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 조회 수 1860
- 댓글 수 2
- 추천 수 0
편지를 받지 못한 분을 위하여
*************************
우리집은 북한산 탕춘대 밑에 있습니다. 그리고 멀리 맞은편으로 또 하나의 낮으막한 능선이 북악산 허리로부터 이어져 흘러내립니다. 그 산의 중턱쯤에 푸른 기와를 얹은 절이 하나 나무에 가린 듯 숨어 있습니다.
아내는 그 절에 대해 몇 번 물었습니다. 우리집의 동쪽 대칭점에 같은 눈높이로 존재하는 숨은 듯 신비로운 그 절이 못내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절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북한산 줄기 커다란 바위가 수려한 곳에 ‘삼각산 현통사’라는 현판을 걸고 작은 절 하나가 봄 속에 서 있었습니다. 문은 닫혀 있었습니다. 외출할 때 문을 닫아 잠그고 나가는 사람들처럼 이 작은 절의 주지도 문을 닫고 잠시 외출 중인 모양입니다.
길은 조용히 백석동천 유적지와 백사실 계곡으로 편안하게 이어졌습니다. 우리의 주위엔 작은 계류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산벚꽃의 잔화가 나비처럼 지는 소리뿐입니다.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침묵과 정적 속에 우리를 남겨 두었습니다. 인생이 이렇게 조용할 때도 있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쉽게 모든 소리가 묻힌 공간 속으로 들어 올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벚꽃잎 하나가 허공에서 허리를 틀며 아름다운 선으로 떨어집니다.
선(線). 그것에 대해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일본인이 한국의 미에 대해 한 말이 기억납니다.
“흐르는 것 같은 길게 끄는 그 곡선은 한없이 호소하는 마음의 상징이다.... 형(形)도 아니고, 색(色) 도 아니고, 선이야 말로 그 정을 호소하는 가장 적절한 방편이었다. 이 선의 비밀을 풀지 못하는 한, 한국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한국에 태어난 은총은 30 분만 걸으면 산 속으로 들어 와 이렇게 자연 자체가 되어 잠시 읹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도처에 존재하는 산, 그리고 어디에나 있는 산으로 가는 길. 그 길로 들어 본지 오래인 사람은 아주 가까운 날 운동화 끌며 가까운 사람 손잡고 산책하듯 가보세요.
등산도 아니고 입산도 아니고 그저 즐산. 산을 즐기세요. 공원에서의 30분 산책처럼.
댓글
2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771 | 풀 [5] | 풀 | 2005.05.18 | 1737 |
770 | 나는 운동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1] | 김달국 | 2005.05.17 | 2023 |
769 | 출근길 [2] | 신재동 | 2005.05.10 | 1749 |
768 | -->[re]아버지됨에 대하여 [1] | epiphany | 2005.05.09 | 1839 |
767 | 자긍심, 자만심, 자존심 [1] | 이상우 | 2005.05.09 | 1815 |
766 | -->[re]어버니날을 보내고 | 김달국 | 2005.05.09 | 1752 |
765 | 아버지됨에 대하여 | 구본형 | 2005.05.09 | 1703 |
764 | 오래 전에 받은 메일 하나 [2] | 신재동 | 2005.05.06 | 1870 |
763 | 셀프리더십에 관한 오해 | 수채화 | 2005.05.04 | 1783 |
762 | 나는 실험실로 갔네 | idgie | 2005.05.04 | 2023 |
761 | 아무도 | idgie | 2005.05.03 | 1646 |
760 | 가평으로 출발하기 전에.. [1] | 신재동 | 2005.05.01 | 1699 |
» | 그 길로 들어 본지 오래인 사람은 [2] | 구본형 | 2005.04.29 | 1860 |
758 | 아시아 최고부자의 시작점-일을 애인처럼 [1] | 수채화 | 2005.04.27 | 1758 |
757 | -->[re]봄이 너무 아름다워요 [2] | 김달국 | 2005.04.27 | 1772 |
756 | 산다는 것의 기쁨, 육체의 기쁨 [2] | 구본형 | 2005.04.27 | 1807 |
755 | ---->[re]로고 공모합니다! | 오옥균 | 2005.04.27 | 1557 |
754 | 산길 걸으며 [2] | idgie | 2005.04.26 | 1803 |
753 | -->[re]로고 공모합니다! [5] | recypert | 2005.04.23 | 2087 |
752 | 산과나무를 배우며 나의변화... [4] | 숲의기원 | 2005.04.23 | 17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