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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8일 01시 13분 등록
꽃병에 허리꼿히고
죽음의 숨을 토하는 너

네 땅
네가 뿌리내릴 한 점 지표를 찾아
부유하다 꽃피우더니
젊은 숨이 허리가 끊겨 열매도 짓지 못할 운명
울고 있구나

차가운 냉장고에
마지막 고운 네 꽃잎이 처연하다.

빌딩안에 갇히기를 누가 바라랴만
두 발 지닌 짐승인 나도
기꺼이 빌딩이란 꽃병에서
하릴없는 짓거리를 하느라
죽음의 토악질을 해댄다.
막아두었던 그 냄새가 올라온다.

냉장고 유리문 밖에서
꽃, 네 모습을 본다.
허공을 찾아 가지끝마다 헤메이는 막연함속에서
온 몸으로 너를 피워낸
뿌리와 줄기, 잎새들의 수런거림이 들린다.

나도 허공을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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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의 메모중에서.

- 일희
눈의 발달은 대단히 중요한 한 가지 물리 현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것은 빛 에너지가 신경을 자극해 전기 신호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각의 핵심이다. 인체의 신경계는 환경에서 받은 정보를 쉴 새 없이 뇌로 보내고, 뇌는 몸의 각 기관과 부위에 명령을 내리고 있다. 이 정보들은 뉴런이라고 하는 각 신경세포들이 일으키는 깜빡거리는 전기 신호를 통해 운반된다. 뇌로 전달되는 전기 활동을 다 더한다 해도 고작 0.002와트밖에 안된다. 즉 천 명의 뇌가 있어야 겨우 20와트 전구 하나를 켤 수 있다는 의미이다. 전력의 측면에서 보면 뇌의 전기 활동은 아주 약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아주 충실하게 작동하고 대단히 복잡해서 가장 큰 슈퍼컴퓨터조차 장남감으로 보일 정도이다.
[The story of Light] Ben Bova 62페이지중에서
The beauty of Light도 읽고 싶다. 번역되어 나온 책이 없는 듯.
요즘 그래도 내가 눈 뜬 이 빛과 전기의 신비때문에 일터에서 견딘다.
눈과 빛과 전기의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경이로움을 상상하는 것이 흥미롭다.
국민학생이 되어 본다. 내안의 또 다른 내가 보이기도 한다.
빛도 입자라는 것이 그렇게 신기하고, 그것이 움직이기 때문에
파동을 일으키는 것도 또 그것들을 알려고 한 과학자들이 멋있다.
인쇄소에서 제본하면서 이일이 자신을 사악하게 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런던의 교수에게 자신이 왜 전기를 공부해야하는가 편지를 보내고 마침내
청강한 마이클 페러데이 같은 이들이.


- 일비
허무한 하루일과가 지나가고 종이인형의 시간도둑도 숨어버린다.
푸른 칼에 가슴을 찌르고 핏빛 달이 튀어 오른다.
자나가면 사라질, 의미도 없고 생기를 빼앗는 이 일을 나 아닌
다른 이는 어떻게 다르게 하고 있는 것일까.
상상과 공감은 필요없다. 차가운 기계적 '있다','없다' '1','0'만이
존재하는 빌딩안에서 메말라가는 나 자신을 외면한다.
생계란 무엇인가. 일이란 또 무엇인가. 친정아버지는 내게 현실을 똑바로
보고 좀 더 현실적으로 남의 눈과 시류를 따라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하셨다. 그 시류란 대학에 가서 남의 눈에 보이는 것이
초라하지 않도록 이력을 꾸미는 것도 포함됨을 나는 안다.

그런데 난 그도 싫고 여기도 싫지만
내가 갈 길을 찾지 못해남의 꿈에 기대 살다 죽어가고 있다.
함께 일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순간 이외에 여기서 내게 의미란 없다.

後生可畏 지난 4년간 품고 온 네 글자다.
틈틈히 낙서하듯 이 글자를 써 보았다.
내일은 토요일 그리고 주일 그 다음날은 어린이날이다.
일 때문에 너무도 폭폭한 심정이 되는 것이
허공을 향해 주저없이, 참을 수 없이 눈물폭포가 솟구친다.
참 복터진 소리일지 몰라도 이 미해결 숙제때문에 미어지듯 가슴이 답답하다.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며 평상심이라게 도저히 불가능한 나라는 존재가
이해가지 않는다.
불을 끄지 못하는 나 불을 끄고 잠들라고 윽박질러 눌러둔 나.
날 것의 내가 튀어나오다. 다시 꾹 막아둔다. 그러기를 16년이다.
일의 미래자체에 깊은 맘을 쏟지 않은 결과이다.

일의 주변인으로 살고 부리는대로 움직여주는 것이
내게 조직이 바라는 전부라는 것이 각인되기까지는 3개월이 걸리지 않았지만,
그 노동의 댓가로 누리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 지랄을 .. 이 헛짓거리를..
계속하고 있는 나를 증오하는 것으로 해결아닌 해결을 지었다.
꿈을 버린 댓가. 그것을 기꺼이 치를 맘을 새롭게 하면서.
내가 꿈을 버린 것은 내 꿈의 고귀함에 내 몸은 이미 망가졌기때문이라는
십대시절의 깊은 좌절에 있었다. 대부분 거기어 기어나오는데
나는 그 구덩이를 메꾸는데 시간을 써버리고 말았다.
누가 남의 꿈에 기대어 살라고 했나.. 괴로우면 너도 우리의 룰을 따라
살아라.. 왜 그런식으로 살지? 미쳤더니 미치려면 혼자 미처라.
야, 배부른 소리하고 있네. 그나마도 없어봐.
네까진게 뭔데 너는 유통기한지난 통조림이라구.
쓰레기통에 들어갈 시간도 얼마 안남았어. 쥐뿔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시키는 일이나 잘 해. 어쭙잖게 나대지 말고. 너같은 것은 사무용품이나
다름없어. 야, 너 아니면 그 일을 못할까봐. 우리부서에 너같은 미친사람이 있다니. 너는 왜 쓸데 없는 일에 열심이냐? 그 쓸데 없는 짓.. 명목없는 짓들에. 야, 고귀한 척 하지마 나도 왕년에는.. 지나치게 감정적이야. 조직은 냉정한 거라고. 병신이 육갑하네. 뭐 그리 심각해. 니 얼굴좀봐 옷좀보라고. 하고다니는 꼴상하고는. 이정도는 돼야지. 내 뿌리내릴 한 중심은 경련한다.
이제는 다시 오지 않으리라 믿었던 2002년 그 구덩이의 3차 폭팔이 일어났다.
나를 제외한 모두와 관계가 끊어지다.
2004년 이제 농친 풍선같은 꿈을 잡으러 허공을 휘젓기 시작한다.

- 일희
2008년 5월 7일 저녁 6시 빗속에 이박는집옆에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나
그림이 프린트된 현수막위에 부제가 달려있다.
'잃어버린 꿈을 찾아' 소나무 갤러리 가회동 1-42호
박동일 초대전
한옥건물안에 오색의 신비를 읽은 화가가 빛을 쏟아낸다.
눈이 부시는 듯 하더니 이내 마음이 밝아진다.
아마도 내가 마지막 관람자인듯. 내일 점심에 꽃을 한송이 살까.
아니면 화분을 사서 그곳에 드릴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투울립이 있는
그림앞에서 한 참을 서 있다. 나와서 하는 생각
가회동 소나무길을 올라가다가 시름을 떨어버린다.
비에 떨어진 솔방을 몇 개를 줍는다.
이쁜 솔방울들. 딱딱한 시멘트 보도에 떨어진 생명.
'집에 모아둔 나머지 솔방울들과 함께 모아 둥글게 붙이고
장식해 두어야지.'
사랑스런 나의 길로 걸어들어간다. 차가 많아져 조금 위험하지만.
말바위쉼터 아래쪽, 내가 걷는 이길 반대편에
해동조경이라는 묘목파는 곳이 생겼네.
붉은 영산홍과 어린 소나무들이 가득하다.
닭집앞에는 여전히 가지런한 조각 밭들이 흩어져있고
군데 군데 또 누가 이쁘게 무언가를 심어놓았다.
저 멀리 북악스카이웨이를 이루는 산이 구름에 숨어서 일까.
발아래 작은 밭들을 보게 된다.
해동조경아래를 지나는데 전화가 온다.
재디다. 어서오소.
집에서 두부찌개 냄새가 나고 목까지 빨개진 윤이 콩콩 까치발을 하고
까르르 까르르 나를 반긴다.
IP *.142.1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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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08.05.08 03:38:05 *.221.78.72
'재디다. 어서오소.
집에서 두부찌게 냄새가 나고 목까지 빨개진 윤이 콩콩 까치발을 하고
까르르 까르르 나를 반긴다.'

살아 있는 기쁨이 넘실대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다시 이야기 속의 소년처럼 용감해지는 것이지요.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8.05.08 12:44:17 *.46.147.2
행복하다 생각하면 행복하고 슬프다 생각하면 슬프다.

1

맞은 편...
아주 높고 커다란 녹색의 빌딩,

세월의 흔적이
먼지 앉고 찌든 얼룩,
사선으로 비켜 난 창문위로
묻어난다.


아주 깊고 광대한 푸른 꿈의
세월의 흔적이

상처받고 유착된 자욱,
하루를 맴도는 가슴위로
솟아난다.

2

하늘엔 새, 세 마리...

온갖 풍상의 세상 위를
맴돌고 있다.

땅위엔 사람, 세 가슴...

그렇게 가슴을 쓸어 안고
어울리고 있다.


3

아주 작은 소리
희미하게 들리고...
그렇게 시야로부터 멀어져 갔다.

어슴프레한 지친 몸짓
스치듯 뇌리속을 흐르고...
그렇게 아득한 기억으로 묻혀져 간다.

4

사라져 버린
새들이 그리운 것처럼...
그래서 내 내 거기 서 서
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쿵쾅거리던 생각들이
희망을 흔들어 놓은 것처럼
샘 솟고 있는 분노와 낙심들은..
기억하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에 묻히기에 충분하리

5

모두는

한 손에 삽자루를 들고
한 손으로 묘비명을 쓰며
하루라는 삶의 구덩이를 파리...

확신하건대
모두가 그러 했었고
모두가 그러하고
모두가 그러 하리...

우리는 그저
땀 흘려 구덩이를 파
우리의 흔적을 묻고
머리 굴려 쓴 묘비명으로
우리의 흔적을 남길 뿐이리...


행복하다 생각하면 행복하고
슬프다고 생각하면 슬프다.

**********

옥상에 올라가 고개들어 올려다 본
5월의 하늘에 세 마리의 새가
유유히 허공을 맴돌다가
사라졌습니다.

빈 하늘엔 햇살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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