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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8일 12시 13분 등록

장미 18.  밥 프로젝트

 

 

젊은 날,

인생이라는 강물 위를 손바닥만한 뗏목을 타고 불안하게 흘러가고 있을 때였다.

아이들은 어렸고 남편은 의지가지가 되기보다는 자기 문제에 빠져 나를 늘 불안하게 하고 있을 때였다.

걱정때문에 그 어떤 곳에서도 위로와 평안을 얻지 못하고 그냥 흘러가고 있었다.

물살이 세차게 휘감기는 구비길이었나보다. 자꾸만 망망대해에 외로운 쪽배 하나가 생각이 나고 지금 내가 겨우 몸을 기대고 있는 뗏목이 편안하지 않아서, 믿을 수 없어서 ,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아서 죽을 것 같았다.

 

긴 인생을 지나고 보니 불안한 생각들, 오지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 더 힘든 삶을 살게 하는 것 같았다.

두둥실, 운명에 맡기고 결과를 기다려볼 수도 있었을텐데.....

그때 그 젊은 조바심 끝에 삼박사일 심리치료 과정인 게쉬탈트 워크샵을 갔었다. 조용한 산 속에 있는 원불교 수련원이었다.

차를 몰고 가는 길 내내 불안한 어떤 감정들이 올라오더니 바위길 절벽 옆을 돌아 나갈 때 이대로 차를 좀 더 세게 몰아 이 불안함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카톨릭 집안에서 자라나, 집안에 자살자가 있으면 가족들이 더 이상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금기 조항, 교회법이 있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이 주는 조건을 자연스럽게 이용하면 곧게 갈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번 눈을 감아 보았다. 용기가 좀 모자랐던 것 같다.

결국은 워크샵 도중에 감정이 폭발해서 집으로 간다고 짐을 다 싸서 다시 나왔다.

그때 친구 하나가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채 앞좌석에 같이 탔다.

가까운 곳에 계시던 신부님께 갔다.

신부님은 "밥 먹고 가"

내 모든 혼란을 이 한마디로 위로했다. 고민 종결자.....말씀일까? 밥일까?

따뜻한 불빛아래 따뜻한 밥 한술....

 

친구를 다시 워크샵 장소로 데려다주며 같은 길을 갔지만

이번엔 절벽을 향해 돌진하고싶은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다만 포근하고 따뜻했던 밥과 그 불빛과 실컷 웃었던 일만 생각이 난다.

그때 그렇게 맨발에 슬리퍼바람에 따라나온 친구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가끔 한번씩 생각해본다. 만약 그때 그사람이 옆에 있지 않았다면 책임감 때문에 에너지를 한곳에 모아 차를 운전하게 하지 않았다면 그날은 죽기에 참 좋았던 날이 아니었을까?......

 

 

무척 외로웠다.

한여름의 게쉬탈트 워크샵은 상담에 몰입한 사람들이 모여왔으니 그 출렁이는 폭도 클 수 밖에 없었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하는 인사에서부터 앞사람이 시비를 건다.

잘났어 정말........ ”

나는 표지가 하얀 앨범을 통째로 가져갔었다. 완벽하게 우아했나보다. 게다가 학회에서 늘 보던 인물이 아니라 존재의 무게감에 눌려 무겁게 앉아있는 새로운 얼굴이었으니 그 표정이 얼마나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을까... 나는 내가 그렇게도 읽힐 수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다행이 이 여인들이 나랑 방을 같이 쓰기를 원했다. 함께 담배를 피우고 조금씩 노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이미 목구멍까지 삶에 대한 회의가 차올라있었다. 더는 남의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나는 구비길 여울목에서 아슬아슬한 헛 맴을 돌고 있는 뗏목의 한쪽 귀퉁이를 잡고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던 중이었다. 내 인생은 왜 이런 것인가? 왜 내게는 아무도 없는 것일까? 나는 외롭다. 뼈에 사무치게 외롭고 또 나는 혼자다. 천지간에 이 풍랑 속에 혼자 떠메고 있는 내 삶의 무게여, 외로움이여.......

 

그 친구 중 하나가 슬리퍼를 신은채 내 옆자리 앉았고 나와 함께 꾸불꾸불한 길을 달렸고 나와 함께 밥을 먹어주었다.

사람은 밥심으로 삽니다.” 만고 불변의 진리 ...그러니 밥은 잘 먹고 사십시다. 밥잘은 나의 또 다른 아이덴티티.

 

나중에 좀 정리가 된 후에 이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그땐 정말 즐겁게 함께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고맙단 말은 하지 못했다. 잎새, 그날 함께 옆에 있어줘서 참 고마웠어요. 당신의 사랑과 섬세함이 바람 앞의 등불같던 한 생명 살려놓은 거예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함께 사는 세상, 이 느낌 그대로 가지고 잘 살아볼게요.

 

작년에 나의 멘티였던 연구원 밥 사주러 나간다.

"아 따블" a table 이란 제목의 레스토랑은  프랑스 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란다.

일년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고 올 일년 또 글을 잘써서 천만원을 벌기를 기원해 주려고 한다.

따뜻한 밥, 사람을 살리는 밥을 함께 먹고 그의 꿈도 귀 기울여 들어주고 밥심을 목표삼아 밥 프로젝트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해마다 연두빛 봄날의 한가운데에서 연구원들과 좋은 곳을 다녀왔더니 좋은 생각과 좋은 힘이 함께 솟아나는 것 같다.

봄날 죽고 그 봄밤에 다시 살아난 8기 연구원들을 기리며 그들도 밥잘먹고 글잘쓰기를 기원한다.

      

 

 

IP *.70.6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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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8 21:26:24 *.143.156.74

선생님, 저도 아 따블에서 따블로 밥 사주세요.

저, 밥심으로 사는 아줌마거든요.

밥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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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9 23:34:26 *.70.64.222
재키도 일년동안 웨버 겸직하느라 배많이 고팠을꺼야........당근 아 따블 + 따블로 가야쥐

ㅋㅋ 근데 봄이거든, 곧 여름이 다가오고.....몸매관리 차원에서  우동한그릇 시켜서 나눠먹자.... 우히힛~

시내나올 때 전화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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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8 23:17:58 *.118.21.153

저도 그 밥 프러젝트에 동참 원합니다.

선생님........................................선생님도 외로우셨었군요?

저는 외롭다는걸 인정 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삶의 무게는 여전히 무게가 나가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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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9 23:35:15 *.70.64.222
샐리 올리브도 오케이. 배고픈 사람도 다 나오고...외로운 사람도 다 나오고...삶이 무거운 사람도 다 나오세요.

남산에 진달래 개나리 벚꽃....눈부시게 피었길래...나는 온종일 굶으며 꽃구경 했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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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2 19:31:54 *.117.43.91

선생님을 멘토로 만나게 된 것이 제겐 얼마나 큰 복인지요.

그날 점심도 봄볕도 참 좋았어요. 선생님과 함께해서 더욱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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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13:43:22 *.70.64.222

미선아,

 오히려 내가 너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만남이었단다.  고마워.

이제 밤이 깊을수록  별이 더욱 빛나는  시즌 2가 시작되었지..... 이 시간도 충만하게 ......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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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13:44:53 *.70.64.222

샐리 올리브,  내게 전화해줘요.  8기 연락처가 없어요.  콩두는  어이하여 선배님 댓글에 답글을 안다는 것이야.....혼내줄려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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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14:12:30 *.114.49.161

아하하하하 저 왔습니다. 혼내주세요. 북리뷰의 댓글도 다 달겠습니다. 제가 사부님 벼락을 맞고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긴 했지만 기 팍 죽어 있었어요. 엉엉엉. 마음이 삐뚜려져 있었구요. 저한테 목숨을 빌려주신 두 도반을 안 죽이자고 북리뷰 2개를 한 주에 하려니 똑 죽는 줄 알았습니다.  몸살 났어요. 근데 이게 되는 걸 보고, 아, 할 수 있겠구나. 게으름 부리지 말아야지, 그 벼락의 볼트 수를 경험했으니 다시는 감전당하지 말아야지 실험실 쥐처럼 맹렬결심하고 있습니다.

 

밥잘 선생님의 '밥잘' 이름의 연유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밥잘'이 정체성의 일부라면 선생님도 지쳤을 때 '선생님, 밥 사드릴까요?' 말씀에 위로 받으시는 거지요? 저는 채부동 잔치집에 갔었어요. 근데요 거기 가고 싶었던 건 끝내주는 잔치국수 국물 때문만은 아니란 걸 가보고 알았어요. 빨간색 참이슬 한 개 까고 난 뒤였어요. 저도 용기내서 전화드리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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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16:08:44 *.70.64.222

우쭈쭈쭈... 누가 우리 콩두에게 벼락을 날려서..우리 콩두...... 간 ......콩닥콩닥 하게 만드셨을꼬.....

그대의 싸부님, 내 담에 만나면 혼내 드릴게...ㅋㅋ

단, 고양이 목에 방울은 길수 행님 보고 달라고 할까?   아님, 장재용?

그 체부동 잔칫집도 싸부께서 처음 우리를 안내 하셨구만...그러니 이젠 찬이슬 먹지말고 "처음처럼"을 먹도록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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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5 09:50:59 *.114.49.161

밥잘선생님의 '우쭈쭈쭈' 궁디팡팡에 쿡쿡쿡 헤벌레 이를 드러내며 웃었습니다.  '혼내 드릴께'에 '누가 우리 00이 넘어지게 했니? 문지방 내가 때찌해 줄께'라는 말이 막 떠오릅니다. ^^ 한 번 저한테 목숨을 빌려주신 행님과 재용을 위험하게 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팀을 위험하게 할 일은 안 하고 싶습니다. 저만 잘하면 됩니다.^^ 제가 무섭습니다. 하룻강아지보다 더 철없는 하루 쥐새끼같어요. 제가요. 쥐구멍에 쏙 들어왔다가 선생님 말씀에 다시 뭐 재미난 거 없나 처음처럼 눈 반짝거리며 궁디 들썩들썩 까불락거리고 있습니다. ^^ 아직 벚꽃이 남아있습니다. 꽃비 속 우중산책도 좋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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