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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3일 03시 25분 등록
J: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런데 '책을 읽는 것은 나 자신이다'라고 하는 것은
곧 나의 책 읽는 자유를 뜻하지 않겠니?

즉 해석의 자유로움을 가진다는 뜻이야. 이 책은 반드시 이렇게 읽고 이렇게 해석해라 하는 것이 공동체 전체에 통일되어 있어서 모두 거기에 따라야 하고, 또 그런 읽기를 배워 나가는 것이 예전의 교육이었던 데 비해 지금은 자기 읽고 싶은 대로 읽는 것이 전제되어 있단 말이야. 그야말로 무한대의 해석의 자유가 존재하는 셈이야.

그런데 이건 어떻게 생각해? 아무리 해석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해도 그야말로 '제멋대로' 읽는다면?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 독단적으로 읽을 위험이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필요하고, 배울 때에는 스승과 同學이 필요한 법이야. 독학은 언제나 위험을 안고 있지. 독학한 사람들의 경우 잘못하면 외곬수가 될 가능성이 커. 또 이런 사람일수록 자기 고집이 세서 정말로 딱한 경우가 많지.

그런데 이번에는 정반대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말일세. 만일 언제나 얌전하게 스승이 가르쳐 주는 대로만 읽고 해석하면 새로운 길이 나올 수가 없지 않겠는가? 사실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은 엉뚱한 사람들이거든. 남들은 다 제대로 읽고 있는데 혼자 다른 식으로 '오해'하는 사람 말이야. 그런데 때로 이런 것이 '창조적 오해'가 되어 새로운 길, 창조적인 길을 가게 되는 것이야.

단적인 예로 성경의 해석을 보라구.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성경을 각자 읽는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지 않았나). 그런데 성경이라는 게 대체 뭐야?하느님의 뜻을 글로 적어 인간들에게 준 것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1+1=2 처럼 자명한 언어로 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이야. 그래서 이 역시 해석이 필요한 것이지.

결국 루터는 성경을 가톨릭 교회와는 다르게 읽은 것이라네. 그런데 이렇게 성경을 누구나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읽고 해석할 자유라는 것이 한번 선례로 자리잡게 되면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성경을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겠지? 칼빈 역시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성경 해석을 제시한 셈인데, 칼빈 같은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가 해석한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진짜 뜻이라는 확신을 지나치게 강하게 의식한거야. 자기만이 옳다고 하면 곧 자기와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해석을 하고 있는 셈이고, 즉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마 같은 놈이 되고 말지. 게다가 여기에 정치권력이 덧붙여졌을 때 정말로 가공할 결과가 생기지 않겠나? 자기가 해석한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경우에는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사형에 처했다니까...

자기는 '정통'이고 남은 '이단'이 되는 거지. 이 '이단'이라는 단어 heretic의 어원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리스어 어원은 "선택할 수 있는" 이라는 뜻이라고 하네. 즉 '이단'은 악마의 자식이 아니고 다만 다른 의견을 선택한 사람일 뿐이야. 우리의 지적 세계가 건강성을 가지려면 언제나 '이단'이 필요하고 그 '이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이 필요한 법이지.

몽롱 : 그런데, 선생님, 독단으로 빠지지 않으려면 배워야 하고, 독창적이려면 남과 달라야 하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죠?

J : 적당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말 외에 어떤 정답이 있겠는가? 다만 쉽게 이렇게 정리하기로 하세. 우선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라서야 하네. 그렇지 못하면서 자기 멋대로 읽어서는 안 되겠지. 그건 너무 위험하니까. 웬만큼 수준에 오른 다음에는 자신의 방식을 찾아나서야 하지. 자기 수준을 어떻게 아느냐구? 자기가 아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물론 훌륭한 스승이라면 자기 제자가 이제 내 품을 벗어나서 훨훨 날아가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내쫓아야지! 이런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할 때 선생과 제자 사이는 [백설공주] 이야기가 되고 만다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논문을 제일 잘 쓰니?" 그러는데, 어라, 거울이 "박 조교가 논문 제일 잘 씁니다" 그러면 제자를 질투하는 거야.

[1악장: 주경철의 읽기와 토론]중에서

언어 사중주 - 김재준 김종면 신광현 주경철 공저 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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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생각 거리를 만드는 단락이다.
친구 SY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난 책을 보고 느낀 것인데
사람의 얼굴을 보고 눈동자를 읽는 것만큼
좋은 독서는 없더라.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내일은 일요일..
아니 오늘이구나.

레몬빛 나리와 분홍나리향이 이 한밤에 캐논방을 감싼다.

늘 들어도 신선한 변주로 시간이 내게 다가온 것은
언제부터였던가.

반복되는 오렌지빛 가로등도 버스 자동차의 매연과 지하철의
김밥같이 꽉찬 혼잡함와 한산함까지도 즐기게 된 그 순간
출퇴근길,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길로 다니지 않기로 결심한 시간
도시의 바보가 되어갔던 그 시간들.

중학교 졸업후 고등학교1학년때 국어선생님이자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엽서에서 부드럽게
내가 규격과 모범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며
파격을 즐길 줄도 알게 되기를 충고하셨다.

때때로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것을 힘써서 지키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있다. '사람이 지나간 자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라던가
'중용'이라는 단어가 갑갑하게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를 기억한다.

주말, 하고 싶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으나
책을 쌓아놓고 이 단락 저 단락을 넘겨가며 읽고 있다.
'다훈이의 세계 신화 여행',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
'언어 사중주' '산후풍 없는 아주 쉬운 산후조리' '엄마학교'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 '걷기여행3'
'주역 - 대장편' '눈꽃아가' '욥기'

한 두 페이지 읽다가 말기도 하고,
주욱 내쳐 읽게 되기도 한다.


이것들의 연관성은 없다.
이끌리는 대로 펼치면 그만이다.
내 책읽는 방식은
남편의 표현대로 그 배가 어떤 배인지도 모르고
일단 오르고 나서 360도 바다풍경을 곳곳을 감탄하는
어린아이와 같다. 그래 그 면에서는 그런 비유가 맞다.


중고교시절 아버지께 가끔 너무도 상식이 부족하니
신문읽는 방법이나 책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충고하셨던 기억이
있다. 나는 얌전한 학생이었고, 배움의 기쁨을 조금은 느끼고 있었기에
먹기싫은 음식을 먹듯이 소설을 봤고, 신문도 한두번인가 훑어보기는
했다. 열심히 독후감 숙제도 하고 때로는 훈련이라며 -자기 스스로 세운-
친구 책을 빌려다가 읽고서 짧은 감상을 정성스럽게 써나갔던 시간도
있다.

누군가 내 책장을 보고서 전문서적이 없음을 판단하고
소설류가 많다고 했다. 그렇지만 사실 내 책장에는 소설류가 적다.
'교실의 고백' '시간이 잊어버린 아이들' '다시 태양의 시대로' '사랑을 만나러 길을 나서다' '서울기행' '인포센스' '이사벨 고댕, 지도 제작자의 아내' '에너지, 힘, 물질' '부분과 전체'
책장에서 불러온 제목들의 일부다.

초등학교 4학년 담당선생님 자취방에 가면 그리고 있는 유화들이
몇 점 있었다. 그중에서 선생님은 독서하는 여자 그림과 가을한국 농촌풍경을
임화하고 계셨는데 간소한 가제도구속에 절제된 선생님의 생활자체가
내게 어떠한 글보다 마음에 새겨져 나의 이상이 된 나날들이 많았다.

선생님과 약속들을 잘 지키는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은 많은 이야기들을
해 줄 수 있다고 하셨던 첫번째 수업을 나는 잊지 못한다.
선생님은 독서를 아주 좋아하신다고 하셨다.
그 당시 군부독재시절인데도 신문마저 재밌다고 하셨다.
선생님 나이 스물여덟의 이야기이다.

이제 그분은 쉰둘에서 셋정도.
살면서 허우적거리다가도
선생님을 생각하면, 부끄러워져 결단의 시간으로 스스로가
인도되는 걸 느낀다.

선생님은 집에서 첫아기를 낳으셨다.
어린 나는 그 사실이 무척 충격이었지만, 선생님은 자신감있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던 것을 기억한다.

출산을 앞두고 조산원을 한번 기웃하게 된 것도
아마 그 영향이 가장 크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의사앞에서 수동적인 출산을 하기로 했다.

나에게는 어른됨의 든든한 표상이었던 '김재열' 선생님이
그리운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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