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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9일 07시 21분 등록


                                                                                                                                               최 세 린 


 자궁경부암의 원인인 인유두종바이러스 예방 백신을 맞았다. 예방 접종 시기가 이를수록 예방 효과가 크다는데 서른살에 맞아서 그런지 더 아프게 느껴진다. 보통 16세 이전의 여성에 대한 효과를 면역반응여부로 측정하였을 때 16세 이후의 여성에 비하면 면역반응이 더 높게 측정되었다고 한다. 아무렴, 맞아두면 80% 정도의 예방효과를 얻을 수 있고, 친구 덕분에 직원가로 맞을 수 있다니 소매를 걷어 올렸다. 백신은 내 팔 근육을 타고 온 몸으로 퍼져가려는데 길을 잘못 들어섰는지, 내게 뭐라고 호소하는 것 같다. 근육통을 느끼게 하면서 길을 알려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얼굴에는 열꽃이 핀다. 얼굴이 벌겋다. 


 하지만 나는 백신의 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다. 아니, 항원과 이야기 나눌 여유로움이 없다. 나는 근육통보다 더 심한 통증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머릿 속을 뒤엉키게 한 <<신화의 힘>>이 준 정신적인 통증에서 헤어나올 길부터 찾아야 했다. 

 ‘정신적인 통증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이성적인 통증? 가슴의 통증이라 해야 적절하려나?’

 내가 느끼는 미묘한 ‘어떤 그것’을 표현할 단어를 선택하기 어렵다. 작년에도 <<신화의 힘>>은 나를 낯선 땅에 데려다 놓았다. 어딘지도 모르는 광활한 벌판 한 가운데 나를 데려다 놓더니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야할 곳에 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길을 내보려고 애쓰다 반 정도 읽었을 때 포기했었다. 두 번째 읽는 지금도 여전히 <<신화의 힘>>은 나를 생소한 대지 위에 모셔다 준다. 그 대지 위, 중심점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작년에 갔던 길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좀 옅어졌지만 있긴 있다. 애써서 내놓은 길이니 없어졌으면 조금 서운했을 뻔도 하다. 하지만 새롭게 다시 길을 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며 그것을 무시한다. 나는 이전에 내어 놓았던 길을 가다, 중도 포기하여 끊겨버린 그 지점에서 길을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다. 새로운 길의 문을 열었다.


 나는 새로운 길에서 ‘이해가 되면서도 되지 않음, 알 것 같은데 모름’을 만났다. <<신화의 힘>>은 이야깃거리가 아주 풍성한 저장고다. 캠벨 선생님은 어쩜 그렇게 이야기를 술술술 풀어가시는지 놀라웠다. 그는 그냥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나, 하나 풀어나가고 있었다.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단 한번도 그의 사유의 길은 엉키거나 다른 노선을 타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대담자 빌 모이어스도 만만치 않았다. ‘어찌 저런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8년 간 캠벨 선생님과 함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일까?’ 캠벨 선생님의 대답이 내 가슴을 울렁대게 한 것은 말하나 마나이지만 모이어스의 질문도 내 마음을 찌르곤 했다. 그리고 그 질문들 중 몇 개는 내 마음을 간파한 것처럼 질문한 것들도 있었다. 그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난 왠지 안심이 됐다. 나만 캠벨 선생님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알아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말이다. 특히 모이어스가 412쪽에 캠벨 선생님의 말에 ‘그건 아닌데요, 그건 아닐 겁니다.’라고 이야기 한 부분에서 나는 움찔 놀랐다. 만약 나였다면 아니라고 생각해도 그 앞에서 아니라고 말을 못했을텐데 말이다. 


 <<신화의 힘>>을 읽으면서 내 마음속에 몰래 들어와 꿈틀대던 주제들이 몇 개 있다. 종교와 관련된 신앙에 대하여, 사춘기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나는 어른인가(의례에 대하여), 나의 삶에서 ‘살아 있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천복을 좇으라는 캠벨 선생님의 말에 대한 나의 대답에 대하여 등이 그 주제이다. ‘그럼 그 중에서 가장 네 마음을 파고드는 주제를 선정하여 글을 쓰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딴 소리만 하고 있느냐?’ 물을 수도 있겠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바로 두려움이다. 나는 각각의 주제에 대해 글을 쓰며 한 줄기의 중심사상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끌고 나갈 자신이 없다. ‘쓰다가 뻘소리 하면 어쩌지, 짧아질 수도 있겠다, 나의 신념이 흔들리고 있음이 들통날 수도 있으니 차라리 꺼내지를 말자.’ 이것이 현재 내 마음의 소리이다. 

 

그래도 하나 꺼내보자면  <<신화의 힘>> 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원시 입문 의례에서 아이는 소년 시절에서 격리됩니다. 바로 이렇게 격리된 상태에서 아이는 

할례를 당하거나, 몸의 한 부분에 상처를 입는데, 이러한 시련은 곧 아이의 몸이 희생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희생이 치러지면 입문자의 몸은 어른의 몸이 됩니다. 이런 의례를 치른 이상 옛

날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161쪽 인용)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성인이 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성인이 되기 위한 의레를 치뤘는가? 내가 계속 결혼을 미루고 있는 것은 아직도 부모 슬하에 있으면서 어린애와 같이 살고 싶은 것은 아닌가? 어떠한 책임이 두려운 것일까? 완전히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모두 어린애와 같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또한 사춘기 청소년들이 가져야할 의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그들에게 아이에서 청소년이 되는 청소년에서 성인이 되는 그 중간 중간에 어떠한 의식, 의례가 있으면 어떨까? 범생이는 좀 더 ‘자기의 뜻’을 찾아나설테고, 문제아는 ‘사회적 용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테고, 범생이도 문제아도 아닌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욕망, 원초적 자아에 대한 반응’을 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나는 아직 <<신화의 힘>>이 데려다 준 대지에서 중심점이 보이는 길 위에 서있다. 그 중심점에서 완전히 벗어나기가 두렵다. 어차피 돌아올 점일텐데도 어떤 의지가 내 발목을 잡고 있는지, 이탈 금지령을  내렸는지 내가 내고 있는 새로운 길에서 나는 주춤거린다. 분명 어디까지 가더라도 그 중심점은 보일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지금 아주 어중간 상태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혼란 가운데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다가도 알겠다. 더 말해 무엇하랴, 용기가 없는 것을. 


 나는 나의 절정의 순간을 만나러 용기를 내야함을 오래전부터 인식해왔다. 

 “아.......”, 이 한마디 밖에는 할 수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분명히 내 안에 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발현시켜야 한다. 

'그래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해주고 싶은 날이다. 

'날아도 된다. 떨어지지 않을 거다.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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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08:41:21 *.47.75.74

세린, 얼마전에 초등학교 입학한 둘째가 몇일 지나더니 학교에 가기 싫다는 거예요.

'아빠, 학교 가기 싫어! 재미도 없고, 선생님이 무서워~ 시간낭비일 뿐이야!"

아내와 함께 '시간낭비'라는 말을 듣고 어찌나 웃었던지요.

 

그래서 <신화의 힘> 163p에 나오는 '원시사회 입문 의례인 할례'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말했죠.

'다른 나라 어린이들은 학교에 안가고, '할례'하면서 바로 어른이 된다'고 말이예요.

조금은 놀란 듯, 다음 날부터 학교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세린의 웃음을 보고 있으면, 내면의 여유와 힘을 느낄 수 있어요.

그 웃음으로 주변 사람들까지도 힘을 얻어요.

그리고, 용기를 내게 만들어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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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00:48:51 *.142.242.20

아, 승욱오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늘 내가 용기 없다고, 어떤 결정을 해야할 때,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을 때 

주춤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누구의 눈치를 보는 건지, 무엇에 갇혀 있는지에 대해'생각하곤 했답니다. 

그런데 '용기를 내게 만들어줍니다.'라는 한 줄이 제게 큰 힘이 되어요. 


다음부턴 시간을 더 들여서라도 제 생각을 정리하고, 깊지 못하더라도 쓰고 싶은 글을 써봐야겠어요. 

소심함은 노! 내가 7000만원이 넘게 주고 산 '자유로운' 그 가치를 잘 표현해내는 사람으로!! 


그나저나 승욱오빠 아들 꼭 한번 만나게 해주세요. 

아주 친절한 선생님도 있다는 것을.. ㅎㅎ (귀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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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11:20:32 *.166.160.151

세린...이제 백신을 맞아도 소용없다며 맞을수도 없는 언니도 있다네

결혼을 하면 물론...어른에 좀 가까워지는것 같기는 해.

그러나 켤코 단언컨데 어른과 결혼은 별개다..나는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싶네

그 맑은 웃음뒤에 이런 망설임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네.

천천히 하나씩 실마리가 풀어 지겠지.

언땅이 녹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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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00:52:12 *.142.242.20

길수 행님. 주룩. ㅜ.ㅜ


맞아요. 써놓고 출근길 걸으며.. 

결혼과 어른을 너무 연관시켰다. 

문장을 붙여놓으니.. 이거야 원. ㅎㅎ


그런 생각했다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왠지 내가 하지 못한 의식, 의례를 다 거쳐간 사람들 같아서. 

나보다 경험치가 넓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



언땅이 녹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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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14:40:15 *.114.49.161

30살 세린낭자, 우리 팔팔이 중에서는 막내이시지만 고민이 저하고 똑같아요. 서른이나 마흔이나 진짜 어른이 되고, 진짜 내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 두려움은 똑같은 듯 합니다. 오후 3시의 정신없는 때가 지나고, 목련이 피어나서 더 피곤한 봄날이 좀 이울면 기운내서 자세히 읽어볼께요.

 

하루 지나, 점심 먹고 와서 우리 아그한테 얻은 막대사탕 빨면서 다시 읽어 봐요.  혼자말 궁시렁궁시렁

'인두유종바이러스 예방접종이 자궁경부암을 예방한다면 <신화의 힘>을 서른 살에 읽고서 끙끙거리는 건 삶에 대한 예방접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 번 읽고 말 책도 아니고, 내 서가에 두고 평생 읽을 책, 자식에게 물려주어도 될 책을 우리는 지금 읽고 있는게 아닐까? 이 처자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끝까지 밀어가지 못할까봐 두렵다면서 그 두려움에 대해 끝까지 잘 밀고 가네, 왜 무제일까? 무제는 그림 제목으로 많이 읽었는데, 그 때마다 작가가 '무제' 대신에 아무 제목이라도 지어주었으면 내가 이해하기에 더 좋을텐데. 근데 마지막 문장 보면 낭떠러지에 서서 날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럼 나는 '떨어지지 않아'를 '떨어져도 돼'라고 말해줘야 할까? 나이값 하려면? 나도 두려운데....백척간두진일보 이런 말이 막 생각나네. 결국 승리하는 건 스승님이 하라는 대로 곧이 곧대로 하는 우직한 사람 아닐까? 세린낭자도 하라는 대로 곧이곧대로 하는 이 같은데....뭐 난 잘 모르지. 멋지게 보이고 싶으니까 이렇게만 쓰자' 

 

어딘가로 진일보 하려는 듯한 그대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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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00:54:37 *.142.242.20

콩듀언니~! ^^ 

언니 글에도 자궁경부암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가지고.. 나 깜짝 놀랐다는. ㅋㅋ

웃음나고,, 괜히 즐거웠다는. ㅋㅋ

자세히 읽어주고

따뜻하고, 등 쓰다듬어주는 댓글 써줘야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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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14:48:26 *.120.78.130

나도 이번에 의례에 대한 이야길 읽으며 우리 아들은 성인식을 좀 해 주어야  겠다고 생각함

우리나라도 5월인가 성년의 날 이 잇지만 있는지 없는지 미미하게 넘어가 버리고 말지?

 

난 신화의 힘을 읽으며 캠벨 교수처럼 가톨릭에서 어린 시절을 자란 사람으로 의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된 것 같더라고...

 

없어진 좋은 전통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

 

성인식을 치르는 남자 아이들이 많아지면 마마보이가 좀 많이 줄 것이란 생각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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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01:01:28 *.142.242.20

3월 초 부터 학교에 사건사고가 많아요.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법도 강력하게 바뀌고 생활지도부의 할일들도 많이 늘어났지요. 

학생인권조례안 통과 건도 있는데다. 이것저것 


그런데 애들이 사건을 계속 일으키는 거에요. 

왕따시키고, 돈도 뺏고..

원시인들도 '문제아'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문제아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됬어요.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면서 

육체적 변화 뿐만아니라 

사고의 확장과 자아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이 시기의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어떤 의레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인지.. 


학습 부진아 지도 하면서 더 절실하게 생각하게 되는 부분인 듯. 

사랑으로 보듬지만, 뭔가 제대로 된 자기길을 가게 하려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캠벨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중딩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잘 전달해 봐야겠어요. 

그들이 천복을 따라 사는 축복을 누릴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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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17:25:10 *.51.145.193

우리가 어울려 지적 모험을 즐기는 게 어른으로 가는 리추얼 인 것 같아요.

근데 세린님은 모르긴 몰라도 정신적으로 저보다 어른인 것 만은 분명합니다.

저는 가끔 성장소설을 읽으며 즐거워 하는데 친구는 '니가 아직 어려서 그래' 합니다. ^^

처조카들이 초등학교 3학년인데 저를 부를 때 '철없는 삼촌, 어디가?', '철없는삼촌'이라 부릅니다.

근데 저는 이 말들이 너무 좋습니다. 삶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철이 안들었으면 좋겠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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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01:06:48 *.142.242.20

ㅎㅎㅎ ^.^ 

면접 여행때 뵙고 어찌나 재밌던지.. 

수근수근, 소곤소곤 이야기 하면서 

즐거웠답니다. 

입학여행 때도 엄청 웃길듯. 


전, 제 자신을 정말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론 제가 가진 이미지가 바뀌었으면 좋겠나봐요. 

뭐랄까. 자유로우면서도 냉철하고, 길수행님처럼 말을 툭 던지지만

상대방에게 위로도 되고 무언가 깨달음도 주고 ㅋㅋ


아직 멀었지요. 

천천히 가도 되는 걸 뭐 그리 급히가려는지. 

너도 재용오라버니 따라 '철없는 이모'로 좀 더 살아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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