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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펄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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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5일 11시 51분 등록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나의 관념 속에 ‘시’는 예술가들이나 쓰고 읽는, 나와는 거리가 있는, 약간은 과도한 어떤 것이었다. 그런데 곰곰히 나에게 있어서의 ‘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니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보는 구청의 벽에 걸린 시 구절 하나가 메마른 나의 하루의 시작을 촉촉히 적셔주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구청을 지나는 길은 설레임을 동반하였다.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 새 한 마리만 그려 넣으면 남은 여백 모두가 하늘이어라 (이외수)     


짧지만 강하게 마음을 울리는 한마디! 아침 출근길이지만 어느 날은 혼란스럽던 마음에 위안을 받았고 어느 날은 외롭고 서글프던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 또 어느 날은 꽉막혀있던 마음을 시원스럽게 뚫어주기도 하였다. 시는 생각보다 내 생활 속에 친근하게 다가와 있었다.


 시란 무엇인가? 시인의 마음속에 있는 정서와 생각들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직설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또는 사물에 빗대어 풀어놓는다.

 이런 시를 읽을 때 나는 어떠한가? 마음속에 뭔지 모를 알랑거림이 생겨나고 몽글몽글 감성들이 솟아나온다. 어떤 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게 하고 어떤 시는 마음속에 불덩이가 달아오르게 한다. 또 어떤 시는 마치 한 폭이 그림을 보는 듯 각박하고 복잡한 도시 풍경에서 떨어져 자연 속으로, 시상이 된 어떤 장면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한다.

 그러고 보니 시는 내 마음의 안식처이자 놀이터였던 것 같다. 다만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 자주 찾지 못할 따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이들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은 알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입만 살아 있는 사람들. 아니면 너무나 감성적이어서 세속에서 살아가는 나와 같은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에 관심을 갖고 그들에 대한 책을 읽다보니 시인 또한 시를 매개체로 자신을 갈고 닦아 자아를 성장시키고 그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나와 다르지도 같지도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 또한 ‘언어’라는 재능을 가지고 자신을 연마하여 전문가가 되고 이를 통해 세상에 기여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주말에 아이를 위해 갔던 한국 민속촌에서 비보이, 말기예기수, 줄타기 장인의 공연을 보면서 나는 ‘한시미학산책’에서 만났던 시인들을 떠올렸다. 한 분야에 미쳐서 궁핍과 외로움을 견뎌내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그들은 서로 많이 닮아있었다. 누가 누구인지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 줄타기 장인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처음에 그는 박수칠 줄 아는 사람들은 고단한 인생살이를 즐길 수 있는 분들이라는 말로 박수를 유도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이라는 말로 박수치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마지막으로는 전통놀이의 맥을 이어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열심을 다해 하고 있고 이렇게 보러온 사람이 많아 박수가 많은 날은 자신도 기쁘고 흥이 나서 마음이 즐거우니 힘든 기술도 힘을 덜 들이고 할 수 있다며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그의 말에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한시미학산책’에 등장한 많은 시인들이 그와 같이 자신을 몰아세워가면서 시를 써서 세상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장을 열어주었다. 줄타기 장인 또한 자신의 몸을 수십 년간 갈고 닦아서 줄 위에서 뛰고 걷고 재주넘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나 또한 가장 나다운 일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고 세상에도 기여하고자 애를 쓰고 있다. 이렇게 옛 시인들과 줄타기 장인, 그리고 나 사이에 끈끈한 연대가 형성되었고 그들의 말에 말 이상의 공감을 경험할 수 있었기에 흐른 눈물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제 감히 ‘시’란 내가 앞으로 살면서 추구해야할 그 무엇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내가 될 수도 있고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일수도 있다.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 들어가는 그 모든 에너지들에 경의를 표하며 나 또한 그렇게 나의 온 영혼과 몸과 정신을 불살라 ‘시’  혹은 다른 무엇인가로 나를 표현하고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



IP *.200.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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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5 12:52:35 *.89.208.250

가슴 뭉클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얼마전에 아이들과 함께 민속촌에서 줄타시는 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멘트도 들었구요,

그래서 더 공감이 가는 것 같습니다.

세가지 시 구절도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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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5 13:44:24 *.200.81.18

혹시 같은날 민속촌에 갔던 건 아닌가요? ㅋㅋ 저는 3월 3일 토요일에 갔었는데요.^^ 기대없이 갔던터라 감동이 더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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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5 13:26:28 *.36.72.193

알랑거림과 몽글몽글~!

너무 예쁘고 아랑아랑한 표현이에요.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가을 바람에 예쁘게 물든 은행나무를 보는 것 같아요.

와.. 글이 아름답습니다.

부러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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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5 13:48:27 *.200.81.18

저도 이런 표현을 처음으로 써본거예요. 이상하죠? 한시미학산책 한권 읽고 나니 생전 안쓰던 단어들이 맘속에서 일어나네요.. 사실 한자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서 영어번역하듯 모르는 단어는 건너띄고 읽은 것도 많고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의문도 많은데, 저도 신기합니다.  오히려 세린님의 표현이 저를 설레이게 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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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5 15:05:36 *.161.70.32

어디서든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을 만나면 저절로 감동 먹게 죄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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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5 17:33:56 *.238.85.60

저도 한시미학을 읽고 나니 의외로 우리 주변이 시로 덮여있는 것 같아 깜짝 놀랐습니다. 마치 신발을 새로 사면 다른 사람들 신발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랄 까요? 오늘 교보문고에 봄을 알리는 새 현판을 보았는데 너무 좋았던 기억에 남아 찾아 봤습니다.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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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5 18:40:21 *.89.208.250

 동기님들 궁금한 게 있습니다.

 혹시 디지털 시집, 어떻게 만드는지 아시면 알려주시겠어요?

 워드화일에다 그림 배경 넣고, 시를 옮겨 적으면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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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6 14:05:07 *.238.85.60

자유형식이라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자신만의 시집이니 '서문'과 '33개 시 전문', '7개 외운시 표시'는 필수고 나머지는 자신의 선택일 것 같아요. 저는 시랑 배경 그림 넣고 왜 그 시가 좋았는지 쓸까 생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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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6 18:01:59 *.47.75.74

감사합니다, 저도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즐거운 저녁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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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6 02:38:07 *.123.71.120
처음 가수 이지상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들었을때 가슴이 얼마나 먹먹하든지...정호승 시인 감성은 정말 대중들을 흔들어놓는 매력이~~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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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문윤정
2012.03.06 10:26:37 *.85.249.182

그래서 시인들은 천형을 받았다고 하는 것 같아요.

장인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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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6 23:44:30 *.229.239.39

시를 주제로 쓰신 글들이 우리 일상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듭니다. 마치 노을이 질 무렵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발걸음이 집으로 향합니다. 어머니께서 끊여 놓으신 청국장은 늘 친근하게 생각되었지요. 펄펄님의 글에서도 일상속에 시가 주는 친숙함 같은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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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8 20:10:23 *.154.223.199

'가장 나다운 일을 일을 통해서 나를 성장시키고 세상에 기여하는 것' 저는 이걸 펄펄님의 시의 정의라고 읽었어요.

줄타기 장인이든, 연과 행을 가진 시를 쓰는 시인이든, 여러 직종의 전문가이든 모두 자신의 시를 삶에서 쓸 수 있겠군요.

저도 그런 시 한 편 쓰고 싶습니다.  

멋진 정의라고 생각했어요. 펄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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