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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3일 04시 20분 등록

*이 글은 박소정 2기 연구원의 글입니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해외에 나가본 경험은 딱 두 번이다.

대학교 시절, 두 달씩 떠난 두 번의 배낭여행이 그것이다.

두 번 다 목적지는 인도였다


왜 인도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막연히 대학교 때가 아니면 배낭여행이 힘들 것 같아서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읽었던 책 중 한비야의 세계 여행기가 있었는데, 그녀가 딱 한 군데 여행지를 추천하라면 인도를 권하겠다 -라고 한 것이 가장 큰 계기였을 것이다. 전 세계를 누빈 사람이 하는 말이니, 그만큼 가치가 있는 곳인 모양이다, 하고 단순하게 인도를 첫 배낭여행지로 정했다.

집에 손을 벌려 여행경비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경비를 모으고-다행히 인도는 경비가 싸다- 휴학을 하고 6개월 만에 두 달짜리 왕복 항공권을 들고 인도를 향했다. 혼자서 잘 해낼 줄 알았다. 스스로 독립적이라 생각했고, 다른 사람과 여행을 하는 것이 더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혼자 인도에 뚝 떨어졌을 때는, 생각보다 겁이 났다. 비행기에서 만난 한국여자 두 분과 첫 삼일을 같이 보냈다. 그리고 다시, 정말 혼자가 되어 인도의 사막지역인 라자스탄 주의 수도 자이뿌르에 떨어졌다. 물병을 하나 들고 뜨거운 도시를 걸어 다니다 지쳐갈 무렵, 인도인이 말을 걸었다. ‘할로, are you japanese? ' 한국인이라는 내 말에, 한국인 친구에게 편지를 써 달라며 한국어가 적힌 쪽지를 보여주는 그 인도인에게 짜이를 얻어 마시고, 그의 집에 초대를 받고, 그렇게 나의 인도 여행은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그의 가족의 환대를 받았고, 그의 어머니와 같은 침대에서 자고, 아침이면 마미가 직접 데워서 부어주는 물에 머리를 감았다. 인도 말을 할 줄 모르는 나와, 자기 나라 말을 아직 제대로 할 줄 모르던 그 집 세 살짜리 꼬마 만루는 제법 친해졌다. 별이 떨어질 것처럼 많던 밤에 옥상에 나와 만루를 무릎에 앉히고 ‘반짝 반짝 작은 별’을 부르자 제 말로 흥얼흥얼 따라 부르던 천사 같던 목소리.


나의 여행은 아주 즐거웠다. 나는 그들의 생활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다. 맛있는 인도 집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인도여자들이 옷을 맞추는 집에서 함께 펀자비를 맞추었다. 얇은 펀자비를 펄럭거리며 돌아다니노라면 감기 걸린다며 겉옷을 덮어주던 마미. 그 집에 머물다 다시 여행길에 올라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도 그 가족의 할아버지 집에서 요양할 수 있었다. 의사를 불러주고 치료비용을 다 내주던 할아버지, 내가 다시 여행길에 올랐을 때 꼬깃꼬깃 쌈짓돈을 주시던 할머니. 아픈 내가 짜증을 내도 웃는 얼굴로 다 받아주고, 철저한 힌두교도라 육식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플 때 닭죽(chicken soup)을 끓여주는 엉클을 위해 신성한 (!) 부엌을 기꺼이 내어주던 아주머니까지.


고아에서 테크노 파티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바다를 보며 맥주 마시는 게 일이었던 시절. 강가(갠지스 강)만 바라보며, 더러움을 못 견딜 때까지 머무르곤 했던 나의 바라나시.


1년 후, 나는 다시 인도로 떠났다. 그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아직도 많이 남은 인도의 다른 곳을 보기 위해.

그래서 나는, 두 번의 해외여행을 모두 같은 곳으로 갔다.


그 시절만 해도, 나는 내가 길 위의 삶을 살 거라 생각했다. 배낭 하나에 든 물건들도 다 쓰지 않던 그 여행에서처럼,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고, 이곳저곳 떠다니며.


지금의 나는, 열심히 회사를 다니며 매 달 나오는 월급에 중독 되어, 인도에서 날아오는 메일에 제대로 답장하지 않고, 그 곳에서 오는 전화를 가끔 귀찮아하기도 하는 그런 상태이긴 하지만.


홀홀 단신으로 떠났던 인생의 단 두 번 해외여행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인지, 내게 여행은 완전히 낯선 곳에 뚝 떨어지는 것. 혼자라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것. 그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이들을 만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오롯이 혼자되는 여행을 하지 못했다. 여행지에서 다른 여행자들처럼 생수를 사 먹지 않고 겁 없이 local water를 얻어먹으며 마음 편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현지 친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부끄럽지만, 여행 내내 나는 한 번도 완전히 혼자인 적이 없었다. 완전히 나 혼자 맞섰던 적이 없었다. 혼자 힘으로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다.


사실 내 여행의 목적은 그것이었는데, 완전히 낯선 곳에서 혼자 힘으로 살아남는 것. 내가 강하다는 것을 확인해보는 것. 하지만, 여행하는 내내 나는 내 나약함과 마주해야 했다. 나는 내가 기대고, 의존적인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뿌리칠 수가 없었다. 혼자 떠날 수가 없었다. 두려웠다. 내가 이렇게 겁쟁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내가 가장 좋은 추억이면서, 매번 내 나약한 의지를, 내 좁은 그릇을 확인해야 했던 두 번의 여행.


또 한 번의 여행을 계획한다. 오로지 혼자서, 오로지 혼자서, 오로지 혼자서.

내가 연약하지 않음을 스스로 각인할 수 있도록, 나를 창피해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오로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여행을. 외롭고 무서워서 몸부림치더라도 끝까지 혼자 버틸 수 있는 여행을. 길에서 만나는 낮의 여행 친구들과 신나게 수다 떨고 밤에는 혼자 무거운 배낭을 둘러메고 밤 기차를 탈 수 있는 여행을.


조금 더 나이든 내가. 진정한 여행의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도록.

나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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