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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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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1일 08시 20분 등록

 글은 3기 연구원 신종윤님의 글입니다.

 

자전거로 강변을 달리는 재미는 글로 다 담기가 어렵습니다.

철 따라 어울려 터지는 꽃들의 향연을 어떻게 제 부족한 글로 담을 수 있을까요? 쏟아지는 햇살과 그 사이로 흐르는 땀방울을 날렵하게 감아 올리는 바람의 알싸함을 단어 몇 개에 고스란히 실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이겠지요. 강가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새처럼 재잘대는 젊은 연인들의 발랄함과 두 손을 꼬옥 잡고 말없이 걸어가는 노부부의 다정함은 재미라는 말이 무색한 행복을 살그머니 건네기도 합니다.

자전거로 집과 회사 사이의 왕복 45 킬로미터 거리를 출퇴근하는 일상은 남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대단하지도 힘들지도 않습니다. 예쁘게 자전거 옷을 차려 입고 떠오르는 태양을 온몸으로 맞으며 강변을 바람처럼 달리는 상쾌함은 '지옥철'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어울리는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전날 과음한 누군가의 거친 숨결을 들이키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또 퇴근길의 강변에서 맞는 붉은 해의 온기를 차창 너머로 바라 보아야 하는 안타까움으로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건강에 좋고, 살이 빠진다는 장점도 자전거 출퇴근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긴 하지만 주변으로 철 따라 날 따라 낱낱이 펼쳐지는 재미들에 비하면 '무엇에 좋고 시리즈'는 사실 그다지 내세울 것이 못됩니다. 그래서 자전거 타기는 한번 맛을 들이면 빠져 나오기 힘들만큼 중독성이 대단합니다.

이 축복과도 같은 재미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는 방법을 저는 한가지 알고 있습니다. 바로 마음을 딴 곳에 주는 것입니다. 속도에 집중하는 것이지요. 경쟁에 몰두하는 것이지요. 재미를 만끽하던 마음을 달리는 속도에게 줘버리면 풍경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자전거와 경쟁자만이 넓은 강변에 덩그러니 남게 됩니다.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설 때마다 매번 다짐합니다. '오늘은 천천히 가자'. 재미를 한껏 만끽하고픈 마음이 하나고,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사고를 미리 조심하자는 것이 또 하나입니다. 나를 앞질러 내지르는 사람들을 보고서도 동요하지 말자고 가슴을 살살 쓰다듬고 헬멧을 툭툭 두드립니다. 그렇게 느긋한 마음으로 아파트 사이를 가로 질러 강변으로 나섭니다.

! 이제부터 눈 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 사이로 서서히 발을 저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앞쪽에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주의를 기울이면서 고개를 이리저리 휘휘 돌려가며 주변에 또 뭐가 펼쳐지고 있나 탐색합니다. 그러다가 발견한 유채꽃의 풍년 속에서 가슴 속이 온통 노랗게 물이 듭니다. 그때, 자전거 한 대가 바람처럼 옆을 치고 나갑니다. 꽃에 혼을 빼앗겼던 터라 놀라기도 오지게 놀랐고 매너 없이 너무 바짝 옆을 치고 나간 것이 괘씸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침에 한 다짐을 되새기며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그런데 비슷한 모양새로 몇 대의 자전거를 앞세워 보내고 나니 마음이 꽃에만 머물지를 못합니다. 앞서 저만치 달려나가는 자전거의 뒷모습에 마음을 빼앗기는 찰라 또 한 대가 스쳐 지나갑니다. ''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같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순간 풍경이 사라집니다. 향기도 멀어집니다. 오로지 앞선 사람의 등과 거친 숨소리 그리고 길고 고단한 길만 남습니다.

그렇게 한 번 묘한 경쟁에 불이 붙으면 강변은 경륜장을 방불케 합니다. 풍경과 재미를 만끽하는 또 다른 사람들을 하나씩 차례로 제치고 앞으로 달려나갑니다. 그 중엔 '끼익~ 끼익~' 새소리를 내는 낡은 자전거를 타고 양복 바지 밑단을 양말에 밀어 넣은 할아버지도 계십니다. 출퇴근길에 가끔 마주치는 할아버지시지만 이렇게 불붙은 경쟁 중엔 별다른 반가움도 없습니다. 할아버지를 앞서서 저만치 뒤로 따돌리고 나아갑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앞서 달리던 경쟁자의 자전거가 지쳐서 속도를 늦추면 결정타를 날리듯 더욱 빠른 속도로 보란 듯이 제치고 나갑니다. 그리곤 뒤돌아 봐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달립니다. 따라올 것 같은 기색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속도를 늦춥니다. 숨은 턱까지 차 올랐고, 목은 타들어갑니다.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목을 축입니다. 숨을 고릅니다.

그때, 얼마 쉬지도 않았는데, '끼익, 끼익' 새소리를 내는 자전거가 다가옵니다. 그러더니 슬슬 옆을 스쳐 지나갑니다. 그때서야 '아이고' 싶습니다. 천천히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페달을 밟는 할아버지의 평화로운 자전거가 땀범벅이 된 채 숨을 헐떡이며 물을 들이키고 있는 제 옆을 유유히 지나갑니다. 스스로가 참으로 애처롭습니다. 한참을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꽤 멀리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렇지가 않았던 모양입니다.

폭풍 같은 질주는 잠시 동안만 가능합니다. 가슴이 터질 듯이 달려봐야 고작 몇 분이면 끝이 납니다. 우린 때로 그 몇 분에 '최선'이나 '노력'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제가 미친 듯이 달렸던 불과 몇 분의 시간이 중독된 절정이었다면 할아버지의 평화로움은 일상이었습니다. 절정은 화려해 보이지만 결국 저만치 앞서 나가는 것은 일상입니다.

화려한 갑옷을 입고 전쟁의 한가운데 서서 화려한 전승의 기록을 올린 '영웅' 이순신의 모습이 절정이었다면 매일 빠짐없이 공무를 보고 활을 쏘고 필요한 순간을 위해 준비하고 살피고 챙기는 그의 노력은 일상이었습니다. 일상이 빠진 절정을 상상할 수 있으세요? 혹시 매 순간을 절정만으로 채우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나요? 숨을 한 번 크게 쉬세요.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절정에 대한 마음을 조금만 접으면 일상이 황홀해집니다. 재미난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물병을 가방에 넣고 슬그머니 할아버지의 새소리 나는 자전거를 따라 출발합니다. 다시 꽃이
 보이고, 바람도 붑니다. 할아버지의 자전거가 들려주는 새소리에 키득키득 웃음이 새나옵니다. 다시 강변이 재미있어졌습니다.

 

                                                                                              신종윤 연구원(flame@kd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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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1 10:03:02 *.30.254.21

저절로 나오는 감탄사..

 

아..참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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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1 12:56:26 *.94.41.89

자전거 타는 재미 저도 만끽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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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6 23:41:56 *.169.218.205

아. 일상이 빠진 절정을 상상할 수 있으세요?

나 이거 맘에 들어. 나 가질께. 선물로주세요! ㅋㅋㅋㅋㅋ

훔쳐가져가놓고 선물이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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