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장재용
  • 조회 수 2167
  • 댓글 수 6
  • 추천 수 0
2012년 5월 7일 10시 52분 등록

신의 선택

 

2010 5,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시신 한 구가 빙하를 뚫고 떠올랐다. 주위사람들은 최소 10년 전 Ice fall 지대에서 추락사한 사람으로 추정했다. 오랜 시간 동안 빙하가 융기와 침식을 거듭하면서 이제서야 지상으로 떠올랐다고 했다. 셀파들은 간단한 염을 한 뒤 미처 수습하지 못한 팔과 다리는 수색하기를 포기하고 시신을 아랫마을 롯지로 운구했다. 지켜보던 나는 엄숙했고 두려웠다.

 

그곳은 나를 환영하지 않았다. 시시 때때로 내리 꽂는 눈사태의 굉음은 너와 같은 미물이 머물 곳이 아니다고 말했고 희박한 산소로 내 숨통을 조여오며 식욕을 모두 앗아갔다.

 

그날 저녁, 히말라야의 다른 산, 마나슬루(8,163m)로부터 비보가 날아왔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우리는 에베레스트로 그들은 마나슬루로 출정했고 등정 후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며 나란히 원정길에 올랐었다. 그렇게 그 팀과 헤어지고 한 달 뒤, 나는 그 팀의 전도유망한 산악인 2명을 히말라야 신께서 데려갔다는 소식을 시퍼렇게 날 선 바람과 같이 들었다. 그 소식은 히말라야 준봉의 옆구리를 휙휙 돌아가는 바람을 타고 여기까지 와서는 내 광대뼈 끝을 찢어버리고 박혔다.

 

그들의 소식에 슬픔을 가누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이내 그들의 죽음을 살아 있는 나와 연결 시키며 나를 살려 달라했고 지켜주시라 했다. 두려움은 두려움으로 끝나지 않았고 제 자신을 위한 비열한 기도로 이어지고 있었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돌들이 부러웠다. 나는 두려웠다.

 

엊그제, 카자흐스탄 원정팀의 한 대원과 본격적인 캠프 구축 전에 날씨 정보를 주고 받으며 그의 가족과 나의 가족 얘기를 나누었다. 1주일 뒤 나는 그를 7,500m 지점에서 시신으로 다시 만났다. 그를 애도하기 위해 꿇었던 무릎은 실은 두려움에 다리가 풀려 주저 앉은 것이었다. 더 이상 이 지옥 같은 사지(死地)에 있고 싶지 않았다.

 

봉우리 하나하나는 산이 아니라 나를 압도하는 신의 모습을 하고는 인간을 바쳐라, 순결하고 거룩한 완전한 인간을 바쳐라하며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둘러싼 채 징징대고 있었다. 불과 조금 전까지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에 감탄을 연발하던 히말라야 준봉들의 풍광은 이제는 검고 흰 천을 덮어 쓴 사자(死者)의 모습으로 보였다. “나는 죽여서 씻어낸다…”(포악한 웃음 소리)

 

불현듯 의문이 들었다. 죽은 그들이 불행한가, 살아있는 내가 불행한가. 그들은 적어도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무릎이 벌벌 떨리는 두려움은 없지 않은가. 살아남은 자는 살아남은 영광대신 이와 같이 비열해 지지 않았는가. 살아남은 자는 이렇게 스스로가 무가치적이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결국 알아차리게 되지 않는가.

 

인류사의 어느 부족은 20년 치정을 완수한 왕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자결하며 자신의 피를 뿌려 제 존재가치의 위대함을 확인한다. 어느 부족은 게임에서 이긴 자가 제물로 바쳐지는 영광을 얻어 낸다. 그들의 죽음은 제 안에 신이 있음을 확인하는 의례였다. 그들은 자신의 죽음 바쳐서 영원히 살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가 영광스러웠던 적은 없다.

 

어미를 죽인 오레스테스는 미쳤고 제 아비를 죽이고 제 어미까지 자살로 몰고 간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스스로 찔렀다. 안티고네와 제 아들 하이몬을 죽게 하고 자신의 아내조차 자결하게 한 크레온은 자신의 숨통을 끊어 달라 절규한다.

제 아들 펜테우스를 죽인 아가베는 신에게 욕을 퍼붓고는 제가 살던 곳을 버린다.

무대에서 흥건한 피를 보고는 제 자신의 원죄를 씻어내었다고 믿는 관객들은 또 어떠한가. 다시 시간이 지배하는 삶의 고통 속에서 존재를 웅크릴 수 밖에 없다.

 

다시 물어보자. 신의 영광은 잗다란 등정의 기쁨을 얻은 나에게 있는가, 영원히 사는 법을 택한 그들에게 있는가. 빙하에서 떠오른 산악인, 마나슬루의 동료, 카자흐스탄 친구신이 선택한 인간은 그대들인가, 나인가.

IP *.51.145.193

프로필 이미지
2012.05.07 15:40:27 *.120.78.130

죽은 그들이 불행한가, 살아있는 내가 불행한가?

나도 수도 없이 해본 질문이다.

재용의 글의 깊이는 산의 높이만큼이나 하구나

늘  마음 속 깊이 울려대는 컬럼으로 오늘도 포식.

프로필 이미지
2012.05.08 10:29:32 *.51.145.193

더 큰 고통을 겪으신 누님 앞에서는 작아지는 글입니다.

글이 필요없이 너무 심각하게 진행되는 게 아닌가 생각해서 힘을 빼려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5.08 09:13:39 *.114.49.161

재용은 큰 산과 그 산에서 신에게 간 이, 살아돌아온 이를 직접 만나보셨군요. 그 점이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영화와 TV와 여행기에서만 보았어요. 히말라야 트레킹 이야기는 전작주의 했던 김남희씨의 여행기에서 읽었어요. 설산 앞 게스트하우스에서 베낭 속에 넣어간 책을 꺼내 읽어보고 싶었지요. 그래도 언제나, 얼마나 많은 여행기를 읽고나서야 내가 이륙하게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재용의 책이 여행기가 되든 산행기가 되든 저한테는 안 가본 곳으로 떠나는 에너지를 주는 그런 책이 될 것 같아요.

 

재용, 이번 주 어린이날도 출근해서 타이핑을 했다고 했지요. 2010년 5월이면 2년 전이니 큰 아이가 아내 품에 있고 작은 아이는 아직 없었겠네요. 길수형님이 직접 들고오신 꽃다발을 보면서, 어린이날에도 출근해 인용문 다듬고 있는 재용 생각하면서 저도 책을 읽었어요. 두 분이 참 든든한 힘입니다. 질 낮은 미완의 리뷰지만 그래서 낼 수 있었어요. 고마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5.08 10:32:29 *.51.145.193

동기들의 지난 칼럼을 찾다가 몇 주전에 올렸던 지나간 북리뷰에

누님이 모든 동기들의 글을 찬찬히 읽고 달아놓은 댓글을 봤습니다.

동기의 글을 이렇게 생각하시는구나 했습니다. 배려와 관심에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5.08 19:13:38 *.166.160.151

재용은 매번 힘을 뺄려고 한다라고 하고 있다.

스스로가 알텐데, 뺄만한 힘이었으면 글에서 빠졌겠지

아직 빼지 못할 이유가 있을거야.

신은 누구를 선택했기는....? 둘 다 선택했지

산사람도 살아있지 않은 사람도

무한함의 희망도 있고 유한함의 희망도 있는 거쟎아...

 

프로필 이미지
2012.05.09 15:04:01 *.51.145.193

누님, 그렇지요? 명료한 답 앞에서 제 스스로 우물쭈물 대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어느 순간 부턴가 글이 뭔가 부자연스럽습니다. 변화가 필요한데...

항상 절실한 것을 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뵙겠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972 하나한 : 깨달음을 위한 프로세스 1 백산 2012.05.14 1782
2971 단상(斷想) 100 -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file [1] 書元 2012.05.13 6319
2970 #29. 신치의 모의비행 - 운명 외 [4] 미나 2012.05.08 1821
2969 계획의 효력은 3일? [8] 루미 2012.05.08 1799
2968 쉼표 다섯 - 의지력 저장고를 확인하라 [8] 재키 제동 2012.05.07 2033
2967 누가 살인 과보의 종결자일까? [6] 권윤정 2012.05.07 2500
2966 #5. 비극도 희극이 될 수 있다./ 너는 찾고, 나는 증명하고 [4] 세린 2012.05.07 1890
2965 쌀과자#5_문서위조 [3] 서연 2012.05.07 1783
2964 트로이 여인들의 비극과 나의 이야기 [9] 샐리올리브 2012.05.07 2307
» 신의 선택 [6] [1] 장재용 2012.05.07 2167
2962 #5 고난에 대처하는 삶의 자세 [6] [2] 터닝포인트 2012.05.07 3704
2961 #5. 폭죽을 훔친 아이 [3] 한젤리타 2012.05.07 2265
2960 다섯번째- 삶에 대한 자기고백과 수면제 [5] id: 문윤정 2012.05.07 4324
2959 그리스 비극을 읽고 난 후 - 불의 훔침과 오이디푸스 [7] 학이시습 2012.05.06 2229
2958 단상(斷想) 99 - 봄, 해운대 바다 file [1] 書元 2012.05.05 1992
2957 [일곱살 민호] 양을 훔친 아버지 file [10] [1] 양갱 2012.05.02 3413
2956 #28.신치의 모의비행-아이돌을 다시보다 외 [19] 미나 2012.05.01 1956
2955 오늘 하루 뭐했지? [12] 루미 2012.04.30 2267
2954 쉼표 넷 - 인생길 반 고비에서 길을 잃은 여자에게 file [13] 재키 제동 2012.04.30 2843
2953 #4.내가 꿈꾸는 변화   file [7] 세린 2012.04.30 1894