 가치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주장이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 중에 음과 양을 합하여 지칭할 때 양음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음양이라 하여 음을 앞에 세우는 것도 그러한 예의 한 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동양 사항은 기본적으로 땅의 사상이며 모성의 문화라는 것이지요.

 

P128 미완성이 보편적 상황이라면 완성이나 달성이란 개념은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성이나 목표가 관념적인 것이라면 남는 것은 결국 과정이며 과정의 연속일 뿐입니다.

 

P129 속도와 효율성, 이것은 자연의 원리가 아닙니다. 한 마디로 자본의 논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도로의 속성을 반성하고 길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로는 고속일수록 좋습니다. 오로지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도로의 개념입니다. 짧을수록 좋고, 궁극적으로는 제로(0)가 되면 자기 목적성에 최적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순입니다. ‘은 도로와 다릅니다. 길은 길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길을 코스모스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란히 걷는 동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터이기도 하고, 자기 발견의 계기이고 하고, 자기를 남기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18)

 

 목표의 올바름을 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라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올바른 때를 일컫어 진선진미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은 서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선하지 안으면 진미할 수 없고 진미하지 않으면 진선할 수 없는 법입니다. 목적과 수단은 통일되어 있습니다. 목적은 높은 단계의 수단이며 수단은 낮은 단계의 목적입니다.

 

나는 이 미제괘에서 우리들의 삶과 사회의 메커니즘을 다시 생각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바쁘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동이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될 뿐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소외되어 있는 현실을 생각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면 우리는 생산물의 분배에 주목하기보다는 생산 과정 그 자체를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는 과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P130 『주역』 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단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른 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질적 변화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열린 상황은 답보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워진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라고 할 수 있습니다.19)

è  결국은 질적 변화란 양적 축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책을 쓰려면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써야 질적 도약이 가능하고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는 뜻이리라.

 

P131 『주역』에서는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철학적 구도 이외에 매우 현실적이고 윤리적인 사상이 일관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절제사상입니다. 일례로 건위천괘의 상구 효사에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즉 하늘 끝까지 날아오른 용은 후회한다는 경계입니다. 초로 만들어진 날개를 달고 있는 이카루스가 너무 높이 날아오르자 태양열에 녹아서 추락하는 것과 같습니다.20)

 

『주역』은 변화의 철학이라고 했습니다. 변화를 서전에 읽어냄으로써 대응할 수 있고, 또 변화 그 자체를 조직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P132 『주역』독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절제와 겸손이라는 것이 곧 관계론의 대단히 높은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을 배려한 겸손함 그것이 바로 관계론의 최고 형태라는 것이지요.

 

4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P139 춘추전국시대는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급격한 사회 경제적 변동기에 부국강병이라는 국가적 정책 목표 아래 군사력, 경제력, 사회 조직에 이르기까지 국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모든 노력이 경쟁적으로 경주되는 시기입니다. 패관 경쟁을 위한 정치 기구의 확충과 전문적 지식에 대한 요구가 커짐에 따라 정신노동의 상품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 이른바 제자백가의 시대이고 백화제방의 시대입니다. 공자의 사설 학숙은 이러한 수요에 부응한 관리 소개소의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41 고전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라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P144 증자가 말하기를, 자기는 매일 세 가지(또는 여러 번)를 반성한다는 내용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하되 그것이 진심이었는가를 반성하고, 벗과 사귐에 있어서 불신 받을 일이 있지나 않았는지 반성한다는 것이지요.

 

P149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구절은 어디까지나 진보적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미래를 하나의 통일체로 인식하고 온고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지향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P153 행정명령으로 백성을 이끌어가려고 하거나 형별로써 질서를 바로 세우려 한다면 백성들은 그러한 규제를 간섭과 외압으로 인식하고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될 수 있으면 처벌받지 않으려고 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부정을 저지르거나 처벌을 받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와 반대로 으로 이끌고 로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P154 사회의 지배 계층은 예로 다스리고 피지배 계층은 형으로 다스리는 것이 주나라 이래의 사법 원칙이었습니다.

 

예와 형의 가장 큰 차이는 그것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의 차이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형은 최소한의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에 비하여 예는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세우려는 우회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관계 그 자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는 입장이지요. 사회적 질서는 이 안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59 ‘아름다움이란 우리말의 뜻은 알 만하다는 숙지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름다움의 반대가 아름다움입니다. 오래되고, 잘 아는 것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P163 따라서 군자화이부동君子和易不而同의 의미는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의 의미는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화의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면서 나아가 공존과 평화의 원리입니다. –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21)

è  이 구절을 읽으며 내가 완벽한 소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다른 사람은 인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과도 공존하지 못했다. 과거의, 아닌 현재의 나를 거울에 비추어 봐야겠다.

 

P165 의 논리는 자기와 다른 가치를 존중합니다. 타자를 흡수하고 지배함으로써 자기를 강화하려는 존재론적 의지를 갖지 않습니다. 타자란 없으며 모든 타자와 대상은 사실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입니다. 문명과 문명, 국가와 국가 간의 모든 차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러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됨으로써 비로소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며 나아가 진정한 문화의 질적 발전이 가능한 것입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가 바로 이러한 논리라고 생각하지요.

 

P166 『백범일지』에는 백범 선생이 『상서』의 한 구절인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 신호불여심호身好不如心好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이 글의 뜻은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것으로 미모보다는 건강이 더 중요하고 건강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P171 개인의 능력은 그가 맺고 있는 인간 관계에 있으며 이 인간관계는 신뢰에 의하여 지탱되는 것이지요. 은 그 글자의 구성에서 보듯이 +의 회의로서 그 말을 신뢰함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 까닭은 그것을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서라고 합니다. 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라고 풀이되고 있지만 은 원래 에게 고하는 자기 맹세이므로 이란 에 대한 맹세로 보기도 합니다. 사람들 간의 믿음이라는 뜻은 후에 파생되었다고 보지요. 그만큼 의 의미는 엄격한 것이지요.22)

 

P172 『논어』에서 에 대한 공자의 답변은 여러 가지 입니다. 묻는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대답을 하고 있습니디. 안연에게는 인이란 자기를 극복하고 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답변하였고 중궁에게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하는가 하면, 사마우에게는 인이란 말을 더듬는 것이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P175 는 함께 이야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애정 없는 타자와 관계없는 대상에 대하여 알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진정한 의미의 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인식의 혼란을 가져오는 엄청난 정보의 야적은 단지 인식의 혼란에 그치지 않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폄하하게 할 뿐입니다.

 

P181 이 보편적인 것임에 비하여 는 특수한 것입니다. 따라서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卽罔의 의미는 현실적 조건이 사상된 보편주의적 이론은 현실에 어둡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卽殆는 특수한 경험적 지식을 보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 됩니다.

 

P188 욕심이 없어야 겸손할 수 있으며 욕심이 없어야 지혜가 밝아질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갈공명의 명석한 판단은 無私에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하를 도모하려는 사사로운 욕심이 없음은 물론 윗사람이 되려고 하는 욕심마저도 없었지요. 이처럼 무사하기 때문에 공평할 수 있고 공평하기 때문에 이치가 밝아질 수 있는 법입니다.

 

P189 강의 내용을 이해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강의 내용에 대한 선생 자신의 이해 정도가 너무나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자리입니다.

 

P191 마을의 선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을의 불선한 사람들 또한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에 필시 苟合이 있으며, 반대로 마을의 불선한 사람들이 미워하고 마을의 선한 사람들 또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이 없다 하였습니다.

 

구합은 정견 없이 남을 추수함이며, 무실은 선자의 편이든 불선자의 편이든 자기 입장을 갖지 못함에서 연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P193 『논어』는 그러한 담론 중에서 사회의 본질을 인간관계에 두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든 이건 사회는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가 근본이라는 德治의 논리입니다. 바로 이 점이 다른 사상에 비하여 『논어』가 갖는 진보성의 근거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P194 바탕이 문채보다 하면 거칠고 문채가 바탕보다 승하면 사치스럽다. 형식과 내용이 고루 어울린 후라야 군자이다.

 

P195 서예에 있어서의 내용과 형식의 문제입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씨체를 민체다, 연대체다, 어깨동무체다, 심지어 유배체라고도 합니다만 나로서는 매우 고민한 글씨체입니다.

 

P196 궁체는 궁중에서 궁녀들이 쓰던 글씨체에서 유래합니다. 여러분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귀족적 형식미가 추구되고 있습니다. 정연하고 하체가 연약하면서 전체적으로 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P198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계를 당구공과 당구공의 만남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짧은 만남 그리고 한 점에서의 만남입니다. 만남이라고 하기 어려운 만남입니다. 부딪침입니다.

 

P199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23)

 

지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임에 비하여 낙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과 노동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의 어떤 멋진 덩어리(일감)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무엇을 궁리해가며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그러한 것인데 즐거움은 놀이이고 궁리는 학습이며 만들어내는 행위는 노동이 되는 것이지요.

 

P200 지를 대상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면 호는 대상과 주체 간의 관계에 관한 이해입니다. 그에 비하여 낙은 대상과 주체가 혼연히 일체화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가 분석적인 것이라면 호는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낙은 주체와 대상이 원융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낙은 어떤 판단 형식이라기 보다는 질서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P201 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仁者는 산을 좋아한다. 지자는 동적이고 인자는 정적이다. 지자는 즐겁게 살고 인자는 오래 산다.

 

P202 “하늘을 망라하는 그물은 성글기 그지 없지만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다인자는 최대한의 관계성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맹자의 의

 

P212 많은 연구자들의 일치된 견해는 공자의 이 맹자에 의해서 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P213 인이 개인적 관점에서 규정한 인간관계의 원리라면 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P215 『맹자』에는 농가, 병가, 종횡가 등 당시의 다른 많은 사상이 소개되고, 또 비판되고 있기 때문에 제자백가의 사상을 가장 폭넓게 접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단 한 권의 고전을 택하려고 하는 경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단연 『맹자』가 천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P217 임금을 바꿀 수 있다는 맹자의 논리는 이를 테면 에 의한 혁명의 논리입니다. 맹자의 민본 사상의 핵심입니다.

 

P229 그 사람의 性善이란 어떤 경우에나 변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일에 따라 달리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공자의 성상근性相近 습상원習相遠과 같은 의미입니다. 본성은 서로 차이가 없지만 습관에 따라 차츰 멀어진다고 하고 있습니다.24)

 

P230 공자의 里人爲美를 인용하여 어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진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이지요. 里人이란 하는 것이라고 직역했습니다만 인을 삶 속에서 실천한다는 의미입니다. 맹자의 성선설이 인간의 본질을 구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을 앞에서 이야기했는데 이 구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맹자는 그 사람의 사상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본성도 사회적 입장에 따라서 재구성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성을 어떤 순수한 본질로 이해하는 것은 관념적인 것이 아닐 수 없지요. 선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사회성을 띠고 있는 것이지요.

 

P231 인이라는 것은 활 쏘는 것과 같다. 활을 쏠 때는 자세를 바르게 한 후에 쏘는 법이다. 화실이 과녁에 맞지 않으면 자기를 이긴 자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과녁에 맞지 않은 까닭을) 도리어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25)

è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을 때 자신이 아닌 외부적 요인을 찾아 변명을 늘어놓는 나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문구인 것 같다.

 

P232 부중했을 경우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反求諸己의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삶의 자세와 철학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실패에 직면하여 그 실패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가 아니면 외부에서 찾는가의 차이는 대단히 큽니다. 이것은 모든 운동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가 아니면 내부에서 찾는가 하는 세계관의 차이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세계는 끊임없는 운동의 실체이며, 그 운동의 원인이 내부에 있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철학적 인식 문제입니다.

 

P233 삶의 자세와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자기 실수도 그 원인을 바깥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바깥이란 남이기도 합니다.

 

P237 가장 핵심적인 것은 본다는 사실입니다. 본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입니다. 보고, 만나고, 서로 안다는 것입니다. 관계를 의미합니다.

 

P243 日月의 밝은 빛은 작은 틈새도 남김없이 비추는 법이며,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군자는 도에 뜻을 둔 이상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P245 일월이 모든 틈새를 다 비춘다는 것은 한 점 숨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도 우리가 특히 명심해야 할 좌우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는 학과라고 할 때의 그 과입니다. 원래 의미는 구덩이입니다.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지요. 건너뛰는 법이 없습니다. 건너 뛸 수도 없는 것이지요. 첩경에 연연하지 말고 우직하게 정도를 고집하라는 뜻입니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고 나면 그제야 기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원칙에 충실하라고 주문하기도 합니다. 그 동안 건너 뛰었다는 뜻이지요.26)

 

6 노자의 도와 자연

 

P253 중국 사상은 지배 담론인 유가 사상과 비판 담론인 노장 사상이 두 개의 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사회든 지배 담론과 비판 담론이 일정한 길항 구도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유가와 노장이라는 두 축은 중국 사상사의 오래된 심층 구조라고 할 수 있으며 『노자』는 그 두 개의 축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사상입니다. 앞으로 예시문을 통하여 확인되리라고 생각하지만 동양 사상의 정체성은 『논어』보다는 오히려 『노자』에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가 사상은 서구 사상과 마찬가지로 의 사상입니다. 인문 세계의 창조와 지속적인 성장이 진의 내용이 됩니다. 인문주의, 인간주의, 인간중심주의라 할 수 있지요. 그에 비하여 노자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입니다. 노자의 는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이란 문명에 대한 야만의 개념이 아님은 물론이고 산천과 같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노자의 자연은 전지인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하는 가장 큰 범주의 개념입니다.

 

P254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의 논리가 그것이지요. 여기서 법은 본받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 그리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체계입니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요.

 

P258 『노자』는 81 5,200여 자에 이릅니다. 상편은 로 시작하고 하편은 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도덕경』이라 불리게 됩니다. 주나라가 쇠망하자 노자는 주나라를 떠납니다. 이때 관윤이라는 사람이 노자를 알아보고 글을 청하자 노자가 이 『도덕경』5을 지어줌으로써 후세에 남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不言의 가르침을 설파한 노자가 을 책으로 남겼다는 것을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P266 제갈공명과 사마중달이 오장원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갈공명이 식소사번食少事煩해서 건강이 극도로 나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마중달은 제갈공명이 죽기만을 기다리며 접전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별을 관측하던 태사관으로부터 장수성이 떨어졌다는 보고를 받은 사마중달은 제갈공명이 드디어 죽었다고 믿고 공격을 개시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죽으면 사마중달이 공격해올 것을 예견한 제갈공명은 만일 사마중달이 쳐들어오거든 자신의 등신인형을 만들어 수레에 싣고 나가라는 유언을 남겼지요. 학창의를 입고 손에는 학우선을 들고 수레 위에 단정히 앉아 있는 제갈공명을 본 사마중달은 공명의 계략에 속은 것이라 여기고 혼비백산해서 달아난 이야기입니다. 죽은 공명이 살아 있는 중달을 쫓은 고사입니다.27)

è  이 이야기를 읽으며 제갈공명의 고달픔이 느껴졌다. 적게 먹고 바쁘게 일하느라 지칠대로 지쳤을 텐데 죽은 후에도 계략을 마련하느라 얼마나 힘겨웠을고.

 

P264 노자 철학에 있어서의 는 제로(0)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의식을 초월한다는 의미의 무입니다. 그런 점에서 무의 의미는 無名과 다르지 않습니다. 有名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인간의 인식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지요.

 

P269 도의 세계는 언어를 초월하는 세계임은 물론이며, 인간의 사유를 초월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제1장에서 노자는 개념적 사유, 즉 이름을 붙이는 것은 부분에 대한 인식이며 가식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대한 인식일 뿐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드러난 현상의 배후에 가 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와 유는 동체이며 통일체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P270 모든 사유는 개념적 사유라는 것이 서양의 논리지요. 개념이 없으면 사유가 불가능한 것이지요. 칸트의 인식론에 의하면 모든 현상은 인식 주체인 인간의 선험적 인식 구조에 의하여 구성될 뿐이지요.

 

『노자』의 제1장은 무와 휴가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관계론의 선언입니다. 무와 유는 그것에 접근하는 접근로에 따라서 구분될 수 있는 개념상의 차이일 뿐입니다. 따라서 노자의 무는 제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을 초월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무입니다. 우리의 인식에 있어서 무라는 것이지요. 도는 천지 만물의 생성과변화 그 자체를 의미하며 그런 의미에서 근원적 법칙성입니다.

 

P271 노자 철학을 물의 철학이라고 하는 까닭은 보이는 것 주에서 도에 가장 가까운 것이 물이기 때문에 물의 비유로써 도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P272 무위란 作爲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개입하거나 자연적인 질서를 깨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주의는 가치판단의 상대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판단이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작위이고 그것이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지요.28)

 

P276 『노자』 제2장은 인식론이며 실천론입니다. 그 인식에 있어서 분별지를 반성하고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마 선악의 구분처럼 천박한 인식은 없다고 합니다. OX식의 이분법적 사고도 저급한 것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기존의 저급한 인식을 반성하자는 것이지요.

 

P277 노자는 이 장에서, 먼저 잘못된 인식을 반성한 다음 올바른 방식으로 실천하기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말없이 실천하고, 자랑하지 말고, 개입하지 말고, 유유하고 자연스럽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노자 실천론의 요지입니다. 그렇게 할 때만이 그 성과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춘추전국시대를 지배하는 협소한 인식을 반성하고 조급한 실천을 지양하자는 것이지요. 열린 마음과 유장한 걸음걸이로 대응할 것은 주문하고 있는 것이지요.

 

P280 노자는 백성들이 무지무욕하게 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지무욕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하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사실 나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만 지금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소비가 미덕이라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공리입니다. 절약이 미덕이 아니고 소비가 미덕이라니. 끝없는 확대 재생산과 대량 소비의 악순환이 자본 운동의 본질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입니다.

 

P281 노자는 또 智者들로 하여금 함부로 무엇을 벌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자들이 벌이는 일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자가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일들을 지자가 저지르고 있는 것이지요. 을 숭상하고, 難得之貨를 귀하게 여기게 하고, 욕망 그 자체를 생산해내고, 심지를 날카롭게 하는 등 작위적인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지자들이지요.29)

 

P282 무리하게 하려는 자는 실패하게 마련이며 잡으려 하는 자는 잃어버린다는 것이 노자의 철학입니다. 자연의 법칙을 존중하는 무위의 방식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옷처럼 만물을 감사 기르면서도 주인 노릇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할 때 비로소 혼란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천하는 무사로서 얻을 수 있으며, 감히 천하를 얻지 않음으로써 천하를 다스린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 굽듯이 해야 한다”30)

 

P283 유가에서는 이 제3장을 들어 노자 사상은 우민사항이며 도피 사상이라고 비판합니다.

 

『노자』 독법의 기본은 무위입니다.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만 무위는 無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무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나 가치가 아니라 방법론입니다. 실천의 방식입니다. 그것이 목표로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난세의 극복입니다. 혼란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장은 은둔과 피세를 피력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적극 의지의 표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開世의 사상이라는 것이지요. 다만 그 방식이 유원하고 근본을 경영하는 것이란 점이 다를 뿐입니다.

 

P284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다툰다는 것은 어쨌든 무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목표 설정에 무리가 있거나 아니면 그 결로의 선택이나 진행 방식에 무리가 있는 경우에 다투게 됩니다. 주체적 역량이 미흡하거나 객관적 조건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과도한 목표를 추구하는 경우네는 그 진행 과정이 순조롭지 못하고 당연히 다투는 형식이 됩니다.

 

『손자병법』에 전국위상 파국차지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라를 깨트려서 이기는 것은 최선이 못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전국, 즉 나라를 온전히 하여 취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뜻입니다.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작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31)

 

P285 『노자』의 마지막 장인 제81장의 마지막 구가 천지도天地道 이이불해利而不害 성인지도聖人之道 위이부쟁爲而不爭입니다. “천지의 도는 이로울지언정 해롭지 않고, 성인의 도는 일하되 다투는 법이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물은 결코 다투는 법이 없습니다. 산이 가로 막으면 멀리 돌아가서 갑니다. 바위를 만나면 몸을 나누어 비켜갑니다. 곡류하기도 하고 割水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가파른 계곡을 만나 숨 가쁘게 달리기도 하고 아스라한 절벽을 만나면 용사처럼 뛰어내리기도 합니다. 깊은 분지를 만나면 그 큰 공간을 차곡차곡 남김없이 채운 다음 뒷물을 기다려 비로소 나아갑니다. 너른 평지를 만나면 거울 같은 수평을 이루어 유유히 하늘을 담고 구름을 보내기도 합니다.

è  물과 같이 살아야겠다. 지름길을 찾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P289 낮기 때문에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바다입니다.

 

P292 서른 개의 바퀴살이 모이는 바퀴통은 그 속이 비어 있음으로 해서 수레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 비어 있음으로 해서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문과 창문을 내어 방을 만드는데 비어 있음으로 해서 방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따라서 가 이로운 것은 이 되기 때문이다.32)

 

P293 의 배후로서의 를 드러내는 것이 노자의 철학이고 이 장의 의미입니다. 현상을 있게 하는 본질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P296 ‘기귀언 공성사수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귀언은 물론 말을 아끼는 것입니다. 공성사수, 즉 일이 성취되더라도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기가 이룩한 일을 생색내지 않는 것입니다.

 

P298 자연은 그 자체로서 완성된 것이며 다른 외부를 가지지 않은 존재입니다. 독립적 존재입니다.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상정할 수 없는 그야말로 항상적 존재입니다. 최후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최초의 존재입니다. 한마다로 최대한의 개념이며 가장 안정적인 질서가 바로 노자의 자연입니다.

 

P299 가장 완전한 것은 마치 이지러진 것 같다. 그래서 사용하더라도 해지지 않는다. 가득 찬 것은 마치 비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 퍼내더라도 다함이 없다. 가장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마치 서툰 듯하며, 가장 잘하는 말은 마치 더듬는 듯하다. 고요함은 조급함을 이기고, 추위는 더위를 이기는 법이다. 말고 고요하이 천하의 올바름이다.

 

P301 서예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는 還童이라고 합니디. 어린이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일체의 교와 형식을 뛰어넘는 것이지요. 까지도 미련없이 버리는 경지입니다.

 

P304 노자 사상을 몇 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그것의 핵심은 보다는 , 滿보다는 , 보다는 졸, 보다는 자, 그리고 보다는 를 더 높은 가치로 보는 데 있습니다.

 

P305 노자의 철학은 귀본의 철학입니다. 이며 자연입니다. (중략)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것이 노자의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7 장자의 소요

 

P309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는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자』 외편 <추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대목이 바로 우물 안 개구리의 출전입니다.

 

P310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있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입니다. 이른바 장자의 자유주의 철학입니다. 개인을 지도, 감독, 보호하려는 일체의 행정적 또는 이념적 규제를 인위적 재앙으로 파악하였습니다.

 

P311 장자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 『장자』 제1 <소요유>입니다. ‘소요유는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입니다. 소요는 보행과는 달리 목적지가 없습니다. 소요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하릴없이 거니는 것이지요.

 

장자의 소요유는 궁극적 자유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입니다.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소요유의 의미이고 나아가 장자 사상의 핵심입니다.33) 사회적 규범 밖에서 자유를 추구하던 일민들의 경물중생, 즉 개인주의적인 생명 존중론이 양주학파에서 크게 고조되었는데 이 양주학파의 사상을 철학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장자』라고 합니다.

 

P313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예미도중의 일화는 장자의 그러한 면모를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장자가 낚시를 하고 있을 때, 초의 위왕이 대부 두 사람을 보내어 재상을 삼으려는 뜻을 전했습니다. 장자는 낚시대를 드리운 채 돌아보지도 않고 웃으며 사신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듣기로 초나라에는 신령스런 거북이 있는데 죽은 지 이미 3천년이나 되었다 합니다. 임금은 그것을 비단으로 싸고 상자에 넣어 묘당에 보관한다고 한다. 당신이 그 거북의 입장이라면, 죽어서 뼈만 남기어 존귀하게 되고 싶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겠소?”하며 돌려보냈다는 일화입니다.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살겠다는 것이 바로 장자입니다. 부정적이기는커녕 대단히 낙천적인 세계관을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P314 『노자』는 사설을 최소한으로 하는 엄숙주의가 기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내용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선언적 명제에 국한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장자』는 만연체를 기조로 하면서 허황하기 짝이 없는 가공과 전설 그리고 해학과 풍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P315 장자는 노자의 상대주의 철학 사상에 주목하고 이를 계승하고 있지만 이를 심화해가는 과정에서 노자로부터 결정적으로 멀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주의적인 세계, 정신의 자유;로 옮겨갔다는 것이지요.

 

P317 세상의 모든 존재가 부분이고 찰나라는 것을 드러내는 근본주의적 관점이 장자 사상의 본령입니다.

 

장자는 이 상식적 세계와 세속적 가치를 일갈하고 일소하고 초월하고 있습니다. 장자의 이러한 초월적 시각은 대단히 귀중한 것입니다.

 

P318 신인, 至人은 『장자』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한마디로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無己, 無功, 無名의 경지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 단계가 장자의 이른바 절대자유의 경지입니다.

 

마르크스 이론의 가장 큰 공헌을 자본주의 체제를 과도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역사적 관점이라고 합니다.

 

P319 모든 투쟁은 사상 투쟁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사상 투쟁으로 끝나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우리들이 갇혀 있는 우물을 깨닫는 것이 모든 실천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장자』가 우리 시대에 갖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어떤 대안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자』가 우리들에게 펼쳐 보이는 드넓은 스케일과 드높은 관점은 내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한 스케일과 관점은 바로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깨달음은 그 자체로서 귀중한 창조적 공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바라보는 것이지요.

 

P321 사물은 어느 것이나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동시에 이것 아닌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대적 과점에 서면 보지 못하고 주관적 관점에서만 본다. 그래서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은 저것으로부터 말미암는다고 하여 이것을(혜시는) ‘저것과 이것의 모순 이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생과 사, 사와 생 그기로 가와 불가, 불가와 가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 조건이 되는) 모순 관계에 있다. 가가 있기에 불가가 있고 불가가 있기에 가가 있는 법이다. 그러기에 성인은 특정한 입장에 서지 않고 하늘에 비추어 본다고 하는 것도 역시 이 때문이다.

 

P325 ‘포정해우의 이야기는 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에 관한 이야기임은 물론입니다. 장자 사상의 뛰어난 문학적 표현으로 평가됩니다.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는 단계가 아니라 그것을 체득하고 있는 경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논어』의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와 통하는 경지라 할 수 있지요.

 

P325 그렇기 때문에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다고 하더라도 늘여주면 우환이 되고, 학의 다리가 비록 길다고 하더라도 자르면 아픔이 된다.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은 잘라서는 안 되며 본래 짧은 것은 늘여서도 안 된다. 그런다고 해서 우환이 없어질 까닭이 없다. 생각건대 인의가 사람의 본성일리가 있겠는가! 저 인을 갖춘 자들이 얼마나 근심이 많겠는가.34)

 

P327 인간의 상대적인 행복은 본성의 자유로운 발휘로써 얻을 수 있지만 절대적 행복은 사물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절대적 행복과 절대적 자유는 사물의 필연성을 이해하여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장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의 필연성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즉 의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과의 합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자의 이리화정입니다. 도의 이치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 합일하여 소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도를 깨닫는 것은 이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지요. 정서적 공감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지요.35)

è  항상 무엇이든 머리로 이해되지 않으면 틀렸다 배척해 버리는 나 같은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구절인 것 같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한 이해가 못 된다고 해야 합니다. 정서적 공감이 없다면 그것은 아직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상태입니다. 장자의 이리화정은 가슴으로 느끼는 단계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머리보다는 가슴이 먼저 알고 있습니다. 교실과 책과 시험으로 채워진 학교 시절을 끝내고, 싱싱한 삶의 실체들과 부딪치며 살아가기 시작하면 이 말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으리라고 생각합니다.

 

P329 기계의 기능이 있는 한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되고,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네.

 

P331 일과 놀이와 학습이 통일된 형태가 가장 바람직한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계는 바로 이 통일성을 깨트리는 것이지요. 노동은 그 자체가 삶입니다. 삶의 지출이 노동이지요. ‘지출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나 좀 이상합니다. 삶의 실현이라고 하지요. 지출보다는 실현이 더 적절한 어휘라 할 수 있습니다. 노동이 삶 그 자체, 삶의 실현임에도 불구하고 기계로 말미암아 노동이 다른 목적의 수단으로 전락되는 것이지요. 노동을 그 본연의 지위로 끌어내리는 일을 기계가 하지요.

 

러다이트 운동 기계가 사람을 추방한 것이 아니라 기계의 채용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입니다. (중략) 기계의 효율성이 노동 시간의 단축과 노동 경감으로 이어지지 않고 노동자의 해고 즉 실업으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P332 장자의 체계에 있어서 노동은 삶이며, 삶은 그 자체가 예술이 되어야 하고, 도가 되어야 하고, 도와 함께 소요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P340 마음을 만물의 근원인 에 노닐게 함으로써 만물을 부리되 만물에 얽매이지 않아야 화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입니다.

 

P343 빈 배로 흘러간다는 것이 바로 소요유입니다. 빈 배는 목적지가 있을 리 없습니다.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보행이 아닙니다. 삶이란 삶 그 자체로서 최고의 것입니다. 삶이 어떤 다른 목적의 수단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 장자는 자유의지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관념적이라거나, 사회적 의미가 박약하다거나, 실천적 의미가 제거되어 있다는 비판은 『장자』를 잘못 읽거나 좁게 읽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디.36)

 

P347 모든 사물은 이이일異而一의 관계, 다르면서도 같은모순과 통일의 관계에 있는 것이지요. 상호 침투하는 것이지요. 장자의 나비 꿈은 바로 이러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349 혼돈은 이러한 분석과 분별 이전의 통체적 세계를 의미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혼돈이 죽어버린다는 것은 이러한 진정한 세계상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P351 지식이란 한마디로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입니다. 그 명의 실체가 되고 있는 과 비교하여 명실이 부합할 때에 지식은 합당한 것이 됩니다.

 

P352 “지혜란 무엇인가?”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고, 궤를 여는 도둑을 막기 위하여 사람들은 끈을 단단히 묶고 자물쇠를 채운다. 그러나 큰 도적은 궤를 훔칠 때 통째로 둘러메고 가거나 주머니째 들고 가면서 끈이나 자물쇠가 튼튼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세속의 지혜란 이처럼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모아주는 것이다.”

 

8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P363 사상은 개인에 앞서서 반드시 사상적 과제가 먼저 존재합니다. ‘누구의사상이기에 앞서 반드시 무엇에 관한 사항이게 마련입니다.

 

사상이란 일정한 사회적 조건에서 생성되는 것이지만 그 사회적 조건이 변화하면 사상도 사상사의 장으로 물러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상을 사회 역사 속에 해소시킬 수 없는 이유가 방금 이야기한 그 자각적 체계 때문입니다. 자각적 체계 때문에 사상 자체로서의 독자성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의미의 독자성은 역시 제한적 의미로 이해하는 태도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상이란 독자성에 앞서 시대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경우든 시대가 사상을 낳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음은 물론입니다.

 

P369 공자와 묵자는 현실 인식에 있어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묵자는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세 가지의 고통을 받고 있는 바, 주린 자는 먹을 것이 없고, 추운 자는 입을 것이 없고, 일하는 자는 쉴 틈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보더라도 묵자가 기층 민중의 고통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묵자는 겸애라는 보편적 박애주의와 교리라는 상생 이론을 선언합니다.

 

P372 공자는 서주 이래의 예악에 나타난 귀족 중심의 통치 질서를 새로운 지식인의 자기 수양과 덕치의 이념을 통하여 회복하려고 노력했지요. 이에 반하여 묵자는 종래 귀족 지배 계충의 행동 규범인 예악을 철저히 부정하고 유가의 덕치 이념 대신에 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인민의 협동적 연대와 경제적 상호 이익을 통하여 사회를 새롭게 조직하려고 했습니다. 유가와는 달리 숙명론을 배격하고 인간의 실천 의지, 즉 힘을 강조합니다. 실천 의지를 추동하기 위한 장치로서 의 존재를 상정하고, 그리고 천자의 절대적 통치권을 주장합니다. 만민 평등의 공리주의와 현재 독재론을 표방합니다. 묵가 학설의 이러한 개혁성과 민중성은 유가 사상과 대항하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P374 사회의 혼란은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사랑의 문제라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심정적인 차원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묵자는 이 문제를 제도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천하의 이익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이롭게 되도록 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렇습니다.

 

P383 자본주의 발전 과정은 제국주의적 팽창 과정이었으며,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해소하는 방식이 냉전이든 열전이든 항상 전쟁에 의존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대체로 10년 주기로 경제공황이 반복되어왔으며 대규모 전쟁 역시 10년을 주기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현대의 전쟁사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P391 묵자의 <절용>편은 소염론, 사과론과 함께 과잉 생산과 대량 소비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현대 자본주의의 거대한 낭비 구조를 조명하는 유력한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낭비 구조와 함께 거대한 소염 주고도 함께 주목해야 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P392 무엇을 삼표라고 하는가, , 이 그것이다. 어디에다 할 것인가? 위로 옛 성왕의 일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어디에서 할 것인가? 아래로 백성들의 이목을 살펴야 한다. 어디에서 할 것인가? 나라의 법과 행성이 시행되어 그것이 국가, 백성, 인민의 이익에 합치하는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를 소위 판단의 세 가지 표준이라고 한다.

 

묵자의 삼표는 첫째는 역사적 경험이며, 둘째는 현실성이며, 셋째는 민주성입니다. 그리고 세번째의 표준인 , 즉 국가, 백성, 인민의 이익에 대하여 묵자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 , , 가 그것입니다.

 

P398 맹자는 묵가의 고결한 가치인 엄격성과 비타협성 그 자체를 비판합니다. 그리고 겸애라는 이상주의적 가치에 대해서도 그것이 인지상정에 어긋나는 것임을 비판합니다.

 

9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P404 일반적으로 유학은 객관파와 주관파로 나누어집니다. 사회질서와 제도를 강조하는 순자 계통이 객관파로 분류되고, 반대로 개인의 행위를 천리에 합치시키고자 하는, 다시 말하자면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는 맹자 계통이 주관파로 분류됩니다.

 

순자는 에 의한 통치를 주장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주관파와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주관파에서도 공자의 극기복례를 계승하여 예를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순자의 예는 공자의 예와는 달리 선왕의 주례가 아니라 금왕의 제도와 법을 의미합니다. 대체로 안정기에는 예가 개인의 수양과 도덕규범으로 해석되고 사회 변혁기에는 사회 질서와 제도의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국 말기가 급격한 변혁기였음은 물론입니다. 순자의 예는 법의 의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자를 법가의 시조로 보는 견해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지요. 전국 말기의 상황에서는 순자의 주장이 패자들의 관심을 더 많이 끌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법가 이론을 집대성한 한비자와 진시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의 재상 이사가 순자 문하에서 수학한 제자들이지요.

 

P408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실천적 노력이라는 것이지요. 순자의 능참실천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제어하여 활용할 것을 강조합니다. ‘자연은 만물을 만들었지만 다스리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순자의 인본주의적 관점입니다. 이것은 유가학파의 공통된 입장으로 문화사관, 발전사관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하늘만을 하늘같이 바라보거나 하늘을 칭송하는 숙명론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 운명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운명이란 인간의 실천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순자의 사상 체계입니다. 능참, 즉 주체적 능동성을 발휘하여 인문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37)

 

P409 인간의 적극 의지와 능동적 실천에 근거하여 인문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P410 대교大巧 즉 뛰어난 장인은 손대지 않고 남겨두는 데서 그 진가를 발휘하며, 뛰어난 지자는 생각을 남겨두는 데 그 진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남겨두는 것은 천의 법칙을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구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知天知己와 통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단한 권위로 군림하고 있는 유가의 도통 계보는 당말의 한유, 이고 등 유학자들이 불교와 노장 사상을 비판하고 유학을 유식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어 송대의 주자에 이르러 완성됩니다.

 

P413 성악설을 인성론이 아니라 순자의 사회학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교육론과 예론, 제도론을 전개하기 위한 근거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사실입니다.

 

P414 맹자의 성선설이 천성과 천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개념인 것과 마찬가지로 순자의 성악설은 그의 사회론을 전개하기 위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에 의하면 본성은 선악 판단의 대상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인간의 본성이란 DNA의 운동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P417 순자의 이론 체계는 교육이라는 후천적 훈련과 예라는 사회적 제도에 의하여 악한 성을 교정함으로써 사회의 혼란은 방지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순자는 모든 사람은 인의와 법도를 알 수 있는 의 바탕을 갖추고 있으며 또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P420 맹자는 개인의 자유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초도덕적 가치를 지향하고 천명론이라는 종교적 편향을 보였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보수적이었다고 평가됩니다. 이에 반하여 순자는 사회적 통제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천명을 비판하고 관념적 잔재를 떨쳐버렸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순자 사상은 실제로 유가의 禮治 사상으로부터 법가의 法治 사상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평가됩ㄴ디ㅏ.

 

P421 순자의 예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를 곧 법과 제도의 의미로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론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순자의 인문 철학이 이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란 사람의 욕구를 기르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되, 욕망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거나 이 욕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서 양자가 균형 잇게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는 대목입니다.

 

P423 순자가 교육론을 전개하는 것은 첫째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모든 인간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자기의 욕구 충족이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된다는 성악적 측면이 순자의 교육론의 출발점이 되고 있으며, 성인이나 폭군이나 군자나 소인이나 그 본성은 같은 것이며,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인간관이 되고 있습니다.

 

P427 순자가 樂論을 전개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순자는 법과 제도적 통제가 가져올 폐단을 경계했던 것이지요. 나아가 사회의 질서가 타율적이고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공감과 동의에 근거해야 한다는 피력하고 있는 것이지요. 순자를 계승한 법가의 이론이 바로 이 점을 간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가가 단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 법가와 천하 통일

 

P432 법가는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대응 방식을 모색해갑니다. 법가의 사관을 미래사관 또는 변화사관이라 하는 이유입니다.

 

P439 당시의 법치란 무엇보다 권력의 자의성을 제한하고 성문법에 근거하여 통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상앙이 강조한 행제야천입니다. 법제를 행함에 있어서 사사로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P445 법가의 은 오늘의 법학과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통치론, 지도자론, 조직론 등 오늘날 정치학 분야까지도 포괄하고 있는 훨씬 광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가는 새로운 정치 상황에 대한 새로운 대응 과정에서 형성된 학파였습니다. 천하 쟁패를 둘러싼 약육강식의 살벌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종래의 낡은 방식과 구별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며 그것도 광범한 변화를 유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457 巧詐(교묘한 속임수)拙誠(졸렬한 진실)보다 못하다는 이 말의 뜻을 나는 세상 사람들 중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는 의미로 읽고 있습니다. 아무리 교묘하게 꾸미더라도 결국 본색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P460 모든 사상은 다른 모든 사상과 관련되어 있으며 파란만장한 역사적 전개 과정의 일환으로 출몰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떠한 철학 체계라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인식을 제약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모든 사상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관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개념적 인식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11 강의를 마치며

 

P472 불교 사상의 핵심은 연기론과 깨달음입니다.

 

P475 이 깨달음의 문제는 우리가 이번 강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강조해온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과 그 현실을 뒷받침하고 있는 구조를 깨달아야 하고, 우리를 포섭하고 있는 문화적 기제를 깨달아야 하고, 우리 시대의 지배 담론이 다름 아닌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깨달음을 다짐해 오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깨닫는 것, 에 있어서 최고 형태는 바로 세계는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세계의 구조에 대한 깨달음이 가장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마저 찬란한 꽃으로 바라보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바로 이 현실을 수많은 꽃으로 가득 찬 화엄의 세계로 바라볼 수 있는 깨달음이 중요합니다.38)

 

P477 깨달음의 의미를 지극히 명상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은 고전 읽기의 시작이며 그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480 송대에 이르러 신유학이 등장하게 되는 까닭은 훈고학 일변도의 한나라 유학이 침체를 거듭했기 때문입니다. 한대의 유학은 경의 자구 해석에 매몰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천적 측면에서도 형식적인 예론의 논의에 치중했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결과적으로 위진 남북조와 수당 시대를 거치면서 불교와 도가가 유가를 압도하게 됩니다. 유학이 당시의 지적 관심과 요구에 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P484 화엄철학은 번쇄한 귀족 철학으로서 중앙집권적 지배 구조에 적합한 것입니다. 객관적 실재를 도외시한 정신의 변혁을 강조하며, 객관의 물질성을 제거함으로써 동시에 현실의 계급적 모순 구조를 부정하는 이데올로기적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화엄 불교는 통일 국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오서 적합한 체계인 것이지요.

 

P486 『대학』은 원래 『예기』 제42편이 었습니다만 주자가 그것을 따로 떼어 경 1, 10장으로 나누어 주석했습니다. 경은 공자의 말씀을 증자가 기술한 것이고, 전은 증자의 뜻을 그 제가 기술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대 유가의 공동 저작이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P487 『대학』의 내용을 요약한다면 첫째 명덕을 밝히는 것, 둘째 백성을 친애하는 것, 셋째 최고의 선에 도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세 가지를 3강령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가 8조목입니다.

 

『대학』은 단지 지식 계층의 학이라기보다는 당대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덕이 있는 사회, 백성을 친애하는 사회, 최고의 선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해탈과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송대 지식인들의 사회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불교적이고 반도가적입니다.

 

P488 8조목 중에서 주자가 가장 의미를 둔 것은 격물과 치지라고 생각합니다. ‘치지재격물하여 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지란 인식이나 깨달음의 뜻입니다. 그리고 격에 대한 해석도 여러 가지입니다만 격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물과의 관계를 통하여 인식을 얻는다는 것이지요. 실천을 통해 지에 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P491 ‘치지재격물의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제기하는 까닭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사물과의 접촉 그리고 사물에 내재한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 모든 것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자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P492 『대학』은 개인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논리입니다. 이러한 체계적 논리의 최상에 놓여 있는 것이 명덕입니다. 『대학』의 최고 강령은 명덕입니다.

 

개인과 사회, 사회와 국가, 국가와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성의 자각과 실현이 궁극적으로는 세계 평화의 기초인 동시에 한 개인의 수양의 기초가 된다는 점을 통일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P493 불교 철학이 모든 것을 꽃으로 승화시키는 뛰어난 화엄학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덧없이 만드는 무상의 철학인 것과 마찬가지로, 해체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거대한 집합표상을 해체하는 통절한 깨달음의 이면서 동시에 개인을 탈사회화하고 단 하나의 감성적 코드에 매달리게 만드는 일탈과 도피의 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P494 『논어』와 『맹자』가 인과 의를 기본 개념으로 하는 사회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이미 읽었습니다. 『대학』은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세계와 나의 통일적 담론입니다. 주자가 『중용』에 열중한 까닭도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 상에 있음은 물론입니다. 『중용』은 당시의 사회적 과제를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는 텍스트입니다. 당시를 풍미하던 해체주의적 문화와 무정부적 상황을 개변하려는 건축적 의지로 일관된 사회학적 동기이며 사명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498 주자가 『중용』을 통하여 제기하려고 하는 가장 절실한 주제는 바로 의 큰 근원이란 하늘에서 명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으로서는 그것을 따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인간적 도리의 구체적 덕목은 예악형정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사회적 가치라는 것이지요.

 

P501 주자의 이론이 性卽理임에 반하여 심론(양명학)의 요지는 心卽理입니다. 신유학이 선종 불교에 대한 비판적 체계라면 양명학은 신유학에 대한 비판의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자의 체계가 독서궁리 à 지혜라는 논리임에 반하여 심론은 良知에 직접 호소하는 체계입니다. 바로 이러한 성격이 선종 불교와 마찬가지로 대중화에 성공하게 합니다.

 

P502 “효친의 마음이 없다면 효도의 가 있을 수 없으며, 충성의 마음이 없다는 충성의 가 있을 수 없다.”

 

P503 심론에서 긍정적으로 읽어야 할 부분은 바로 주체적 실천의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인식이 실천의 결과물이라면, 그리고 그 실천이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목적의식적 행위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신유학에 대한 심학의 문제 제기는 매우 정당한 것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P505 과거란 지나간 것이거나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는 흘러가고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다 같이 그 자리에서 피고 지는 꽃일 따름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 그루 느티나무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서서 과거, 현재, 미래를 고스란히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역사의 모든 실천은 무인지경에서 새집을 짓는 것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39)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창신은 결과적으로 온고창신이라는 보다 현실적인 곡선의 형태로 수정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교조와 우상을 과감히 타파하는 동시에 현실과 전통을 발견하고 계승하는 부단한 자기 성찰의 자세와 상생의 정서를 요구하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P506 이러한 담론을 통하여 우리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인성의 고양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인성의 내용이 바로 인간관계이며 인성을 고양한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구적 가치는 인성의 고양보다는 개인의 존재 조건을 고양하는 것이며 그 존재 조건들 간의 마찰과 충돌을 합리적으로 규제하는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508 창신은 재조명과는 다른 창의적 사고가 요구됩니다. 창의적 사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입니다. 갇히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입니다. 따라서 창신의 장에서는 개념과 논리가 아닌 가슴의 이야기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이야기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한 사람의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가슴이라고 하였습니다. 중심에 있다는 의미는 사상을 결정하는 부분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을 결정하는 것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조용히 반성하라고 해왔던 것이지요. 가슴을 강조하는 것은 가슴이 바로 관계론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P509 이성보다는 감성을, 논리보다는 관계를 우위에 두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가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와 산문을 읽는 것은 바로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가슴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40)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것입니다. 단지 주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의 사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말이나 글로써 주장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사상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자기의 사상이 아닌 것도 얼마든지 주장하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41)

è  실천한 것만을 나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P510 이러한 정서와 감성을 기르는 것은 인성을 고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면서 최후의 방법입니다. 말 잘하고 똑똑한 사람보다는 마음씨가 바르고 고운 사람이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시와 산문을 읽어야 한다는 이유가 이와 같습니다.

 

3. 내가 저자라면

 

연구원 과정에서는 두 번, 개인적으로는 세 번 이 책을 읽었다. 이번에는 술술 읽혔다. 문구도 외워지고 책 속의 사례와 주요 경구들을 어떤 글에 인용하면 좋을지 떠오르기도 했다. 저자와는 달리 다른 해석을 해보기도 했다. 공자가 『주역』을 위편삼절 했다더니 스승의 말대로 고전은 그야말로 보물이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 고기 한 점 같았다. 책을 묶은 죽간이 세 번 떨어지도록 읽으면 그 진가를 더 알 수 있을 것 같다. 저자 조사를 하면서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그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20년 간 감옥에서 대학생활을 했다는 저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삶에 대한 깊은 애착을 가진 현학자였다.

 

다음 주에는 『사기열전』을 다시 읽어보려 한다. 그 책 역시 두 번 읽었지만 세 번째 읽으면 더욱 깊은 맛이 날 것 같다. 더욱이 이번 책에 등장한 인물들을 다시 만나게 될 테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갑고 즐거울 것 같다.

 

스승은 말씀하셨다. ‘한번 고양된 인간의 정신은 다시 낮아지지 않는다.’ 이제 시시한 책은 읽고 나면 부아가 치민다. 내 시간을 갈아 먹은 벌레를 만난 기분이다. 하지만 스승은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책 한 권에서 기억할 만한 한 줄을 건지면 성공한 것이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말했다. ‘배우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어두워진다.’ 이제 배웠으니 실천해야 할 때다. 책을 덮으며 마음이 다시금 분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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